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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애 12 랠리 씀

visions of gideon instrumental

아는 애
12










 지민은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느지막이 눈을 떴다. 평소 휴일이면 늦잠 자지 말고 놀자며 강아지처럼 이불 속을 파고들어 뽀뽀를 하거나 간지럽히며 잠을 깨웠을 태형이다. 두 사람 모두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함께 있을 시간이 주말뿐이기에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런데 벽에 걸린 시간을 보니 정오가 훨씬 지나 있었다. 지민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제 옆 자리는 비어 있고, 집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고요하게 문을 열고 걸어 나가니 주방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태형이 보였다. 요리를 하고 있는지 인덕션 앞에 선 채로 프라이팬을 내려다보고 있다. 지민은 그에게 기척을 내지 못하고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동그란 머리통이 한참이나 미동이 없더니, 뒤집개를 든 손으로 느릿하게 계란프라이를 뒤집는다. 지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욕실로 향했다.

 양치를 하면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내 생각에 잠겼다. 전정국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태형도 봤겠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태형과의 사이에서 정국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운을 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갑작스러운 전정국의 돌발 행동은 지민을 이토록 당황케 했다. 자신의 셀카가 업로드 된 건 어제 이른 새벽인데, 하루가 훨씬 지날 동안 태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퇴근 후에도 태형은 몸을 씻자마자 피곤에 절은 사람처럼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퉤, 양칫물을 뱉었다. 상쾌해야 할 입 안이 쓰기만 했다.

 “배고프지? 곤히 자길래 안 깨웠어.”

 지민이 욕실을 나오자 태형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어서 앉으라며 식탁을 향해 손짓을 했다. 태형의 표정은 여상하기만 했다. 지민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가 식탁에 앉았다. 곱게 만들어진 오므라이스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태형이 히죽 웃으며 그의 앞에 숟가락을 놔주었다.

 아직 못 봤나? 그래 태형은 SNS를 안 하니까 못 봤을 수도 있다. 지민 자신도 SNS를 하지 않기에 처음엔 몰랐는데, 회사 임원실로 불려간 후로 알게 되었으니까. 아냐. 혹시 대학 친구 중 누군가라도 태형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태형과 자신이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애들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민은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다.

 “왜 안 먹어. 입맛 없어?”
 “어? 아냐. 맛있다.”

 지민은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오므라이스를 오물거렸다. 태형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먹는 것에 집중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에 지민은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태형이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지. 비록 하루가 지났지만 말이다. 마치 변명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은 전정국이 한 마디 말도 없이 혼자 저질러버린 것인데, 태형에게 큰 죄를 지어버린 것 같았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태형의 옛 애인이 그래버린다면, 아마 자신은 화가 나서 미쳐버릴지도 모를 테다.

 “지민아, 이따가 영화관 갈까?”
 “응. 뭐 재밌는 거 상영해?”
 “찾아볼게.”

 태형이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지민은 입 안에 있는 밥알을 꿀꺽 삼켰다. 혹시 그가 인터넷을 열었다가 우연히 정국의 인스타를 발견하게 된다면 낭패였다. 먼저 말해야 한다. 지민이 상기 된 얼굴로 얼른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정국의 인스타를 화면을 열었다. 여전히 올라와 있는 열아홉 때 찍은 두 사람의 셀카를 띄웠다. 그리고는 조용히 태형에게 내밀었다.

 “태형아.”

 테이블 위로 쑥 미끄러진 지민의 화면을 태형이 가만히 내려다봤다. 숟가락질을 하던 태형의 손이 이내 멈췄다.

 “이거… 전정국이,”
 “지민아. 밥 먹잖아.”
 “…어?”
 “그 얘긴 밥 다 먹고 하면 안 될까?”

 아, 이미 알고 있었다.

 지민의 얼굴이 좌절감으로 물들었다. 반면 태형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는 지민의 폰에서 시선을 금방 거두고 제 손에 들려 있는 폰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포털로 영화나 검색했다. 지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날 동안, 모른 척했다. 자신이 얘기해주길 기다렸던 걸까. 지민은 더 이상 목구멍으로 아무것도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오므라이스를 반 이상 남긴 채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찬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태형도 잠시 뒤 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지민은 태형에게 가만히 눈을 맞췄다. 지금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태형 역시 눈동자를 고정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전정국이 찾아왔었어.”

