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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16 랠리 씀

Hans Zimmer - Chevaliers de Sangreal

아마겟돈
16


‘사탄’과의 전쟁















 발병 7일째 :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속보] 서울시 관악구 사탄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특보] 서울 서남부 지역 먼저 강타, 조류 감염 의심돼
[특보] 금천구, 동작구, 서초구까지 감염자 퍼져
[특보] 바이러스 감염속도 빨라 한강이남 지역 ‘위험’


[속보] 대통령,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종합1보] 전국 비상계엄령에 국회 “해제 결의 없을 것”
[종합2보] 역사상 7번째 전국 비상계엄령, 최선인가
[종합] 바이러스 대책 오리무중, 해결책 있나
[특보] 가평 방문 취재진 20명 전원 감염으로 알려져
[특보] 계엄사령관 “취재진 감염 유감, 위험지역 군 통제 따라야”





*






 “이제 어떻게 하지?”

 진규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몸을 덜덜 떨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살벌한 총성만 들어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취재진을 사살하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아낸 정국은 비로소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희망이 사라졌다. 취재진을 만나 서울에 가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였다. 어째서 계엄군이 취재진에게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통신을 접할 수 없으니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기에 의문만 가득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퍼졌다는 사실은 몰랐으나 정국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혹시 서울까지 바이러스가 퍼진 거 아닐까.”
 “헉, 그렇다고 취재진을 죽여?”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였다. 서울로 가지 못한다는 것.

 정국은 머리가 아파왔지만 고개를 빼꼼 들어 바깥 상황을 주시해야 했다. 아는 것이 없으니 계엄군의 행동으로나마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검이 된 취재진을 한 쪽에 대충 쌓아놓고는 카메라 장비를 부쉈다. 그 후에도 계엄군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자들이 천천히 청평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지?”

 마치 수색하듯 물속을 휘저으며 무언가를 찾는 움직임. 정국은 미간을 좁히고 그들의 행동에 집중했다. 한참이나 움직이던 자들이 천천히 어떤 것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새까만 물체는 멀리서 봐도 사탄의 신체부위임을 알 수 있었다.

 “정국아, 쟤네 하얀 옷은 왜 입은 걸까?”
 “청평호는 바이러스로 오염되어 있으니까.”

 이곳은 사탄 최초 발생지다. 청평호에 떠오른 김윤성의 시신으로 인해 물이 오염되었고, 바이러스가 잔뜩 녹아든 물이 가평 전역의 수도로 퍼져 이 사태가 일어났다. 발병 당일 트럭 기사 역시 배수로를 살피다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시커먼 것’을 만졌다. 그 말은 즉 사탄의 신체 일부가 청평호 안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걸 뜻한다. 각성하기 전의 사탄. 그들에게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전염이 가능했으니 계엄군은 방역복으로 피부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계속되었다. 어째서 계엄군이 사탄의 흔적을 찾고 있는 걸까. 어느 곳에 가나 살아 있는 사탄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이 많은 병력이 청평호를 수색하고 있다. 방역복에 자그마한 틈이 있기만 해도 물이 새어 들어가 감염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쟤네는 지금 뭔가를 찾고 있어. 그게 뭘까?”

 대체 계엄군에게 어떤 꿍꿍이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정국은 정신을 집중하며 머리를 굴렸다. 사탄의 특성에 대해 아는 것들을 머릿속에 쭉 나열했다.

 사탄은 각성 전까지 접촉만으로도 전염시킨다.
 사탄은 각성 후 이로 물어뜯어 전염시킨다.
 사탄은 피에 예민하다.
 사탄바이러스는 숙주를 옮겨 다니며 진화한다.

 발병 첫날 신입생 세 명은 김윤성의 시신을 만진 후 한참이 지나 변이했다. 배수로 공사 트럭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에서 변이로 이루어지는 속도는 빨랐다. 완전히 변이된 후 각성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명훈은 물리자마자 바로 각성한 좀비의 모습이 되었다. 각 개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으나,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적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건 아마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몇 개의 숙주를 거쳤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한다고 했어.”
 “어, 그럼 치료제 같은 걸 만든다는 거야?”
 “아마도.”

 사탄이 숙주를 거치며 계속 진화한다면 연구가 쉽지 않겠지. 만약 치료제를 만들려고 한다면, 계속 진화하는 사탄에 대해 실마리를 얻고자 무언가를 계속 찾는 것 아닐까.

