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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ovico Einaudi - Burning

돌연변이
31













 88. 어긋남



 정규 앨범 준비가 한창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8월의 날씨에도 멤버들은 각자의 스케줄로 바빴다. 해외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국내 스케줄과 함께 몸은 축축 늘어졌지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데에 게을리 할 수 없다. 8월 말로 향해갈수록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종종 심장 마사지를 했다. 8월 말에 내 인생에서 두 번이나 중요한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나의 알파 발현, 두 번째는 박지민의 오메가 발현. 본능적으로 이 시기가 오면 뒷목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은 긴장이 찾아왔다. 이 감정이 설렘인지 두려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두 번째 사이클이 아직 오지 않은 걸 보니 한 달 간격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이클 주기를 신경 쓰고 있고, 내심 나와 사이클이 같아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점점 더 나는 박지민이라는 사람에게 목을 매는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서,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게 집착증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 무엇 하나에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하는 내가, 박지민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고집스러운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이를 테면 소유욕에서 비롯한 것이다. 유럽에서 프로포즈 비슷한 걸 했을 때도 그랬다. 박지민에게 빠지고 나니 다른 모든 것에는 변덕이 생겼다고.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부터 변덕쟁이가 아니었다. 고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끈질기게 노래했고, 낯선 미국 땅에 가서는 다리뼈가 으스러지도록 춤을 췄으니까. 어렸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그림 하나를 완성하겠다며 밤을 새는 바람에 엄마를 기함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원래 집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놈인데, 이 세상에 박지민 말고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여태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이틀곡 녹음을 하는 날, 박지민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프로듀서 형님의 요구 때문이었다.

 “지민아, 목소리를 좀 더 신음처럼 내볼까?”
 “예?”

 그 말에 되물은 건 박지민이 아닌 나였다. 내가 별안간 소리를 내자 태형이 형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나를 쿡 찔렀다. 신음소리라는 말에 터져 나온 내 과민반응이었다. 그러나 나와 박지민의 관계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스무 살 청년이 남사스러운 단어에 번뜩이는 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프로듀서 형이 나를 보며 큭큭 웃더니 녹음실 안에 서 있는 박지민을 향해 설명을 덧붙였다.

 “지민이 목소리 톤이 높아서 좋은데, 좀 더 야한 느낌으로 가야할 것 같아. 숨소리 많이 섞어서. 그… 신음소리 알지? 끈적끈적하게.”
 “…네에.”

 유리 너머의 그가 얼굴을 붉힌다. 나는 가사지를 꽉 쥔 채로 다리를 달달 떨었다. 도입부와 싸비에 매우 중요한 파트를 박지민이 맡은 것에 대해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순둥이 같은 얼굴로 야한 목소리라니! 아니 될 말이다. 이 세상에 그의 신음을 들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박지민에게서 야시시한 모습을 발견한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가이드에 맞춰서 다시 녹음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내 뭐 마려운 똥강아지처럼 다리를 달달 떨며 안절부절못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앨범 컨셉에서 유독 박지민은 퇴폐적이고 야한 모습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다고 했다. 이 역시 아니 될 말이다. 그는 원래부터 야했다. 물론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정국아, 제발 다리 좀 가만히 둬.”
 “…….”
 “너 약간 그거 같다. 의처증.”
 “참나.”

 태형이 형의 실없는 소릴 들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기어코 박지민은 공기 반 소리 반을 넘어서 공기를 80퍼센트 쯤 섞은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노래했다. 프로듀서 형과 엔지니어들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녹음이 끝날 때까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못살게 굴었더니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멤버 단체 톡방이었다.


 김석진  제이케이를 여기서 탈출시키자
 김석진  아니 탈출이 아니라 쫓아내자
 김남준  그럼 노래는 누가 해요?
 김석진  맞다 메인보컬이지
 정호석  ㅋㅋㅋㅋㅋㅋ
 김태형  지민이가 섹시한 게 싫은가바여
 김태형  아저씨같애
 정호석  속상하네ㅋㅋㅋ
 김석진  음란마귀가 껴서 그래
 김석진  아주 아주 음란해
 민윤기  앞담화가 대단하네


 나는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보며 이 톡방을 나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주머니 안에 폰을 가둔 채로 유리 너머 박지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방금 녹음한 파트를 다시 듣는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지민이가 뭘 아네. 다 컸어.”
 “괜찮았어요?”
 “고급스럽게 퇴폐적인 느낌이랄까. 딱 이거거든.”

