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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34 랠리 씀

Ludovico Einaudi – Giorni dispari

돌연변이
34













 93. 부산



 “운전해서 가는 게 낫지 않아?”
 “안 돼. 너 힘들어.”
 “난 괜찮은데.”
 “그래도 안 돼.”

 정규앨범 컴백을 앞두고 3일간의 추석 휴가가 생긴다고 했다. 뿔뿔이 흩어질 멤버들 사이에서 우리는 또 함께다. 나는 당연히 단둘이 차를 끌고 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형은 장거리 운전을 할 내가 걱정된다는 말로 만류했다. 내심 내 운전이 못미더워서 그러는 건가 싶어서 심술이 났다. 실은 부산에 내려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주전부리를 잔뜩 형의 품에 안겨줄 생각을 했다. 운전을 하는 내 입에 형이 틈틈이 간식을 넣어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둘만의 시간. 얼마나 좋아?

 “KTX타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잖아.”
 “아…. 무드 없게.”
 “사실 나 너랑 기차여행 하고 싶었거든.”

 그의 말을 거역하는 건 힘들다. 결국 나는 삐진 체하며 노트북을 가지고 침대로 갔다. 형은 내 옆에 바짝 붙어 배를 깔고 엎드려 조잘거렸다.

 “막 너랑 계란 까먹고, 손 꼭 잡고 음악 듣고, 마주보고 앉은 사람이랑 인사도 하고. 아, 그건 안 되겠구나. 얼굴 가리고 있어야지. 큭큭. 네 어깨에 기대고 자는 정도는 괜찮겠다.”

 나랑은 조금 다른 감성인가 보다. 귀엽다. 나는 그의 말에 소리 없이 웃으며 KTX 예매 창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입이 떡 벌어졌다. 추석 기차표 예매는 이미 끝나서 잔여석까지 다 매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예매해본 적이 없으니 명절 표 예매일이 따로 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을 리 없다. 멤버 전원이 성인이 된 이후로 매니저 형들은 더 이상 개인 스케줄에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울상을 짓는 형을 보며 깔깔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거봐. 내 차 타고 갈 운명.”

 삐죽 튀어나온 입술에 뽀뽀를 해주곤 우리가 함께할 장거리 여행에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형도 나도, 아직 서로 함께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보니 여느 커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막내가 운전해서 간다고?”

 나는 배낭, 박지민은 작은 캐리어. 스케줄을 마친 새벽,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는 우릴 보며 형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석진 형은 방에 들어와 근엄하게 팔짱을 끼며 못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형들도 슬그머니 모여서 짐을 챙기는 우리 둘을 구경했다. 형들은 웃기다. 꼭 나를 걱정하거나 어린 애처럼 대할 때마다 막내라고 부른다.

 “네. 막내 운전 잘합니다.”

 나는 건조하게 대답하곤 충전기까지 꼼꼼하게 챙겨 넣었다.

 “맞아여. 정국이 운전 잘해요. 열 받으면 고속도로 부앙- 질주하고,”
 “아, 김태형!”

 박지민이 화들짝 놀라 태형이 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슬슬 본다. 기가 차서 웃음이 터졌다. 도대체 저들의 우정은 뭘까. 박지민은 우리 사이의 모든 걸 다 저 형에게 말하는 모양이다. 내가 최영진과 연애상담 문자를 주고받는 거랑 비슷한 건가? 언젠간 태형이 형을 붙잡고 박지민이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또 했는지 낱낱이 물어볼 참이다. 혹시 나한테는 티내지 않았던 불만이나 뒷담화가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태형이 형은 거짓말을 못해서 내가 진지하게 물어보면 술술 말해줄 테니.

 “차 막힐 텐데. 졸음운전 조심해.”

 남준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정국이 너무 커서 기분이 가끔 이상하다니까.”

 호석이 형은 엄마처럼 말했고,

 “정국이는 열여섯 살 때부터 너보다 컸어. 끅끅.”
 “아, 형.”

