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ALL 비환상 문학 (33) 만년설(說) (1)
환상 문학 Part3 랠리 씀

황상준- Come Tiamo

환상 문학
Part3 : 스물셋, 서른하나













 93. 합



 “벽지는 어떻게 할까?”
 “문양 없는 걸로 바꿀까요?”
 “무슨 색?”
 “음… 흰색.”
 “도배 새로 해야겠지?”
 “같이 페인트칠 할까요?”

 우리는 이사 준비로 조금 들떠 있었다. 창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따끈한 온수매트 위에 배를 깔고 누워 노트북을 함께 들여다본다. 이삿날이 얼마 남지 않아 틈만 나면 ‘우리 집’을 꾸미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셀프 인테리어로 해결하자고 결론이 났다. 깨끗한 아파트지만 우리 나름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새하얀 벽지와 몰딩, 밝은 그레이 빛의 마루. 우리는 비슷비슷한 흰색 페인트를 고르는 것 하나까지도 함께 상의했다. 결정해야 할 것이 무척 많았는데 한 번도 의견이 엇갈린 적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의견 충돌로 한 번쯤 다툴 법도 한데, 우리 둘 다 차분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일까. 어쩌면 서로에게 져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럴지도 모른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썰렁한 새집에서 우리는 밤을 새서 열심히 페인트칠을 했다. 처음에는 서로 조잘거리며 벽을 칠하다가, 나중에는 둘 다 아무 말 없이 롤러를 미는 데에만 열중했다. 정국이가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빈집에 가득 찼다. 문을 열어놓은 발코니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한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벌겋게 익은 채로 어깻죽지에 얼굴을 비벼 땀을 닦는다. 둘 다 페인트칠은 처음이라 옷 여기저기에 얼룩이 묻었다. 심지어 정국이는 콧등에 수성 페인트 자국을 묻힌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붓질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별안간 깔깔 웃으면 미간에 주름을 잡고 “왜요.”하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진지한 예술가 같아서.”
 “맞아요. 나는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 중이야.”
 “얼굴에 묻었어, 바보야.”
 “형도 묻혀줄까?”
 “윽, 안 돼.”

 우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서로의 얼굴에 페인트를 묻히겠다고 술래잡기를 했다. 나는 결국 꼼짝없이 그에게 잡혀서 코끝에 동그랗게 페인트를 묻히고 만다. 그리곤 피부 상하겠다며 얼른 물티슈로 닦아주는 정국이의 얼굴에 쪽쪽 뽀뽀를 해주고.

 “집이 점점 예뻐지고 있다. 그치.”
 “응.”
 “빨리 이사하고 싶어. 얼마나 좋을까.”
 “형이랑 내 이름 새겨서 문패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야.”
 “돈 많이 벌어서 집 지으면 그러자.”
 “진짜지? 숨 쉬듯이 돈 벌어야겠다.”



 방 세 칸짜리 24평 아파트. 햇살이 잘 들어오는 큰 방은 침실로, 주방 옆 작은 방은 드레스 룸으로, 나머지 방 하나는 둘이 함께 앉아 공부할 수 있는 기다란 책상과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쓰던 것을 가져가고 가구 몇 개는 새로 사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구를 보러 다녔다. 꼭 신혼부부가 된 것 같다.

 “침대는 꼭 새로 사고 싶어.”
 “나두요.”
 “어떤 걸로 할까?
 “킹사이즈로.”
 “통했네.”

