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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17 랠리 씀

Lobotomy corp OST - 3rd warning

아마겟돈
17


‘사탄’과의 전쟁















 청평호를 한참이나 휘젓던 계엄군들은 취재진의 주검에 무거운 장비를 매달아 수장하는 것으로 수색을 마무리 지었다. 정국은 군용 트럭을 타고 사라지는 그들을 지켜보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 해가 지고 난 뒤 다시 호명산의 카라반 장박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취재진까지 다 죽여버린 마당에 섣불리 그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안전한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계엄군에게 접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흐린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창문이 다 깨져버린 터라 사나운 빗줄기가 건물 안으로 마구 들어왔다. 축축해서 깰 법도 한데, 진규는 피곤한지 그을음이 가득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잠들었다. 휴대폰 전원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자 이제 막 오후 세 시였다. 완전히 캄캄해지려면 적어도 네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정국은 지민을 향해 손을 뻗어 일으켰다. 잠자코 제 뒤를 따르는 그에게 깍지를 꽉 낀 채로 1층에 숨겨둔 지프로 향했다. 허기가 질 시간이라 챙겨왔던 간식거리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정국이 뒷좌석에 앉아 커다란 배낭을 뒤적거리고 있자 지민이 조용히 따라 탔다. 그리곤 지프의 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순식간에 빗소리가 먹혀들어가고 차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지민이 정국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두터운 가슴팍을 둘러 감아 안겼다. 정국은 통조림을 꺼내다 말고 멈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애교도 제법 있네.”
 “…애교 아닌데.”
 “그럼 뭐지. 유혹인가?”

 정국은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지민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 뒷좌석에 길게 누운 채 겹친 모습은 환란 속에서 찾은 안식처 같았다. 장난스러운 말과는 달리 정국은 지민의 뒤통수를 천천히 쓸어주기만 했다. 지민은 정국의 가슴팍 위에 뾰족한 턱을 댄 채로 티셔츠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스트레스가 가득한 이 상황에서 오직 정국과의 접촉만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었다. 자신이 먹어왔던 약보다 더 큰 효과라고 생각했다.

 “몸은 괜찮아?”
 “…몸?”
 “처음인데 내가 너무 무리하게 한 것 같아서.”

 질문의 뜻을 알아들은 지민은 조용히 얼굴을 붉혔다. 밤새 정국의 몸을 받아들이느라 벌어진 부위는 잔잔한 불편함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괜찮다고 하기에도, 괜찮지 않다고 하기에도 민망해서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지프 안에 따라 들어와 먼저 스킨십을 해왔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국은 머리를 만져주던 손을 천천히 내려 통통한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아, 좋아 죽겠다.”
 “엉덩이가… 좋은 거예요?”
 “너무 좋아.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을 만큼.”
 “…….”
 “입술 튀어나왔다. 후배님이 좋다는 뜻인데.”

 큭큭 웃으며 삐죽 나온 입술에 쭈웁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뭐 같은 상황에서 잠시나마 걱정 없이 웃을 수 있게 하는 건 지민이 유일했다. 정국은 그의 작은 몸뚱이를 꽉 끌어안고 뺨을 맞댔다. 두근두근, 차분하던 심장이 이내 요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만 아니라면 연애를 시작한 이 감정만을 만끽하며 24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부자였으면 지금 당장 전용기 띄워서 다른 나라로 도망갔을 텐데.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하네.”
 “무슨 그런 소릴 해요….”
 “그냥. 뭐든 해주고 싶은데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선배랑 같이 있으니까… 다 가진 거예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여태 이렇게 나를 챙겨준 사람 없었어요. 선배가 처음이에요. 이런 감정도 처음이고….”
 “어떤 감정인데?”
 “음… 많이 좋아하는 감정….”
 “더 자세히.”
 “자꾸 닿고 싶은…”

 맞댄 뺨 옆에서 들리는 나긋한 목소리에 정국은 고개를 돌려 그의 목덜미를 입에 머금었다. 주름하나 없는 흰 목의 살결을 짓궂게 빨아들이며 자국을 만들었다. 따끔하면서 간지러운 감각에 지민은 소름이 오소소 돋아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정국이 어깨뼈를 꽉 잡고 내리는 탓에 목을 이리저리 비비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살갗을 빠는 소리는 지프 안에 갇힌 채 점점 더 음란하게 흘러갔다. 지민은 몸에 잔뜩 힘을 주며 정국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는 사이 정국이 제 바지를 내리고 있다는 건 까맣게 몰랐다.

 “음, 마음에 드는데.”
 “뭐 한 거예요?”
 “도장 찍었어. 내꺼.”

