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ALL 비환상 문학 (33) 만년설(說) (1)
환상 문학 Part2 랠리 씀

불꽃심장 - 슬픔은 햇살과 함께

환상 문학
Part2 : 스물둘, 서른














 91. 지금



 정국이는 올 봄에 치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가 난 날, 그는 내 몸을 끌어안으며 뛸 듯이 기뻐했다. 레스토랑에 취업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의 허리를 껴안고 대뜸 발등 위로 올라섰다. 그러면 비로소 눈높이가 맞아서 그의 콧등과 눈꺼풀에도 뽀뽀를 해줄 수 있다. 나는 그의 발 위에 올라 선 채 닿는 대로 마구 입을 맞춰주었다. 정국이는 내 발을 지탱한 채로 하나 둘 발걸음을 떼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마치 블루스를 추듯, 우리는 아장아장 걸으며 기분 좋게 흔들렸다.

 “그렇게 좋아?”
 “응. 뿌듯해요. 할아버지도 좋아하시겠다.”
 “맞아. 수고 많았네. 우리 애기.”

 그는 이제 어려운 공부 안 해도 된다면서 코끝을 내게 문질렀다. 그간 일을 마치고 밤마다 열심히 공부해온 걸 알기에 감동이 몰아쳤다. 기특하다. 마치 아들을 키우는 기분이다. 이제 주말마다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며 선생님 놀이를 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눈동자를 도르르 굴려가며 영어 지문을 읽는 모습이나, 단어 뜻이 뭐냐고 물으며 귀엽게 영어 발음을 하는 목소리를 못 듣는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모르는 수학 문제가 있을 때는 연필 끝을 입에 물거나, 손톱으로 얼굴에 난 솜털을 톡톡 뽑는 모습은 자다가도 생각 날 정도로 귀여웠거든.

 정국이는 내게 합격 선물을 받고 싶다고 했다. 뭐든지 말하라고 했더니 나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서로의 날짜를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름휴가 때나 되어야 가능하단 걸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봄부터 여름휴가 계획을 세웠다. 그는 모든 여행 준비를 자신에게 맡겨달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계획을 짜서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실은 남들처럼 데이트다운 데이트 한 번 못했기 때문에 더 설렜던 것 같다. 정국이도 내 맘과 같은지, 들뜬 표정으로 몇 달이나 여행지나 펜션을 검색하다가 잠들곤 했다. 그런 그가 귀여워서, 궁금한 걸 꾹 참으며 우리의 여행을 상상했다.

 여름방학이 되고, 나는 보충수업에 나가며 정국이의 휴가를 기다렸다. 8월 중순이 지나서야 레스토랑에서 휴가를 얻은 정국이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면서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그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커플 수영복을 골랐다. 똑같은 모양의 모자와 슬리퍼도 샀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와 함께 보낼 4박 5일이 기대되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둥켜안고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한적한 풀 빌라였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삼 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채광을 보며 감탄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테라스로 뛰어나갔다. 아담한 풀이 달려 있고 그 옆에는 선 베드와 바비큐 그릴이 있었다. 테라스의 끝에 서면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근사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바다내음이 밀려온다. 내가 한참이나 멍하게 난간에 몸을 걸치고 바깥을 구경하자 정국이가 다가와 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맘에 들어요?”
 “응. 너무 좋아. 로맨틱해.”
 “낮에는 물놀이하고, 밤에는 여기 앉아서 같이 별 보자.”
 “으응. 정국아, 나 지금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벌써 행복하면 나중에는 어쩌려고?”
 “까무러치지 뭐.”

