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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07 下 랠리 씀

Mattia Cupelli - Touch

돌연변이
07 下








 25. 혼자서 하는 이별



 새벽에 숙소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박지민이 신고 나갔던 신발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그의 신발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친 몸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누워 있는 박지민이 보였다. 태형이 형과 싸워서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가만히 서서 잠들어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돌이켜 보면 형에게 화낼 일이 아니었다. 형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고 해서, 화를 낼 권리는 없다.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바람에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 짝사랑이란 건 영화나 노래 가사처럼 어느 정도 애틋한 아름다움이 있는 건줄 알았다. 이렇게 내 하루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만큼 무서운 거였다니. 몰랐다. 정말로.

 “…….”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형이 조용히 눈을 떴다. 아까부터 깨 있던 사람처럼 눈꺼풀의 움직임이 차분했다.  

 “전정국.”
 “…네.”
 “미안해. 나도.”

 잠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입술을 깨물어가며 간신히 참았다. 형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주춤하다가 그의 앞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형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작스레 내 머리통을 끌어안는다.

 “도망간 줄 알았잖아 인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일주일 만이다. 그의 다정한 말투를 듣는 건.

 “나 때문에 너 어디 가서 잘못되는 줄 알고.”
 “…….”
 “왜 이렇게 걱정시켜. 열아홉 살이나 먹은 게.”

 당신은 모른다. 내가 몇 시간 전에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내 몸에는 오메가의 체향이 가득 남아 있다. 당신은 정말로 모른다. 이 밤이 지나 해가 뜨면, 나는 나를 철저히 죽일 거라는 걸. 최선을 다해 그를 떼어내고는 표정을 다스렸다. 그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며칠 좀 제정신이 아니었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론 안 그러려고 노력을…”
 “그동안 저한테 차갑게 했던 거, 왜 그랬는지 안 물어볼게요.”
 “…….”
 “형이 내버려두라고 했던 거, 그것도 안 물어볼게요.”
 “…….”
 “형이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그것도요.”

 박지민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 박힌 이 문장 때문에 죽을 맛이다. 러트 첫 날은 그렇게 짐승 같은 섹스로 끝을 보았지만, 아직 사이클은 며칠이 더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울어서 눈이 조금 부어 있는 형의 얼굴을 부여잡고 입맞추고 싶다. 그 남자의 몸에 삽입했던 감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것보다 더 좋을 것이다. 만약 형이랑 하면, 이라는 가정이 자꾸만 생겨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는 것 말고, 우리가 가끔 함께 묵는 해외의 호텔 방이었다면. 은은한 조명과 막 씻고 나온 향기, 포슬포슬한 샤워가운, 바스락거리는 침구 위에서였다면. 형의 작은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예뻐해주며 하는 섹스였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던 가정의 결말은 하나다. 결국 난 이런 놈이니까, 형을 좋아해선 안 된다. 밀어내야 한다.

 “이제 형한테 치대는 것도 없을 거고, 불쌍하게 구는 것도 안 할 거예요. 그냥 우리 조금 덜 친하게 지내요.”
 “…무슨 뜻이야?”
 “형이랑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전정국.”
 “살면서 형 같은 사람이랑 친해본 적 없어요. 어색해요. 형이 나쁜 게 아니라 제가 이상한 거예요. 형은 태형이 형 같은 사람이랑 잘 맞잖아요.”

 나는 마치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처럼 초연해졌다. 함께 사랑해본 적도 없으면서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이가 없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서만 이별한다는 우리 노래 가사가 이렇게나 잘 맞아 떨어지다니. 우습다. 실성한 것처럼 웃고 싶다.

 “형이 그동안 저한테 잘해줘서, 잠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 정신 차리려고요.”
 “뭐 어쩌자는 건지 이해가 안 가.”
 “같은 팀이라 의절은 못하겠지만,”
 “뭐?”
 “아 그 말은 취소. 의절은 좀 너무 했죠. 그냥… 연습생 때처럼, 딱 그 정도로 지내자고요.”

