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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17 랠리 씀

Frostland

돌연변이
17











 * 별첨: 16화 끝 부분 (미성년자 및 미가입자를 위한)



 “미안해요.”

 뒤늦게 밀려오는 미안한 감정에 나는 벌게진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붙잡은 채로 내게로 끌어올렸다. 그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내 몸을 끌어안는다.

 “정국아. 내가 널 진짜 사랑하나 보다.”
 “…….”
 “하나도 안 더러운 거 있지.”

 그가 내 입술에 쪽쪽 뽀뽀를 하며 감격스러운 말을 한다.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숨을 고르며 그의 콧등에 입을 맞춘다.

 “네가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안 그래요.”

 나는 그의 얼굴에 묻어 있을 내 흔적 위에 꼼꼼하게 입을 맞추다가 탱탱하게 부어오른 그의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형이 고개를 뒤로 빼며 킥킥 웃는다.

 “야, 네꺼 빨았는데 키스하고 싶냐.”

 그의 목덜미를 단단하게 붙들고 고집스럽게 혀를 섞었다. 우리는 장난을 멈추고 끈적한 키스를 이어간다. 다시 처음인 것처럼. 어느덧 형의 속옷은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마른 등과 허리를 손끝으로 쓸어 만져준다. 잠시 뒤 그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아다가 자신의 속옷 밴드 안쪽으로 가지고 간다. 혓바닥을 못살게 굴던 짓을 잠시 멈추고 눈동자를 그에게로 맞춘다.

 “만져도 돼요?”

 그가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조금만 만질게요.”

 나는 그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그의 엉덩이 골부터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따뜻한 손바닥을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 액체로 흠뻑 젖어 있는 둔부 살을 조용히 주무른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생경한 촉감의 액체가 느껴진다. 미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점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살결 위를 적시고 있는 것이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듯 조심스럽게, 천천히, 매만져준다.

 형은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로 아기처럼 내 골반에 다리를 동그랗게 둘러 감고 매달렸다. 비비적거리는지 그의 날숨이 목덜미에서 느껴진다. 킁킁, 강아지처럼 내 귀 뒤편의 페로몬을 맡으면 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왈칵 흘러내린 체액이 내 손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런 신비로운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겪는다. 축축하게 젖은 손은 다시 그의 피부 위에 문지르고, 또다시 내 페로몬에 반응하는 그의 몸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주고.

 “정국아… 네가 알파라서 다행이야.”
 “형이 오메가라서 다행이에요.”

 새벽이 가도록 우리의 몸이 이렇다고. 알파와 오메가의 반응이 이런 거라고.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게 이런 거라고.



 오늘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간 밤이었으며,

 “내 남자친구.”

 당신이 나를 새로운 존재로 불러준 날이기도 했다.





 56. 돌연변이의 삶



 위잉. 위잉.

 베개 밑에서부터 휴대폰의 진동이 끈질기게 울려댄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박지민의 몸을 더 꽉 부둥켜안는다. 내 품 안에서 그의 뼈가 바스러질 것만 같다. 우리의 벗은 아랫도리는 이불 안에서 엉겨 붙어 있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아 내게 압사당할 정도로 눌려 있는 형은 손목만 간신히 돌려가며 성난 내 아래를 계속해서 달래준다. 몇 시간이 흘러도 내 것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트 위에 겹겹이 깔아 놓은 수건은 누구의 체액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어 있다.  

 세 번째 러트 사이클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프리 러트를 겪을 때면 그게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 시기가 지나 진짜로 러트 사이클이 몰아치면 차라리 프리 러트가 좋았다며 부들부들 떨게 되니까. 러트가 온 지 벌써 사흘이 됐다. 온종일 녹음실과 연습실을 종횡하다가 저녁이 되어 집에 도착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박지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평소보다 강한 페로몬이 그를 쇼크로 몰고 갈까 봐 걱정됐고, 무작정 형의 몸에 내 성기를 쑤셔 넣는 짓거리를 해버릴 것 같아서였다. 남자끼리 삽입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러트의 충동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내가 과연 그런 걸 따져볼 수나 있을까 싶다.

 ‘야, 당장 문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

 내가 문을 열지 않자 형이 정색을 하며 문밖에서 그랬다. 그 목소리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아서 졸아붙었다. 좀처럼 화내지 않는 박지민이 내 방 앞에 서서 그러고 있으니 형들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지나가는 소리로 문을 향해 몇 마디씩 내뱉었다. 정국아, 얼른 여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면서. 한숨이 나왔다. 형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왜 필사적으로 박지민을 피하고 있는지.

