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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애 15 랠리 씀

김광현 - 벚꽃지다

아는 애
15













 지민은 자칫하면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뜨거운 몸을 부대끼며 갈증이 나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술을 찾는 정국의 몸짓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제 위에서 입을 맞추는 정국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정국의 향기가 느껴지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그를 그리워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꼭꼭 숨겨왔던 감정들이 버겁게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에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더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바짝 붙어 있었지만 더더욱 정국을 끌어당겼다. 체온으로 뜨겁게 달궈진 정국의 팔이 지민의 허리에 감겼다.

 혀를 감아올리는 느낌에 온몸에 털이 쭈뼛 설 만큼 전율이 올라왔다. 등줄기가 서늘해질 만큼 다가오는 충격적인 감각에 입술을 벌린 채로 몸을 비틀었다. 그럴 때마다 정국은 단단한 팔로 자신의 몸을 더 세게 감싸 안았다. 더운 숨이 뒤섞였다. 잠시 입술을 떼어 날숨을 쉬자마자 조급하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꺾어 키스해오는 정국을 밀어내기 힘들다.

 한참이나 침대 위에서 몸을 바르작거리며 입맞춤에 열중했다. 성치 않은 몸에 숨이 차는지, 정국이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그 열기가 미치도록 좋아서 지민은 잔뜩 달라붙어 비벼지는 다리를 들어 그의 허벅지 사이로 얽었다. 정국은 그런 지민의 반응에 앓는 소리를 내며 통통한 아랫입술을 문지르고 빨았다. 제 몸의 아픔도 잊었는지, 받쳐 세운 팔과 가슴팍 사이에 지민을 가둬놓고 한참이나 목마른 사람처럼 지민의 입술을 찾았다. 마치 긴 시간 만질 수 없었던 것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고개가 비틀릴 때마다 앞니끼리 부딪치기도 하고, 혀를 빨아 당길 때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부드러운 입 안에서 마음껏 움직이는 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민은 정국의 열이 자신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딱딱해진 두 사람의 하체가 맞닿았다. 오래 지난 언젠가를 기억하듯 몸이 달아올랐다.

 “하…….”

 정국의 뜨거운 손이 조심스럽게 지민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지민은 자신의 귓가로 옮겨지는 정국의 입술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충동이 자꾸만 밀려왔다. 이대로 정국과 잠자리를 한다고 해도 하나도 어색할 것 없는 분위기였다.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한 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지민이 떨리는 손으로 제 위에 있는 정국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귓가에서 정국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축축한 소음이 들렸다. 귓바퀴를 물고 뜨거운 혀가 귀 안쪽을 쓸어내리는 통에 지민은 당장이라도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천 쪼가리를 벗어 던지고 그와 맨살을 비비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귓불을 핥고 귀 뒤편을 정성껏 애무하던 정국이 천천히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어느덧 단추 네 개가 풀려 지민의 하얀 가슴팍이 드러났다. 지민은 넘실거리는 충동에 눈을 질끈 감고 정국의 숱 많은 머리카락 안으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정국의 숨결이 살갗을 타고 내려가 쇄골에 닿았다. 부드러운 점막이 쇄골에 닿고, 조금 더 내려가 가슴까지 점령했다. 정국의 머리칼을 쥔 지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민아.”

 춥, 추웁, 피부를 유린하는 소리가 멈추고 당장이라도 녹아 흐를 것 같은 정국의 음성이 들렸다. 지민은 눈을 뜨지 못한 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어깨와 가슴팍이 마구 오르내릴 정도로 호흡이 가빠졌다. 정국이 지민의 가슴 위에 키스를 하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달아오르는 몸에서 떨어져나간 정국 때문에 지민의 눈꺼풀이 느리게 열렸다.

 정국이 까맣고 축축한 눈망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내밀면 입술이 닿을 거리에서 뜨거운 숨을 뱉으며 한참동안 얼굴을 마주보았다. 지민은 발갛게 홍조가 오른 얼굴로 그에게 눈을 맞추며 자꾸만 울고 싶은 감정을 꾹 삼켰다. 왜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지. 지금 이건 내가 실수를 한 걸까. 지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던 순간의 감정이 떠올랐다. 말없이 우는 정국을 본 순간 화가 났고, 슬펐고,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혔으니까.

