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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19 랠리 씀

Zack Hamsey – Empty Room

아마겟돈
19


‘사탄’과의 전쟁














 정국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희뿌연 시야에 뭉개진 빛이 들어왔다. 눈이 부셔서 안면을 찡그렸지만 왠지 신체의 반응이 느리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호흡하는 것도 태엽을 느리게 감은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후욱.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렸다. 두근, 두근, 두근, 느리게 뛰는 맥박 소리. 꼴깍, 침이 넘어가는 소리. 말라붙은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 혓바닥이 치아를 건들 때마다 내는 질척한 소리. 자신의 몸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마치 확성기에 댄 것처럼 크게 들려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뿌옇던 시야가 또렷해지자 천정에 있는 일정한 문양의 텍스처가 보였다. 이곳은 어디일까. 정국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느리게 이어나갔다. 그러나 홀로 독백하는 것조차 뭔가 이상하다. 자꾸만 생각이 멋대로 샜다.

 왜 천장이 회색이지…. 저 무늬는 꼭 김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아…. 김 가루로 주먹밥을 만들면 맛있는데…. 엄마, 엄마 보고 싶다……. 아,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이상해. 몸이 이상한 것 같아…. 배고프다…. 나 배고파….

 정국의 몸속에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가 돌고 있었으니 그런 신체의 반응은 이상할 것 없다. 반수면 상태에 이른 그는 멍하게 눈만 껌뻑이며 송장처럼 누워 있는 상태다. 그런 정국에게 정복을 입은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자신과 닮은 형제를 향해 몸을 굽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풀린 눈으로 천정만 응시하고 있는 제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정국아.”

 형의 목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는지, 정국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으나 생각과 행동은 따로 놀았다. 그는 눈동자만 겨우 돌려 제 형을 바라보았다. 서로 닮은 까만 눈동자끼리 가만히 시선을 맞춘 채 미동 없이 몇 분이 흘렀다. 그동안 정국의 머릿속은 무척 시끄러워졌다.

 형, 어떻게 된 거야? 형… 오랜만이야. 형, 정호 형…. 정복 잘 어울리네. 근데 형, 여기 어디야? 나 몸이 안 움직여. 나 지금… 자고 있는 건가? 근데 형… 너무 반갑다. 형, 나는…….

 “전정국.”

 정호는 멍하게 눈꺼풀을 깜빡이는 제 동생의 마른 뺨을 쓸어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정국의 팔과 다리에는 침대 프레임과 연결된 수갑이 채워져 있다. 잘 먹지 못했는지 얼굴이며 배며 홀쭉한 몰골을 보니 기분이 낮게 가라앉았다. 정국이 가평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그 역시 계엄군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 끔찍했다.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다. 더군다나 계엄군의 작전을 방해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다니. 거기에 더해 자신이 면역체라고 직접 영상을 전송해왔다는 사실에 정호는 하마터면 평정을 잃을 뻔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정국은 더 단단했다. 마음 같아선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동생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재회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호에게는 주어진 역할의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정국을 살리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정국은 제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형의 말을 들으며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 그의 목소리는 고막에 대고 말하듯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멀리 있는 소리처럼 희미하기도 했다.

 “계엄군이 되겠다고 해.”
 “…….”
 “그거 말곤 살 길이 없어.”
 “…….”
 “형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
 “일단 살자. 살아야 해 정국아.”

 형의 목소리에 정국은 멍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약기운은 그의 입을 가로막았다. 몽롱한 머릿속에는 정호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메아리쳤다. 계엄군이 되겠다고 해. 계엄군이 되겠다고 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딜을 걸어. 네 몸을 필요로 하고 있어. 너 똑똑하니까 잘 알잖아. 지금 무슨 상황인지.”
 “…….”
 “정국아, 형 말대로 해야 해. 반항하면… 어떻게든 너를 이용하고 죽일지도 몰라. 그렇게 하려면 못할 것도 없어.”
 “…….”
 “계엄군이 되어야 해. 형이 도와줄게.”
 “…….”
 “우리… 살자.”

