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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06 랠리 씀

World War Z - collapse

아마겟돈
06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















 “난 왜 이렇게, 후배님이 날 꼬시는 것 같지?”

 정국의 말이 낮게 내리깔렸다. 어둠이 내린 방 안은 고요했으나 가까이 붙은 두 사람의 숨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내 정국의 목에 둘러 감겨 있던 지민의 팔이 스르륵 풀렸다. 매트리스 위로 팔을 떨어뜨린 지민이 눈을 똑바로 뜨며 정국의 시선을 마주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가만히 올려다보는 작은 머리통 안에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 있을까. 정국은 실없이 그게 궁금해졌다. 그러나 잠시 뒤 지민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의 표정이 크게 동요했다.

 “저를 마음에 들어 한 건 선배잖아요.”
 “뭐?”

 생각지도 못한 지민의 대답에 정국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얼어붙었다. 혹시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인가. 정신없는 하루 동안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이 동하는 바람에 허튼 소리를 했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지민은 무섭다며 함께 씻고 같이 누워 자자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오히려 지민의 대답에는 틀린 게 없었다.

 “하….”

 처음 본 순간부터 지민이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그를 콘도의 방 안으로 데려가 숨겨줬던 것도, 팔베개를 해준 것도, 손을 먼저 잡은 것도, 안고 업고 달렸던 것도, 모두 자신이었다. 심지어 안고 잘래? 하며 농담처럼 한 말에도 실은 진심이 섞여 있었을 테니까. 만약 지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김윤성과 후배들의 태도에 그만큼 화가 났을까? 다른 후배들이 넘어지고 다쳤어도 혼자서 짊어지고, 온종일 손을 잡아주었을까.

 “그래. 후배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

 정국은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지민에게 생긴 호감을 감추려고 지민이 자신을 꼬시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쪽팔려졌기 때문이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난장판 속에서 밀고 당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정국은 그런 성격도 아니었지만, 특히 지금은 쓸데없는 감정소모가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서 한 말이야.”
 “…….”
 “근데 꼬시는 건 맞단 뜻이지?”
 “…….”
 “나 후배님 마음에 드니까 계속 꼬셔달라고.”

 당장 좀비에게 물려 인생이 끝나버린다면 되게 억울할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뽀뽀라도 해주던가.”

 궁금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정국은 큭큭 웃으며 지민의 옆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러자 지민이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정국 쪽을 바라보며 모로 누웠다. 정국은 제 팔을 뒤로 교차해 머리를 받치고 천장을 보다가, 이내 자신의 몸통을 끌어안는 차가운 감촉에 팔을 풀어 그의 등을 당겨 안았다.

 “몸이 차갑네, 후배님은.”
 “…선배는 따뜻해요.”

 웅얼거리듯 뭉개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정국은 눈을 감았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 개운하게 샤워까지 했으니 잠이 몰려왔다. 시원한 생수로 씻어서 그런지 날이 더웠음에도 지민의 체온은 낮았다. 열이 많은 정국은 손으로 그의 등판을 문지르며 보드라운 섬유의 감촉을 느꼈다. 순식간에 올라갔던 둘 사이의 텐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조금 전에 섞었던 말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수마가 나른하게 덮쳐오니 제아무리 정국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민의 등을 쓸어주던 손길이 느려졌다. 그러다가 별안간 정국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해?”

 지민이 천천히 정국의 몸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제 몸 위에 올라탄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침대 위에서 엉겨 붙으며 고간 위에 걸터앉는 행위가 무슨 분위기를 내는 건지 모를 리 없다. 정국은 어떻게 튈지 모르는 이 상황이 꼭 자신들이 맞닥뜨린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 사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선배… 섰어요.”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바지춤에 지민의 손이 닿았다. 정국이 놀랄 새도 없이 지민의 엉덩이가 고간에서 무릎까지 쭈욱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히며 상체를 바짝 붙여 내렸다. 지민이 하의를 벗겨내려는 듯 손을 움직였다.

 “그래서?”
 “해줄게요.”