 박지민의 표정이 또다시 일그러진다. 화가 난 모양이다. 그 앞에 조금 더 앉아 있다가는 말실수였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싹싹 빌 것만 같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파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그를 두고 돌아섰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못들은 체하며 방으로 도망쳤다. 문고리까지 걸어 잠그고 나서야 숨이 한 움큼 터졌다.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때렸다. 속이 꽉 막혀 숨을 쉬기가 힘든 이 고통을 대체 언제까지 겪어야 할까. 내 소년기가 이렇게 파란만장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알파로 발현하자마자 세상을 버릴 걸 그랬다. 가수만 될 수 있으면 다 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깟 사랑이 무엇이기에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걸까.





 26. 바보 둘



 쉴 새 없는 스케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러트 기간 내내 오메가를 만나야 했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내가 숙소를 이탈해서 새벽에 들어온 사실에 대해 다른 형들은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나는 암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질러서는 안 된다. 회사에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게끔 쉬쉬하고 넘어간 건 형들의 배려 덕이었다. 열아홉, 그 나이에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는 이유다.

 눈앞이 캄캄했다. 내 러트 사이클이 앞으로 몇 개월 간격으로 올지, 얼마나 지속되다가 사라질지, 아직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하나하나 겪으며 터득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 까마득하다. 언젠가는, 형들에게 나의 정체에 대해 알려야 하는 날이 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선 나 홀로 이 외로운 싸움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틈만 나면 몸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복도의 맨 끝까지 달려가 헐레벌떡 변기 위에 앉아서 속옷을 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몸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 조용히 숨어서 자위를 하다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면 손짓을 멈춘 채로 숨을 참았다.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올까 봐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사람이 빠져나가면 다시 아슬아슬하게 그 짓을 이어갔다.

 사람 새끼인가?

 나는 이제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알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내가 미친 변태 새끼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대기 시간 중에 세 번이나 가서 수음을 하는 아이돌이라니. 혹시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내 자신은 물론 팀 전체를 폭삭 말아먹기에 딱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체향을 억제하는 약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서 밥을 굶었다. 며칠을 그랬더니 볼 살이 홀쭉하게 빠져버렸다. 먹을 것을 마다하는 나를 보며 형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 속에서 박지민은 늘 가엾은 얼굴을 하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우린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앞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무언가를 해야 할 때를 빼면 계속 그런 상태였다.

 

 “너도 지민이랑 싸웠지?”

 태형이 형이 내 방에 들어와서 그렇게 물었다. 남준이 형이 작업실에 가서 나 혼자 침대에 누워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워 넣고 마음껏 끙끙 앓고 있었을 때였다.

 “…싸운 거 아닌데요.”
 “싸운 거 맞던데?”

 언제 또 우리를 관찰한 건지 태형이 형이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궁금한 티를 잔뜩 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자 그가 침대 맡에 걸터앉아서는 내 몸을 마구 흔들었다.

 “야 정국아, 나는 지민이랑 화해했단 말이야.”
 “하… 안 싸웠다니까요.”
 “내가 지민이랑 왜 싸웠는지 알아?”

 그 물음에 나는 솔깃했지만 꾹 참았다. 궁금해 하면 안 된다.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 해맑은 형은 내게 말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자꾸만 나를 흔들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 안 궁금해요.”

 태형이 형을 발끝으로 밀었다. 그러자 형이 비실비실 밀려나며 칭얼거린다. 아 왜, 들어봐- 하며 치대기에 팔에 힘을 줘 있는 힘껏 침대에서 쫓아냈다. 원체 전투력이 없는 형은 울상을 짓더니 나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겨우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박지민의 이야기가 또 나와 버리다니. 나는 그것만으로도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사흘째 지속되는 러트 때문에 온종일 예민한 몸을 다스리느라 죽을 것 같은데, 더 이상 내 정신이 피폐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근데 정국아,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휴.”

 저 형 때문에 진짜 죽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엉 있나보네?”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됐죠.”
 “헤어졌다고?”
 “예에. 헤어졌습니다. 아니 뭐 사귄 것도 아니지만.”

 내 말에 태형이 형이 히엑- 하며 오버스럽게 표정을 바꾼다. 나는 당장 기절할 것 같이 기력이 없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힘도 없어서 이불을 겨우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덮었다. 만약 나중에 내가 알파인 걸 멤버들에게 밝혀야 한다면, 절대로 저 형한테는 말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피곤함이 밀려온다.

 “저 잘 거예요. 형 방 가요.”
 “치… 매정하네.”

 형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러트를 견디기가 힘드니, 차라리 일찍 잠들어버리는 편이 낫다. 팔딱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몸이 많이 지쳐 있었는지 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수면제를 먹은 사람처럼.