 계엄군이 되어야 해. 정국아. 계엄군. 계엄군.

 반복적으로 울리는 문장에 정국은 차츰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형의 말을 곱씹으니 느릿하게 머릿속이 돌아갔다. 살아야 한다. 계엄군이 되어야 살 수 있다. 그래야… 지킬 수 있다. 정국은 눈동자를 굴려 정호를 응시했다. 겹쳐져 있던 시야가 차츰 또렷해지며 형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 굳은 눈빛. 무언가 큰 다짐을 한 사람처럼 결연해 보이는 동공. 그 단단한 모습 앞에 정국은 긍정하듯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제야 정호의 입꼬리가 편히 올라갔다.





*






 정국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다섯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몽롱하던 정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고, 긴 숙면을 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정국은 연구실의 회색빛 천장을 보며 눈을 두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테이블에 앉아 샬레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직업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계엄사령부에 들어왔다던 연구진이 틀림없었다.

 “깼어요?”

 정신이 든 것을 눈치 챈 건지,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정국은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분명히 정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게 꿈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가 했던 말은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형은 분명히 계엄군이 되라고 했다. 정국은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팔 다리를 꽉 잡고 있었다. 목만 겨우 들자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갈비뼈와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누워 계세요. 갈비뼈에 금이 갔더군요.”
 “…뭡니까?”

 정국은 제 팔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 수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침대 헤드의 양 모서리에 매달려서 사지를 결박하고 있는 꼴이 꼭 실험실의 개구리 같았다.

 “혹시 전정국 씨께서 소란을 피울까 봐 아직은 수갑을 채워두라고 하더군요.”

 석진은 손을 바삐 움직여 샬레 안에 약품처리를 한 후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정국은 그런 그의 옆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란 피울 생각 없습니다. 풀어주시죠.”
 “제 권한이 아닙니다.”

 정국의 말에 석진은 턱을 들어 벽 쪽을 향해 까딱 움직였다. 그걸 따라 시선을 옮기자 연구실 문 앞에 서 있는 무장 군인 두 명이 보였다. 그들 모두 군복 위에 빨간 완장을 차고 있었다. 정국은 그제야 이곳이 계엄사령부의 아지트 내부라는 것을 실감했다. 죽지 않은 걸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정국은 교실 크기의 연구실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자신 하나뿐이라는 걸 확인하고 미간을 좁혔다.

 지민이는, 진규는… 어디 있지?

 “왜… 저 혼자죠?”

 순간 불안함이 엄습했다. 정국은 자신도 모르게 아래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그러자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석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그 표정은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의미 같았다.

 “일행이… 있습니다. 어, 어디에….”
 “일행이요? 글쎄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만.”

 석진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리며 눈썹을 까딱 움직였다. 정국은 누운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리 되짚어 보려고 해도 까맣게 삭제됐다. 자신의 마지막 기억은 산 속에 찾아온 지프 여러 대, 그리고 천천히 모자를 벗으며 제 이름을 부르던 정호의 목소리였다. 그 뒤론 아무리 떠올리려 애써도 까마득했다. 정국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들이 떠올라서 두려워졌다.

 “저… 혼자 왔습니까?”
 “네. 전정국 씨 혼자 이곳에 왔어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석진이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정국은 겁에 질린 눈동자로 그를 따랐다. 침대 맡으로 다가온 석진은 천천히 주사기를 꺼냈다. 정국은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눈동자만 움직여 잔뜩 그를 경계했다. 그러자 그 눈빛을 읽었는지 석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두려워하실 것 없어요. 혈액 채취하는 겁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국의 팔에 고무줄이 둘러졌다. 순식간에 기다란 니들이 푹 꽂혔다. 따끔함에 정국이 콧잔등을 구겼다. 주사기 안에 검붉은 혈액이 천천히 채워졌다. 정국은 입술을 말아 물고 팔을 쳐다보았다. 이미 몇 군데에 주사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잠든 사이 몇 번이나 바늘을 찔렀던 모양이었다. 소량의 혈액을 뽑아낸 석진은 소독 솜으로 주사 자국을 꾹 누르며 지혈했다. 그리곤 다시 제자리도 돌아가 샬레 위에 정국의 혈액을 몇 방울 흘려냈다.

