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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08 랠리 씀


Kai Engel – Take a Look Around You

돌연변이
08












 29. 늪



 러트가 지난 내게 또 다른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건 지독한 우울증이었다.

 박지민과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가도 악몽을 꾼 사람처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눈을 감아도, 떠도, 박지민이 내내 아른거린다. 내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한 그의 모습이 재생된다. 빨갛게 충혈 된 눈, 젖은 뺨, 일그러진 얼굴, 씩씩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던 목소리. 이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촉감이 밀려온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입술, 보드라운 혀, 내 바지 위에 얹어진 채 덜덜 떨던 손가락. 후회가 밀려온다. 형은 나 말고 그 누구에게도 그런 취급을 당해본 적 없을 것이다.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박지민이 전정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인데, 그런 상황에서 들을 말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가 그런 말을 내게 털어놓게끔 몰아붙인 건 결국 내 자신이다. 마치 치명적인 비밀을 가지고 서로 엿 바꿔먹듯, 날 좋아한다는 그에게 멋대로 입을 맞추고 내 정체를 말했다. 알파라는 소리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좋아한다는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나는 그에게 또 상처를 준 것이다.

 ‘…가지 마.’

 당신은 그런 나를 왜 잡았을까.

 형 좋아해. 나도 실은 형을 좋아해. 그런데 내가 좀 이상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좋아서 돌아버리겠는데… 방법을 모르겠어. 이렇게 말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멋진 고백 따위 사치일 것이다. 우리가 그런 아름다운 과정에 놓여있을 수 없는 이유는 확실하다. 남자와 남자, 그리고 알파와 베타. 이 사실은 이미 지나간 일을 끊임없이 붙잡고 되새기며 나를 우울의 늪으로 몰고 간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완결되는 문장은 하나다. 내 존재는 그에게 끊임없이 상처가 될 것이다.



 사이클이 지나간 후 정상 궤도에 겨우 올라온 나. 스케줄이 끝나면 방 안에 처박혀서 단단한 벽을 쌓아갔다. 박지민은 한 번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거실의 소음에 섞여 있는 박지민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베개에 더 깊게 얼굴을 묻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전과 똑같은 그가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 혼자 성격이 예민하고 종잡을 수 없는 막내 행세를 하면 된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면 겉보기에 우리 사이가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거 지민이가 전해주래.”

 태형이 형이 내 방문을 열고는 무언가를 내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놓고 사라졌다. 포장이 되어 있는 자그마한 상자였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정신없이 뜯어보자 그 안에는 하얀 약통이 있었다. 타일 바닥에 흩어진 내 억제제를 주워 담았을 박지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모두가 잠든 새벽,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를 떠올릴수록 갈증이 난다. 주방으로 향했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박지민의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숨을 훅 참으며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날 이후로 단 둘이 마주한 적은 없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박지민은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 걸음을 멈춰 섰다.

 나는 태연하게 그를 향해 생수병을 건네는 상상을 한다. 아직까지 안 자고 뭐해요, 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요, 하고 무심하게 사과를 건네는 상상. 그가 내 사과를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작은 어깨를 꽉 끌어안아주고는 돌아서는 상상.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박지민이 내 옆에 있는 휴지통을 향해 무언가를 툭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그가 버린 것을 향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갔다. 그 안에는 너덜너덜해진 천 조각이 있었다. 그날 내가 솟아오르는 분과 열을 이기지 못해 엉망으로 찢어버렸던, 박지민의 티셔츠. 이제 다시는 입지 못할 옷임이 분명한데도 그의 손에 의해 버려지는 장면을 보니 가슴 속이 턱 막혔다.

 “너 있는 줄 몰랐어.”

 나에게 화가 났을까. 그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없다.

 “네.”

 마치 그가 나를 던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저지른 일이면서 나는 여전히 버림받는 게 두렵다. 나를 제발 버리고 가라고, 더 가까워질 수 없으니 멀어지자고, 그날 그렇게 그를 향해 소리쳤으면서.

 “잘 자.”

 박지민이 내게 짧은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그를 붙잡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휴지통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가 버린 티셔츠를 주워들었다. 형, 그거 알아? 나는 그날 찢어진 내 티셔츠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그 옷만 보면 죄책감이 들어 두렵고 슬퍼지는데 못 버리겠어서.