 내 말에 정국이가 킥킥 웃더니, 갑자기 내 몸을 들쳐 안았다. 그리곤 풀 안으로 풍덩 뛰어든다. 순식간에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물을 뿜으며 수면 위로 올라온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파도를 만들어 물을 뿌리자 그가 다시 잠수를 해서 내 다리를 붙잡는다. 우리는 몇 번이고 서로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 물에 담그는 장난을 쳤다. 정국이가 흠뻑 젖은 내 셔츠 자락을 붙잡고 벗겨 올렸다. 나 역시 그의 젖은 티셔츠를 말아 올렸다. 우리는 금세 맨몸이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발가벗고 수영해도 되겠다. 아무도 못 봐요.”
 “그건 너무 원시인 같잖아.”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바지춤을 붙들었다. 나는 물보라를 내며 그를 피해 끄트머리로 달아났다. 정국이가 풀 한 가운데에 서서 꼼지락거리며 바지 벗는 시늉을 한다. 내가 일부러 으악 소리를 냈더니 깔깔 웃는다.

 “야외에서 하는 건요?”
 “너 자꾸 요망한 것만 배울래?”
 “일취월장, 청출어람.”
 “미치겠다. 청출어람을 이런 데에다가 갖다 붙여?”
 “한 번만 하자, 지민아.”

 그가 능글맞은 목소리를 내며 내게 걸어왔다. 나는 얼른 풀에서 나와 도망쳤다. 그러자 그가 내게 달려오며 뒤에서 덮쳐온다. 그리고는 나를 안은 채 선 베드로 향해 걸어간다. 나는 꼼짝없이 붙잡힌 채로 선 베드에 눕혀졌다.

 “진짜 하려고?”
 “안 돼?”
 “너 그런… 판타지가 있는 거야?”
 “그럼. 나 아직 애긴데.”

 이럴 때만 애기인 척 하는 스물두 살이 귀여워 뺨을 깨물어주었다. 아야, 소리를 낸 그가 내게 입을 맞춰온다. 나는 그의 입술을 가만히 물고 눈을 감았다. 차갑게 와 닿는 감촉을 음미한다. 혀를 내밀었다가 뒤로 빼며 도망치는 장난을 치자 내 혓바닥을 콱 무는 정국이 때문에 아! 소리를 내며 항복하고 만다. 그가 입술을 떼고 내 볼을 어루만지더니 몸을 내려 나의 아랫배부터 가슴까지 핥아 올린다.

 “싫어?”
 “아니….”
 “그럼 좋아?”
 “몰라아.”
 “왜요. 대답 해봐.”

 네가 간지럽게 몸 이곳저곳을 쪽쪽거린다. 처음에는 시시덕거리며 발버둥 치다가, 유두를 입에 머금고 애무해오는 너로 인해 웃음기를 거두고 흥분에 찬 숨을 내뱉는다. 순식간에 에로틱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아랫입술을 꽉 물고, 너의 젖은 머리통을 찬찬히 쓰다듬는다.

 “이러려고 테라스 있는 데로 예약했지?”
 “응. 햇빛 아래서 잡아먹으려고.”
 “점점 대담해지네.”

 색다른 공간, 오로지 우리 둘을 위한 시간. 이런 것들이 나를 평소보다 더 큰 흥분으로 몰아간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벌써 술기운이 오른 사람처럼 몽롱해진다. 심장이 콩닥거린다. 너는 내 젖은 하의를 벗겨 내리며 꼼꼼하게 입을 맞췄다. 나의 반쯤 선 성기를 입에 물고 정성스럽게 움직이는 너를 내려다본다. 너의 손이 내 허벅지 안쪽을 끊임없이 어루만진다. 축축하고 야릇한 느낌에 눈을 꽉 감았다. 햇빛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파라솔 때문에 눈이 부셨다. 천장이 없는 곳, 그럼에도 아무도 우릴 볼 수 없는 곳, 묘한 떨림. 몸에 긴장이 서린다. 너 역시 그러한지 잘게 내쉬는 숨소리가 떨려온다.

 

 우리는 함께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모로 누워 커다란 창에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 뒤에서 나를 꼭 안고 있는 너의 심장이 잔잔하게 뛴다. 그 울림이 좋다. 두터운 너의 팔을 조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2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새겨본다. 따사롭던 햇빛이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노을이 내린다. 창공을 유유히 날고 있는 두 마리의 새가 보였다. 그 하늘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날개를 조금도 꺾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평화.

