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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환상 문학 16 (미성년자) 랠리 씀

불꽃심장- Bye "Filled With Tear"

비환상 문학
16









 60. 전화



 “어, 엄마.”

 베개 맡에서 울리는 진동에 부스스 눈을 떴다. 오랜만에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민아, 잘 지내고 있니? 다정하게 묻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내 옆에 있는 너를 살폈다. 내 몸을 한가득 끌어안고 고요히 잠들어 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 동안 길게 사랑을 나누다가 겨우 깊은 잠에 빠져든 너를 깨우고 싶지 않아서다. 아니, 실은 네 앞에서 엄마와 통화를 한다는 것이 마음 쓰였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스르르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학교에 있어야 할 늦은 오후에 자다 깬 목소리가 들려오니 엄마는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냐며 걱정이 쏟아진다.

 “아니, 아픈 데 없어요. 오늘 개교기념일이라….”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제자와 도망치듯 바다에 왔다는 걸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것도 남자와 함께.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네. 걱정 마세요.”
 “엄마가 내일 반찬 주러 갈게.”
 “아, 아냐. 두세요. 거리도 먼데… 아직 먹을 것도 많고….”
 “얘는, 한두 번도 아닌데. 엄마가 그 정돈 할 수 있어.”

 덜컥 겁이 났다. 너와 나의 흔적으로 가득한 집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 아직 정학이 끝나지 않아 온종일 집에서 나를 기다릴 너. 순간적으로 네가 엄마와 마주치는 생각을 했다. 상상만으로도 당황스럽고 마음이 답답하여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엄마, 진짜 괜찮아. 반찬 앞으론 안 갖다 줘도 돼요.”
 “너 수상하다. 여자 생겼니?”

 눈치 빠른 엄마의 물음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맞다거나, 아니라거나,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숨이 터진다. 가슴속이 답답했다.

 “어어? 대답 못하는 것 봐. 너 여자 친구랑 같이 사니?”
 “……아니에요 엄마.”
 “안 그랬잖아 지민아. 엄마가 반찬 주는 거 좋아했음서.”
 “그런 게 아니고… 요즘 학교일 때문에 마음이 좀 복잡해서 그래요.”

 일이 좀 있었거든요.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집 청소도 못해서 엉망이고… 그냥 엄마 걱정할까 봐 그러지. 아니에요. 청소는 제가 해도 돼요. 엄마 요즘 다리 아프다며. 지연이한테 들었어. 다음 주에 반찬 가지러 갈게요. 응. 괜히 걸음 하지 마세요. 걱정 마요. 별 일은 아녜요. 시험기간이라 그래요.

 나는 변명을 쏟아냈다. 화장실 벽에 기대서 통화를 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펄떡거린다. 너와 함께 지내는 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밀려들어온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되뇌어 본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던 이유에 대해.

 언제부턴가 너와 다시 떨어져야한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여태 외롭다고 생각한 적 없었음에도, 네가 내 집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하고 답답하다. 그게 당연한 건데도 그랬다. 어쩌면 외로움도 전염되는 걸까.

 “하…….”

 네게 가지 말라고 할까. 계속 나와 같이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할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내가 겁쟁이라서 그렇다.

  쥐고 있던 휴대폰에 진동이 다시 울렸다. 지연이의 전화였다. 바로 전화가 오는 걸 보니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한 살 어린 내 여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일에 관심이 많았다. 사이가 좋아 지금껏 크게 다퉈본 적도 없다. 그리고 지연이는 유일하게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빠, 엄마 오지 말라고 했다며?”
 “어어….”
 “누군데? 같이 살아?”

 눈치 빠른 지연이가 앞뒤 말을 잘라먹고 대뜸 묻는다.

 “같이 사는 건 아니고… 잠시 지내는 거야.”
 내 대답에 지연이가 그럴 줄 알았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냐, 어디 사는 사람이냐,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한다.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어서 마른 침만 꼴깍 삼킨다.

 “뭐야 왜 대답 못해? 나한테 숨길 게 뭐가 있다고.”
 
 지연이에게 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무 살이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고……. 아니다. 이런 설명은 덧없다.

 “오빠 혹시……”
 “…….”
 “학생은 아니지?”

 결국 난 지연이가 대답을 재촉할 때까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오빠 진짜 그건 아니길 바란다.”

 우리 사이를 ‘사랑’ 말고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다.



   

 61. 기록



 손을 맞잡고 한적한 해변을 거닐었다.

 너는 내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 걷는다. 내가 너의 보폭에 맞춰 서둘러 걸을 틈도 없이 말이다. 너와의 미래가 어떨지 알 것 같다. 확신할 수 있다. 너는 나와 함께 있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끝없이.

 바닷바람에 너의 까만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날린다.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주자 도톰한 애교살을 보이며 웃는다. 얌전한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귀엽다.

 “잘생겼다. 우리 정국이.”
 “그래서 나 좋아하는 거지?”
 “응.”
 “너무 솔직하네.”
 
 정국아, 내가 널 언제부터 좋아했던 걸까 생각해 봤어. 네가 처음 내 손을 잡았을 때? 아니 그보다 먼저인 것 같았어. 네가 날 위로해주었을 때? 그보다도 먼저인 것 같고. 너와 함께 밥을 먹었을 때였나. 아니면 수업시간에 너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것도 아니면, 너를 처음 만난 날이었을 수도 있겠다. 출석부 사진과는 달리 맑은 눈동자를 가진 너를 본 순간부터, 호감을 들키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 같아.