 찢어지고 구겨진 천 조각이 마치 내 신세 같다. 박지민이 이걸 굳이 주방의 휴지통에 버린 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한다. 버린 걸 내게 보여주고 싶었나. 내 말대로 해주겠단 뜻이겠지. 원하는 대로 기꺼이 버려주겠노라고. 전정국은 상종할 수 없는 부류라고 생각했을까.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걸 후회했을까. 무언가를 자꾸 숨기고 아파하며 몰래 약을 먹는 내가 혹시 어디 죽을병이라도 걸린 건가 싶어 동정했겠지. 그걸 좋아하는 걸로 착각한 건 아니고? 막상 돌연변이라고 하니 끔찍했지? 내가 여태 힘들어 했던 이유가 다 그거 때문인 걸 아니까 더러웠어? 그래서 나 보라고 버린 거야? 널 좋아한다는 말을 취소하겠다고 말하는 건 웃기니까 이렇게 돌려서 알려주는 거야?

 나는 또다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간다. 자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고, 그동안 이어왔던 생각의 타래들이 허무해진다. 열아홉 살이 느끼는 허무함의 반복은 조금 위험하다. 앞으로의 삶이 다 이런 식일 거라고 단정하게 되니까. 나는 아직 세상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동안 알게 된 맛도 그다지 탁월하지 않았다. 기대되지 않는 앞으로의 삶을 상쇄하기엔 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깟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사랑의 종류가 내 삶을 통째로 축소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생 이렇게 숨기고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결국 버림받겠지. 허무함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그걸 버티기가 고되다고 느낀다면, 그렇다면, 내 끝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그가 버린 티셔츠에 얼굴을 묻고 끅끅 터져 나오는 소리를 삼킨다.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악다구니를 부리며 울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숨죽인다. 아무래도 내게 정신병이 온 모양이다.





 30. 하지 못하는 말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싶다. 나는 돌연변이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수없이 많은 고민이 범람하는 그곳 한 켠에 또아리를 틀고, 익명을 빌어 무슨 말이라도 하고자 했다. 그러나 키보드에 손을 올린 순간 머릿속에 정전이 찾아온다. 모니터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애꿎은 아랫입술만 씹는다. 이런 식으로 털어놓는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신파 같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구질구질해지고 싶지 않다.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둥둥 뛰는 심장을 잠재우려 노력한다. 이따금씩 이유모를 두근거림이 지속되고, 각성제를 마신 것처럼 몸에 피가 돈다. 이건 알파의 성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불쾌한 심장박동 끝에는 언제나 답답함과 우울이 서 있다. 오늘도 그것들과 외로이 맞서 싸운다. 지독한 불면증이었다.
 
 “잠이 안 와?”

 옆 침대에서 피곤함에 절어 있는 남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너 요즘 계속 못자는 것 같더라.”
 “형,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응.”

 남준 형이 휴대폰 액정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물음에 형이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제법 연예인다운 질문인데?”

 형의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한다. 이내 내 고민이 멤버들의 고민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는 문제라는 걸 깨닫는다.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오래 유지하고 가야 할 팀의 사기 때문에, 서로에게든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사는 것 말이다.

 “막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민이 있는 모양이네.”
 “…네.”
 “그래 보여.”

 감추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은 형들에게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다. 형들에게 나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는 어린 애에 불과할 것이다. 딱히 큰 말썽을 부리지는 않지만 항상 찜찜한 구석을 안고 있는 막내. 좀처럼 깊은 이야기를 할 상대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어두운 부분에 딱히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남준 형은 이런 이야길 하는 내가 조금 낯선 듯, 이불을 뒤척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리한테 고민을 털어놓으라는 말을 안 할게. 네가 그러고 싶었으면 진작 그랬을 테니까.”
 “…….”
 “다만, 혼자 애쓰는 것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알았으면 좋겠다. 지치면 안 되잖아. 우리 이제 시작인데.”
 “네, 형.”
 “참다가 안 되면 질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요. 저는. 

