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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06 랠리 씀

Mattia Cupelli - Love Lost

돌연변이
06










 21. 프리 러트 사이클



 컴백 전날 밤, 얕은 잠을 자다가 몸에 오한이 느껴져 눈을 떴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둥둥 울린다. 아주 잠시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을 시각이었다. 손을 뻗어 암막 커튼을 걷자 새까만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빛이라곤 없었지만 눈이 아플 만큼 시리다. 평소와는 다른 몸 상태를 감지했다. 몸에 열이 나고 현기증이 일었다.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며 날뛰는 것 같다. 내 몸은 이 이상한 변화를 기억한다.

 열여섯, 처음 알파로 발현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내게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돌연변이의 상징, 러트 사이클이.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그것이 만 3년을 목전에 두고 내게 밀려왔다. 2015년 4월 말. 하필이면 새 앨범의 첫 방송을 앞두고 말이다.

 비틀 비틀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벌겋게 충혈 된 눈자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눈꺼풀, 가슴팍과 배에 울긋불긋 피어오른 열꽃, 줄줄 흐르는 땀. 나는 얼른 바지를 내려 다리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종아리에는 이상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대 의상으로 반바지를 입어야 했으니까. 찬물을 끼얹어 가며 세수를 하고 거울을 노려보았다.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냥 내 자신이 미웠다.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나의 체향이 또다시 조절되지 못한 채로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알싸한 머스크 향이 온몸을 휘감는 동안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세면대를 쥔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춥다.
 싸늘하다.
 무섭다.

 활동 중에 어떻게 버텨야 할까.



 침대에 털썩 쓰러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프리 러트’를 검색하자마자 많은 글이 쏟아진다. 손바닥만 한 액정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를 정도로 넘쳐난다. 모든 알파들의 고민이 모여든 이곳이 기형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떻게든 숨기고 살고 있을 알파, 그리고 오메가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허무해진다. 왜 그렇게들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정작 나도 죽음을 택할 수 없었으면서.  

 「 프리 러트 사이클은 일주일간 지속된다. 이는 본격적인 러트에 대비하는 알파의 형질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메가와의 접촉으로 증상 완화가 가능하다. 첫 프리 러트를 맞이한 알파는 미리 성관계를 가져 러트를 예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러트는 미리 막을 수 없으며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러트는 3~5일 지속되니 이를 대비해 주변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클과 관련한 상담은 국립AO센터의 핫라인을 통해… 」

 긴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숨이 찼다. 눈알이 뻑뻑하게 마르는 기분.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 몸속 어딘가에 불씨가 들어있는 것 같다. 자꾸만 나를 갈증 나게 한다. 탈수현상을 겪는 사람처럼 손끝이 바르르 떨린다.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형이 입대 전 주고 갔던 주사약. 가방 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것을 찾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려서 그것을 간신히 쥐었다. 나는 또다시 욕실로 향했다.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몰골이 우스꽝스러웠다. 옷을 벗어던지고 급히 샤워를 했다.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서 있기가 힘겨워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씻었다. 다 죽어가는 동물처럼 타일바닥을 기어 수건으로 몸을 닦고, 겨우 새 옷을 머리통에 끼워 넣었다. 고작 샤워를 한 것뿐인데 힘에 부쳐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상태로 대체 어떻게 음악방송을 할 수 있을까. 끔찍하다.

 변기 위에 앉아 맨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내 손엔 주사기가 들려 있다. 스스로의 몸에 바늘을 찔러 넣는 경험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살갗에 자그마한 가시가 박혀도 따가워서 견디지 못하는데, 직접 내 허벅지에 커다란 바늘을 박아 넣어야 한다고?

 “하아… 씨.”

 잘게 떨리는 날숨이 내 두려움을 잔뜩 담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겪어나갈 힘든 일이 무수히 많은데, 고작 바늘 하나 찔러 넣는 것이 무서워서 떨고 있는 나. 최악이다.

 “으… 하….”

 전정국, 정신 차려. 뭐를 겁내고 있어.