 지민이 어렵게 운을 뗐다. 뭐라고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속에서 고르고 고르다가 나온 말이었다. 변명을 하는 사람 같이, 뭐라고 말해야 태형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잘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의 인스타 속 셀카를 발견했을 태형의 감정을 떠올리니 백 번이라도 사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태형이 몸을 일으키며 빈 그릇을 들었다. 지민의 앞에 놓인 그릇도 들고 싱크대 위로 가져다 놓고는 커피 머신의 전원을 눌렀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천천히 내려진다. 지민은 생각과 다른 태형의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간을 좁혔다.

 “더 안 물어봐?”
 “응.”
 “안 물어봐도 설명해줄게. 정국이가 갑자기 회사 앞에 찾아왔어. 얘기 좀 하자고 해서 걔 차에 타서 잠깐 얘기 했어. 그리고 갑자기 저렇게 올렸어. 그리고 사실 그 전에도 봤어. 회식 하던 날 우연히 마주쳤고…”
 “지민아.”
 “…….”
 “됐어.”

 태형이 지민의 앞에 아메리카노가 든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향긋함이 솔솔 올라오는데, 지민은 어쩐지 짜증이 덜컥 올라왔다.

 “왜? 태형아. 왜 됐다고 해?”
 “걔 얘기라면 말할 필요 없으니까.”
 “네가 오해할 만한 상황이잖아. 그럼 내가 설명하는 게 맞잖아.”
 “너 믿어. 오해 안 해.”
 “내 마음은 불편해. 너도 마음 불편하잖아.”
 “지민아. 나도 너한테 전정국 얘기 안 한 거 있어.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다 설명 안 해도 돼. 우리 얘기만 하자. 그래도 부족하니까,”

 태형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지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뭐?”

 나한테 말 안 한 게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나한테 말 안 한 거라니?”
 
 지민의 예민한 반응에 태형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내가 맡은 뮤지컬 주연이 전정국이야.”
 “…뭐? Return?”
 “제목을… 알고 있어?”
 “왜 말 안했어?”
 “내가 그걸 말해야 해?”

 태형은 조금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다. 그러자 지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얼굴을 뜯어봤다. 언젠가부터 두 사람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 여태 나한테 다 말해왔잖아.”
 “이건 굳이 말할 필요 못 느꼈어.”
 “왜 말할 필요가 없어?”
 “우리 사이에 전정국 얘기가 필요해?”

 사실 태형이 지민에게 정국의 이야길 하지 않은 것은 지민을 잃을까 싶은 불안함 때문이었지만 그걸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단지 우리 사이에 전정국의 이야길 꺼내고 싶지 않다는 말 한 마디로 덮어두고 싶었다. 태형은 그런 자신이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지민이 그에게로 가버릴까 봐 무서웠으면서.  

 “그냥… 그냥… 말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걔가 궁금해? 7년 전에 끝난 애 얘길 내가 왜 해야 해? 지민아 제발, 전정국 얘기로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그만 하자.”
 “전정국이 Return 주연 한다는 거 내가 평생 모를 것 같았어? 네가 Return 조연출 한다는 것도 내가 언젠가는 알게 될 거잖아. 결국 내가 다 알게 되는 거였잖아. 하다못해 나중에 내가 공연이라도 보러 간다고 했으면…!”
 “둘러댔겠지. 너 절대 못 오게.”

 단호한 태형의 대답에 지민은 입을 허망하게 벌리고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민은 지금 자신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의 의미를 통 알지 못했다.

 “김태형. 너 전정국 신경 안 쓴다고 한 거 다 거짓말이었네. 그래서 나한테 일 얘기 안 했던 거구나? 만나서 퇴근하잔 것도 피한 거고!”
 “…….”
 “신경 안 쓰였으면 나한테 다 말했겠지. 넌 날 안 믿었던 거지?”
 “…하.”