 “선배, 치료제를 왜 만들려고 할까요?”

 그때 조용히 있던 지민이 대뜸 그렇게 말했다. 순간 그의 물음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민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생존자들을 죽이고 있잖아요.”
 “아.”
 “감염된 사람도 죽이고, 멀쩡한 사람도 죽이는데….”

 지민의 말이 맞았다. 계엄군은 생존자며 뭐며 할 것 없이 계엄 지역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적어도 치료제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아야 앞뒤가 맞는다. 치료제가 아니면 뭐지?

 “꼭 그렇지도 않지. 지들이 감염될 수도 있는 거잖아.”

 진규가 그 말에 반박했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언제 감염될지도 모르는데 치료제가 있어야 든든할 것 아냐? 군인 새끼들, 지들이 정국이처럼 불사조도 아니고. 갑자기 새들이 떼로 나타나기라도 하면 군부대도 순식간에 전멸이잖아.”
 “일리 있네.”
 “음…. 그런 거면 치료제보단 백신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백신?”

 지민의 말에 진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치료제랑 백신이랑 뭐가 다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백신은 예방주사 같은 거예요. 저 시설에 있을 때, 어린 동생들 접종주사 맞힌다고 원장님 따라 보건소에 따라다닌 적이 있어요. 일본뇌염 주사를 고르는데 사백신과 생백신 중에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균이 살아있는 생백신은 비싸서… 동생들은 죽은 균으로 만든 사백신을 맞아야 했어요. 무료였거든요.”
 “오…….”

 진규는 지민이 말한 백신 이야기보다는 시설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놀란 듯했다. 정작 지민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그때 백신이 뭔지 설명 들었어요. 몸 안에 균을 넣어서 항체를 만드는 거라고 했어요. 만약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다면… 치료제보다는 백신을 만들 것 같아요. 감염된 후에 치료하는 것보다는 아예 감염되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요.”

 정국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산 속에서 만난 새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작은 새들은 죽이긴 쉬웠으나 몸체가 작아 총을 조준하거나 붙잡는 게 어려웠고, 맹금류는 붙잡기는 쉬웠으나 힘이 세서 상대하기 버거웠다. 만약 나라 안에 있는 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염되었다면, 서울까지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일 터였다. 진규의 말처럼 갑자기 새떼가 달려든다면 군인들도 위험하다. 육지의 생명체가 공중에서 공격하는 것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후배님 말도 일리가 있어.”

 바이러스가 계속 퍼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좀 더 효과적인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자신 역시 백신을 선택할 것이다. 이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는 무엇보다 ‘감염되지 않는 것’이 중요할 터였다.

 하지만 정국은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사탄바이러스를 이겨낸 후로 그에겐 불안감이 사라졌다. 언제 어떻게 물려서 변이되더라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 몸은 치료제의 역할인 것이다. 감염은 되더라도 말끔하게 치료될 수 있는 확실한 무기. 계엄군만 조심한다면 무서울 게 없다. 제 몸이 바이러스를 이긴다는 사실을 알기 전과 후의 마음가짐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 정도로 확실한 치료제라면 백신만큼 충분히 중요하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니 계엄 측이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하느냐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실은,

 “그들이 가장 필요한 건…”

 백신이든 치료제든 상관없다.

 “‘당장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제아무리 완벽한 백신이라도 이미 감염된 사람에게는 소용없다. 완벽한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변해버리고 난 후라면 그 역시 무용지물이다. 이미 온 세상엔 지능을 잃은 머저리 숯 덩어리뿐일 테니.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청평호를 휘젓고 다니든 구태여 알 필요 없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위해 청평호에 병력을 쏟아 넣을 정도로 필사적이라는 점이다. 그 주체는 계엄군이다. 어쩌면 계엄군 위에 있는 권력자일 수도 있다. 그게 누구든, 그 역시 상관없다. 면역을 가진 자신의 몸이 그들의 구미를 당길 거라는 점은 같기 때문이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바이러스. 제로베이스에서 연구를 시작해 약을 만드는 것과 이미 검증된 면역체를 활용해서 약을 만드는 것 중 어떤 게 더 빠를까. 여섯 살 꼬마에게 묻더라도 정답은 같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를 따라간다. 그것이 생(生)의 욕구라면 이정표는 더욱 뚜렷해진다. 살 길을 따라 가는 것. 계엄군이 벌이고 있는 짓도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취재진이 없다면 정면 돌파할 것이다. 증명과 설득. 그것은 정국 자신에게 달린 숙제지만 그다지 걱정되진 않았다. 이 막막한 사태를 해결할 빛을 외면할 사람은 없다. 더욱이 석탄 같던 몸이 원상복귀 되는 치열한 과정을 두 눈으로 보다면 말이다. 정국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가 지민을 끌어당겨 다리 위에 앉히고는 별안간 상체를 꽈악 끌어안았다.

