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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36 랠리 씀

Armand Amar - Inanna

돌연변이
36













 98. 사랑해서



 허벅지의 주사 자국을 숨기는 건 쉽다. 형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감출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애초에 형은 나완 달리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거나 핥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주로 그러는 건 내 몫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그런 면에선 부끄러움이 많은 형이기에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나는 허벅지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바늘을 찔러 넣었고, 혹시라도 형이 볼까 봐 길이가 조금 긴 드로즈를 입어서 주사자국을 가렸다.

 그렇게 하면 형이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겉으로 드러난 신체의 한 부분은 숨길 수 있어도 내 행동의 미세한 변화까지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었나. 매일 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형 앞에서 감히 그걸 숨기려고 했다니.



 프리 러트 내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형은 나와 계속 접촉하며 끊임없이 보살폈다. 콘서트를 위해 일본으로 오는 길에 몇 번이나 쓰러질 뻔했지만, 내 곁에 그가 딱 붙어 있다는 걸 상기하며 정신력으로 버텼다. 형은 비행기에서도, 호텔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내내 내 손과 팔을 주무르며 좀처럼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고열 때문에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다.

 “약은 왜 안 탔어?”
 “처방… 없던데.”
 “말이 돼? 열이 이렇게 펄펄 끓는데.”
 “나도 몰라.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열이 왜 올랐다 내렸다가 하지?”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다. 주사를 맞은 직후엔 괜찮았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넝마처럼 변해버렸으니까. 나는 숨이 가빠오는 걸 꾹 참으며 형의 품에 잠자코 안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열 증세 말고 다른 건 다 괜찮은 척 연기하려 애썼다. 눈앞은 흐리고 귀에는 이명이 들려서 형의 말을 몇 번이나 못 알아들었지만, 피곤해서 그렇다는 핑계를 댔다. 심장이 주체 못하고 뛰는 것은 형과 포옹하고 있어서라고 둘러댔고, 머리가 둥둥 울려서 화장실로 향하다 말고 비틀거렸을 때는 발목이 아파서 삐끗했다는 변명을 댔다. 이보다 어설플 수가 있을까. 그러나 형은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형이 절대로 모를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별것 아닌 감기 몸살에 걸린 것으로 믿고 있을 거라고.

 프리 러트의 마지막 날, 나는 다른 때처럼 잠든 형을 뒤로 하고 숨죽인 채 주사약을 꺼냈다. 형이 샤워할 때 몰래 주사기와 약품을 호텔방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그걸 꺼내서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앉아서 주사기의 뚜껑을 입에 물어 뜯어냈다. 딱 소리와 함께 뾰족한 바늘이 나타나고, 나는 익숙하게 앰플을 채워 넣었다. 수없이 많이 맞았던 주사지만 늘 바늘을 꽂아 넣기 전엔 식은땀이 났다.

 “휴….”

 형이 평소보다 늦게 잠드는 바람에 시간이 늦춰졌다. 약효가 떨어진 지 오래라 끙끙 참으며 괜찮은 척하느라 고통스러웠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허벅지 안쪽 살에 알코올 솜을 문질렀다.

 “윽.”

 여전히 아프다. 도통 적응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망설임 없이 찔러 넣은 주사 바늘은 약을 몸속으로 밀어 넣으며 지독한 통증을 선사했다. 나는 상체를 굽혀 다리에 묻은 채 달달 떨었다. 차가운 약기운이 허벅지에서부터 몸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경 세포가 펄떡이면서 저절로 어금니를 꽉 깨물게 하는 아픔. 하지만 이것 또한 조금만 견디고 나면 거짓말처럼 나아질 것을 알기에 버틸 수 있다.

 질끈 감은 눈을 뜨자 반사적으로 흘러나온 눈물 때문에 눈앞이 뿌옇다. 나는 손등으로 그걸 훔쳐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발견하고 말았다. 내 곁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박지민을.



 “…….”
 “…형.”

 형에겐 이런 장면이 처음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눈물을 가득 매달고 있는 얼굴을 보자마자 맥이 탁 풀린다. 순간 안일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탓하기 시작한다. 바보 같이…. 박지민을 우습게 본 모양이다. 내가 그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그도 내게 하루의 주파수를 모두 맞추고 있을 텐데.

 “주사… 왜 맞아?”
 “…….”
 “뭐 때문에 몰래….”
 “형.”