 석진 형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장난을 쳤다.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리고.”
 “네.”

 윤기 형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식 먼 길 떠나보내는 아버지처럼 용돈을 주겠다며 주머니 뒤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아, 지갑이 연습실에 있네.’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며 손가락 하트를 꺼내보였다. 그 와중에 태형이 형은 ‘제가 연습실 가서 가져올까요?’하고 받아쳐서 윤기 형의 하얀 볼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쨌든 우리다운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는 배웅이었다. 우리가 명절 때 집에 내려가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형들은 오늘따라 이상했다. 그 이유가 ‘연인이 된 전정국과 박지민’이기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신혼부부를 바라보는 심정인 걸까. 형들은 어느새 우리를 한 세트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새벽 세 시에 출발해서 몇 군데 정체구간을 지나자 그 다음부턴 지루한 일자 고속도로 운전이 계속됐다. 애초에 내가 꿈꿨던 장거리 드라이브 데이트와는 사뭇 달랐다. 도로는 온통 깜깜했고,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가기에는 다소 침체된 분위기였다. 새벽이라 그런지 휴게소 안의 주전부리 가게는 문 닫은 게 더 많았다. 내가 졸릴까 봐 덩달아 잠에 들지 못한 형은 입맛이 없는지 밥도 거부했다. 식당 구석에 마주앉아서 나 혼자 국밥을 퍼먹었다. 형은 병든 병아리처럼 몸을 웅크리고 골골거렸다. 내가 꿈꿨던 무드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형, 미안해.”

 박지민 식 감성이 훨씬 나을 뻔했다. 내가 조금만 더 세심했더라면 멋진 기차여행을 선물했을 텐데.

 “뭐가 미안해?”
 “괜히 차타고 가서… 피곤하지.”
 “난 괜찮아. 재밌는데.”

 하나도 안 재미있는 몰골로 그렇게 대답하며 웃는 걸 보니 속이 쓰리다. 나는 조수석에 있는 그를 꽉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엄청 무드 있고 재밌는 드라이브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형 힘들게 해서 마음이 안 좋네.”
 “피곤한 게 아니라 사실….”

 그가 내 몸을 떼어내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프리 히트가 왔어.”

 뺨을 붉히며 하는 말에 저절로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그제야 그의 귀 뒤편에 코를 묻고 체향을 맡았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그의 페로몬이 짙어진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두 달 만이다. 그의 사이클 주기도 나와 비슷한 모양이다. 드러난 형의 목덜미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체온이 조금 높다.

 “왜 말 안 했어?”
 “운전하는 데 방해될까 봐.”
 “바보야.”

 손을 뻗어 그의 블랙진에 가져다 댔다. 앞섶을 만지자 조금 딱딱하게 부풀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형은 아랫입술을 말아 물며 내 손목을 붙잡아 막았다. 나는 알고 있다. 프리 사이클 때 상대의 페로몬이 얼마나 절실한지. 품에 껴안고 체향을 마시며 접촉하는 게 얼마나 큰 안식인지. 나는 얼른 페로몬을 가득 열었다. 금세 차 안에 가득 퍼지는 독한 향기에 형이 숨을 몰아쉰다. 그의 첫 사이클 때 온 신경을 다 쏟아 부었던 게 생각난다. 이번엔 먼저 알아채고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나는 출발하기 위해 시동을 켜둔 것을 다시 껐다. 육체의 피로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얼른 조수석으로 넘어가 시트를 뒤로 밀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 누가 보면…”
 “어두워서 안 보여.”

 갑갑하게 채워져 있는 버클을 풀자마자 단단하게 드러나는 형의 것을 주저 없이 입에 담는다.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던 건지 그의 속옷은 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프리 사이클로 홀로 고통스러워하던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내 온몸으로 그를 달래줄 수 있다. 장소가 어디든 간에.

 “흐….”