 “너넨 둘 다 약간 바보 같다.”

 태형이 형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눈이 감긴다.





 27. 당신의 말, 나의 말.



 나는 또다시 화장실에 앉아 있다.

 팬 사인회를 앞두고 난장을 피워대는 이 러트를 어떻게든 잠재워야 했다. 며칠 동안 못 먹어서 비어버린 속에 약을 털어 넣었다. 벌컥 벌컥 물과 함께 삼키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욱,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위액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변기 안에 약을 토해냈다.

 “하아….”

 한계다. 이런 짓을 앞으로 평생 지속해야 한다니.

 변기 앞에 웅크려 앉은 채로 아랫도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또 미친놈처럼 단단하게 부풀어 있는 앞섶. 울고 싶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또 다시 수음을 한다. 이젠 살이 쓸려서 아파올 지경이다. 그러나 이걸 풀지 않을 수는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힘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다. 옆 칸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 나는 애써 손짓을 멈추고 경계했다.

 “…….”
 “…….”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뭘까. 식은땀을 흘리며 멈춰선 채로 숨도 쉬지 못했다.

 “전정국?”

 하…. 옆 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탄식이 터졌다. 박지민이었다.

 “정국이지?”
 “…….”
 “어디 또 아픈 거야? 자꾸 화장실 가길래.”
 “…신경 쓰지 마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와 단 둘이 대화를 하는 건 닷새 만이다. 서먹서먹한 말이 화장실 칸을 넘나든다. 나는 쓰라린 성기를 꽉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너 며칠 동안 밥도 안 먹었잖아.”
 “…제 말 뜻 이해 못했어요?”
 “알고 있어. 멀어지자는 거.”
 “이해했으면 됐어요.”
 “근데 이해한 건 아냐. 절대 이해 안 가.”

 이제 와서 또 왜 그러는 걸까. 나를 또 무너뜨리려고.

 “먼저 갈게요.”

 나는 옷을 추스르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더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난 여전히 박지민이 좋으니까. 아직 완전히 밀어내기엔 한 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앞으로 몇 달이 걸리더라도 형을 잊어야만 하는 나로선 고역인 것이다. 박지민과 가까이 있는 것. 박지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 박지민의 얼굴을 보는 것.

 “전정국!”

 그가 급히 문을 열고 따라 나왔다. 나는 그를 못 본 체하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러자 박지민이 내 눈앞으로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내가 지니고 있던 약통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그것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암전됐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 구역질을 하다가 떨어뜨린 걸까.

 “이 약 뭐야?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맞지?”
 “…….”
 “몰래 화장실에서 약 먹고 그러는 거야?”

 나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솨아- 하고 흐르는 수돗물 소리만 공간을 채운다. 나는 가만히 손을 적신 채로 굳어버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피가 식는 것을 느낀다. 애써 태연한 척 노력하지만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줘요.”

 나는 그의 손에 있는 약통을 재빨리 빼앗았다.

 “이거 뭔데. 어? 말해줘. 나 지금 돌 것 같아.”
 “별거 아니에요. 오버하지 마요.”
 “뭐냐고.”
 “소화제예요.”
 “이게 소화제라고?”

 박지민이 내 손에서 다시 약통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동그란 뚜껑을 열려고 손을 움직인다. 아무런 라벨도 붙어 있지 않은 하얀 약통.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그것을 굳이 열어보려고…

 “내놓으라고요!”

 나는 얼른 그의 손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뚜껑이 열린 약통은 바닥에 곤두박질 쳤고, 화장실 바닥에 주황색 알약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그걸 보니 분노가 치솟는다. 박지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웅크리고 앉아 약을 줍기 시작한다.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왜 자꾸 나를 건드려. 왜.

 “아… 씨발.”

 내가 뱉은 욕지거리에 그의 손이 멈춘다.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분노가 금세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쉽게 극한으로 다다라버리는 미쳐버린 육체. 위험 신호다. 이렇게 더 있다간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저질러버릴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도 웅크리고 있는 박지민을 들쳐 안고 화장실 칸으로 데리고 가서 바지를 내리는 상상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불량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먼저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위험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 사이클 때는 꼭 주변을 정돈하라던 글귀가 생각난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정말로 잘 알 것 같다.