 프로듀서 형의 장난 섞인 칭찬에도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그가 뭘 좀 안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계속 정신없이 구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윤기 형이 조용히 내 뒷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귓속말을 해왔다.

 “지금 녹음하는 건 예술. 네 상상은 외설. 표정은 심술.”
 “……랩이에요?”
 “라임이 기가 막혔지. 크으.”

 별안간 맘에 든다는 듯 윤기 형이 활짝 웃으며 눈을 접었다. 형들은 아무래도 우리 둘을 놀리는 데에 점점 더 큰 재미를 붙여가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박지민을 들쳐 안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태형이 형이 장난스럽게 내 방문을 쿵쿵 두드리며 “살려주세요! 박지민을 구해주세요! 누구 없어요?”하는 바람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왜?”
 “너무 야했어. 짜증나.”
 “뭐가?”
 “녹음.”
 “근데 태태는 왜 저래?”
 “몰라. 나 놀리는 거야. 다들 신났어.”
 “네가 뭘 어쨌길래?”

 나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어 그에게 내밀었다. 아까 하도 씹어대는 바람에 입술 껍데기가 벗겨져서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났다. 그걸 보고는 그가 내 얼굴을 부여잡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리곤 뒤늦게 읽은 톡방 내용이 뭔지 제대로 알았다는 듯 내 콧등을 콱 깨문다.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양쪽 귀를 잡아당기며 어르기도 한다. 형은 가끔 나를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대하듯 할 때가 있다.

 “내가 웃겨?”
 “엉. 웃겨 죽겠다. 전정국.”
 “뭐가 웃긴데요.”
 “너의 음란마귀가 웃기다.”

 진짜로 나 혼자 음란마귀가 껴서 그런 걸까. 하긴 형이 평소와 다른 창법으로 숨소리를 흘리자마자 내 아랫도리는 자동으로 기립할 뻔했다. 아직도 히트 사이클 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뜬금없이 발정하는 건 다 박지민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나만 알고 있는 이런 감상을 다른 사람들도 갖는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솟았다.

 “컴백하면 계속 그렇게 라이브 할 거잖아.”
 “그렇지.”
 “으… 안 돼. 박지민 목소리 내꺼야.”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야한 생각만 하진 않아.”
 “안 돼. 안 돼. 나 혼자 들어야 돼.”

 나는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며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남친이 집착해요.”
 “진짜 어쩌지. 역사에 길이 남을 집착남이 될 것 같아.”
 “누가 나한테 집착하는 거 처음인데 기분 좋네?”

 박지민을 나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또 엉뚱한 생각을 이어갔다. 형을 울게 하고 웃게 하는 모든 것이 나였으면 좋겠다. 형의 목소리에 취하고 손길에 반응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이미 방탄소년단 지민은 만인의 연인이 되어버렸는데, 나는 뒤늦게 그를 독차지 하고 싶어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다.

 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오메가. 나에게 백퍼센트 의지하는 형.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남자. 박지민의 속성은 나날이 더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내 속성이기도 하다. 그에게 아이를 갖게 할 수 있는 알파.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가 없으면 안 되는 남자. 그의 털끝 하나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정말 큰일이다.



 [ 그건 좀 심각한데? ]

 최영진의 답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요즘 박지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털어놨더니 심각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심술궂은 표정으로 답장을 썼다.

 [ 뭐가 심각해? 사랑하면 그러는 거지. ]
 [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위험이 있지. ]
 [ 뭐래. 절대 안 질려. ]
 [ 그건 네 생각이고. ]

 녀석은 배가 많이 불러오는 바람에 밖에 돌아다니지를 못하는지라 꽤 심심한 모양이다. 내 시시콜콜한 연애상담에 칼 답장을 보냈다. 근데 가끔 이렇게 나를 콕콕 찔러대는 말을 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박지민이 나에게 질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네가 몰라서 그래. 우리는 서로 질릴 수가 없어. ]
 [ 그래 뭐 질리진 않더라도, 싸울 위험은 있다. ]
 [ 그럴 일은 더더욱 없소이다. ]
 [ 이 자식은 답정너야 뭐야. 어쩌라는 거야?! ]
 [ 그니까 그딴 소리는 하지 말라고. ]