 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양 볼을 부여잡고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다. 나는 너의 품을 파고들었다. 쿵 쿵. 나와 같은 속도로 울리는 맥박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우리 둘뿐인 바다.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마음껏 너를 안을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눈을 떴을 때 기적처럼 우리가 더 멀리 와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업어줄까요?”

 너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내 앞에 등을 보이며 몸을 낮춰 앉는다. 널따랗고 마른 네 등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업혔다. 목을 감싸 안았다. 폭신하다.

 “새털은 아니네.”
 “나도 남자거든.”
 “근데 맨날 업어줄 순 있을 것 같아.”
 “…치. 누가 맨날 업힌대?”
 “혼자 못 걸을 만큼 많이많이 해야겠다.”
 “참 나. 못하는 말이 없어.”
 “좋아할 거면서.”

  주고받는 대화가 웃겨서 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맞다. 정국아 나는, 너랑 하는 건 다 좋다 뭐든.

 “우리 사진 찍을래요?”
 “응.”
 “지갑에 넣고 다니고 싶다.”
 “그래. 그러자.”

 할아버지의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는 너의 말을 떠올린다. 너 역시 나처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자꾸만 불안해하고 있을까. 서로에게 수 없이 많은 확신을 주고 있음에도 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나눠 낀 커플링처럼 서로를 계속 채워줄 수 있는 추억을 만들 것이다.

 “떨어지기 싫다. 쌤.”

 네가 낮게 소곤거린다. 떨어지기 싫다. 떨어지기 싫다…. 나는 내심 네가 그 이상을 내게 말해주었으면 싶다. 쌤, 나 쌤이랑 계속 같이 살래요. 우리 같이 살면 안 될까? 네가 이렇게 묻는다면 기꺼이 다른 것들을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너와 한 순간도 떨어지기 싫다. 고작 보름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너의 부재가 무섭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찰싹 붙어있을게. 지금처럼.”
 “흐흥, 약속해 그럼.”
 “또?”
 “응. 도장도 찍고 사인도 하고.”

 혹시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지금 나는 첫사랑을 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온전한 사랑을 받고 그만큼 네게 돌려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고.

 

 시내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오래 된 사진관을 발견했다. 네가 그 앞에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가 지긋한 주인장이 카운터에서 앉아 졸다가 안경을 고쳐 쓰며 반겨준다. 우리는 몇 개의 램프만 들어와 있는 컴컴한 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카메라가 우리 앞에 서 있다. 나란히 앉아 손을 잡았다. 왠지 가족사진을 찍는 것 같다.

 “여기 보세요.”

 몇 번의 찰칵 소리와 함께 조명이 번쩍였다. 뒤이어 포즈와 표정이 어색하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러자 네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뺨을 붙여온다. 보드라운 살결이 닿는 기분에 웃음이 났다. 또 몇 번의 셔터 소리가 난다.

 “형제가 사이가 좋으시네.”

 사진사의 말에 서로를 힐끔거렸다. 웃음이 샜다.

 인화해드릴까요? 액자로 드릴까요? 물어오는 주인장의 말에 망설였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우리의 사진엔 행복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큰 액자를 집에 걸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네가 나의 손을 잡으며 대뜸 그랬다.

 “둘 다요. 하나는 지갑에 넣고 다니고, 액자는 우리 집에 걸어놓을게요. 쌤 집에는 못 거니까.”
 “…….”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쿵 떨어졌다. 혹시 내가 전화하는 소릴 들은 걸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값을 치른 뒤 내 손을 잡아당기는 힘에 이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따라 걸었다. 어느덧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네가 시동을 걸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

 “정국아.”

 조심스레 너를 불렀다.

 “나는,”
 “으응.” 
 “참을 수 있어요.”

 나는 참을 수 있다는 너의 말뜻이 뭔지 알 것 같다.

 “나중에 액자 걸어요. 우리 둘의 집이 생기면.”
 “…정국아.”
 “내가 쌤 책임질 수 있을 때.”

 생각이 깊은 네가 가끔 가엽다.

 네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다. 동그란 눈망울이 한참이나 내 얼굴을 살핀다. 그 눈빛이 꼭 울지 말라는 것 같았다. 내가 또 울어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씹으며 눈물을 꾹 참았다. 이건 절대로 슬퍼서가 아니다. 네 마음이 너무 벅차고 고마워서 그렇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신파가 아니다.

 “기다릴게.”

 결코, 슬프지 않다.

 화답하듯 네가 내게 입을 맞춰온다.





 62. 뜨겁게 사랑하고

- 성인 공개 -

 












(+) 내용 진전 없이 끊어가는 편이네요. 몰아칠 준비를...
요즘 글 쓰는 게 참 힘든데.. 댓글 보면서 힘 많이 얻었어요. 감사해요!

* 랠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8-04-24 16:37)
피터팬  | 180414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 180414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뻐꾸기  | 180902   
♡♡♡♡♡♡♡♡♡♡♡
랠리작가님열성팬  | 181009  삭제
작가님 항상 글 너무 행복해하면서 보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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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