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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09 랠리 씀

28 Days Later – In the house, In a heartbeat

아마겟돈
09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















 진규는 주택에서 생존을 시작한 이후 바깥으로 나온 것이 처음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몇 걸음을 걷자마자 시체 썩은 내가 진동했다. 예고 없이 맡은 악취에 제 코와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독한 냄새에 그대로 구역질을 했다. 욱, 우욱. 괴로운 소리를 내며 점심에 먹은 음식을 그대로 물 쏟아내듯 올렸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비위가 상한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역겨웠다. 살면서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를 맡는 경험을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괜찮냐?”
 “야, 넌, 우욱, 이걸 대체 어떻, 우웨엑.”

 대체 어떻게 이 냄새를 참고 창고까지 왔다갔다 돌아다녔냐는 뜻일 테다. 진규가 멀건 위액을 다시 쏟아내며 괴롭게 꺽꺽거렸다. 반사적으로 줄줄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내다가 자기도 모르게 마당으로 눈을 들었다. 가스가 차서 뱃가죽이 풍선처럼 팽창한 상태로 허연 구더기에게 뒤덮여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는 또다시 우웩, 웩,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정국은 손등으로 코를 막고 호흡을 참으며 진규의 뒷덜미를 잡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시신을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고개를 돌린 진규가 정국의 몸을 꽉 붙들고 대문으로 향했다. 다행히 근처는 고요했다. 정국은 재빠르게 움직여서 옆집으로 달렸다. 정문보다는 마당 옆 편에 있는 쪽문이 더 가까웠다. 활짝 열려 있는 그 문은 그들이 지내던 주택과 약 1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2층 창문에서 옆집 건물 외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탄이 나타날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국아, 올라갈까?”

 진규가 사다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가스 배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정국이 고개를 젓더니 조용히 마당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사탄 들어가 있으면 어쩌냐며?”

 그리곤 손가락 한 마디만한 돌멩이를 2층 창문으로 던져 올렸다. 탁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창에 부딪쳤다. 잠시 정적.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만약 안에 사탄이 있었으면 벌써 괴성을 지르며 창가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정국은 그제야 안심한 듯 진규에게 먼저 올라가라며 턱짓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배관을 타고 2층으로 올랐다. 중간에 미끄러지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진규는 의외로 어려움 없이 2층까지 무사안착 했다. 넓은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진입한 두 사람은 총을 어깨높이로 들고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혹시 1층에 있을 수도 있는 사탄을 경계하며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계단을 밟았다.

 “아무도 없는 거 같네.”
 “우욱.”

 그러나 1층의 현관 앞에는 부패한 시신 두 구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콧속으로 밀려오는 시취에 진규가 또다시 구역질을 했다. 정국은 숨을 참고 입으로 호흡하며 살폈다. 이 집은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고, 그 앞에는 사탄으로 변한 사체 두 구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변이가 되던 도중 총에 맞은 건지 허리 밑까지만 까맣게 변해 있었다. 심장이 멈춰 혈액이 돌지 않으면 더 이상 변이도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다. 몸의 절반이 사탄으로 변했으니 계엄군도 굳이 사체를 처리하려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감염되지 않은 상반신은 허연 구더기로 뒤덮여 역겹게 썩어가고 있었다.

 “나 진짜 토할 것 같아.”
 “애써 먹은 거 토하지 말고, 얼른 챙기자.”

 정국은 부산스럽게 움직여 주방을 뒤졌다. 수납장을 하나씩 열어보니 먹을 것들이 보였다. 라면류, 통조림류, 즉석밥, 카레와 짜장 같은 레토르트 식품. 게다가 이런저런 주전부리도 양이 제법 됐다. 심지어 부탄가스까지 발견하고는 정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적어도 취재진이 온다는 날까지는 풍족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문고리에 걸려 있는 쇼핑백 하나에 잡히는 대로 주워 담았다. 진규는 아직도 시취 때문에 비위가 상하는지 코를 틀어막고 발을 동동거렸다.

 한 손 가득 식량을 챙겨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인 진규가 숨을 몰아쉬며 헉헉거렸다.

 “넌 진짜… 비위까지 좋냐?”
 “그냥 참는 거지. 별 수 있어?”
 “두 번 다시 맡고 싶지 않다. 으윽.”

