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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04 랠리 씀

BGM- The way (Zack Hemsey)


돌연변이
04











 14. 위기



 율의 두 번째 히트 사이클은 빨리 찾아왔다. 나는 활동 중에 메시지를 받고 난감했다. 도저히 음악방송과 콘서트 준비를 하는 중에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고 숙소를 빠져나가야 할까. 제법 얼굴이 알려진 뒤부터 매니저 형들이나 회사 직원들이 되도록 외출을 삼가라고 일러두었다. 아직 프리 히트를 겪고 있는 율.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장을 미뤘다.

 [ 잭, 오늘도 힘들어? ]
 [ 아직은 참을 만한데…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어. ]
 [ 오늘도 못 와? 보면 답장 줘 ]

 한숨이 터졌다.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관계인 걸 알면서도.

 나는 결국 군입대를 앞둔 우리 형을 팔았다. 매니저 형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저… 이틀 뒤에 형이 잠깐 서울에 온다고 해서요. 스케줄 끝나고 잠시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내 말에 매니저 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최근 들어 내가 여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같다는 의심이 돌았기 때문에 쉽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정말이니?”
 “네.”

 내 대답을 듣고 매니저 형은 갑작스레 우리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신호음이 들리니 긴장이 되었다. 분명히 우리 형은 눈치가 빠르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형 제발, 눈치 채줘.

 - 여보세요.
 “어,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 네? 정국이 일인가요?
 “아아, 내일 모레 정국이 어디로 데려다 주면 될까요?”

 매니저 형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형, 제발.

 - 아….
 “…….”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 정국이 무대 끝나면 몇 시라고 했죠?
 “정리하면 5시 쯤 될 거예요.”
 - 아,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가면 되겠어요. 그쯤 도착할 것 같거든요.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돼요.

 형의 말을 듣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매니저 형이 나를 힐끔 보고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매니저 형이 내 팔을 톡 치며 웃어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괜한 의심을 받았다는 불쾌함보다는 형이 눈치껏 대응했다는 것에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운이 빠져 침대에 털썩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잠시 뒤 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나 잘했지? ]

 응. 형이 있어서 다행이야. 느릿하게 답장을 치다 말고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다행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 형이 군대에 가고 나면 대체 누가 나를 도와주나. 벌써부터 형의 부재가 걱정되어 가슴 속이 답답했다. 괜히 형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러트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어떤 핑계로 오메가를 만나러 나가지? 스케줄 중에 러트가 오면?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눈앞이 캄캄하다.

 [ 미치겠어. 진짜 나 이러다 미치겠다. ]

 결국 형에게 그런 소리나 퍼부었다. 쪽팔리고 원망스러워서. 내가 이렇게 말해도 형은 이해해줄 것을 아니까. 메시지가 전송되자마자 형에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다. 나는 전화를 무음으로 돌려놓은 채로 휴대폰을 이불 속에 처박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대상은 군대에 간다는 형이 되었다가, 나를 돌연변이로 낳은 부모님이 되었다가, 이 따위 삶을 사는 내 자신으로 귀결됐다. 신경질 적으로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욕실로 향했다. 감정 상태가 격해지자 페로몬이 제멋대로 마구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내 몸에 가득 묻어 있는 체향을 씻어 내리고 싶었다. 그런다고 사라질 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랬다.

 벌컥, 욕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박지민이었다.

 “정국아?”

 샤워를 하고 있는 박지민의 나체가 보였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황급하게 몸을 돌려 가리는 모습. 노란 욕실 조명 아래에서 물을 흠뻑 뒤집어 쓴 마른 몸. 얼른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멍하게 박지민의 몸을 바라보았다. 내게 등을 보인 채로 고개만 돌려 내 눈을 바라본다. 작은 체구에 촘촘히 잡혀 있는 등 근육. 그 아래로 빼빼 마른 허리와 살집이 있는 엉덩이가 보였다.

 “무, 문 닫아줘….”

 샤워기 물을 맞아 축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박지민이 그랬다. 그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생각해보니 같이 살면서 그의 벗은 몸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무대 의상으로 민소매를 많이 입고, 심지어 무대에서 복근을 보여주는 안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나는 그 이상으로 벗은 걸 본 적 없다. 나는 종종 바쁠 때 다른 형들과 함께 발가벗고 씻곤 했다. 연습실에 있다가 땀에 절어 숙소에 도착하면, 더위를 참지 못해서 심지어 여섯 명이 함께 등목 같은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 수많은 경험들 속에 박지민은 없었다.  