 팬 사인회를 어떻게 흘려보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영혼이 가출해버린 상태로 스케줄을 소화했다. 머릿속엔 온통 박지민과 약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화장실 바닥에 버리고 돌아섰던 약들이 떠올랐다. 혹시 박지민이 그걸 다 주워 담았을까. 그 와중에 그에게 들킨 것이 주사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머리 아프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 극한을 겪는다.

 “얘기 좀 해.”

 예상한 대로 박지민이 내 방문을 두드리며 그랬다.

 “약 얘기면 할 말 없어요.”
 “나가서 얘기하자.”
 “말 걸지 말라고요.”
 “야!”

 박지민이 화난 표정으로 내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나 따라 안 나오면 약 가지고 회사로 갈 거야. 그건 너도 싫지? 나도 너 협박하기 싫어. 얘기 좀 하자는 거야.”

 그가 내 옷을 끌어당겼다. 나는 결국 그에게 붙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야 했다. 5월의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그가 나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몇 대의 차를 지나쳐, 벽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차 뒤로 나를 끌고 가더니 벽에 밀치듯 놓아주었다.

 “이제 말해 봐.”
 “형 진짜 말 안 통하는 사람이네요.”
 “어. 나 말 안 통해. 지금 통하게 생겼어?”
 “이런 걸로 화내지 마요. 쓸데없어요.”
 “너 왜 이렇게 됐어?”

 박지민이 분노로 씩씩거리며 내 멱살을 잡는다. 나는 곧이곧대로 그에게 붙잡힌 채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걸 잘 안다. 최근 들어 박지민과 나 사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상했다. 형이 처음 나를 밀어내던 순간부터, 내가 형에게 대답을 종용하며 몰아 붙였던 것도, 그러다가 별안간 멀어지자고 한 것까지 전부. 그러니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한테 관심 꺼요. 말 걸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잘 했잖아요. 계속 그렇게 하란 말이에요.”
 “하….”

 그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었다. 그걸 보니 아래턱이 덜덜 떨린다. 형, 난 정말 간신히 참고 있으니까. 제발 나 내버려 둬.

 “이렇게 건드는 것도… 하지 말고.”

 내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형이, 울음을 터뜨린다.



 “너 나한테 왜 이래 정말….”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난 그걸 보고 또 얼어붙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형은 나한테 왜 이래. 이렇게 싸가지 없고 못돼먹은 새끼, 그냥 치워버리면 되잖아.  
 
 “정국아. 정말 미치겠어. 너 때문에… 나 진짜… 미치겠어….”
 “…나도 형 때문에 미치겠어요.”

 나를 미치게 하는 게 누군데 그래.
 하루에도 내가 얼마나 많이 지옥을 오고 가는데.

 “하루 종일 너만 생각한단 말이야.”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거 그냥 소화제라고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뭐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기고 고개가 떨어졌다. 귀로 들어온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내 앞에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우는 얼굴이 절대로, 믿기지가 않아서.

 “남자 좋아하냐고 물었지? 그래. 나 너 좋아해.”
 “…하.”
 “태형이가 그러더라. 네가 눈치 챈 것 같대.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끔찍해? 그래서 나한테 이러는 거면… 그래, 내가 미안한데. 그런데 내가… 너 때문에…”
 
 당신은 지금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거짓말이라고 말해. 이러면 내가 밀어낼 수가 없잖아.

 “너 걱정돼서… 이러다가 나 정신병 걸릴 것 같아.”
 “…….”
 “너 아팠던 날, 네가 나 안고 자는데… 네 몸이 느껴지는 게 좋았어. 기분 나쁘지? 이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니?”
 “…….”
 “나 이제 너한테 숨기는 거 없어. 그러니까, 흐윽, 어서 말해.”

 눈물 젖은 얼굴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박지민. 나는 더 이상 내가 참을 수 있는 경계가 허물어진 것을 느낀다. 정말로, 돌아버리겠다.



 그의 뒤통수를 끌어당기며 거칠게 입을 맞췄다.

 내 멋대로 그의 입술을 먹어치우듯 덮고, 따뜻한 입 안으로 혀를 구겨 넣는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촉감이 모든 말초 신경을 깨어나게 한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그를 짓누른다. 형의 등이 벽에 닿고, 나는 미친놈처럼 그의 목덜미까지 감싸 잡은 채로 내게 더 가까이 당긴다. 더 가까이 올 공간이 없을 정도로 바짝 붙어 그의 혀를 찾아 엉킨다. 으읍, 하며 그가 놀라 숨을 먹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을 밀어내려고 바르작거리는 형의 손목을 붙잡아 결박하면, 형은 다시 그걸 뿌리치며 내 가슴팍을 민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는다.