 흰 목 위에 울긋불긋하게 만들어진 자국을 보며 정국은 저절로 야한 생각을 이어갔다. 목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여기저기 자국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몸을 뒤집어서 지민의 위에 단번에 올라탄 정국이 그새 딱딱해진 아래를 맞대어 비볐다.

 “섰어. 자기야.”
 “…….”
 “잠깐만 넣어도 돼?”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며 하는 말에 지민은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하의가 사타구니 아래까지 내려가서 자신의 하체가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저돌적인 정국의 행동에 지민은 입술을 말아 물며 다리를 슬쩍 벌렸다.

 “…거짓말.”
 “응?”
 “잠깐만 할 거 아니잖아요.”
 “응. 당연히 뻥이지.”

 자연스럽게 바지를 마저 끌어내리는 손길에 지민은 붉어진 얼굴로 허리를 비틀었다. 순식간에 하의가 무릎까지 내려가서 반나체가 되어버린 지민의 몸을 주무르며 정국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살짝만 닿아도 당장 섹스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으로 이어지는 자신을 보며, 여태 이렇게나 인내심을 잃어본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으며 정국은 자신의 하의를 슥슥 끄집어 내렸다. 단단하게 선 것을 꺼내며 지민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지프 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제 것을 잡고 지민의 입구를 찾아 비볐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어지는 인터코스.

 “아…!”

 짧은 신음을 내며 제 몸을 사방에서 꽉 붙잡는 지민의 비부가 사랑스럽다.

 “살살 할게.”
 “흐… 으응.”
 “오래 해도 돼?”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뜨거운 입김이 저절로 쏟아졌다. 지민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유독 빨리 갔다. 살살 하겠다는 약속은 금방 무색해질 게 분명했지만, 겹쳐진 채 하나로 이어진 이 행위가 좋아서 오래 하겠다는 말은 사실이 될 듯하다. 빠듯하게 삽입된 몸을 느릿하게 왕복하며 정국은 제 두 눈에 지민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았다.

 “다 때려치우고 이것만 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정국이 움직일 때마다 지민의 발가락 끝이 굽었다. 하얀 허벅지를 잡아 올려 누르며 점점 힘 있게 진입하는 몸짓에 따라 고운 이맛살을 구기며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의 어둠이 빨리 찾아올 것 같았다.





*






 깊은 밤이 되어 세 사람은 지프에 올랐다. 청평호 주변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려진 상태였으니 시내 쪽이나 큰 도로에 비해 계엄군의 눈에 띌 확률이 적었다. 지프에 시동을 걸기 전 실내등을 켜고 진규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갈아주었다. 드레싱 키트를 꺼내 절단된 손가락 부분에 소독약을 묻혔다.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고, 단면은 검붉은 피가 굳어 있었다. 잘려나간 손가락의 아랫부분은 피멍이 들어 손등까지 보랏빛을 띠고 있다. 진규는 차마 자신의 손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프냐?”
 “안 아파. 신경 다 죽었나 봐.”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인마.”
 “몰라.”

 삐진 사람처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진규의 얼굴을 슬쩍 보며 정국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녀석은 지금 제 손을 보고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울어.”
 “…….”
 “원래 징징이면서 눈물은 왜 참아.”
 “…안 울어.”

 말과는 달리 진규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코를 들이마셨다. 정국은 소독을 마치고 위생거즈를 맞댄 후 붕대를 꼼꼼하게 감았다. 그리곤 입을 삐죽이며 참고 있는 진규의 머리통을 끌어당겨 가슴팍에 대고 안아주었다.

 “놔…. 느끼하게 왜 이래.”
 “뭐, 너 좋아서 안아주는 줄 알아?”
 “치….”
 “우리 후배님이 질투할까 봐 딱 10초만 안아줄 거야.”

 툴툴거리면서도 잠자코 안겨 있는 진규 녀석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다가 살집 있는 뒷목을 손으로 주무르며 떼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진규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내밀어 장난스럽게 들여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우니까 엄청 못생겼다. 못 봐주겠어.”
 “……우리 엄마는 나 잘생겼다고 했거든?”
 “너희 엄마가 기특하게 여기시겠다. 겁쟁이 최진규가 이렇게 잘 살아 있으니.”
 “엄마 얘기하지 마…. 보고 싶으니까.”
 “지가 먼저 했으면서.”
 “킁….”