 “아….”
 “문 좀…”
 “미안해요.”

 왜.
 대체 왜.

 숙소에서 흔하게 보는 게 남자의 벗은 몸이다. 나는 왜 지금 충격을 받은 걸까. 시신경에 피가 잔뜩 쏠리는 기분이다. 머저리처럼 허둥지둥 욕실 문을 닫았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가만히 서서 페인트가 벗겨진 문의 문양을 눈으로 셌다. 그 와중에 그의 벗은 뒷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뭐하냐.”

 마침 양치를 하며 욕실로 다가오던 호석이 형이 물었다. 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눈을 돌렸다. 내 행동이 어색했는지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형에게 조용히 물었다.

 “형, 지민이 형이랑 샤워한 적 있어요?”
 “지민이? 엉. 어쩌다 한 번. 왜?”
 “아… 다른 형들도요?”
 “그럴걸? 우리 쩡국이 지민이랑 샤워 안 해 봤냐.”

 나는 입 밖으로 뱉으려던 말을 간신히 참았다.

 “뭐야, 서운했어? 형이 조만간 샤워 약속 잡아 줄게. 짜식.”

 호석이 형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랬다. 나는 형의 말에 차마 웃지도 못하고 눈을 피했다. 형이 손에 쥐고 있던 칫솔을 입에 넣으며 욕실 안의 박지민에게 소리쳤다. “나 양치! 들어간다!” 그 말을 하고, 호석이 형은 대답도 듣지 않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황급히 욕실 옆으로 몸을 피했다. 욕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이 치약 엄청 맵다.”, “아 진짜요? 선물 들어온 건데.”, “아! 물 튀었어.”, “아하하, 미안해요 형.”  

 둘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먹혀들어가고 다시 정적이 찾아 왔다. 내가 욕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평온한 박지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왜?
 왜 나한테만.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엎어지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쥐어뜯었다. 별것도 아닌 건데, 내가 지금 감정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지민이 형이 너무 당황하니까 나까지 당황해서 그런 거라고. 뭐 별로 다를 것도 없잖아. 못 볼 것도 아니고. 남자 벗은 몸 따위….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박지민은 자기가 작은 것에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동생인 내 앞에서 작은 체구의 몸을 보여주는 게 싫었을 뿐일 거라고.

 그가 나를 남자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내가 박지민에게 이상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다른 형들과는 다른 박지민의 태도 때문이라고. 그렇게 굳게 믿으려 했다.  





 15. 욕정



 이틀 뒤 나는 음악 방송이 끝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우리 형과 통화하는 척을 하며 신발을 꿰어 신었다. 어어, 나 지금 나가. 도착했어? 응. 그리로 갈게. 누가 듣고 있지도 않는데 혼자 제 발이 저려서 그랬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허무하게 내렸다. 현타가 밀려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마스크를 챙겨 쓰고 택시를 잡아탔다. 율이 메시지에 남겨 놓은 주소는 또 모텔이었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은 시각에 모텔 이름을 읊는 내가 이상했는지 택시 기사가 힐끔거렸다. 앞으로 이런 시선을 수도 없이 받을 생각을 하니 참담했다. 멍하게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벌써 율의 두 번째 히트. 오늘 잠자리를 하고 나면, 아마도 율은 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할지 통 모르겠다.

 모텔 방 안에 들어서자 율이 바로 내 몸을 끌어안았다. 나는 벽에 밀려 선 채로 목석 같이 가만히 있었다. 율이 내 마스크를 끌어 내리며 키스를 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뻣뻣하게 고개를 기울여 기계처럼 입을 맞췄다. 서로의 침이 섞이고, 율이 숨을 몰아쉬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체온이 뜨거워 데일 것 같았다. 키스를 하는 중간 중간에 율이 입술을 떼고 속삭였다. 잭, 네 향기 너무 좋아. 히트 사이클이 온 오메가에게 알파의 체향이 얼마나 흥분되고 좋은 것일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율은 흥분했는지 페로몬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저절로 아랫도리가 반응했다. 마음과는 별개로 몸이 변한다는 건 참 별로다. 율이 내 몸을 여기저기 더듬다가 내 바지 버클을 풀고 성기를 만졌다. 뜨거운 손 안에 들어간 그곳이 홧홧하고 아파왔다.

