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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15 랠리 씀

Bear MCcreary - The Hand

아마겟돈
15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















 쿵. 쿵. 쿵.

 세 번째 카라반에서부터 무언가를 벽에 찧는 소리가 이어졌다. 빗소리를 뚫고 들릴 만큼 묵직한 소리였다. 카라반의 어닝 아래에 우뚝 선 두 사람은 차마 문을 열지 못한 채로 머뭇거렸다. 비에 흠뻑 젖은 꼴을 한 채였다. 새와 싸울 때 명훈은 뒷목을 물렸다. 그리고 변이해가는 그를 카라반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세게 닫은 것은 정국이었다. 자신과 같이 면역을 이겨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명훈은 이 작은 카라반 안에서 까맣게 변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 하고 숨을 터뜨린 정국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닦아냈다. 짧은 시간이지만 명훈에게 정들었나 보다. 생사를 오가며 피어난 전우애일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명훈 덕분이었다. 정국은 차마 안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어서 닫혀 있는 창문에 손을 댄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민은 말없이 정국의 손을 꽉 붙잡았다.

 쿵. 쿵. 쿵. 울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정국은 변이한 명훈의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으나 그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창문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이변은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보인 것은 온몸이 새카맣게 변한 명훈이 카라반 벽을 향해 머리를 쿵쿵 찧는 모습이었다. 완전히 사탄으로 변해버린 그가 흰자를 번뜩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새 지능을 잃은 모양인지 창문 근처에서만 계속 맴돌았다. 거센 빗소리가 나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서 머리를 박아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창문을 여는 소리가 나자마자 쿵쿵 찧던 짓을 멈추고 순식간에 창틀로 다가와 매달렸다.

 쿠엑, 크억, 크어, 크어어억.

 창문 너머에 서 있는 두 사람을 감지하고는 흥분한 듯 괴성을 질러댔다. 명훈이 입을 크게 벌려 사나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보이는 치아만 빼고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석탄처럼 까맣게 변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여태 생사를 함께 해온 정국과 지민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오직 본능적으로 물어뜯어야 할 새 숙주일 뿐이다.

 “하…….”

 정국은 탄식하며 제 이마를 짚었다. 한 자짜리 창문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어서 하체를 카라반 벽으로 계속해서 들이박는 명훈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가슴 높이에 나 있는 창문이 제 몸을 가로막고 있으니 갈증이 난다는 듯 허우적거리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다.

 “명훈아. 이명훈.”

 크어억, 크엑, 컥, 커억.

 제 이름을 알아들을 리 없지만 정국은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새 숙주를 찾는 아우성뿐이다. 명훈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해골부대에 계속 있었다면 제 몸 하나쯤은 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택했다. 비정상적인 계엄군의 움직임에 목숨을 걸고 탈영할 만큼 명훈은 좋은 사람이었다. 알고 지낸 기간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시간을 따지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홀로 산을 타며 사탄으로 변이한 짐승을 이겨냈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알 난사질에도 살아남은 그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잃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국은 어느새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만약 명훈이 집에 찾아온 날 그의 다리에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새를 상대하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 그랬지? 극한 상황에 치달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국은 지금 이 순간 제 자신이 몹시 미워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몸을 떨었다. 그 미세한 변화를 느낀 지민은 정국의 팔을 꽉 끌어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선배.”
 “이 녀석 다리만 멀쩡했어도….”
 “선배 잘못 아니에요.”

 지민은 그의 커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정국이 낮은 어깨에 이마를 파묻고 눈을 질끈 감았다. 명훈의 괴성이 빗소리를 뚫고 자꾸만 귓전에 박혔다.

 몇 시간 전을 떠올렸다. 푸드득거리는 소리에 급히 창밖을 내다보자 사탄으로 변한 새들이 진규의 카라반 앞에 모여들어 있었다. 에어컨을 켜지 못하게 했으니 아마 진규는 산바람을 쐬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라반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아니, 애초에 조류의 등장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다가 변이한 새들이 카라반까지 찾아온 것일까. 평소 코를 골며 자는 진규를 떠올려 보니 소리를 듣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소나기가 내리기 직전이었다. 기상 변화를 감지한 새들이 모종의 이유로 이동하던 길에 숙주의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규도 변이한 걸까.

 “진규….”

 정국은 신음처럼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지민은 정국을 쓰다듬어주던 손을 굳혔다. 정국이 있는 카라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을 때 분명히 들었다. 진규의 카라반에서도 명훈처럼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을. 지민은 정국이 또다시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정국의 얼굴을 흠뻑 적시고 있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다.