 “나한테 오면 안 돼?”
 “…….”
 “안 될까?”

 똑바로 시선을 맞춘 채로 애타게 속삭이는 정국의 말에 지민의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핏기가 가실 만큼 꽉 깨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뿌연 시야에 눈물이 가득 차니 정국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민이 눈을 꽉 감아 눈물을 주르륵 쏟아 내렸다.

 정국이 지민의 풀려 있는 셔츠 단추를 다시 꼼꼼히 채우기 시작했다. 내리깐 그의 속눈썹 역시 푹 젖어 있었다. 지민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 열기에 가늘게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느릿하게 단추가 다 채워지자 지민은 제 손등으로 울고 있는 눈을 가렸다. 엉망으로 일그러져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흐느끼는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거지. 지민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좀처럼 추스르지 못하고 어깨를 떨어가며 울었다.

 “박지민, 사랑해.”
 “흐… 흐윽….”
 “사랑해 지민아. 진짜 많이 사랑해.”

 정국이 그의 손을 거둬내며 울고 있는 지민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다시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입술을 찾았다.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는 지민을 달래듯 입술을 부드럽게 핥아나갔다. 지민은 다시 닿아오는 접촉에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수만 있다면 탓하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상은 자신 하나였다. 긴 시간 꼬이고 엉켜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감정선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통 모르겠다.

 엉엉 우는 지민에게 짧게 입을 맞춘 정국이 그의 머리통을 끌어당겨 안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지민에게 모두 들려주며 가만히 등을 쓸어 만졌다. 지민이 실컷 울고 난 뒤 지쳐서 잠에 빠져들 때까지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그를 품었다.

 지민의 마음도 자신과 같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음 또한 안다. 자신이 지민을 괴롭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사랑에 미쳐서,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하루라도 빨리 지민을 되찾고 싶어서. 그게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처음이었고, 이젠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지민은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






 지민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생활했다. 정국과 입을 맞춘 후로 뇌의 활동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패닉이 온 것처럼. 지민의 안에는 정국을 향한 감정과 함께 지독한 죄책감이 찾아왔다. 더는 안 되겠는데,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마음이 시키고 있는 게 어떤 것인지는 점점 더 선명해지는데, 그러려면 태형을 놓아야하는 게 우선이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토록 괴로울 일도 없었겠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촬영장에서 정국을 보았다. 상의 탈의를 하고 운동을 하다가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지면 촬영, 그리고 TV 광고 촬영. 지민은 촬영이 있을 때마다 구석에 앉아서 정국이 촬영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았다. 쉬는 시간마다 정국이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만져주는데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뮤지컬 연습을 병행하는 것이 힘든지 정국의 몸은 말라 있었다. 촬영을 위해 몸 관리에 신경 썼는지 그의 벗은 상체에는 근육이 탄탄하고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지만, 지방이 빠져서 가늘어진 허리와 옴폭 패인 양 뺨은 숨길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처럼 마음고생을 하느라 그 역시 신체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민은 제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입을 맞춘 이후로 정국이 다시 스킨십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심해처럼 깊었다. 촬영장 구석에서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고 있던 프로의 모습을 하다가도, 넋을 놓고 있는 자신의 앞에 다가와 어린 애처럼 웅크리고 앉아 땀도 닦지 않은 얼굴로 해맑게 웃어주었다. 홀쭉해진 뺨으로 웃으며 지민의 손을 꽉 잡으며 그랬다.

 ‘기다릴게.’
 ‘…….’
 ‘7년을 기다렸으니까, 더 기다릴 수 있어.’

 지금은 널 볼 수 있으니까. 속삭이듯 덧붙이며 손등을 만져주던 감촉. 그것들을 하나하나 회상하며 지민은 축 처진 어깨로 한숨을 내쉬었다.