 “잭, 진짜… 얼마나 좋은 줄 알아? 히트 때 알파 옆에 있다는 거.”
 “…잘 몰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
 “맨날 이렇게 좋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럼 돌연변이여도 어디 숨어서 하루 종일 알파 향만 맡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침대에 올라갔고, 나는 내 아래에 누운 율의 브래지어 끈을 풀었다. 지난 번 율이 내 몸 위에 올라타 정신없이 섹스 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리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설프게 속옷을 벗겨내고 율의 나체를 바라보았다. 왜 아무 느낌도 안 들지, 여자의 몸인데. 남자와는 다른 가슴이나 잘록한 허리. 그리고 오메가의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팬티를 봐도 흥분 되지 않았다. 단지 페로몬에 반응한 내 몸만 딱딱해졌을 뿐이다. 참 이상했다.    

 나는 율의 몸 위에 자리 잡은 채 어설프게 허리를 움직였다. 이상한 박자를 타며 아래를 흔들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이톤의 신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꽉 감은 채로 아래에 느껴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금방 끝날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다가 사정을 하고 나면 금방 해소되는 게 우리의 사이클이니까.

 “하아… 잭….”
 ‘정국아.’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율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 순간 귀에 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국아아- 라고 끝을 길게 늘여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박지민의 목소리. 순식간에 감은 내 눈 앞에 박지민의 벗은 뒷모습이 펼쳐졌다. 노란 욕실 조명 아래서 빛나고 있던 젖은 몸. 갈라져 있는 근육, 가운데가 옴폭 들어가 있던 등줄기. 통통한 엉덩이 살과 단단해 보이는 허벅지. 그리고 물에 젖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던 머리카락.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를 악 물었다. 사라져. 저리 가. 지금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 미친 놈 아니야? 내 자신에게 욕을 하며 콧잔등을 잔뜩 찡그렸다. 내 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손으로 율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거칠게 움직였다. 그리고 절정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기어코 박지민의 얼굴까지 떠올리고 말았다. 나를 보며 달싹이던 붉은 입술. 얼굴 여기저기에 가득했던 물방울. 거기에 상상이 더해졌다. 통통한 엉덩이를 내 손 안에 잡힌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나른한 눈꺼풀. 정국아, 하고 신음을 뱉으며 내 귀를 만지는 손길 같은 것들.

 “으윽….”

 사정하는 순간, 상상 속의 나는 박지민의 뱃가죽 위에 정액을 쏟아내고 있었다. 온몸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숨을 몰아쉬는 박지민의 가슴팍과 얼굴 위에도. 내 허벅지를 꽉 움켜 쥔 율의 손이 마치 박지민의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거칠어진 내 숨이 정돈되지 않은 채 내뱉어졌다.

 미친 듯이 짜릿한 쾌감. 그건 사정의 순간에 드는 느낌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었다. 분명히 나는 율이 아닌 박지민의 몸 위에 있다는 상상으로 흥분해버린 것이다. 율의 몸 위로 쓰러지며 나는 자괴에 빠졌다. 그 순간에도 말랑말랑한 여자의 살결이 박지민의 탄탄한 가슴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 자신에 대해.

 몇 년간 함께 지내온 형을 멋대로 상상하고 욕정을 품은 나. 위로해주던 손길을 섹스 도중 만지는 애무로 상상한 미친 새끼. 개자식. 씨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또 애먼 곳에 화풀이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전정국. 네가 얼마나 더 쓰레기일 수 있을지 한 번 보자. 아직도 율의 몸 안에 담겨 있는 채로 상체를 일으켰다. 율의 귀 뒤쪽에 코를 묻고 페로몬을 맡으며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보다 조금 더 거칠고 꼴사납게 섹스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가득 울리는 신음소리와 살이 마찰하는 소리. 침대 위에 잔뜩 퍼져가는 오메가의 체향. 귀를 틀어막고 숨이 멎어버렸으면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박지민으로 연상됐으니까. 나는 점점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그렇게 한 번 더 절정으로 달렸다.

 그 모텔방 안은 18세 전정국의 무덤이었다. 그날 이후로 원래의 전정국은 사라졌으니까. 아득바득 살아남은 건, 상냥하고 다정한 형에게 흑심을 품는 미친놈뿐이었다.





