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ALL 돌연변이 (54) 아는 애 (27) 아마겟돈 (33)
아는 애 16 (上) 랠리 씀

Ludovico Einaudi - In un'altra vita

아는 애
16 (上)













 “얘가 연락도 없이 웬일이래? 너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럽게 본가에 나타난 지민을 보며 가족들이 놀라서 물었다. 빨갛게 짓무른 눈가, 누가 봐도 실컷 울다가 온 모습이었다. 지민은 아무렇지 않은 척 코를 훌쩍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나 지민의 어머니는 신경 쓰이는지 그의 방까지 졸졸졸 따라오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무슨 일 있지? 네가 갑자기 집에 올 애가 아닌데.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지민은 비어 있는 자신의 방 문을 오랜만에 열었다. 엄마의 쏟아지는 물음에 딱히 대꾸하지도 못했다.

 “엄마, 나 여기서 잠시 지낼게.”
 “너 태형이랑 싸웠니?”

 그러나 태형과 함께 자취하는 집을 나와 잠시 지내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금세 눈치 챈 듯했다. 지민의 입이 합 다물렸다. 생각을 금세 읽혀버리는 솔직한 몸, 그걸 가장 잘 아는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지민의 등짝을 툭 쳤다.

 “다 큰 놈들끼리 싸우고 앉았어!”
 “…….”
 “그렇다고 집 나오면 어떻게 해. 좋게 좋게 풀어야지. 일이 년 같이 산 것도 아니고.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심하게 다퉜니?”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지민은 제 침대에 털썩 앉으며 종아리를 달랑거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머뭇거리며 하는 행동이었다. 어머니가 그의 옆에 앉아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민은 또다시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의 손을 끌어다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얼른 화해하고 주말에 태형이 데려와. 못 본 지 오래됐네.”
 “…….”
 “엄마가 태형이 혼내줄까? 왜 우리 아들 쫓아내냐고.”
 “그런 거 아니야….”
 “뭔데 그래. 얼마나 싸웠으면 울고 들어와.”
 “그냥… 다 내 잘못이야.”

 지민은 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답답함을 느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누웠다.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는 팔을 뻗어 그의 말랑말랑한 볼을 꼬집었다.

 “스물일곱 먹어도 참 잘 울어. 으이구.”

 어머니의 말에 지민은 힘없이 웃었다. 그러게 엄마. 나도 그렇고, 내 주위 남자들은 다들 잘 울어. 희한하지.



 혼자 남은 방에서 지민은 한참이나 천장을 보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무작정 뛰쳐나와 본가로 도망쳤지만,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잠시 도피하는 것일 뿐 어떤 해답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민은 한숨을 움큼 내뱉었다. 언제까지고 본가에서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태형을 피한다고 되는 문제일까?

 “하아…….”

 모르겠다.

 지민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끄응 소리를 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이불에서는 미미한 섬유유연제 향과 함께 먼지 냄새가 났다. 애초에 태형과 한 집에 살게 된 것이 잘못된 것일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은 지금 지난 시간 모두를 후회하고 있는가. 지민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후회? 아니다. 태형을 사랑한 세월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아마 태형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지금보다 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을 테니까.

 한참 괴로워하던 지민의 눈에 무엇 하나가 들어왔다. 학창시절부터 쓰던 책장 위, 고등학교 졸업사진 액자 안에 정국의 사진을 넣어둔 흔적이었다. 정식으로 뽑은 사진도 아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의 사진을 프린터로 뽑아 화질이 좋지 않은 종이사진이었다. 책장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졸업식 액자에는 부모님과 지민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졸업식 때 정국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게 그렇게 서운했던가. 정국의 사진을 종이에 뽑아서 넣어둘 만큼. 꽃다발을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은 외로워보였다. 그 옆에 정국의 전신사진을 넣어둘 때의 심정이 어땠지.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지민은 몸을 일으켜 액자를 집어 들었다. 열일곱부터 스무 살까지, 정국과 만나는 동안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속을 콕콕 찔러댔다. 반면 태형과는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고, 일상의 작은 한 부분까지 모두 공유하는 연애를 했다. 태형은 쉴 새 없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널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너 외롭지 않게 할게.’