 태형이 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하려 입을 달싹였다가 관두었다. 그가 큰 손을 들어 제 이마를 짚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었다. 식어가는 커피를 가운데에 두고 두 사람이 뿜어대는 말의 온도는 채 내려갈 줄을 몰랐다.

 “지금 네가 화난 게, 내가 맡은 뮤지컬 타이틀을 말 안 해서가 아니라 전정국이 주연인 걸 말 안 해서지? 똑바로 말해.”
 “김태형.”
 “대답해.”
 “너나 대답해. 여태 나 안 믿은 거냐고.”

 지민의 뺨 위로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태형은 그걸 보며 미치겠다는 듯, 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아일랜드 테이블을 등지고 싱크대를 붙잡았다. 수돗물을 세게 틀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순식간에 말도 안 되게 끓어버린 분위기를 얼른 식혀야 했다. 전정국 때문에 지민과 자신이 이렇게 싸워야 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러고 싶지 않았다.

 차마 지민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몇 번이나 참아왔던 것을 다 터뜨려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네가 나 사랑하는 거 다 아는데, 네 마음속 어디쯤에 전정국이 늘 있었다는 건 알고 있어. 잊은 척해도 완전히 못 잊은 거 다 알고 있다고. 술에 취해서 걔 이름 불렀던 너니까. 걔 목소리, 걔 소식, 걔 얼굴 보일 것 같은 상황 일부러 다 피했던 너니까. 진짜로 다 잊었으면 길가다가 마주쳐도, 아니, 24시간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게 사람 감정이니까!

 한참 뒤 수돗물을 잠근 태형이 뒤를 돌아봤다.

 “…….”

 지민이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엉엉 울고 있었다.

 “…미안해.”
 “나쁜 새끼.”

 태형이 테이블을 빙 둘러 달려가 지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내가 잘못했어.”
 “…나쁜 놈.”
 “맞아 신경 쓰였어. 싫었어. 일터에서 전정국을 보자마자 그냥… 너무 싫었어. 예전에 네가 힘들었던 게 생각났어. 너 울던 것도 생각났고, 네 집 앞에 걔가 찾아왔던 것도 생각났어. 그래서 내 입으로 걔 이름 세 글자 중에 단 한 글자도 말해주기 싫었어.”
 “흐으….”
 “네가 나 사랑하는 건 아는데, 그냥 내가 치졸해서 그래. 나 나쁜 놈이야. 지민아…. 나 때릴래? 응? 울지 마.”

 자신의 어깨를 어르며 달래는 태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민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더 목 놓아 울었다.

 “아냐 태형아, 내가 더 나쁜 놈이야. 흐엉…”

 태형아, 진짜로 나쁜 놈은 나야.
 나 좀 잡아 달란 말도 못하고 대신 화만 내는 거야.

 지민은 자신을 번쩍 들어 안는 그의 팔에 앉아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태형의 어깨가 지민의 눈물로 축축이 젖어 들어간다. 7년간의 사랑을 단위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어떤 값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그게 눈물이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






 일찌감치 출근한 지민은 여느 때와 같이 복사기 앞에 서서 회의실에 가져다 놓을 서류를 정리했다.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회의가 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제가 할 일을 찾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제법 회사 생활에 적응을 한 모양이었다. 이 시간이면 각 부서마다 자신과 같은 말단 사원들이 복사기 앞에 하나 같이 서 있는 모습이 일관적이기까지 했기에, 지민은 사회생활이란 것이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FM대로 움직이면 가장 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에 소란한 날을 마주치는 일보다는 대체로 평범한 날을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가이드라인 잘 따라가면 초행길도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이 초행길이 벌써부터 갓길로 빠지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이나 건물 내 카페에서나 오다가다 마주쳤던 타 부서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해오기도 했고, 부서 내에서도 대화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지민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것이다.

 “지민 씨, 좋은 아침?”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셔츠 너무 예쁘다.”
 “감사합니다.”

