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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02 랠리 씀

BGM- shadow of my heart

돌연변이
02










 5. 친구



 커뮤니티에서 동갑 친구를 사귀었다. 사실 친구라고 말하자면 조금 웃기고, 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우린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알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발현해서 아직 첫 사이클을 겪지 않은 미성숙 오메가. 그 여자애는 나를 ‘잭’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을 ‘율’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지금은 친구처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지내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와 만나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나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머지않아 올 러트는 해결해야 했으므로. 기왕이면 유대관계를 쌓은 이를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익명의 관계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지만.

 [ 잭은 학교 안 다니지? ]
 [ 왜 그렇게 생각해? ]
 [ 학교 얘기를 안 하길래 ]
 [ 다니는데 학교를 잘 안 나가. ]
 [ 진짜? 잭 쫌 방황하는 청소년이구나 ]
 [ 비밀인데 나 아직 1학년이야. ]
 [ 쫌이 아니라 많이 방황 했네ㅋㅋ ]

 열여덟에 동지가 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변화를 말하기도 했는데, 익명이라는 점은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호르몬은 주로 성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 여자애와 발정이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이야. 그런 낯부끄러운 단어를 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단어들은 그저 하나의 질환일 뿐이었다.

 [ 문자 지우는 거 잊지 말고. ]
 [ 알고 있어ㅋㅋ 잘자 잭 ]
 [ 응 너도. ]

 문자를 주고받고 나서는 항상 메시지함을 비웠다. 혹시라도 스케줄 중에 매니저 형에게 맡겨 놓았다가 들키기라도 할까봐 무서웠다. 비밀이 하나 생기니 다른 비밀이 생기는 건 쉬웠다. 아마 눈덩이처럼 쌓일 테지. 위태로운 줄 위를 걷는 것 같다. 언제든 떨어져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앞만 보고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민아, 정국이랑 싸웠어?”
 “싸우긴요.”
 “요즘 너희 말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연습실에 앉아 있는데 옆에서 호석이 형과 지민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그치 정국아?”

 형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손에 꾹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형은 내가 귀찮다고 말한 이후로 전처럼 끈질기게 말을 걸거나 손장난을 걸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상처를 받은 게 분명했다. 형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대화할 일은 줄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이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붙어온다면, 어떤 모진 말을 더 해서 떼어내야 하나 걱정했기 때문이다.

 “컴백 앞두고 싸우고 그러지 말어라잉.”

 호석이 형 말에 박지민은 배시시 속없게 웃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금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내가 알파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지민이 형과 사소한 장난을 하며 깔깔 웃고 있었겠지. 형은 사실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내게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굴었던 것밖에는. 그런 미안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때마다 차마 얼굴을 못 쳐다보겠어서 고개를 처박고 메시지함이나 의미 없이 뒤적거렸다.

 [ 율. 정말 괴롭다. ]
 [ 왜? ]
 [ 착한 사람이 있는데 친해질까 봐 무서워서 못된 말을 했어. ]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는 익명의 친구뿐이다.

 [ 그 사람 말고도 참 많은데… 언제까지 이래야하지? ]
 [ 아마도 평생이겠지 ]
 [ 그렇겠지. ]
 [ 알파인 걸 밝혀도 되는 사람은 없는 거지? ]
 [ 글쎄. 아직도 모르겠다. ]

 정말이지 더는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형들에게도, 나에게도.





 6. 어떤 감정



 Danger 컴백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연습실 안은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땀 냄새로 가득했는데, 그 와중에 내 체향은 가득 느껴졌다. 몸을 많이 움직일 때면 아무리 귀 뒷부분의 근육을 조절하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몸을 움직이면 땀이 나는 게 이치인 것처럼, 페로몬도 마찬가지였다.

 [ 어제는 길거리에서 알파의 냄새를 맡았어 ]

 최근 율은 자신이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하는 몸이 되었다는 걸 무척 심난해 했다. 알파보다는 오메가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예민한 게 당연했다. 기본적으로 오메가는 알파보다 페로몬 자극에 약한 존재이기도 하고, 그걸 견디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무의식 증상이 사회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돌연변이를 멸시하는 건 어쩌면 오메가의 영향이 클지도 모른다. 어쩌다 한 번씩 뉴스에 나는 성 관련 사건들이 거의 오메가의 행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 멀리서 맡은 건데도 알겠더라. 알파라는 거 ]
 [ 어땠어? ]
 [ 다리에 힘이 풀렸어. 심장도 엄청 뛰구… 내가 뒤를 돌아봤는데 그 아저씨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눈이 돌아 있더라. 역겹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도 내 몸은 반응하고 있었어 ]
 [ 속상하다. ]

 남 일 같지 않았다. 아직 나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었다. 오메가를 마주친다는 것을 말이다. 과연 나는 어떨까. 오메가의 향을 맡자마자 눈이 돈 사람처럼 변해버릴까. 짐승처럼.