 “신기해.”
 “뭐가요?”
 “재작년에 우리를 생각해보니 그래.”

 너를 처음 본 날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너로 가득했다. 짧다하면 짧은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왔다. 다가설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들. 네가 혹시 나를 안아주진 않을까, 입을 맞추진 않을까, 네 앞에만 서면 온몸이 굳어버렸던 시간들. 내 숨소리를 들으면 마음까지 다 들켜버릴까 봐 숨도 마음대로 쉬지 못했던 시간들. 필름이 끊길 정도로 강렬했던 첫 키스. 내가 네 것이 된 걸 혹시 누가 알게 될까 봐 먼발치에서 눈빛으로 대화했던, 그 시간들.

 비로소 우리는 지금을 맞이했다. 치열했던 과거는 일기장의 한 페이지처럼 아름답게 박제되었다. 우린 가끔 그걸 열어보며 지금을 살아간다. 절대로 낡지 않을 것이다. 소강되었다고 해서 지워지는 건 아니니까.

 “나 형한테 할 말 있는데.”
 “응?”
 “사실 이 말 하려고 여행 가자고 했어요.”
 
 너와 함께 하는 지금을 또다시 쌓아간다. 그것이 모여 우리의 앞날이 된다. 나는 지금,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너를 담기 위해 몸을 돌린다.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네가 보인다. 언제고 내가 뒤돌기만 하면 볼 수 있게 기다리고 있는 너의 눈동자가 보인다.

 나는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네게 눈을 맞췄다. 조금 뜸들이며 입술을 달싹이는 너로 인해 공간에 떠 있던 모든 입자들이 걸음을 멈춘다. 세상 만물이 다 너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다. 마른 침이 넘어갔다.

 뭘까,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단 둘이 여행을 떠나서 해야 하는 그 중요한 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너를 만나며 터득한 것이 있다. 너는 할 말이 있을 때 유독 눈빛의 밀도가 높아진다. 어쩌면 첫 만남에서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것도, 네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감췄기 때문은 아닐까. ‘반했어요.’, ‘상처받기 싫어요.’, ‘다가와 주세요.’

 “우리…”
 “…….”
 “같이 살자.”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귀에는 방금 전 너의 목소리가 끝없이 재생된다. 같이 살자. 같이 살자. 우리, 같이 살자.

 “액자 걸고 싶어.”
 “…….”
 “사진 많이 찍어서 벽 여기저기에 걸어놓자.”
 “…….”
 “커플 잠옷 입고, 똑같은 베개 두 개도 사자. 아침밥은 내가 할게요.”

 눈앞이 흐릿하다. 예전에 네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참을 수 있어요.’
 ‘나중에 액자 걸어요. 우리 둘의 집이 생기면.’
 ‘내가 쌤 책임질 수 있을 때.’
 ‘나중에 크면, 내가 능력이 생기면요.’

 네가 손을 들어 내 뺨에 흐르는 것을 어른스럽게 닦아준다.

 “퇴근하면 매일 얼굴 보는 거예요. 가끔은 형이 좋아하는 인형도 선물할게요. 음… 일찍 퇴근한 날은 집 앞 맥주 집에서 한 잔 하는 거 어때요? 힘든 날은 소주도 괜찮아.”
 “…….”
 “아, 그리고 빔 프로젝트 사서 영화도 봐요. 철 지났지만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로. 쉬는 날에는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줄게요. 어쩌다가 늦잠을 자면 서로 흔들어 깨워줄 수도 있어.”
 “…….”
 “형 출근 시간이 더 빠르니까 내가 매일 셔츠 다려줄게요. 형이 다 읽은 책은 나도 볼 거야.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구절에는 밑줄 그려줘요.”

 너의 말이 다 끝날 때쯤엔 나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었다. 네가 말한 모든 것들이 너무 행복해서. 내가 늘 꿈꾸던 것들을 네가 모두 말해줘서. 고마워서.