 정국이 쇼핑백 손잡이를 팔꿈치까지 단단히 끼워 올렸다. 총을 크로스로 단단히 둘러메고는 매무새를 정돈했다. 배관을 밟고 올라오는 건 괜찮았지만 내려가는 데에는 제법 요령이 필요하다. 위협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 뛰어내렸다가는 발목이 다칠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정국은 제가 먼저 배관을 타고 내려가서 진규를 잡아줄 생각을 하고는 창틀 위로 훌쩍 뛰어 올랐다.

 “너 먼저 내려가게?”
 “…….”
 “정국아?”
 “젠장!”

 높아진 정국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는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정국은 진규가 뭐라고 물어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훌쩍 뛰어내렸다.

 “전정국!!!”

 망설임 없이 낙하한 정국을 보고 진규는 경악한 얼굴로 얼른 창틀로 뛰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털썩. 걱정과는 달리 무릎을 굽히며 안전하게 착지해서 몸을 굴린 정국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민이 홀로 남겨진 방향이었다. 기껏 챙긴 쇼핑백을 내던지고 총을 장전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정국을 따라 얼른 창틀로 올라선 진규 역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이 크게 뜨였다.





*






 !!

 현관의 잠금장치가 파괴되는 소리에 놀란 지민이 한걸음 물러났다. 총성은 맞는 것 같은데 여태 들어왔던 것과는 달랐다. 도어 록이 부서지면서 찌그러진 현관문의 안쪽 면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탄환이 발사된 것은 맞다. 지민은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정국과 진규가 아닐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걸쇠부터 풀었다. 대체 누구일까. 적어도 정국이라면 문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을 것이다.

 계엄군인가?

 지민은 겁에 질린 채 천천히 뒷걸음 쳤다.

 철컥철컥.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지민은 뒷목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서 있다가 문득 집 안에 총이 남아있지 않은지 거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두 개의 총은 정국과 진규가 가지고 나간 후였다. 지민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달그락.

 문고리가 함께 파괴되어 잘 돌아가지 않는지 헛돌고 있다. 턱!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을 향해 발길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은 다리가 풀려 현관문을 바라본 채 주저앉았다. 몸을 휘감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정국이 돌아오기로 한 20분이 다 됐다. 도망친다고 한들, 이 집 안에서 자신이 숨을 곳은 한정적이다.

 “정국 선배…. 선배….”

 지민은 정국의 이름을 부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감당하기 힘든 공포감에 숨 쉬기조차 어려워서 정신이 흐려지고 있다. 지민은 울음이 터지려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턱! 턱! 거세게 문을 발길질할 때마다 현관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곧 열려버릴 듯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차라리 이대로 기절해버렸으면 싶다.

 그때,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들었던 총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터억! 그와 동시에 굉음을 동반하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아…….”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건 군복을 입은 남자였다.

 “윽, 억, 커억….”

 정확히는 정국의 팔뚝에 목을 졸린 채로 발버둥치는 계엄군.

 하아……. 지민은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탄식을 토해냈다. 정국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도감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정국은 무서운 얼굴로 군인의 뒤에 서서 그의 목을 압박했다. 군복의 오른쪽 팔에 빨간색 완장을 찬 계엄군은 시뻘게진 얼굴로 컥컥대며 바르작거렸다. 정국의 다른 손에는 계엄군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 앞에 소음기가 달려 있는 K7기관단총. 조금 아까 터진 총성은 정국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나 보다. 군인은 오른쪽 다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정국은 어금니를 꽉 물고 군인의 목을 비틀어버릴 기세로 졸랐다.

 “흐윽, 선배….”

 몸이 점점 흘러내린 군인이 군화 발을 바닥에 문지르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지민은 발작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만약 정국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컥, 크… 살려… 헉, 커으….”

 군인이 컥컥 내쉬는 소리가 점점 더 간헐적으로 변했다. 정국은 팔에 힘줄이 돋아날 만큼 단단하게 목을 조르며 앉아 있는 지민의 얼굴을 살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지민은 축축하게 젖어 있는 제 얼굴을 닦아내고는 그를 향해 애써 웃어주었다.

 “괜찮아?”
 “네….”
 “놀랐지. 늦게 와서 미안해.”

 제 팔 안에서 계엄군의 목숨을 끊어가고 있는 사람치고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마치 지민이 안전하면 무엇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정국의 팔 안에서 발버둥 치던 군인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었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안간힘을 쓰던 안면근육이 풀어지고, 단단한 정국의 팔을 손으로 쥐어뜯는 손짓에는 힘이 없었다. 이내 동공이 풀리기 시작했다. 군인이 지민에게로 손을 뻗어 허우적거렸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느리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지민은 무심코 군인의 얼굴로 시선을 두었다.

