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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29 (미성년자) 랠리 씀

Ludovico Einaudi - Andare

돌연변이
29













 84. 나의 알파 (from.지민)



 너는 내 소년기의 첫사랑이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그리고 내게 낯선 능력치를 기대하는 눈빛.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잔뜩 움츠린 어린 양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발 들인 길목에서 위축되어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열여덟의 끝 무렵, 또래보다 조금 일찍 철 든 소년이 되고자 했다. 남자다워지고 싶었다. 어떤 것이든 의연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고, 고통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견딜만한 그릇이 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런 게 남자다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무작정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내 눈에 두 살 어린 너는 신기한 존재였다. 나와 비슷한 듯했지만 묘하게 달랐다. 일찍 철이 든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홀로 견디고 있음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했다. 불과 2년 전의 나는 친구와 무용이 전부였던 해맑은 중학생이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기에 너는 너무 어렸다. 동질감은 측은지심으로 번졌다. 너는 잘하는 것이 많은 아이였기에 쉽게 사랑받았지만, 말수가 적고 낯을 가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네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더 다가가려고 했다. 그게 남자다운 형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데뷔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멤버들과 제법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했다. 내 눈은 시도 때도 없이 너를 향했다. 연습실 거울을 통해 너를 살폈고, 구석에서 음악을 듣는 옆얼굴을 훔쳐봤으며, 곤히 잠든 눈꺼풀을 몰래 내려다보기도 했다. 시발점이 호기심이었는지 걱정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 24시간 중에 너를 생각하는 분량이 무척 늘어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씻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네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네 눈에 가득 담긴 두려움을 발견했다. 사춘기라는 세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니라고 짐작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지?

 나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익숙했고 너는 그렇지 못했다. 전정국 너는 웃고 있어도 그 뒤에 어둠을 감추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걸 아는 체할 수 없었기에 더 속없는 놈처럼 대했다. 너의 통화내용을 엿듣기 전까지는.

 ‘나 안 죽어. 당분간은.’
 ‘형, 다들 내가 사춘기래.’ 
 ‘그냥 이렇게 살다가 뒤져버릴까?’

 네 입에서 나온 무시무시한 말을 들은 순간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열일곱 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아니, 장난으로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에게는 장난에 해당하지 않았다. 늘 외줄타기 하듯 위태로운 너였기에 그 말이 내 숨통을 틀어막았다.

 그때부터 잊을 만하면 악몽을 꾸었다. 네가 내 눈 앞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꿈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꾸는 동안 내 눈자위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컴백을 앞둔 어느 날은 참을 수 없이 서러워서 소리를 꾹꾹 삼키며 울었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던 태형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걸 알면서도 숨길 생각을 못했다. 네 마음속에 어두운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네가 갑자기 세상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저몄다.



 너 때문에 운 날 이후로 태형이는 줄곧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성가시게 왜 그러냐고 핀잔을 줬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관찰했다. 그때야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자꾸만 쳐다본다는 게 얼마나 티 나는 행동인지. 혹시 너도 여태 내 눈빛을 알아채고 있었을까. 그게 부담스러웠을까.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신경 쓰며 산 지 어느새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너를 좇는 시선은 습관이 되어버려서 거둘 수가 없었다.

 결국 열여덟의 네가 내게 말했다.

 ‘귀찮아요, 형.’

 괴로우니 제발 내버려두라고 했다. 심장이 곤두박질 쳤다. 귀찮다는 네 말에 하마터면 바보처럼 왈칵 눈물을 쏟아버릴 뻔했다. 잘게 떨리는 입꼬리를 겨우 올려 웃었다. 아마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힘들게 웃었던 경험일 것이다. 이불속에 파묻혀 남몰래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눈물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무뚝뚝한 너의 표정에 나를 성가셔하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담백한 말투 뒤에는 짜증이 숨어 있었다.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서 며칠간 멍하게 지냈다. 거울 너머 퉁퉁 부어 있는 눈꺼풀을 바라보며 이내 깨달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구나.
 오래전부터 쭉 좋아하고 있었구나.

 바보 같이 몇 년이나 몰랐던 거다. 너는 내 소년기를 앓게 한 지독한 첫사랑이었다는 걸.



 ‘라디오에서 왜 그딴 말을 해?’

 태형이가 내게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로 장난 쳤을 때,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따졌다. 태형이와 작은 말다툼을 한 적은 있어도 그토록 큰 소리를 내며 싸운 건 처음이었다. 나는 형들이 거실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형이를 몰아붙였다. 화풀이였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녀석의 탓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나는 너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을 때였다.

 늦은 밤 열이 펄펄 끓는 네가 내 위에 겹쳐오며 정신을 잃었을 때, 나는 단단한 네 몸이 내게 닿는 것이 좋아서 잔뜩 흥분하고 말았다. 소파 위에 쓰러져 누운 우리가 마치 은밀한 행위라도 하는 것 같아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쩐 일인지 너의 것이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정신을 잃은 네가 꿈틀거릴 때마다 내 하체와 맞닿아서 나는 머리끝까지 펑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네 더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것이 소름끼치게 좋아서 그대로 너에게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내리눌러야 했다.