 “나는 답답할 때 곡을 써. 음악으로 말하는 게 뭔지 배웠거든.”
 “…….”
 “팬 카페나 트위터에 장문을 쓰는 것보다 가끔은 음악 한 곡을 들려주는 게 더 좋을 때가 있어. 멜로디랑 가사. 이 맛을 알아버려서 맨날 영혼을 갈아 넣고 있지만.”
 “…….”
 “이건 비밀인데, 멤버들한테 불만이 생길 때도 가사를 쓴다. 혼자 잔뜩 디스를 해놓는 거지. 그렇게 실컷 표출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잖아? 화가 가득해 있는 게 꼴 보기 싫어져. 별일도 아닌 거에 욱한 내가 너무 별로인 거야. 멤버한테 미안해지고, 반성하게 되고.”

 남준 형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다. 형이 덧붙였다. “음악은 나한테 도구였다가, 이제는 거울이 되고 있어.” 그런데 나는 어쩌지.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려워요. 저는 음악을 몰라서요.”
 “넌 노래를 잘하잖아. 목소리도 좋고, 감정 표현도 늘었고.”

 자기가 잘하는 방법으로 말하는 거야. 꼭 음악을 하라는 게 아니고, 정답은 네가 찾는 거지. 형이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몸을 뒤척였다. 나는 또다시 생각에 잠긴다.

 “세련된 방법이 뭔지 찾아봐.”
 “…….”
 “네가 무언가를 하면, 형이 그걸 신호라고 생각하고 들어줄게. 물론 모르는 척할 거지만. 오글거리잖아.”
 “알겠어요.” 
 “새벽감성은 조심하고.”

 마지막 말을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형의 소리에 덩달아 나도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고민한다. 하지 못하는 말을 에둘러 말할 방법에 대해. 생산적인 시름에 빠지는 걸 보면 나의 상태가 아주 최악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렁에 빠져가는 나를 어떻게든 구하고자 했기에. 가끔은 나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욕심의 무게가 궁금하다.





 31. 대화



 방탄소년단 @BTS_twt

 Eels – I Need Some Sleep

 I need you
 당신이 필요해.
 I need some sleep
 나는 잠이 필요해.

 It can't go on like this
 이런 식으론 곤란해.
 I tried counting sheep
 양을 세어가며 애써 봐도
 But there's one I always miss
 내가 그리워하는 당신이 떠올라.

 Everyone says I'm getting down too low
 내가 지쳐간다고 하더라.
 Everyone says you just gotta let it go
 내게 그냥 잊으라고 하더라.
 you just gotta let it go
 그냥 잊으라고.


 2015년 05월 25일 3:44 오전



 
 [ 잘했다 jk 사랑 고민이라면 언제든… ]
 [ 모른 척할 거라면서요. ]
 [ 맞다 그랬지 참 ]
 [ 언제 들어와요? ]
 [ 덕분에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밤샘작업 예정 ]
 [ 아 형 진짜 ]





 32. 버림받는 것



 정신을 차려 보니 막방 날이 다가왔다. 이번 타이틀 활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정작 나에겐 지옥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내 청춘은 언제 저물어버릴지 모르는 위태로움으로 가득했다. 데뷔 2주년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어느덧 연예인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대중에게 보여주는 내 모습을 컨트롤하고, 돌아서면 진짜 내 모습과의 간극에서 허우적거렸다. 나의 껍데기는 켜켜이 쌓여가는 반면 점점 더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나를 에워싼 것들은 얇디얇아서 옅은 바람에도 하염없이 나부낀다.

 해외 콘서트를 앞두고 짧은 휴가가 주어졌다. 멤버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형들이 하나둘씩 숙소를 빠져 나가는 걸 보며 나는 조금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숙소 안에 박지민과 내가 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언제든 변수는 존재했다.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박지민을 마주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쑥날쑥한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버릴 수도 있다. 형, 지금까지 한 말 다 취소할게요. 나 형 사랑해요. 나 버리지 말아요.

 혼자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는데, 구세주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마침 군대에서 휴가를 받은 우리 형의 연락이었다.   

 “정국아, 너도 갈래? 지민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는데.”

 박지민과 단 둘이 놓일 상황을 두려워하던 나를 비웃듯, 태형이 형이 내 방문을 두드리며 물어왔다.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경상도 남자 김태형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것은 나랑 박지민만이 아니다. 순간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뭐하고 노는데요?”
 “그냥 별것 안 해. 친구끼리 데이트하는 거지.”  