 고개를 비트는 짧은 순간에 그가 날숨을 몰아쉰다. 나는 그 틈을 주는 것도 아까워 다시 그의 입술을 삼킨다. 축축하고 말랑한 혀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바짝 굳어있다. 나는 조금 화내듯 거칠게 그를 탐한다. 형의 턱을 한 손으로 그러쥐고 저돌적으로 입술을 빤다. 벌어진 잇새로 끙끙거리는 신음을 내던 형이 이번엔 내 어깨를 주먹으로 때린다. 나는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참지 못하고 형의 허리에 팔을 감아 당긴다. 하체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고는 또다시 형의 입 안을 샅샅이 문지른다.

 “으음….”

 저항하던 형의 팔이 내 목에 감겼다. 그의 온몸에 힘이 빠지고, 이제는 나에게 찰싹 안긴 채로 내게 몸을 기댄다. 살짝 눈을 떠보니 닫혀 있는 그의 눈꺼풀이 보인다. 나는 그 순간 형을 당장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맞붙은 입술을 도저히 놓지 못하겠다.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한다. 제발, 제발, 여기서 멈추게 해달라고.

 “하아….”
 “…….”

 가까스로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자 형이 천천히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풀려 있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다시 고개를 비틀며 다가온다. 형의 입술이 다시금 내게 닿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더 이상은 안 돼. 형. 나를 감당 못 해.

 “…형, 가요.”
 
 나는 얼른 그의 몸을 내게서 떼어낸다. 그러자 그가 또 다시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본다. 축축하게 젖고, 빨갛게 부은 입술. 내가 너무 거칠게 입을 맞춘 탓에 아랫입술에 그새 울혈이 생겼다. 나는 그걸 보고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문다. 역시, 나는 형을 다치게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정국아….”
 “가요. 내가 어떤 새끼인 줄 알아요? 알고 나면 후회할 거야.”
 “안 가. 후회 안 해.”
 “…가라고 좀.”

 나는 그를 벽에 붙여 세우곤 으르렁거린다. 흥분으로 돌아버릴 것 같은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안 가. 이제 같이 가.”
 “내가… 이런 새끼거든?”
 
 박지민의 손을 끌어다가 내 바지 앞섶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의 눈이 커진다. 나는 단단하게 발기한 앞쪽에 그의 손을 우악스럽게 문질렀다. 이런 행동이 진짜 역겨운 짓이란 걸 알지만,

 “알파라고 알아요? 내가 그거예요. 돌연변이.”
 “…….”
 “건들면 터져버릴 수도 있다고.”

 이제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다. 나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당황한 그의 손이 뻣뻣하게 굳는다. 하얗게 질리는 얼굴을 보며 나는 비죽 웃음이 샜다. 내가 당신을 밀어내는 이유를 이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다 그럴 수 있는 놈이니까, 가라고.”

 박지민이 내 말을 듣고 이마를 짚는다. 푹 숙인 고개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실망했겠지. 그래. 차라리 속 시원하다. 혹시 언젠가 내 비밀을 알게 됐을 당신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겁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 순간에 나의 모든 과거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어차피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할 텐데, 나는 여태 괜한 골몰을 했던 것이다.

 “지금 빨리 내 눈 앞에서 사라져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
 “정국아….”
 “나는, 내가 제어가 안 돼요.”
 “정국아, 내 말 들어봐.”
 “형이 안 가면 내가 가고.”

 그러자 당신이 내 옷을 잡아 쥔다.

 “…가지 마.”

 그럼 난 당신의 손을 떼어내고, 또다시 내 옷을 잡고.

 손끝까지 파들파들 떨릴 정도로 끝까지 차오른 충동. 나는 눈곱만큼 남아 있는 이성을 끌어 모아 숨을 내쉰다. 그러나 박지민은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절대로 옷자락을 놓지 않는다. 내게 이런 말들을 듣고, 갑작스런 키스도 당해놓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미치게 하네.”

