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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War Z - Wales

아마겟돈
07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















 발병 3일째



 “아, 덥다. 더워….”

 푹푹 찌는 더위에 세 사람은 집 안에 늘어져 있었다. 바깥도 마찬가지로 더울 테지만, 암막 커튼을 쳐놓아 컴컴한 집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기운 없게 만든다. 전기마저 끊겼다는 사실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아무 생각 없이 열었던 냉장고 안에서는 벌써부터 음식이 부패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더위에 지쳐 입맛이 돌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라면뿐이었다. 그마저도 많이 남지 않아 점점 불안함이 더했다.

 정국과 진규는 상의를 벗고 대리석으로 된 거실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누웠다. 그나마 냉기가 서려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민은 가죽 소파에 앉아서 땀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지민이 형도 바닥에 누워 봐. 시원한데.”
 “저는 괜찮아요.”

 진규는 출렁이는 뱃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대리석 바닥에 몸을 문댔다. 그러다가 정국의 벗은 상체에 팔이 조금 닿자, 정국이 질색을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야, 끈적거려.”
 “서럽다. 사람을 이렇게 차별하냐?”
 “내가 뭘.”
 “지민이 형이랑은 그렇게 끌어안고 자더니.”

 어젯밤에도 정국과 지민은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고 잤다. 처음에는 옷을 입고 잠들었으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또다시 둘 다 팬티만 입고 있었다. 잠결에 본능적으로 땀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침대 위와 바닥에 허물처럼 벗겨져 있는 옷들을 떠올리며 정국은 피식 웃었다. 열이 많은 자신은 그렇다 쳐도, 지민의 체온은 조금 차가운 편이다. 더군다나 옷을 함부로 벗어 던지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지금 땀을 흘리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잠결에 엉겨 붙는 제 몸 때문에 더워서 그러는 게 분명했다.

 “너랑 후배님이랑 같아?”
 “그래. 말해서 뭐하겠냐. 실컷 연애나 하세요들.”

 진규의 탄식에 지민은 조용히 소파에 웅크려 누웠다. 지민의 등판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느덧 삼일 째가 됐으니 갈아입을 옷이 슬슬 떨어져 갔다. 생수로 빨래까지 하는 호사를 부리기는 무리인지라, 어떻게든 가진 옷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정국도 지민도 깔끔한 성격이라 옷에 밴 땀 냄새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정국은 멍하게 집을 둘러보다가 문득 거실 벽에 붙어 있는 가족사진에 시선을 두었다. 중년의 부부와 정국 또래의 아들 하나, 딸 하나. 마당에 썩어가는 아저씨의 시신과 계엄군에게 잡혀갔다는 딸. 그럼 아내와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도 아마 사탄이 되었거나 총에 맞아 죽었겠지. 주인이 사라진 집에 이렇게 들어와 두 밤을 잤다는 게 새삼 믿기지 않았다.

 주택은 2층 구조였다. 정국은 고개를 돌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가리려고 올라가본 후로 걸음하지 않았다. 정국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겠다.

 “후배님, 2층 같이 올라갈래?”

 정국의 말에 지민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밟아 2층으로 향했다. 천장이 높은 방 두 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왼쪽은 아들 방, 오른쪽은 딸 방. 정국은 처음 들어왔을 때 익혔던 구조를 떠올렸다. 지민의 손을 끌어 왼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베개와 이불로 창틀을 막아두어 역시나 어두컴컴했다. 방 안은 최근에 사용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입을 만한 옷 찾아보자.”

 무작정 옷장 문을 열었다. 계절감이 다른 겉옷이 잔뜩 걸려 있다. 이번에는 서랍장을 열었다. 다행히 서랍 안에는 여름옷이 가득했다. 정국은 잡히는 대로 옷을 꺼내들어 펼쳤다. 사이즈가 정국과 비슷했다. 옅은 섬유유연제 향이 나는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여러 개 챙겼다. 지민은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남의 옷 입는 거 찝찝해도 별 수 없지.”
 “…….”
 “팬티도 있네.”

 정국은 M사이즈가 적혀 있는 브랜드 팬티 몇 장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으며 다시 내려두었다.

