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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25 랠리 씀

Olafur Arnalds - This Place Was A Shelter

돌연변이
25













 76. 엉망진창



 사람의 본능은 똑똑하다. 때때로 자신 앞에 닥칠 달갑지 않은 상황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마법을 부리곤 하니까. 나는 마주보고 서 있는 이 남자를 보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겠다. 내 본능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 굉장히 기분 더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서 이겨보라고.

 “이게 누구야.”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반가운 색을 띠는 목소리를 낸다. 저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최영진의 동생. 그 남자가 굳은 채로 서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고 있던 까만 우비를 천천히 벗는다. 똑같은 우비를 입고 있는 수많은 엑스트라의 틈에 섞여서 처음부터 나를 발견했을 남자. 혹시 내 곁에 있는 박지민의 체향까지 감지했을까?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내가 이렇게 서늘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내 말에 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기분 나쁘게 웃는다. 넓은 촬영장 안에 드문드문 모여서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스태프들이 보인다. 보는 눈이 많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폭력적인 상황에 치달을 수도 있다.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자리 옮겨.”
 “어린놈이, 건방져가지고.”

 놈이 웃는다. 이를 악 물고 돌아서서 걸었다. 내 뒤를 따라오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나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 밖으로 벗어나 한적한 뒤뜰로 걸어갔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따라오던 녀석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내 신경을 긁는 말을 걸어왔다.

 “춤추는 거 보니까 기운 넘치던데.”
 “…….”
 “최영진 맛있게 먹었어?”

 역겨워서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나는 놈을 돌아보며 표정을 구겼다.
  
 “형 가지고 더러운 말 하는 걸 보니 수준 알 만해.”

 어차피 이런 말이 놈에게 별로 타격이 없을 거라는 건 안다. 러트의 발정을 이기지 못해 자기 형을 때리고 우악스럽게 다리를 벌려 범하려던 놈이었으니까. 아마 내가 사라진 후 멋대로 최영진을 굴렸겠지. 어쩌면 러트와 상관없이 늘 그런 짓을 해왔을 수도 있다. 돌연변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적어도 나는… 절대로 그런 알파가 되고 싶지 않아서 처절하게 버텨왔으니까.

 “더러운 말?”

 놈이 코웃음을 쳤다.

 “고상한 척을 해보시겠다?”
 “뭐?”
 “잘나가는 새끼들은 하나같이 똑같네.”

 놈에게서 나를 향한 적의가 느껴진다. 나와 주먹다툼을 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이곳까지 찾아온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벌써 세 달이 지난 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지? 내가 자기 형의 집에 들락거린 알파라서? 아니면 오히려 반대일까. 최영진의 사이클을 모르는 체하고 관계를 끊어버려서?

 “꼭 깨끗한 척을 한단 말이지.”
 “당신이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태연한 얼굴로 나를 보며 눈썹을 움직인다. 나는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돌연변이라는 이유로 엮일 수밖에 없었던 이 형제로 인해 나와 박지민의 삶이 망가져버리는, 그런 끔찍한 상황을.

 “모르겠으면 최영진한테 물어봐.”
 “…하.”

 역시 최영진 때문인가. 내 정체를 아는 건 최영진뿐이다. 지지난 러트 때 이 남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나저나 한 그룹에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있네?”

 불안한 예감이 맞아가는 건가 보다. 놈이 내 어깨 너머를 보며 걸어왔던 길을 향해 턱짓하며 그랬다. 박지민을 가리키는 행동이다. 역시 녀석은 박지민이 오메가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절대로 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촬영 내내 박지민의 달큼한 향이 풀풀 풍겼지만, 엑스트라들과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았으니 몰랐을 수도 있을 거라고 꾸역꾸역 생각했다.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고민했다. 형이 연관되는 일이라면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어떤 놈이든 간에 자존심 따위 다 내버릴 수도 있다. 무릎을 꿇고 발밑을 기어보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박지민만 무사할 수 있다면.