 정국은 진규의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리며 달래주었다. 그리곤 녀석의 허벅지를 탁 때리며 다시 지민과 자리를 바꾸라고 신호를 보냈다. 진규는 아주 잠시 위로를 받은 후 다시 커플놀음에 끼게 되었다. 투덜대며 조수석에서 지민과 자리를 바꾸어주었다. 기어를 잡고 운전해야 하면서 틈새를 못 참고 깍지를 끼는 두 사람을 보며 신물이 난다는 듯 차창 틀에 제 머리를 쿵쿵 박았다.

 “명훈이한테 다시 가자.”

 깍지 낀 지민의 손등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춘 정국이 시동을 걸었다. 그들을 태운 지프는 천천히 굴러가며 폐허가 된 건물을 빠져나왔다.



 가로등 하나 들어와 있지 않은 컴컴한 도로를 서행했다. 전조등을 켜지 못해서 시야가 온통 까만 와중에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운전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차창 밖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달릴 수 있는 속도는 고작 시속 30km. 그래도 흐릿하게나마 비추고 있는 달빛에 의존하며 천천히 호명산 방향으로 향했다.

 정국은 제발 계엄군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도로에서 마주친다면 운전을 하면서 총을 쏴야 하는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이들이 탄 지프는 해골부대의 깃발이 달려 있기에 어쩌면 의심 받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다. 지난번에 만난 경비군의 경우처럼 도난차량이라는 걸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도망자의 처지에 너무 큰 행운을 바랐던 것일까. 정국은 반대편 차선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전조등 빛을 발견하고는 숨을 흡 참았다.

 “계엄군이야.”
 “헉, 어떡해!”

 정국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허벅지 위에 올려둔 총을 한 손으로 꽉 쥐었다.

 “후배님, 뒷좌석에 내 배낭 앞으로 갖다 줘.”
 “네….”
 “그리고 좌석 밑으로 숨어.”

 공포감에 바짝 얼어 있는 두 사람을 부추겼다. 지민은 뒷좌석으로 손을 뻗어 커다란 정국의 가방을 끌고 왔다. 그리곤 진규와 함께 지난번처럼 조수석 시트 바닥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서, 선배….”
 “쫄지 마 괜찮아. 진규야, 너 명훈이 작전 폰 가지고 있지?”
 “어엉.”
 “지금 네 폰 전원도 켜놔. 만약 걸리면 도망치는 동안 블루투스로 영상 다 옮겨.”
 “영상?!”
 “여태 우리가 찍어놨던 거 다 올려. 작전 폰은 군용이라 인터넷 가능할 거야. 그리고 영상 다 올라가면 창밖으로 폰 던져.”
 “그, 그거 전원 켜면 GPS 신호 잡히잖아!”
 “어차피 쫓기는 마당에 상관없지. 무전 싹 돌려서 우리 잡으러 올 텐데.”
 “으… 무서워.”

 전조등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정국은 숨을 가다듬으며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엑셀을 밟고 있는 발은 초조하게 떨려왔다. 조수석 아래에서 폰 두 개를 꺼낸 진규가 작전 폰을 지민의 손에 쥐어주었다. 두 사람은 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정국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조수석에 앉아 있는 배낭으로 손을 뻗어 수류탄과 탄창을 꺼냈다. 그의 행동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숨어 있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 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총알은 넉넉했지만 수류탄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덧 계엄군의 차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반대쪽에서 비추는 전조등 때문에 눈이 부셨다. 정국은 눈을 가늘게 뜨고 느리게 서행하며 다가오는 차를 살폈다. 혹시나 20인승 K511 카고 트럭일까 봐 잔뜩 긴장했으나, 다행히 이들이 탄 것과 같은 레토나였다. 정국은 군에 있을 때 지겹도록 외웠던 레토나의 사양을 떠올렸다. 레토나. 군용 지프. 승차정원 6인. 운전병 시절 최고 속도로 밟아본 적은 없으나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다. 트럭에 비해 차체가 가벼워 도망치기에는 적당하다. 다만 문제는 상대도 같은 속도로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빗길 위의 위험한 레이스가 펼쳐질 수도 있다.

 고요한 도로 위에는 지프 두 대의 엔진 소리만 빗소리에 섞였다.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속도를 유지했다. 심장은 발작을 하고 있었으나 지민과 진규가 두려움에 떨까 봐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총을 잡은 정국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계엄군의 차량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가까워지는 것은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왔지만 지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순간 정국은 탄식을 뱉었다. 들키지 않은 것인가? 사이드 미러를 살폈다. 계엄군의 지프가 느린 속도로 멀어졌다.

 “하, 지나갔어.”

 정국의 말에 지민과 진규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후우, 후우, 나 죽을 것 같아. 심장 떨려.”