 “차마 남의 팬티까진 못 입겠다. 노팬티가 낫지.”
 “아….”

 노팬티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는지 지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하고 순수하게 느껴지는 반응에 정국이 큭큭 웃으며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팬티 줘?”
 “아, 아뇨.”
 “그럼 노팬티로 있게?”
 “아……. 네.”
 “어쩌나. 나는 팬티를 입을까 고민 되네. 누가 또 훌렁 벗길까봐 걱정이 돼서 말이지. 고추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말라고 배웠는데.”
 “그, 그건….”

 지민을 놀리는 것에 재미가 들었는지 정국은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장난을 치면 치는 대로 반응해오는 모습을 보는 게 퍽 즐겁다. 정국은 벗고 있던 제 몸 위에 새 티셔츠를 끼워 넣었다. 사이즈가 잘 맞았다. 티셔츠 한 장을 휙 던지자 지민이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뭐해? 갈아입어.”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지민을 보며 정국은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같이 샤워도 했고, 두 밤이나 맨몸으로 끌어안고 잤으면서 뭐가 그렇게 부끄러울까. 답답한 마음에 정국이 다가가 지민의 티셔츠 자락을 잡고 휙 당겨 올렸다. 순식간에 머리까지 쏙 빠져버려 휑해진 맨몸을 지민이 어색하게 만졌다. 주섬주섬 새 티셔츠에 머리를 끼워 넣었다. 정국은 어린 애를 챙기듯 그의 옷을 당겨 내리고 헝클어진 머리까지 매만져 주었다. 지민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정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선배는… 원래 다정한가요?”
 “내가 다정한 성격은 아니지 않나.”
 “다정한데.”
 “후배님한테만 그러니까 걱정 마.”
 “걱정하는 건 아니고…….”

 눈을 내리깔며 말하는 고운 얼굴선을 보니 또다시 키스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정국은 침을 꼴깍 삼키고, 그를 지나쳐 반대쪽 창문으로 향했다. 어두운 색 시트지가 붙어져 있는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창문은 길가가 아니라 주택의 뒷산을 향하고 있다. 정국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조금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주택의 지대가 높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코앞에 위치해 있다. 고개를 조금 뻗어 내려다보니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정식 등산로가 아니라 개인이 만들어 놓은 듯했다. 다행히 방 창문이 마주보고 나 있는 구조라, 2층에 올라와서 바깥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밤에는 더 시원하겠네. 오늘은 여기서 잘까?”

 좀비들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오진 못할 테니까.

 지민도 시원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침대에 털썩 앉아서 몸을 젖히며 눈을 감고 바람을 가만히 느꼈다. 침묵이 길어지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언제까지 이 안에서 버티는 게 좋을까. 바깥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니 영 답답하다. 혼자라면 이토록 부담이 되진 않았을 텐데, 지민과 진규도 함께 있으니 어떤 것도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뿐이다. 그러나 그게 언제든지 틀린 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봉고를 타고 바로 도망치지 않고 청평역으로 향했던 실수처럼.

 그때 먼저 간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 정을 나눈 후배들은 아니지만, 자신의 판단만 믿고 따라왔던 놈들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청평역에서 좀비에게 물린 녀석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민에게 폭력을 쓰는 것을 보고 욱해서 뺨을 때렸지만, 애초에 청평역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더 앞선 기억. 콘도의 짐을 챙기러 가지 않았다면 찬희도 물리지 않았겠지. 만약 바로 경찰차를 훔쳐 타고 달아났다면 지금쯤 서울에 도착했을까.

 죄책감이 쏟아져 내렸다. 정국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일임에도, 그는 더 나은 판단을 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긴 한숨을 토해냈다.

 “선배.”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뺨에 시원한 손바닥이 닿았다. 제 앞에 서서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있는 눈동자를 한 눈에 가득 담았다. 불러놓고서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지민은 조용히 정국의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마치 위로해주듯.

 “왜 그런 눈으로 봐.”
 “제가 어떤 눈으로 봤는데요?”
 “뽀뽀해줄 것 같은 눈?”