 나는 홀로 씩씩거리다가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박지민과 내가 싸운다니. 그런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그를 이길 수 없기에 그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 소유욕이 왜 위험한 줄 알아? ]
 [ 몰라. ]
 [ 그 사람의 모든 걸 자기가 다 해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상대의 감정까지도 혼자 꿀꺽해야 직성이 풀리는 결과를 초래하곤 하지. 그래야 다 가졌다는 만족감이 드니까. ]
 [ 내가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야. ]
 [ 집착이란 말이 가벼울 땐 참 설레는 말인데, 심해지면 그것보다 무서운 게 없거든ㅋㅋ 누구나 처음부터 미친놈은 아니니까. ]
 [ 야 됐어. 너랑 문자 안 해. ]

 금세 비어버린 맥주 캔을 구겨서 휴지통으로 던져 넣었다. 하필 박지민이 ‘WINGS’ 쇼트필름을 촬영하러 간 바람에 옆구리가 허전하다.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비비적거리다가 늘 박지민이 베고 자는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모로 누웠다. 어쩐지 마음이 울적하다. 최영진에게 괜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연애상담이랍시고 넋두리를 했더니 녀석은 쓸데없는 말로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괘씸해서 부들거리다가 또다시 오는 진동에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 지금 부들거리고 있다면 소유욕괴물 집착남 말기 증상. 위험 경보. 삐용삐용. 자중하세요. ]

 “아씨.”

 연이어 온 ‘메롱’ 모양의 이모티콘까지 보고는 휴대폰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소리 없이 베개와 이불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발작했다. 다음에 최영진을 만날 일이 생긴다면 나를 약 올린 대가로 입술을 쥐어뜯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이 지나 내 쇼트필름 촬영일이 다가왔다. 박지민이 ‘Lie’를 촬영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던 건, 다른 형들 촬영장에는 가지 않고선 그에게만 찾아가는 유난을 떨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심 내가 촬영할 때 그가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울적했다. 이동할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그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달랬다.

 “형이 이따가 들를게.”

 오랜만에 형다운 우직한 말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박지민은 참 상냥한 사람이라, 앞서 다른 멤버들의 촬영장에 들른 적이 있다. 그 덕분에 내가 촬영할 때 오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새삼 나는 그가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식에서 나와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괜히 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에 뒤로 돌아 그의 몸을 꽉 끌어안고는 뺨을 비볐다.

 “언제 올 건데?”
 “음… 이따가 봐서?”
 “몇 시에 올 건데. 그때까지 목 빼놓게.”
 “매니저 형 두 시간 있다가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갈게.”
 “알겠어.”

 나는 새끼손가락까지 내밀면서 어리광을 피웠다. 이것도 집착에 해당하는 걸까? 자꾸만 최영진이 말한 ‘소유욕괴물 집착남 말기 증상’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형은 내가 귀엽다는 듯 볼에 쪽쪽 입을 맞춰주며 내 유난에 동조했다.

 “연하 남친 사귀기 힘드네?”
 “흐흥, 연하가 가끔 귀여운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맞아. 우리 정국이 귀여우니까.”

 내 엉덩이를 조물조물 만져주는 손길을 끝으로 아쉽게 숙소를 나왔다. 촬영장에 도착한 나는 처음으로 멤버들이 없는 곳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간 얼마나 형들과 함께 있는 게 익숙했으면 이럴까 싶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촬영 중에도 나는 틈틈이 스태프들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박지민이 나타나 몰래 나를 훔쳐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촬영이 끝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 후면 오겠다더니, 촬영장에 나타난 건 매니저 형 혼자였다. 지민이 형은요? 하고 물었더니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매니저 형을 보며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결국 그를 기다리다가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버렸고, 나는 촬영을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서운한 마음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건 단지 그가 내 촬영장에 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여 얼른 단체 톡방에다가 박지민을 찾아봤지만, 다들 잠들었거나 바쁜지 대답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 머릿속엔 안 좋은 상상들이 줄을 이었다. 혹시 그가 어디 아픈 건지, 다친 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쯤, 태형이 형의 답장이 왔다.