 “앞으로 주사바늘을 몸에 꽂을 일이 많을 겁니다.”

 석진은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국은 자신 혼자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민이는 어디 간 거지? 그러나 저기 보이는 저 사람은 연구원이고, 문 앞에 서 있는 군인들은 원하는 답을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정국의 숨이 거칠어졌다.

 사탄바이러스 샘플이 있던 샬레에 정국의 혈액을 떨어뜨리자마 놀라운 반응이 왔다. 바이러스가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혈액과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혈액을 원하는 바이러스의 특성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혈액과 섞인 바이러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건 마치 정국의 피가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모습과도 같았다. 점차 움직임이 둔해진 바이러스는 어느덧 활동을 멈추더니 세포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외피가 무너지다가 결국 파괴되어 혈액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벌써 세 번째 관찰이었다. 각자 감염 시기가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 샘플들. 발병 초기의 샘플과 최근의 샘플은 차이가 있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진화하며 변이했으나 정국의 혈액 속 항체는 주저 없이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반응 시간이었다. 초기 사탄 바이러스보다 진화된 사탄을 파괴하는 속도가 훨씬 둔하고 느렸다. 석진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정국의 항체는 현재 사탄바이러스의 훌륭한 치료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만약 바이러스가 끝없이 진화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에 대항하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놀라운 면역을 가지고 계시군요.”
 “…….”
 “전정국 씨의 혈액은 신비합니다. 연구 의지가 샘솟네요.”

 석진은 책상 아래에 있을 도청기를 의식하며 머릿속을 바삐 굴렸다. 만약 바이러스가 진화함에 따라 정국의 항체 역시 진화한다면, 그는 완벽한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어느 정도 진화한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면 정국의 처지는 비극으로 치닫게 될 것이었다. 계엄군이 쓸모없는 생존자를 얌전히 거둘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치료제 개발은 무산되고, 다시 백신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 생존자에게 사탄바이러스를 투입하는 생체 실험을 하면서 말이다. 석진은 일단 함구하기로 했다. 아직은 무엇도 단정할 수 없기에, 진화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리스크는 숨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석진을 향해 정국이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저희 형을 만나게 해주세요.”
 “형?”
 “전정호. 저희 형이요.”

 정국의 말에 석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계엄군 내의 인물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몇 시간 전, 연구실에 찾아왔던 작전장교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참 많이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계엄군의 작전장교인 형이 면역을 가진 제 동생을 계엄사령부 안으로 데리고 와서 침대에 묶어놓았다고? 왜지? 석진은 똑똑한 머리를 빠르게 굴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눈앞의 이 남자는 기절한 채로 군인들의 손에 들려 왔고, 몰골은 보다시피 말이 아니었다. 얼굴과 몸 이곳저곳에 나 있는 멍과 상처, 금이 간 갈비 뼈. 바이러스 사태 이후로 계속 도망 다닌 것이 분명하다. 어쩌다가 자신이 면역체라는 증거 영상을 계엄군에게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살 길을 찾아 제 형을 찾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게다가 이 남자는 눈을 뜨자마자 일행을 찾았다. 일행의 행방은 묘연한 채 면역이 있는 제 동생만 안전한 연구실 안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은 결국 동생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남자에게 면역이 있다는 사실은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

 “작전장교를 말하시는 것 같군요. 형을 잘 두셨네요.”
 “…….”
 “불러드리죠.”