 “운도 좋네.”
 “…….”
 “뭐가 아쉬워서 최영진이랑 씹질을 했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놈이 뭐라고 지껄이며 나를 깔아뭉개고 능멸하든 참을 것이다. 단, 그 대상이 달라진다면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아까 걔도,”
 “…….”
 “이거 되게 잘하게 생겼던데. 안 그래?”

 퍽.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을 세게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큰 덩치가 바닥으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내 자존심을 다 내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그건 어디까지나 놈의 상대가 나일 때에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녀석을 때린 이유는 하나다. 놈이 허공에다가 손을 뻗고는 골반을 잡고 허리를 움직이며 삽입하는 시늉을 했기 때문이다. 그 더러운 움직임과 말이 박지민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가 감히.

 “와… 아파라. 유명하신 분이 사람 쳐도 돼? 대문짝만하게 실리겠는데?”
 “어디 더 지껄여 봐.”

 입 안이 터졌는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퉤 뱉는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놈의 위에 올라타서 멱살을 잡았다. 한 대 친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긴 촬영 내내 박지민이 오메가인 걸 알고 그런 시선으로 봤다는 것이 못 견디게 분하다. 네가 뭔데. 네까짓 게 뭔데.

 “설마 애인?”
 “네깟 놈이 입에 올릴 사람 아냐.”
 “큭, 웃기지도 않네. 애인이라고?”
 “한 마디만 더 해봐.”
 “그래. 향도 맛 가겠던데, 러트 풀 구멍은 많을수록 좋…”

 퍽. 퍽. 퍽. 나는 놈의 얼굴을 연속해서 내려쳤다. 피가 거꾸로 역류하면서 뇌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눈앞이 까맣게 물들고, 지금 당장 박지민을 모욕하는 이 자식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먹이 아파올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때리자 놈의 얼굴이 그새 만신창이가 됐다. 돌아간 고개에서 피가 터져서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놈이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목을 꽉 쥐며 짓눌렀다.

 “크윽…!”

 마치 러트가 온 것처럼 온몸의 신경세포가 날뛴다. 목울대를 끊어놓을 작정으로 악력을 더하자 숨이 막히는지 발버둥 치며 얼굴에 피가 새빨갛게 쏠린다. 그걸 내려다보면서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짜 죽일까. 내 안에는 이성이 남아있지 않다. 최영진이 내 얼굴을 알게 됐을 때부터 차근차근 쌓였던 불안함이 한 순간에 증폭됐다. 그 버튼이 눌린 건 내가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가수 전정국의 정체를 들키는 것. 그리고 새로이 추가된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살아가는 이유, 박지민.  

 “정국아!”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이 다급하게 달려와 내 팔을 붙잡는다. 눈이 돌아버린 나를 떼어내려고 하지만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지금 당장 이 자식을 죽여도 시원치 않을 기분이다.

 같은 돌연변이끼리 왜 서로를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하는 거지? 아마 너 같은 놈들이 많아서 우리가 이렇게 좆같은 취급을 받으며 사는 거 아닐까.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잖아. 너같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새끼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이상한 편견을 갖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숨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괴로운 거고, 그래서 율이 세상을 등진 거고, 그래서 내가… 내 어린 시절이…….

 “전정국…!”

 형이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매달린다.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서운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귓가에 물기 어린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손에 힘이 풀렸다.

 “크헉… 헉… 컥.”

 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순식간에 돌아온 이성이 머릿속을 차분하게 정리해간다. 박지민이 내 머리통을 세게 끌어안고 있다가 얼굴을 살핀다. 씩씩 거리며 거칠게 호흡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널브러져 있는 녀석의 상태를 확인한다. 입가가 터지고 한쪽 뺨이 부어오른 것을 발견하고 겁을 먹었는지 놀란 얼굴을 한다. 아마 형은 뒷감당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헉… 헉. 뭐하는 새끼인가 했더니, 이렇게까지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인 줄은 몰랐네. 네 애인은 어디까지 알아?”
 “입 다물어.”
 “아, 모르나? 그러니까 최영진도 먹고 버렸겠지?”
 “하…. 개소리하면서 나랑 네 형이랑 엮지 마.”