 [ 꾹 참고 막 도망쳤어 ]
 [ 잘했어. ]
 [ 내 처음은 잭 너였으면 해 ]

 어쩐지 우울해졌다. 우린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의지했다. 그건 우리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굴 믿어야 할지, 누굴 사랑해야 할지, 분간도 하지 못한 채 방황할 것이다. 기껏 닉네임과 전화번호밖에 모르는 상대에게 의존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같은 돌연변이라는 이유로 유대감을 가지며 잠자리를 해야 하고.

 정말 싫다.



 “정국이 요즘 누구 만나냐?”

 연습실 구석에 기대고 앉아 한참 문자를 보내고 있으니, 윤기 형이 지나가는 소리로 그랬다. 그 순간 내게로 시선이 쏠렸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시치미를 뗐다. 거울 벽 앞에서 느리게 춤을 추며 포즈를 잡고 있던 박지민이 나를 돌아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누굴 만나요 제가. 만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왠지 여자인 것 같은데?”
 “오- 전정국이 여자랑 연락을?”
 “핸드폰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것 보면 답 나오지.”
 “누군데?”

 형들이 내게 모여 질문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도 박지민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풀리지 않은 상태로 있었으니까. 카메라가 돌아갈 때 외에는 그다지 말을 섞지 않는 사이. 생각해보면 싸운 게 아니라서 풀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지민이 형은 저렇게 티가 나게 내외했다. 불편했다.

 “벌써 번호 따였어?”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예요.”
 “학교 친구?”
 “네. 학교 출석 문제 때문에요.”

 내 단호한 태도에 형들은 금세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행여 여자면… 아니다.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윤기 형이 무심한 목소리로 그랬다. 그 말 안에 어떤 염려가 담겨 있는지 모를 리 없다. 이제 데뷔하고 갓 1년을 넘긴 아이돌이 여자 문제로 구설에 오르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형은 알겠다는 듯 귀에 이어폰을 끼워 넣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아직까지 바라보고 있던 지민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잔뜩 궁금해 하고 있으면서 차마 내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박지민.

 “…….”
 “…….”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 형들과 눈을 마주칠 때랑은 뭔가 달랐다. 나도 모르게 형의 얼굴을 뜯어 살피게 되고,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그때의 나는 아직도 내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살면서 누구에게 상처를 줘본 적이 없었으니까.

 ‘형이 미안해.’
 ‘진짜로 귀찮아하는 줄은 몰랐어.’

 저 순둥이 같은 형을 밀어내고자 홧김에 뱉은 말들을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자꾸만 찜찜하고 거슬리는 거라고.

 “지민이 형.”
 “어?”
 “인트로 부분 춤 한 번만 보여줘요.”
 “…어?”
 “박자가 자꾸 헷갈려서요.”

 형은 사석에서 오랜만에 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어색하게 내 눈치를 보다가 몸을 돌려 거울을 바라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거울 속 박지민과 가만히 눈을 맞췄다. 형은 조용히 박자를 카운트하며 정성껏 동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이다. 원래 박지민의 성격은 그랬다. 이내 연습실 안에는 각자 개인 연습들을 하느라 틀어놓은 노래들이 시끄럽게 뒤섞였다. 형의 목소리가 점점 묻혔다. 나는 내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그를 따라하지 않는 채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원, 앤 투 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형이 동작을 멈추며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았다.

 “정국아 왜 춤을…”
 “오해예요.”

 내 말에 형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여자 친구 없어요.”
 “…….”
 “여자 생긴 거 아니라고요.”

 형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요.”
 “아, 아냐. 네가 학교 친구라고 했으니깐…”
 “사실 학교 친구도 아니에요.”
 “…….”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한테.”