 “어…?”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쩍했다.

 “헉, 허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뒤늦게 정국이 내던진 쇼핑백을 주워서 달려온 진규가 놀라서 물었다. 정국의 팔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계엄군과 부서진 현관문의 상태, 그리고 핏자국이 낭자한 바닥을 둘러보며 상황이 다행히 종료된 걸 깨닫고는 무릎을 짚은 채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아, 완전 놀래라…. 뒷산 산책로에서 군인 내려오는 거 보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근데 더 놀란 건 뭔 줄 알아? 전정국이 2층 높이에서 확! 뛰어내리는데 무슨 스파이더맨이,”
 “저, 정국 선배…!”
 “엥?”
 “안 돼요!”

 지민이 다급하게 정국에게로 뛰어들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정국이 군인의 목을 조르던 팔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군인이 가까스로 산소를 찾으며 히익, 히익,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후배님, 왜 그래?”
 “아들…!”
 “뭐?”
 “지, 집주인 아들이에요!”

 뭐라고?

 지민의 말에 정국과 진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곤 열린 현관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거실 벽에 붙어 있는 가족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의 어깨에 손을 댄 채 온화하게 웃고 있는 청년. 그들 나이 또래 아들의 얼굴은 까맣고 짙은 눈썹과 쌍꺼풀 없이 기다란 눈매가 특징적이었다. 정국이 목을 조르던 팔을 풀자, 군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숨통이 트여 죽을 듯이 기침하며 숨을 다급히 몰아쉬는 얼굴. 정국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알 수 있었다.

 “하…. 젠장.”

 집 주인의 아들이 맞다는 것을.





*






 “소속, 관등성명.”

 정국은 제 손에 들린 K7기관단총을 내려다보며 집주인 아들을 바라보았다. 보통 사병들은 K2소총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국이었다. 톨게이트에서 빼앗은 두 개의 총 역시 K2소총이었고, 순찰을 도는 계엄군이 가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소음기까지 달려 있는 이 기종의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게다가 순찰을 돌던 계엄군들과는 달리 붉은색 완장이 둘러져 있는 군복을 입고 있다. 창고에 세워져 있는 군용트럭에도 이와 같은 마크가 새겨진 빨간 깃발이 달려 있다. 무언가 특별한 소속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계엄사령부 해골부대 작전본부 1중대, 상병 이명훈.”
 “해골부대? 처음 들어보는데.”
 “합동참모본부에서 분리해서 새로 편성한 부대예요. 계엄군 지휘를 맡고 있어요. 특전사 출신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빨간 휘장은 계엄사령부에서 새로 만든 부대마크였던 모양이다. 정국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주시했다. 가슴팍에 새겨진 이름, 이명훈. 계급은 상병. 이제 막 스물한 살이 된 어린 나이였다. 어째서 그는 홀로 부대를 탈주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정국은 손에 들린 총의 탄창을 열었다. 탄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고작 두 발 남은 총알 중에 하나를 현관문 부수는 데에 사용한 것이다. 나머지 한 발은 허벅지에 박혔다.

 “아윽….”

 정국이 쏜 총알이 박혀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환부를 내려다보았다. 총알을 빼낼 수는 없으니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한답시고 약품을 뿌려 붕대를 묶었다. 그러자 고통스러운지 명훈이 이를 악 물며 땀을 줄줄 흘렸다.

 “어쩌다가 온 거야? 지금 도망친 거 맞지?”

 진규가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명훈에게 물었다.

 “네…. 탈영했어요. 아버지께서 평소에도 현관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셔서, 어쩔 수 없이 그랬습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명훈이 지민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실 집 주인은 이 남자고 세 사람은 그야말로 허락되지 않은 침입자에 불과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명훈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정국은 조용히 진규를 향해 휴대폰을 꺼내라고 일렀다. 그러자 진규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계엄군을 지휘하는 부대원이 목숨을 걸고 탈주했다면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국은 명훈의 입에서 나올 말들을 기대했다.

 “이건 혹시 나중에 증거가 될까 봐 찍는 거야.”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띵, 하는 알림음과 함께 영상 녹화가 시작되었다. 명훈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조금 거칠게 몰아쉬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엄군의 분위기가 이상해요. 처음에는 사탄을 소탕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변이된 사탄을 보면 무조건 쐈어요. 그런데 갑자기 조건이 생겼어요. 사탄의 근처 5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도 반드시 죽이라고.”

 정국은 청평역 근처 택시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군인들이 지나가며 사탄으로 변이한 택시기사와 승객, 그리고 멀쩡한 어린아이에게 무자비하게 총질을 했었다.