 아파서 정신을 잃은 너를 상대로 홀로 그런 상상을 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죄책감이 들어 네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기에, 내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때의 너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너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너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며 강아지처럼 끙끙거렸고,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다는 모진 말로 너를 피했다.

 ‘네가 자꾸 정국이 피하니까 그렇지.’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지민아,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갑자기 왜 딴소리야. 라디오에서 왜 그딴 말을 해서 사람 곤란하게 만드냐고!’

 태형이가 내 말에 입을 일자로 다물며 빤히 바라보았다. 늘 나를 관찰해오던 그 표정이었다. 나는 태형이가 한 말 때문에 혹시라도 네가 내 마음을 눈치 챈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더욱 녀석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상황이 최악이었으니까. 너를 향한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무서웠으니까.

 ‘너 정국이 좋아하잖아.’

 그러나 이내 태형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담담한 말투로 내가 홀로 감추고 있던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그 문장은 공기 중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혹시 어딘가에 부유하고 있다가 네 귀에 들어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만큼, 흔적도 없이.

 ‘너, 너…….’
 ‘네가 말해주길 기다렸어. 전부터 알고 있었어 지민아.’
 ‘어떻게… 어떻게 그걸…….’
 ‘좋아하는 것 맞지? 그런데 왜 피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잖아. 보고 있으니까 약간 답답해. 속 터져.’

 그때 태형이는 너의 마음까지도 눈치 채고 있던 거였다. 그러나 섣불리 네 마음을 내게 전해줄 수는 없으니 홀로 답답해하는 수밖에. 그러니 일종의 다리를 놓아주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네 마음을 알지 못했던 나는 태형이의 몰아치는 말이 두려워서 뒷걸음 쳤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도망치던 나를 붙잡고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오던 너를 뿌리쳤다. 네가 나를 더럽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부러 못된 말을 퍼부으며 쏟아내고 강한 척하며 밀어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어긋났다. 내가 널 밀어내고, 너도 나를 밀어냈다. 슬피 울고 있는 내게 태형이가 다가와 말했다.

 ‘정국이가 눈치 챈 것 같아.’
 ‘…….’
 ‘네가 좋아하고 있다는 거.’
 
 그게 녀석의 힌트였다. 태형이는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길 바라고 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훌쩍이자 녀석이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며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정국이랑 뽀뽀도 하고 싶어?’
 ‘…뭐?’
 ‘그럼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맞는데. 앞으로 안 좋아할 자신 있어? 평생 후회할 텐데 지민아.’
 ‘…….’
 ‘좋아하는 게 죄도 아니고….’
 ‘…….’
 ‘왜 혼자 죄처럼 만들고 그러냐? 이상해.’

 좋아하는 게 죄도 아니고, 그 말에 위로가 되었나. 용기가 생겼나. 태형이는 맞는 말을 했다.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었다. 네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사랑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골몰해야 했다.



 ‘넌 알고 있었던 거지?’

 너와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 나는 태형이를 찾아가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척했다. 마치 폭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저질러버린 고백에 너는 키스로 내게 답을 주었다. 사실 그게 대답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았다. 네 말 어디에도 나를 좋아한다는 문장은 없었다. 대신 내 옷을 찢으며 네가 실은 알파라고 했다. 나는 네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그보다는 네가 약을 먹는 것이 내가 상상하는 끔찍한 이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네가 말 못할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외딴 섬처럼 살아온 게 아니라서. 네가 목숨을 버리기 위해 약을 먹은 게 아니라서. 단지 알파이기 때문에 밀어낸 것이라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었어. 정국이가 너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
 ‘그것도 모르고…….’

 나는 태형이 앞에서 엉엉 울었다. 복잡한 머릿속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조용히 쌓아두었던 것을 몇 그램 정도는 덜어낼 수 있었다. 녀석은 내 등을 조용히 토닥여주었다. 늘 동생 같던 녀석이 그날만큼은 형처럼 든든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고민했다. 답은 한 가지였다. 너는 내가 떠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홀로 고민했던 것처럼 말이다. 입술을 떼어낸 후 나를 내려다보던 너의 외로운 눈망울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너를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알파인 너를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로 지켜줄 수 있을지. 너의 어떤 모습을 보더라도 끝까지 떠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나 정국이랑 뽀뽀했어. 근데 너무 슬펐어.’
 ‘좋아하는데 왜 슬퍼해?’
 ‘…….’
 ‘서로 좋으면 그걸로 땡이지.’

 태형이의 말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녀석에게 ‘넌 단순해서 좋겠다’하며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 그 말이 답이었다. 뒷일을 미리 걱정하거나 다른 것을 끌고 와서 슬퍼하자면 이 세상에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간단한 말을 끌어안고 또 한참이나 고민했다. 어차피 정답은 너일 걸 알면서도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년간 너 홀로 꽁꽁 숨겨온 어려움이다. 너를 갖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홀라당 붙잡아버릴 무게가 아니었다.

 우리가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게나 힘겨웠다.



 전정국. 너는 비로소 나의 알파가 되었다.

 내 마음과 몸, 현재와 미래, 청춘과 세월.
 소년기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처음이자 끝.
 서로의 유일이자 영원.







yonee  | 190421   
비밀댓글입니다
KMLove  | 190428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국민리얼!  | 190430   
비밀댓글입니다
redlemonade  | 191212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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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