 다시 장난스러운 말을 뱉고는 부스스하게 웃었다. 그러나 지민은 따라 웃지 않았다. 대신 말랑한 입술이 닿았다. 온기가 전해질 정도로 꾹 누르고 담백하게 떨어져나갔다. 정국은 양팔로 지민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의 아랫배에 이마를 묻었다. 보드라운 옷감에 머리를 두어 번 비비니, 지민이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뒷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후배님이 더 다정하네.”

 어쩐지 힘없게 들리는 정국의 목소리가 섬유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






 오늘도 역시 세 시가 가까워지니 군인들이 순찰을 돌았다. 어제처럼 열린 대문 안으로 총을 쏘고, 잠시 반응을 살피다가 돌아갔다. 군용 트럭의 엔진 소리는 공포에 가까웠다. 온종일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커튼 밖을 경계하다가, 계엄군이 지나가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순찰을 반드시 세 시에 돈다는 보장이 없으니 언제든 총성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창 무더울 시간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자 더위가 한풀 꺾였다. 진규는 미지근해진 맥주 캔과 소주병을 들고 왔다. 안주는 콘도에서 챙겨 온 과자였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반나절이 지나면 정신이 피폐해졌다. 이러고 있는 게 대체 좀비 바이러스 때문인지 계엄군 때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린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까?”

 소주를 병째 들고 나발을 불던 진규가 조금 풀린 발음으로 말했다. 알싸한 소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집 안에 숨어 있는 게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식량은 바닥날 것이고, 쌓여 있는 생수도 다 써버리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갈증과 굶주림으로 허덕이다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은.”
 “무섭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
 “그래도 조금만 마셔. 속 버린다.”

 정국은 진규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빼앗아 주둥이에 입을 댄 채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괜찮은 척했지만 정국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술에 취해 헤롱거리다가 군인의 총에 맞아 한 방에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계엄군을 피해 서울로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현재 상황이 어떤지 하나도 알지 못하는 완전한 고립 상태다. 정보가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무기가 없는 것보다 더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후배님도 한 모금 할래?”
 “아뇨. 저는 약을 먹어야 해서….”
 “어디 아파?”
 “그냥, 빈혈 약이에요.”

 지민은 손에 쥐고 있던 알약을 혓바닥에 올려놓고 녹여 먹었다. 약의 쓴 맛 따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현재 처한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이들은 발병 삼일 째가 되어서야, 템포를 늦추고 우울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갔다.

 철없이 굴던 진규도 속은 똑같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던 모양이다. 정국에게서 다시 되찾은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눈을 질끈 감고 물마시듯 들이붓고 나니 머리가 핑 돌았다. 미지근해져서 맛대가리 없이 달짝지근하기만 한 맥주로 입가심을 한 진규는 바닥에 털썩 누워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빛을 모두 차단해놓아 어두운 거실에는 이들이 켜 놓은 촛불 몇 개만 일렁이고 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거든? 내 인생은 너무 평범했어. 정국이 너처럼 뭐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생기지도 않았고, 공부도 그럭저럭. 그래도 학생회 활동 하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고, 관종짓 하다 보니까… 되게 재밌는 거야.”
 “새끼, 진지해지기는.”
 “근데 진짜 이런 상황이 되니까… 그냥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게 내 팔자였나 싶기도 해. 학생회 안 했으면 MT도 안 왔을 테고, 이런 일 겪지도 않았겠지.”
 “후회할 거 없어. 이건 사고니까. 너는 잘 살고 있었어.”
 “…정말 그럴까?”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후회는 네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나 해. 후회하고 나서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니까. 넌 잘못한 거 없어. 가끔 생각 없긴 해도.”

 정국의 말에 진규는 천천히 눈시울을 붉혔다.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울려고 시동을 거는 게 보였다. 정국은 진규의 애 같은 모습에 종종 핀잔을 주긴 했지만, 이 녀석이 제법 괜찮은 놈이란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김윤성의 이상한 짓거리에 같이 동조하지 않은 것도 진규 하나뿐이었으니까.

