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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26 上 랠리 씀

Olafur Arnalds - Reminiscence

돌연변이
26 上













 79. 각자의 사정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옅은 미소가 터졌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온종일 뮤비 촬영 후 피곤한 몸으로 나를 기다리다가 잠들었을 한 사람. 침대 위에서 베개도 베지 않은 채 엎드려서 잠든 모습이 귀여워서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얼른 욕실로 향했다. 온갖 어지러운 것들이 묻어 있는 내 몸을 어서 닦아내고 싶었다. 김이 풀풀 피어날 만큼 뜨거운 물로 단숨에 씻어 내린 후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형은 언제 깨어났는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새삼 병원에서 감아준 붕대를 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손등 뼈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고 했다. 이 정도 균열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왜 일어났어요.”
 “네가 안아달라며.”

 형이 나를 향해 팔을 벌린다. 나는 물기를 완전히 닦지도 못한 몸으로 박지민의 품을 향해 안겨들었다. 그가 내 몸을 끌어안고 침대에 몸을 눕히며 등을 천천히 만져준다. 그리곤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다.

 “정국이 오늘 수고 많았네. 힘들었지.”

 거짓말처럼 오늘 겪었던 모든 일들이 별것이 아닌 게 되는 기분이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위로해주니까. 언제나 내 옆에 있으니까.

 “형, 미안해.”
 “네가 뭐가.”
 “안 좋은 거 보게 해서.”
 “…….”
 “걱정 끼쳐서.”

 그는 대답 대신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낮게 웃는다. 혹시 앞으로도 울고 싶은 나날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박지민을 끌어안고 그가 내는 모든 소리를 들으면 다 괜찮아질 것 같다. 숨 쉬는 소리, 웃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도란도란 속삭여주는 소리. 당신의 모든 것이 내게 위로가 된다. 그 어떤 어지러운 감정들을 뭉쳐서 내게 던져 와도 다 받아낼 수 있다.

 사랑.
 이런 사랑을 하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걸까.

 

 ‘네 아이 아니야. 3개월 됐어.’

 정신을 차린 최영진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말은 우습게도 뱃속에 아이에 대해 확인하는 거였다. 3개월 전이라면 내가 두 형제를 봤던 사이클 시점이다. 나는 직감에 따라 동생의 아이냐고 물었고, 최영진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 순간 내 표정이 어땠었지. 동생의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한숨부터 터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내가 말했다고 생각해? 오다가다 만난 놈들 중에 자살해서 연락 끊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줄 모르지. 이 세계가 그래. 그걸 알면서 누구 목숨 줄 가지고 놀고 싶은 마음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재영이가 나 임신한 걸 알았어. 히트 올 때가 됐는데 안 와서 들킨 거야. 너무 당황해서… 만나던 알파의 아이를 가졌다고 둘러댔어. 딱 거기까지야. 근데 그때 집에 찾아온 게 너였으니까…. 그래도 재영이는 네가 누군지 몰랐어.’

 최영진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일당이 아까워서 때리지 못한다’던 그 놈의 말을 떠올렸다. 그놈이 촬영장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는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알아 본 건지, 단 하나도 제대로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 놈은 내가 제 형을 임신 시킨 알파라고 오해해 적대감을 가졌다는 것.

 혹시 이 형제가 하는 것도 사랑일까 궁금했다. 예전에 최영진은 내 사랑타령을 우스워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란, 박지민에게 받는 사랑과 박지민에게 주는 사랑의 형태뿐이다. 서로를 위해 어떤 것도 내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다. 나는 눈앞에 있는 박지민의 부드러운 입술을 적시며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운명처럼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하는 게 어쩌면 사치인 걸까? 소수의 삶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거냐고.

 ‘동생의 아이를 낳는다고 하니까 더러워?’
 ‘그보다는, 이해가 안 돼.’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어.’

 그 말을 하고 난 후 바로 든 생각이 있었다. ‘이해’에 대하여. 남자끼리 사랑하는 것도, 돌연변이인 것도,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이해를 한다는 말 자체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우리가 개좆같은 사이클이 터져서 짐승처럼 헐떡거리는 것도 베타들에겐 혐오스러운 일인 것처럼. 근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쓰레기는 아니잖아.’

 박지민의 티셔츠를 올려 향기가 나는 살갗에 입술을 댄다. 마른 옆구리부터 갈비뼈까지 가볍게 베어 무니 간지럽다고 움츠린다. 온몸 곳곳에 키스하는 이 행위는 그저 사랑의 한 표현일 뿐이다. 어떤 말로도 다 할 수 없기에 몸으로 충만하게 나타내려는 움직임. 이런 우리의 모습도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일일 것이다. 가슴 깊이 사랑하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더러운 것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

 ‘재영이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중1 때, 우리 엄마 장례식장에서였어.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내 아버지래. 그리고 한 살 어린 애가 나랑 피가 섞인 동생이래. 조금 지나서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오메가로 발현했어. 알고 보니 재영이도 알파였던 거야. 우리는 운이 좋은 줄 알았어. 형제인 것도 잊고.’

 촬영장에서 그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같은 그룹에 알파와 오메가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운이 좋다고 했다. 돌연변이의 세계에서는 가까운 상대를 만난다는 것이 운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게 아니라면 커뮤니티나 브로커를 통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비운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나는 뒤늦게 그 녀석의 말 하나하나를 되새겨 봤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억하심정을 드러낼 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나는 재영이가 너무 좋아서 촉진제까지 맞았어.’