 “최진규.”

 두 번째 카라반 앞으로 다가간 정국이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조심스레 창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변이해 있을 진규 녀석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조금 전 자신의 팔이 사탄의 조각으로 뒤덮여갈 때의 고통을 떠올렸다. 울보 녀석. 겁 많은 놈.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보지 말아요.”
 “…….”
 “마음 아프잖아.”

 지민은 뒤에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더는 발을 디디지 못하게 막으려 축축한 등판에 뺨을 기댔다. 정국의 맥이 날뛰는 소리가 등에서도 울렸다. 차갑게 젖은 티셔츠 위로 뜨거운 체온이 푹푹 올라왔다. 그러나 배를 둘러 안은 손목을 가만히 감싸 잡아준 그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정국은 어둠이 가득 내린 카라반 안을 들여다보았다. 잎이 울창한 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두 번째 카라반 안은 미약한 달빛마저 들어가지 못해 어둡기만 했다. 소나기는 더욱 거세져서 툭, 투툭, 마치 때리듯이 카라반의 천정과 흙바닥을 마구 두드려댔다. 진규를 부르는 목소리는 누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먹혀들어갔다. 어둠 때문에 진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국은 속눈썹에 맺히는 빗방울을 손등으로 털어내고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소리에 반응했다면 벌써 달려들어야 할 사탄이다. 영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순간 어떠한 예감이 뇌리에 스쳤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카라반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러나 문단속을 잘 하라던 말을 새겨들은 모양인지, 진규의 카라반 문은 헛돌기만 할 뿐 안쪽에서 걸어놓은 걸쇠 탓에 결코 열리지 않았다. 결국 소음기가 달린 총을 다시 사용해야 했다. 피슉, 빗소리를 뚫고 들리는 작은 총성과 함께 걸쇠가 힘없이 부서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파도처럼 달려온 것은 사탄의 소리도, 공격도 아니었다. 속을 울렁이게 할 만큼 강한 냄새. 음습한 철 내음과 같은 비릿함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정국과 지민이 급하게 코와 입을 꽉 틀어막은 건 그깟 피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으…….”
 “…하.”
 “윽, 으으…. 정, 국… 으…….”

 축 늘어져 앉은 채로 벽에 뒤통수를 퉁퉁 박고 있는 진규의 몰골. 흡사 몸 어느 부분을 잃은 헝겊인형이었다. 티셔츠자락으로 오른손을 꽉 감싸서 쥐고 있었는데, 진규가 입고 있던 티셔츠는 원래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진저리칠 정도로 지독한 고통은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도 앗아가려 한다. 진규는 생명을 잃은 사람처럼 넋을 놓은 채 벌어진 잇새로 정국의 이름만 간신히 불렀다. 그가 머리통을 움직이고 있지 않았더라면, 쥐어짜며 토해내는 신음만 없었다면, 아마 망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몸을 늘이고 앉아 있는 다리와 바닥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했다. 잘려져 나간 손은 새까맣게 타고 남은 숯덩이처럼 앙상하고 메마른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바닥에 뒹굴었다.

 “너…….”

 정국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진규의 옆에는 캠핑용 손도끼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뻘건 물로 코팅된 도끼날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살점이 엉겨 붙어 있었기에 그것이 무얼 뜻하는 건지 모르지 않았다. 진규가 사탄으로 완전히 변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겁 많은 그가 스스로 제 손을 잘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속상했다. 진규의 오른손에 남은 것은 엄지손가락 하나뿐이었다.

 “나… 안, 변한 거… 맞지… 하아….”
 “…….”
 “크읍, 한 번에… 윽, 안 돼서… 네 번이나, 흑, 끄윽, 찍었어. 내, 소, 손등을…. 잘했지. 푸흡, 쿨럭.”

 아직 가시지 않은 고통에 바들바들 떠는 몸이 안쓰러워 정국은 얼른 녀석에게 달려가 꽈악 붙들어 안았다. 피를 많이 흘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진규의 몸을 붙잡은 채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건 정국에게서 처음 나오는 소리였다. 흐느낌 같기도 했고 안도의 웃음 같기도 했다.



 손이 잘려나가 허전한 끄트머리에 어설픈 소독을 한 뒤 압박붕대로 칭칭 감는 동안, 진규는 자꾸만 눈이 가물가물 감기려고 했다. 시체처럼 하얗게 질린 녀석이 혹시라도 의식을 잃었다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정국은 끊임없이 그를 향해 말을 걸었다.