 진규가 숨을 거칠게 헉헉거리며 여러 번 심호흡을 하다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됐다. 더 이상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랄…”

 차분하게 울리던 정국의 말이 끊겼다. 갑자기 룸미러에 반사되는 불빛 때문이었다. 정국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스쳐 지나간 지프가 방향을 틀어 뒤로 따라붙은 것이다. 정국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좆 됐어. 따라붙었어!”

 정국은 재빠르게 전조등을 켰다. 라이트를 상향으로 올리고는 기어를 변속했다. 운이 따르지 않았으니 이젠 예상했던 대로 도망칠 차례였다.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이 실렸다. 순식간에 밝아진 시야에 정국은 핸들을 꽉 잡으며 속도를 올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계기판의 rpm 숫자가 치솟았다.

 탕-!

 뒤쪽에서 총성이 들린 순간 급커브 길에 접어들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정국은 속도를 최대한 올리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꽉 당겼다. 끼익-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 커브를 돌며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조금 위험한 질주였지만 총알을 맞는 것보단 나았다.

 “영상 올려!”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지민이 작전 폰의 전원을 허겁지겁 켰다. 진규는 왼손으로 빠르게 자신의 폰에 있는 영상을 찾았다.

 “정국아! 여, 영상이 많은데 뭐부터 전송해?”

 발병 당일 펜션에 있는 사탄을 촬영한 것부터 명훈의 집 마당의 시체를 찍은 영상, 명훈의 증언을 찍은 영상, 카라반에서 찍은 영상, 그리고 취재진을 죽이는 장면이 담긴 영상까지 종류가 꽤 많았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규는 무엇을 먼저 올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 명훈이한테 물리는 영상부터.”

 정국은 차창 앞과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살피며 대답했다. 계엄군의 진상을 알리는 것과 자신이 면역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 중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정국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은 면역체임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로 갈 방법이 없다면 계엄군에게 미끼를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은 취재진을 죽이는 영상이다. 아마 이 두 영상을 올린다면 여론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국 계엄령이 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의 헛된 꿈이었다.

 “지민이 형, 파일 가고 있어?”
 “네.”
 “제발. 제발… 빨리 가라.”

 커브를 달리며 심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했다. 진규는 블루투스 전송내역의 로딩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영상 크기가 커서 전송 속도가 더뎠다. 지민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손을 떨었다. 그 사이 총 소리가 몇 번 더 났다. 어느덧 커브 길이 끝나고 직선 도로가 나타났다. 바짝 따라붙은 계엄군의 차에 정국은 심호흡을 했다. 눈이 부실 만큼 강한 상향등 빛이 자꾸만 룸미러에 반사되어 정국의 동공을 공격했다. 정국은 고개를 낮춰 피하고는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번지는 빛 사이에 지프 옆으로 튀어나온 총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폰 안 떨어뜨리게 꽉 잡아!”

 탕! 타앙! 탕!

 폭죽처럼 여러 발 터지는 총성에 정국은 핸들을 거칠게 옆으로 꺾었다. 운전을 하며 총을 쏠 수는 없으니 대항하는 것보다는 따돌리는 게 상책이었다. 차체가 요란하게 흔들리며 옆으로 쏠림과 동시에 정국이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계엄군의 지프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이들을 앞질렀다.

 “윽!”

 차 문에 머리를 쾅 부딪친 진규가 신음을 냈다. 몸이 크게 쏠리며 하마터면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느덧 영상 두 개의 전송 바가 끝을 향하고 있었다. 97, 98, 99, 100%. 이윽고 전송완료 창이 뜬 순간 지민은 급하게 유튜브를 열었다. 데이터 통신 안테나가 4줄이나 떠 있는 걸 보니 정국의 말대로 군용 폰이라 인터넷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하… 선배.”

 하지만 이내 지민의 얼굴이 좌절로 물들었다. 유튜브를 켜자마자 접속 차단 경고가 떴기 때문이다.

 “유튜브 접속을 막아놨나 봐요!”
 “젠장.”

 정국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작전 폰을 켜서 위치가 잡혔을 테니 금세 계엄군이 몰려올 것이다. 지금 따라붙은 계엄군 역시 무전을 보냈을 테지. 시간이 없다. 그런데 유튜브 접속을 막았다고? 왜지?

 “SNS! 인스타, 트위터, 페이스북 아무거나!”

