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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33 랠리 씀

Ludovico Einaudi - Divenire

돌연변이
33













 92. 단둘



 “전정국.”

 마닐라 공연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와 욕조 목욕을 하던 중 문 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지민이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축 가라앉은 앞머리를 걷어내며 표정으로 답하자 그의 눈이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내 상체를 훑는다. 노골적인 시선에 피식 웃으며 팔을 뻗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모습에 손목을 흔들며 재촉했다. 그러나 그는 문틀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기만 할 뿐이다.

 “왜요?”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을 보니 아직도 화가 덜 풀린 건가 싶었다.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어?”
 “어?”
 “우리 아직 완전히 화해한 거 아니야.”
 “아….”

 나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딱히 화난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속을 통 모르겠다. 여태 내가 알던 박지민은 그의 지극히 일부였다는 걸 최근 들어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박지민. 내게 부딪쳐오는 파도인 줄 알았는데, 그 아래에 끝없는 심해를 가지고 있던 박지민. 우리의 사랑을 이루는 성분이 무엇일까. 나는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껴안는다. 스무 살의 전정국은 이제야 제대로 사랑을 배워가는 모양이다. 내 마음을 꺼내 해부하고 싶다.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어두운 것들을 발견해서 없앨 수 있으면 좋겠다. 암세포처럼 자라지 않도록.

 “어떻게 풀까. 형 하고 싶은 대로 해.”
 “남자끼리 푸는 방법은 하나지.”
 “뭐?”
 “술.”

 그의 말을 들으니 당연한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 둘 다 남자라는 것. 보통 남녀 간의 연애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 박지민답고 우리다운 방법이다. 연인이 되기 전에 쌓아온 시간들을 잠시 망각할 뻔했다. 돌이켜 보니 단둘이 작정하고 술을 마신 적이 없다. 화해의 자리에 맞는 주종은 소주일 테고, 아마도 왕창 들이부으며 속에 있던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알지 못했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심장 부근이 뻐근해졌다. 이걸 설렘이라고 해야 할까.

 “알겠어요. 근데 일단 잠깐만 들어와 봐.”
 “엉? 야…!”

 몸을 일으켜 무작정 그의 팔을 당겼다. 옷을 입고 있는 그를 짓궂게 끌어안고 욕조 안으로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물에 빠져 흠뻑 젖어버린 그의 볼에 입술을 꾹 눌렀다. 말랑말랑한 볼을 입 안에 넣고 굴리다가 살짝 깨물기도 했다.

 “그래도 반 정도는 풀렸잖아. 그치.”
 “…몰라.”
 “그러니까 반만 해줘.”
 “…….”
 “형. 키스할래?”

 더한 것도 많이 했으면서 그렇게 묻는 게 낯설었는지 그의 뺨이 예쁘게 물든다. 그리곤 통통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더니 내 양쪽 뺨을 답삭 붙잡는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폭신하게 맞물리는 여린 점막을 느끼며 욕조에 머리를 기댔다. 형이 내 위에 올라탄 채 몸을 붙여왔다. 작은 몸집으로 마치 나를 덮치는 사람처럼 입맞춤을 리드한다. 잠자코 입을 벌리며 내 안에 침범하는 말캉한 혓바닥을 음미한다. 조급한 움직임도 아니었고 오히려 느릿하고 조심스러웠는데도 나는 숨이 부족한 사람처럼 거칠게 날숨을 쉰다.  

 늘 내가 주도권을 잡았던 키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형은 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부드러운 혀로 문질렀다가, 고개를 비틀며 안쪽 볼 무덤을 혀끝으로 살살 갉작이기도 했다. 간지러운 콧바람이 인중에 닿았다. 사르르 풍겨오는 기분 좋은 체리 바닐라. 형의 적극적인 몸짓을 받는 것이 좋아서 본능적으로 그의 반바지 자락 아래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욕조의 물결에 팔랑이는 바짓단을 사타구니까지 끌어올리며 말랑말랑한 엉덩이 살을 꽈악 쥐자 그가 내 혀를 콱 깨물며 손을 치워냈다.

 “형아가 키스해주는데 어디서 손을 넣어? 건방지게.”
 “큭….”
 “까불지 마. 형 화 다 안 풀렸다.”
 “아, 무서워라.”
 “내 맘대로 할 거야. 넌 가만히 있어.”