 주사 바늘을 허벅지에 가까이 댔다가 황급히 떼어내고, 다시 이를 악 물고 바늘을 가져가지만 굳은 손목은 말을 듣지 않고. 몇 번을 그렇게 머저리처럼 반복했다.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또다시 땀이 줄줄 새어나왔다. 머릿속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 눈앞의 사물이 흐릿하게 겹쳐진다.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으며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결국 눈물이 허벅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꺼내 놓았던 알코올 솜은 어느새 바짝 말라버렸다. 나는 소리를 억지로 삼키며 끅끅 울었다.

 “으윽, 흐으…”

 양 무릎을 붙잡은 채 몸을 바짝 접어 흡사 짐승의 소리처럼 터지는 울음을 꾹꾹 삼켰다. 혹시 다른 형들이 들을까 봐 마음 편히 울 수도 없다. 문이 잠긴 싸늘한 화장실, 변기 위에 홀로 앉아 우는 나. 이 처량한 신세가 결국 나, 전정국의 모습인 것이다.

 한참을 우니 몸에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다시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다리를 벌려 허벅지 가장 안쪽, 보이지 않는 살 깊숙한 곳을 다시 알코올 솜으로 문질렀다.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탄식을 길게 뱉고, 차가워진 그 살갗 위에 사정없이 바늘을 꽂아 넣었다. 콧잔등이 찌그러질 정도로 고통스럽다. 허벅지에 깊숙이 박힌 바늘이 근육을 찢고 들어간다. 주사 약물을 밀어 넣을 때마다 불쾌한 충만감이 들고, 이내 살이 못 견디게 뻐근해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밀어 넣고 바늘을 빼내자 핏방울이 맺혔다. 나는 솜으로 그 자국을 꾹 누르며 지혈했다. 허벅지에 경련이 왔다. 그건 분명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 움직임이다.

 “큭…”

 별안간 웃음이 터졌다. 주사약의 고통 때문도 아니고 해냈다는 뿌듯함도 아니었다. 자조. 앞으로 이 따위로 살아야 하는 전정국을 한껏 비웃어주는 것이다.



 보고 싶다.
 박지민이 보고 싶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문 앞에는 박지민이 서 있었다.  

 “…….”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겨우 버티고 서 있던 다리에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그의 몸으로 쓰러지듯 기울어졌다. 무게중심을 잃었다. 박지민의 상체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내 몸을 받치며 한 걸음 주춤했다. 우리의 몸이 하나처럼 휘청거렸다.

 “너 어디 아파?”
 “…형.”
 “몸이 뜨거워. 정국아.”
 “형…….”

 나는 투정부리는 아기처럼 그를 부둥켜안고 끙끙거렸다. 형의 몸을 바스라트릴 듯 세게 끌어안고 드러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형에게서 어떠한 향기라도 찾아내려 애썼다. 어미의 젖을 찾는 새끼 강아지처럼. 한참이나 그의 목과 귀 뒤쪽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거리는 숨소리가 거칠게 난다. 형은 간지러운지 어깨를 조금 움츠리며 나를 힘껏 안아주었다.

 “병원 가야하는 거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귀에 가득 들어온다. 아프면 어떻게 해. 병원가자. 응? 정국아. 나는 그에게 몸을 묻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제멋대로 흘러나온 내 눈물이 형의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그는 내가 울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한 순간에 입을 꾹 다문다.

 자신보다 커다란 내 몸을 질질 끌다시피 거실로 향한다. 이윽고 소파 가까이까지 다가갔을 때, 나는 약기운에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답답하고 등줄기부터 차가운 기운이 머리까지 올라온다. 눈을 질끈 감고 형에게로 몸을 완전히 기댔다.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로 소파 위에 털썩 쓰러졌다.

 “하아… 하아….”

 나는 내 아래에 깔려 있는 형에게 무게를 실은 채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신음을 뱉었다. 마취를 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얼굴을 덮쳐온다. 내 코앞에 있는 그의 목덜미를 바라본다. 등을 쓸어 만져주는 손길. 고개를 틀어 내게 뺨을 비비는 박지민. 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진다. 정국아, 정국아, 정신 차려. 응? 전정국. 괜찮아? 저만치 멀어졌다가 어느새 귀에 속삭이듯 크게 들린다. 내 몸에 있는 감각기관 중에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형.
 형.
 지민이 형.