 얼굴을 내려 앞섶에 바짝 붙이며 바지를 끌어내리는 움직임에 정국은 그의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발병 다음날



 “와, 미친! 깜짝이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진규는 눈앞의 장면에 깜짝 놀라 소리를 왁 질렀다. 선풍기도 틀어져 있지 않아 푹푹 찌는 침실 안에 정국과 지민이 헐벗은 몰골로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규는 하루를 꼬박 굶는 바람에 밀려오던 허기도 잊은 채 제 손바닥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벌어진 손가락 틈새로 두 사람의 자는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는 건 잊지 않았다.

 침실의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미약한 햇빛에 침대 위가 훤히 보였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두 남자의 세미 누드라니. 그것도 땀으로 번들거리는 맨살끼리 잔뜩 붙이고 엉겨 붙은 자세였다. 탄탄하게 다져진 정국의 상체가 지민을 거의 덮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건 빼꼼 튀어나와 있는 지민의 얼굴과 얇은 팔다리뿐이었다.

 “야… 더워 죽겠는데…….”

 진규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더워 죽겠는데 왜 뒤엉켜서 자고 지랄들이야? 하며 가볍게 묻기에는 다소 엄하고 민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더워서 팬티만 입고 있는 주제에 저렇게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을 일인가? 봐서는 안 될 걸 본 기분이라 진규는 백스텝으로 침실을 빠져나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단해. 와… 대단해. 대단할 걸 봤어.”

 왠지 앞으로 더한 걸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원래 그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기에, 진규는 목이 타서 냉장고를 화악 열어젖혀 생수를 꺼냈다.

 “어…?”

 뭐야. 전기가 나갔잖아.

 냉장고 안의 냉기는 영 시원치 않았다. 진규는 얼른 전등 스위치를 몇 개를 눌러보았다. 그러나 어떤 램프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얼빠진 얼굴로 서 있다가 자신이 잠들었던 거실 소파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미친 듯이 덥기에 깼는데, 그건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국은 들려오는 진규의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밤새 땀을 흠뻑 흘려선지 침대 시트가 축축했다. 입고 있는 팬티까지 젖을 정도로 땀을 왕창 흘렸다. 정국은 문득 자신이 과하게 끌어안고 있는 지민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제 품 안에서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지민 역시 땀으로 흥건했다. 여름의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젖은 지민의 머리칼과, 물을 끼얹은 듯 축축한 몸. 분명 둘 다 티셔츠와 바지까지 입고 있었는데, 잠결에 옷을 벗어던진 모양이다.

 지민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뭘 해준다고?”

 정국은 ‘해주겠다’는 지민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예상하고 있는 것을 확인받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지민은 대답하지 않고 정국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잡아 내렸다. 언제부터 발기해 있었는지 모를 물건이 무방비하게 퉁- 튕겨져 나왔다. 잠이 확 깼다. 정국은 그의 손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아랫도리를 향해 고개를 내리던 지민이 놀라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얼른 지민의 몸통을 붙잡고 자세를 역전했다. 순식간에 그의 위에 올라탄 정국은 으르렁거리는 짐승처럼 표정을 구겼다.

 “그런 거 해달라고 한 적 없어.”
 “아, 아파요.”

 어깨를 꽉 잡은 게 아팠는지 지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배님한테는 이게 뽀뽀야?”

 덜컥 화가 나는 이유는 전날 콘도에서 보았던 모습 때문이다. 진규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자신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학생회 안에서 지민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김윤성이 노골적인 접촉을 할 수 있도록 은연중에 도왔던 후배들의 태도.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지민의 이름을 부르며 막 대했던 건, 그를 김윤성의 ‘무엇’으로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김윤성이 없으니 이제 전정국이냐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던 후배 놈들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지민을 향한 잘못된 시선에서 온 게 분명하다. 성적인 희롱의 대상으로 보는, 그런 비정상적인 것들.