 “그러더니 몇 시간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균자라고 했어요. 수돗물 때문에 전부 발병했다고. 개인차가 있어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뿐이지 모두 변해버릴 거라고 했어요. 처음엔 정말로 그런 줄 알았어요. 까라면 까야하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쐈고, 아파트를 폭파시켰고.”
 “그랬겠지.”
 “그런데 희한한 건, 변이하지 않은 시신은 반드시 모아서 흔적 없게 처리하라는 거예요. 꼭 뒤가 구린 것처럼.”
 “비감염자를 죽인 게 밝혀지면 난리가 날 테니까.”

 그들은 대체 어떻게 사람들의 시체를 처리했을까.

 “처음에는 트럭에 시신을 쌓아두면 지휘관들이 차를 몰고 사라졌어요. 그런데 점점 더 시신이 많이 쌓이기 시작하니까 이제 병사들을 시키는 거예요.”

 이내 명훈의 표정에 독기가 서렸다. 기억을 더듬으며 분노가 차올라 이를 꽉 깨물었는지 저작근이 꿈틀거렸다. 진규는 휴대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던 명훈이 화를 눌러 남는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었다.

 “시체 처리장에서 우리 누나를 발견했어요.”

 그 한 문장에 가득 담긴 분노가 느껴져 정국은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씹었다. 무어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넓은 집 안에는 간헐적으로 떨려오는 명훈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그건 곧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우리 누나 시체 보자마자… 다 쏴죽이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안 났어요. 흐윽…. 우리 누나, 너무 멀쩡했다고요. 으윽. 차마 우리 누나라고 말을 못하고, 흑, 병장이 구덩이에 누나 던지는 거 보니까… 돌아버릴 것 같아서…….”

 정국은 고개를 들어 허공에 탄식을 토했다. 휴대폰을 든 진규와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지민은 어느새 조용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어린 군인이 마당에 널려 있는 제 아비의 시신도 보았을까. 뒷산에서 내려왔으니 아직 못 봤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봤어도 그게 제 아버지인 줄 모를지도 모른다. 부패가 진행되어 허연 벌레로 뒤덮여 있는 흉측한 모습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할 리 없으니. 정국은 명훈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신이 점점 많아지니까… 슬슬 부대원들도 이상한 걸 느끼고 있었어요. 흑…. 위에서 하는 말이랑 좀 틀리다는 거. 뉴스에서는 닿자마자 감염되고, 물리면 바로 변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본 시신들은 다 깨끗했으니까요.”
 “나라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계엄군은 생존자를 찾은 적 없잖아.”
 “네. 생각해보니 2중대에서 생존자를 찾는다고 했어요. 흐윽…. 아마 다 거짓말이겠죠. 2중대에는 1중대가 찾는다고… 그렇게 말하겠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꼭 죽여야 했을까. 정국은 머리가 아파서 눈썹 언저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아마 들키면 저는 사살될 거예요.”

 명훈이 제 가슴팍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계엄군에게 지급된 군사용 작전폰이었다. 정국은 그걸 보자마자 눈을 치켜떴다. 명훈은 전원을 꺼버린 액정을 보여주며 희미하게 웃었다.

 “GPS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양평 쪽에서부터 넘어왔어요. 전원은 화야산 중턱에서 껐고요. 아버지랑 등산을 자주 해서 이쪽 산 지리를 잘 알거든요. 이걸 켜자마자 당장 잡으러올 테지만.”
 “집으로 오는 건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입대할 때 주소지가 서울로 되어 있어서 여긴 금방 못 찾을 거예요. 어차피… 오래 살고 싶은 마음 없어요. 그냥,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시는지만 확인하고 싶어서….”

 그의 말에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진규는 녹화를 멈추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정국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말을 고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밤새 산길을 달려왔을 명훈을 위해 옆집에서 챙겨온 식량을 주섬주섬 꺼냈다. 지민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국을 도왔다. 진규만 그의 옆을 지키고 앉아 무슨 위로라도 해줄까 싶어 안절부절못한 채 마른입술을 축였다.

 부탄가스를 넣은 버너에 불을 올리고 물을 끓이는 동안 정국은 싱크대를 짚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서 군사용 작전폰을 이용할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에 있을 때에 수없이 전시훈련을 했지만, 지금은 실제 전시상황과 다름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신설된 계엄사령부대라면 더욱이 그렇다. 종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정국은 조금이라도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선배….”