 그와 온몸이 닿을 정도로 겹쳐져 있는데, 조금도 안정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충동이 밀려온다. 몸이 반응한다. 입을 맞추고 싶다. 눈앞에 있는 하얀 목덜미를 입에 머금고 싶다. 그의 몸을 구석구석 핥고 싶다. 혹시 그가 나 때문에 울더라도, 맨살을 어루만지며 뜨겁게 파고들고 싶다. 머릿속에 저열한 문장들이 가득 들어찬다. 누군가 내 머릿속에 주문을 외우고 있다. 박지민을 가지라고. 지금, 저질러버리라고.

 아냐. 안 돼.

 그러나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는다. 그리고 이내 좌절하고 만다.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그것은 충격처럼 다가왔다. 박지민은 나와 다르다. 그에게는 나를 잠재울 향기가 없고, 내가 아무리 박지민을 갈망하더라도 그는 나의 것이 되어줄 수 없다.

 “안 되겠다. 병원 가자. 응?”
 “…….”
 “자꾸 고집 부릴 거야?”

 끌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잔뜩 발기해버린 내 몸이 자신의 앞섶에 비벼지고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눈치 못 채고 저런 소리나 하는 박지민. 나는 이렇게, 당신의 몸 위에 있다는 게 끔찍하게 좋아서 눈물이 나는데. 낯선 충동이 육체의 고통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는데.

 당신은 오메가가 아니다. 애초에 나 같은 놈과 상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렇게 잠들래요. 그냥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고 싶다.





 22. I NEED U



 아침에 눈을 뜨니 내 옆에는 박지민이 없었다. 소파에 구겨진 채 잠든 내 몸 위에는 박지민이 늘 덮고 자던 이불이 있었다. 밤새 약 기운이 돌았는지 머릿속은 잠잠해졌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 안에 추가 들어있는 것처럼 반 박자 늦은 울림이 느껴지긴 했지만.

 “깼네?”

 박지민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내 이마에 손바닥을 올렸다가, 손등으로 목과 옆 턱을 번갈아가며 짚어본다. 나는 그저 가만히 눈만 껌뻑였다.

 “열이 아직 있다.”

 끙끙 앓다가 잠든 나를 소파에 두고 방에 들어가서 잤구나. 밤새 끌어안고 잔 건 아니었구나. 못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자신이 우습다.

 “해열제 사왔으니까 먹어. 오늘 방송이잖아.”

 형이 소파테이블 위에 있는 약봉지를 가리키며 그랬다. 나는 눈동자만 돌려 그걸 보았다가 다시 형에게 시선을 맞췄다. 묘하게 다른 무언가를 감지했다. 뭐지. 형에게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물론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형. 아까 새벽에는,”
 “앞으로 아프면 꼭 말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

 형이 내 말을 끊고는 그렇게 말했다.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스케줄 준비하자.”

 할 말만 하고 내게서 돌아선다. 나는 손을 뻗어 형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뭐 할 말 있어?”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나한테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물을 수 없었으니까. 혹시 내가 그에게 실수를 한 걸까 걱정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무슨 짓이라도 한 걸까. 그럴 리 없는데. 정신없이 그에게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으려 애쓰고,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았던 게 부담스러웠을까.

 “고마워요.”

 내 싱거운 말에 형이 픽 웃고는 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형의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그렇지 않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 제발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 예민해서, 단지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컴백을 하자마자 예전과는 다른 반응이 왔다. 뮤비 조회수는 계속 올라갔고, 타이틀곡은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다.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조금 얼떨떨했다. 형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며 연습량을 늘리자고 했다. 프리 러트를 겪고 있는 나로선 고역이었다. 스케줄이 끝나면 연습실에 모여 끊임없이 안무를 맞췄다. 한 곡을 추고 나면 평소보다 땀이 배로 났다. 어금니가 저절로 꽉 깨물어질 정도로 체력의 한계에 부쳤다.

 처음 주사바늘을 찌른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몰래 그 짓을 이어갔다. 나는 약 기운으로 겨우 버텼다. 몸에는 열이 계속 돌고, 춤을 추고 나면 연습실 바닥에 쓰러져 한참이나 목을 졸린 사람처럼 괴로워하며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정국아, 쉬엄쉬엄 해라.”
 “몸살이 징하게 왔나 보네.”
 “주사 한 대 맞고 오는 게 낫지 않겠어?”