 “어… 전정국, 감동인데… 너… 형 같아.”
 “술주정 부리지 말고 자라.”
 “우리 살 수 있겠지…? 죽기 싫은데….”
 “죽긴 누가 죽어. 멍청한 소리 하면 사탄 밥으로 던져버린다.”
 “흐엉… 엄마 보고 싶다.”
 “좋겠다. 보고 싶은 엄마라도 있어서.”
 “허엉… 엄마아….”
 “눈 감아. 엄마 꿈 꿔.”

 진규는 조금 더 주절거리다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술이 세지도 않은 녀석이 단숨에 소주 한 병 가까이 들이켰으니 쇼크가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진규가 잠들고 나니 거실 안은 조용해졌다. 정국은 촛불 너머 지민의 얼굴에 시선을 가만히 맞췄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실게임 하는 것 같네.”

 그 말에 지민이 소리 없이 웃었다.

 “박지민 후배님.”
 “네.”
 “언제까지 존대 쓸 거야?”
 “그냥…. 이게 편해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선배 소리가 나와?”
 “…….”
 “내가 두 살 어린데.”
 “알아요.”
 “기분이 새롭긴 하네.”

 정국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남아 있는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한 손으로 캔을 구겨 바닥에 던져두었다.

 “진짜로 진실게임 할래?”
 “저한테 궁금한 거 있어요?”

 음…. 정국은 진짜로 궁금한 게 뭔지 말하려다가 관두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실은 지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것 같기도 했다.

 “있지.”
 “…뭐예요?”
 “우리 서울 가는 데 성공해도, 나랑 계속 연애할 거야?”

 또 연애라는 말을 붙이는 게 간지러워서 지민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말아 물었다.

 “싫은가 보네.”
 “그게 아니라…….”
 “그냥 해본 말이야.”

 정국은 평소보다 기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지만 던지는 말들은 그것보다 가벼웠다. 따지고 보면 연애감정에 대한 것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한없이 가라앉고 싶지 않아서 무슨 말이라도 던지며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물세 살, 많지 않은 나이에 맞닥뜨린 생사의 갈림길과 책임감의 무게를 떨쳐내기 위하여. 물론 그 피난처를 찾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근데 인간적으로 서울 가자마자 헤어지자고는 하지 마.”
 “…….”
 “그럼 나 대나무숲에 글 올린다?”

 서울에 도착한다는 가정을 자꾸만 붙였다. 어쩌면 절대로 이 지역을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씻어내기 위함일 수도 있다. 정국은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만져주다가 문득 눈을 크게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어디 가냐는 듯 궁금한 표정을 짓는 지민을 향해 웃어주고는 K2 소총을 어깨에 둘러멨다.

 “트럭에 잠깐 갔다 올게.”





*






 군용트럭을 세워둔 비닐하우스형 창고 안은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찜통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트럭을 찾은 이유는 갑자기 라디오의 존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혹시 뉴스가 나온다면, 뭐라도 들으며 주워섬겨야 했다. 자신만큼 불안해할 지민과 진규에게 과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켜자마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주의 깊게 채널을 찾기 시작했다. 제발 뭐라도 나와라. 나와라. 정국은 속으로 되뇌며 버튼을 돌렸다. 이내 소음을 뚫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해서 켜본 건데 의외의 수확이었다. 아직 송신소를 파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 가평군은 완전히 전멸했다고 합니다. 계엄군이 생존자 확인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 예, 사흘이 됐는데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양평군과 남양주시, 포천시까지 진행된 감염사태에 생존자를 찾는 것이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고요. 」
 「 그만큼 사탄바이러스의 속도가 전무후무하다는 뜻이겠지요? 」

 사실과는 다른 뉴스를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는 앵커와 게스트. 답답하다. 그러나 이 답답함을 토로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여기 살아 있다고. 계엄군이 미감염자를 모두 죽이려 한다고.