 셔츠는 항상 입고 다니던 별다를 것 없는 회색 스트라이프 셔츠였다. 얼굴은 주말에 하도 울어대는 통에 눈두덩이 퉁퉁 부어 평소보다 1.5배는 못생겨진 상태였고. 팀의 대리도, 과장도, 차장도, 지민을 볼 때마다 한 마디씩 건넸다. 그간 사무실 안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있다가 심부름 시킬 때나 이름을 불리던 지민이었는데, 오늘따라 아침부터 별 용건도 없는데도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심지어 조금 아까는 부장이 불러서 갔더니 글쎄 하는 말이,

 “박지민이, 커피 마실래? 스타벅스?”

 하며 개인 카드를 주는 것이다. 지민은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예? 하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어봤고, 부장은 뭘 그렇게 놀라느냐며 머쓱하게 웃기나 했다. 결정타는 남자 화장실 앞에서 지민을 기다리고 있던 여자 직원들이었다. 세 명이서 지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나오자마자 양 옆에서 팔짱을 끼며 다짜고짜 본론부터 물어보는 바람에 지민은 왜들 갑자기 이러는지 금세 깨닫고야 말았다.

 “전정국이랑 엄청 친해요?”
 “고등학교 때 친구?”
 “자주 만나요? 어우 너무 신기해.”

 아…. 그러니까 저가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전정국이 셀카만 올린 게 아니라 회사 브랜드 명을 태그 했고, 광고 제안까지 받아들였단 사실을. 그리고 그 파장이 회사 전체에 이렇게나 퍼져버렸다는 것을. 자신은 단숨에 회사 내에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엔 그게 이렇게까지 회사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일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는 오전이 지나기 전에 알 수 있었다.

 “예? 제가요?”

 무섭게 생긴 분들이 윗 층에서부터 내려와서 지민을 찾더니, 부장이 그를 등 떠밀 듯 던져주고는 외근을 다녀오라고 한 것이다. 말단 사무직 사원이 외근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고급스러운 수트를 갖춰 입은 직원 세 사람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지민은 까만 색 세단 안에 앉아 있었다. 한 남자는 운전대를 잡았고, 안경을 쓴 남자는 조수석에, 말총머리로 묶은 여자와 지민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운전기사로 보였고, 두 사람은 그냥 봐도 지민보다는 직급이 높아 보였다. 지민은 찍소리도 못하고 창밖만 내다보았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슨 외근을 한다는 건지도 모르는데 외근이라니.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차 안에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저… 혹시 어디 가는 건가요?”

 한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지민이 모기만 한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말총머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대답했다.

 “어, 전정국 씨한테 못 들었어요?”
 “예?”
 “오늘이잖아요. 계약.”

 계약? 

 “지민 씨 같이 오라고 조건 걸었잖아요.”

 뭐라고?

 지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뭘 조건을 걸어? 정국이 회사의 광고 제안을 구두로 받았다는 말을 회사 임원을 통해 듣기는 했지만, 상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단지 자신이 전정국의 친구라는 이유로 반가워서, 아니면 전정국이 계약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SNS 해시태그를 올려줘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 임원한테 불려갈 리가 없다는 것이다.

 “전무님께서 지민 씨한테 얼마나 고마워하셨는데요. 솔직히 광고제의 몇 번이나 거절당하고 계약한 모델도 사건 터져서 골치였는데 지민 씨 덕분에 전정국 씨를 잡았잖아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애사심이 대단하시다고. 사실 아무리 친구라도 그런 부탁 쉽지 않잖아요. 비즈니스인데.”

 하, 전정국. 대체 무슨 생각이야.

 지민은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걸 느꼈다. 대충 짐작을 해보니 정국이 파격 조건으로 광고를 받아들여준 모양이었다. 그것도 회사에 광고 사정이 하필 좋지 않을 타이밍에 말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팔면서 박지민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건데…….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차창에 머리를 쾅쾅 아프지 않게 규칙적으로 박았다. 그러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안경 낀 남자가 스윽, 고개를 돌려 힐끔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순간 머쓱해진 지민이 헛기침을 하고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을 열어 전정국의 이름을 검색했다. 연결 되어 있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클릭했다. 새로운 피드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하늘 사진과 함께 보이는 문장. ‘시작하는 날’





*






 광고 계약이 성사되는 자리에서 지민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게 앉아 찻잔만 내려다보았다. 안경 낀 남자는 변호사였던 모양이고 말총머리는 회사의 광고 관련 실무자였던 모양이다. 지민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아는 바가 하나도 없는 게 당연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국은 얇은 라운드 니트에 블랙 진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와 변호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앉아 광고와 관련해서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생소해서 지민은 가만히 눈동자만 굴렸다.