 저만치 앞서 갔던 계엄군의 차가 끼익 소리와 함께 유턴했다. 정국도 급하게 핸들을 돌리며 속도를 올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밟았다. 그 순간 총성과 함께 날아온 총알이 사이드 미러에 맞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진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생명을 다했다. 이러다간 타이어가 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만약 명훈이 변이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총을 쏘며 저들을 위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국은 정신없이 엑셀을 밟으며 다시 급커브 길로 들어섰다.

 “이, 인스타도 접속이 안 돼요.”

 정국이 안면을 구겼다. 무슨 상황일까.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유튜브와 인스타 모두 해외 기반이다. 국가 IP의 접속을 차단한 건가? 어째서? 그런 건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판단이 확실히 서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취재진을 죽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유 아닐까. 만약 전국 계엄이라면……

 “정국아 어떡해?”

 탕-!

 “으악!!!”

 다시 빗발치는 총소리에 진규는 몸을 움츠리며 벌벌 떨었다. 설상가상 달리고 있는 커브길 앞쪽에서 또 다른 계엄군의 차량이 보였다. 군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 순간 뒷좌석의 천막을 뚫고 들어온 총알이 헤드 레스트 옆을 스쳐 지나가며 지프의 앞 유리에 박혔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혼비백산하며 진규가 비명을 질렀다. 정국은 낮게 욕을 뱉으며 재빨리 눈동자를 굴렸다. 도로 옆에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산들이 기세 좋게 서 있다. 그 반대쪽 아래에는 청평호와 연결된 강이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호명산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 그 사이 지민은 블로그에 영상을 올려볼 생각에 포털에 접속했다. 그러나 곧 메인 화면을 확인한 지민의 눈이 커지며 탄식이 터졌다. 최신 업데이트가 몇 시간이나 멈춰버린 뉴스 란에는 분명한 문구로 현 상황이 쓰여 있었다.

 “…전국 계엄령!”
 “뭐?”
 “뉴스 업데이트도 다 멈췄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사태는 더 심각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영상을 보여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해외 사이트나 어플 접속을 차단했다는 것은 국민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국의 통신을 끊어놓았을 수도 있다. 전국으로 사탄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져버린 거라면, 더 이상 서울에 가려고 애쓰는 것은 헛된 짓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 생존이냐 죽음이냐만 남았을 뿐.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지프 하나가 합세해서 방향을 틀었다. 이제는 이들이 탄 차에 두 대의 지프가 따라붙었다. 양쪽에서 압박하며 총을 쏘는 탓에 정국은 핸들을 계속 옆으로 꺾어가며 굽이굽이 운전했다.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잔뜩 긴장했다. 이대로 자신이 총에 맞아 죽는다면 순식간에 셋의 운명이 끝나버린다는 걸 안다.

 살아야 돼. 반드시.

 “군용 통신 어플 있지?”
 “네! 이거… 있는 것 같아요.”
 “바이러스 면역 영상 전송해. 아무한테나!”

 이제 방법은 이것뿐이다.

 지민은 군 통신 어플을 켜고 재빨리 살폈다. 진규가 머리를 맞댔다. 계속해서 차체가 이리저리 쏠리며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곧 부대 연락망과 연결되는 채팅 창을 발견했다. 혼란 속에서 지민은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을 선택해 영상 전송 버튼을 눌렀다. 버퍼링이 생기며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내고 있어요!”
 “꽉 잡아.”

 정국이 또다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차가 급정거하며 지프 두 대를 저만치 따돌렸다. 그러자 총구의 방향을 튼 계엄군들이 지프의 앞 유리를 향해 재빨리 총알을 난사했다. 정국은 후진기어를 넣으며 엑셀을 밟았다. 그 순간 타이어 한 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총에 맞아 펑크가 난 모양이었다. 지프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 군인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정국은 수류탄을 들었다.

 “수류탄 던질 거야. 우리도 위험할 수 있어. 신호 주면 바로 차 옆쪽으로 뛰쳐나가서 엎드려. 그리고 무조건 산 쪽으로 달려. 알겠지?”
 “선배는요?”
 “나도 같이 갈 거야. 일단 눈속임이 필요해.”

 군인들은 계속 몰려올 것이다. 수류탄으로 지프 두 대를 처리하고 산으로 도망친다 해도 군 병력이 알아채고 산까지 따라붙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국은 GPS 신호가 있는 작전 폰과 함께 지프를 아래쪽 강으로 떨어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춰 선 이들을 향해 두 대의 지프가 다가왔다.

 “영상 전송 됐어?”
 “네.”
 “바로 수류탄 던질 거야. 할 수 있지?”