 나는 식은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 한 줄기가 볼 위를 간지럽게 타고 내려온다. 형이 얼른 내 앞으로 다가와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리는 내 다리를 붙잡는다.

 “정국아. 뭐야. 무슨 주사야?”
 “…….”
 “너 아픈 거, 지금 아픈 거 때문에, 하…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주사기를 그렇게 막 줄 리가….”
 “…….”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진다.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보았지만 소용없다. 안면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프리 러트 때문이야? 맞지. 너 예전에 주사 맞았던 거, 그거 때문이지. 내 페로몬이 소용없어서… 그래서 그런 거지? 응?”
 “…….”
 “정국아…. 울지 말고 형한테 말해 줘.”

 형, 난 미친놈이 아니야. 형한테 집착해서도 아니야. 형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걱정 돼서 그런 거야. 형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데…. 이해해줄 수 있어?

 “응? 갑자기 왜 네 몸이 달라진 거야. 말해줘. 울지 말고. 정국아… 형 마음 아파.”
 “…흐윽.”
 “얼른. 우리 서로 솔직해지기로 했잖아.”
 “흐으…….”
 
 그가 내 얼굴을 부여잡고 눈을 맞춘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엄지로 훔쳐내며 뺨을 어르고, 끅끅 터지는 울음과 함께 흐르는 침을 닦아주고.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주며 하염없이 나를 달랜다. 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로 마음 속 깊이 파인 골짜기에 숨어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낸다. 어디까지 꺼내야할지, 얼마만큼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복잡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두었다.

 “나… 괜찮은데… 정말로… 다 괜찮거든? 형, 근데… 흑, 지금이 너무 좋아서… 나, 그냥, 지금 형 모습이 너무 좋아서….”

 두서없이 나오는 말에 나조차도 갈피를 못 잡겠다. 형은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내게 집요하게 눈을 맞춘다. 푹 젖은 속눈썹이 무거워 눈을 들지 못하겠다. 내가 자꾸 시선을 피하려고 할 때마다 형이 내 뺨을 흔들며 자신을 보게 한다. 그 태도가 단단해서 나는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다.

 “아기는 언제든, 흐윽, 가질 수 있으니까…. 형이 지금, 너무 행복해하니까…. 근데 나는 너무 불안해서… 막… 러트가 오면….”
 “하아…….”

 그가 짙은 한숨을 쉬며 내 머리통을 끌어안는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의 품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당신이 내게 지칠까 봐 두렵다. 아직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실망스러워서 정 떨어진다고 하면 어쩌지. 마음에 병이 생겨버린 내가 이상하다고, 지긋지긋하다고, 왜 내 행복을 네 마음대로 판단하느냐고,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그런 무서운 말들로 나를 결국 놓아버리면….

 “아이고….”

 그가 괴로운 목소릴 낸다. 당신의 숨소리에 섞여 있는 탄식에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 같다. 어쩌면 난 정말로 미친놈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된 마음의 병이 이제야 나타났을 수도 있다. 나만 몰랐던 거였을 뿐, 정상궤도를 벗어난 지 오래된, 아주 답답하고 멍청한 그런 놈 말이다.

 “정국아, 나는…”
 “불안해요.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어. 형. 근데 내가… 흐으…. 마음대로 안 돼. 병인가 봐. 어쩌면… 공황장애보다 더 심각한 병인가 봐. 형, 나 진짜 아픈가 봐…. 미친놈 아닌데, 미친놈 맞을 수도 있나 봐.”
 “아아…….”

 비참한 고백에 그가 내 목을 허겁지겁 당겨 안으며 등을 문지른다. 덜덜 떨리는 내 몸을 진정시키려는 듯 온몸에 힘을 주어 끌어안는다. 그 접촉마저 두렵다. 이제는.

 “내 강아지….”
 “…….”
 “아… 우리 정국이. 어떻게 하지.”
 “흐으…….”
 “우리 정국이….”

 그러니 당신이 나를 가엾게 여기는 건 아무래도 괜찮다.  

 “정국아. 네가 이상한 거 아니야.”
 “…….”
 “사랑해서 생긴 병이야. 우리 불쌍한 정국이.”
 “…….”
 “내 사랑하는 정국이.”


 그래. 실컷 불쌍해 해. 싫어하지만 말아.








 99. Flashback (from 지민)


 
 “그래. 실컷 불쌍해 해. 싫어하지만 말아.”