 지민은 조용히 다가와 정국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촉에 정국은 생각을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지민이 말없이 등에 뺨을 비볐다. 정국은 그제야 조금 편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그를 마주 안았다. 맞닿은 심장이 기분 좋은 울림으로 낮게 뛰었다.

 “아까 현관문 부서졌을 때, 누가 먼저 생각 난 줄 알아요?”
 “나겠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정국을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 진짠가 보네.”
 “아닌데요.”
 “뭐야? 어떤 놈인데 자기야.”

 정국이 지민의 뾰족한 턱을 잡고 추궁하듯 물었다. 그 소리에 지민은 못 말리겠다는 듯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강아지처럼 정국의 가슴팍으로 세게 파고들었다. 그 기운에 뒤로 반걸음 밀려난 정국이 그의 머리통을 한가득 끌어안으며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무서웠구나, 우리 후배님.”
 “선배 때문에 살았어요.”
 “혼자 안 둘게 이제.”
 “선배가 계속 나를 살려….”
 “어. 앞으로도 계속 살릴 거야.”

 위로하듯 매만지는 손길에 지민은 정국의 몸통을 더 꽈악 끌어안으며 웅얼거렸다. 선배 없으면 나 벌써 죽었어요…. 선배가 있어서 내가 살았어…. 가슴팍에서부터 들리는 작은 소리에 정국은 한참이나 고요하게 그의 몸을 만져주었다. 등 뒤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물도 두 사람의 위로를 방해하지 못했다.





*






 긴 탈출을 감행한 명훈은 해가 지기도 전에 지친 몸을 끌고 소파 구석에서 기절한 듯 잠들었다. 간만에 배부른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고요한 거실에서 무더위와 싸우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해가 지고나면 못 견디게 더운 날씨도 조금 가라앉고 뒷산 쪽 창문을 통해 선선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지민은 정국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아냈다. 그러나 촛불 몇 개만 켜 놓은 어둑한 거실에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정국의 다정한 손길은 계속해서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짓눌렀다. 오늘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고 온몸을 바짝 긴장했던 탓에 몸살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진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정국의 낮은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지민은 점점 깊은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네가 기자라면 어딜 가장 먼저 갈 것 같아?”
 “음….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곳?”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곳이라…….”
 “원래 뉴스가 그렇잖아. 궁금한 걸 보여주지 않나?”
 “라디오에서 그러더라. KBC에서 사탄바이러스 특집방송을 편성했다고.”
 “어, 그럼 그냥 뉴스가 아니라 다큐 아니야?”

 KBC는 공영방송이기에 평소에도 다큐 프로그램 편성이 많았다. 정국은 생각에 잠겼다. 보통 다큐 프로그램 구성이 어땠는지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딱히 본 것이 없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너 다큐 본 거 있냐.”
 “다큐 본 적은 많지.”
 “다큐는 어때?”
 “뉴스랑 비슷해. 다큐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걸 보여주지. 뉴스보다 좀 길고 자세하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주는 느낌으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국은 진규의 말을 곱씹었다. 청평호에 뜬 시신을 최초 감염자라고 했던 뉴스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래. 정말로 김윤성이 최초 감염자가 맞다면, 분명히 청평호를 배경으로 한 화면을 담지 않을까.

 “그래. 청평호.”
 “어, 전정국. 통했어. 나도 방금 그 생각했어.”
 “사탄이나 폭파된 건물 같은 건 어디서 찍을지 몰라도, 청평호 쪽은 무조건 올 것 같아. 그치?”
 “엉. 물 때문에 감염 빨라졌다며. 그럼 청평호는 백프로야.”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나둘씩 풀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청평역에 있을 때 청평호 방향에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청평호 부근의 건물들을 폭파시켰다면, 건물 잔해와 같은 폭발의 흔적도 한꺼번에 화면으로 딸 수 있을 것이다. 계엄군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쓴 것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좋은 장면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 최초 발생지, 널브러진 건물의 잔해, 사탄의 흔적.

 “그럼 내일 밤에 청평호로 출발하자.”
 “괜찮을까? 취재진이 언제 나타날 줄 알고? 어디서 기다려?”
 “그건 조금 더 생각해볼게. 일단 밤에 출발해야 하는 건 확실해. 낮에는 아마 이 동네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들 거야. 계엄군의 눈에 잘 띌 테니까.”

 청평호 근처에 가서 취재진이 올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과연 그럴 만한 곳이 있을까. 만약 취재진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접근하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총에 맞아 벌집이 되지는 않을까. 정국은 이제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꼬리를 물었다. 아마 이런 고뇌는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었다.