 우리는 손을 잡고 침대 매장을 둘러보았다. 가끔씩 점원이 우릴 힐끔거리며 놀란 눈치를 보였지만, 정국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우리의 행복에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끼어들 틈은 없다. 천진하게 매트리스에 앉아서 콩콩 엉덩이를 튕기고 있는 귀여운 연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완전함에 가까웠으니까. 정국이와 나는 취향이 비슷했다. 마음에 들어 하는 가구나 커튼, 이불 같은 것들이 늘 겹쳤다. 심지어 거실에 놓을 화분을 고르는 것마저 같다. 어쩜 이런 것까지 잘 맞는지 모를 일이다. 그 동안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던 게 분명하다. 밝은 인테리어의 집 안에서 서로를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완벽한 합. 정국이와 내가 사는 모습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유난히 추운 날, 우린 이삿짐을 옮겼다. 두 사람의 짐과 새로운 가구들이 들어오느라 정신없는 반나절을 보냈다. 지연이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짐 정리를 도왔다. 정국이와 여러 번 더 만나 함께 식사했던 우리 부모님은 그새 그에게 정을 붙이신 건지, 종종 전화를 바꿔 안부를 물었다. ‘작은 아들 바꿔줘.’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정국이를 ‘작은 아들’이라고 처음 불렀을 때 우리 둘은 코끝이 시큰해져서 훌쩍였다. 이삿날도 마찬가지로 엄마는 정국이와 통화하며 신신당부를 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좋은 날이니까. 정국이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네, 하고 대답했다. 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에 지연이와 나는 서로에게 눈짓하며 웃었다.  

 정국이는 그날 밤 내 몸을 끌어안고 그랬다.

 가족은 참 좋은 것 같아요. 행복해.
 내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정신없는 이사를 대강 마치고 우린 함께 마트에 갔다. 마치 처음 분가하는 기분으로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카트에 담았다.

 “욕실 슬리퍼. 커플로.”
 “휴지통은 몇 개요? 화장대에 하나, 침대 옆에 하나, 주방에 하나?”
 “응. 샤워 커튼 필요할까?”
 “아니. 맨날 같이 씻을 건데 왜 필요해.”
 “그래도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절대 없어요.”

 단호한 정국이의 말에 킥킥 웃음이 나왔다. 그는 칫솔걸이, 비누받침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골랐다. 마치 어려운 문제를 풀 듯 심각한 표정으로 살피다가 결국에는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담는다. 이런 건 좀 귀여운 걸로 사도 돼, 하며 당당한 표정을 짓기에 까만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려 주었다.

 “콘돔은 한 박스 통째로 사둬야겠다.”
 “으윽, 창피해. 나 저만치 떨어져있을 테니까 네가 계산해.”
 “못할 것 같지?”

 기어코 콘돔 상자가 여러 개 든 커다란 박스를 집어 들기에 겨우 말렸다. 정국이는 부쩍 내게 하는 장난에 재미가 붙은 건지, 나를 귀엽게 골탕 먹일 방법을 궁리하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이 연하남의 능청에 최선을 다해 맞장구를 친다. 단단한 그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핀잔을 주자 반대편 진열대로 얼른 도망간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사온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보일러를 틀어 뜨끈해진 서재 방바닥에 앉아 책을 닦아 책장에 정리할 동안 그는 한참이나 거실에서 부스럭거렸다. 정국아 뭐해? 하고 묻자 잠깐만요, 하며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문득 궁금해져서 책을 정리하다 말고 거실로 향했다. 그가 액자를 들고 벽 여기저기에 대보며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사 하자마자 액자부터 걸 거라더니, 정말이었다.

 “어디에 거는 게 좋지?”
 “음, TV 위쪽 어때? 가장 많이 보는 벽이니까.”
 “아 그런가?”

 내 말에 그가 밟고 서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TV쪽 벽으로 쪼르르 이동한다. 그리곤 다시 의자를 밟고 올라서 벽 여기저기에 대며 고갤 돌려 내 눈치를 살핀다.

 “여기?”
 “응.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여기?”
 “응. 딱이야.”

 내 말에 그가 헤벌쭉 웃으며 와이어 줄을 액자에 연결한다. 하얀 벽 위에 걸린 우리의 사진. 조금 허전하다. 액자가 두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벽을 올려다본다.

 “사진 더 찍어야겠다.”
 “또 통했어.”
 “봄 되면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 찍어요.”

 그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허벅지 위에 앉히며 목덜미를 쪽쪽거린다. 그의 앞머리를 걷어 하얀 이마에 입술을 꾹 찍었다. 잘생긴 눈썹과 쭉 뻗은 콧대를 지나 말랑말랑한 입술까지 멈추지 않고 입을 맞춰주니 내 뒤통수를 감싸 잡고 길게 키스를 해온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서슴없이 표현한다. 모든 건 표현함으로써 의미를 찾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아프게 배웠던 우리이기에 그렇다.