 “진규야. 졸리냐?”
 “……어어.”
 “자면 안 돼 인마. 눈 떠.”
 “엉…….”
 “너 뭐 먹고 싶냐. 라면?”
 “어어…. 라면….”
 “큭, 곧 해 뜨겠다. 라면은 질리지도 않냐.”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
 “맨날 편의점 라면만 먹으니 뱃살이 찌지 인마.”
 “으응…….”
 “좋아. 기분이다. 서울 가면 형이 사준다.”
 “흐…. 아싸….”

 진규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피를 많이 쏟아내어 온몸에 힘이 없었다. 누운 채로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에 지민은 고개를 돌려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정국아….”
 “어.”
 “나 죽어…?”
 “미친 놈. 손 잘렸다고 죽어? 지혈 잘 됐잖아. 죽으려면 벌써 죽었겠지. 벌써 몇 시간째 살아 있잖아.”
 “근데… 왜 자꾸 졸리지…….”
 “피 많이 흘리고 배고파서 그래.”
 “그런가….”
 “너 라면 먹으려면 이제 왼손 젓가락질 연습 해야겠다.”

 정국의 말에 그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붕대 감긴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붕대 안에 거즈를 잔뜩 쑤셔 넣어서 피가 배어 나오진 않았다. 정국은 가방 안에 챙겨온 참치 통조림과 라면 봉지를 뜯고 카라반 냉장고 안에 미리 넣어 두었던 생수를 꺼냈다. 피가 응고된 바닥에 힘없이 누워 있는 녀석의 입에 뭐라도 넣어주려고 애썼다. 진규는 모로 누운 채로 턱 근육만 겨우 움직여 받아먹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새벽 여명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 폭풍처럼 지나간 일들을 되새겼다. 사탄에게 감염됐고 면역이 있다는 걸 알았으며 뜨거운 섹스를 했다. 명훈은 끝내 사탄으로 변이했고 진규는 새에게 쪼인 제 손을 스스로 잘라냈다. 이제 겨우 발병 일주일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될까.

 “정국아…. 명훈이는?”
 “…….”
 “명훈… 이는…….”
 “변이했어.”
 “아…….”

 진규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정국은 아랫입술을 씹다가 얼룩덜룩하게 사탄의 흔적만 남은 제 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봐. 나도 물렸어.”
 “……뭐?”
 “근데 멀쩡해졌어. 나한테 면역이 있는 거야.”

 정국의 말에 진규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이제 내가 조심해야할 건 계엄군뿐이야.”

 명훈이 사탄이 되었다는 소식에 한없이 약해질 성격임을 알기에 정국은 부러 단호한 어조로 말을 돌렸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로 인해 무너져서는 안 된다. 지민과 진규. 이제 정국이 지켜야 할 사람은 둘이다. 명훈처럼 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정국은 제 몸의 면역체계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이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용을 다시금 상기했다. 사탄바이러스를 연구한다고 했다. 그게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 뉴스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라에서는 바이러스 치료제든 뭐든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설사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정국은 제 손에 남아 있는 매의 잇자국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






 “선배, 위험해요. 안 돼요.”
 “괜찮아.”

 지민의 만류에도 정국의 태도는 단단했다. 진규는 아까보다 생기를 찾은 모습을 했지만, 갑작스러운 정국의 말에 다시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붕대로 둘둘 감긴 뭉툭한 제 손을 내려다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국이 다소 무모한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면역체라는 증거를 남겨야겠어.’

 그 말을 하는 정국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말은 즉 다시 한번 사탄에게 물리는 과정을 겪어보겠다는 뜻이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열어 지민의 손에 쥐어주고는 다짜고짜 명훈이 있는 카라반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겨우 붙잡았다. 그러나 정국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사탄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야,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무모해!”

 정국은 천천히 되새겼다. 손끝에서 시작한 변이는 어깨까지 퍼져 올라왔다. 그때의 지글지글 끓던 감각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변이한 몸이 심장과 가까워질수록 혈관이 발작했다.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움직임은 필사적이었다. 모세혈관 하나하나가 미쳐 날뛰던 순간은 끔찍할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그건 분명히 생명의 요동이었다. 통각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그것은 전쟁과 같은 환원이었다. 고통을 다시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했으나 되새김질할수록 확신은 짙어졌다. 그토록 지옥 같은 통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릴 새도 없이 정국은 재빨리 카라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느덧 빗줄기는 잦아들었고 아침 해는 밝아졌다. 무언가를 기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마자 재빨리 자신에게 달려드는 명훈의 몸을 세게 붙잡았다.