 형들은 평소보다 더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했다. 나는 괜찮은 척하기 위해 더 애써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억지로 병원에 끌려가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혹시라도 내가 돌연변이인 것을 들킬 수도 있다. 남아 있는 정신력을 끌어 모았다.

 연습실 바닥에 누워 헥헥거리다가 박지민과 눈을 마주쳤다. 만지고 싶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가 더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옆에 있음에도 보고 싶다. 며칠 전 새벽처럼 부둥켜안고 위로받고 싶다. 형이 나를 만져줬으면 좋겠다.

 “지민이 형.”

 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박지민은 내게 전처럼 다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손에 물병 하나를 쥐어주곤 다른 형들에게로 다시 가버리는 모습에 나는 금세 좌절하고 말았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예전과 똑같이 살갑게 굴면서 뒤에서는 꼭 이렇게 싸늘해졌다.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간다. 나는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없다.

 며칠이 흘러 나는 확신하게 됐다. 박지민이 나를 피한다.

 그간 박지민과 서먹하게 지냈던 세월은 몇 번이나 반복이었지만 이번엔 그 종류가 달랐다.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만 같다. 그가 내게 먼저 이런 건 처음이다. 늘 밀어내던 건 나였는데. 돌아버리겠다. 제발, 이유라도 알고 싶다. 혹시 그의 입에서 내 기억 속에는 없는 만행이 튀어나올까 봐 겁이 난다.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다.

 형, 나는… 내 자신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나한테 이러지 마요.

 밤마다 박지민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숙소 안에서 그는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이쯤 되니 내가 그에게 커다란 실수를 한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미친 알파의 본능이 튀어나와버린 걸까.

 

 “형, 얘기 좀 해요.”
 “왜?”

 결국 그가 방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가 손목을 붙잡았다. 형이 내게 눈을 맞추지 않으며 되물었다. 왜냐고? 지금 이런 상황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 왜냐고 묻다니. 기어코 내 입에서 먼저 사과가 나오길 바라는 건가 보다. 그가 원하는 게 사과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 기억에는 없어도, 나의 존재에서 비롯된 잘못은 얼마든지 터질 수 있으니까. 그날 밤 박지민을 갖고 싶었던 충동만으로도 그에게 사과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제발, 밀어내지만 말아.

 “내가 미안해요.”
 “…….”
 “잘못했어요.”
 “…….”

 나는 형이 필요해.

 박지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난 사람처럼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본다.
 
 “뭐가?”

 그는 왜 화가 난 걸까.

 “뭐가 미안해 네가?”
 “…….”
 “대체 뭐가 미안한데.”
 “솔직히 모르겠어요. 근데 형이… 자꾸 나를 피하니까.”
 “…….”
 “그날 내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혹시 형한테 실수했으면,”
 “정국아.”

 또다. 그가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곤 내게 잡힌 손목을 빼냈다. 느껴지던 온기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형의 자그마한 귀를 만지고 싶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고 싶다. 혹시 내가 형을 좋아하는 것도 사과해야하는 거면, 그것 역시 얼마든지 하겠다.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
 “나한테 실수한 것도 없어. 그냥 내 기분이 별로여서 그런 거야. 나한테 미안해할 것 없어.”

 거짓말. 나머지 멤버들에겐 살갑게 잘만 하면서. 오직 나한테만 그러면서. 박지민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지?
 
 “네가 예전에 그랬지. 널 좀 내버려두라고. 마찬가지야. 그냥 나 내버려 둬. 너도 이거 뭔지 잘 알 거 아냐. 그치.”

 숨이 가빠온다. 마치 실연당한 사람처럼 심장 어디쯤이 아프다. 아직 주사 기운이 한창 돌고 있을 시간인데, 열이 솟아 몸이 터져버릴 것 같다. 박지민의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나를 가둔다. 출구를 알 수 없어 컴컴한 공간에. 당신이 나를 산산조각 내고야 말 것이다. 그걸 원하는 거라면 기꺼이 분해되어 주겠다.