 정국이는 나와 함께 바닥에 앉아 책 겉장의 먼지를 닦는 일을 도왔다. 대학 때 보았던 전공서적이나 아직 버리지 못한 임용고시 교재를 팔랑팔랑 열어보며 재잘거린다. 우와, 진짜 열심히 공부했네. 책이 빽빽해. 이러니까 선생님이 되었구나. 우리 지민이 기특하다. 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정국이 만나려고 열심히 공부했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그는 애교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눈매가 휘어지게 웃는다. 내가 닭살스러운 말을 할 때마다 좋아 죽겠다는 듯 콧잔등을 찡그린다.

 “박지민 선생님.”
 “으응.”
 “오랜만에 불러본다. 쌤.”
 “불러보고 싶었어?”
 “아주 가끔. 예전 생각나면.”

 너는 나를 변하게 했다. 꽁꽁 감춰놓았던 스무 살 첫 짝사랑에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해질 만큼. 마음을 전하는 게 서툴렀던 스물여덟까지의 박지민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너에게 틈만 나면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정국아 사랑해. 정국아 보고 싶어. 정국아 안아줘. 정국아 네가 너무 좋아. 외로움에 익숙한 줄 알았지만, 네가 없으면 외로워 못 견뎌 한다. 하염없이 너를 떠올린다. 어제 네가 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 혼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나를 안아줄 때의 표정이 떠올라 얼굴을 붉힌다. 각자의 일터에 있느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아쉬워서 점심시간 내내 휴대폰을 붙잡고 너와 통화한다.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는 네 말이 아쉬워서 몇 마디라도 더 내뱉으며 시간을 질질 끌고.

 우리의 사랑도 식는 날이 올까. 나는 까마득한 미래를 떠올려 본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꽉 찬 행복만을 만끽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인 걸 알면서도 그렇다. 대체로 사랑이란 건 무뎌지는 편이고, 서로에게 스며들수록 사랑 대신 다른 편안한 감정이 채워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제대로 된 사랑은 처음인 주제에.

 “나 언제까지 사랑할 거야?”

 그래서 나는 확인받고 싶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요?”
 “모르겠어. 그냥 뭐든 듣고 싶어.”
 “내가 영원히 사랑한다고 해도 불안해할 거면서.”
 
 ……맞는 말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형이 과연 몇 살 때까지 나를 사랑해줄까. 처음만큼 사랑해줄까. 내가 형을 사랑하는 것보다 덜 사랑해주면 어쩌지.”
 “…….”
 “그런데 책 하나를 읽었어.”

 그가 책 더미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온 소설책 한 권을 집었다. 많이 읽었는지 표지에 손때가 묻어있고 종이가 조금 누렇게 변한, 그런 책. 그가 종이를 조금 넘기다가 멈추고는 얼굴 높이까지 책을 들어 한 구절을 천천히 소리 내 읽기 시작한다.

 “미셸, 진짜 사랑은 닳지 않아요. 포개고 거듭하면서 자국을 남기는걸요. 실은 어디에나 있어요. 우리가 등을 맞대고 누운 침대보 위에도, 당신을 위해 들어주는 가방 손잡이에도, 집 앞에서 당신을 불러내는 낡은 경적에도, 만남을 기다리며 확인하는 손목시계 위에도요.” 
 “…….”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 보여요.”
 “…….”
 “곁에 있는 모든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을.”

 그가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어딘가가 찌릿하게 울렸다. 너와 내 마음은 같구나. 사랑에 대한 고민도, 사랑하는 방식도, 태도도, 모두 다. 너도 나처럼 무서웠구나. 먼 훗날 우리가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을 돌아보았을 때 혹여 마음이 허허해질까 봐. 과거를 붙잡으며 초라해질까 봐. 이건 마음이 덜하거나, 너와 나를 믿지 못해 드는 생각이 아니다. 너무 사랑해서, 단지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사랑은 결국 전부가 되는 거예요….”
 “…….”
 “지민아.”

 책을 내리고 내게 얼굴을 보여주는 너. 눈이 조금 빨갛다.

 “그런 거래. 사랑은.”
 “…응.”
 “그러니까 우리 지금처럼만 살면 되겠다.”
 “그래. 그러자.”