 “저는… 박지민인데요….”

 그때 갑자기 허벅지를 베고 잠들어 있던 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국과 진규의 대화가 끊겨서 조용했던 터라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잠꼬대 같은 말에 진규가 얼굴에 물음표를 달며 지민을 바라보았다. 정국은 본능적으로 그날 밤을 떠올렸다. 제 아랫배 쪽을 바라보며 누운 지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촛불을 등지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지민의 얼굴을 더듬어보려던 찰나, 그가 윗몸을 스르르 일으켰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말꼬리를 늘이며 멍한 얼굴로 허공에 대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꾸물꾸물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소파에서 일어나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주방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국아, 형 갑자기 왜 저래? 잠꼬댄가?”
 “…….”

 몽유병이다. 정국은 확신했다. 지민이 어두운 주방으로 가서 탁자 위를 더듬어 생수병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병을 돌리려고 몇 번 시도하더니,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금세 포기하고는 멍한 얼굴로 우두커니 섰다. 미동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진규의 얼굴은 점점 의문으로 물들어갔다.

 “지민이 형. 깬 거야?”

 진규가 지민을 불러봤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식탁 앞에 가만히 서서 멍하게 있더니 이내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제 티셔츠 자락을 붙잡았다. 마치 옷을 벗으려는 움직임 같기도 했고, 벗기지 못하게 막는 움직임 같기도 했다.

 “큭큭, 저 형 이상해. 화장실인 줄 아는 거 아냐?”

 지민의 모습이 신기한지 큭큭 웃는 진규를 뒤로하고 정국은 얼른 그에게로 달려갔다. 티셔츠를 반쯤 올리고 있는 지민을 얼른 저지하고는 그의 몸을 어깨에 가볍게 들쳐 멨다. 지민은 인형처럼 달랑달랑 매달린 채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저는… 아… 관심 없는데…….”
 “나 2층 올라간다. 쉬어라.”
 “어엉.”

 정국은 다급히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진규는 아직도 잠꼬대를 하는 지민이 신기하고 웃긴지 그들이 올라간 계단 쪽을 보며 쿡쿡 웃다가 소파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정국은 지민을 침대 위에 눕혀놓고 한숨을 쉬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와 지민의 얼굴이 제법 잘 보였다. 지민은 멍하게 눈을 뜬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몽유병이라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깨워야 하나? 정국은 판단이 되지 않아 가만히 그를 내려다본 채로 관찰했다. 지민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면서 두서없는 말들을 뱉었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했다. 꿈을 꾸는 중인 걸까. 아마도 꿈속에서 하고 있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듯했다.

 지민이 말하는 것을 유심히 듣던 정국의 표정이 이내 굳었다.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신입생? 몇 살?’
 ‘스물네 살이요.’
 ‘입학이 늦네? 왜. 뭐 문제 있었어?’
 ‘아…. 건강 문제 때문에….’
 ‘오, 어디 아팠었어? 어디?’

 왜 자꾸 말을 걸지. 무서워. 표정이 이상해.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왔을까.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또… 그랬던 건가. 저 사람 웃는 얼굴 싫어. 징그러워. 어디까지 봤지? 아… 안 되는데…….

 ‘내가 형 방 찾아가려다가 우연히 봤는데 말야.’
 ‘…….’
 ‘이런 걸 봤지 뭐야.’

 어떻게 하지? 다 찍은 건가?

 ‘혹시 정신병 있어?’
 ‘그, 그런 거… 아닌…’
 ‘귀신을 보나? 허공에 혼잣말 하며 화내는 거 소름끼치던데.’

 그렇게 말하지 마.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마. 나는… 상처야. 아파. 그러지 마…. 부탁이야.

 ‘다른 애들은 모르지?’
 ‘…….’
 ‘걱정 마. 소문 안 내. 내가 한 마디 하면 학과 전체에 다 퍼지는데 어떻게 소문을 내겠어. 안 그래?’
 ‘……고마워요.’
 ‘지민아, 형이라고 안 해도 되지?’
 ‘아… 네….’

 기분 나빠.

 ‘나 지민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
 ‘네….’
 ‘그래서 말인데,’
 ‘…….’
 ‘이런 거, 할 줄 알아?’

 뭐지?

 ‘여기, 입으로 빠는 거. 할 줄 아냐고.’
 ‘시, 싫…’
 ‘싫어? 소문나는 게 싫단 뜻이지?’
 ‘…….’
 ‘어려운 거 아닌데. 이렇게 입 벌리고… 그렇지.’