 “후배님.”
 “네….”
 “나를 미끼로 던질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몰라. 근데 적어도 가평에서 뺑뺑이 돌다가 개죽음 당하는 결말은 아닐 거야.”

 정국의 말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지민이 몸을 흠칫 떨었다. 정국은 그의 상체가 바스러질 정도로 세게 끌어안았다. 맞닿은 심장에서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살가죽을 타고 전해졌다. 가까이 닿은 지민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뜨겁고 축축한 입김과 함께 바람 새는 듯한 정국의 지저귐이 흐트러진다.

 지민아, 서울 가면 같이 살래?
 계속 지켜줄게.





WHO IS SATAN?






 석진은 제 앞에 앉아서 차를 홀짝이는 계엄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새치 염색을 했는지 빈틈없이 새까만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의 제복에 붙어 있는 화려한 견장은 계엄군을 통솔하는 최고 권위자답게 위용이 넘쳤다. 전국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다짜고짜 독대를 청한 건 석진이었다. 그는 석학답게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증은 반드시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전에 제게 그러셨죠. 곧 전국 계엄령으로 번질 거라고요.”
 “그랬죠.”
 “그건 무슨 의미였습니까?”
 “박사님 질문의 뜻을 모르겠군요.”

 계엄사령관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이 자는 전국 계엄군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그 어마어마한 권력에서 나오는 여유인 걸까. 태평한 태도에 석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전국 계엄령이 선포될 걸 어떻게 아셨느냐는 뜻입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죠. 이 바이러스가 서울까지 퍼지고 말 거라고.”
 “생존자를 죽이기까지 하면서 바이러스를 막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박사님은 불만이 많으신가 봅니다.”

 되묻는 말에 석진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이들은 바이러스 백신을 얻기 위해 자신을 계엄사령부 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그러나 바이러스 연구원은 널리고 널렸다. 자칫 수틀렸다가는 어떻게 용도폐기 될지 알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궁금한 것뿐입니다.”
 “간단합니다. 바이러스가 서울까지 퍼진 건 새 때문이었죠. 인수공통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새의 이동은 종잡을 수 없고 표준화할 수도 없으니 말이죠. 지금처럼요.”
 “…그래서 백신을 만들라고 하셨던 거군요.”
 “맞습니다.”

 계엄사령관은 여상한 얼굴로 석진의 앞에 놓여 있는 잔에 차를 가득 따랐다. 반쯤 차 있던 액체가 금세 넘치기 직전까지 올라왔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죠. 박사님도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
 “사탄에 감염되면 병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뿐입니다.”
 “백신을 만들면… 국민들에게 배포하실 건가요?”

 석진은 진짜 궁금했던 것을 드디어 터뜨렸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계엄사령관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입가에 깊게 패인 주름이 구겨지는 모습은 퍽 신사 같았다.

 “그럼요. 그러려고 백신을 만드는 것이지,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제 말은… 군인 말고 생존자에게도 배포할 계획이 있는 건지를 여쭌 것입니다.”
 “김석진 박사님은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군요. 백신이 완성되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배포합니다. 그게 나라의 역할이니까요.”

 계엄사령관은 석진의 질문에 일갈하며 남아 있는 차를 끝까지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소파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은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최초 감염자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더군요. 처음 청평호에서 발견 된 시신일 텐데…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닌지도 확인이 불가합니다. 사탄을 외형으로 구별할 수도 없고 말이죠.”
 “…….”
 “백신을 만들려면 꼭 살아 있는 사탄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예. 아무래도 활동이 멈춘 바이러스보다는 계속 활동 중인 바이러스를 관찰하는 것이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 훨씬 효과적이니까요.”

 석진의 무뚝뚝한 대답에 계엄사령관이 다리 위에 걸쳐두었던 양손에 깍지를 끼며 미소 지었다. 석진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그에게 가만히 눈을 맞췄다.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군요?”