 23. 기습



 박지민은 나를 슬슬 피하면서 태형이 형과는 찰싹 달라붙어 지냈다. 두 사람은 툭하면 별 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한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이가 좋아진다. 태형이 형이 해맑게 애교를 부리며 사과를 하기도 하고, 박지민이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얼마나 친하면 그럴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둘의 애정의 깊이가 궁금하다.

 내가 저 형처럼 밝은 성격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막내답게 히- 하고 웃으며 박지민에게 애교를 떨고, 그러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 털어내고 그랬겠지. 박지민이 날 멀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다. 온종일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늘 내가 걱정돼서 살피던 박지민이 생각난다. 이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지민이는 내가 젤 잘 알지.”

 태형이 형은 가끔 이런 말을 해서 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목소리에 가득 차 있는 확신이 부러웠다. 내가 모르는 박지민의 부분들까지 저 형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 간에 모든 걸 털어놓는 두 사람. 혹시 내 얘기도 했을까. 저 형은 박지민이 날 피하는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만약 내가 묻는다면 저 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상하다? 지민이 원래 마음에 안 담아놓는 스타일인데.



 컴백 후 꼬박 일주일 동안 사이클과 함께 박지민의 외면을 감당해야 했다. 열 번이 넘게 허벅지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 나니 어느덧 프리 러트가 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진짜 러트 사이클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나는 몹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 잡혀 있는 스케줄이 많았다. 내 몸에서는 페로몬이 무시무시하게 뿜어졌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말이다. 나는 늘 대기실 구석에 처박혀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했다. 혹시 누군가가 내 체향을 맡고 정체를 알아볼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그걸로 인해 박지민이 나를 완전히 싫어하게 될까 봐.

 내 불안은 나날이 더해졌다.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던 형의 싸늘한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다가, 어느덧 데뷔 후 첫 1위를 한 날이었다. 1위를 한 것만큼이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국 씨가 그렇게 좋아요, 지민 씨?”
  
 라디오 방송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저 질문에 내 심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웃고 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안면 근육이 마비 된 것 같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귀엽더라고요. 막내다보니까 아무래도.”

 박지민이 나를 흘금 노려보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나는 홀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거기서 끝났다면 내가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좀 약간 남자 좋아하는 것 같은데.”

 불쑥 치고 들어오는 태형이 형의 말에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뒤통수가 차갑게 식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악의 없이 놀리는 말투였지만, 나는 태형이 형이 아무 의미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박지민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형이니까.

 “넌 안 좋아해요. 왜 착각을 하고 그러지?”

 바로 받아치는 박지민의 말에 라디오 부스에는 한바탕 웃음이 번졌지만, 그만큼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 말은 결코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박지민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혹시 태형이 형이 뭔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헤드셋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뒤섞였다. 나는 오롯이 내 마음이 되뇌는 대로 홀로 외로운 독백을 이어갔다.

 박지민이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명제. 여태껏 생각해보지 못한 그 문장이 머릿속에 박히자 내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혹시 형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을까. 내가 온종일 신경 쓰인다고 했잖아. 나를 걱정해줬잖아. 내게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잖아. 내 아픔에 같이 울어줬고, 날 안아줬잖아. 아니. 그게 나는 아닐 거야. 일주일째 외면하고 있으니까. 혹시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나. 혹시… 만나는 사람이 있나. 그래서 나를 밀어내는 건가. 시발, 말이 돼?  

 스스로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
 “…….”

 시끌벅적한 혼란 속에서 박지민과 시선이 엉켰다. 눈이 마주친 시간은 고작 몇 초에 불과했는데, 내겐 몇 분이 흐른 것처럼 길었다. 혹시 시간이 멈춰버린 건 아닐까. 나를 꽁꽁 묶어두었던 형의 시선이 거두어질 때까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박지민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숙소에는 한 바탕 소동이 일었다. 박지민과 김태형이 싸운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확인한 폰에는 새로운 단체 톡방이 열려 있었다. 다른 형들의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다. 두 사람이 심각하게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두 사람이 여태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기가 막히는 건, 박지민이 무척 화가 나 있다는 거였다.