 16. 같은 방



 내가 박지민을 상상하며 그런 짓을 했다는 걸 끊임없이 되새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형은, 매일 밤마다 거실 내 옆자리에 누워서 조잘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또다시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게 됐다. 박지민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내게 꾸준히 말을 걸어왔고, 나는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대화를 차단하려 애썼다.

 그건 죄책감이었다.

 그에게 말로 상처를 줬을 때보다 더 무거운 심정이다. 낮에는 박지민을 슬금슬금 멀리하다가, 밤이 되면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깊은 잠에 빠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루 동안 박지민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던 것을 보상 받듯,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드러난 이마나 작은 코, 그 아래로 통통하게 자리 잡은 입술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요즘 들어 살이 많이 빠져서 홀쭉해진 뺨, 작은 귀. 그런 것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그와 함께 누워서 자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본능이 알려주는 위험신호였다.

 스케줄이 있던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고는 가장 먼저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한참 뒤 형들이 하나 둘씩 잠에서 깨더니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전정국이 제일 먼저 일어난 거 실화냐.”
 “이게 무슨 일이야?”

 형들이 오버를 하며 나를 놀렸다. 나는 수건으로 조용히 머리를 털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뒤 매니저 형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저 이제 잘 일어날 수 있어요. 방에서 잘게요.”

 박지민을 제발 제 옆에서 치워주세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나는 약속하겠다면서 새끼손가락까지 들어보였다. 내 태도에 매니저 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런 내 노력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첫 해외 투어를 위해 일본에 갔을 때였다. 두 명씩 호텔방을 쓰기로 했는데, 박지민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나와 함께 방을 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말에 태형이 형은 섭섭하다는 듯 그를 노려봤지만, 석진이 형이 같이 방에서 게임하자고 꼬시자 금세 실실 웃으며 쪼르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침대 세 개짜리 큰 방과, 박지민과 함께 써야 하는 방뿐이었다.

 “아 저, 남준이 형네 방 가서 잘래요.”

 내 말에 박지민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안 돼 인마.”
 “엉. 랩라 술 마시면서 단합하기로 했어. 청소년은 안 껴준다.”

 윤기 형과 호석이 형이 동시에 대답했다. 남준이 형은 어깨를 으쓱 하며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젠장. 꼼짝 없이 박지민과 같은 방을 쓰게 되어버린 것이다.

 “정국아, 이제 그만 지민이 마음 좀 받아주라.”

 맨날 정국맘 정국맘 하고 놀리는 게 익숙한 형들은 또 실없는 소리를 했다. 내가 어떤 기분인 줄도 모르고.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콘서트 전날, 리허설을 마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섰다. 투 베드의 작은 룸.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박지민은 가운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낮게 깔린 조명이 마치 율과 잠자리를 했던 모텔 분위기 같았다. 기분이 영 이상했다.

 “정국아, 맥주 한 모금 할래?”
 “됐어요.”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다니. 나만 나쁜 형 된 것 같네.”

 그가 헤헤 웃더니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단숨에 한 캔을 비우고는 침대 위에 대 자로 뻗어 눕더니 종아리를 침대 시트 위에 마구 비볐다. 그럴 때마다 가운이 올라가서 맨 다리가 드러났다. 시발. 욕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의 옆 침대에 누워 등을 돌렸다. 그새 또 쌓여 있는 율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본 콘서트를 시작으로 동남아 쪽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준비할 게 많아서 도저히 율을 만날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12월 중순 지나서까지 해외에 오갈 일이 좀 있어. ]
 [ 정말? 만약 너 없을 때 히트가 오면 어떻게 해? ]
 [ 미안해. 도저히 시간이 안 나. ]
 [ 잭, 너무 보고 싶당 ]
 [ 만약 그 안에 히트가 오면 다른 알파 찾아보는 건 어때? ]
 [ 그건 싫은데… ]
 [ 어쩔 수 없잖아. 너 몸 생각 해야지. ]
 [ 생각해볼게. 참아보다가 정 안 되면. ]
 [ 응. ]

 두 번째 히트 이후로 율은 가끔 자신의 셀카를 보내곤 했다. 완전히 나를 남자친구처럼 인식한 모양이다. 잠자리를 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보았는데, 율은 쌍꺼풀 진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까만 생머리가 어울리는 얼굴이다. 제법 예쁜 축에 속하는 외모. 사실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오메가라는 것만 빼고는 여자친구로 만나기에 부족할 게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조금도 동하지 않는다. 동지라는 생각 외에는 절대로. 아무것도.