 왠지 박지민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멍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형을 외면하고 노래를 틀었다. 박자가 헷갈렸다던 내 말이 거짓말이란 걸 증명하듯, 인트로 부분의 춤을 이어갔다. 아주 완벽하게. 그때 내가 왜 그러고 싶었는지는 다음 해에 알게 되었다. 형은 그때부터 내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거였다.





 7. 휴가



 추석이 되어 48시간의 휴가를 받았다. 멤버들은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러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기로 한 가족들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박지민이 나타났다. 모두가 떠난 줄 알았는데, 형은 늦잠을 잤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거실로 나왔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주춤하는 것 같았다.

 “어… 정국이 아직 안 갔네.”
 “네. 형은요?”
 “아… 가족들 기다리고 있어.”
 “저도요. 아직 도착을 안 하셔서.”
 “그렇구나.”

 정적이 맴돌았다. 형은 내 앞에 어색하게 서 있다가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우리는 바보들처럼 멍하게 TV 화면에만 시선을 맞췄다. 한참 뒤 먼저 입을 연 건 형이었다.

 “가족들이랑 뭐 하기로 했어?”
 “그냥 뭐. 방 하나 잡아서 하룻밤 자고 내려가신대요.”
 “아, 나랑 비슷하네.”
 “그래요?”
 “응.”

 침묵을 못 견디는 건 형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박지민은 내 앞에서 형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애꿎은 입술만 혀로 축이며 자꾸만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다.

 “고향 친구들… 보고 싶겠네.”
 “음, 뭐,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으응.”

 영양가 없는 말을 주고받다가 내 휴대폰에 알림음이 울렸다. 형이 반사적으로 내 폰에 시선을 두었다. 율의 메시지였다.

 [ 잭, 나 도와줄 수 있어? ]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 며칠 전부터 *프리 히트가 계속 있었거든 ]

 * 프리 히트 사이클 : 히트 사이클의 잠복기. 주로 발정기의 신체 변화와 관련된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은 가능하나 미미한 수준이며,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오메가가 온전히 견뎌야 하는 시기. 알파와의 신체 접촉으로 해결하는 편이 가장 현명하다.

 [ 지금 히트가 올 것 같아 ]

 익명 친구의 첫 히트 사이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율과 언젠간 만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조금도 하지 못했다. 메시지를 보고 한참이나 굳었다.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휴가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곤란해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 도와줘 잭 ]

 손이 떨려왔다. 애초부터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든 친구였지만 선뜻 답장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버무려졌다. 나의 러트도 예정되어 있기에 이 친구를 외면할 수 없지만, 과연 믿어도 될까. 실제로 만나서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혹시 소문이라도 나는 날엔…….

 “정국아. 무슨 일인데 그래?”

 지민이 형이 걱정스럽게 내 팔을 잡고 물었다. 생각의 흐름이 깨지고 텅 빈 눈앞에 형의 얼굴이 가득 담겼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형이 내 이마를 닦아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이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한 문자라도 왔어?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변명 같은 말을 뱉고야 말았다. 어떤 것도 설명해줄 수 없는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무슨 일 없어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요. 걱정 마세요.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짐을 꾸려 놓았던 가방을 집어 들고 황급히 신발을 신었다.

 “정국아?”

 형이 의아했는지 신발장 앞까지 따라왔다. 그 와중에도 휴대폰 문자 알림은 계속 울렸다. [ 만날 수 있을까? ], [ 약도 주사도 없어 ], [ 잭 나 어떻게 하지? 너무 무서워 ], [ 죽고 싶어 ], [ 몸이 이상해 ] 계속해서 도착하는 메시지 창을 열어놓은 채로 정신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가족들 도착했다고 해서요. 빨리 가볼게요 형.”
 “정국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먹혀들어갔다.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무작정 뛰긴 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흘려보내며 달리다가, 형의 전화 소리에 가까스로 걸음을 멈췄다. 이제 막 서울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하려 노력했다. 일단 가족들을 만나야 했으니까.

 정신을, 정신을 차려야 한다.
  
 [ 당장은 못 가. 가족들과 함께 있어. 늦더라도 꼭 갈게. ]  



 예약해 놓은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본 부모님은 나를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나는 원래대로 막둥이 전정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휴대폰을 꺼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 앉아 가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창밖이 캄캄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부모님을 뒤로하고 형이 나를 방으로 끌어들였다.

 “가져왔어. 이거.”