 박력이 넘치는 그가 귀여워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그의 얇은 몸통을 꽉 끌어안은 채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우리는 순식간에 욕조 안으로 꼬르륵 잠겼다. 따뜻한 물 안에서 고요하게 입술을 맞댔다. 놀란 그가 버둥거리다가 이내 내 머리통을 끌어안고 고개를 비튼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넣는다. 닫힌 시야와 먹먹한 귀, 안면을 사방에서 덮어씌우는 무거운 액체. 자칫 공포의 순간이 될 수도 있는 이 물 속에서 유일하게 닿아 있는 입술만이 구원임을 깨닫는다. 그건 마치 당신과, 우리였다.

 “푸하.”

 그는 숨을 오래 참지 못해 먼저 수면 위로 벗어난다. 얼굴에 줄줄 흐르는 물기를 닦아내는 그를 천천히 끌어당겨 안았다. 내 어깨에 가만히 턱을 올려놓는 접촉이 안온하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명치에서부터 샘솟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형, 사랑해.”

 미안하다는 말은 해주지 못해도, 이 간지러운 말은 오래오래 질리도록 해줄 수 있다. 내 사랑이 당신에게 전염될 수 있게. 그리고 당신의 사랑에 내가 범벅될 수 있게.



 호텔 근처의 한식당에 마주 앉은 당신은 비장한 표정으로 내 잔에 소주를 따랐다. 나는 양 손으로 잔을 받쳐 들고 투명한 액체가 채워지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당신은 넘치기 직전까지 술을 따라준 후 내게 소주병을 건넸다. 그리곤 한 손으로 잔을 척 들고는 어서 따르라며 흔들었다. 공손하게 술병을 잡고 쪼르륵 그의 잔을 채웠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연인과 형 동생 사이의 경계 어디쯤에 앉아있나 보다.

 “진실게임 하자.”
 “그래요.”
 “대답하면 한 잔 마시고, 대답 못하면 두 잔 마시기.”
 “이상한 룰이네.”
 “내 마음이야.”

 그에게 궁금한 게 무엇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글쎄.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먼저.”

 내심 당신이 내게 무얼 물어볼지 기대되었다.

 “첫 경험은 언제야?”
 “허….”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이 왔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걸 묻는 의도를 모르겠다. 형은 작정한 모양이다. 평소에 내게 묻고 싶었던 종류가 이런 거였나.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회포를 풀자고 하더니, 오늘은 아예 서로에 대해 탈탈 터는 날인가 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았다. 그가 내게 캐물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 추석. 처음 형이랑 영화관 간 날.”
 “…….”
 “커뮤니티에서 만난 오메가였어. 내 이름은 잭이었고, 그 애는 율이었어. 하나도 안 좋았어. 그냥 슬펐거든.”
 “아….”

 율이라는 이름을 들은 당신의 눈썹이 팔 자로 축 처졌다. 함께 갔던 장례식장이 누구의 자리인지 생각난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꿀꺽. 목을 타고 쓰디쓴 액체가 흘러들어간다. 알싸한 맛에 콧잔등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우리 정국이 힘들었겠다.”

 눈자위가 벌써 축축해졌다. 나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젠 괜찮다는 뜻이었다.

 “이번엔 내 차례네.”
 “응.”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

 내 물음에 당신은 눈동자를 위로 들며 생각에 잠긴다. 턱을 괴고 한참 기억을 되짚던 당신이 수줍은 표정으로 답한다.

 “아마도, 숙소에 들어간 날부터.”
 “진짜?”
 “처음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맨 처음부터 좋아했더라고. 널 보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거든. 와아, 잘생겼다. 친해지고 싶다. 너한테 눈길이 갔고, 말을 걸고 싶었고, 같이 춤 연습 하다가 거울로 눈을 마주치면 기분이 엄청 좋았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된 마음이다. 내가 알파라는 정체성 때문에 흔들릴 때부터 당신의 눈엔 내가 있었다. 대답을 마친 당신이 소주를 쭉 들이킨다. 그리곤 손등으로 입가에 젖은 것을 훔쳐내곤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 눈빛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좀 알겠어? 내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나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다른 형들 껴안는 거. 특히 태형이 형.”
 “하, 참나.”

 나의 두 번째 잔.


 “형은 나 때문에 짜증난 적 있어?”
 “며칠 전에.”
 “…이번에 싸운 건 빼고.”
 “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응.”
 “자고 있는데 삽입해서 짜증난 적 있어.”
 “헐…. 엄청 좋아했잖아요.”
 “내, 내가 언제 또 엄청…!”
 “아응, 정구가아… 이러면서 막,”
 “야! 조용히 안 해?”

 씩씩 거리는 당신의 두 번째 잔.