 그 말은 언젠가 정국이 했던 말과 같았다. 하지만 정국은 자신을 지독하게 외롭게 만들었고, 태형은 그 약속을 지켰다. 태형과 함께하며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늘 그의 큰 눈은 섬세하게 자신을 살폈다. 이런 태형을 과연 놓을 수 있을까.

 지민은 마른세수를 했다. 신경질적으로 액자 위에 뽀얗게 내린 먼지를 후욱 불어내고는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그 순간, 갑자기 지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쩍였다. 지민은 침대로 다가가 프레임을 가리고 길게 늘어져 있는 베드커버를 위로 젖혔다. 예전에 입었던 옷들이 보관되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들이 주욱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두컴컴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밀봉된 박스. 지민은 퀴퀴한 먼지 덩어리와 함께 박스를 끌어냈다. 택배 송장이 그대로 붙어 있는 라면상자. 뜯어본 흔적이 없이 꼼꼼하게 테이핑 되어 있는 그것이 뭔지 단번에 기억났다.

 그건 태형과 함께 살기로 한 순간, 자취방에 있던 모든 정국의 흔적을 몰아 담았던 것이었다. 본가로 택배를 부쳐놓고 아주 오랜 시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가끔 본가에 올 때마다 박스를 보았지만 한 번도 그걸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여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자 안에 가득 찬 정국과의 추억들. 처음에는 미련 때문에, 그 다음엔 죄책감 때문에.

 부욱- 소리와 함께 지민은 망설임 없이 테이프를 뜯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낡았는지 박스가 흐물흐물하게 벌어졌다. 이까짓 거, 꺼내보는 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나 긴 시간이 흘렀다. 열린 상자 안에는 온통 정국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고등학생 때 주고받았던 편지. 정국이 직접 지민을 그린 그림. 그리고 유치한 인형. 까맣게 물들어버린 실버 커플링. 데뷔 전부터 팬에게 선물 받은 물건 중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주었던 액세서리들. 생일 때마다 정국이 선물했던 옷과 모자. 하나하나 꺼내며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평범한 연애는 할 수 없었지만, 정국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주었다. 그게 선물이든, 마음이든. 정국은 자신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엇이라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민은 상자 안의 물건 중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지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책과 관련한 정국과의 추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민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책을 아무렇게나 펼쳤다. 휘리릭- 빠르게 넘어가는 종잇장을 살펴보았다. 그때 팔랑, 종이 한 장이 책 사이에서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보자마자 지민은 그게 무엇인지 금세 깨닫고 말았다. 그건 정국의 필체로 쓰인 편지였다. 교실에서 장난스럽게 낙서하며 주고받던 쪽지 말고, 정성들여 꾹꾹 눌러 쓴 편지.

 ‘지민아. 열 내리는 거 보고 간다.’로 시작하는 문장은 분명히 헤어지기 직전 정국이 자신의 집에 달려와 남기고 간 메시지였다. 서로를 향해 지독하게 쌓아갔던 오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뜨겁게 맞붙었던 두 사람의 몸. 고열로 헐떡이는 자신에게로 달려와 안아주던 품. 그날은 그와의 마지막 잠자리였다.

 회사에서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다 알아.
 일이 조금 있었어. 나중에 다 말해줄게.
 나는 널 잃지 않을 거야. 너도 그래줬으면 좋겠어.
 사랑해.

 그 편지를 보고 나니 또 다른 무엇도 생각이 났다. 지민은 홀린 듯 박스 안을 뒤졌다. 잡동사니가 섞여 있는 그 안에 손을 깊이 찔러 넣고 뒤적거리자, 금세 무언가가 잡혔다.

 “…….”

 그건 정국이 주었던 휴대폰이었다.

 7년 전에는 신형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구형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정국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비밀 폰. 그와 이별 후 전원을 끈 채로 상자 안에 쑤셔 박았던 그것. 지민은 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털썩 앉았다. 조심스레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제조사 로고와 함께 느리게 부팅되는 액정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날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다. 정국과 헤어졌던 뜨거운 여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던 날이니까.