 가느다란 신음을 뱉으며 내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는 악력. 바짝 날이 선 허벅지를 손으로 덧그리며 그의 다리를 벌렸다. 시트는 천천히 뒤로 눕혀지고, 나는 그의 가랑이에 고개를 묻은 채 입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랑스러운 그것을 정성껏 빨아준다. 손끝으로는 부드러운 체모와 매끄러운 사타구니, 하얗고 말랑말랑한 둔덕을 지나 그가 가장 원하는 자극을 위해 다가간다. 형이 금세 사정에 이르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축축하게 젖은 입구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이런 쪽으로는 부끄러워하는 편이라 한 번도 내게 말로 설명한 적은 없지만, 형이 뒤로 느끼는 자극을 더 만족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국아….”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애달프게 부른다. 손가락이 침범한 엉덩이를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 벌려가며 하체를 튕기는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는 반응은 내 손짓을 한껏 고조시킨다.

 예전에 그에게 물어본 적 있다. 형도 내 생각을 하며 자위를 하느냐고.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나는 때때로 그를 떠올리며 은밀한 손장난을 한다. 그건 욕구의 충족 여부와는 별개다. 홀로 이불 속에서, 아니면 샤워를 하는 도중에 상상 속의 박지민을 향해 수음하는 건 섹스를 할 때와는 다른 쾌감을 가져다준다. 그 짜릿한 순간을 남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게 당연하기에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형은 나의 어떤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하는지. 그때 형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다가 못 믿겠다는 내 표정에 얼굴을 붉히며 그랬다. ‘아무거나 어떻게 넣어….’

 “아읏… 조금 더….”

 그때 알았다. 당신에게 있어서 진짜 쾌락의 행위는 아래로 받아들이는 쪽이라는 것을. 그게 오메가의 특성인지 내게 길들여진 당신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첫 히트 때 스스로 손가락을 넣으며 안달하던 순간에도 당신은 나를 원하고 있었다. 이 사랑스러운 변화 또한 나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거칠게 왕복하던 손가락을 끝까지 푹 찔러 넣음과 동시에 입 안에 담겨 있는 그의 것이 꿈틀거린다. 내 이마를 밀어내는 손길에 지지 않고 끝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받아 마신다. 투명한 체액으로 흠뻑 젖어버린 내 오른손을 붙잡은 형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하아… 하….”

 극점을 쉽게 들켜버리는 당신이 예뻐서 견딜 수 없다.

 짧은 해소 끝에 좁은 시트에 함께 누워 하나로 겹쳐진다. 숨이 차서 헐떡이는 그의 작은 몸을 꽉 품는다. 형은 내 목에 얼굴을 묻고 길게 호흡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다니는 새벽녘의 휴게소에서 딴 짓을 할 수는 없으니,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가득 안정을 선물하기로 했다. 박동이 빠른 그의 심장소리를 느끼며 천천히 맨살을 만져주었다. 내 위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먼저 접촉해오는 그의 입술을 물고 조심스럽게 키스를 이어간다.

 밀폐된 차 안에는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마찰음만 들렸다. 아직도 캄캄한 밤,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곤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었는지 입을 맞추다 말고 잠든 그의 등을 토닥인다. 이런 시간조차 내게는 소중하다. 생각했던 무드와는 조금 달랐지만,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언제까지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도 무드라면 무드일 테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세 시간이 더 지나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9시간이나 걸렸다. 형을 집 앞에 내려주고 나서 한참이나 사이드미러로 뒷모습을 훔쳐봤다. 고작 하룻밤 떨어지는 건데 자꾸만 아쉬운 생각이 들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겨우 그곳을 벗어나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 묘한 생각이 든다. 내가 자란 동네와 형이 자란 동네는 무척 가깝다. 10km남짓의 거리. 차로는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어쩌면 시내에서 오다가다 한 번쯤 스친 적도 있었을까.