 “어떤 자세로 하는 게 제일 좋아?”
 “뒷치기.”
 “왜?”
 “넣어본 사람만 알아. 느낌이 달라.”
 “…치.”

 나의 세 번째 잔.


 “형은 어떤 자세가 좋은데?”
 “네 얼굴 보고 하는 거.”
 “흐음…. 왜?”
 “네 표정이… 아무튼 그게 제일 좋아.”
 “오케이 접수.”

 새초롬한 얼굴을 한 당신의 세 번째 잔.


 “내 어디가 제일 좋아?”
 “다 좋은데.”
 “하나만 골라야 돼.”
 “눈.”
 “내 눈이?”
 “응. 눈이 예쁘거든. 흉터도 예쁘고.”
 “…….”

 입꼬리가 올라가는 당신을 보며 나의 네 번째 잔.


 “형은 나랑 가고 싶은 데 있어?”
 “우리 집.”
 “부산?”
 “응. 집에 가서… 너 자랑하고 싶어.”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나를 보며 당신의 네 번째 잔.


 어느덧 두 병째 소주 뚜껑이 열려 있었다.


 “정국아. 갖고 싶은 거 있어?”
 “없어.”
 “에이, 하나 말해야 돼. 선물 못 줬잖아.”
 “진짜 없어. 딱히.”
 “두 잔 마셔. 대답 못했으니까.”
 “아 억울한데.”

 우격다짐으로 나의 다섯, 여섯 번째 잔.


 “다음 히트 때 하고 싶은 거 있어?”
 “하고 싶은 거?”
 “좀 특별한 섹스.”
 “그, 그런 거 없어.”
 “뻥치지 마.”
 “진짜야!”
 “두 잔 마셔.”
 “우씨….”

 얼굴이 빨개진 당신의 다섯, 여섯 번째 잔.


 쉼 없이 빠르게 들이킨 술 때문에 어지럽다. 취기가 빠르게 올라온다.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더니 뱃속이 뜨끈하다. 눈앞의 당신은 웃음이 헤퍼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귀여운 입술을 잡고 쭈욱 늘렸다. 키스하고 싶다. 당신과 단둘이 술에 취해 본 게 처음이라서, 마치 우리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평범하게 느껴질 단란한 술자리가,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에겐 참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정국아아….”
 “응.”
 “내가… 네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할 거야?”

 또다시 당신의 차례가 되자 이번엔 비수 같은 질문이 꽂힌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말에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신은 이걸 묻기 위해 진실게임의 물꼬를 튼 것이라고.

 “형이 하자는 대로 할 거야.”
 “낳아서 키우자고 해도?”
 “응.”
 “그럼 너 다 잃을 수도 있어. 음…. 아니다. 숨기면, 네 아이라는 걸 숨기면… 나만 그만둬도 되는구나. 그게 훨씬 좋겠다. 괜히 걱정했어.”
 “숨길 일 따위 없어.”
 “그래도…….”
 “화나는 소리 했으니까 마셔.”

 나는 당신의 잔에 넘치도록 소주를 따랐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쫍 소리가 나도록 술을 들이킨다. 절대로 끊어서 마시는 일 없이 털어 넣는 모양새를 바라보면서 무거워진 머리를 손으로 괴며 당신에게 시선을 맞춘다.

 “크으…. 네가 대답할 차례니까 너도 마셔야지이.”
 “아직 내 대답 안 끝났어.”

 당신의 작은 손을 끌어다 깍지를 낀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감촉을 길게 느끼고자 한참을 조물거리다가 손등 위에 입술을 꾹 눌렀다.

 “형이 진짜로 행복한 거라면 다 버릴게.”
 “…….”
 “나한테는… 박지민이 일 순위야.”
 “난 전정국이 일 순위인데….”

 울먹이는 당신을 바라보며 남아 있는 소주를 물 컵에 가득 따른다.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꿀꺽꿀꺽 넘긴다. 당신에게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은 넘치도록 들었다. 우리 사이를 뒤틀리게 만들었던, 그리고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야기를 방금 듣고야 말았으니까. 당신은 우리의 아이를 위해 홀로 모든 것을 버리는 선택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슬픔이 아닌 행복이란 감정을 품고서 말이다. 바보 같은 당신은 홀로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혼자 감당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결국 나와 똑같은 짓을 저지르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한계였다.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말. 감당.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머릿속엔 솜사탕 같은 것이 가득 들어찬다. 가볍다. 달콤하다. 나른하다. 우리는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향해 배시시 웃는다. 술기운에 몸을 맡기며 조금 더 많이 지금을 만끽하기로 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셔도 괜찮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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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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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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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