 실은 정국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지민은 애꿎은 찻잔만 들었다 놓았다를 하다가 힐끔거리며 정국을 쳐다봤고, 그럴 때마다 자주 그와 눈을 마주쳤다. 시선이 부딪치면 정국이 눈꼬리를 내리며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는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반짝하게 빛내며 진지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도 금세 흐트러지는 표정이 제법 근사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이런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민은 괜히 못 볼 걸 본 것처럼 급하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나는 여기에 왜 앉아 있는가.

 지민은 지금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제 눈앞에서 한 기업과 연예인이 광고 계약을 맺고 있었다. 서류 여러 장을 법적으로 검토하고, 억대의 금액 이야기가 오가고, 여러 개의 도장을 찍어대는 일련의 과정을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페퍼민트 차나 마시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회사의 고위 관계자 앞에서 대놓고 월급 루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복잡한 절차가 끝났는지, 그들끼리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말을 나눴다. 지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어서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자꾸만 눈을 마주치는 정국 때문에라도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자신을 계약하는 자리에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봤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장난을 친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지민이, 회사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죠?”
 
 갑자기 정국이 말총머리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스케줄 내시기 힘드셨을 텐데요.”
 “감사합니다. 바빠서 친구 만날 시간이 통 있어야 말이죠.”

 지민이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말총머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민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로 말총머리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지민에게 가보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 하고는 정국을 향해 다시 인사를 했다. 지민이 어안이 벙벙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순식간에 계약이 진행됐던 공간이 비워졌고, 어느새 두 사람만 남았다. 지민은 멍하게 선 채로 사람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국이 자리에 천천히 앉으며 다 식은 차를 호록 소리를 내며 마셨다. 그 소리에 지민이 뒤를 돌아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정국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웃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지민이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자 정국이 차를 끝까지 원샷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을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지민의 손목을 잡았다.

 “일단 나가자. 배고프다.”
 “뭐하는 거냐니까?”

 탁- 지민이 그의 손을 세게 뿌리치며 조금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정국이 허전해진 손을 허공에 그대로 든 채로 한숨을 쉬었다.

 “광고 계약한 거잖아. 너 다니는 회사하고.”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니까 여기에 왜 나를 껴 넣냐고.”
 “너 때문에 계약한 거니까.”
 “뭐?”
 “너 보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지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보려고 광고를 계약했다고?

 “찾아오지 말라며.”
 “…….”
 “그러니까 이제 네가 나 찾아오게 하려고.”

 정국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지민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엔 조금 힘이 들어갔다. 지민이 뿌리칠까 봐 미리 완력을 더한 것이다. 그러나 지민은 그의 말을 곱씹느라 뿌리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순순히 정국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정국의 에스코트에 따라 먹색 포르쉐의 조수석에 올랐다. 보닛을 돌아 운전석으로 온 정국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민이 그의 말에 대해 물었다.

 “찾아오게 한다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계약 조건 중에 네가 있거든.”
 “하….”

 차가 출발하며 생기는 관성을 느끼며 지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정국이 큰 도로로 진입하며 자연스럽게 핸들을 돌렸다. 지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국이 갑자기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지민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휴대폰을 열었다. 태형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이 상황을 이야기해줄까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한다면 주말 때처럼 그와 다툴 일이 생기고 말 것이다. 지민이 한숨을 폭 내쉬다가 인터넷 화면을 열었다. 아까 열어놨던 전정국의 검색 포털 화면이 떴다. 웃고 있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금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 무표정한데, 사진 속의 남자는 맑은 눈을 빛내며 귀엽게 웃고 있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 별안간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프로필 사진 아래에 뮤지컬 ‘Return’의 포스터가 떴다. 전엔 보지 못했던 거였다. 지민은 당사자를 옆에 두고 그의 검색 화면을 보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자신이 웃겼으나 어차피 정국은 운전을 하느라 알아차리지 못할 터였다. 정국은 지민이 태형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로 아는 것인지 묘하게 미간을 구긴 채로 차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지민은 뮤지컬 Return에 대해 나와 있는 정보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제작사 정보에 태형이 다니는 회사의 이름이 떴다. 알고 있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괜히 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네가 화난 게, 내가 맡은 뮤지컬 타이틀을 말 안 해서가 아니라 전정국이 주연인 걸 말 안 해서지? 똑바로 말해.’