 명훈이 허연 눈알을 마구 움직이며 젖을 찾는 새끼처럼 허겁지겁 정국에게 이를 보였다. 그의 몸 안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이미 점령해버린 낡은 숙주 대신 싱싱한 숙주를 갈급해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드는 명훈이 다치지 않도록 제압하고는 목을 꽉 잡고 붙들었다. 그리고는 열려 있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잘 찍어!”

 정국의 말에 지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규의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녹화 버튼을 눌렀다. 액정에는 카라반 안에서 힘을 겨루고 있는 정국과 사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기 시작했다. 정국은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딱딱거리며 꺼억 크억 소리 내는 명훈을 마주보았다.

 “명훈아, 알겠어. 잠깐만.”
 크억, 컥, 커컥, 어어억.
 “너무 아프게 물진 마.”

 이젠 까맣게 부식된 몸까지 바들바들 떨며 정국의 피부 아래에 이를 박아 넣고 싶어 하는 명훈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정국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이를 딱딱거리며 걸쭉한 침을 흘리고 있는 그의 입으로 제 왼쪽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명훈이 헐레벌떡 그의 손가락 살점을 이로 콱 물었다.

 “으윽….”
 “하…. 정국…….”

 폰을 든 지민의 손이 발발 떨렸다. 눈앞에서 사탄에게 물리는 장면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민은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야 했다. 옆에 서 있는 진규 역시 제 눈을 질끈 감았다. 명훈이 손가락을 물자마자 정국은 그의 몸에서 손을 떼고 두 발자국 뒷걸음 쳤다. 명훈은 새 숙주에게 바이러스를 옮겨준 것이 만족스러운 듯,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카라반 안을 배회했다. 정국은 카라반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제 손가락을 쥐고 괴로워했다. 신음을 지르기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물며 씩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민은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손가락의 관절이 뒤틀리며 까만 혈관이 퍼져나갔다. 금세 정국의 왼팔 전체가 까만 석탄처럼 썩어들었다. 처음 물렸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정국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침대 위에서 발작했다. 변해가는 제 팔을 꽉 붙잡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러나 어깨에서 가슴까지 퍼지던 까만 흔적은 심장에서 내뿜는 거센 핏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정국의 몸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서서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바이러스가 몸에 퍼져갈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었다. 정국은 차라리 불 속에 뛰어들어 팔을 녹여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워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바르작거리던 정국의 움직임이 멈췄다. 다시 온전한 몸으로 돌아온 정국은 침대 위에 사지를 늘어뜨린 채 허공에 거친 숨을 헉헉 뱉었다. 다시금 사탄의 구미를 당기는 싱싱한 숙주가 된 그를 향해 명훈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정국은 제 위에 올라타 목을 물어뜯으려는 명훈의 턱을 꽉 붙들어 막으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또 살아 돌아왔어. 자기야.”

 땀에 젖은 얼굴로 씨익 웃는 모습을 보며 지민은 비로소 녹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뺨을 적시고 있는 눈물을 훔쳐낸 지민은 아랫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그가 밉다는 듯 몸을 휙 돌려 첫 번째 카라반 안으로 사라졌다. 침대에 누운 채 명훈과 대치하며 버티고 있는 정국의 얼굴에 미소가 가셨다.

 “야, 너, 넌… 진짜…!”
 “…우리 후배님 삐졌다.”
 “진짜… 겁대가리 상실한 싸이코야!!”

 진규도 질질 울면서 습관처럼 오른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뭉툭하게 감겨 있는 붕대의 감촉이 까끌했다. 지민을 따라 두 번째 카라반 안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져버리는 진규를 보며 정국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전히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다시 딱딱거리며 덤벼드는 명훈을 향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쉬운 게 없다. 그치 명훈아?”

 어쩐지 쓸쓸한 정국의 말에 명훈은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이를 딱딱거리며 크웨엑, 하고 대답했다.





*






 해가 완전히 뜨자 산 아래의 모습까지 훤히 보였다. 어느덧 비가 그쳤고 다행히 안개는 없었다. 정국은 청평호와 그 주변의 도로 모습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틈틈이 내려다보았다. 언제쯤 취재진이 도착할지 알 수 없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만약 취재진이 이 근처로 온다면 군용차들이 보일 것이다. 그때 지프를 타고 내려간다면 충분히 취재진들과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카라반 안으로 들어온 정국은 침대에 등을 돌려 누워 있는 지민에게 다가가 몸을 바짝 붙였다. 토라진 것처럼 얼굴을 봐주지 않는 지민 때문에 몇 시간 내내 애가 탈 지경이었다. 자신이 사탄에 감염되었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찍어달라고 한 게 무리였나 보다. 곱씹어 보니 지민에겐 그 장면이 견디기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묘하게 심술이 났다.