 “모든 순간을 공유하는 거예요.”
 “흐윽….”
 “왜 울어. 바보야.”

 나를 품에 안아준다. 너의 가슴에 파묻혀서 몸이 떨리도록 울었다. 너는 내 훌쩍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고요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에 사랑이 가득 담겨있어서 눈물을 멎지 못했다.

 “네가… 그 말을 해주길 기다렸어.”

 2년이 흐를 동안.

 “늦게 말해서 미안해.”
 “…….”
 “이젠 형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아냐. 부족하지 않아.”
 “같이 살면서 더 좋은 애인이 될게요.”

 너의 말에 ‘평생’이라는 단어는 빠져있었지만,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는 굳이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거니까. 평생.

 “더 많이 사랑할게요.”
 “으응. 나도 그럴게.”
 “내 세상엔 지민이밖에 없어.”
 
 안다. 내가 너의 세상이 되어줄 거라고 다짐했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너 역시 내 전부가 되어주었으니, 이미 전정국은 좋은 사람이다.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너와 견줄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고마워. 많이 사랑해.”

 너의 허리를 한 가득 끌어안았다. 매일 아침마다 너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잠에서 깨는 모습을 상상한다. 전정국과 박지민의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한다. 지금. 지금부터.





 92. 이해



 우리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그런 결정을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정국이가 사는 연립주택. 두 집의 전세금을 합치면 조금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동산에 들러 이것저것 알아보니 24평 아파트에 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 둘 다 집을 볼 줄을 몰라서 어색하게 선 채로 빈 집을 둘러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저 그런 집 여러 개를 구경하면서 조금 지쳐갈 때쯤,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발견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아파트, 방 세 칸. 낮에는 발코니로 따사로운 햇빛이 잘 들어오는 정남향. 아파트 근처에는 산책로가 있었고, 가까운 곳에는 상가가 모여 있다. 무엇보다 학교와 레스토랑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앞으로 우리 둘의 집이 될 거라는 것을.

 마음에 드는 집을 결정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입주가 세 달 정도 남았다. 서로 살던 곳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이 초가을이니, 아마 내년 초쯤이면 모든 것이 새롭게 정리되어갈 것이다. 부동산에서 나오며 정국이는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좋아?”
 “응. 완전.”

 그는 운전을 하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살 집 근처를 드라이브했다. 정국이는 상가를 유심히 살피며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저기 맥주 집 있다. 와, 저기 만화방도 있어. 슈퍼도 가깝네. 저기 꽃집 보여요? 저기서 꽃 사다가 식탁에 올려놓을까? 들뜬 목소리로 조잘대는 모습이 귀엽다. 나는 그의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해주었다. 뭐든지,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주고픈 마음이다.

 “집이 생기니까 같이 사는 게 실감 나요.”
 “이사 오는 날 제일 먼저 뭐하고 싶어?”
 “음… 액자 걸기.”
 “그리고 또?”
 “거실이랑 방에서 막 뒹굴면서 할 거예요.”
 “…이 말 나올 줄 알았어.”

 

 정국이는 수트를 갖춰 입었다. 한참이나 내 화장대 앞에 앉아 매무새를 다듬는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빗어도 빗어도 똑같은 머리를 자꾸만 매만지며 입술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잘근잘근 씹었다가, 푸우- 하고 입술을 떨었다가, 안으로 말아 물고는 자꾸만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의 모습에 나도 같이 긴장이 덧대어졌다.

 “넥타이는 이게 나을까요? 아님 이거?”

 교복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는 스트라이프와 도트무늬 넥타이 두 개를 들고 번갈아 대보며 내게 물었다.

 “음… 스트라이프는 좀 딱딱해 보여.”
 “오케이, 그럼 도트로.”

 나는 그의 셔츠 깃을 세워 올린 후 넥타이를 정성들여 매주었다. 잘게 떨리는 한숨이 이마에 와 닿는다. 매듭을 마무리 지은 후 고개를 들어 그에게 입술을 꾹 찍었다. 정국이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통을 감싸 잡고 진하게 키스해온다. 우리는 한참 서서 키스를 하다가 아쉽게 떨어졌다.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쳐 주곤 어깨를 조물조물 만졌다.