 나는 다시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박지민이 있는 데서 이상한 이야길 하는 놈의 주둥이를 멈추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놈이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비죽 웃는다.

 “난 너 같은 새끼들을 보면 화가 나.”

 놈이 바닥에 피 섞인 가래침을 다시 한 번 뱉었다.

 “꼭 가진 거 많은 놈들한테 운까지 따르거든? 뒤에서 더러운 짓은 다 하면서 겉으로 안 그런 척은 다하는데 들키질 않아. 재수 없게.”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한테 수준 알 만하다고 했나? 내가 보기엔 네 수준도 바닥인데. 베타한테도 몸 팔아먹는 오메가 새끼랑 붙어먹을 땐 그저 좋았지?”

 환장하겠다. 나는 지금 놈이 무슨 소릴 지껄이는지 통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놈의 멱살을 잡은 손을 고쳐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엉망이 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내 손을 거칠게 떼어내곤 가슴팍을 세게 밀친다.

 “최영진한테 얼마 줬어?”
 “…뭐?”
 “씨발 얼마를 줬든,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차피 너도 똑같은 돌연변이 주제에 급 나누면서 꼴값 떨지 마. 웃기지도 않으니까.”

 머리가 아프다. 무슨 말을 들었길래 저리도 혼자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놈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 속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돌연변이는 다 똑같다는 말. 질리게 생각해봤던 문장. 우리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었던 말.

 옆에서 듣고 있던 박지민이 손을 덜덜 떤다. 정리가 되지 않는 말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놈이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떨어진 까만 우비를 주워들었다. 그리곤 내게 맞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눈을 부라린다.

 “아, 하루 종일 좆뱅이 친 일당이 아까워서 이거 한 대 칠 수도 없고.”
 “…….”
 “여기서 널 때리면 내가 뮤비 촬영장에 나타난 희대의 미친놈으로 몰릴 게 뻔하지? 그냥 피해자가 되고 말지.”

 그때 멀리서 석진 형과 남준 형이 달려왔다. 아마 박지민을 챙겨달라는 내 부탁 때문에 그를 찾다가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형들이 엉망이 된 녀석의 얼굴과 싸늘한 분위기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방탄소년단 전정국, 기다리고 있으라고.”
 “저기 잠시만요.”

 돌아서 가려는 놈을 석진 형이 다급히 붙잡았다. 그러자 녀석이 팔을 휘두르며 뿌리쳤다. 그러나 석진 형이 다시 붙잡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보냈다가는 뭔가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나는 뒤늦게 내 충동적인 행동에 따를 일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언제라도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똑같이 할 것이다.

 “잠시 저희랑 얘기 좀 하시죠.”
 “할 말 없습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내 세상은 박지민이 전부이고, 박지민에겐 내가 전부이므로.





 77. 실타래



 남은 촬영을 겨우 마무리 지었다. 형들은 최재영을 붙잡고 늘어져서 결국 매니저 형들에게로 넘겼다. 그 과정에서 혹시 회사에까지 내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이 전달될까봐 두려웠지만, 그런 내 걱정을 알아챈 듯 남준 형이 어깨를 쥐며 나지막이 말해주었다. 그럴 일은 없게 할 거라고. 하지만 일을 해결하는 데에 필요하다면 회사에 알려야 할 수도 있다. 이제 나는 데뷔를 앞둔 연습생도 아니고, 햇병아리 신인가수도 아니다. 내가 알파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차라리 내 필요에 따라 적당하게 내 주변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뒷마무리를 형들에게 맡기고, 나는 촬영을 마치자마자 무작정 최영진의 집으로 향했다. 그 불청객이 내 앞에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게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최영진밖에 없다. 밤길을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채로 속도를 내 녀석의 집 앞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후우,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또 아까 같은 흥분 상태다. 이러다가는 이성을 잃고 또다시 사고를 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폰을 열어 최영진의 번호를 차단 해제하고, 예전에 그가 보내놓았던 현관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나는 그걸 붙들고 무작정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잠금장치에 손바닥을 올리고 번호를 누르려다가 관두고,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찾아야 한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진정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몇 번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다. 지금 시간은 자정에 가깝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기로 했다. 여섯 자리의 번호를 입력하자 잠금장치가 쉽게 풀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최영진의 등짝이었다.