 전원이 들어온 폰의 바탕화면을 바라보다가 사진앨범 아이콘을 눌렀다. 그 안에는 사진 몇 장이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찍었던 셀카가 눈에 들어왔다. 앳된 얼굴의 지민과 몬스터 복면을 뒤집어 쓴 정국의 모습. 사진을 보자마자 지민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이내 액정 위로 눈물방울이 똑 떨어졌다.

 한 가지를 떠올리자 차곡차곡 숨겨놨던 기억들이 고개를 들었다. 지민은 음성 녹음함을 눌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되뇌며 정국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했던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 정국아.
 - 응.
 - 나 너랑 가고 싶은 곳이 있어.
 - 어디?
 - 같이 가줄래? 꼭 오늘 가고 싶은데.
 - 그래. 어디든.

 아이 같은 정국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 줄기가 뺨 위에 후두둑 흘러내렸다. 머릿속에는 이별의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생됐다.


 정국아, 우리 놀이공원 가자.
 앞으론 이런 부탁 안 할게.
 몬스터 씨, 진짜 애기 같네.
 덥지?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만나는 게 이렇게 힘들어. 정국아.
 답답하고, 숨 막히고, 괴로워.
 나 놓아주라.
 
 이제 행복하고 싶어.
 나 좀 더 편한 사랑하게 해주라. 응?


 “흐윽….”

 지민은 침대 위에 몸을 쓰러뜨리며 울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만약 이 상자를 일찍 열어보았더라면,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더 괴로웠을까. 아니면 후회하며 먼저 그를 찾았을까. 태형과 더 깊어지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함께 견뎌보자며 매달렸을까.

 “정국아, 정국아, 정국아….”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언제 이렇게 불러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계속해서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베개 솜으로 먹혀 들어가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폰을 쥔 지민의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정국아… 정국아. 흐으….”

 끔찍하게 사랑했는데, 지금도 널 사랑하는데.
 너무 아파. 힘들어.

 - 지민아.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자신을 부르는 정국의 차분한 목소리. 지민은 끊임없이 정국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 지민아. 박지민!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에 지민은 눈물로 축축이 젖은 속눈썹을 들어올렸다. 머리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귀가 잘못된 걸까. 너무 괴로워서 미쳐버린 걸까.

 - 지민아, 왜 울어. 응?

 지민은 이내 이 소리가 자신이 쥐고 있는 폰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지민이 놀란 얼굴로 오래된 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7년이 지난 이 휴대폰에서 정국의 목소리가 들린다니.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
 - 지민아. 전화 받은 거 맞아?
 “전정… 국…?”
 - 맞아. 나야. 지민아. 너… 전화 받은 거 맞지?

 지민은 놀라서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개통되어 있는 폰. 저장되어 있는 단 한 개의 번호가 화면에 떠 있다. 지민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어 입만 벙긋거렸다.

 - 지민아…. 어디야?

 그는 긴 시간 이 번호를 없애지 않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오래, 자신을 기다려왔던 걸까. 전원이 켜지지 않는 번호에 대고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을까. 왜, 왜 그렇게까지…….

 - 받을 줄은… 몰랐는데.
 “…….”
 - 어디야? 지민아, 말해줘. 응?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음이 터지는 걸 참으려 제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떨림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






 집 앞에 도착해 있는 정국의 차가 보였다. 지민의 모습이 보이자 그가 얼른 운전석에서 내렸다. 숨차게 달려온 사람처럼 거칠게 호흡하는 그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정국의 손에는 자신과 똑같은 폰이 쥐어져 있다. 지민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며 천천히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러나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정국이 달려와 지민을 품에 안았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그의 체향에 지민은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지민아….”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똑같이 대답해주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음에도 정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민을 끌어안은 채 아이처럼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지민은 그 순간 정국이 이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선 안 된다는 걸 깨닫고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러나 아무리 힘주어 밀어도 정국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봐.”
 “괜찮아.”
 “이, 일단… 이거 놔.”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이제.”