 싫어. 냄새나…. 근데… 참아야 할까?

 ‘잘 하네. 지민이.’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






 “모르겠는데… 여러 명한테 괴롭힘 받는 건 더 싫어.”
 “하, 시발.”
 “혼자되는 거… 지겨워……. 항상 혼자였잖아.”
 “김윤성 이 개새끼.”

 입술을 벌리고 오물거리는 시늉을 하는 지민의 멍한 얼굴을 보고 정국은 치솟는 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틀로 다가가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꿈속을 헤매는 지민의 말들로 설명되는 상황들이 정국을 미치게 만들었다. 지민은 계속 악몽을 꾸는 걸까. 마치 트라우마처럼 말이다. 눈앞에 김윤성이 있다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이다.

 MT첫날 분위기를 떠올려보니 화가 더욱 올라왔다. 김윤성이 지민을 제멋대로 대하는 걸 방관하는 것도 모자라 도리어 부추기고 있던 후배 놈들. 그 자리에서 정신 차리도록 다 패줬어야 했다. 정국은 애꿎은 창틀을 손바닥으로 퍽 퍽 내려치며 화를 쏟아냈다. 신입생 OT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김윤성에게 휘둘렸을 지민을 생각하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솟아오르는 분노에 눈자위가 벌겋게 충혈 되고 눈물마저 차올랐다.

 “죽을까…….”

 감정 없이 멍하게 내뱉는 지민의 말에 정국은 다시금 그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지민은 악몽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정국은 지체 없이 침대에 올라가 지민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떨어지면 못 살 것처럼 마른 몸을 한가득 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일어나. 응?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아. 나 있잖아.”
 “으응…….”

 멍하게 대답하는 지민을 살짝 떼어내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얼굴은 여전히 꿈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정국은 얼른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부드럽게 혀를 내어 통통한 아랫입술을 핥자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틈새로 혀를 밀고 들어가 말랑말랑 살덩이를 찾아 조심스럽게 보듬었다. 지민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더듬어 정국의 뺨에 올렸다. 정국은 지민의 입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갔다가 뜨끈한 흔적을 남기며 뒷걸음치기도 했다. 쯔읍, 살이 맞붙어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민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정국은 그의 얇은 턱으로 입술을 옮겨서 혀를 내어 미끄럽게 쓰다듬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비튼 지민이 눈을 감은 채 정국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박지민.”
 “…으응.”

 대답을 하는 건지, 접촉에 대한 반응인 건지 모르겠다. 정국은 그대로 힘줄이 바짝 선 지민의 흰 목 줄기에 입을 맞춰 내려갔다. 이윽고 옴폭 파인 쇄골에 혀가 닿자 제 머리카락을 쥐는 지민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정국은 지민의 헐렁한 티셔츠를 들어 올려 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매끈한 살결에 입을 맞췄다. 따뜻한 자극이 간지러운 듯 뱃가죽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갈비뼈를 지나 앙증맞게 솟아 있는 유두에 입술을 포개자, 얇은 천 위로 머리통을 꽉 잡아 당겨 누르는 손이 느껴졌다. 정국은 이를 살짝 세워 그의 유두 끝을 갉작였다. 그러자 지민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읏….”

 정국은 묻었던 고개를 빼내고 지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여전히 티셔츠 안을 침범해 툭 불거진 갈비뼈와 가슴을 살살 문지르며 반응을 살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지민의 표정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후배님.”
 “응….”
 “얼른 깨. 그딴 꿈.”
 “으응….”
 “나 누구야.”
 “…선배.”

 눈을 감은 채 대답하는 지민에게 정국은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그 바람에 둘의 온몸이 빈틈없이 맞붙었다. 정국은 고개를 옆으로 비틀어 지민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다시 물었다.

 “선배 누구.”

 그러자 지민이 천천히 눈을 떴다. 깜빡. 깜빡. 쌍꺼풀이 없어 기다랗고 나른한 눈두덩이 느리게 닫혔다가 열리길 반복했다. 정국은 까만 눈동자를 고정한 채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흐리멍덩하던 지민의 초점이 어느덧 정국에게 또렷하게 박혔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려 싱긋 웃었다. 그걸 보며 정국은 콧바람을 내뱉으며 덩달아 웃었다. 이랬는데도 아직 꿈속인가.

 “왜 웃어. 선배 누구냐니까.”
 “…이…….”
 “응?”
 
 웃는 낯으로 코끝을 가까이 붙였다.


 “……정국이.”