 정국이가 엉덩이를 끌고 내게 가까이 붙어 앉는다. 그리고는 내 몸을 꽉 끌어안으며 바닥으로 벌러덩 누웠다. 나는 그의 몸 위에 엎드린 채로 흐릿했던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얼굴 여기저기에 닿는다. 쌓여있는 책 더미 가운데에 덩그러니 누운 우리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토닥였다.

 “형 환갑 때 내가 잔치 해줄게.”
 “푸흐… 그때 넌 50대 초반의 멋쟁이 아저씨겠네.”
 “응. 형은 그때도 귀여운 영감님일걸.”
 “영감님까지는 좀 아니잖아. 아저씨라고 해줘.”
 “50대랑 60대랑 같아?”
 “…나 삐지려고 해.”
 “아구 무서워라.”

 내 머리를 올려놓은 가슴팍을 작게 들썩이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둥둥. 살을 맞대고 있으면 느껴지는 너의 빠른 심박. 우리가 가로등 밑에서 처음 포옹했던 그 날과 여전히 똑같은, 그런 너의 마음.

 “나보다 먼저 가지 마. 알았지.”
 “네.”
 “유언장에 쓸 거야. 전정국을 저랑 같이 묻어주세요.”
 “와, 묘비명에 같이 올라가겠다. 뭐라고 써달라고 할까?”
 “바보야, 진지해지지 마.”

 실없는 농담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전정국의 방식이다. 아이 같은 말 속에 묻어있는 진심이 나를 다잡는다.

 “많이 아껴줄게요. 죽을 때까지.”

 나중에 우리가 어떤 모습일 지라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네가 밑줄을 쳐놓은 그 구절처럼, 우리는 결국 전부가 될 테니까.  


 


 94. 새로운 우리



 이른 아침 볼에 입을 쪽쪽 맞추는 느낌에 스르르 눈을 뜬다. 방금 씻고 나왔는지 머리카락이 축축이 젖은 정국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 집이 생긴 이후로 나는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늘 나보다 먼저 눈 뜬 그가 항상 모닝키스로 깨워주기 때문이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상체를 덥석 끌어안으며 조금만 더 자고 싶다고 칭얼거리면, 그가 내 몸 위로 올라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간지럽게 킁킁거린다. “점점 잠꾸러기가 되어가네?”하며 나를 놀리다가, 내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장난으로 이어진다. 그럼 나는 금세 항복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우리는 쉬는 날에도 이른 시각에 일어난다. 워낙 부지런한 그가 날 깨우기 때문이다. 내가 씻는 동안 정국이는 아침을 차린다. 티셔츠를 입지 않고 맨몸을 드러낸 채로 싱크대 앞을 돌아다니는 그의 등판을 바라보면, 어젯밤 나를 안아주던 장면이 떠올라 마른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매일 보는 그의 알몸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눈부신 스물셋의 육체. 요즘 틈만 나면 운동을 하며 몸을 키우는 데에 열을 올리는 바람에 더 좋아진 몸. 등판에 갈라지는 근육이나 솟아오른 가슴팍, 탄탄하게 곡선을 그리는 팔뚝까지. 그걸 보면 내 몸 위에서 성기를 밀어 넣으며 꿈틀거리던 복근이나 허벅지 근육까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가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르고 해맑은 얼굴로 식탁 위에 된장찌개를 올린다. 그리곤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얼굴이 왜 빨개요?”
 “…너무 뜨거운 물로 씻었나 봐.”
 “살 익겠다.”

 정국이는 내 손에 직접 젓가락을 쥐어주며 웃는다. 말간 얼굴로 밥을 뜨는 모습을 보며 조금 아쉽단 생각을 한다. 원래 신혼엔 눈만 마주쳐도 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던데. 다 거짓말이야.  
 
 “입맛 없어? 왜 이렇게 못 먹어.”
 “다른 거 먹고 싶어서.”
 “어떤 거? 미리 말하지. 이따 점심 때 해줄게요.”

 바보…….

 “오늘 날씨 엄청 좋아. 미세먼지도 없어서 조깅하기 딱 좋겠다. 그쵸.”