 김태형  지민이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는데?
 김태형  술 마신대

 순간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랠 정도로 충격이 찾아왔다. 이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약속을 어겨서? 아니면 내게 말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나는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나는 걸까.



 방에 틀어박혀 그를 기다렸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고,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에게 전화를 몇 번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박지민이 여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적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와 연락이 두절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매일 붙어 있었기에 연락할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벗는 소리. 그리고 쿵, 하며 발꿈치를 바닥에 엇 박으로 찧는 소리. 비틀거리다가 벽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 나는 박지민이 내는 소리를 하나하나 귀에 새기며 얌전히 방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술에 취한 그는 내 방으로 오지 않고 형들과 쓰는 방으로 몸을 틀었다.

 “…….”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방 문고리를 돌리려던 그가 빨개진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는 바람소리를 내며 히죽 웃는다. 독한 술 냄새가 훅 풍겨온다.

 “어… 전정국….”

 입가에 미소를 띠며 느리게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얼른 그를 끌어당겨 방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꽉 잠갔다. 그에게 화내지 않기 위해 속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까짓 약속, 까먹을 수도 있는 거라고. 촬영장에 찾아가는 일 따위, 매일 질리도록 촬영하는 우리에겐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일 테니까. 아니면 형이 내게 진짜로 약속한 게 아니라, 그냥 우스갯소리로 해본 말일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뇌다 보니 스스로 답을 찾았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그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내게 일언반구 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나아가자면, 엉망으로 취한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였다는 것일 테고.

 “…왜 연락이 안 돼.”
 “어어… 전화했어? 몰랐네에….”

 그가 꼼지락거리며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나를 올려다보고는 또다시 히죽 웃는다.

 “정구기… 형 걱정했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화나써…?”

 그가 내 양 볼을 감싸고 어르며 말한다. 그리고는 입술을 내밀어 내게 쭙, 하고 끈적하게 뽀뽀한다. 지독한 술 냄새에 나까지 취할 지경이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자꾸만 몸이 기우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는 침대에 눕히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탁 뿌리쳤다.

 “화났냐고 물었잖아. 내가아….”
 “…….”
 “내가 말없이 가서? 어? 화났냐고. 정국이…. 어?”
 “얼마나 마신 거야. 많이 취했네.”
 “나도 화났는데…. 나한텐 왜 안 물어봐?”

 그가 눈을 치켜뜨며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그의 술주정엔 면역이 없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그를 붙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날카롭게 나를 뿌리친다. 그 바람에 그가 끼고 있던 반지에 긁혀 손등에 생채기가 났다.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요. 나 화났어. 형 연락 안 돼서. 그러니까 얼른 누워서 자고 술 깨고 내일 얘기하자.”
 “연락 좀 안 되면 어때서… 응? 내가 네 것이야?”
 “형 제발….”
 “나도 화났다고. 나도, 나도 화났다니까…?”
 “휴…. 형은 왜 화났는데.”

 나는 마음을 억지로 누그러뜨리고 술 취한 그를 달래듯 물었다. 그러자 그가 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내 면전에 가까이 들이댄다. 너무 가까워 사물 식별이 힘들어서 고개를 뒤로 빼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순간 나는 손에 들려 있는 하얀 물건을 확인하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들고 있는 건 사후피임제 통이었다.

 내가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것. 체향 억제제와 주사 앰플이 남아 있는 박스 구석에 챙겨놓았던 약통이 어째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걸까. 혼잡해진 사고회로를 굴리려 애썼다. 그러나 나를 노려보며 눈자위가 점점 빨갛게 물들어가는 그를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이것 때문에 화났지.”
 “…….”
 “너는 정말로 내가 네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당연히 내 것이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이 약이랑 형이 내 것인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는… 내가 바보 같아?”
 “뭐?”
 “아니면, 나를 무시해…?”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네 허락 없이는 고민도 하면 안 돼?”

 머리가 아파온다. 그는 풀려가는 혀끝으로 어눌하게 발음하며 나에게 쏘아붙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어서 말도 안 되게 끓고 있는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물론 그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설명하는 건 술에서 깨어난 후여야 할 것이다.