 지민이 손목을 붙잡으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으나, 정국은 일부러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작전 폰을 창밖으로 던졌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지프의 문을 열고 그것을 방패삼아 몸을 엄폐했다. 다가오는 지프를 향해 엄호사격을 하자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내 챙, 챙, 챙, 하며 차 문에 총알이 마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가 심호흡을 하고는 신호를 주었다. 진규가 지프의 문을 활짝 열자 이번에는 그쪽 방향으로 총알이 날아왔다.

 “……엎드려!!”

 정국이 팔에 온 힘을 실어 다가오는 지프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굉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두 대의 지프가 엄청난 기운으로 인해 옆으로 튀며 터졌다. “어서!!!” 총소리가 끊기자마자 외치는 정국의 소리에 지민과 진규가 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정국은 폭발의 여파로 살갗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총을 쏘았다. 혹시라도 다치지 않은 계엄군이 튀어나와 따라붙을까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경사진 산 쪽의 컴컴한 숲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정국이 다시 차에 올랐다. 핸들을 꺾어 강 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엑셀을 세게 밟았다. 굉음과 함께 엔진이 폭주하며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갔다.

 엑셀에서 발을 뗀 후에도 속도가 붙은 지프는 덜컹거리며 강변에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낮은 장애물을 가뿐히 밟으며 지나가는 지프 안에서 정국은 이를 악 물었다. 커다란 배낭과 총을 끌어안은 채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후 재빨리 열린 문 밖으로 몸을 굴렸다.

 “윽….”

 속도감 있는 차 안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정국의 몸이 바닥에 세게 떨어졌다. 저절로 신음이 터질 만큼의 충격과 함께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강변의 바위에 몸이 아무렇게나 부딪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끌어안은 배낭이 복부와 얼굴 쪽의 충격을 흡수했다. 대신 팔꿈치에 감각이 없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빈 지프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수심이 얕은 물 밑바닥에 처박히며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렇게 지프가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물 안에 잠겼다. 정국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산을 향해 달렸다. 눈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발이 가는 대로 뛰었다. 경사 진 흙바닥은 빗물로 인해 무척 미끄러웠다. 비에 흠뻑 젖어버린 앞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국은 아픈 팔을 감싸 쥐며 지민과 진규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숲을 헤치며 들어갔다.

 잠시 뒤 아래쪽 도로에서 총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 확인하니 지프 여러 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간발의 차.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들의 총에 벌집이 되어 죽었을 것이다. 정국은 터지는 숨을 간신히 참으며 계속해서 산 속을 기어올랐다. 틈틈이 뒤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류탄이 터진 쪽으로 모여든 계엄군이 강 바닥에 처박힌 지프를 발견하고는 총을 견착한 자세로 접근했다. 총 여섯 대의 지프에서 비추는 빛으로 인해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보였다. 빈 지프인 줄도 모르고 강 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국이 피식 웃었다. 멍청한 새끼들. 어차피 오염된 강이라 그 안에 들어가 시체 확인도 하지 못할 것이다.

 정국은 다시 정신없이 산을 탔다. 빗소리, 바람소리, 나뭇잎끼리 부딪치는 소리, 산 벌레 소리. 만약 이곳에 갑자기 사탄이 나타난다면 꼼짝없이 물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민과 진규를 따라잡으려면 속도를 높여야 했다. 나뭇가지에 살갗이 마구 긁히고 넘어질 때마다 무릎이 깨졌지만 쉴 틈이 없었다.

 한참이나 그들을 찾으며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선배!”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산을 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자신을 찾는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국은 그가 있는 방향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숲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다.

 “어디 있어?”
 “전정국!”

 그때 저 멀리서 휴대폰 액정 빛이 반짝거렸다. 진규가 자신의 폰 플래시를 켜서 흔들고 있었다. 정국은 안도하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암흑. 젖은 나뭇잎이 가득 떨어진 바닥을 구르며 정국은 힘 있게 발을 내디뎠다.

 “조심해!”
 “아!”

 정국은 자신보다 낮은 지대에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높이가 조금 있는 바위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나 낙엽과 덩굴 같은 줄기에 뒤덮여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자마자 몸이 휘청거렸다.

 “어어?!”

 발이 푹 빠지며 비틀거리는 그를 보며 지민과 진규가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들이 정국의 팔을 꽉 붙잡았다. 지프에서 뛰어내리며 다친 팔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일었다. 밟고 있던 흙바닥이 부서져 내렸다. 순식간에 세 사람이 중심을 잃고 뒤엉키며 험난하게 경사진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비명도 채 내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이랄 것이 딱히 없던 산 속에서 흡사 낭떠러지 같은 곳을 뒹굴었다. 정국은 재빨리 지민을 끌어안았다.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감싸고 팔에 힘을 주어 보호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몸뚱이가 바위에 마구 찍혀 윽 소리가 날 만큼 고통스러웠다. 몸 어딘가에 피가 흐르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정국은 정신을 잃었다.