 혹시 그런 취급이 익숙해져서 스스로 굽히는 것은 아닐까. 방에 숨겨줬을 때, 김윤성이 찾는다는 말에 눈을 번쩍 뜨고 반응했던 어젯밤이 생생하다. 마치 그가 부르면 당장 가야할 것처럼.

 “아… 아파….”

 정국의 손아귀에 힘이 더 세게 들어갔다. 지민이 눈을 질끈 감으며 벗어나고자 몸을 꿈틀거렸다. 정국은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려 후욱- 길게 숨을 내뱉었다. 힘이 들어갔던 손을 떼어내자 지민이 정국의 눈치를 보며 제 어깨를 쓸어 만졌다.

 “미안. 잠깐 화가 났어.”
 “…….”
 “그런 건 아무한테나 하는 거 아니잖아.”

 혹시 김윤성한테 이런 식으로 깔고 들어갔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아래에 누워 있는 지민의 인영에 가만히 눈을 맞췄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정국은 마음을 가라앉혀가며 규칙적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다시금 들려온 지민의 말에 또다시 얼빠진 사람처럼 입을 멍하게 벌렸다.

 “선배가 그랬잖아요. 방에서 혼자 잤냐고.”

 아침에 오고 갔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윤성이 형이랑 같이 안 잤어?’, ‘아아, 그렇구나. 같이 안 잤구나.’ 음흉하게 낄낄거리던 후배 녀석들의 반응. 그 순간 기분이 더러워졌던 자신까지. 그래서 지금 지민은 자신 역시 똑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새초롬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니 신경이 갉작인다.

 “꼬시는 것 같다면서요.”
 “아… 그건,”
 “똑같이 그런 눈으로 본 거면서…….”

 아뿔싸. 어휘 선택이 완전히 잘못된 거였다. 정국은 바로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은 지민의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나 보다. 결코 다른 놈들과 똑같이 지민을 그런 대상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걸 구구절절 말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런 거 아냐.”

 진심이 왜곡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상대는 보고 듣는 것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분위기에서 꺼내주고 싶고, 위험에서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진심은 제가 뱉은 몇 마디 말과 악의 없는 행동 몇 개로 쉽게 뭉개졌다. 그러나 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 원인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미안해. 내가 실수 했어.”
 “…….”
 “정말로. 홀린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라…”
 “어차피 상관없어요.”

 정국의 말을 잘라낸 지민이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정국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정국은 가만히 얼어붙은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뽀뽀. 그 다음은요?”
 
 지민의 질문은 마치 그 다음은 자신이 뭘 해야 되냐고 묻는 것 같았다.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나 있었다. 정국은 탄식을 뱉으며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화난 걸까?
 
 “후배님. 나는,”
 “키스?”

 짧게 되물은 입술이 빠르게 겹쳐왔다. 지민이 먼저 정국에게 입을 맞추며 목을 끌어안아 잡아당겼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지민의 시원한 혓바닥을 느끼며 정국의 무게 중심이 휘청거렸다. 두 사람의 상체가 겹쳐졌다. 정국은 마음과 달리 솔직한 몸의 반응에 콧바람을 거칠게 내쉬며 입을 더 크게 벌려 지민의 통통한 입술을 물었다. 잡아먹을 듯 겹쳐진 입술 새로 말캉한 혓바닥이 얽혔다. 욕망에 약한 육체는 머릿속을 하얗게 날려버리고는 솔직하게 덤벼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키스를 하다가 흥분감이 차오를 때쯤, 입술을 맞댄 채로 지민이 먼저 잠에 빠져들었다. 길었던 하루의 끝은 두 사람을 금세 블랙아웃으로 끌고 갔다. 정국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지민의 하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발칙한 구석이 있다. 실망한 사람처럼 그러더니 그렇게 질척거리는 키스를 해오다니. 그 상황에서 스킨십을 거부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정국은 간밤의 키스가 생각나 가랑이 사이가 저릿해졌다.