 정국은 깨달았다. 나라에서 라디오 송신소를 굳이 파괴하지 않은 이유를. 뉴스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계엄령이 선포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거니까. 모든 통신을 다 끊어놨으니 저런 엉터리 뉴스를 듣고도 반박할 수 없으니까. 굳이 송신시설을 파괴하면서까지 라디오 전파를 막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에, 좌절했던 정국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 그런데, 사실상 판데믹 선언 이후 위험 지역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현장 뉴스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
 「 맞습니다. 현재 뉴스는 군 측에서 공식 발표한 자료로 제작되고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요. 현장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언론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
 「 특수한 상황이라 취재진 출입통제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죠? 」
 「 예. 하지만 계엄령의 대상이 경기도 인구라 비판의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서울을 움직이게 하는 인구의 상당수가 경기도민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

 대중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말은,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희망이다. 나라를 감시할 수 있는 힘은 오직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역사를 기반으로 계엄령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 예. 역사적으로 여덟 번의 계엄령은 정치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번 사태도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합니다. 사실 정치사안과는 전혀 다른 전염병 문제이지만… 하하. 민주주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정치사안과 다른 문제라는 말에 정국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 전문가 게스트의 입에서 나온 말과 다르게, 정치적인 것과 깊이 연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거짓된 정보를 발표할 이유는 없으니까.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다니.

 「 나흘 후부터 일부 취재진의 출입이 허가된다고 하니, 현장 뉴스를 접하고 나면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취재진이 출입한다고?

 「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계엄 지역 출입 허가는 현명한 결정입니다. 과거 민주화 역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 그렇군요. 저희 KBC에서도 ‘사탄바이러스’ 특집방송을 편성했습니다. 발병 7일째부터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

 발병 7일째, 나흘 뒤.
 취재진이 가평에 들어온다.

 정국은 핸들에 고개를 묻고 생각에 잠겼다.

 계엄령이 전국적으로 선포된 게 아니기에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뉴스 화면 제공이 필요하겠지. 지역 인구 전멸이라고, 생존자를 찾는 중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댔으니 계엄 해제 후 발견 될 폭발의 흔적들을 정당화할 건수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계엄군이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이렇게나 애썼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취재진의 출입이 유일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사탄이 무자비하게 돌아다니는 이 지역을 기자들이 단독으로 다니진 못할 것이다. 분명히 계엄군이 옆에 붙어있겠지. 만약 취재진이 우리를 먼저 발견한다면, 그들의 눈에 띌 수만 있다면… 살 수 있다!



 정국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앞으로 자주 라디오로 뉴스를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정보를 챙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뭐라도 알고 있어야 살 확률이 높아진다. 그의 머릿속이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취재진이 가평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어디로 향할까? 공대생이라 방송 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국으로선 예상하기 힘들었다. 폭탄으로 폐허가 된 곳? 아니면 사탄의 잔해가 널브러진 곳? 그것도 아니면, 엉망이 된 가평의 번화가? 심호흡을 하며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취재진의 눈에 띌 수 있을까.

 총을 고쳐 메고 창고 문을 열려는 순간, 문 바로 앞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정국은 눈을 크게 뜨고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살짝 열었다.

 크르르… 그으으… 크르…

 사탄의 소리다. 그런데 사람의 소리와는 묘하게 다르다. 뭔가 이질적인 숨소리. 동물인가? 정국은 조용히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총을 잡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열려 있는 창고 문 틈 새에 무언가가 보였다. 시커먼 몸집. 그러나 시야가 낮다. 네 발로 기는 짐승. 주택의 뒤에는 산이 있다. 산에서 내려온 동물일 것이다.

 군용트럭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온 것이 분명하다. 사람보다 동물이 소리에 민감하니 미세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밖의 사탄은 어떤 동물일까. 달그락. 철썩. 변이한 동물이 문을 향해 머리를 부딪친다. 문이 다시 닫혔다. 딱딱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몸에 달려 있는 딱딱한 것…. 뿔?

 크으으으… 크릉! 컹! 그르르…

 다행히 안쪽에서 밀어야 열리는 문이라 들어오지 못하고 꿈쩍거린다. 정국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이내 총을 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성이 들리면 산속에 있는 사탄들이 몰려올 테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계엄군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후…….”

 순식간에 긴장감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떤 야생동물이라고 할지라도 사탄으로 변하면 몸체가 생각보다 쉽게 부서진다는 것이다. 정국은 빠르게 눈을 돌려 창고를 돌아보았다. 구석에 농기구 몇 개가 보였다. 묵직하고 기다란 쇳덩이가 매달려 있는 곡괭이를 발견했다.

  침착하자. 목만 잘 내려치면 돼.