 태형은 며칠 째 계속 잠들지 못하고 몰래 한숨 쉬는 지민을 신경 쓰느라 쉽사리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옆에 누워서 깨어있는 채로 미동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지민을 모를 리 없었다. 태형은 잠든 척하며 지민의 뒷모습을 끌어안았다. 만약 지민이 잠든 줄 안 자신을 밀어냈더라면 그의 한숨의 끝이 무엇일지 예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민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누워 있다가 끌어안으면 몸을 돌려 함께 끌어안아주고, 눈을 감은 태형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기도 했다. 태형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일부러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지민이 회사 일로 계속해서 정국을 만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 불길이 솟을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신의 사랑이 형편없다고 독설을 쏟아내던 정국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가시처럼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자신이 어디까지 신경 써야 하고,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그 적당한 선이 흐려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지민에게 서운해 하는 감정이 맞는 건지, 이런 상황에서 지민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이 집착인 건지, 소유욕은 아닌지, 사랑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지. 제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온전히 혼자 풀어야 할 실타래인 것 같아서. 너무 답답해서.





*






 간만에 찾아온 공휴일에 지민은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가 쌓여 있었는지 12시간 가까이 잤음에도 온몸이 찌뿌둥했다. 점심때가 넘어서야 잠에서 깨 거실로 나가자 태형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쇼핑백 안에 빈 반찬통을 담고 있는 것을 보니, 본가에 가려는 모양이었다. 주기적으로 태형의 어머님이 김치나 반찬을 만들어 주셨는데, 둘 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집에서 끼니를 챙기는 일이 적어선지 그 간격이 제법 벌어졌다.

 “본가 가게?”
 “응.”
 “너희 집 김치가 진짜 맛있는데, 요즘은 금방 쉬어버리더라. 어머니 힘드실 텐데 이제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거 어때?”
 “같이 가서 말하자.”

 태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사귀면서 서로의 본가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사내 녀석들끼리 오랜 자취를 한다는 것은 늘 부모님들의 걱정거리였다. 밥은 잘 챙겨먹는지,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술은 너무 많이 마시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 가득한 잔소리가 늘 때마다 종종 함께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한동안은 잔소리 듣는 일이 줄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태형은 지민의 듬직한 친구 노릇을 단단히 보여줬고, 차분한 지민의 성격은 철없는 태형을 잡아주는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서로의 본가에 놀러갔다 오고 나면 이제 잠시 잔소리 해방이라며 킬킬거렸다.

 “우리 집 갔다가, 너희 집도 갈까?”
 “그래. 오랜만에 그러자.”

 새삼 태형과 함께한 추억이 참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지민은 외출 준비를 하며 부스스하게 웃었다. 그 웃음 끝엔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있었다.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많은 기억들. 정국과의 추억은 긴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잊어갔지만, 태형과의 시간은 그것의 몇 배가 될 만큼 많았다. 온종일 붙어 있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서로에게 물들어간 것들. 그건 시간이라기보다는 세월이라는 말이 맞았다.

 지민은 자기도 모르게 ‘정리’라는 단어를 떠올린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태형의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둘 다 취직 후 처음으로 방문한 터라 가족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이런저런 물음이 이어졌고, 태형과 지민은 번갈아가며 회사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부모님께 정성껏 대답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태형의 어머니는 지민을 제법 마음에 들어 했는데, 마냥 철부지 막내 같던 태형이 지민과 함께 있으면서 점잖아졌다고 믿으시는 모양이었다. 사실 태형은 처음 만난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자신을 붙잡아주던 든든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둘 다 취직하고 나니까 이제 마음이 좀 놓이네. 지민이는 회사 다니니까 더 성숙해졌네. 우리 태형이는 아직도 애 같지?”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놓은 태형의 어머니가 지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웃었다. 태형과 많이 닮아 있는 외모.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미소를 가진 어머니의 말에 지민이 애교스럽게 대답했다.