 “잠이 안 와.”

 등 뒤에서 감촉이 느껴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박지민이 내 침대로 넘어와 좁은 침대 구석에 몸을 구기고 누워 있었다.

 “아 깜짝이야.”
 “놀랐어?”

 그가 눈을 휘어가며 웃었다.

 “좁아요.”
 “이불이 포근한 느낌이 안 들어. 바스락거려서.”
 “…어쩌라고요.”
 “쫌만 안고 자다가, 나 잠들면 네가 옆 침대로 넘어가면 안 돼?”

 바보 같은 형. 내가 자길 상대로 무슨 상상을 하는지도 모르고.

 “답답한데….”
 “한 번만. 잠자리 바뀌면 잠이 잘 안 와.”

 박지민은 더 이상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등과 허리 아랫자락에 그의 따뜻한 몸이 닿았다. 나는 들키지 않게 숨을 내뱉으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또다시 이상한 상상이 들었다. 조도가 낮은 호텔방의 조명. 등 뒤에 있어도 퐁퐁 피어오르는 샴푸 향. 벌어져 있을 가운 속 속살 같은 것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베개에 옆얼굴을 묻었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어느새 박지민이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잠에 들었다.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 5분이 50분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그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개에 눌려 불룩 튀어나온 입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장을 지운 수수한 얼굴. 데뷔 초에 태닝을 했던 때에 비해 하얘진 피부. 저 형이 저렇게 하얬었나 싶었다.

 나는 얼른 옆 침대로 달아났다. 박지민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불을 끄고 누워 천장을 향해 눈을 껌뻑였다. 심장이 자꾸 요동쳐서 진정이 안 됐다. 나는 조심스럽게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단단하게 발기한 것을 붙잡고 조심스레 쓸어 만졌다. 옆 침대에서 박지민이 잠들어 있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흐….”

 또 그날처럼 박지민을 상상하며 자위를 했다. 터져 나오려는 숨을 간신히 참으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순식간에 나는 절정의 맛을 봤다. 옆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두고 손장난을 친다는 게, 그게 박지민이라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나를 흥분시켰다. 다리의 모든 근육이 바짝 서서 날뛰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박지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을 향해 달려갔다. 가운이 벌어져 조금 드러난 어깨를 보며 체념하듯 사정했다.

 어쩐지 점점 더 상태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 점점 더 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됐다. 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이야. 얼마나 더 바닥이 되려고. 끝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답은 찾을 수 없었다.





 17. 일방향



 해외 투어가 끝나가고 있었다.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나는 그 후로도 열 밤이 넘게 박지민과 같은 방을 썼다. 그 때마다 나는 똑같이 박지민을 옆에 두고 손장난을 했다. 그가 잠에서 깬다면 언제든 들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중에 가서는 불까지 켠 채로 그 짓을 했다. 그러다가 해외 호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에는 그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조심스레 걷어내고, 허벅지 중간까지 가운이 올라가 훤히 보이는 맨다리를 보며 욕정했다. 스스로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혼자 화장실 안에서 자위를 할 때보다 더 짜릿하고 숨이 차는 행위였다. 나는 그렇게 그를 향해 용서받지 못할 비밀들을 끝없이 쌓아갔다. 그럴수록 그를 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말 수는 점점 더 줄었고, 낮과 밤에 느끼는 우울감은 격차는 끝도 없이 치달았다.



 귀국을 하고 얼마 안 있어 새해를 맞이했다. 열아홉이 된 나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나쁜 놈이 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국으로 돌아가 어서 율을 만나 섹스를 하며 박지민을 떠올릴 생각까지 했다. 얼마나 자극에 무뎌졌으면, 얼마나 대담해졌으면.

 그 사이 우리 형은 군대에 갔다. 이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열아홉, 온전히 혼자 돌연변이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박지민을 향해 그런 마음을 품는 게 알파이기 때문일까. 빌어먹을 돌연변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니까. 워낙 표본이 적다 보니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통계는 없었다. 나는 그런 돌연변이를 향한 통계나 분석에서 여태 나타나지 않는 질환을 겪는 중이 아닐까.