 친구끼리 노는 걸 데이트라고 간지럽게 말하는 걸 들으니 묘한 질투심이 올라왔다. 나와 그 일이 있고난 후 박지민이 태형이 형과 평소보다 더 많이 붙어 다닌다는 사실은 언제나 신경이 쓰이던 것이었다. 나는 홀로 가늠해보곤 했다. 과연 박지민이 자신의 친구에게 어디까지 털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 속에 나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저는 친구 아니잖아요.”
 “에…”
 “약속 있어요.”
 “어엉? 누구랑?”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어오는 형을 지나쳐 무작정 지갑을 챙겨 나왔다. 신발장으로 향하며 눈을 슬쩍 돌려 소파에 앉아 있는 박지민을 확인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형이 서울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는데, 될 수 있으면 빨리 숙소를 빠져나오고 싶었다. 누구와 만나는지 말해주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쓸데없는 호기심을 키워주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심술을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너 낯빛이 왜 그래?”

 오랜만에 보는 우리 형은 핼쑥해진 얼굴과 조금 상한 피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주제에 나에게 낯빛이 왜 그러냐고 대뜸 묻는 모습이 웃겼다. 군대에 있는 내내 나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 형은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짧은 순간 고민한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줄까. 내가 사이클을 어떻게 겪었으며, 박지민과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한 내 심정이 어땠는지 모두 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다. 형제에게 차마 내가 박지민을 사랑하는 것까지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형이 벗어놓은 베레모만 만지작거렸다. 마주보고 있는 우리 사이에는 전골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두 사람 다 음식엔 손도 대지 않는다. 형은 내 앞에서 소주를 마셨다. 혼자서 잔을 채우며 몇 번이나 연거푸 들이켰다.

 “형, 군대 어때?”
 “그럭저럭.”
 “나도 내년에 확 군대나 가버릴까.”

 내 말에 잔을 채우던 형의 손이 멈추었다. 형이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본다. 돌연변이는 군대에 가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말을 내뱉은 건 단순한 충동이었다. 만약 내가 부산에 사는 평범한 열아홉 소년이었다면 알파든, 남자를 좋아하든,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 이 모든 것들이 까발려져 나를 밑바닥으로 내치게 될지 온종일 두려움에 떨진 않았을 것이고.

 “너 힘들어?”
 “그냥 해본 말이야. 버틸 만해.”

 우리 형은 내 말에 다시 말없이 자작하며 빠른 속도로 술 한 병을 비웠다. 마지막 잔을 털어 넣고는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바닥에 찰랑이던 술이 테이블 위를 엉망으로 적셨다. 후욱, 소리와 함께 형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을 파르라니 깎아 맨들맨들한 두피가 다 보였는데, 술이 들어가니 얼굴부터 머리까지 전부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형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정국아.”
 “어.”
 “요즘은… 나쁜 생각 안 하지?”
 “…….”
 “견디기 힘들면 피해. 억지로 버티지 마. 네가 가수 그만두고 싶다고 그러면 가족들이 빚을 내서라도 널 꺼낼 거야.”

 안다. 우리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라는 것을.

 “집에는 언제 말할 생각이야?”
 “글쎄. 언젠가는.”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늦으면 늦을수록 가족들은 자책하게 될 거야. 네가 힘들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으니까.”

 맞는 말이다. 언젠가는 가족들에게 내 정체에 대해 알려야 한다. 하지만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내 비밀을 알게 된 형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안다. 내가 숨길수록 부모님이 받을 상처가 더 커진다는 것도 안다. 첫 사이클을 겪었으니 나는 완전한 알파가 되었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삶은 지금보다 훨씬 버거워질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마 힘들겠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멤버들도 알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어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형이 말한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내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완전하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배신당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있지, 형아. 사실 지민이 형이 내 비밀을 알아. 그리고 난 철저히 버려졌어. 웃기지.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을 기차에 태워 보내고 휴대폰을 열었다. 멤버 단톡방에 태형이 형이 보낸 셀카 몇 장이 올라와 있다. 박지민과 함께 길거리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확대해서 가만히 내려다본다.

 “…….”