 그러나 이어지는 계엄사령관의 말에 석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표정을 무너뜨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좋은 방법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인터폰을 들었다. 그러자 문 바깥에 있던 군인 네 명이 각 잡힌 자세로 방 안으로 들어와 열을 맞춰 섰다. 석진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눈을 껌뻑였다.

 “박사님께 알려 드리도록 하죠.”

 계엄사령관은 미련 없이 문 바깥으로 나섰다. 그러자 계엄군들이 석진에게 어서 그의 뒤를 따르라는 듯 양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그게 마치 전쟁 포로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해졌다. 석진은 제 하얀 연구 가운을 털어내며 팔을 잡은 손들을 물리쳤다.

 “제가 몸에 손 대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따라갑니다.”

 석진이 쏘아붙이며 계엄사령관을 따라 걸었다. 계엄군들은 대꾸 없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부대 안엔 군인들뿐이고, 석진에겐 무기도 힘도 없다. 그런 자신을 왜 이렇게 경계하며 따라다니는지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총으로 무장된 계엄군의 모습은 석진의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계엄사령관을 따라 걷다 보니 전에 한 번 와본 적 있는 컨테이너 앞에 다다랐다. 분명히 이 안에는 생존자들이 있었다. 마치 감옥 같은 공간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석진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며 안으로 들어섰다.

 “청평호의 물에 최초로 발생한 바이러스가 득실거립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안을 수색했더니 사탄의 신체 일부를 발견했습니다. 그게 최초 발생한 바이러스인지 진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물 안에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박사님이 찾는 바이러스가요.”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바이러스란 뜻은 그게 아니고 감염체를 뜻하는…”

 석진의 말을 가로막으며 계엄사령관이 생존자 무리를 향해 손가락을 폈다. 석진은 하던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설마…

 “놀라신 걸 보니 이해하신 모양입니다.”

 탄식이 터졌다. 계엄사령관의 의도를 눈치 챘다. 최초 발생한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청평호. 그리고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 그 두 가지를 합쳐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다는 명제. 그건 분명히 생존자에게 바이러스를 심어 ‘살아 있는 감염체’를 만들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생체… 실험… 말씀이십니까?”

 석진의 말에 계엄사령관이 웃으며 엄지와 중지를 교차해 튕기며 딱! 소리를 냈다. 마치 정답이라는 듯 그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역시 박사님이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바이러스 샘플을 저들에게 심으면 됩니다. 그럼 박사님이 원하는 초기 바이러스를 관찰할 수 있게 되겠죠. 생포와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석진은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굳어 선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곧 바이러스 샘플이 도착할 겁니다. 부하들이 열심히 채취했다고 하네요. 청평호 물, 사탄의 신체 일부, 또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
 “김석진 박사님?”

 석진은 입을 꾹 다문 채 몸이 떨려오는 걸 숨기려 노력했다. 그러자 계엄사령관이 조용히 석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토닥였다.

 “우리나라에 바이러스 연구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데려오지 않은 건 그간의 박사님 업적을 존경하기 때문이죠.”
 “…….”
 “박사님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란 뜻입니다.”

 그건 협박과 다르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얼마든지 연구원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부대 밖은 무저갱입니다. 어느 지역에 가나 마찬가지죠. 아아, 조금 전에 충청도와 전라도 쪽에도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새들은 영 통제할 수가 없네요.”
 “…….”
 “부디 박사님이 저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끔찍했다.
 그 무저갱을 만든 게 누구일까?



 석진은 연구실로 돌아와 표정 없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남준을 포함한 세 명의 수석 연구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계엄사령관을 만나고 온 다음이면 항상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석진의 모습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결국 남준이 의자 바퀴를 굴리며 석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있었지.”
 “안 좋은 말을 들으신 모양이네요.”

 그의 말에 석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곤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생체 실험을 해야 해.”
 “예?”

 석진이 뱉은 말에 수석 연구원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됐다. 생체 실험이라는 말에 놀라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석진은 연구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제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백신을 만들기 전까지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어쩌면 백신을 만든 후에 또 다른 요구를 해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전국은 계엄 상태고, 군의 판단에 따라 인간의 기본권이 제한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계엄사령관의 협박은 분명히 자신과 연구원들의 목숨 줄을 움켜쥐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기를 부려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다.