 분명히, 발현하기 전까지는 박지민에게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알파라서, 동성의 오메가도 만날 수 있는 알파라서, 그래서 쉽게 그런 욕정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일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박지민은 여전히 내게 신경 쓰며 관심을 보였지만 나는 그를 향한 눈빛을 숨기고자 눈을 내려 까는 일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몰래몰래 시선이 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나는 틈만 나면 그를 훔쳐봤다. 자꾸 얼굴을 살펴보고 싶고, 밤에는 나쁜 상상을 하면서도 그게 사랑인 줄은 미처 몰랐다.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율은 내가 긋는 선을 눈치 챈 것인지 조금 달라졌다. 칭얼거려도 해외에 있어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일까. 더 이상 만나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사이클이 왔을 법도 한데, 내가 딱히 물어보지 않으니 먼저 말하지 않았다. 멀리 있어 도와주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칭얼대면 내가 싫증을 낸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물론 미안한 생각은 들었다.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관계인데, 그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다고 해서 먼저 사과를 하며 만나자고 할 생각은 없었다. 히트가 온 것도 아닌데 만나게 된다면 그건 진짜 일반인 여자친구와 연애를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비해 율의 연락도 조금 뜸해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폰을 열면 쌓여 있는 메시지가 점점 줄었다.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쌍방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러다가 율이 스스로 나가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보다는 차라리 깔끔하게 사이클 때만 만나서 서로 도움을 주고 헤어지는 사이가 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3월에 있을 국내 콘서트를 앞두고 또다시 연습이 한창이었다. 열아홉이 된 나는 그 사이 키가 조금 더 컸고, 몸에 근육이 더 많이 붙었다. 골격도 많이 자랐는지, 원래 입고 다니던 티셔츠의 어깨선이 조금 달라진 걸 느꼈다. 아직 러트 사이클이 오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 몸이 알파의 면모를 갖춰갈수록 불안함은 커졌다.

 아침부터 몸이 뻐근했다. 별 이유 없이 기분이 착 내려앉았다.

 “정국이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태형이 형이 불쑥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 연습실 거울을 보며 춤에만 집중했다. 했던 동작을 하고, 하고, 또 하면서 축 가라앉는 감정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온종일 내 기분을 망친 건 어떤 예감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폰을 열었다. 율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제목없음] 그 네 글자를 본 순간 싫증이 먼저 올라왔다. 한숨을 푹 쉬고 문자를 클릭했다.



 친구들이 내가 오메가인 걸 알게 됐어.
 학원에 있다가 히트가 터졌거든.
 걸을 때마다 물이 뚝뚝 떨어졌어.
 하필 치마를 입고 있는 바람에.
 음… 난 혼자가 됐어. 모두가 날 버렸어.

 있잖아 잭, 우리가 그렇게 더러운 걸까?
 우리는 죄가 없잖아.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게 아닌데.

 그동안 고마웠어.
 잭, 아니 정국아.
 활동하는 거 멋있더라.
 더 멋진 가수가 되길 바라.
 널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잘 지내.

 

 “하아….”

 문자를 읽는 순간 목에 묵직한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낮은 신호음이 다섯 번 반복되는 동안 심장이 요동쳤다. 제발 받아. 제발. 나는 연습실 밖으로 급히 뛰쳐나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끊어진 신호음. 낯선 여인의 목소리.

 - 여보세요.
 “저 혹시…”

 나는 율에 대해 물으려다가 말을 멈췄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녀의 닉네임이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폰 너머로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 친구니?
 “…….”
 -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야.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혹시… 이 번호 주인 이름이…”
 - 아, 혹시 율이랑 무슨 사이였니?
 “이름이… 율인가요?”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화장실 끝 칸으로 급히 들어가 주저앉았다. 머리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

 - 응. 김 율.



 ‘잭.’
 ‘내 처음은 잭 너였으면 해.’

 ‘닉네임이 뭐야? 잭?’
 ‘난, 그냥 율이라고 불러.’

 ‘또 만날 순 없겠지?’
 ‘사이클이 와야만 만날 수 있는 건가?’

 ‘보고 싶어.’
 ‘네가 생각났어.’

 ‘정국아.’
 ‘잘 지내.’



 “으… 흐윽….”

 처음부터 율에게 나는, 익명 친구가 아니었던 거다.
 그 애에게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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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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