 형이 보고 자랐을 풍경과 내가 보고 자란 풍경이 천천히 섞여간다. 가까이서 자란 우리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같은 회사, 같은 팀으로 만났다. 이제는 서로가 없인 살아갈 수 없는 돌연변이가 되어 평생을 바라보고 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눈앞에는 내가 모르는 형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마트를 돌아다니다가 잠시 눈을 마주친 아이의 모습으로. 나와 다른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중학생 형들 무리 중 한 명으로. 아니면 여름철 바닷가에서 튜브를 타던 소년으로. 어쩌면 내가 얼핏 보았을 수도 있는 무용대회 현수막 속 이름으로.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방금 전 헤어진 박지민이 너무 보고 싶다. 사랑이라는 건, 나 같이 무뚝뚝한 놈도 마구 흔들어놓는다.

 [ 벌써 보고 싶어. ]

 지금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잔뜩 사랑받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알면 뭐라고 해줄까. 유치하다고 하겠지.

 [ 귀여운 것ㅋㅋ ]

 짧은 답장 하나에 푸시시 웃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불치병에 걸린 모양이다.



 본가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정돈되어 있는 내 방 침대에 누워 박지민과 별 내용 없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지금 뭐해? 낮잠 자려고? 몸은 좀 괜찮아? 주로 묻는 쪽은 나였고 형은 느리게 답장을 했다. 몇 년간 붙어 지낸 사람이 내 곁에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안달이 났다. 부산에 함께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수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평범한 전정국과 박지민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심장이 뛴다. 내가 느끼고 있는 애틋함을 당신도 알까. 나와 같을까.

 [ 자, 됐지? ]

 느린 답장에 조금 속 터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편안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서 찍은 셀카였다. 컴백을 앞두고 짧게 다듬은 금발에 뽀얀 민낯. 최근 살이 더 많이 빠져서 갸름한 얼굴. 카메라를 향해 입술을 내밀고 있는 사랑스러운 사진에 바보처럼 헤헤 웃었다. 나는 간지러운 장거리 연애를 하는 기분에 들떠서 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바로 받은 그가 놀란 눈으로 카메라를 보다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 뭐야아. 놀랐네. 웬 영상통화?
 “같이 자자.”
 - 뭣?

 내 말에 그가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더니 얼른 이어폰을 찾아 끼곤 카메라를 향해 삿대질 하며 엄한 표정을 짓는다.

 - 혼날래?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자고 싶어. 안 되겠어.”
 - 우리 꾹이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싫어?”
 - 아니, 진짜 남자친구 같아서.
 “진짜 남자친구지 그럼.”

 화면 속 그가 소리 없이 눈을 휘어가며 웃는다. 나 혼자만 애타는 건가. 심통이 날 것 같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그의 말에 나는 또다시 녹아내린다.

 - 정국아. 너도 기분 이상하구나, 그치?

 나긋한 말투와 싱긋 미소 짓는 얼굴에 홀려서 나는 한참이나 말없이 화면을 바라본다. 고향에서 우리의 운명을 다시 한번 깨달은 바보. 전정국.

 - 부산 오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한 거 있지.
 “응. 나도.”
 -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는 형이랑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

 단지 명절이라 본가에 온 것인데, 마치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는 우리를 억지로 떼어놓기라도 한 것 같다. 손에 잡히는 곳에 있는데 만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렇게나 비약하게 만든다. 곧장 닿을 수 없다는 상실감. 나도 알고 있다. 지나친 생각이라는 거. 먼 훗날 우리가 가족이 되면, 그렇게 해서 당신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되면, 그땐 이 상실감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겠지. 그때까지 나는 형의 애착인형처럼 딱 붙어 있을 작정이다.

 - 우리… 바다 볼래?

 당신이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내가 하려던 말인데.”
 - 흐흐, 역시 내 강아지.
 “집에 안 들여보낼 거니까 부모님 허락받고 와.”
 - 저 집이 좀 엄해서요.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형이 지민이 책임질게.”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10km 떨어져 있는 당신이, 자꾸만 손에 잡힌다. 피부가 닿은 것처럼 따뜻하고 보드랍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것뿐인데 살뜰한 행복이 피어오른다. 아지랑이처럼.