*






 석진은 밤늦게 자신을 데리러 온 군인들과 마주 섰다. 빗줄기가 거세게 내려치는 날씨에 군복을 흠뻑 적셔가며 달려온 이들은 다짜고짜 석진을 데리고 계엄사령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온종일 연구에 매달리는 바람에 피로가 몰려왔지만, 계엄사령관의 호출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숙소 안에 마련된 인터폰도 아니고, 이렇게 군인들을 통해 자신을 직접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뭔가 급한 사안이 있는 듯했다.

 “이게 무엇으로 보입니까?”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계엄사령관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영상 하나가 떠 있었다. 석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가 다짜고짜 건넨 것을 받아들었다. 영상 속에는 한 청년과 사탄이 힘을 겨루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석진의 눈이 이내 둥그렇게 뜨였다. 영상 속 남자가 사탄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스스로 물려주고는 변이하기 시작했다. 물린 손끝부터 시작해서 팔 전체가 까맣게 물들었다.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석탄처럼 변했던 팔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갔다. 까맣게 불거진 핏줄이 가라앉으며 피부가 살색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담긴 부분을 당겨서 반복해서 보았다. 이건 틀림없이 바이러스 면역체였다.

 “이게 대체….”
 “군 통신으로 전송된 영상이죠.”
 “이 사람은 면역체가 틀림없습니다. 조작된 영상이 아니라면요.”

 석진의 대답에 계엄사령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 사람으로 무얼 할 수 있습니까?”
 “…치료제를 만들 수 있겠군요.”

 동그란 눈을 가진 영상 속 남자가 카메라를 향해 눈을 맞추며 웃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보라는 듯 당당하고 자신감이 찬 눈빛이었다. 석진은 다시 재생 바를 당겨 남자의 팔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틀었다. 남자는 제 팔을 부여잡고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쉽게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나 반복 재생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음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제?”
 “네.”
 “흐음….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라….”

 석진은 눈에 이채를 띠며 계엄사령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국으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면 비감염자보다 감염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백신보다는 치료제가 더 필요한 상황이 맞다. 하지만 백신을 요구하는 계엄군 측의 의도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계속 진화하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샘플을 수도 없이 나누어 백신을 만드는 것보다는 효과적입니다. 이 사람의 피에서 혈청을 분리해서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훨씬 빠르니까요.”

 그리고 애꿎은 생존자에게 바이러스를 투여하여 생체 실험을 하는 짓도 피할 수 있다. 석진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이 사람을 가지고 백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그건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겠지만, 감염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니 치료제 쪽에 가깝습니다. 아예 감염이 되지 않는다면 또 모를까요.”

 석진의 대답에 계엄사령관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침음했다. 한참 말없이 고민하던 그가 다리를 꼬며 의자에 몸을 깊게 묻었다.

 “뚜렷한 목표에 접근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죠.”
 “…….”
 “치료제, 좋습니다. 확실히 만들어지기만 한다면야.”
 “이 남자는 어디에 있죠?”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계엄사령관은 그의 물음에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문 쪽을 향해 턱을 까딱 흔들었다. 석진은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엄군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뭐든 만들어낸 후 자유를 찾고 싶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연구는 그를 내내 불편하게 했다.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는 와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꺼림칙한 상황에서 자신의 바이러스 연구가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배를 불려주고 말 것이라는 것을. 항상 태평한 표정으로 미소를 걸치고 있는 계엄사령관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알겠다. 이들에게는 감염자에 대한 걱정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쩌면 백신이든 치료제든 만들고 나면 자신조차도 용도폐기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석진이 방을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은 순간, 계엄사령관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 함께 온 김남준 연구원 말입니다.”
 “…예?”
 “아무래도 제2 아지트로 보내야겠군요.”

 뭐지? 갑자기….

 “…거긴 뭐하는 곳이죠?”
 “잡아둔 사탄이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김남준 연구원을 보내야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 연구 파트너인데요.”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석진은 구겨지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늘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던 계엄사령관이 일개 연구원의 거취에 신경 쓴다니.

 “보내야 하는 이유는 제가 정합니다.”
 “…….”

 며칠 전 남준이 생체 실험에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을 냈던 것을 떠올렸다. 혹시, 설마…….

 “내일 바로 김남준 연구원을 파송할 생각입니다. 그곳엔 다양한 사탄들을 잡아놓고 있으니 샘플 채취를 맡아주면 좋겠군요.”