 “일단 술 깨고 내일,”
 “내가 네 아이 갖는 게 싫어?”
 “…….”
 “그래서 나는 몰라도 되는 거야? 고민할 가치도 없는 거니까… 그래서 그래? 응? 정국아….”
 “진짜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해? 싫은 게 아니고, 형이 아이를 가지면 안 되니까. 형 힘들까봐서 내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피임약을 바닥으로 세게 집어던졌다. 떨어진 약통 뚜껑이 열리며 알약들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튕겨지며 뒹군다. 형이 내게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때쯤, 그가 나를 피하며 밀어냈던 악몽이 떠오를 만큼 차갑다.

 “항상 그런 식이지. 너 혼자 짊어지려는 거. 누가… 누가 너한테 희생하랬어? 내가 그렇게 하래? 너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러면 내가 고맙대?”
 “…….”
 “이런 건 나랑 얘기해야 하는 거야. 내가 임신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아프든 슬프든 그건 내 몫인 거야. 그 정도는 충분히 나도 받아들일 수 있어. 내가… 내가 머저리도 아니고….”
 “형이 힘들까 봐 그런 거잖아. 형은 그냥 행복하기만 하라고. 내가 다 감수할 테니까… 난 형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딴 행복은 필요 없다고.”

 그가 내 가슴팍을 두 팔로 세게 밀쳤다. 나는 그의 힘에 두 발자국 뒤로 밀렸다. 박지민이 운다. 눈가에 가득 찼던 눈물이 앞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난 네 것이 아니야. 정국아.”
 “……뭐?”
 “사랑한다고 해서 다 네 것이 되는 게 아니야.”

 나는 그 순간 최영진이 보낸 문자를 떠올렸다.

 ‘소유욕이 왜 위험한 줄 알아? 그 사람의 모든 걸 자기가 다 해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상대의 감정까지도 혼자 꿀꺽해야 직성이 풀리는 결과를 초래하곤 하지. 그래야 다 가졌다는 만족감이 드니까.’

 머리가 아파와 이마를 짚었다. 그 순간에도 원망이 가득한 그의 눈빛은 내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당신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던 걸까? 당신의 슬픔, 갈등, 고난까지도 다 내 손아귀 안에 있어야 했던 걸까. 아닌데. 그게 아닌데. 난 그냥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내 몫은 언제나 남겨줘.”
 “하….”
 “기울어진 사랑, 하고 싶지 않아.”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당신 대신 모든 짐을 짊어지겠다는 게, 그렇게나 잘못된 일인가.

 나는 당장 이 열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사랑과 소유욕에 한 끗의 차이가 있다면 이런 건가 보다. 나는 항상 당신을 원하지만 결코 당신을 꿀꺽 삼키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집착이란 단어는 이런 걸 뜻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이 아프면 내가 죽을 수도 있어서… 그래서…….

 결국 그를 뒤로하고 방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태형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덩달아 울 것 같은 형의 표정을 뒤로하고 무작정 바깥으로 향했다. 발이 닿는 대로 골목을 달렸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무시하고 컴컴한 공원으로 뛰어들었다. 더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눈에 잔뜩 고여 있던 눈물을 덥힌다. 그 열감에 눈물마저 기체가 되어 날아버릴 것 같다.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만 귓가에 가득 찬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거대한 무언가에 잡아먹히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릎을 짚고 멈춰 선 채로 숨을 몰아쉰다.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축축한 공기가 목덜미를 적신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충돌한다. 어쩌면 내가 당신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 당신을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기심을 부린 거라고. 아니, 그냥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아니 아니, 사랑을 빌미로 당신을 영원히 내 울타리에 넣고 싶었던 거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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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bts  | 190501  삭제
힝ㅜㅜㅜㅜ 이번편은 너무 안타깝네요.
정국이의 사랑이 우리가 가늠하지 못한만큼 너무 큰가봐요
지민이는 좋겠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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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태찜찜  | 190502   
진짜 랠리님 글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는구 같아요 ㅠㅠ
몰입도 최고에요 행복한 결말이 있으면 둘에게 위기도 있어야 겠죠 ㅠㅠㅠㅠㅠㅠ 돌연변이 항상 잘보구 있어요 ㅠㅠ
hui72  | 1905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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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랠리님최고)  | 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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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alsry8768  | 19050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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