 “일어나.”

 나는 무작정 불을 켜고 침대 곁으로 걸어가 최영진을 깨웠다. 그러자 웅크리고 잠들어 있던 그가 부스스하게 눈을 뜨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세 달 사이 살이 많이 빠져서 볼품없이 말라 있는 얼굴. 쌍꺼풀이 배로 커진 눈이 껌뻑이더니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갑자기 뭐야…?”
 “확인할 게 있어서 왔어.”
 “이 시간에?”

 최영진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내 모습을 아래위로 훑으며 살핀다. 몇 번 봤을 때와는 달리 촬영을 위해 헤어 메이크업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본 게 처음이라 신기했는지 피식 웃으면서 여유 있는 말투로 말을 잇는다.

 “이렇게 보니 아이돌 맞긴 맞네.”

 나는 최영진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자칫하면 격앙된 감정으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야밤에 무슨 일이야. 연락도 차단하더니.”
 “내가 차단해서 열 받았어?”
 “뭐, 기분이 좋진 않았지. 일방적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협박이라도 하려고 했나?”

 내 말에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뭐 잘못 처먹었니? 아이돌 씨. 나도 너 이제 필요 없어.”
 “기껏 도와줬더니, 아주 정도를 모르는구나.”

 아무리 차분하게 말하려고 해도 도저히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최영진의 멱살을 붙들고 싶다. 네 동생에게 내 정체를 말한 이유가 뭐냐고. 대체 내게 바라는 게 뭐냐고.

 “무슨 소리야.”
 “동생한테 당하는 거 보고 동정했던 내가 바보지.”
 “알아듣게 말해. 너 상대할 기운 없거든?”

 최영진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며 몸을 일으켜 생수를 마신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그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 벽으로 밀쳤다. 턱, 소리가 나며 생수병이 떨어져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젖었다. 벽에 등을 부딪친 최영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고 바짝 밀어붙이며 으르렁거렸다. 최영진이 낮게 탄식을 뱉는다.

 “우리한테 해가 되는 거,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못할 것 같아? 이런 일 생길까 봐 얼굴 보이는 일 없게 하려고 한 거였어. 이런 더러운 것들에 말릴까 봐.”
 “야, 넌 네 얼굴 본 게 아직도 그렇게 억울해?”
 “잘 들어. 너희한테 휘둘릴 생각 없어. 우습게보지 마.”
 “제멋대로 들어와 놓고 지금 뭐라는 거야. 이상한 소리 할 거면 꺼져.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최영진이 내게서 벗어나려고 어깨를 비틀었다. 그러나 나는 놓아주지 않고 더 세게 어깨를 쥐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픈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넌 처음 볼 때부터 느꼈지만 바닥이네.”
 “하, 그래. 나 바닥이야. 나도 알아. 그게 뭐?”
 “대체 얼마나 더 바닥일지 궁금해진다.”
 “곱게 치장하고 아이돌 하시느라 모를 수도 있겠네. 네가 전에 그랬지? 죽을 때까지 알파나 찾아다니며 살라고.”
 “…….”
 “종로 이태원 돌아다니면서 아무나하고 섹스하고, 그런 게 돌연변인데 뭐. 아 유명한 분이라 그런 건 못해봤겠구나?”