 나는 거칠게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자 거친 움직임 때문에 그가 잡고 있던 내 티셔츠 자락이 부욱- 찢어진다.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한다. 나는 예감한다. 마지막 러트 사이클이 내게로 몰아치고 있다는 걸.

 보란 듯이 박지민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손에 쥐고 힘을 줬다. 그러자 그의 옷이 허무하게 찢어져버린다. 그의 하얗고 마른 가슴팍이 드러날 정도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나는 열과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그를 향해 씩씩거린다.

 “이제 알겠죠. 내가 형한테 이러는 이유.”
 “흑, 흐으…”
 “형은, 나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요.”

 당신은 오메가가 아니니까.





 28. 2년 전의 진실



 빌보드 시상식이 끝나고 우리는 호주로 넘어갔다. 해외투어는 피곤할 때가 많지만, 대체적으로 멤버들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 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술자리도 마음껏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실컷 뒹굴 수 있지. 원하는 만큼. 숙소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해외투어 기간에는 가능하다. 그래서 조금 들뜨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석진이 형과 태형이 형이 우리 방으로 놀러왔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스위트를 함께 쓰는 박지민과 나. 그 덕에 우리 방은 자주 멤버들의 식당처럼 이용당하곤 했는데, 오늘은 갑작스레 술판이 열리게 된 거다. 석진이 형은 와인과 샴페인을 네 병이나 들고 와서는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우리 네 사람은 그걸 마시며 정신없이 취해갔다.

 술이 들어가면 솔직해진다. 그리고 별 일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술기운이 몽롱하게 돌고 나니 문득 치열했던 재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2015년 5월, 나를 처절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던 그 시절이.

 “태형이 형.”
 “엉?”
 “예전에, 지민이 형 남자 좋아하는 것 같다고 라디오에서 그랬잖아요.”
 “엉. 그랬지.”
 “그때 왜 그런 말 했어요?”

 내 물음에 박지민이 부끄럽다는 듯 조용히 잔만 휘휘 저었다. 홍조가 오른 뺨을 보니 궁금증이 더해졌다. 석진이 형도 흥미가 돋았는지 턱을 괴고 우리를 번갈아 살피다가 대뜸 질문을 던진다.

 “뭐야, 그때 이유가 있던 거야?”
 “아이, 뭐 별 거는 아니었는데.”

 태형이 형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박지민의 눈치를 살핀다. 마치 말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듯. 그러자 박지민이 눈썹을 씰룩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 눈치 빠르잖아. 그때 나 지민이랑 같은 방 쓴 거 알지?”
 “네.”
 “내가 자다가 깼는데, 지민이가 네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하더라고.”
 “아, 진짜?”
 “엉. 근데 다시 지우더라. 그리곤 유튜브에서 3시간 동안 네 영상만 봤어. 뿅간 표정으로. 나 약간 자다 깨다 하면서 살폈는데, 내가 눈 뜰 때마다 화면에 너가 있었어. ”

 몰랐던 사실이다. 박지민은 멋쩍은 듯 혀로 입술을 축인다.

 “야, 이 친구. 그걸 알면서 놀렸단 말이야? 너무하네.”

 석진이 형이 대단하다며 태형이 형의 등짝을 쓸어준다.

 “말해주길 바랐던 거죠. 지민이랑 저 사이에 비밀 생기는 거 싫으니까.”
 “그래서 결과는?”
 “한바탕 싸우고 나서 지민이가 말해줬어요. 정국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근데 웃긴게요. 저는 그때 정국이가 지민이 좋아하는 것도 눈치 다 채고 있었는데. 얘네 엄청 티 났거든요.”
 “오, 그걸 어떻게 알지?”
 “진짜 둘 다 바보 같았어요.”

 태형이 형이 해맑게 웃으며 남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지민이 새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근데 태형이 쟤도 웃긴 애거든요.”
 “왜?”
 “저한테 뭐 물어봤는지 알아요? 정국이랑 뽀뽀도 하고 싶어? 이러더라니까요. 아니, 친구가 같은 팀 동생을 좋아한다는데 그런 소리부터 해? 진짜 웃겨.”

 석진이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태형이 형은 뭐가 문제냐는 듯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더니 조금 진지하게 풀어진 얼굴로 나지막이 목소리를 깔았다.

 “지민이가 일주일 후에 대답 해줬어요.”
 “뭐라고?”


 “정국이랑 뽀뽀했다고. 근데 너무 슬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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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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