 촉진제라는 말에 떠오른 건 박지민의 얼굴이었다. 오메가가 사랑하는 알파에게 할 수 있는 것 중 희생이란 표현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일 것이다. 인생을 앞당겨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최영진도 그런 사랑을 했던 것이다. 자신의 동생을 향해.

 ‘그리고 첫 히트가 온 날 재영이와 섹스를 하다가 부모님에게 들켰어. 두 분 다 충격을 받았겠지. 결국 그 끝은 죽음이었어. 부모님 잃고 나서 재영이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그게 다 나 때문이라고 했거든.’
 ‘그건 너 때문만은 아니잖아.’
 ‘아니. 내가 마음을 감췄다면 우린 그냥 어색한 형제로 남았을 거야. 돌아버리겠더라. 재영이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그래서 막 살았어. 걔가 아니면 어차피 누구도 상관없이 다 똑같았거든. 어쩌면 내가 망가지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행운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을 잃게 되는 불행이 되었다. 그 녀석에게 ‘운’은 그런 것이었다. 가질 수 없는, 가지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것. 혹시 그런 열등감이 겹쳐져 나를 더 깊이 오해한 것일까. 똑같은 돌연변이 주제에 다 가지고 누리며 사는 어린놈이 제 형까지 가지고 놀았다는 그런 시나리오로.

 ‘시간이 점차 지나니까 재영이가 러트 때 찾아왔어. 근데 시발, 너무 좋은데… 나도 상처받을 줄 아는 놈이거든. 걔한텐 내가 그냥 도구야. 러트 푸는 구멍. 비참해지기 싫어서 거부해도 소용없었지만.’

 내가 봤던 최재영을 떠올렸다. 제 형을 도구로 생각한다기엔 내게 너무 적대감을 보였다. 그건 단순히 열등감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가지게 해놓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아이돌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살살 긁어댔던 거니까. 혹시 그 녀석 역시 제 형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남자 오메가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사랑, 사치야. 버려지는 순간 구멍으로 전락해버리거든. 그런데도 빌어먹을, 재영이 아이니까 차마 못 지우겠는 거야. 웃기지.’

 박지민은 절대로 그런 아픔을 겪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 어린놈의 헛소리라고 치부해도 좋다. 사랑이 사치라고? 나는 최영진의 말을 떠올리며 더 굳게 다짐했다. 돌연변이의 삶에 사랑이 사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박지민의 일상을 빼곡히 채워줄 거라고. 한 순간도 그가 오메가인 것이 저주스럽지 않게 해줄 거라고.

 “간지러워…. 오늘 왜 이렇게 오래 애무해?”

 나는 그의 납작한 배에 끈질기게 입을 맞췄다. 배꼽 주위를 동그랗게 혀로 쓰다듬기도 하고 입술에 힘을 주어 살갗을 빨아들이며 분홍빛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이 작은 배 안에 있을 아기집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뺨과 입술을 비비며 애무한다.

 우리에게도 아기가 생길까?

 형에게 페로몬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머지않아 히트 사이클이 올 것이다. 내 단단한 몸을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을 때마다 형은 배가 꿈틀거린다거나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말로 나를 웃기곤 했는데, 정말로 형의 뱃속에 우리 둘의 아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말들이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우리의 상황에서는 절대로 아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간 오메가의 임신에 대해 무지하던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무슨 생각해? 꾹아.”

 그에게 행복만 주려면 절대로 힘든 일을 겪게 해선 안 되니까,

 “아니에요.”
 “뭐야, 이상한데.”
 “그냥…. 형 말랐다고.”

 당신과 나를 닮은 아기가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재영이 아이 꼭 낳을 거야. 사랑하니까.’
 ‘…….’
 ‘어때. 아직도 더러워? 이해가 안 가지?’
 ‘아니, 불쌍해. 너희 둘 다.’

 이 형제는 내게 돌연변이는 어차피 다 똑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돌연변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불쌍하니까. 사이클 상대를 찾으며 뒷골목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피 섞인 형제로 만난 사람들도, 나와 박지민도.

 근데 이건 달라. 더 불쌍해지지 않기 위해 사랑을 멈추지 않을 거야. 그게 어떤 것이든, 박지민이 내게 최우선이 될 거야. 이젠 절대로 바보처럼 돌아가며 삽질하지 않을 거야. 피하지 않을 거야. 박지민을 위해 이기적인 놈이 될 거야. 박지민을 아프게 하는 일은 절대 없게 만들 거야.

 “지민이 형.”
 “응.”
 “형….”
 “왜애….”

 내 흔적이 새겨진 배를 놓아주고 그의 목덜미를 찾아가 얼굴을 묻는다. 심장부터 배까지 맞닿아 체온과 함께 맥박이 전해진다. 나는 가만히 그를 끌어안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마치 박지민이 내 호흡의 일부인 것처럼. 짙은 체리향이 나를 부드럽게 감싼다.

 “지민아…. 지민아….”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웅얼거리듯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른다. 불러도 불러도 끝없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정말로 운이 좋은 알파다.

 “지민아…. 진짜 많이 좋아해.”
 “으이구, 우리 울보.”










 






(+) 글이 너어어어어어무 안 써져서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반 좀 넘게? 뚝 잘라왔어요.
下도 쓰는 대로 가지고 올게요.

옥이  | 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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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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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후메이쥬  | 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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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미니  | 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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뀨밍  | 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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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1119  | 19052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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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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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  |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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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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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 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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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멀  | 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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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님  | 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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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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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꼴찌 댕댕이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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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침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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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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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꽃  | 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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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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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짐니  | 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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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  | 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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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 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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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찜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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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  | 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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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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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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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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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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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엠젱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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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