 글쎄. 그때 태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뭐였을까.
 정국은 왜 이제야 나타난 걸까. 어쩌자고.

 지민은 멍한 눈으로 Return의 정보를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줄거리 정보의 한 문장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버림받은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 …… 복수극. 복수극. 복수극. 지민의 안면이 구겨졌다. 복수극?

 그래. 혹시 네가 갑자기 내게 이러는 이유는….

 “전정국,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정국이 핸들을 돌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한테 복수하고 싶니?”

 지민의 물음에 정국이 지민의 얼굴을 슬쩍 돌아봤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웃으며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민은 그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표정이 묘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지민이 미간을 좁혔다.

 “그런 건가 보네. 그래서 일부러 태형이가 있는 뮤지컬도 선택했어?”
 “…….”
 “우리 괴롭히려고?”
 “…….”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러면 우리가 흔들리고 괴로울까 봐?”

 정국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지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천천히 화가 올라왔다. 제 멋대로 왜곡하고 생각하는 지민이 미웠으나,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어떻게 그 따위로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우리가 그것밖에 안 됐었나. 내가 너한테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내가 얼마나 너를, 너를…….

 그가 엑셀을 더 세게 밟으며 핸들을 강하게 꺾어 차를 빠르게 유턴했다. 그 바람에 끼익-하는 소리가 나며 도로의 노면에 까만 스키드 마크가 생겨났다. 순식간에 꺾어진 차에 지민의 몸이 거칠게 쏠렸다. 순간 지민은 얼마 전 제 말에 화를 내며 핸들을 주먹으로 때리며 경적을 울리던 정국의 행동이 떠올랐다. 그의 거친 행동을 보니 예전의 정국이 아닌 것만 같았다. 마치 딴사람 같다.

 정국아, 우린 대체 얼마나 달라진 걸까.

 “복수?”

 핸들을 잡은 정국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향해 속도를 올렸다. 그의 포르쉐가 괴성을 지르며 빈 도로를 무섭게 폭주하기 시작했다. 지민은 문득 두려워졌다. 지민이 눈을 크게 떴다.

 “속도 낮춰.”
 “…….”
 “너 왜 이래? 전정국!”
 “날 자극한 건 너야.”
 “내려줘. 나 갈래.”

 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내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전정국! 어디 가는데.”
 “…….”
 “너 진짜 제 멋대로구나?”

 박지민, 제 멋대로는 너잖아. 내 마음 네 멋대로 상상하고 깔아뭉개는 건 너면서. 정국은 그런 말은 밖으로 꺼내지 않고 삼키며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어긋나버린 걸까. 그래. 그때도 그랬지. 스무살 때, 우리가 그렇게 싸웠던 것도 서로 이야길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까닭이었어. 그때 내가 네 말을 들어주었으면, 그때 널 오해하고 그렇게 확 가버리지만 않았으면 우린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헤어졌을까. 지금 이렇게 된 게 그때 내 행동에 대한 벌일지도 모르겠다.

 정국은 속으로 지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어느덧 그의 차가 그가 사는 곳과 가까워졌다. 지민은 조수석에 앉아 계속 화를 쏟아냈다. 그건 자신의 말에 어떠한 대꾸도 없는 정국에게 분노도 했고, 두렵기도 했고, 그럼에도 자꾸만 그에게 마음이 가는 자기 자신이 싫기도 했기 때문이다.