 [ 태형이가 뭐 잘못한 모양인데? ]
 [ 지민이가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어. ]
 [ 원래 지민이 같은 애들이 화내면 무서운 법이지. ]
 [ 일단 지켜보자. 정국이 운동 언제 끝나냐? ]

 나는 이들의 싸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심장이 또다시 요동쳤다. 러트 직전의 폭풍전야. 겨우 운동을 하며 다스렸던 감각기관들이 다시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대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헐레벌떡 숙소를 향해 달렸다. 당장 그를 붙잡고 묻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무작정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열며 나오던 박지민과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디 가요?”
 “…몰라도 돼.”

 울었는지 눈이 빨간 박지민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어디 가냐고요.”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지금 당장, 박지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진짜로, 그러니까 진짜로 형이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혹시 그게 나는 아닌지.

 “왜 이래. 나 지금 기분 별로니까…”
 “형, 진짜로 남자 좋아해요?”

 왜 태형이 형이랑 싸웠어요? 궁금해 미치겠어.

 “…….”

 나는 대답을 하지 않는 박지민의 어깨를 조금 흔들며 재촉했다. 대답해요. 형 남자 좋아해요? 누구요? 아니 그 전에, 나 왜 피해요? 혹시 나 좋아해요? 묻고 싶은 말이 혀끝에서 막 쏟아질 것만 같다.

 “태형이 형이랑 싸웠다면서요.”
 “적당히 해.”

 박지민이 화난 표정으로 내 손을 쳐냈다. 화장을 지우면 순해 보이는 그의 눈꼬리가 오늘따라 매섭다. 그가 내 몸을 옆으로 밀며 벗어나려 했다. 나는 조금 더 미친놈이 되어보려고 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당신이다.

 “태형이 형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거 알아요.”

 내 태도가 이상하다는 건 나도 안다. 감정상태가 제멋대로다. 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는데, 모르겠다. 그냥… 돌아버릴 것 같다. 나는 마구 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 좋아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이러냐?”
 “뭐라고요?”

 또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 화가 난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하나다. 박지민이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닌 것 같으니까. 다정하게 굴다가도 정작 그날 밤 이후로 나를 피했으니까. 나는 돌연변이 주제에 남자까지 좋아하는 게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자학했는데. 당신의 존재를 내게서 지우고 싶어도 통 지워지지가 않아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는데.

 “됐다. 그만 해. 이것 좀 놔.”
 “왜요. 말해요.”

 나는 떼쓰는 애새끼처럼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 온통 컴컴하고 조용한 주택가. 큰 소리가 난다면 언제든 멤버들이 달려 나올 수 있는 이곳. 내 눈을 가리는 건 뭘까. 질투일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분이다.

 “내가 왜 말해야 해? 넌 아무것도 말 안 해주잖아.”

 그가 내 가슴팍을 힘껏 밀치며 그랬다. 나는 그 힘에 두 걸음 뒤로 밀렸다. 오기가 생겼다. 나는 스스로 덤불로 걸어 들어간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상처받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처받을 거면서.

 “그런데 난 말해야 해? 이런 질문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너까지 왜이래. 짜증난다 정말.”
 “형.”
 “진짜면 어쩌려고. 그럼 이거 아웃팅이야. 알아?”

 박지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끔찍하다. 그의 머릿속엔 전정국이 박지민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배제. 왜. 어째서. 내가 어떤 줄 알아?

 “말해줄게요. 내 비밀.”
 “아니, 안 들을래.”
 “들어요.”
 “안 들어.”

 내가 형을 좋아한다면, 어쩔 건데?

 “들으라고!”
 “안 듣는다고! 이런 식으로는 싫어. 알겠어?”

 박지민이 보란 듯이 귀를 틀어막았다.

 순간 내 비밀을 못 들은 척해주겠다며 귀를 막고 귀여움을 떨던 지난겨울의 그가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 외롭고 슬프고 허무했던 그날 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그날 밤. 당신 때문에 아프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던 그날 밤…. 내가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이성이 천천히 되돌아온다.

 “미안해요.”
 “…….”
 “미안해요 형.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바보처럼 뒷걸음친다. 곧 울 것처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박지민에게서 당장 달아나야 한다. 이를 악 물고 천천히 멀어졌다. 그러다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머저리처럼 도망치는 것이다. 이렇게 달리다가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 이미 최악인 것 같으니까, 거기에 어울리는 최악의 끝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너무 길어져서 끊었네요. 다음 편은 빨리 들고 올게요.

말랑망개  | 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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