 우리는 쉬는 날마다 함께 공원을 산책한다. 그는 재미가 들렸는지, 아침 일찍부터 운동복을 꺼내 소파에 올려놓으며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어 댄다. 어서 아침을 먹고 나갈 생각에 들떴는지 그의 말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자책감이 든다. 연애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요즘 정국이만 보면 왜 이렇게 성욕이 솟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잠자리를 드물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같이 산 이후로 우리는 거의 매일 밤 사랑을 나눴다. 정국이의 퇴근이 늦어 내가 먼저 잠들 때만 빼면 거의 그랬다. 그런데도 왜 욕구 불만을 가진 사람처럼 아침부터 이러느냐고 한다면, 내가 전정국에게 아주 심하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손 탄 애완동물처럼 끊임없이 그가 나를 만져주길 바라고 있다. 워낙 합이 잘 맞아 늘 만족스러운 섹스를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여운이 더 많이 남는 것이다. 내 눈앞에 돌아다니는 정국이만 보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쾌감이 저절로 생각나거든. 내가 이렇게 야한 사람이었던가. 날 이렇게 만든 건 다 전정국이다.

 더 미치겠는 건, 늘 야한 농담을 하며 나를 안고 싶어서 안달을 내던 그가 조금 차분해졌다는 것이다. 밤 생활이 풍족해졌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건데, 어째서 나만 이렇게 속으로 안달을 내는 걸까. 뭔가 억울하다.

 “오늘은 산책 안 갈래.”
 “에?”

 대뜸 그렇게 말하자 정국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표정을 살핀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찌개를 떠먹으며 그의 눈빛을 못 본 체했다. 이건 내가 심술이 나서 그러는 거다. 너는 왜 나한테 안달을 안 내. 왜 나만 아침부터 섹스하고 싶어 죽겠는 거야. 억울해.

 “왜요…? 혹시 나한테 삐진 거 있어?”
 “아니, 없는데.”

 웃음이 삐죽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고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정국이는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본다. 겁먹은 토끼 같다.

 “거짓말. 뭐 삐진 거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더 누워있고 싶어서 그래.”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으며 차분하게 대답하자, 정국이가 의자를 끌며 일어나 등 뒤에서 나를 안아온다. 그리곤 풀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그래애… 응?”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술을 꾹 말아 물고 그를 등에 얹은 채로 욕실로 향했다. 내가 칫솔질을 하는 동안에도 정국이는 계속 내 등에 매달려서 애교를 부린다. 뭐야, 말해 봐. 왜 삐졌는데. 응? 욕실 거울 속에 그의 잘생긴 얼굴이 보인다. 날이 갈수록 꽃이 피어나는 건강한 스물셋.

 결국 침대에까지 따라와서 이불 속으로 쏙 들어와 내 몸을 붙잡고 흔든다. 형, 형아. 내가 미안해. 삐지지 마라. 내가 왜 삐졌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귀여운 스물셋. 나는 정국이에게 점점 더 강한 소유욕을 느끼고 있는 걸까.

 “말해도 넌 모를걸. 네가 잘못한 거 없으니까.”
 “뭔데. 말해줘요.”

 뭐라고 말해야할까, 순간 고민이 든다.

 “…….”
 “응?”
 
 에라 모르겠다.

 “너 벗고 다니는 거 미워서.”
 “응?”
 “얄미워.”

 두서없는 내 말에 그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음표를 가득 단다.

 “나 벗지 마? 몸 보기 싫어서?”
 “…….”
 “근육이… 취향이 아닌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걸 보고 나는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별안간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그가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로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곧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이다. 이제 솔직하게 털어놓을 타이밍이다.

 “자꾸 기대되잖아. 할 것도 아니면서. 벗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결국 아침부터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다니. 너무 밝히는 것 같아서 좀 그런가. 물론 그에게 안아달라느니 하고 싶다느니, 그런 말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왠지 좀 쑥스럽다. 평소 그와의 잠자리는 부족함이 없기에 그렇다.

 “…나 형이 왜 삐졌는지 알 것 같아.”