 녀석이 웃는 낯으로 그랬다. 지 동생이랑 말하는 게 비슷한 꼴을 보니 토악질이 나오려고 한다. 그놈의 유명인 타령. 돌연변이는 다 똑같다는 타령. 대체 이 형제는 왜 이러는 거지. 나랑은 무슨 악연이길래.

 “…나한테 왜 이래?”
 “너야말로 갑자기 찾아와서 왜 지랄이야? 꺼져. 힘들다.”
 “애초에 네가 만든 일이잖아.”
 “하, 아니…. 그니까 대체 뭘 어쨌다는 건데. 브로커가 그러더라. 보통 얼굴 보이기 싫어하는 놈들은 잘나가는 애들이래. 그래서 얼마나 잘난 놈인가 궁금해서 얼굴 좀 봤다. 그게 뭐. 그게 그렇게 싫었어? 염병 떨고 있어. 씨발.”

 최영진이 제 어깨를 붙잡은 내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내 가슴팍을 밀었다. 하지만 나는 밀려나지 않고 그를 다시 벽으로 바짝 밀어 눌렀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괴로워한다. 숨을 밭게 내쉬며 눈을 느리게 껌뻑이는 꼴이 꼭 병자의 몰골 같다.

 “너 베타한테도 몸 판다며.”
 “…뭐?”
 “네 동생이 나 찾아와서 그러더라.”

 그러자 최영진이 표정을 굳힌다.

 “내가 너를 먹고 버렸대. 너 같은 놈이랑 섹스 해놓고 깨끗한 척 한다면서 나를 위선자처럼 몰더라. 어이없지.”
 “…….”
 “내가 널 먹고 버렸냐? 아니면 내가 너한테 돈을 주고 잤어? 네 동생이 아주 화가 났나 본데. 대체 형한테 그 짓거리하는 새끼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무슨 개소리를 어떻게 해댔길래 그 새끼가 촬영장까지 와서 깽판을 치게 만들어.”

 최영진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러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재영이가… 촬영장에 찾아갔다고?”

 최영진이 마치 모르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반응한다. 나는 그걸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저건 연기일까. 진짜일까.

 “몰랐다는 말 하지 마. 분명 그때 네 동생은 나를 못 알아봤어. 나를 알아봤으면 진작 떠벌린다고 협박했겠지. 오늘처럼.”
 “하…….”
 “네 동생한테 그걸 말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내가 몰아붙이자 최영진이 손바닥에 제 이마를 묻으며 한숨을 내쉰다.

 “재영이는… 재영이는 지금 어디 있어?”
 “그걸 지금 나한테 물을 때야? 설명부터 해.”
 “하…. 말한 적 없어. 네가 누군지.”
 “나보고 믿으라고?”
 “믿기 싫으면 마.”
 “아니, 시발.”

 그 반응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가만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다 헤집어 놓고선.

 “대체 뭐라고 지껄였으면 네 동생이 그러냐고!!”

 나는 화가 나서 벽을 세게 쳤다. 마음 같아선 최영진을 때리고 싶었지만,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될 걸 알기에 꾹 참아야 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등의 뼈에 금이 간 듯, 윽 소리가 날 만큼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이를 악 물고 참으며 최영진을 노려본다. 아랫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그제야 그가 겁먹은 얼굴로 내 눈을 제대로 바라본다.

 “진짜야….”
 “…….”
 “말 안 했어. 네가 누군지.”
 “말이 안 되잖아.”
 “아….”

 최영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는다.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르륵 미끄러지며 웅크리고 앉더니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끙끙거린다. 나는 이를 악 문 채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개수작 부리지 마.”
 “하… 진짜로, 말, 안 했… 어.”
 “일어나. 말 안 끝났어.”
 “자, 잠깐만… 몸이 좀….”

 그가 배를 움켜쥐고는 몸을 바들바들 떤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래.”
 “병원….”
 “뭐?”
 “병원… 에….”