 하지만 문 밖에 있는 사탄이 어떤 짐승인지 모르는 상태라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문을 얼마나 열어야 틈을 뚫고 들어올 수 있을지, 달리는 속도는 얼마나 빠를지, 아는 것이 없다. 만약 문을 발로 차 열자마자 달려들면 어쩌지. 혹시 무겁고 거대한 짐승이라면 발로 차는 정도로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저 짐승이 비킬 때까지 꼼짝없이 대치해야 할 수도 있다. 정국이 눈동자를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아…. 일단 문을 조금 열어보자.

 정국은 곡괭이를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문을 살짝 밀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드 한 장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힘겹게 열렸다가 금세 힘에 밀려 닫히고 말았다. 창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날뛰는 통에 턱- 턱- 거친 소리가 이어졌다. 완전 좆 됐군. 정국이 낮게 욕을 내뱉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 휘익, 휙!

 그때 갑자기 문 밖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뭐지?

 “선배!”
 “전정국!!”

 지민과 진규의 목소리다. 정국의 눈이 커졌다. 군용트럭에 다녀오겠다던 정국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던 그들이 창고 문 앞의 사탄을 확인하고 소리로 유인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다다닥, 짐승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안 돼! 정국이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현관문을 열고 서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짐승의 뒷모습. 저건 분명 멧돼지다.

 “들어가!!!!!”

 정국이 멧돼지의 뒤를 따라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엄청난 속도로 현관을 향해 달려드는 멧돼지를 보고 놀란 두 사람이 손을 떨며 황급히 움직였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멧돼지는 현관의 코앞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정국이 잽싸게 손에 쥔 곡괭이를 집어 던졌다. 묵직한 쇳덩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멧돼지를 맞추지 못한 채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졌다.

 크으으으으… 크릉…

 그 순간 재빠르게 멧돼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털컥 소리와 함께 현관문도 닫혔다. 정국은 그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했으나, 이내 자신 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는 사탄을 보고는 황급히 창고로 도망쳤다. 있는 힘껏 달려 창고에 들어가 농기구를 향해 몸을 넘어뜨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것이나 쥐었다. 3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낫. 정국은 바닥에 누운 채 제 몸 위로 달려드는 멧돼지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크어어어억! 킁! 컥! 꾸억!

 뾰족한 날이 시커먼 멧돼지의 코에 박혔다. 그러자 멧돼지가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제 몸 위를 덮은 채 날뛰는 무게에 정국은 내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지만 이를 악 물고 버티며 코에 박힌 낫을 힘을 주어 뽑았다.

 젠장, 살다살다 멧돼지도 때려잡네.

 온몸이 까맣게 변한 멧돼지의 몸엔 오직 튀어나온 뾰족한 송곳니만 하얗게 돋보였다. 아마 저기에 찔리면 감염될 것이다. 정국은 멧돼지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다시금 낫을 목에 박아 넣었다. 생각보다 쉽게 날이 모가지를 통과했다. 스윽, 소리와 함께 목이 베어지는 소리가 났다. 멧돼지가 발버둥 치며 경련했다. 정국은 창고 밖으로 몸을 틀며 뒷걸음 쳤다. 두꺼운 목이 완전히 떨어져나가지 않아서 숨이 붙어 있는 짐승이 크르릉거리며 정국을 향해 다가왔다. 정국은 낫을 고쳐 들고 다시금 경계태세를 갖췄다.

 이번엔 반대쪽을 치는 거야.

 어느덧 마당까지 걸어 나간 탓에 시신 썩은 내가 진동했다.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을 꾹 참으며 정국은 손목으로 코를 틀어막고 낫을 공중으로 휙 휙 휘둘렀다.

 “와 봐. 이 돼지 새끼야.”

 꾸엑! 퀘엑! 크르르…

 멧돼지가 덜렁거리는 고개를 부르르 떨더니 다시 뒷다리를 구르며 정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국은 콧잔등을 구기며 팔에 온 힘을 주어 낫으로 목을 겨냥했다. 커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멧돼지의 목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털썩, 묵직한 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허억… 허억….”