 깼네. 작게 속삭인 그가 다시 입술을 포갰다.





*






 한참을 입 맞추다가 제 품 안에서 편안하게 잠든 지민의 몸을 놓지 못했다. 정국은 몇 시간이고 지민을 끌어안은 채로 끊임없이 만져주었다. 규칙적으로 내쉬는 지민의 간지러운 날숨이 제 목에 닿는 느낌이 좋아서, 졸음이 오는 것도 참아가며 지민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말도 안 되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를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면 모르는 게 당연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지민이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 본의 아니게 알아버렸으니, 이제는 그에 대해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다.

 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주고 시원한 입김을 불어 식혀가며 스스로 별의 별 짓을 다 한다고 생각할 무렵, 정국의 머릿속에 지민의 말 하나가 둥둥 떠올랐다.

 ‘죽을까…….’

 꿈속을 헤매며 했던 말. 지민이 꾼 꿈은 분명히 OT때 김윤성과 있었던 기억 같았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했던가. 그가 꿈속에서 그런 말을 하며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평소에 어두운 생각을 스스로 심어봤을 것 같았다. 문득 콘도에서 짐을 챙겨 나올 때 유난히 가볍던 지민의 가방이 떠올랐다.

 정국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았다. 2층으로 옮겨 놓은 지민의 숄더백이 방 한 구석에 보였다. 정국은 조심스레 일어나 그의 가방 곁으로 다가갔다. 가방은 크기로만 봐도 MT에 오는 사람이 챙길 법한 것이 아니었다. 나쁜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그가 예전 일로 괴로워한다면 자신이 어떻게든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알아야 했다. 무엇이든.

 손잡이를 잡고 가방을 슬쩍 들어보니 무엇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가볍다. 정국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숨죽이며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는 전원이 꺼져 있는 휴대폰과 갈아입은 티셔츠 두 개, 반바지 두 개, 속옷 두 개, 세면도구, 약통 하나뿐이었다. MT에 간다고 해서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상하리만치 단출하고 가벼운 짐이었다. 정국은 나쁜 생각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흔들었다. 자그마한 약통을 꺼내 손에 쥐었다.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약통을 열어 보니 하얀 알약이 반쯤 들어 있었다. 정국은 조용히 알약 하나를 꺼내들어 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다음으로 눈이 간 건 지민의 휴대폰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국은 결심한 듯 전원을 켰다. 지문인식 화면이 뜨자 조심스레 들고 가 지민의 손가락에 가져다 댔다. 이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윤성과 관련한 것이라면 뭐라도 알고 싶었다. 잠금이 풀린 지민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톡 메시지 함을 열었다. 스크롤을 내릴 것도 없이 대화방 두 개가 전부였다. 학생회 방 하나, 김윤성과의 개인 대화방 하나.

 “하….”

 어쩐지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 들어 잠든 지민의 얼굴을 슥 바라보고는 김윤성과의 대화방을 클릭했다. 그날의 대화 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야 어디야  
 박지민 어디냐고
 씹냐?  오전 12:02
            오전 12:08  네?
 콘도 302호 잡아놨어  
 올라와  오전 12:10
 미쳤냐? 어디서 튀어
 야  오전 2:02
          죄송해요 진짜 못 하겠어요
          오전 2:20  술 깨요 선배
 못 쌌잖아
 입으로라도 해  오전 2:22
 야  오전 2:48
 어디야  오전 3:25
 죽고 싶어? 전화 받아  오전 4:10
 너 전정국 방이지
 걔도 빨아주게?  오전 4:32
 ㅅㅂ 야 어디냐고  오전 4:50


 그 이후로 답이 끊긴 대화. 그리고 3시간 쯤 뒤 김윤성은 청평호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정국은 전원을 다시 끄며 제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품에 포근하게 안겨 자던 지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 지민이 김윤성을 만난 것은 사실이었다. 지민이 그걸 숨기려고 했던 것은 윤성과 있었던 일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마지막 김윤성의 메시지 이후에는 다시 만났을까?

 아니지. 상관없어.

 정국은 윤성을 떠올리며 낮게 욕을 내뱉었다. 그 다음이 어찌 되었든 이제는 상관없다. 더는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걸 궁금해 했던 제 자신이 못나 보여 화가 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지민에게 따지듯 묻기까지 했으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설사 지민이 김윤성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김윤성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새끼에 불과하니까.





찌미  | 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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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 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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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성 진짜 저 𝙎𝙄𝘽𝘼𝙇 놈 하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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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꾸기  |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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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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