 이 바보는 또 내게 그런 소릴 한다. 내가 절대로 너를 싫어할 리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지. 너의 허벅지에서 뽑아낸 바늘을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붉은 자국이 난자한 다리 위에 뺨을 기댄다. 기체가 웅웅 울리는 소음은 우리 둘이 훌쩍이는 소리를 먹어치운다. 비행기 안의 좁은 화장실이지만 괜찮다. 늘 홀로 아파하던 너에게 처음으로 주사를 놔준 날이니까. 우리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 어디든 상관없다.



 빌보드 시상식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길. 나는 프리 러트를 맞은 네가 장시간 비행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우리의 사이클은 어느새 거짓말처럼 똑같은 간격으로 찾아왔다. 나는 프리 히트가 오기 전부터 스스로의 체향만으로 예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오메가가 되었다. 그러니 나의 사이클은 곧 너의 사이클이 된다.

 이번엔 또 어떤 증상이 너를 괴롭힐는지 나는 무척이나 예민해졌다. 너에게 처음 러트공황이 찾아온 11월. 그 후로 세 번째 맞이한 사이클이다. 주사를 조금이라도 늦게 맞으면 너는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아파했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끙끙 앓기도 했다. 물밖에 방치된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일 때는 내 가슴이 갈가리 찢어질 것 같았다. 화장실 문 너머로 네가 스스로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으며 괴로워하는 소릴 들으면, 그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서 슬프기도 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좌절케 했다. 네가 마음의 짐을 지게 된 건 온전히 나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게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말걸. 아니면 그냥 네가 어떻게 하든 내버려 둘걸. 너의 마음은 대체 얼마나 더 큰 걸까.

 비행 중에 화장실로 달려가는 너를 따라 들어가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나를 붙잡아온다. 나는 네게 키스를 퍼부으며 바보처럼 울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입술을 붙이며 씩씩거렸고, 나는 너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넣었다. 저호흡과 과호흡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같다. 너는 단지 내가 주는 숨을 들이마시며 느리게 심호흡했다. 나와 속도를 맞춰서, 아주 천천히. 이 끔찍한 프리 러트가 끝나면 너는 다시 원래의 전정국으로 돌아와 나와 함께 끝내주는 밤을 보낼 것을 안다. 그러나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참 야속하다. 속상하다. 나는 너의 페로몬으로 인해 편안해지는데, 너는 러트가 올 때까지 앓는다니. 네 몸이 원망스럽다. 왜 두려워 해. 왜 그 공포를 자꾸만 기억해. 우린 점점 나아지고 있잖아.

 ‘이제 됐어. 자리로 가. 나 주사 놓으려고.’
 ‘내가 해줘도 돼?’

 그래서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하기로 했다. 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너의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해서, 이를 꽉 깨물고 한 번에 푹 찔렀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생겨난 걸까.

 우리는 청승맞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울었다.



 “누가 너 싫어한대? 죽을 때까지 안 싫어.”
 “…알아.”
 “이 멍청아.”
 “…….”
 “내가 어떻게 하면 나을래?”

 내 물음에 너는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내가 형 안 사랑하게 할 수 있어?”
 “…….”
 “그거 말곤 없을 텐데.”

 약기운이 금세 돌았는지 너는 피식 웃는 여유를 부리며 숨을 몰아쉰다. 네 말에는 스스로 이겨낼 거라는 뜻이 담겨 있다. 너는 내게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니까 그렇게 믿고 싶다.
  
 

 2017년 5월 20일 새벽.
 
 나는 다짐을 반복한다.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언젠가 네가 내게 물었던 질문을 되새기면서 끝까지 해보려고.
 
 ‘형은 날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다. 전부 다.

 
 











(+)

기나긴 서사를 딛고 드디어 2017년 5월로 되돌아왔네요. 플래시백은 참고로 1편의 에피소드 2에 나왔던 현재의 시점입니다.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시겠죠(...) 현재의 시점이라는 건, 완결이 2017년에서 끝난다는 뜻입니다. 돌연변이 중간중간 시간 점프를 할 때마다 2017년 빌보드 이후가 나왔어요.

사족을 길게 덧붙이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플래시백을 쓰기 위해 꾹꾹 참아왔던 게 많아서 안 쓸 수가 없네요 흑흑. 저 혼자만의 희열이에요.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지만 그건 완결 후 작가의 말에서 풀어볼게요. 얼마 남지 않은 돌연변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리  | 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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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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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니  | 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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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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