 정국은 그제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목이 날아간 채로 쓰러진 짐승을 내려다보며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문득, 손목에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오른 손을 들어 보니 살이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다. 정국이 고개를 번쩍 들어 날아간 멧돼지의 모가지를 확인했다. 삐져나와 있는 송곳니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쓰라린 손목의 상처를 꽉 눌렀다. 정국이 쓰러진 멧돼지의 사체에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앞발의 뭉툭한 발굽에 정국의 피가 조금 묻어나 있었다. 아까 몸싸움을 하다가 발굽에 세게 짓눌려 긁힌 상처인 듯하다. 혹시 이것으로도 감염되는 걸까?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다행히 찢어진 상처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정국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택의 창문가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민 지민이 자신을 보며 하얗게 질린 채로 울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정국은 고개를 들어 노을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깊은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울고 있는 지민을 향해 미소 지었다.  




*





 “거기서 휘파람은 왜 불어. 돌았어? 사탄 되고 싶어?”
 “미친놈이 살려줘도 지랄이야. 흐엉.”

 진규는 아직 술이 깨지 않아 혀가 풀린 채로 발음을 뭉갰다. 지민은 조용히 정국의 상처 위에 소독약과 가루약을 뿌리며 치료했다.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다. 하마터면 멧돼지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박혀 사탄이 될 수도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다. 낫 하나를 들고 산짐승과 몸싸움을 벌이려던 건 무리수였다. 만약 진규와 지민이 휘파람을 불어 유인하지 않았다면, 창고 안에서 언제까지고 계속 대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탄은 한번 인식한 상대는 끝까지 물어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으니까.

 “후배님이 진규 깨운 거야?”
 “네.”
 “잘했어. 만약 혼자 했으면 당황해서 현관문 못 닫았을 수도 있어.”
 “창고에 가지 마세요.”

 지민이 조금 화난 투로 대꾸했다. 정국이 죽을 뻔한 위기를 겪는 것을 보았으니 많이 놀란 듯했다. 정국은 괜히 기분이 좋아 제 손목에 거즈를 붙이는 지민의 손등을 잡고 입을 쪽 맞추었다.

 “라디오를 들으러 갔어. 제법 쓸 만한 정보를 얻었지.”

 손등에 뽀뽀를 당한 지민이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훌쩍, 축축한 소리를 냈다. 정국은 지민의 머리통을 끌어당겨 품고는 그의 머리카락 위에 뺨을 비볐다.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안 죽어. 나 독한 놈이라서.”
 “위험했잖아요.”
 “좀 멋있지 않았어? 나 살았으니까 뽀뽀해주던가.”

 지민의 등을 쓸어주며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진규가 술기운 때문에 어지러운지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우며 술 냄새가 가득한 숨을 허공으로 뱉었다. 한숨과 함께 환멸이 짙게 묻어났다.

 “진짜… 독하다… 지독하다 너네… 시바… 그냥 저거 멧돼지한테 뜯기게 놔둘걸. 내 인생… 커플지옥… 솔로천국….”

 주절주절 한탄하는 진규를 뒤로하고 정국은 지민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긴장이 풀리니 몸이 나른해졌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눈을 꾹 감았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몇 개 더 늘었다. 나흘 뒤 취재진이 가평에 온다는 것. 사탄이 된 짐승은 위협적이라는 것. 이빨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난 상처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

 차가운 생수로 샤워하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털어내고 싶었다.





*






 정국은 잠결에 이상한 감촉이 들어 꿈틀거렸다. 몸 어딘가가 뜨끈하게 울리는 느낌. 나른하지만 찌릿한 감각. 뜨거운 접촉. 그가 미간을 좁히며 몸에 힘을 주었다. 까맣게 내린 밤, 창문을 열어놓아 시원한 여름 바람이 드는 2층 방. 정국은 낯설게 닿아오는 감촉에 천천히 정신을 깨웠다.

 “으음….”

 뭐지. 비몽사몽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미간이 좁아지며 속에서부터 앓는 신음이 터졌다. 제 허벅지를 잡고 있는 시원한 손길. 그리고 중심에서부터 오는 느른하지만 자극적인 감각.

 “하으….”