 얼른 상체를 일으켰다. 땀 때문에 달라붙어 있던 살이 척 소리가 나며 떨어졌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팬티만 입고 있는 지민의 몸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국은 얼른 티셔츠를 주워 머리통을 끼워 넣고, 지민의 옷을 그의 몸 위에 슬쩍 덮어 올렸다. 그러자 지민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어… 굿 모닝.”

 정국은 어색한 인사를 날리고는 후다닥 일어나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새 기립한 아래를 들키기라도 할세라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진규는 냉장고 앞에 서 있다가 까치집을 지은 채로 냅다 달리는 팬티바람의 정국을 보았다. 왠지 부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에 진규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나라에서 수도, 전기, 가스를 모두 끊어버렸다. 그건 아예 다 없애버리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진규는 주방 수납장을 뒤져 라면을 끓일 버너를 찾고 있다. 정국은 커튼에 등을 기대고 틈새로 밖을 살폈다. 하룻밤이 지나자 마당에 늘어져 있는 시신의 상태가 좋지 않게 변했다. 무더위에 벌써 부패되고 있는 것이다. 정국은 조용한 바깥을 살피며 혹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지 살폈다. 아직까지는 조용했다.

 “아! 버너를 찾았는데!”
 “찾았는데?”
 “부탄가스가 없어!!!”

 진규가 절규 섞인 소리를 냈다. 눈앞에 라면을 두고 끓여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러웠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어느새 일어난 지민은 냉기가 조금 남아 있는 냉장고와 냉동고를 열어서 먹을 만한 음식이 있는지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식량이 될 만한 것을 하나씩 꺼냈다.

 “일단 먹을 수 있는 것부터 먹자.”

 정국은 커튼을 꼼꼼하게 닫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지민이 냉장고에서 꺼낸 조각 케이크, 가공 소시지, 담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김치 등이 보였다. 그러나 진규는 징징 우는 소리를 내며 라면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라면, 아… 라면 먹고 싶다고!”
 “애새끼.”

 정국이 한숨을 푹 쉬며 라면 봉지를 뜯었다.

 “생으로 먹기 싫단 말야!”
 “뽀글이 해줄게. 새끼야.”

 생수를 스테인리스 그릇에 붓고, 아침에 찾아 놓았던 커다란 양초 다섯 개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 위에 그릇 거치대를 뒤집어 놓고는 물그릇을 올렸다. 순식간에 그럴싸한 버너 모양새가 갖춰졌다. 진규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정국의 어깨를 주물렀다.

 “역시 군필자다. 너는 못하는 게 뭐야?”
 “나? 연애를 못해.”

 정국의 말에 지민이 그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들을 뒤적거렸다. 눈치 빠른 진규는 순간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를 감지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이해가 안 갔다. 그렇게 땀을 질질 흘리며 끈적하게 껴안고 잔 놈의 입에서 연애를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니. 그건 분명 지민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정국아,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말야.”
 “그럼 하지 마.”
 “아니 들어봐. 내가 봤을 때 너는 연애고수란 말이지.”
 “무슨 근거로?”
 “너 정도면 거의 불도저급 아니냐?”

 경찰서에서 했던 정국의 말을 기억했다. MT때 처음 본 지민과 방에서 끌어안고 잤다고 말했다. 그리곤 하루 만에 제 눈으로 여러 번 확인한 핑크빛 기류라니. 진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지민을 돌아보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식탁 위의 음식들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슬슬 장난이 솟았다.

 “불도저는 무슨. 진규야. 너 연애 해봤어?”
 “장난해? 모태 솔로한테 그게 할 소리야?”
 “아, 뭐 좀 물어보려고 그랬더니.”
 “뭔데?”
 “사과를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서.”
 “너 지민이 형한테 뭐 잘못했어??!!”

 진규가 턱밑 살을 끌어 모아 두턱을 만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놓고 큰 소리로 물어보는 진규의 말에 지민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정국은 어느새 뜨겁게 데워진 물을 라면 봉지 안에 부으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지민이 형, 쟤가 뭐 잘못했어?!”
 “야.”
 “정국이가 그럴 놈이 아닌데?! 뭐 잘못했는데? 뭐 간밤에 나쁜 손, 그런 건 아니지? 윤성이 새끼처럼? 에이 아니겠지. 김윤성을 그렇게 욕했는데…. 아닐 거야. 와… 그럼 뭘까? 지민이 형, 쟤가 뭐 잘못했어? 어? 억지로 연애하자고 해? 말해줘 봐. 궁금해 죽겠네.”