 결국 박지민의 승리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손에는 쇼핑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수건 몇 장과 갈아입을 속옷, 바지. 마치 내 페로몬에 젖어갈 자신을 대비하듯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곁을 지키고 싶은 모양이었는지.

 “전화… 왜 안 받아.”
 “안 받아도 돼요.”

 나는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끈질기게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건 오메가 남자다. 나와 사이클이 같다고 했으니 그에게도 히트가 온 것이다. 그러니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바보 같은 짓이겠지만 그냥 한 번 참아보고 싶었다. 박지민의 남자친구가 된 내가 다른 오메가와 자야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알파의 페로몬이 너무 강하면 오메가에게 쇼크가 와서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페로몬 분출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러트 중에 페로몬이 쉽게 조절 됐다면 아마 돌연변이들은 돌연변이 취급을 받지 않았을 테지. 형은 내가 뿜어대는 체향으로 인해 몽롱해진 얼굴로 내 턱과 목덜미를 핥았다. 마치 불법 마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눈이 풀린 채로 침까지 흘려가며 나를 못 가져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참기가 힘겨워졌다.

 내 손은 그의 발가벗은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고, 손가락은 자꾸만 축축하고 은밀한 구멍을 침범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친다. 손가락을 넣을 것처럼 주위를 배회하면 형의 엉덩이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실낱같이 남은 이성이라는 놈이 내 멱살을 붙들고 정신 차리라며 깨워댄다. 우리는 서늘한 가을 날씨임에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이불 속에서 음란한 접촉을 계속 이어갔다.

 박지민의 손은 벌써 내가 사정하는 것을 다섯 번쯤 받아냈다. 계속해서 흔들어댔으니 팔이 아픈지 미간이 조금 구겨진다. 나는 그의 팔뚝을 손으로 꽉 쥔 채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소용없어.’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페로몬을 가진 오메가의 체내 점막에 사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가 턱에 힘을 주어 호두를 만들며 내 얼굴을 살펴본다. 땀에 젖은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다가 눈가에 입을 쪽쪽 맞춘다.

 “오메가 전화지?”
 “…….”
 “가봐. 나 괜찮아.”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주사 맞는 거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
 “그걸 섹스라고 의미부여하지 않겠다는 소리야.”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막상 내가 가고 나면 혼자 훌쩍일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네 증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걸 보는 내 기분은 어떨 것 같아. 정국아.”
 “참아볼게요.”
 “나 때문에 너 괴로워하는 거 더는 못 보겠어.”

 무작정 참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다가 내가 내 의지 밖으로 벗어나 무슨 미친 짓을 벌이게 될지 스스로도 모르니까.

 “우리 솔직해지기로 했잖아.”
 “네.”
 “네가 나 때문에 참아서 괴로워지면 나 죄책감 들어.”
 “지금 다른 남자랑 자고 오면, 나도 죄책감 들 거예요.”
 “그럼 나는 발현이 늦은 내 자신을 탓하겠지.”
 “나는 알파인 걸 탓하고….”
 “…….”
 “…….”

 다 의미 없이 원점이 된다는 소리다.



 결국 박지민에게 등 떠밀려 오메가 남자를 찾아오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히트 사이클이 온 남자는 자신의 방 안 가득 오메가 향을 채워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는 온통 환했다. 내가 쓰고 온 모자와 마스크가 무색해질 만큼. 나는 벽에 그대로 붙어 선 채로 체념한 얼굴로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놈이 의자에 발가벗은 채로 팔짱을 끼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아이돌 씨, 이러기야?”
 “그렇게 부르지 마.”
 “내가 꼭 나쁜 놈이 된 것 같네.”

 녀석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와 귓가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거린다. 내가 고개를 비틀어 피하자 그가 내 양 얼굴을 붙잡은 채로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다. 전엔 몰랐는데 남자는 키와 체형이 박지민과 비슷했다. 그러나 쌍꺼풀이 화려하게 진 커다란 눈은 분명히 형과는 다르다. 허여멀건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대며 여기저기 구경하듯 살핀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밀어냈다.

 “뭐하는 짓이야.”
 “아이돌 씨는 이쁘고 순하게 생겨가지고 싸가지가 없는 것 같아.”
 “멋대로 얼굴 본 놈한테 잘해줄 필요는 없지.”

 나는 바지 버클을 내리며 딱딱하게 대답했다. 단단하게 부푼 채로 드로즈 안에 갇혀있던 것을 꺼내자 녀석이 피식 웃으며 내 것을 빨려는 모양새로 무릎을 꿇으려 했다. 나는 얼른 그의 상체를 붙잡고 끌어올렸다.

 “그런 거 필요 없어.”