 석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는 분명히 연구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를 확인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뛰어난 두뇌만큼이나 석진은 눈치가 빨랐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빙긋 웃는 계엄사령관에게 목례한 석진이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으으….”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정국의 눈꺼풀이 열렸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고통스러웠으나 곧 제 품 안에 안겨서 눈을 감고 있는 지민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장 난 것처럼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까운 곳에 기절한 진규의 모습이 보였다. 정국은 욱신거리는 갈비뼈를 짚으며 제 등에 매달려 있는 배낭과 상체에 둘러져 있는 총을 확인했다.

 “후배님, 눈 떠봐. 지민아. 지민아.”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이는 지민의 뺨을 어르며 깨웠다. 그의 안면이 구겨지며 잇새로 가느다란 신음이 터졌다. 지민은 나뭇잎과 흙으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비가 조금 그쳐 힘없는 물방울들만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아파….”

 정신이 든 지민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정국은 그를 일으켜 앉히며 얼굴 이곳저곳을 살폈다. 흠뻑 젖은 얼굴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그건 정국도 마찬가지였다. 정국은 자신이 입고 있는 흰 티셔츠에 핏물이 배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

 핏자국을 발견한 지민이 놀라서 얼른 그의 티셔츠 들어올렸다. 옆구리 부근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굴러 떨어지며 돌부리에 세게 부딪쳐 찢어진 모양이었다. 정국은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키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규가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셋 다 위험한 고비를 넘긴 모양이다.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사탄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갈비뼈나 팔이나 성한 곳이 없었다. 정국은 천천히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뭐지?

 두 걸음을 내딛자 발 밑창에서 말캉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분명히 흙과 나뭇잎으로 뒤덮여 있는데, 산 바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이상했다. 정국은 재빨리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흙더미를 헤쳤다.

 “하….”

 물에 젖어 진흙처럼 변한 것들을 치워내자 발가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정국은 놀라서 뒷걸음 쳤다. 그건 분명히 사람이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닌 여러 구의 시신이라니.



 “동작 그만. 손들어.”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 바짝 얼어붙었다. ‘아, 계엄군인가.’ 정국은 낮게 탄식했다. 젖은 낙엽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아니다. 정국은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천천히 양 손을 머리 높이로 들었다. 눈동자를 돌려 앉아 있는 지민의 얼굴을 확인했다. 잔뜩 겁에 질린 채 굳어 있는 표정을 보니 기어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정국의 등에 총구가 닿았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턱이 덜덜 떨려왔다. 이제 죽는 건가. 재빨리 몸을 돌려서 총을 들어 여러 명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빠르게 계산을 해봤지만 도통 가망이 없다. 아마 총을 잡자마자 총알이 정국의 등을 관통할 것이다.

 그때, 뒤에 서 있는 남자가 정국의 어깨에 둘러져 있는 총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라, 얘는 총을 어떻게 구했대?”

 그 말에 정국은 이들이 계엄군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정국은 두 손을 든 채로 몸을 휙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또래로 보이는 남자 다섯이었다. 그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어쩐지 어설픈 모습이었다. 심지어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남자는 단발에 가까운 탈색머리였다. 갑자기 뒤로 돌아서 시선을 마주치는 정국으로 인해 당황한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총구가 정국의 뱃가죽에 닿았다. 정국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보아하니 구덩이에 쌓여 있는 발가벗은 시신은 진짜 군인일 것이고, 이들은 군인들을 죽이고 군복을 빼앗아 입은 것일 테다.

 “…당신들 뭐야?”

 정국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탈색머리가 가운데에 서 있던 키 작은 남자 하나의 뒷목을 우악스럽게 잡은 채로 앞으로 끌어당겼다. 작은 남자는 유일하게 군장을 차고 있었으며 일병 마크를 단 채로 무전기를 손에 꽉 쥐고 있었다.

 “우리? 산적이다.”

 탈색머리가 작은 남자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좆같은 피해자이기도 하지.”
 


 비죽 웃는 탈색머리를 보며 정국은 깨달았다.
 이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생존자라는 것을.




 










(+) 16편 사족에서 말한 '틀린그림찾기'는 타이틀에 적혀 있는 문구였습니다.
사탄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사탄과의 전쟁으로 바뀌었죠!
눈썰미 좋으신 분들... (짝짝)
별것은 아니고, 아마겟돈 소장본 1권과 2권의 차이예요.
쓸데없이 길어가지고... 두 권짜리 소장본이 되었다는 사실 ㅠ




김시언  | 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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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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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ring  | 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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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