 “해운대에서 만나요. 지민 씨.”
 - 보고 싶어요. 정국 씨.





 94. 운명



 “저기요. 혼자 오셨어요?”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에게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그러자 마스크를 내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그의 앞에 서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알려주실래요?”

 호텔 건물에서 내뿜는 인공 빛이 그의 얼굴에 서린다. 장난기 가득한 내 말에 뺨을 부풀리며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짐짓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꼬아 끼고는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새초롬한 표정을 보니 무슨 대답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죄송한데 저 애인 있어요.”
 “뭐 어때요?”
 “애인이 엄청 힘세거든요. 알파라서.”
 “저도 알판데, 그럼 우리 잠만 자는 건 어때요.”
 “아, 그럼 그럴까요?”

 아씨…. 뭐야.

 “장난해? 그럼 그럴까요라니.”

 내가 표정을 구기며 볼멘소리를 하자 형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역할극을 시작한 건 난데, 갑자기 형이 다른 알파랑 잔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니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형은 내 반응이 재밌는지 계속해서 깔깔거린다. 씩씩거리며 애꿎은 모래를 발로 걷어찼다. 얄미운 고양이는 한참이나 내 얼굴을 살피며 웃더니 양 볼을 잡아 늘린다.

 “귀여워 죽겠네.”

 내 등에 풀썩 올라탄 형을 그대로 들쳐 업은 채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속이 뻥 뚫리는 바다 냄새도 함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나는, 조금 전에 삐졌던 걸 까먹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적한 밤바다. 모래 위를 비추고 있는, 오늘 밤 우리가 묵을 호텔의 조명. 뚱뚱한 그림자. 모든 것이 보기 좋다.

 어릴 적에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 갔을 때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 파도 때문에 물고기들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내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물고기들은 파도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할걸?’ 그 오래된 대화는 내 낡은 그림일기장 안에 귀여운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스무 살이 된 나는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물고기들이 오래도록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와 오메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숫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충분히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순간의 환락, 어둠 끝에 보이는 빛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겪고 겪다 보면 인생의 종착지가 꼭 불행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파도가 우릴 강하게 만든 걸까. 아니면 충분히 강하게 태어난 걸까. 어쩌면 견딜 수 있는 파도만 존재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있잖아, 정국아.”

 목덜미 옆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울린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우리 똑같은 데에 점이 있더라.”

 당신의 손가락이 내 목 옆에 있는 점을 콕 찍는다.

 “몰랐어요?”
 “넌 알고 있었어?”
 “응.”
 “그럼 이것도 알아?”

 내 앞머리를 갑자기 걷어내더니 오른쪽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 찍는다. 그건 미처 몰랐던 부분이다.

 “이마에 점도 똑같대. 신기하지.”
 “그건 몰랐네.”
 “더 신기한 거 보여줄까?”

 당신이 팔을 쭉 뻗더니 내 얼굴 앞으로 오른손을 내민다. 손목을 비틀어서 새끼손가락 아래의 점을 가리킨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그의 옆에 나란히 놓았다. 조명에 반사되어 새끼손가락 아래의 점이 보인다.

 “와, 이것도 몰랐다.”
 “팬들이 찾아냈어. 신기해.”
 “예리하네. 조심해야겠어. 흐흥.”
 “정국이는 형 다 따라하네. 부산에서 따라 태어나고, 점도 따라 하고, 서울도 따라오고,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막 따라 좋아하고. 그래서 나도 너 따라한 거야. 오메가 된 거.”