 형이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내밀었다. 거기엔 알약이 들어 있는 작은 통과 주사기가 있었다. 페로몬 향을 억제하는 약 하나, 언제 올지 모르는 러트를 대비하는 주사기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 브로커 통해서 겨우 샀어. 주사는 허벅지에 맞는 거래. 먹는 약은 하루에 세 번. 근데 약은 너무 오래 복용하면 몸에 안 좋다고 했어. 되도록 스케줄 많을 때만 먹어.”
 “응.”
 “주사약은 조금 아프댔어. 러트까지는 해결해줄 수 없고, 프리 러트라는 게 온다는데… 조금은 완화할 수 있나 봐.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가지고 있어. 여기 브로커 전화번호. 앰플이 떨어지면 여기에 연락하면 돼. 입금하면 퀵으로 발송해줄 거야. 대체 왜 이런 약은 나라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거야? 어이없다.”
 “…….”
 “발현 시기 기준으로 기간이 길어질수록 약 종류가 달라진다고 했어. 아마 3년이 지나면 또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할 거야. 꼭 브로커에게 물어봐서 잘 확인하고 받아야 해.”

 형이 정신없이 내게 많은 것들을 설명했다. 마치 이제 도와주지 못하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말이다. 나는 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
 “어?”
 “어디 가?”

 내 말에 형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형의 반응에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정국아. 형 곧 군대 가.”
 “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이었다.

 “너 걱정 돼서 미뤄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됐어.”
 “형.”
 “미안해. 하… 미치겠다. 나도 미치겠는데, 사정이 그렇게 되어버렸어. 정국아. 너 잘 버틸 수 있지?”

 실은 자신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형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년 간 나 때문에 충분히 혼란스럽고 아팠을 형. 내가 돌연변이라는 이유로 더는 형의 앞을 가로막고 싶진 않았다.

 “버틸게. 안 죽어.”
 “하… 전정국.”

 형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둥둥 울렸다.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변화들이 날카롭게 내 몸을 때렸다. 어렸을 때도 웬만해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형이 나를 붙들고 소리를 낮춰 울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계신 방에 소리가 들릴까봐 끅끅 터지는 울음을 참으며.

 “내 동생. 어떻게 하냐 진짜. 흑.”

 그래. 나 어떻게 해. 형. 난 이제 모든 게 다 무서워.





 8. 첫…



 조용히 레지던스를 빠져나왔다. 어느덧 밤 열한 시를 향하고 있었다. 휴대폰 전원을 켜자 율의 메시지 몇 개가 남아 있다. 그곳에 적혀 있는 낯선 주소. 문장의 끝에는 모텔 이름이 있다. 심호흡을 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캄캄한 밤에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쓰고 탄 내 모습에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자꾸만 나를 힐끔거렸다.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다리가 달달 떨렸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곳.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애. 나와 같은 돌연변이를 만나는 첫 순간.

 율이 있는 방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난 아무것도 준비 되지 않았다.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도, 오메가의 사이클을 해소해주는 것도, 모두 까마득한 미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래턱이 떨릴 정도로 긴장해서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확 끼쳐오는 오메가의 페로몬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를 쓴 채로 코를 틀어막았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향.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가랑이 사이를 저릿하게 만드는 체향.

 “잭 맞지?”

 율은 잔뜩 풀린 눈으로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율이 다짜고짜 내 목을 끌어안았다.

 “고마워. 도와줘…”

 그녀의 체온이 높아 나에게까지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를 끌어안은 율이 내 귀 뒤쪽에 얼굴을 묻고 끙끙거리며 페로몬을 맡으려 노력했다. 히트 사이클을 맞은 오메가의 모습이 다 이런 걸까.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나는 풀리려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버텼다. 율이 페로몬 분출구 근처를 자꾸만 입술로 물고 핥으며 허겁지겁 내 몸을 찾았다. 나는 율의 움직임대로 이끌려 금세 모텔 방의 침대 위에 눕혀졌다.

 율의 페로몬과 생전 처음 겪어보는 성적인 자극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내가 완전히 성숙한 알파가 되면, 지금 율의 모습처럼 페로몬을 맡고 미친 듯이 달려들겠지. 상상하기 싫다. 어느덧 발가벗은 채로 내 몸 위에 올라타 움직이는 열여덟의 소녀. 곧 내게도 이런 모습이 생길거란 걸 떠올리며 끝없이 자괴에 빠졌다.  