 샤워하는 그를 무작정 안아들고 입을 맞췄고, 침대 위에서는 하얀 나신 위에 공들여 애무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시선을 맞추려 들지 않았다. 결국 몸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려서 단단한 아래를 삽입하고 나서야 달뜬 숨을 뱉으며 허겁지겁 목을 끌어안아 왔다. 지민은 그의 몸 위에 마주보고 앉은 채로 정국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하체를 앞뒤로 왕복하며 문질렀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모르던 뱃속 깊은 곳까지 빈틈없이 들어차는 정국 때문에 안아달라고 아이처럼 팔을 두르며 졸랐다. 마치 상체의 모든 부분이 닿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안달을 냈다.

 얇은 허리는 정국의 두 손에 잡힌 채 사정없이 앞뒤로, 또는 위아래로 흔들렸다. 정국은 침대 맡에 걸터앉은 채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내며 허리를 탁탁 끊어 올려쳤다. 유연하게 허리를 흔들며 애달픈 신음을 귓가에 쏟아내는 지민 때문에 정국은 나지막이 욕을 뱉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해 나오는 감탄사 같은 거였다.

 “서울 가지 말까?”
 “아흣….”
 “여기서 이것만 하면서 평생 살자. 다 좆 까라고 해. 몇 번이고 물려줄 테니까. 봤잖아. 나 안 죽어. 왜 못 믿어. 지민아, 응?”
 “못 믿는 게, 아니라… 으읏, 아!”
 “하아…. 너 두고 안 죽는다니까.”

 짓궂게 아래를 유린하듯 말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정국의 상대는 이제 사탄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언젠가는 사탄바이러스 따위, 홍역이나 수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반드시 알리고 증명해야 한다. 이 좀비사태는 분명히 치료할 방법이 있으며, 그게 바로 나라고. 그러니 우릴 어서 안전하게 서울로 데리고 가라고 말이다.

 취재진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그리고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게 되는 즉시 계엄군의 진상에 대해 세상에 알릴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계엄 하에 가평 일대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나라가 어떤 거짓말을 쳐왔는지. 무엇을 어떻게 은폐하려고 했는지.



 오전 11시에 가까워지고,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청평호를 둘러싼 도로에 군용트럭 몇 대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순찰 차량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많았다. 그리고 그 트럭행렬 사이에 하얀색 화물트럭 하나가 있었다. 로고의 모양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저것이 방송국의 차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국은 서둘러서 짐과 무기를 차에 싣고 두 사람을 챙겼다. 조수석에 지민과 진규가 올랐다.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서 청평호 근처에 몸을 숨겨야 한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호수 근처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띄엄띄엄 있는 펜션과 콘도 건물들은 모두 폭발의 흔적과 함께 까맣게 변해 있었다. 어쩌면 저 잿더미 속이라면 몸을 숨길만 한 공간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카라반 안에 갇혀 있는 명훈을 돌아보며 씁쓸하게 작별했다. 이 장박지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니, 혹시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몸을 피할 수 있다. 여전히 카라반 안에서 머리를 벽에 쿵쿵 박고 있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무사히 취재진을 만나 서울에 가게 된다면, 그리고 제 몸의 면역을 이용해서 바이러스 사태가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돌아와 명훈을 구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둘투둘한 산길을 거침없이 내려가는 건 금방이었다. 날은 밝았고, 장박지로 오르는 호명산의 입구는 무척 외진 곳에 있었다. 처음 사탄 바이러스가 발생한 콘도까지 가려면 큰 도로 대신 청평호를 끼고 있는 작은 길을 이용해야 했다. 정국은 이곳으로 왔던 외진 아랫길을 떠올리며 엑셀을 밟았다.

 다행히 대낮부터 군인들의 눈에 띄는 일은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진규는 잔뜩 졸아붙은 얼굴로 뭉툭한 붕대 끝을 매만졌다. 손이 절단되면서 신경이 같이 죽은 건지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진 않는 것은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잘려나간 손가락과 손바닥 반절은 까맣게 변해버려 봉합해서 쓸 수도 없겠지만, 어서 서울로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받을 생각에 심장이 쿵쿵 울려댔다.