 석진은 정국이 제 목숨을 지킬 수 있었으면 했다. 부디 그의 혈액이 진화하는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길 바라며 천천히 인터폰의 다이얼을 눌렀다.





 
*





 연구실 안에 정호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정국은 가엾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 곁으로 가까이 걸어온 정호를 보니 다른 사람 같이 느껴졌다. 분명히 작전장교라고 했다. 정국은 형의 제복에 있는 소령 계급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위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강원도 쪽에서 복무하던 형이 어째서 가평에 있는지, 어떻게 소령이 되어 작전장교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정호는 정국의 팔에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을 힐끔거렸다. 그는 몸 상태 회복을 위해 온종일 수액을 맞고 있었다.

 “혹시 내가 한 말 기억해?”
 “다 기억나.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

 계엄군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정국의 대답에 정호는 흡족하게 웃으며 제 동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정국은 그를 올려다보며 부스스 웃다가 제 사지를 결박하고 있는 수갑을 향해 눈짓했다.

 “근데 이거 너무 답답한데. 좀 풀어줘.”
 “음…….”
 “벌써 몇 번이나 피 뽑아갔어. 그냥 한 번에 많이 뽑으면 안 되나. 따가워 죽겠네. 이러고 있으니까 무슨 생쥐가 된 기분이야. 개구리라던가. 대체 뭘 걱정하길래 묶어두고 있는 거야?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정국의 말에 정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를 묶어둔 건 혹시나 자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엄사령관이 지시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정국의 모습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정호가 알고 있는 제 동생은 똑똑했고, 상황판단이 빠르며, 애초에 군에 접촉을 시도한 것 자체가 살기 위함이었으니 계엄군이 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해를 끼칠 것이 없음이 분명했다. 정호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정국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네 개의 수갑을 차례대로 풀었다. 답답하게 묶여있던 것이 풀리자 정국은 그제야 제 옆구리를 짚으며 윗몸을 일으켰다. 온종일 누워 있어선지 머리가 울렸다.

 “일단은 몸부터 얼른 회복해.”
 “응.”
 “정국아, 널 봐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행이야.”

 정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제 동생을 끌어안았다. 정국은 형에게 안긴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천천히 묻고자 했던 것의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근데 형, 어쩌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작전장교?”
 “부대에 있다가 차출됐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가평에 있는 모든 작전들을 형이 지휘하는 거야?”
 “그래.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형의 대답에 정국은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가평에서 벌어진 작전 중에 정상적인 것은 없다. 생존자를 죽였고, 취재진을 죽였고, 탈영한 병사를 찾으러 병력이 몰려올 만큼 폭력적이기도 했으니까.

 “생존자는… 왜 죽였어?”
 “바이러스가 더 퍼지면 안 되니까. 처음엔 그게 목적이었지.”
 “…그럼 지금은?”
 “이젠 전국으로 퍼졌어. 생존자를 다 죽이는 건 곧 의미 없게 될 거야. 그럴 수 있는 병력도 무기도 모자라니까.”

 정호의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퍼졌으니 생존자를 다 죽이긴 힘들다고? 그럼 이제 와서 살려두겠다는 뜻일까.

 “형,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직은 몰라도 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 더 이상 돈이나 명예 같은 게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거지.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을 힘이 있느냐 마느냐가 새로운 권력이 될 거야.”

 그 말도 단번에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해하고자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정국을 바라보며 정호는 다시 한번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일단 회복부터. 군에 들어오면 차차 알게 될 테니까.”
 “…….”
 “불필요한 건 모두 버려. 생각이 깊어지면 일을 망칠 뿐이니까. 내가 널 이곳에 무사히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건, 형제관계를 버렸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정국아, 나는 이제 네 형이 아니야. 너도 내 동생 아니고. 그걸 버렸기 때문에 너도 나도 무사할 수 있는 거야.”