 기분 좋은 숨이 목덜미에 흩어진다. 뜨끈한 체온과 함께 달콤한 체향이 내 것과 뒤섞인다. 심장이 쿵쿵 뛴다. 내내 생각했던 유치한 단어가 떠오른다. 운명. 당신은 지금 우리가 운명이라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확률이 우릴 더 따라오려나.”
 “너랑 나랑 결혼할 확률. 1.”
 “고작 1이라고?”
 “너 수학시간에 졸았지. 반드시 일어나는 확률이 1이야.”
 “몰라. 난 100퍼센트밖에.”
 “그래. 100퍼센트가 더 듣기 좋다.”
 “그래서 지금 내 프로포즈를 받아준단 소리?”

 내 말에 당신이 장난스럽게 목을 꽉 조른다.

 “세계 돌아다니면서 청혼한다며.”
 “켁.”
 “부산에선 왜 안 하냐 인마.”

 등에 업힌 채로 몸을 굳히며 내 구레나룻을 뽑을 듯이 잡아당긴다. 나는 괴성을 지르고 몸을 비틀며 야단법석을 떤다. 형이 등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내 앞에 마주보고 섰다.      

 “까짓 거, 네가 안 하면 내가 하지 뭐.”

 척. 내 어깨에 올라오는 작은 두 손. 나는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걸 간신히 참으며 진지한 표정의 박지민 씨를 내려다본다. 형은 대체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지, 앞머리를 느리게 쓸어 올리며 눈꺼풀을 가늘게 뜨고 나를 요염하게 올려 본다. 이건 갑자기 무슨 유혹하는 태도지? 나는 눈을 꿈뻑거렸다.

 “전정국이.”
 “…….”
 “니 아를 낳아 줄라니깐, 내랑 같이 살래?”
 “…….”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에서부터 웃음이 폭발할 것처럼 밀고 올라온다. 나는 입술을 꾹 말아 물고 복어 같은 몰골로 흐, 하고 새어나오는 소리를 참았다. 형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도 민망했는지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둑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형, 흐… 뭐,”
 “돼, 됐다. 대답은 안 듣는다. 암말 하지 마.”

 대답하려는 내 입을 확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뒤로 돌아 모래사장을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내 머리 위로 물음표 여러 개가 쏟아졌다. 빨개진 얼굴로 쏜살같이 도망치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얼떨결에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은 실없이 터졌다.

 “왜 뛰어! 푸하하. 미치겠다. 서 봐요!”
 “따라오지 마!”
 “어디 가는데?!”
 “아 몰라!”

 야밤에 뜬금없이 모래사장을 질주하는 장면이 어이없어서 나는 미친 듯이 웃어재꼈다. 형은 자그마한 몸으로 어찌나 빠른지 잽싸게 나를 피해 도망친다. 뱃가죽이 당겨서 기절할 것 같다. 우린 지금 왜 뛰고 있지? 창피해서 도망가는 거야? 진짜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형! 너무 터프해요! 반했어!”
 “야! 시끄러워! 따라오지 마!”

 나를 웃게 한 당신의 청혼에 대한 답은 침대 위에서 해주기로 했다. 해운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에서, 아마도 날이 샐 때까지. 그 전에 일단 저만치 도망가고 있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잡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부디 운명에 감동받아 달리기로 마무리 짓는 우리의 난동을 알아본 사람이 없길 바라며.





빵빠레  |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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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 190603   
랠리님 단 거 너무 한입에 많이 넣으면 막 입이 얼얼하고 이도 흔들리는거 같은 그 느낌 뭔지 아시나요ㅠㅠㅠㅠㅠ 이번화가 꼭 그래요 국민 너무 이쁘게 사랑하자나요ㅠㅠㅠㅠ 특히 바닷가에서 쾌남모먼트로 먼저 프로포즈하고 급 달리기하는 지민이 왤케 현실감 넘치는짘ㅋㅋㅋㅋ 국민 진짜 이럴거 같아서 읽는 내내 광대 터져나가는 줄 알았따구요ㅠ
iluvThem  |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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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생인데도 불구하고 보게 만드는 믿보 랠리님...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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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007   
맨 마지막 문장.... 아무 의미 없는거죠 ㅠㅠ
노랑양말  | 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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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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