 나불대는 진규를 보며 정국은 손에 들려 있는 라면 봉지를 던져버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저는 화장실 좀….”

 지민은 곤란한지 손끝을 매만지며 조용히 화장실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국은 이를 꽉 깨물고 진규의 귓바퀴를 손으로 세게 잡아당겼다.

 “이 촉새 같은 새끼.”
 “아아아, 아파, 놔!”
 “넌 대체 눈치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오호, 그래서 지민이 형이랑 연애를 하시겠다? 아! 아아아, 놓으라니까. 악! 귀 찢어지다고!!”

 정국은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오후 세시가 되자 바깥에서 소음이 들렸다. 그건 주택가 앞을 단체로 지나가는 군용 트럭 소리였다. 정국은 커튼에 바짝 붙어서 틈새로 조용히 관찰했다. 트럭이 천천히 지나가고, 뒤에 탑승한 여러 명의 군인들은 총을 사방으로 겨누며 주의 깊게 살폈다. 순찰을 도는 모양이었다.

 그때 갑자기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그 소리에 지민과 진규는 입을 틀어막고 몸을 움츠렸다. 사탄이 나타난 건가? 정국은 미간을 좁히며 바깥 상황을 살폈다. 그러나 계엄군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다시 확인해 보니 집집마다 열려 있는 대문 안쪽으로 이유 없이 총을 한 발씩 쏘는 것이었다. 위협적으로 들리는 총소리. 그건 아마 사탄이 근처에 숨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사탄들은 소리를 따라 움직이기에 분명히 총성이 난 쪽을 향해 달려들 테니까.

 이들이 머물고 있는 주택 대문 앞에도 트럭이 멈췄다. 탕!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커다란 총성이 또다시 울렸다. 총알은 주택 외벽에 아무렇게나 와서 박혔다. 진규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정국을 향해 속삭였다.

 “우리 걸린 거 아냐?”
 “아냐. 사탄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아.”

 잠시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계엄군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몸을 돌렸다. 정국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게 분명하다. 사탄이 나타나지 않으니 구태여 안쪽까지 확인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정국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창고에 넣어둔 군용트럭을 걸린다면 순식간에 자신들은 총에 맞아 벌집이 될 것이다. 사탄보다 계엄군이 더 무섭다.

 “갔어?”
 “어.”
 “아, 간 떨려. 수명 줄어들 것 같아.”
 “아마 매일 이렇게 동네를 돌며 확인할 거야.”

 잠시 뒤 완전히 사라진 군용트럭을 확인하고 정국은 그제야 긴장을 풀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지민은 허벅지의 반만 가리는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제 무릎을 모아 감싸 안고 있었다. 그 바람에 하얀 허벅지 살이 훤히 보였다. 자칫하면 뒷 허벅지에 이어 둔부 살까지 보일 지경이다. 전기가 모두 차단되어서 선풍기도 에어컨도 틀지 못하는지라 더운 건 맞지만, 저렇게 짧은 반바지와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 티셔츠는 좀 그런 거 아닌가? 정국은 잔뜩 신경 쓰며 지민을 훔쳐봤다.

 ‘야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는 민망해서 콜록콜록 억지기침을 했다. 제 옆에 앉은 진규가 지민의 속살을 모두 볼 생각을 하니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정작 진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역시 오버하는 건가 싶다가도 영 신경 쓰여서 미칠 지경이다.

 “야. 너 후배님이랑 자리 바꿔.”
 “왜?”
 “아, 말 들어.”
 “아 예, 예. 그냥 저는 차라리 방으로 꺼져드립지요. 얼른 화해하고 좋은 시간들 보내시기를.”