 “얘가 얼마나 어른스러운데요. 제가 취업준비로 힘들어 할 때 태형이 덕분에 버텼어요. 아마 제가 더 애 같을걸요?”
 “김태형이? 웬일이야.”
 “엄마 아들 이제 스물일곱이거든? 좀 있으면 서른이라고오.”

 태형이 포크에 찍은 사과를 지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민은 과일을 받아들며 그의 말에 풋 웃었다. 스물일곱. 몇 년 뒤 서른.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이였는데, 어느새 이십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게 어색했다. 태형은 본가에 올 때마다 평소보다 더 어리광 피우는 막내 같이 굴었다. 지금도 부모님께 조잘거리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면, 조금의 근심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최근 자신과 태형 사이에 있었던 말 못할 불편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태형은 감정 컨트롤이 능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민아, 우리 태형이 연애는 좀 하니?”
 “네?”
 “이 녀석이 여자친구 소개해준 적이 없잖아. 원래 친구들끼리는 그런 말 서슴없이 한다며? 태형이 연애하는 거 본 것 있으면 아줌마한테 귀띔 좀 해줘.”

 어머니의 말에 지민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끄덕거렸다. 그러자 태형이 과일을 우적우적 씹으며 대답했다.

 “나 여자친구 안 사귀었어.”
 “으이구, 자랑이다.”

 태형의 대답에 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줬다. 그리고는 지민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민아, 아줌마는 쟤 장가도 못 갈 것 같아서 걱정이야. 스물일곱인데 여자도 안 사귀고 뭐했대? 지민이는 여자친구 없니? 소개 좀 시켜줘.”
 “아… 네. 그럴게요.”

 지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나 장가 안 갈 건데.”

 태형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말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태형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못하는 말이 없어. 지금부터 여자를 좀 만나봐야 결혼도 잘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다 노총각 된다?”
 “…….”
 “지민아, 태형이가 인기가 그렇게 없어?”
 “아, 저도 잘…”

 지민은 가슴 속에 얹힌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 여자와 평범한 연애를 했다던 태형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살던 태형을 이쪽으로 끌어들인 게 자신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지민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태형은 자신이 아니라면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다고 자신이 태형에게 긴 시간 행복만을 준 것도 아니었다. 정국을 잊어가려고 노력할 동안 긴 시간 제 곁에서 끙끙 앓았던 걸 모르지 않았다. 더 큰 죄책감이 몰아쳤다.

 “엄마, 아빠. 나 말할 거 있어.”

 그 순간 태형이 평소 부모님께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지민은 고개를 돌려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태형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민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태형이 지금 무슨 폭탄 같은 말을 던지게 될지.

 “응? 뭔데?”

 부모님도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태형에게 주목했다. 지민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씹어 넘기던 과일이 목에 콱 틀어 막히는 기분이다. 가슴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렸다. 그리고 그런 지민의 불안을 사실로 만들려고 하는 듯, 태형이 말을 이었다.

 “나 지민이랑,”
 
 콜록, 콜록.

 지민이 다급하게 기침을 하며 태형의 허벅지를 손으로 세게 잡았다. 태형이 말을 잇다 말고 놀라서 지민을 돌아보았다. 기어코 목구멍에 걸린 과일에 지민의 얼굴에 피가 새빨갛게 쏠렸다. 지민이 가슴을 치며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지민이 목에 걸렸어?”

 콜록, 콜록. 어머니가 급하게 물 컵을 내밀었다. 지민은 받아서 마시다 말고 큽!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사레들린 듯 죽을 듯이 기침을 하는 통에 지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민이 급하게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태형의 손목을 꽉 붙든 채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태형의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탁, 화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지민은 변기통을 붙잡고 먹었던 것을 게워냈다. 태형이 놀란 얼굴로 그의 등을 두들겼다.

 “지민아 괜찮아?!”

 팡팡 등을 두들겨주며 걱정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지민은 변기 물을 흘려내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물을 틀어 입을 헹구고, 토악질 때문에 반사적으로 솟아오른 눈물을 훔쳐냈다. 거울 너머로 태형의 놀란 표정이 보였다. 지민은 입술을 말아 물고는 수돗물을 그대로 틀어놓은 채로 태형을 화장실 벽으로 바짝 밀쳤다.