 “긴장 돼?”
 “응.”
 “사실 나도.”

 우리는 오늘 아주 중요한 것을 하러 간다. 아마도 일생일대에 있을 만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한 집에서 살기 전까지 꼭 해내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두 번은 없을 일. 나는 정국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대를 잡았다. 긴장해서 말 수가 적어진 그는 내내 다리를 떨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딸깍 딸깍 딸깍. 깜빡이 소리만 차 안에 가득하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이윽고 차가 멈추자 정국이가 겁먹은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형.”
 “응.”
 “아 무섭다.”

 괜찮을 거야. 별로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지만 그렇게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우리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아파트에 들어섰다.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익숙한 그 집으로 향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정국이를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지연이에게 털어놓았다. 지연아, 네 도움이 필요해. 애처로운 내 부탁을 들은 지연이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오빠, 진짜 괜찮겠어?’하며 내게 재차 확인했다. 나는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라고 하고 계속 숨길 수도 있어, 오빠.’
 ‘그러고 싶지 않아.’
 ‘…….’
 ‘내가 결혼할 일은 없으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지연이는 내 말에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연이가 입고 있는 흰 의사가운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잠자코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우리 앞에 놓인 커피가 식을 때쯤, 지연이는 내 손을 끌어다 잡으며 말했다.

 ‘진짜 사랑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조금 나왔던 것도 같다.

 ‘오빠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내가 너무 어렸었잖아. 솔직히 처음엔 그냥 호기심이었어. 근데 시간이 갈수록 오빠를 이해하게 됐어. 내가 사랑하는 오빠가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
 ‘나는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분명 엄마 아빠도 나랑 같은 생각 하실 거야. 아, 물론 엄마는 펑펑 울겠지? 맨날 지민이 닮은 손주 보고 싶다고 노래했거든.’
 ‘알아….’
 ‘내가 잘 말할게. 나 말 빨 좋은 거 알지? 처음엔 아마 다들 충격이겠지. 가족들에게도 시간을 줘. 오빠를 이해할 시간. 분명 괜찮아지게 될 거야.’

 차마 부모님께 직접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비겁하게 동생의 입을 빌렸다. 지연이가 엄마 아빠께 말하겠다고 약속한 날, 나는 차마 휴대폰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혹시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모습을 전해줄까 봐, 그로 인해 나와 정국이도 상처를 받을까 봐 그랬다. 그리고 한참 뒤 폰을 열었을 때, 지연이에게서 온 문자 몇 통을 발견했다.

 커밍아웃 축하해. 오후 9:30
 엄마 많이 울었어. 오후 9:31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오후 9:33

 나는 그날 밤 정국이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가족들이 나로 인해 겪었을 아픔이 가늠 되지 않았다. 제가 남자를 사랑해요. 이 짧은 문장을 차마 전하지 못해 동생의 입을 빌려야 했던 바보 같은 나. 그리고 내 성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엄마. 자식을 위해선 눈물도 흘리실 수 있는 아버지. 그 모든 게 내 가슴을 자꾸만 아프게 저몄다. 정국이는 나와 함께 울며 위로해주었다. 참 희한하게도, 여덟 살 어린 이 남자가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현관문 앞에 선 우리는 숨을 깊게 가다듬었다. 정국이는 잔뜩 상기 된 얼굴로 넥타이를 고쳐 매고는 허공에 큼큼, 헛기침을 했다. 목울대가 출렁이고, 관자놀이에는 벌써부터 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다. 홍삼 박스를 든 손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꼼지락거린다.

 “괜찮을 거야, 정국아.”
 “…떨린다.”
 
 그의 비어있는 손을 잡았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다. 나도 그가 느끼는 것만큼 떨리고 있지만 짐짓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 나까지 죄 지은 사람처럼 얼어붙어 있으면 정국이가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 그랬다.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국이가 내게 고개를 끄덕인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우리를 향해 웃어주는 지연이가 보였다.