 다행히 군용트럭 무리보다 일찍 도착한 것인지 청평호 주변은 한가했다. 이들은 까맣게 전소된 건물들을 훑어보다가 비교적 높은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주변에는 와르르 무너진 건물도 있었고 곳곳이 파괴되어 뼈대만 보이는 것도 있었다. 이들이 선택한 건물은 총 3층짜리 펜션 건물로, 2,3은 건물의 반절이 파괴되어 시멘트와 철근이 어그러졌지만 기둥만큼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또한 1층은 반 오픈 형태의 필로티 구조였는지 지프가 들어설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다만 도로변에서 지프가 보이지 않도록 주변에 떨어진 합판과 구조물들을 옮겨서 가려놓아야 했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자 벽이며 천정이며 할 것 없이 그을음이 가득해서 가까이 가면 숨 쉬는 것이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몸을 숨기기엔 최적의 공간이 될 것이다.

 바닥에 가득 깨져 있는 유리를 신발로 슥슥 밀어 한곳에 모았다. 양쪽으로 창이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잘 통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악취가 나서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정국은 창가에 기대어 청평호를 내려다보았다. 악취의 근원을 쉽게 찾아냈다. 바이러스 발병 당일 댐을 내려 물을 가둬버렸기에 제자리에 고인 물은 점점 그 수질이 악화된 것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바이러스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주일간 유속이 느려진 물 치고는 지나치게 오염된 느낌이었다.

 정국은 창밖을 내다보며 계속해서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 멀리서부터 군용트럭들이 줄지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정국은 속으로 트럭의 숫자를 셌다. 탑승정원 20명인 K511 카고트럭의 숫자는 총 8대. 나머지 하나는 KBC 방송국 로고가 적혀 있는 흰색 화물트럭이었다. 정국의 미간이 좁혀졌다. 취재진을 데리고 오는 현장에 트럭이 8대나 나타났다. 정국은 숨죽인 채 트럭에서 내리는 계엄군의 숫자를 셌다. 예상대로 한 대의 트럭에서 내린 군인의 수는 정확히 20명이었다. 그럼 150명이 넘는 군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취재진을 데리고 다니는 데에 이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한 것인가?

 흰색 화물트럭에서 취재진이 내렸다. 이내 커다란 카메라와 조명 장비들이 천천히 세팅되기 시작했다. 정국은 입술을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많은 군인들이 곁에 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무작정 취재진에게 접근하려고 했다가는, 그들의 눈에 띄기도 전에 군인들에게 막혀 조용히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취재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계엄군들은 하얀 방역복을 하나둘씩 챙겨 입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의문이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정국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가정이 하나 생겨났다.

 혹시 취재진과 군인이 한통속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며칠 동안 유일하게 살 길이라며 붙들었던 희망이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정국은 그들을 주의 싶게 살피다가 조용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일단은 무엇이든 기록해놓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으나 행동은 한 눈에 들어오는 거리였다.

 막상 취재진이 나타나니 까마득해지는 기분에 정국은 제 눈언저리를 꾹꾹 누르며 침착하게 최면을 걸었다. 취재진을 만날 수 있다. 그들에게 면역체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 우리는…… 살 수 있다.





*





 가평에 들어온 취재진의 수는 스무 명 남짓이었다. 메이저 신문사 기자 셋과 카메라, 지상파 방송사 셋과 카메라, KBC의 시사교양 PD 하나, 카메라맨 둘, 조명 및 음향스태프 둘, 작가 둘. 이들은 각 매체에서 선정된 사람이었다. 보도의 기본은 당연히 취재인데, 감염 지역에 접근할 수 없기에 취재하는 것조차 군 측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아무래도 취재 대상지역이 계엄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취재진들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청평호를 둘러보며 각자 표정을 굳혔다. 마치 감시하듯 자신들에게 따라붙은 수많은 계엄군 때문이었다.

 PD는 작가와 함께 ‘사탄바이러스 특집 다큐’에 쓰일 장면과 내용을 체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볼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중 가장 메이저 언론 1순위 매체의 기자가 중대장과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현장의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현장 취재를 위한 가벼운 인터뷰로 시작되었다.

 “여기가 최초 감염발생지 맞습니까?”
 “예.”
 “주위 건물이 다 폭파되었군요?”

 청평호까지 오는 길에 기자 한 명이 창밖을 바라보며 센 펜션이나 콘도의 숫자는 총 27개. 청평호가 내다보이는 주변 건물의 숫자만을 센 것이었다.