 금세 입술까지 하얗게 핏기가 가신 채로 쥐어짜듯 말한 최영진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려는 순간 손바닥으로 빠르게 받아낸다. 당황스러워서 정신이 반쯤 나간 그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내 그의 하의에서부터 축축한 것이 흐르는 걸 발견한다.

 최영진이 하혈을 하고 있었다.





 78. 오메가의 삶



 나는 내가 돌연변이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될까. 알파와 오메가는 베타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다. 그렇기에 돌연변이는 사회적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자그마한 부주의로도 존재가 발각 될 위험에 처한다. 남자 알파, 남자 오메가, 여자 알파, 여자 오메가. 성별에 따른 돌연변이의 분류 중에 누가 가장 비참한 존재냐고 줄을 세운다면, 많은 돌연변이들은 남자 오메가를 꼽는다. 실제로 돌연변이 커뮤니티에서도 종종 이런 투표들이 진행되고, 이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곤 했다.

 남자 오메가가 비참한 이유는 자신의 성 지향성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헤테로 성향의 남자 오메가라면 비참함의 끝을 달린다. 여자 알파를 찾는 것이 힘들기에 남자 알파를 만나는 경우가 다수이다.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동성과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세계를 거세게 뒤흔들게 된다.

 * 돌연변이 분포 : 여자 오메가(55%) - 남자 알파(38%) - 남자 오메가(5%) - 여자 알파(2%). 총 오메가 60%, 알파 40%.  

 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게 여자 알파다. 여자 알파는 러트 기간에만 남자와 같은 생식기가 생긴다. 그나마 헤테로 성향의 여자 알파를 찾는 헤테로 성향의 남자 오메가 수요가 많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상대를 찾아 성관계를 할 수 있다. 포지션만 바뀔 뿐, 상대가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 오메가가 성 지향성과 관계없이 비참한 진짜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임신’

 이 세상에 임신할 수 있는 남자는 오직 오메가뿐이다. 그렇기에 임신을 해서 배가 불러오는 순간부터 출산하는 날까지 자신이 오메가임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나가다가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심하면 더럽다고 폭행을 당하는 사건사고도 많이 있어왔다. 그만큼 인식이 좋지 않은 사회. 그렇기에 대부분의 남자 오메가는 임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 건지, 히트 사이클을 맞은 오메가와 러트 사이클을 맞은 알파가 관계를 맺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임신하게 된다. 남자의 몸이라 그런지 출산까지 안전하게 이어지는 확률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메가들은 피임약이나 사후피임약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급하게 최영진을 차에 싣고 AO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최영진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체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진작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실 임신을 하면 페로몬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혈을 한 것은 다행히 임신 초기의 부정출혈이라고 했다. 정신을 잃을 와중에도 혹시 유산을 했을까 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 우는 소리를 내던 최영진의 모습은 내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나는 그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내 아이는 아니지?

 그런 생각부터 든 내가 싫다. 수액을 맞으며 기절한 듯 잠에 빠져든 최영진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모르던 또 하나의 세계가 열렸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묻지 못했기에 병실을 떠나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아까까지 그에게 퍼부었던 말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직 해결 된 게 하나도 없다.



 [ 정국아, 늦어? ]
 [ 별일 없지? ]
 [ 걱정 돼. 보고 싶어. ]

 박지민의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나는 액정에 떠 있는 그의 이름을 보며 힘없이 미소 지었다.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내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평생 지키고 사랑해야 할 사람. 우리에게도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혹시 당신이 내 아이를 갖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 그게 당신을 기쁘게 할까, 슬프게 할까. 그 비참하다는 오메가의 인생을 나 때문에 앞당긴 당신을 위해,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나는 손톱만큼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근데… 이번만큼은 내 위로가 되어줘.

 딱 오늘만, 오늘만이야.  


 [ 너무 힘들어. 지민아. 집에 가면 안아줄래? ]

 






 
이지현  | 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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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앗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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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m  | 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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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리  | 19041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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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미니  | 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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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랭이  | 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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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 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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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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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  | 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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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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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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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엠젱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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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