 정국이 고개를 젖히며 입을 벙긋거렸다. 꿈인가?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아랫도리의 느낌이라니. 자위를 너무 오래 안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덜 깨어난 정신은 그의 의식의 흐름을 아무렇게나 끌고 갔다. 성기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부드러운 느낌에 저도 모르게 허리를 위로 조금 튕기며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사방에서 찰싹 달라붙어 마찰해오는 말도 안 되는 감각에 저절로 신음을 토해냈다.

 “…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축축하게 아래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히 꿈이 아니다. 정국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전율에 놀라 상체를 다급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놀라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지민이 제 아래에 고개를 묻고 좆을 빨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좁은 입 안에 밀어 넣고 혀를 굴리며 고개를 상하로 움직여댔다.

 아, 돌아버리겠다.

 정국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지민의 양 볼을 꽉 잡아 눌렀다. 그러자 악력에 눌린 볼이 아팠는지 지민이 그의 것을 뱉어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다.

 “지금 뭐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번들번들하게 침이 묻은 아래와 축축한 지민의 입술을 보며 솟아오르는 성욕을 꾹 참아 눌렀다. 잠들어 있는 자신에게 갑자기 펠라를 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기분이 낮게 깔렸다. 꽉 쥐었던 볼을 놓아주자 지민이 입술을 달싹이더니 손을 더듬어 정국의 좆을 찾아 잡고 어설프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야.”
 “화… 내지… 마요… 선배….”

 숨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한 지민이 또다시 정국의 것을 입에 넣으려고 입을 벌렸다. 정국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 들었으나 꾹 참으며 그의 이마를 밀어냈다. 그러나 지민은 밀려나지 않으며 고개를 비틀어 새끼 강아지처럼 더 파고들려고 했다.

 “그만해.”
 “…….”
 “그만… 하랬어.”
 “화… 내지 마요….”

 정국은 지민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지나치게 늘어지는 말꼬리. 꼭 감고 있는 눈. 마치 잠꼬대를 하는 사람처럼.

 “후배님. 하지 마.”
 “잘못… 했어요…….”
 
 정국이 지민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그의 눈을 뜨게 했다. 천천히 지민의 눈꺼풀이 열렸다. 나른하게 풀린 눈으로 정국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유난히 밝은 달빛이 쏟아져 내려 두 사람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눈이 마주치자 정국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지민이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젖은 입술을 달싹였다. 여전히 정국의 것을 손에 쥔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정국은 이미 여러 차례 자극을 받아 터질 것 같은 감각에 숨을 거칠게 쉬며 지민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후배님.”
 “…잘못 했어요.”
 “알겠으니까, 이거 하지 마. 놔.”
 “제가… 잘못… 했어요.”
 
 통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마치 정국의 말이 하나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의문스러운 그의 태도에 정국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제 좆을 잡은 지민의 손을 떼어내려 붙잡았다. 그러나 별안간 들린 말에 정국은 순식간에 얼음이 되고 말았다.

 “잘못 했어요…… 윤성 선배….”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하는 지민의 말. 윤성 선배라고? 정국은 입을 벌린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지금 지민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찌미  | 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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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  | 19041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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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 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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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myssi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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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 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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춉춉  | 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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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곰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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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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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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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캬캬  | 19050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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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미니  | 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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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쟈  | 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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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  | 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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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 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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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랭이  | 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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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 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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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이  |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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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  |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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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롭  | 19060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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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 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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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꾸  | 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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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kyo  | 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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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리  | 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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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 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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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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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프랄린  | 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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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 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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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꾹꾹이  | 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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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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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꾹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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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블루  | 190716  삭제
제친구중에 윤성이라고 있는데
처음엔 별 생각없었는데
그친구가 싫어지려고 하네요
그친구는 여잔데 ㅠㅠ
하경  | 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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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30077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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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yot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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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 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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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짐니  | 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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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하뚜  | 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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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샥  | 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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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불가  | 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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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이  | 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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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레  | 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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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 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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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찜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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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난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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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니조아23  | 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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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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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n  |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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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반  | 1908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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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xxkmxn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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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미  | 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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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리얼!  | 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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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이  | 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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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시아  | 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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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하세얌  | 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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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이  | 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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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꾸기  |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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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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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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