 “숙박업소와 주택 밀집 지역 우선으로 폭탄을 사용하라는 게 계엄사령관의 명령이었습니다.”
 “음, 그럼 생존자는 없고 사탄만 있었다는 소리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생존자가 없다는 건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중대장이 표정을 미세하게 구겼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평정을 유지했다. 이들의 대화를 힐끔거리던 작가 하나가 PD에게 조용히 귓속말했다.

 “PD님, 뭔가 쎄하죠.”
 “뭐가 쎄해?”
 “전 좀 그냥… 괜히 쎄하네요. 촉이 그래요.”

 작가가 속삭이며 어깨를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각 취재진들은 청평호 주변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며 사진이나 영상들을 기록했다. 그건 다큐 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미리 기획해온 대로 촬영 구성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실은 얼마 전 다큐팀에 올라온 제보가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평군 상면 항사리에 거주하시는데, 처음 가평군에 바이러스가 창궐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자마자 연락을 했더니 ‘그게 무슨 도깨비 같은 소리냐.’라며 바이러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얼마 후 가평군 전멸 뉴스가 나왔을 때도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세 번째로 전화를 했을 때는 통화가능 지역이 아니라는 안내멘트가 떴다고 했다. 그러나 이걸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글이 금방 삭제되었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 제보… 기자들이랑도 공유할까요?”
 “일단 지켜봅시다.”

 PD는 작가와 조용히 속삭이며 동태를 살폈다. 어쩐지 취재진들을 감시하는 듯한 계엄군들의 모습에 괜스레 위축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의 병력이 함께 따라다닐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중대장과 인터뷰하던 기자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가평군에는 급수취약지역이 12개 이상 있는 것으로 알고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면 단위 마을 상수도나 개인 지하수를 이용해서 물을 쓰면, 청평호에서 시작된 급수 감염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죠.”
 “하시고 싶은 말이 뭡니까 기자님?”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립니다.”
 “하, 생존자는 없다고 계엄군 측에서 발표했습니다.”

 계엄사령부 해골부대의 중위는 미간을 바짝 구기며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물러나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 봐도 될까요?”
 “어떻게 확인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중대장의 말에 기자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그때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PD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화 내용을 듣고 있으니, 다큐팀으로 온 제보와 뭔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면 항사리 쪽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요?”

 PD의 말에 군인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러자 대치하고 있던 기자가 화색을 띠며 PD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PD님이 그쪽에 연고가 있으신 건가요?”
 “아뇨. 제보를 받았을 뿐입니다.”
 “어떤 제보요?”
 “항사리에 사는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는 제보였어요. 전원 사망 뉴스 이후였다고 하더군요.”

 순식간에 물을 끼얹듯 사위가 조용해졌다. 중위는 조용히 팔짱을 끼며 손가락을 규칙적으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계엄군이 당황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PD의 입에서 나온 ‘상면 항사리’라는 구체적인 지명 때문이었다. 그곳은 발병 둘째 날에 찾아가서 처리했던 동네다. 가평 시민 전원 감염 기사가 나간 시점은 발병 당일이었다. 노인 인구가 대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네. 기자의 말처럼 급수취약지역이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나라에서 수도를 제한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급수취약지역에 대한 처리지침은 발병 둘째 날에 바로 내려온 사항이었다. ‘전원 사살하라.’ 항사리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노인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그쪽으론 이동 불가합니다. 정해진 곳에서만 취재 가능합니다.”

 고압적인 중위의 태도에 취재진들은 하나같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언론인으로서 자신들의 취재권에 직접적인 제약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희는 취재하러 온 겁니다. 정해진 곳에서만 그림 따려고 온 게 아닌데요.”
 “그게 상부의 지침입니다.”
 “하, 그 상부는 당신의 상부 아닌가요? 저희가 왜 경기도 지역 계엄군의 명령에 따라야하죠?”
 “이보쇼, 기자 양반. 여기 계엄지역이야.”

 참다못한 중위가 말꼬리를 잘라먹으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덩치가 좋은 중년의 카메라맨들이 인상을 쓰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였다.

 “나 참, 이 군인 아저씨가 말 재밌게 하시네. 저희는 이 지역 사람도 아니고, 여기 취재보도권 가지고 온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허가 받아서 들어와야 하는 것도 웃긴 거 아시죠?”

 아슬아슬해지는 분위기에 기자 몇 명이 더 거들기 시작했다.