 그의 말이 꼭, 앞으로는 비슷한 이유로 지민을 잃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한 가득 품고 몇 번이나 고쳐 안는 정국을 만류하며 지민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손을 뻗어 그의 조수석 문을 열자, 그제야 정국이 조심스럽게 팔을 풀고 놓아주었다.

 “너희 집으로 가자….”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자꾸만 궁금해졌다. 꼭 들어야할 것 같았다. 무슨 말이든, 정국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운전대를 잡은 정국은 말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지민에게 건네주고는 핸들을 돌렸다. 부드럽게 미끄러져나가는 차 안에서 지민은 그가 건넨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똑같은 기종의 구형 폰. 가운데의 버튼을 누르자 잠금이 걸려 있지 않아 바탕화면이 훤히 보였다. 정국이 이것을 자신에게 주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코끝이 빨개진 채 훌쩍이며 제 집을 향해 차를 모는 정국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그의 폰을 살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적을 깨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폰 버린 줄 알았는데…. 안 버렸네.”
 “…….”

 정국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를 향해 정제된 말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무렇게나 두서없는 말을 해버릴 것만 같다. 복잡하고 아픈 제 심정만큼이나 밑도 끝도 없이 혼란스러운 언어의 조합으로.

 “문자 같은 건… 안 와 있었어?”
 “으응…. 너무 오래 돼서.”
 “그렇구나.”

 그 말은 곧 자신이 여태 문자를 보냈다는 말과 같았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문자함을 열었다. 그곳엔 단 하나의 번호 흔적만 남겨져 있었다. 지민은 제 이름이 쓰여 있는 문자 내역을 눌렀다. 그러자 여태 정국이 보낸 문자 내역이 줄줄이 떴다. 스크롤을 올려도 올려도 끝없이 이어졌다. 지민은 차마 문자를 읽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전원이 오래 꺼져 있어서 전송이 안 됐나 보다.”
 “…….”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되는데… 그래도, 너한테 보낸 거니까.”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지민은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물고 천천히 그가 보낸 문자들을 읽었다. 스크롤을 올려가며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었다. 문자는 점점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 사랑해. ]
 [ 한 번도 잊어본 적 없어. ]
 [ 너를 봤어. 울고 싶었어. ]
 [ 지민아, 보고 싶다. 사랑해. ]
 [ 너를 찾아가도 될까? 근데 무섭다. ]
 [ 재계약 안 했어. 나 잘했지. ]
  .
  .
  .
 [ 혹시 네가 이 폰을 버렸을까? 그럼 안 되는데. ]
 [ 오늘은 힘든 날이었어. 더 생각난다. ]
 [ 사랑해. ]
 [ 힘들다. 보고 싶다. ]
  .
  .
  .
 [ 미안해. 그런 소리 듣게 해서. ]
 [ 미안해. ]
 [ 나술차ㅣ핸따 지미너아ㅡㅇ곱ㅗ시픈데 ]
 [ 지민ㄴㅇ아 ]
  .
  .
  .
 [ 죽을까? ]
 [ 후회된다. 다 때려치울걸. ]
  .
  .
  .
 [ TV에서 나 본 적 있어? 어땠어? ]
  .
  .
  .
 [ 다 죽이고 싶어. 너 힘들게 한 사람들. ]
 [ 무능력한 내가 싫다. ]
 [ 참아야겠지. 보고 싶어도. ]
 [ 지민아. ]
  .
  .
  .
 [ 미쳤나 봐. 네가 잠깐 미웠어. 미안해. ]
 [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지? ]
 [ 열 받아. 다 엎어버리고 싶어. ]
 [ 꿈이겠지? ]
 [ 말도 안 돼. ]
  .
  .
  .
 [ 죽고 싶다. 살아서 뭐해. ]
  .
  .
  .
 [ 폰 좀 켜줘라. ]
 [ 회사 때문인 거 다 알아. 바보야. ]
 [ 박지민, 내가 믿을 것 같아? ]
 [ 지민아… 폰 켜면 전화 해줘. ]
 [ 전화 받아. ]
  .
  .
  .
 [ 내가 다 잘못했어. ]
 [ 어디야? ]
 [ 지민아 전화 받아. ]
  .
  .
  .
 [ 제발 전화 받아줘. ]
 [ 전화 받아. ]


 지민의 손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기나 긴 스크롤이 올라갈수록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과거로 향해 가는 것 같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자들은 정국의 지난 7년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7년을 기다렸다는 말이 이렇게나 아픈 건지 몰랐다.