 남자의 몸을 잡은 채로 힘을 주어 뒤로 돌려 벽으로 밀어붙였다. 아! 하며 허둥대는 남자의 손목을 움켜쥐어 결박하고는 그대로 사정없이 삽입했다. 이미 축축하게 열려 있는 공간에 밀어 넣는 이 행위는 섹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저 치료의 행위 하나일 뿐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언젠가 박지민이 완전한 오메가가 되는 날이 오면 원치 않는 사람과 이런 것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로했다.



 행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동물의 교미와 진배없이 하체를 맞대고 거칠게 움직이다가 억지로 사정감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에 도화선이 된 건 지금 내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방 안을 울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박지민의 손, 박지민의 부드러운 입술, 박지민의 축축한 피부. 내 페로몬에 넋이 나간 얼굴로 색색 숨을 쉬던 표정. 단지 그런 것들을 떠올렸을 뿐이다.

 사정을 끝내자마자 남자의 몸을 놓아주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들어 나와 남자의 체액이 묻어 있는 하체만 간단히 씻고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별안간 헛웃음이 터졌다. 섹스 같지도 않은 섹스였는데도 오메가의 몸 안에 해결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여태 나를 절절 끓게 만들었던 열이 내려갔다. 허무하다. 박지민이 아무리 만지고 달래주어도 죽지 않던 아래가 그제야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제 크기를 찾았다. 러트를 참는 사흘 내내 피가 계속 쏠려 있어선지 이제와 아릿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체 이런 더럽게 짓궂은 유전자는 왜 생겨난 걸까. 인간의 신체 안의 모든 것은 모두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바이러스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는 어떤 쓸모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으로선 전정국과 박지민을 하나로 엮기 위해 생긴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 말고는 듣고 싶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고집스럽게 명줄대로 살아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으니까.

 “왜 벌써 씻어?”
 “갈 거니까.”
 “한 번 더 하고 갈래?”
 “아니.”

 욕실 밖으로 나오자 녀석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초를 깊게 빨아들여 연기를 후욱 내뿜는 얼굴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속옷을 주웠다. 그러자 녀석이 발을 뻗어 발가락 끝으로 내 속옷을 꽉 붙잡고는 놔주지 않는 장난을 친다.

 “진짜 한 번만 하고 간다고?”
 “야, 장난 칠 기분 아니야.”
 “야 아니고 최영진. 그리고 반말하지 마. 너보다 네 살 많아.”

 벌써 내 프로필까지 검색해본 모양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속옷을 휙 빼앗았다. 내가 다리를 끼워 넣자 최영진이 페로몬을 열며 나를 슬슬 자극한다. 그러나 그에 응해줄 마음은 전혀 없다. 나는 바지를 갖춰 입으며 눈을 치켜 떠 녀석을 노려봤다. 내가 여기서 같이 페로몬을 열어서 사족을 못 쓰게끔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버리고 나가버리면 괴로운 건 분명히 오메가다. 그렇기에 알파는 절대적으로 오메가의 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성적인 자극에 더 약한 것 또한 오메가이며, 그렇기에 오메가는 알파에게 매달리는 존재인 것이다. 녀석도 그걸 잘 알기에 내 눈을 보더니 담배를 비벼 끄며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너 왜 이렇게 예민해? 꼭 내가 못할 짓 한 사람처럼.”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얼굴 본 건 미안한데,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이 순간에도 어서 박지민에게 달려갈 생각을 한다.

 “새벽에 전화할 때는 그렇게 딴 사람 같더니.”
 “…….”
 “전에 네가 전화로 물었던 오메가,”
 “알 것 없어.”
 “뭐?”
 “너한테 말해줄 생각도 없고.”

 최영진이 내 말을 듣더니 담배 하나를 더 꺼내 물고는 치익- 라이터를 그어 불을 붙인다. 매캐한 연기가 방 안에 퍼진다. 나는 손등으로 코를 슥 문질렀다. 최영진이 앉아 있는 의자 등받이에 내 아우터가 걸려 있다. 그걸 가지러 몇 걸음을 떼자 녀석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온다.

 “대충 이유가 짐작은 가네.”

 또다시 내 아우터 한쪽을 붙잡은 채로 놓지 않으며 괜한 기 싸움을 벌인다. 힘을 주어 빼앗으려다가 최영진에게 확실하게 해야 할 말은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녀석을 내려다본다.