 “저희 기자 짬밥만 15년입니다. 구린내는 귀신같이 맡는데, 지금 당신네들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고요.”
 “애초에 군인들 주렁주렁 달고 온 것부터가 감시하겠다는 게 아니고 뭡니까? 저기 방역복 입고 있는 군인들은 또 뭐고요?”

 시끌벅적해진 분위기 속에 해골부대원 중 하나가 조용히 휴대폰을 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본 기자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이내 모든 통신이 불가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뭐야. 통신도 막아놨네?”

 그 말에 다른 취재진들도 일제히 가방이나 짐짝, 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안테나가 들어와 있는 기기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오로지 병사들에게만 지급하는 작전 폰만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존자도 없는 동네에 통신은 왜 막아둔 겁니까?”
 “상부의 지시라 잘 모릅니다.”

 아마 전기까지 다 끊어놓았다는 사실을 알면 까무러칠 것이다. 취재진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방역복을 챙겨 입은 군인들은 뭔가 해야 할 일들이 있는 듯 명령을 기다리는 자세로 꼿꼿하게 대기 중이었다.

 통화를 마친 군인 하나가 조용히 중대장에게 다가와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도 같았다.

 “여하튼 청평호 그림 다 따고 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할 겁니다. 언론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못합니다. 군에 계셔서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요.”

 주먹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말로 치고받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갑자기 중대장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뭐야!”

 취재진들이 강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중대장의 손짓에 맞춰 갑자기 모든 병력들이 재빠르게 총을 견착하고 총구를 겨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 저희를 쏘겠다는 건가요?”

 당황한 취재진들이 뒷걸음치며 모여들었다. 사방을 포위하듯 둘러싼 군인들은 점차 간격을 좁혀가며 이들을 몰아세웠다. 중대장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땀에 젖은 짧은 머리카락을 귀찮다는 듯 훌훌 털었다. 건방진 행동에 취재진들은 공포에 서린 얼굴로 그를 주시했다.

 다시 베레모를 쓴 중대장이 군화를 바닥에 툭툭 부딪치며 건들거렸다. 그리고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할 말을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잇새로 터지는 말들은 천천히 그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속보.”
 “…….”
 “금일 오후 1시부로,”
 “…….”
 “전국 비상계엄 통과.”

 끔찍한 그의 말에 모두들 아연실색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정적이 흘렀다. 중대장은 조용히 손가락을 다시 들어올렸다. 여러 사람의 동공이 그의 손끝을 따라갔다. 하늘을 향해 두 손가락을 쳐든 그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손가락을 앞으로 꺾었다.

 탕- 탕- 탕- 탕-!

 끊이지 않는 총소리가 이어졌다.

 고막이 터질 듯이 이어지는 총성과 함께 수많은 총구가 향한 곳은 벌집이 되어 시뻘건 피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취재진이 쓰러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중대장이 다시금 수신호를 보내 총격을 멈췄다.

 “전부 감염자 처리해.”
 “예.”

 뒤처리는 말 한 마디로 정리될 만큼 간단했다.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로 찍고 있던 정국의 손이 덜덜 떨렸다. 눈앞에서 취재진을 모두 죽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정국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정국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내 아랫입술이 찢어져 피가 새어나왔다. 힘주어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무엇일까.
 대체 누구를 없애야 하느냐고.




 



말랑망개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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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y6226  | 1904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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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kmin0723  | 19042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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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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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비  | 190426   
아~~랠리님
이제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는건가요
심장이 쫄깃쫄깃해져요
국민만세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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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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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jsdnl  | 190426  삭제
어떡해요ㅠㅠ
아마겟돈 읽을때마다 제가 정국이 상황이면 어떻게 할지 상상하면서 읽는데 진짜 모르겠어요ㅠㅠ
국민행복투자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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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dodo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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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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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502  | 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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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hs1002  | 19042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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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ForJKJM  | 190427   
역시 젤루 무서운 존재는 사람인가봐요 ㅜㅡㅠ
춉춉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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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사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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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리  | 190427   
우리 진규...ㅠㅠ 살아줘서 고마워
may.co++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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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 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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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kuari  | 19042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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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PANG  | 19042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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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랑  | 190428   
진규, 살았구나! 독한 녀석! 전국 계엄으로 가면 더 어려운 국면으로 치닿네요! 정국아! 힘을 내! ! 언제나처렁 랠리님 ! 최고!
skyblue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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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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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n837  | 19042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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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r1301  | 19042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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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ha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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