 정국이가 이불 속으로 꼼지락거리며 기어들어오며 그런다. 그리곤 내 얼굴을 감싸고 쪽쪽 입을 맞춘다. 환한 이불 속에서 빛나는 그의 얼굴, 벗은 상체. 나는 또다시 얼굴이 붉어진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엉.”
 “나도 실은 밥상 다 뒤집어 버리고 당장 형 붙잡고 하고 싶거든.”
 “…….”
 “형 씻고 있을 때 확, 욕실 들어가서 덮쳐버릴까 생각도 자주 해.”
 “…근데 왜 안 해.”

 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묻자 그가 검지로 내 아랫입술을 꾹 누른다.

 “좀 진중한 남편이 되고 싶었다, 왜.”

 그의 뾰로통한 말에 나는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음… 그러니까…

 “…남편?”

 제대로 들은 것 맞나.

 내가 되묻자 정국이의 목울대가 출렁인다. 그리곤 부끄러운지 얼른 내게 입을 맞춰온다. 입안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내 혀를 찾아 얽어가며 숨을 나눈다. 점점 거칠어진다. 갑자기 진득해진 입맞춤에 내가 숨을 조금 헐떡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찾아 쥐었다. 그의 두꺼운 상체가 나를 올라타고는 무게를 더해 내 몸을 누른다. 순식간에 뜨거워진 분위기에 조금 숨이 막혀서,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손으로 걷었다. 바깥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눈을 감고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속눈썹이 보인다.

 한참 뒤 그가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그냥 야한 남편 할까?”

 그리고 물어오는 말. 감격스럽다.

 “…정국아.”
 “네.”
 “남편이라고 하니까, 음, 색다르다.”

 내 말에 그가 싫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 너무너무.”
 “…다행이다.”
 “그 단어를 왜 생각 못해봤지?”
 “난 맨날 생각했는데. 이것 좀 볼래요?”

 그가 베개 밑을 더듬어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화면을 열어 내게 보여준다. 그곳에는 내 번호를 저장한 화면이 떠 있었다.

 남편♥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었다. 나 몰래 그렇게 저장해놓고 설레서 아랫입술을 깨물었을 그를 생각하니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호칭일 뿐인데,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같이 산 순간부터 우리가 하나가 된 건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붙잡고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삐진 척 했던 건 이렇게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간다. 그가 내 표정을 살피고는 볼에 옴폭 보조개를 만들면서 미소 짓는다.

 “나 정국이 남편이야?”
 “응. 나도 형 남편이고.”
 
 남편. 서로의 남편. 기분 좋다.

 “삐져서 미안해. 우리 남편이 그런 생각 하는 줄도 모르고.”
 “흐… 좋다.”
 “근데 남편이 진중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정국이가 내게 뺨을 붙이고 보드랍게 비볐다. 풍겨오는 샴푸냄새가 좋아서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남편. 우리 남편.”
 “또 불러줘요.”
 “너무 좋아. 우리 남편.”
 “한 번 더.”
 “남펴언…”

 우리는 침대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계속해서 새로운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어린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키득키득 웃다가, 천천히 내 바지를 끌어내렸다.

 “남편 된 기념으로 해야겠다. 그쵸.”

 나는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바지 내리는 것을 도왔다. 어느새 하의와 속옷까지 벗겨져서 썰렁한 맨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기야, 하고 불러줄 거예요?”
 “으응.”
 “기왕이면 이따가 사정할 때도 그렇게 불러줘.”
 “진짜 야한 남편이네.”

 아무래도 오늘 산책은… 진짜로 못 갈 것 같다.





 95. 열망



 점심시간에 손님이 찾아왔다. 매년 나를 찾아오는 반가운 얼굴 중 하나. 동현이었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밤톨 같이 짧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슥슥 쓰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올해 5월에 휴가를 받지 못해 학교에 찾아오지 못했다면서 뒤늦게 카네이션을 들고 나타난 녀석. 덕분에 나는 가을에 카네이션을 받은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 근처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현이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내 앞으로 스윽 내밀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하얀 봉투였다.

 “이게 뭐야? 편지?”

 나는 웃으면서 그것을 집어 들고는, 붙어 있던 스티커를 떼어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꽃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카드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아니고요. 그 비슷한 거예요.”

 동현이가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면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녀석의 말에 의아하단 표정으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편지가 아니라, 청첩장이었다.

 “동현아!”