 이것 또한 일부러 내게 보여주려는 것 같다. 울컥 하는 마음에 박지민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대화창을 열어 충동적으로 말을 걸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는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 자격이 없다.



 며칠 후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창가 시트에 멍하게 앉아 있는데, 박지민이 내 옆에서 주춤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연히도 그가 내 옆 좌석인 것이다. 바로 앉지 못하는 걸 보니 속 어딘가가 또 쓰려오기 시작했다. 뒤따라 걷던 호석이 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내 옆에 앉은 박지민은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적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그렇게 싫어? 좋아한다고 했잖아. 내가 그때처럼 허튼짓을 할까 봐 무서워? 나는 그가 원망스럽고 밉다. 하지만 심장은 대책 없이 쿵쿵거린다. 아마 박지민을 사랑하지 않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서로 안 지 3년이 지났으니까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

 어수선한 분위기와 웅웅거리는 기체의 소음을 핑계로 이어폰을 꽂았다. 아무 노래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나는 음악을 듣는 척하며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주황색 알약 하나를 꺼내어 보란 듯이 혀 위에 올렸다. 체향 억제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는 반드시 챙겨 먹는다. 약효는 약을 삼키고 30분쯤이 지나고부터 생긴다. 그 말은 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이미 약 한 알을 챙겨 먹었다는 것이다.

 비뚤어지고 싶었다. 나는 오로지 박지민을 당황시키기 위해 이미 먹은 약을 한 번 더 입안에 쑤셔 넣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금방 버린 것에 대한 복수라고 해야 할까. 사실 박지민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냥 내가 미친놈이라서 그런다. 분노의 방향을 멋대로 정해버린 파렴치한 인간이다. 물도 없이 약을 혀에 올려 녹이며 박지민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해 있는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약 먹는 거 처음 보지?
 형이 궁금해 하던 거잖아.

 마른침을 삼켰는지 위아래로 출렁이는 박지민의 목울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가 내 눈을 피한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는 박지민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시선을 겨우 거두었다.

 “알파.”
 “…….”
 “알파 약이에요. 소화제 아니고.”

 그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조용히 읊조렸다. 여전히 이어폰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오직 박지민의 목소리만 기다렸다. 어서 그가 내 말에 무슨 대꾸라도 해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끝끝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멋대로 과용한 억제제 때문에 속이 뒤집혀서 비행 내내 다섯 번이나 화장실에 달려가 구토를 하는 동안에도, 단 한마디도 내게 건네지 않았다. 괜찮냐고. 어디가 아픈 거냐고, 그런 흔한 안부조차도 말이다. 나는 점점 더 초라해져간다. 마음속은 가뭄을 맞은 땅처럼 척박하고 흉측하게 갈라진다.





 33. 시험



 에어컨을 틀어놓은 호텔 방 안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끼니를 거르고 침대 위에서 버린 속을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내 방으로 룸서비스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안 매니저 형이 걱정스럽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괜찮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괜찮아요. 내 말에 매니저 형은 소화제를 사다주겠다는 말을 남겼다. 비행기 안에서 객기를 부렸던 탓이다. 억제제 한 알은 내 호르몬을 제멋대로 뒤집어 놓았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억제제를 장기복용하면 호르몬 체계가 망가져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우습다. 우리는 암에 걸리는 것보다 돌연변이임을 들키는 것이 더 끔찍한데 말이다. 어쨌든 그 작은 알약 하나로 내 몸뚱어리는 반나절이 넘게 쓰린 속을 부여잡고 고통을 참아야 했다. 벌을 받는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누구와 방을 함께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구역질이 멈추었다. 그러고 나니 참았던 허기가 밀려왔다. 땀에 절어 있던 몸을 겨우 씻고 룸서비스를 불렀다. 인터폰을 내려놓은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도어 벨이 울렸다.

 “…….”

 문고리를 잡은 채로 몸이 바짝 굳었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박지민이었다.

 “정국아.”

 조용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대답이 없자 똑똑, 노크를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울리는 도어 벨. 나는 숨죽인 채 문 밖에 있는 박지민을 바라보았다.