 “넌 어릴 때도 네 멋대로였어. 이따위로 네 차에 탈 줄은 몰랐어. 너 그거 기억 나? 성인 되면 차부터 산다고 했던 말.”
 “…….”
 “이제야 네 차를 이렇게 타보네? 이딴 식으로 탈 줄은 몰랐어. 야, 옛날 생각난다? 너 열애설 났을 때, 그때 너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었다고 둘러대고 말았지. 나쁜 새끼. 내가 널 버릴 이유 충분했지?”
 “…….”
 “내가 이별 통보를 그딴 식으로 한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본데?”
 “…….”
 “너는 내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도 모르잖아.”

 아니, 다 알아.

 정국은 그 말도 차마 하지 못했다.

 “네가 지긋지긋했어. 누가 알아? 차에 여자만 태웠겠어? 남자도 태우고 또 누굴 더 태웠을지! 더러워서 못 견디겠더라. 연예계 더럽다던데. 그걸 내가 왜 견뎌야겠냐. 나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입 다물어.”
 “들어.”
 “박지민.”

 정국은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패악을 부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예전에 사랑했던 것까지 부정하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러는 걸까. 정국은 그런 지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불쌍했다.

 “인터넷에 보니까 너 말 많더라. 여자랑 살림 차렸다던데. 돈 많은 여사님이랑도 잔다던데? 오늘 너 보니까 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여.”
 “…입 다물어 제발 좀.”
 “너 많이 변했어. 전정국.”

 지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울음을 꾹 삼켰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변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 왜 정국에게 이렇게 억지스러운 떼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정국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러 접근했을까 봐? 그랬을까 봐 무서웠던 걸까. 정국을 버리고 상처 준 건 자기면서. 되레 상처 받는 건 싫어서.

 “내려.”

 거칠게 주차한 정국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고 지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지민이 그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나왔다. 정국이 완력으로 그를 세게 끌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민이 버티며 뿌리치려 애써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에게 단단하게 잡힌 손목이 아려올 지경이었다.

 “놔!”
 “…….”
 “놓으라고.”

 정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민은 그 좁은 박스 안에 올라타면서도 몸부림을 치며 정국을 밀어내려 애썼다. 지민이 손을 휘두르고 발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지만 가만히 맞아주면서도 그의 손목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씨발 새끼야, 놓으라고!”

 지민이 욕까지 해가며 반항하자 정국이 축축한 눈으로 지민을 한 번 노려보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땡-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틈새로 빠르게 지민의 손목을 끌고 나와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비밀번호를 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민은 그 순간에도 그에게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목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정국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지민을 잡고 침실로 끌고 갔다. 지민은 덜컥 겁이 났다.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리고 침실 문이 열리고 침대가 보이는 순간, 정국이 그의 손목을 힘없이 놔주었다.

 “봐.”

 깨끗하게 정리된 베개와 이불. 단출한 가구.

 “왜. 내가 뭔 짓이라도 할 줄 알았어?”

 정국이 눈가에 눈물을 잔뜩 달고서 지민을 향해 비웃으며 그랬다.

 “…….”

 그가 지민을 붙잡고 이번에는 다른 방의 문을 열었다. 그 다음은 드레스 룸, 그 다음은 욕실, 또 그 다음은 주방. 또 다른 방, 또 다른 방. 넓은 그의 아파트 구석구석을 끌고 다니며 지민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 작은 방 문까지 열렸다가 닫혔다. 지민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봐. 네가 아는 전정국은 똑같아.”

 정국이 아닌 누구의 흔적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아파트. 어디에나 묻어 있는 쓸쓸함. 아무리 화려하고 커다란 집이지만 숨길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 묻어 있는 분위기. 7년간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한 전정국이 자고, 깨고, 울고, 호흡했던 그런 집의 모습이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
 “똑같다고.”

 





(+) 길어지느라 17분 지각 죄송해요!!


QooQoo  | 1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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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와인  | 190203   
정국이가 계속 상처 받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ㅠㅠㅠ 아이고 ㅠㅠㅠㅠ 태형이도 지민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ㅠㅠㅠㅠ 랠리님 혹시 아시니요 저 랠리님덕분에 매주 토요일만 기다리는거 ㅠㅠㅠ 12화 읽으면서 울컥했어요 차라리 정국이가 변해서 덜 아파했으면 ㅠㅠㅠ
jimins2  | 19020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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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 1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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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won1119  | 19020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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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기는 똑같다고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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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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