 나는 놀란 눈을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동현이가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마른 입술을 축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첫 제자가 결혼을 한다니. 나는 얼른 청첩장을 열었다. 신랑 신부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어 독특하고 귀여운 청첩장이다. 날짜는 한 달 뒤였다.

 “어떻게 된 거야?”

 내 물음에 동현이는 뒷목을 긁적이며 차근차근 대답하기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부터 만나던 연상의 여자친구와 갑자기 식을 올리게 됐다고. 여자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으며, 지금은 4개월이 되었다고. 더 배가 부르기 전에 결혼식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제대하자마자 급하게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길 들으며 연신 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선생님 지금 너무 놀랐어, 동현아. 우와.”
 “…쑥스러워요.”
 “정말 축하해. 축복받을 일이야.”

 3학년 7반에서 처음으로 나를 울렸던 아이. 학생주임 선생님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었던 아이. 피멍이 든 몸을 스스로 카메라로 찍으며 괴로워했을 아이. 껄렁하고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지만, 천진하고 선량한 구석이 있던 아이. 3학년 7반이 성장하면서 함께 자랐던 아이. 그랬던 동현이가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감사해요, 선생님.”
 “꼭 갈게. 혹시 도움 필요한 거 있어?”
 “그게… 음, 한 가지 있어요.”
 “뭔데?”
 “가족사진 찍을 때… 함께 서주실 수 있어요?”

 동현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부탁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동현이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꾸벅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나는 동현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학창시절보다 조금 의젓해진 녀석. 나는 내 첫 제자가 떼는 인생의 첫 발걸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정국이와 나는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었다. 몸매 선이 굵어진 그는 엄청난 셔츠 핏을 자랑했다. 바지 속으로 셔츠를 정리해 넣는 모습을 보며, 예상치 못하게 전정국에게 또 반하고 말았다. 가느다란 허리, 그 위로 넓게 벌어진 어깨와 등판이 멋있어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확 발가벗기곤 매달려볼까도 싶었다. 그는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마가 반쯤 드러나게 손질했다. 모습이 퍽 멋있다.

 “신랑보다 멋있으면 어떻게 해?”
 “나 멋있어요?”
 “응. 완전.”
 “멋있으면 얼른 뽀뽀.”

 뽀뽀를 요구하는 능청스러운 얼굴에 입을 쪽 맞춰주자 베시시 웃는다.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여 동현이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3학년 7반 아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생각을 하니 우리 둘 다 조금 들떴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우리가 같은 차를 타고 온 걸 다른 아이들이 보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더니 정국이가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었다.

 “오다가 만났다고 하면 돼.”
 “…그러네.”
 “정 그러면 사귄다고 하던가.”
 “아악, 제자한테는 안 될 것 같아.”
 
 나 대신 운전대를 잡은 정국이는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운전을 하며 간간히 휘파람을 불어 멜로디를 만드는 걸 들으며 나 역시 조금 들뜬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어린 제자의 결혼식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3년 새 학생 티를 벗고 몰라보게 성장한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우르르 몰려왔다. 우리는 결혼식장 로비에서 서로를 아는 체 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특히 진서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꼭 잡고 부둥켜안으며 한참을 방방 뛰었다. 나는 눈을 슬쩍 돌려 정국이를 바라보았다. 미간에 주름을 조금 잡고 있는 게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예식이 시작되어 우리는 동그란 테이블에 앉았다. 정국이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버진로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멀끔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동현이가 입장하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뒤이어 입장했다. 버진로드 위를 천천히 걷는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개를 든 건 분명히 부러움의 감정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게,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장하고, 하객들 앞에서 사랑을 서약하고, 모두가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곳에서 신랑과 신부가 함께 행진해 걸어 나간다는 게, 전부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정국이를 힐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하객석의 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축가를 들으며 한 곳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가운데에서, 우리 둘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그시, 아무 말도 없이. 아마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정국아, 너도 지금 이런 상황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우리는 눈으로 끊임없이 대화했다. 동공 안에 나 하나만 가득 담고는 미소 띤 얼굴로 잔잔하게 바라보는 눈빛, 나를 사랑스러워하는 그의 눈빛.