 “말 그대로야. 곧 바이러스 샘플이 도착할 거야. 우린 거기서 초기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생존자의 몸에 투입하면 돼.”
 “박사님, 그건!”

 남준이 언성을 높이며 벌떡 일어났다.

 “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거 아시잖아요.”
 “백신을 만들려면 어쩔 수 없지.”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안 하면 우릴 죽이기라도 하겠답니까?”
 “오버하지 마. 지금은 특수한 경우야. 그렇게라도 해서 백신을 개발해내야 해. 최대한 빨리. 지금 새 때문에 엄청 빠르게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으니까.”
 “그래도, 멀쩡한 사람들을 어떻게…”
 “백신을 만들고 나서 치료제를 만들면 되겠지.”

 남준이 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터뜨렸다. 석진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자신이 오래 알던 석진이 아닌 것 같았다.

 “박사님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석진은 눈꺼풀이 떨려오는 걸 애써 감췄다. 계엄사령관이 했던 협박까지 연구원들에게 모두 전해준다면 모두가 흔들릴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어차피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같다.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그러니 굳이 이들을 흔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남준아. 연구에 있어서 과정과 결과 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틀렸어. 결과가 중요해.”

 그 말에 남준이 미간을 좁혔다. 석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책상 위에 있는 논문집을 천천히 손끝으로 넘겼다. 그 안에는 여태껏 바이러스를 연구한 세계 석학들의 논문이 가득했다.

 “리소자임과 페니실린이 발견된 걸 우연이라고들 말하지. 하지만 그건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일 뿐이야. 평범한 사람이 푸른곰팡이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게 페니실린으로 이어질 수는 없어. 그간 쌓아온 연구가 있기에 그 발견이 위대해지는 거지.”

 석진은 훑어보던 논문집을 닫으며 자신에게 집중된 연구원들에게 천천히 눈을 맞췄다. 남준은 통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석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세계에서는 설사 우연히 발견한 것도 결코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아.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더라도 논문에는 실수라고 하지 않잖아? 결국 남겨지는 건 완성된 결과물뿐이야.”
 “선배.”

 남준은 한숨을 쉬며 석진을 불렀다. 평소 쓰던 박사님이란 호칭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석진은 그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도덕적 관념에서 어긋나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던 석진이 왜 생체 실험에 동의하며 논리를 펼치고 있는지, 연구원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진은 한 단계 앞선 계획이 있었다. 그건 아직 혼자서만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선배가 하고자 하는 게 뭐예요?”
 “좋은 결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

 석진의 대답에 남준은 입술 안쪽 살을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좋은 결과로 좋은 결과를 낸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선배답지 않네요.”
 “사탄이 보통 바이러스 같지 않으니, 하는 수 없지.”
 “생체 실험에 동의할 수 없어요. 다시 생각해 봐요. 선배.”

 남준은 또렷하게 말을 전하며 연구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사라지고 문이 닫히자 다른 연구원들이 정적 속에서 흐릿한 한숨을 뱉었다. 석진은 방금 전 남준의 눈빛에 담겨 있던 ‘실망’이란 감정을 발견하고는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선후배 사이였지만 늘 자신의 수석 연구원으로서 잘 따라주었던 남준이 처음으로 반발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머릿속 계획이 정리되면 하루빨리 남준에게 전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연구 재개합시다.”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석진은 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손뼉을 두 번 쳐서 분위기를 환기하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책상 위에는 사탄의 샘플을 연구하던 자료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다. 석진은 그것들을 제자리에 정돈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연구실 책상 아래에 있는 도청기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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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프랄린  | 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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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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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꾹꾹이  | 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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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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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30077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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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yot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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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 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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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짐니  | 190729   
저 출근해야 하는데 이거 왜 이렇게 재밌어요 흐억. ..
노인쩡  | 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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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리  | 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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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찜  | 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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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난  | 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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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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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n  | 1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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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니조아23  |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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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반  |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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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튜하튜  | 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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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놀라  | 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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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 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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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하세얌  | 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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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라  |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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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랄라  | 191010   
와... 지난 화에서 계엄군 행태를 보며 사람 탈을 쓴 악마들 같다고 생각했는데 부제가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사탄과의 전쟁으로 바뀐 게 의미심장하네요. 왠지 감염자만을 지칭하는것은 아닌것 같아서요.
둥둥이  | 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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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 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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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꾸기  |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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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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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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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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