 “너 지금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지민이 목소리를 낮추고 쏘아붙였다. 갑자기 날카롭게 물어오는 지민으로 인해 태형이 미간을 좁히며 눈을 껌뻑였다.

 “무슨 말 하려고 했어? 나랑 지민이랑, 그 다음 말 뭐였냐고.”
 “왜 화내?”

 태형이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그래. 너랑 만난다고. 앞으로도 너랑만 살 거라고.”
 “하….”

 그의 말에 지민이 한숨을 몰아쉬며 제 이마를 짚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던 태형이 지민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말하면 안 돼? 왜 이렇게 화를 내?”
 “그럼 화가 안 나?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어차피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던 거잖아.”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너 혼자 결정하고 말해?”

 지민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태형을 올려다보며 씩씩거렸다.

 “네가 상관없다고 했었잖아. 지민아.”

 사실 태형의 말이 맞았다. 지민은 예전에 태형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성 지향에 대해 가족들에게 털어놓는 건 상관없다고 말한 적 있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지민이 화가 나는 건, 단순히 태형이 커밍아웃하려고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왜 갑자기 네 멋대로!”

 지민은 언성을 높이려다가 꾹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태형이 부모님께 말하려던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던 이유에 대해 되새겨 보았다. 태형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까 봐 무서웠던 걸까. 아니, 그 뒤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지민은 차마 그걸 말할 수 없어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
 “…….”

 태형이 지민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고, 마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일렁거렸다. 지민은 계속해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더는 주체하지 못했다.

 “나 갈게.”
 “박지민.”
 “지금 네 얼굴 못 보겠어.”
 “내가 성급했어. 미안해.”
 “…갈게.”

 지민이 태형의 눈을 피하며 화장실 문을 열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자 태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민을 붙잡았다. 그의 힘에 밀려 이번엔 지민의 등이 벽에 밀쳐졌다. 태형이 눈물을 가득 단 채로 몸을 떨며 물었다.

 “전정국 때문이지?”
 “…….”
 “너 이러는 거 전정국 때문이야? 그래?”

 태형의 입에서 그 이름 세 글자가 나왔다. 지민은 자신을 몰아세우는 태형에게서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 마음은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기에. 태형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끝까지 물어온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지민이 재빠르게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빠르게 달려가 태형의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향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요.”
 “어머 지민아, 속이 많이 안 좋니?”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 죄송합니다.”

 지민이 정신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들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태형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지민은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태형이 달려와 팔을 잡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세게 뿌리쳤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민은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넋을 잃은 채 다시 앞만 보고 달렸다. 태형의 집 마당을 빠르게 가로질러 달려 대문을 열었다. 태형이 화난 사람처럼 다시 지민을 붙잡았다.

 “어디 가는데!”
 “제발… 제발 태형아. 잠깐만 놔 봐.”
 “어디 가냐고, 지민아. 휴… 내가, 내가 미안해.”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민이 멍한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태형의 손을 떼어냈다. 지금 이 순간 닥친 모든 상황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복잡한 상황. 어려운 관계. 당장 이 상태에서 벗어나 정처 없이 달리고 싶었다. 지민이 울면서 뿌리치는 모습에 태형이 눈을 질끈 감으며 턱을 바들바들 떨었다.

 지민은 정신없이 달렸다. 제 뒤를 따라 달려오며 이름을 부르는 태형의 소리를 못들은 체하며 뛰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급히 잡아탔다.

 “지민아! 박지민!”

 무작정 출발해달라는 말에 택시가 움직였다.

 지민은 제 뒤를 따라 달리다가 점차 멀어지는 태형의 모습을 보고는 허리를 숙여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뜬 태형의 이름에 지민은 더 큰 소리로 흐느꼈다. 뒷일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방황하면 할수록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태형도 정국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서로를 좀먹어 가는 이 상황에서 도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 아무것도 없던 백지상태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jmsk  | 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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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아 또 들어왔니?  | 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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