 “아… 으윽… 흐으….”

 정국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는지. 진심이 아닌 이별이라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더 아팠을까. 얼마나 제 자신이 미웠을까. 지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잇새로 새는 울음을 신음처럼 흘리다가, 결국 펑 터져버릴 것 같은 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울었다. 큰 소리를 내며 엉망진창으로 울었다. 손에는 두 개의 폰을 꽉 붙든 채, 끊임없이 울었다. 이 남자의 순정이 제 머리를 세게 내려치는 것만 같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럽게 심장을 옥죄어 온다.

 지민의 괴로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정국의 얼굴 역시 흠뻑 젖어갔다. 아랫입술이 찢어져 피가 맺힐 만큼 세게 깨물며 참아도 소용없었다.












(+) 下편(성인)으로 이어집니다.
미가입자&미성년자 분들은 下편을 보지 않아도 내용은 이어질 거예요.



호호아줌마  | 190410   
비밀댓글입니다
지니(랠리님최고)  | 190410   
비밀댓글입니다
소와  | 190411   
비밀댓글입니다
문손  | 190414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춉춉  | 190420   
비밀댓글입니다
밀국민빵  | 190429   
비밀댓글입니다
그냥근냥지민  | 19042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바림  | 190501   
비밀댓글입니다
처돌이  | 190505   
비밀댓글입니다
로밍  | 190505   
비밀댓글입니다
삼색강양이  | 190506   
비밀댓글입니다
정꾸꾸정  | 190507   
비밀댓글입니다
july  | 190511   
비밀댓글입니다
sindy  | 190512   
비밀댓글입니다
지미니미니  | 190513   
비밀댓글입니다
진꾸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초코프랄린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국민리얼!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삐약이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과일소주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허슥히  | 190514   
비밀댓글입니다
뀨밍  | 190515   
비밀댓글입니다
kiyot  | 190515   
비밀댓글입니다
샐꾹  | 190515   
아 오늘 진짜 여러분 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영  | 190515   
비밀댓글입니다
또르르  | 190517   
비밀댓글입니다
kkukku77  | 190517   
비밀댓글입니다
카유  | 190517   
비밀댓글입니다
세라  | 190523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김민경  | 190528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국민아_가자  | 190601   
비밀댓글입니다
장회장  | 190605   
비밀댓글입니다
hoho  | 190606   
비밀댓글입니다
랄란  | 190610   
비밀댓글입니다
꾹밍  | 190613   
비밀댓글입니다
 | 190617   
비밀댓글입니다
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18   
비밀댓글입니다
peony1013  | 190627   
비밀댓글입니다
침침꾸꾸  | 190629   
비밀댓글입니다
라엘  | 190708   
비밀댓글입니다
가나라  | 190724   
비밀댓글입니다
카라얀  | 190724   
비밀댓글입니다
찬늘바랄  | 190725   
비밀댓글입니다
꾸꾸하뚜  | 190729   
비밀댓글입니다
짐니짐니  | 190729   
비밀댓글입니다
국민  | 190730   
비밀댓글입니다
제이  | 190801   
비밀댓글입니다
봄날  | 190809   
비밀댓글입니다
Hana  | 190816   
비밀댓글입니다
비비드윤  | 190826   
비밀댓글입니다
라니  | 190828   
비밀댓글입니다
지미치미  | 190828   
비밀댓글입니다
Jimnotic  | 190906   
비밀댓글입니다
노랑양말  | 190930   
비밀댓글입니다
냐하하  | 191009   
비밀댓글입니다
꾸꾸찜  | 191101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민조교  | 191126   
비밀댓글입니다
    : 보안코드 이미지 : 보안코드 입력폼 비밀글
목록으로
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