 “자?”
 “…….”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 시간에 나를 왜 찾아왔을까. 머릿속에서는 당장 문을 열어주고 싶은 충동이 몰아친다. 그러나 나는 참아야 했다. 박지민은 한참이나 문 앞을 서성이다가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현관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았다.

 몇십 분이 흐른 뒤 주문한 음식이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홀로 허우적거렸다. 날뛰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야심한 시각에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건 조금 위험한 일이다. 호텔방과 박지민을 동시에 떠올린다면 내 머릿속에 들어차는 상상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이클 기간이 아니더라도 내 안에는 보통을 넘어서는 괴물이 살고 있다. 무슨 짓을 벌여도 이상할 것 없는 존재 말이다.



 박지민은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다음날 밤도, 또 다음날 밤도.

 자정이 넘으면 내 방의 도어 벨이 울렸다. 미칠 노릇이다. 낮에 있는 연습과 리허설, 그 외 각종 스케줄 내내 내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던 사람이 밤마다 나를 찾아온다는 것은 점점 내 피를 마르게 만들었다.

 “정국아.”

 벌써 세 번째다.

 “안 자면 문 좀 열어줘.”

 나는 벌써 세 번이나 문고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진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문 너머로 들리는 박지민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더 처연하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 문을 열어버린다면 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될까. 그날의 입맞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랑이 사이가 저릿한데, 대체 내가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는지.

 “제발….”

 딩동. 딩동. 딩동. 박지민이 작정한 듯 도어 벨을 계속해서 누른다. 쾅쾅쾅. 주먹을 쥐고 조금 세게 문을 두들기기까지 한다. 전정국, 정국아. 제발. 오늘은 기필코 내가 문을 열 때까지 버티고 있을 요량인가 보다. 심지어 내 폰에 전화까지 걸고 있다. 나는 현관 벽에 기대 선 채로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꽉 쥔다.

 “문 앞에 있잖아. 열어줘.”

 결국 나는 져버리고 만다. 손을 뻗어 잠금장치를 풀었다. 탈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슬리퍼를 신은 내 발을 내려다 본 채로 입구에 미동 없이 기대고 서 있다. 박지민이 나를 발견하곤 등 뒤로 문을 닫는다. 철컥. 그 소리와 함께 정적이 맴돈다.

 “…….”
 “…….”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의 눈을 마주본다. 축축하게 젖은 그의 앞머리가 보인다. 홍조를 띤 얼굴은 나를 향해 눈썹을 내려뜨린다. 왜 나를 찾아왔냐고 묻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들어가도 돼?”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박지민은 내 말을 거역하고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의 발자국마다 망설임이 가득 묻어난다. 나는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본다. 그가 침대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 의자에 앉는다. 예전에, 잠들어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자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둑한 스탠드 조명 아래서 금빛으로 빛나고 있던 그의 맨 살결을 눈으로 훑으며 욕정을 품었던 나. 그리고 함께 샤워했던 순간. 젖은 피부 위에 손을 올렸던 감촉. 거칠게 입을 맞추며 혀를 섞었던 온도까지.  

 얼어붙은 듯한 공기완 다르게 내가 내뱉는 숨은 뜨겁다. 나는 차라리 그를 보지 않는 것을 택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을 바라보며 그의 시선을 피한다. 마치 눈길을 돌리면 죽는 사람처럼.

 “생각해봤어.”
 “…….”
 “그리고 많이 공부했어.”

 물기 어린 박지민의 목소리가 차근차근 내 귓가에 달라붙는다.

 “알파라는 거….”
 “이제 와서 왜요.”

 어차피 당신은 나를 버렸잖아.

 “너를… 알고 싶었어.”
 “알고 나니 어때요. 무섭죠.”
 “아냐. 이해하고 싶어.”
 “거짓말.”

 단호한 내 말에, 내 시야 안에 들어와 있는 박지민의 맨발이 꿈틀거린다. 그의 발등에 힘줄이 돋았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로 한 발자국 다가온다.

 “다가오지 마요.”
 “정국아.”
 “여태 잘 했잖아요. 나 피했잖아요.”
 “네가 무서워서 피한 거 아냐.”
 “그럼? 더러워서 피했나.”