 봉지 라면을 두 개나 먹고 배가 불러 낮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진규는 정국에게 깐족거리면서 허리를 굽혀 뒷걸음치다가 구석에 있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순식간에 큰 거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진규가 사라지니 둘 사이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만약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오디오가 한참이나 비어 엄청 지루했을 거라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정국은 미동 없는 지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제 옆에 있는 소파 쿠션을 들어 그를 향해 휙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쿠션을 반사적으로 잡은 지민이 물음표를 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좀 보수적이라서.”
 “네?”
 “팬티까지 보이겠다.”

 지민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국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 황급히 올려 접고 있던 다리를 소파 아래로 떨어뜨렸다. 뒷 허벅지 살이 그대로 다 보였다는 게 민망했는지 지민은 제 뺨을 긁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정국이 던져준 쿠션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밤에 대담하게 스킨십을 해오던 모습과는 차이가 느껴져 정국의 기분이 묘해졌다.

 “후배님.”
 “네.”
 “아직도 화났어?”
 “…….”

 정국이 제 뒷머리를 매만지며 툭 내뱉었다. 지민은 잠시 대답을 고민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한참 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선배, 우리… 연애해요?”

 또 예상을 빗겨나가는 대답을 하는 지민이었다. 정국은 눈을 깜빡이며 말을 골랐다. 그러나 맞다고 하는 것도 웃기고,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정국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다가 벌떡 일어나 지민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제 옆에 와서 앉는 정국을 보며 지민은 어깨를 조금 움츠리며 얼굴을 붉혔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
 “내가 보수적이라고 했지?”
 “…네.”

 정국이 어색하게 손을 뻗어 지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키스 했으면 연애하는 거 아닌가?”

 이어지는 말에 지민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난 키스하면 사귀어야 해서. 그렇게 돼버렸네. 미안하게 됐어.”

 뻔뻔한 정국의 말에 지민이 참지 못하고 푸흡 소리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제가 웃은 것이 민망했는지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지민의 웃음을 보고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 정국이 누그러진 표정으로 지민에게 조금 더 붙어 앉았다. 그리고는 불쑥 고개를 비틀어서 지민의 뺨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화 풀어줘. 정말로 후배님 그렇게 생각한 거 아냐.”
 “…….”
 “어? 화 풀어줄 거지?”
 “…….”
 “자기야.”

 전혀 애교가 담겨 있지 않아 무뚝뚝하고 뻣뻣한 ‘자기야’ 소리에 지민은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주먹 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깨까지 떨어가며 들썩거리는 지민을 보고 정국은 다시 한번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자기야.”
 “아……. 그만 해요. 너무 웃겨.”
 “뭐가 웃겨, 자기야.”
 “큭… 알겠어요. 화 풀었어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큭큭거리는 지민을 보며 정국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짜고짜 지민의 어깨를 꽈악 끌어안고는 손바닥으로 그의 뒷머리를 슥슥 쓸어 만졌다. 지민은 잠자코 그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은 채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TV에서 봤는데, 애인이 화나면 애교를 부리더라고.’
 ‘애교?’
 ‘자기야~~ 막 이러던데. 그럼 풀리던데?’
 ‘미쳤냐?’
 ‘진짜라고. 싫음 말아라.’
 ‘아, 안 해.’

 연애를 드라마로 배운 모태솔로 진규의 말이 요상하게 들어맞았다. 정국은 지민에게서 나는 비누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진규 자식이 못 들었으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 지각 죄삼다.

찌미  | 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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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myssi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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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 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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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난박지민  | 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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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꾹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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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블루  | 190716  삭제
진규 이 기특한 자식
하경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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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뀩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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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yot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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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찜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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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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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21   
진규가 예쁜짓했네요 간만에ㅋㅋㅋ자기야ㅋㅋㅋ
찜니조아23  | 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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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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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반  | 1908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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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xxkmxn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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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미  | 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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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이  | 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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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yu  | 190906   
핵 존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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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  | 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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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락  | 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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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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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ring  | 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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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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