 벗겨진 캡 모자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나는 간신히 마스크를 사수한 채로 신음을 참았다. 율이 급하게 내 바지를 벗기며 낯선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첫 경험이다. 나는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자극을 버티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몸 위에 올라타 정신없이 행위를 하는 낯선 이 여자애를 차마 보지 못해서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시작될 줄은 몰랐다.

 “잭, 키스해도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율은 말을 듣지 않고 내 마스크를 벗겨내더니 다급하게 내 입술을 빨았다. 나는 잔뜩 인상을 쓴 채로 어설프게 입을 벌리고 율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옷을 벗지도 못하고 바지와 속옷만 내려진 채로 정신없는 섹스를 했다. 아니, 섹스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이건 돌연변이들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생전 처음 내 손 말고 다른 자극으로 인해 사정이란 걸 했다. 울고 싶었다.



 모텔 방을 나온 건 불과 20분도 안 지나서였다. 내가 사정하자마자 비로소 히트 사이클이 해소 된 율은 내 몸 위에 엎드린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짧고 강렬하고 엉망이었던 정사를 마친 우리는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율이 내가 누군지 알아보았는지, 알아보지 못했는지는 물어볼 틈도 없었다. 나는 어설픈 뒤처리를 하자마자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깜깜한 밤거리를 달리고 달려도 내 몸에 남아 있는 율의 체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런 좆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낙인을 찍듯이.



 가로등을 붙잡고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는데 휴대폰이 또 울렸다.

 [ 정국아. 가족들 잘 만났어? 걱정 돼서 문자했어 ]
 [ 귀찮으면 답장 안 해도 돼. ]

 박지민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목구멍에 걸린 기분이었다.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퍽퍽 때렸다. 그 답답함이 너무 낯설고 벅찬 것이어서, 아주 엉망진창으로 내 자신을 학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속에 피멍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게 가슴을 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9. ‘Begin again’



 충동적으로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은 내가 전화한 지 10분도 안 되어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가로등에 기대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화들짝 놀란 형이 무작정 나를 택시에 태웠다. 혹시 보는 사람은 없나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제법 성숙한 형처럼 구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딱히 갈 곳이 없는 열여덟 스물의 어린 남자 애들 둘. 그마저도 얼굴이 알려져 있어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없는 우리. 지민이 형은 정신없이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더니, 결국 나를 심야 영화 상영관으로 데려갔다. 무슨 영화를 하는지, 자리는 어디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 필요했다.

 늦은 시각 사람이 텅텅 비어 있는 영화관. 우리는 맨 뒷좌석에 앉았다. 나는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울었다.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지민이 형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말없이 내 손을 감싸 잡은 채로,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내 옆을 지켰다.





 10. Begin


 
 박지민이 내 옆에 누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용히. 아주 천천히.



 형, 나 무슨 냄새 안 나요?

 무슨 냄새? 향기 나는데.

 그렇지. 맞네.

 샤워했잖아 아까.

 네.

 …왜 울었어?

 안 울었어요.

 맞아. 너 안 울었어.

 네….

 우리 정국이 안 울었어.















(+) 분위기 왜 이러죠? 마냥 어둡기만 한 글은 아닌데 (...)


꿀진  | 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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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둥사랑  | 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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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벵  | 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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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낯선사람  | 18090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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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jung1013  | 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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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secclear  | 18090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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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달  | 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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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얜  | 18091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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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ee  | 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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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랠리랠리  | 180916  삭제
가입창 닫혀서 울고있던중에 돌연변이 보고 지금 숨을 못셨어요. 0편부터 2편까지 다 보고나서 진심으로 푸하...하고 숨뱉었어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있던것이....하ㅜㅜㅜ 랠리님 3편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나의 구원자ㅜㅜㅜ
김혜영  | 1809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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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찌  | 1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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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 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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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꼴찌 댕댕이  | 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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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트  | 1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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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walker  | 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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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침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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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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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짜  | 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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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day  | 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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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기꾸깆  | 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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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  | 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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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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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통  | 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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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R  | 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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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 19080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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뀪뀪이  | 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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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글워너비  | 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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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파  | 19082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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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 1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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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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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링  |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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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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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1213  | 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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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  | 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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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국민  | 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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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이  | 191030   
다시 한번더 보려고요~ 왔어요 ㅎ
홍냥:D  | 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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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은  | 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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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엠젱  | 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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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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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멍  | 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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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ana  | 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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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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