 코끝이 시큰해진다. 여기서 만약 울어버린다면 최악이 될 것이다. 나는 말로써 그를 막아내며 어렵게 눈을 치켜떠 그를 올려다본다. 박지민은 나와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몸을 떨고 있다. 그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또다시 제멋대로 발작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사이가 너무 가깝다. 위험하다.

 “아니.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요.”

 또 한 걸음을 떼려는 그를 다급히 멈추게 한다.

 “그동안은, 나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더 가까이 오면 형한테 강제로 어떻게 해버릴지도 몰라요. 공부했다면서요. 알파라는 게 어떤 새끼인지 잘 알겠네.”

 그러나 통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 내 무릎 앞까지 다가왔다. 돌아버릴 것 같다. 짧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허벅지와 발목, 하얀 발등. 그리고 더 미치겠는 건 나를 향한 태도. 나는 당신이 나를 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당신을 미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만 정리하면 되는 일이라고 안도했지만, 수십 수백 번 당신을 미워할수록 내가 입은 상처는 스스로 덧났다.

 “어떻게 해버리든… 상관없어.”
 “…….”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기나 할까.

 “안아주고 싶었어.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
 “동정하지 마요.”
 “동정 아니야. 나는 여전히 널 좋아하고…”
 “아씨…”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내게서 밀어냈다. 내 힘에 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또다. 의미 없는 힘겨루기. 오늘은 또 뭘 찢어버리려고. 얼마나 더 그를 다치게 하려고.

 “너도 날 좋아하는 거면, 말해줘.”

 이 답답한 사람아.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줬잖아.

 “내가 너한테 아무 도움도 못 준다는 거 알아. 근데… 그래도, 옆에 있으면 안 될까? 내 눈에 안 보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박지민이 기어이 내 머리통을 끌어안는다. 나는 그의 몸을 떼어내려고 바르작거리며 고개를 틀었다. 그러나 그의 손아귀에 양 볼을 잡혀버리고 만다. 박지민이 앉아 있는 내게 허리를 굽혀서 눈높이를 맞춘다. 뺨에 닿은 그의 손이 뜨겁다. 당신은 자꾸만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키스 한 번 했다고 착각하지 마요.”
 “…….”
 “그땐 러트가 와서 그랬던 거예요. 형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니까… 형 안 좋아한다고. 나는, 형을 안 좋아해.”

 코끝이 닿을 거리에서 박지민이 축축한 눈동자로 나를 살핀다. 그의 눈자위에 물기가 들어찬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린다. 내 뺨을 부여잡은 그의 손가락이 잘게 떨려온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문다. 박지민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샅샅이 파헤치는 것 같다. 절대로 갈라진 내게 물을 주지 마. 그대로 망가져버리게 둬.

 “거짓말. 전정국 거짓말쟁이야.”
 “거짓말 아니야.”
 “울고 있으면서.”
 “…….”
 
 아, 내가 결국은 울고 있었구나.

 “그래. 너 나 안 좋아해. 나만 너 좋아해. 그렇게 하자.”

 당신이 내뱉는 말에 가득 묻어 있는 확신을 느낀다. 다 틀렸다. 당신은 이미 내 맘을 다 꿰뚫어 본 사람인 것처럼 군다. 나 역시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건,”
 “…….”
 “널 짝사랑해서 하는 행동이야. 싫으면 따귀 때려.”

 그가 순식간에 내 입술을 감쳐문다.

 말랑한 입술이 비벼지고, 대책 없이 벌어진 내 잇새로 따뜻하고 보드라운 혀가 넘어온다. 어설프고 서투른 침범이다. 요령 없이 혓바닥을 움직이며 나를 찾는다. 좁은 시야 안에 한가득 들어찬 당신의 붉은 볼이 기우뚱하며 한쪽으로 기울여진다. 당신이 중심을 잃고 내 품으로 무너져 내린다. 놀라서 뿜는 콧김에 당신의 체향이 가득 닿는다.

 당신의 뒤통수를 부여잡고 내게로 당긴다. 앞니가 부딪칠 만큼 강한 접촉에, 붙어 있는 당신의 입술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저히 밀어낼 수 없다. 싫으면 따귀를 때리라고?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당신이 이렇게 좋은데. 좋아 죽겠는데. 밤이 새도록 이 숨을 나누고 싶은데.

 나는, 대책 없이 미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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