 나는 상상했다. 이 결혼식장의 버진로드 위를 너와 내가 걷는 모습을. 멋진 수트와 포인트 보타이를 맨 네가, 흰 수트를 입은 나를 기다린다. 내가 부케를 들고 걸어 나오면, 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어 내 손을 맞잡는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걷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그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고, 짧게 입을 맞춘다. 함께 행진하며 걸어가는 길 위에 꽃잎이 아름답게 뿌려진다.

 행복한 상상을 하다 보니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정국이에게 들킬세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축가를 듣던 신부가 눈물을 터뜨렸다. 그걸 본 동현이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여기저기서 하객들이 훌쩍였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그가 조용히 손을 내려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잡아왔다.

 내 손등 위에 그의 따뜻한 손이 포개졌다. 비스듬히 앉은 정국이가 축축한 눈망울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가 두 손으로 내 손바닥을 잡아 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손바닥 위에 손끝으로 글자를 적어간다.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손톱 끝이 닿아 조금 간지럽다.


 우 리 도

 한 글자 한 글자, 그가 쓰는 말이 무엇인지 읽어간다.


 결 혼 할 래 ?

 물음표의 점이 찍히는 순간,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내가 손바닥 위의 글자를 잘못 읽은 것일까 봐.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정국이가 소리 없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다시.


 지 민 아
 결 혼 해 줘


 손에 힘이 풀렸다. 쫙 폈던 손바닥을 움츠렸다. 정국이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그가 내 손바닥을 펴고는 몇 번이고 같은 글자를 썼다. 혹시 내가 알아듣지 못했을까 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서 천천히.

 나는 손바닥을 접어서 그의 손가락을 스르르 잡았다. 이윽고 마주치는 눈. 응, 정국아.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가 알아보지 못했을까 봐, 아주 천천히.







 결 혼 하 자
 지 민 아









  
통새우와퍼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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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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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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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컹  | 180626  삭제
랠리님 자지 않고 있다가 문득 다시 정주행이나 할까...했는데 선물을 주고 가셨네요ㅜㅜ 마지막에 정국의 프로포즈ㅜㅜ 넘 감동적이에요 그리고 찰떡궁합인 취향부터 몸도 서로 찰떠억>< 달달한 이사와 인테리어도 넘 좋구 역시 계속 생각나는 국민의 프로포즈... 언넝 결혼해라 결혼해 ㅜ 행복하게 살아부러ㅜㅜ 랠리님 늦은 시간에 올려주시느라 수고하십니다ㅜ 날도 더운데 몸조심하시고 시원하고 맛난거 잘 챙겨드십쇼ㅜㅜ
미니꾸꾸  | 1806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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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돌이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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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미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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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에상에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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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얜  | 1806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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싀핫🍇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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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 180626   
랠리님,,저 작은아들에 한번 남편에..두번..결혼할래에 세번...삼진아웃 당했슴다..그냥 가슴이ㅠㅠ따땃해지고...제 눈앞에 모든게 그려지네요..오늘도 감사합니다..
지민쒸  | 1806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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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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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삼색아람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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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이  | 1806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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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망글  | 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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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3  | 1806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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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zo97  | 18062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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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쏘  | 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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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슈가룬  | 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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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071319  | 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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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 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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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 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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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침  | 180629  삭제
정국이를힐끔거리다눈이마주쳤다.
우리둘만서로의눈빛을바라보았다.
나를사랑스러워하는그의눈빛
숨막혔어요.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듯해서
모두에겐 현실적인데 이 둘에겐 너무 이상적인 것이라
우린 여전히 그런 곳에서 살고있죠.
아픔없이 행복하기만 하길 바랍니다. 흑흑
국민 너흰 우리의 정답인데
Mozzigili  | 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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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침  | 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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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 18070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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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원  | 1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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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교  | 18070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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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 1807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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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mis22  | 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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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  | 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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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 1807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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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이  | 18073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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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링  | 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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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랑  | 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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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 180902   
그저 감탄만 하고 갑니다...
cherryb_jm  | 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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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 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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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 190120   
근육이 취향이 아니냐니.....ㅋㅋㅋㅋ정국이 지민이밖에 모르는 천진 연하남 모먼트 너무 사랑해요...ㅋㅋㅋㅋ
starchimi  | 1902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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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따따봉  | 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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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사해  | 19053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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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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