 “네가 짐작하는 이유가 뭔데?”
 “무식하게 사흘이나 러트를 참는 알파라…. 그 오메가 때문이겠지.”
 “눈치 빠르네. 그러니까 이렇게 만나는 것도 언제까지일지 예상 되겠지.”
 “사랑하는 베타가 오메가가 되었어요. 아아, 대체 페로몬이 언제 나올까요. 언제 섹스를 할 수 있을까요…. 푸하하. 커뮤니티 고민 상담에 올려봐. 아니면 썰 방에 써보던가.”
 “…….”
 “어려서 그런가. 아이돌 씨, 사랑타령하면 밥 나오니?”

 최영진이 이죽거리며 고개를 과장해서 갸우뚱거린다. 빈정이 상해서 녀석이 붙들고 있는 내 옷을 탁 빼앗았다. 누군가에게 내 사랑이 비웃음거리가 된 건 처음이었다. 속에서 천천히 열이 끓기 시작한다. 반박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도통 정리되는 말은 없다.

 “그래 넌… 죽을 때까지 알파나 찾아다니며 살아 그럼.”

 그게 지금 생각나는 최고의 저주였다.

 최영진의 표정이 묘하게 굳는 것이 보인다. 나는 겉옷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썼다.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한숨이 터졌다. 불이 꺼진 현관에서 신발을 꿰어 신었다. 내가 그럴 때까지 최영진은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 연기나 뿜어댔다. 그리고 내가 몸을 돌려 현관 락을 푸는 순간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내일도 올 거지?”

 후우, 하고 기다란 연기를 뱉으며 싱긋 웃는다.

 “아니. 사흘도 참았는데, 앞으로 사흘도 참아보지 뭐.”

 내 대답에 최영진이 눈꼬리를 휘어가며 킥킥 웃는다. 녀석의 웃음을 무시하며 꽉 닫힌 문을 열었다. 담배 냄새에 찌들었던 공기가 바깥 공기와 만나며 숨이 탁 트인다.

 “애기야, 다음 사이클 때 봐.”

 쾅 닫힌 현관문이 웃음기 가득한 최영진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나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 문에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앉았다. 박지민을 두고 꺼림칙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이 싫었으나, 한편으로는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 넌… 죽을 때까지 알파나 찾아다니며 살아 그럼.’

 조금 전 최영진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 사랑을 비웃은 그에게 뭐라고 쏘아주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오메가를 비하하는 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건 곧 나에 대한 비하이기도 하고, 박지민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틀린 말도 아니다. 돌연변이는 결국 죽을 때까지 상대를 찾으며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있더라도, 없더라도, 모종의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왜 하필 이 순간 율, 그 아이가 생각나는 건지.

 ‘그 아저씨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눈이 돌아 있더라. 역겹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도 내 몸은 반응하고 있었어.’
 ‘있잖아 잭, 우리가 그렇게 더러운 걸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57. Run, Run, Run, 난 멈출 수가 없어.



 다음 앨범을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성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19.9세. 형들은 가끔 상의를 벗고 돌아다니는 나를 보며 혀를 차곤 했는데, 주로 그들이 하는 말은 살면서 나 같은 미성년자는 처음 본다는 류였다.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찍 성장해버린 데에는 돌연변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대외적으로는 발육이 뛰어나고 생각이 깊으나 애 같은 모습도 적당히 가지고 있는 막내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열여덟, 체향 분비가 심해지면서 사이클이 언제 올까 전전긍긍할 때, 내가 성인이라면 언제 러트가 오든 자연스럽게 방법을 찾아 해결할 수 있을까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어리석고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 내가 아이돌을 하고 있는 한 미성년자든 성인이든, 돈이 많든 적든, 러트 사이클의 불안 속에서 늘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고작 1년 사이에 나는 마치 세상을 몇 년은 살아본 사람처럼 확 늙어버린 느낌이 든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변수는 가수가 된 것이었다. 숫기가 없어서 그저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노래 흥얼거리기나 좋아했던 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이 되었다는 건 가족과 친척들이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칠 만큼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춤을 추다가 카메라를 향해 피식 웃는 여유를 부린다거나, 수만 명이 보는 트위터에 웃긴 영상을 올리는 뻔뻔한 아이돌이 되었다니 말이다.

 두 번째 변수는 알파가 된 것이다. 알파가 되었음에도 죽지 않고 버틴 건 2.5 정도의 변수라고 해두겠다. 알파 판정을 받고 옥상에 올라가 당장 투신하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 변수를 지켜내기 위해서였고, 결국 알파 전정국의 삶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의 3배수 정도는 더 살게 될 텐데, 나는 이 끔찍한 알파라는 정체로서 몇 명의 오메가를 거치게 될까. 가끔은 홀로 생각에 잠기다가 무서운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이클마다 오메가의 체내에 사정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내 혈육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 돌연변이 커뮤니티에서 오메가의 임신과 관련 된 글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에 내게도 그런 잡념이 파고 들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털끝까지 바짝 서곤 했다.