 “…….”
 “…….”

 거실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부모님과, 그들의 발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우리. 지연이는 그 중간쯤에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는 눈을 들어 엄마를 힐끔 보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또 한바탕 운 모양인지 눈자위가 빨갛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그걸 들킬세라 급하게 고갤 숙였다.

 숨 막히게 조용해서 정국이의 날숨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소파에서 내려와 우리 둘의 앞에 가까이 앉았다. 그리곤 정국이의 손을 대뜸 잡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엄마의 말에 정국이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했다. 엄마에게 붙잡힌 손을 어쩌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색하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엄마는 정국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축축하게 젖은 정국이의 눈동자가 엄마와 마주쳤다.

 “잘생겼네. 선하게 생겼어.”
 “…….”
 “만난 지는 얼마나 됐어요?”
 “……2년 됐습니다.”

 잔뜩 잠긴 정국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요.”
 “…….”
 “오래오래 만나요. 서로 아껴주고.”

 이윽고 들려온 엄마의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건 정국이도 마찬가지였다. 거실에는 우리 둘이 훌쩍이는 소리가 채워졌다. 우릴 바라보던 지연이도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도 전염이 되는 건가. 어느새 엄마도, 아빠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울고 있었다. 이 눈물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속에 꾹꾹 눌러 놓았던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모든 이성을 놓고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부모님 앞에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언제던가. 아마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사춘기가 찾아온 이후로 내성적으로 변한 나는 가족 앞에서 내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낸 적 없었다. 순식간에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다. 오래오래 만나라는 엄마의 말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감정이 밀려왔다. 슬픔, 안도감, 고마움, 미안함…

 엄마가 손을 뻗어 나와 정국이의 뒷목을 감쌌다.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엄마에게 안겼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눈물이 수도꼭지 튼 것처럼 줄줄 쏟아졌다.

 “너희 둘이 사랑한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니.”
 “……엄마.”
 “엄마 지금 우는 건 슬퍼서 그런 거 아냐.”
 “…….”
 “오해 하지 마, 지민아. 알았지?”

 네…. 나는 울음에 먹혀 들어가는 대답을 내뱉으며 오랜만에 엄마의 품에 푹 담겼다. 엄마는 내 귓가에  앓는 소리로 사죄하듯 속삭였다. 엄마가 미안해.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지민아 미안해. 얼마나 속상했을까, 우리 지민이.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의 목소릴 듣고 지연이가 다가와 우리를 부둥켜안았다. 우리 네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한참이나 다독였다. 정국이는 고개를 떨군 채로 눈물을 하염없이 뚝뚝 떨어뜨렸다.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요 엄마. 우린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말없이 안경을 벗어 눈물을 닦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말아 물며 웃어준다.  

 이해해달라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거나, 그런 불필요한 말들이 끼어들 틈 따위 없이 견고했다.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 했나 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성급하지 않게. 서로가 무너지지 않게.



 

  






(+) 이제 두 편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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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 180902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지금 닭똥 같은 늉물이 계속 흐릅니다ㅜㅜㅜㅜㅜㅜㅜ
cherryb_jm  | 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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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 180905   
넘 눈물났어요 ㅜㅜ
소피아  | 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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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선  | 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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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 190120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해요ㅠㅠ
한율  | 19020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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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굴이  | 19030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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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푸아  | 19030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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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찜영사해  | 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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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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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사랑랠리님짱조아  | 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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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 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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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난  | 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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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치미  | 190820   
부모님과 동생이 너무 좋은분들이시네요.. 사랑으로 감싼다
처돌이  | 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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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꾸꾸  | 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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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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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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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_JK  |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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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002   
엄마도 아빠도 지연이도 너무 좋아요 훌쩍훌쩍 ㅠㅠ
구월이  | 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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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  | 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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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교  | 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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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yu  | 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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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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