 세 번째 변수는 박지민을 만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박지민이 오메가인 것이다. 나는 감히 그가 나의 마지막 오메가이기를 바랐다. 내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알파가 되기를 바랐다. 욕심인 걸까. 돌연변이에게는 어두운 미래만 가득하다면, 우리에게만큼은 예외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건 점점 더 박지민을 향한 집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만약 박지민이 없었다면 나는 끔찍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버티다 못해 한계에 부딪쳐 조용히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나를 구원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박지민에게 온 신경을 쏟아 부을 이유도, 자격도 충분하다.

 “옷 좀 갈아입어요.”
 “왜?”
 “겨울에 뭔 민소매야.”

 발현 후 체온이 높아져서 쉽게 땀을 흘리는 박지민은, 안무 연습 내내 흐르는 땀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코 민소매를 입고 춤을 췄다. 하필이면 재킷을 벗어젖히는 Run 안무 때문에 내 신경은 바짝 곤두섰다. 활동을 코앞에 두고 머리카락을 주황색으로 물들인 그는, 조금 더 가늘어진 몸 선과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분위기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안무 선생님은 그런 박지민에게 ‘꽃이 피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심히 거슬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도 모르게 선생님을 째려보기까지 했다.

 피다니, 뭐가 펴. 참 나.

 “더운데 왜애.”
 “아, 겨드랑이 제모 했어요?”
 “엉.”
 “왜?”
 “하면 안 되냐.”
 “누구 보여줄라고?”

 의미 없는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태형이 형이 옆을 지나가면서 입술을 일자로 찢는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떨떠름한 이모지 같은 표정이다. 왜요, 하는 표정으로 째려보자 태형이 형이 큰 눈을 키우며 한 마디를 보탠다.

 “내가 약간 겨드랑이를 제모 했다고 화내는 사람 처음 봤어.”
 “아, 화낸 게 아니고요.”
 “정국이가 좀 뭐랄까…”
 “뭐요.”

 태형이 형이 흥얼거리며 박지민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그러면서 내 표정을 얄밉게 살핀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그들을 내려다봤다.

 “내가 쫌 느낀 건데 말야. 정국이가 자꾸 방문을 잠그더라고.”
 “…내가 언제요?”
 “그리고 자꾸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리지 뭐야.”
 “…….”
 “약간 새벽에 모닝똥 타임인가?”

 샐샐 웃으며 하는 태형이 형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박지민이 팔꿈치로 그의 가슴팍을 퍽 때린다. 태형이 형이 억, 소리를 내며 아픈 척하더니 박지민의 팔을 들어 대뜸 민 겨드랑이를 내게 보여주며 그런다.

 “지민이가 겨드랑이 제모하면서 그랬어. 누가 여기에 뽀뽀하는 걸 좋아한다고. 내가 진짜 너네 때문에 못살겠거든. 동생이 친구 겨드랑이에 뽀뽀하는 상상까지 해야겠어? 그러니까 인제 제발, 겨드랑이 소리 안 들리게 좀 해줄래? 어제도 너네끼리 겨드랑이에 뽀뽀하는 꿈 꿨어.”

 …….

 태형이 형이 제법 길게 말을 랩처럼 뱉어내고 휙 돌아서 연습실을 나갔다. 여기는 연습실 구석이었고, 저 멀리 쉬고 있던 형들은 뭔 일인가 잠시 눈길을 주다가 금세 관심을 거뒀다. 박지민은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는 씩씩거리며 나를 째려본다. 나는 뭐요, 하며 입모양으로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친구라고 한 말 취소할까.”

 그러더니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큰일 날 소릴 한 것 같아서 그래.”

 나는 얼른 그를 뒤에서 결박하듯 끌어안고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러면서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큰일 날 소리 맞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다 내 꺼거든. 형은 나한테 저당 잡혔어.

 내 인생의 변수를 세 번째로 끝내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의 마지막이어야 한다.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달릴 것이며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으니까. 누가 내 사랑을 의심하고 비웃더라도, 그렇게 할 거라고 마음먹었으니까. 이제 와서 도망갈 생각이라면 소용없다. 19.9세 전정국이 20세가 되는 날이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30세의 전정국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큰 사랑을 당신에게 줄 테니까.




Navy61  | 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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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108   
정국이의 왜요 뭐요 이 대사는 자꾸 음성지원까지 돼서 읽을때마다 너무 웃겨요 ㅎㅎㅎㅎㅎㅎㅎ
jmjmogog7  | 19110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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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엠젱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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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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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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