 정호는 제 손에 들린 수갑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널 잡기 위해 나를 인질로 삼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야.”
 “형이 어떤 사람인데?”
 “곧 알게 돼.”

 정호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정국의 발목 쪽으로 다가갔다. 다시 그의 발목에 수갑을 채우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정국은 재빠르게 무릎을 접으며 피했다. 그 움직임에 정호가 눈을 치켜떴으나, 방 안에 있을 도청기를 의식하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팔짱을 꼬아 낀 채로 제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에는 서늘함이 가득했다. 정국은 왠지 달라 보이는 형의 태도에 눈을 가늘게 떴다. 반수면 상태이던 제 귓가에 속삭이던 형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왠지 누군가에게 일부러 보이려는 듯이. 정호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조용히 저었다. 저항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
 “…….”

 정국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형이 왜 그러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았다. 지민의 행방. 그리고 진규의 행방.

 “지민이… 어디 있어?”
 “…….”
 “나랑 같이 있던 사람, 지금 어디 있어?”

 어미를 뱉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어느새 정국의 눈엔 공포가 가득했다.

 “누구. 아, 참호에 있던 애들?”
 “…….”
 “글쎄. 어디다 뒀더라.”

 관심 없다는 듯한 정호의 말투에 정국의 손끝이 떨려왔다. 정국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제 앞의 정호의 옷깃을 붙들었다.

 “형. 제발….”
 “흐음….”
 “지민이… 지민이 어디 있어?”
 “아, 지프에 실었던 기억은 나는군.”
 “…뭐? 살아 있는 건 맞지?”
 “그래. 그랬던 것 같다.”
 “그, 그럼 지금은… 지금은 어디 있어?”

 정국은 어느새 침상 위에 무릎까지 세워 꿇은 채 정호에게 매달렸다. 그 바람에 정호의 정복이 조금 구겨졌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힘 있게 자신을 붙잡는 동생 때문에 꿈쩍도 하지 못했다. 한숨을 작게 내쉰 정호가 성가시다는 듯 대답했다.

 “사탄 밥이 됐겠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정국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눈을 크게 뜬 채로 미동 없이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사탄 밥이 됐다고?

 “그게 무슨‧…”
 “해골부대 행동강령 하나, 쓸모없는 것들은 죽이거나,”
 “…….”
 “사탄 굴에 던진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호의 몸이 거세게 당겨졌다. 정국이 힘 있게 멱살을 잡아 올렸기 때문이다. 침상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정국이 제 형의 멱살을 잡은 채 분노로 점철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정호는 갑작스레 거칠게 반응하는 동생의 태도에 놀랐지만 침착하려 애썼다.

 “뭐해 너. 정국아.”
 “사탄 굴에 던졌다고? 지민이를?”
 “그래. 아마도.”
 “형! 똑바로 말해. 지민이 어디에 있어! 지민이 데려와 당장!!!”

 정국은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붙든 손을 흔들었다. 손등에 힘줄과 핏줄이 울긋불긋하게 솟아올랐다.

 “전정국. 이거 놔. 정신 차려!”
 “지민이 데려와! 지민이 손끝 하나 건드렸다간 다 죽어. 다 죽일 거야 내가. 계엄군이고 뭐고 내가 다…”

 철썩 소리와 함께 정국의 뺨이 돌아갔다. 정호는 쓸데없는 소릴 나불거리는 정국의 입을 막고자 했다.

 “정신 차려! 지금 네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야. 방금 전에 내가 말했지. 형제관계 버렸다고. 이제부턴 너도 모든 관계를 버려야 한다는 소리야! 알아들어?”
 “…지민이는!!”
 “닥쳐! 다 버려. 알겠어? 죽고 싶지 않으면 친구고 뭐고 다 잊으라고. 어차피 너 말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야. 걔네는.”

 충격에 빠진 정국은 형에게 맞은 뺨을 쥔 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지민과 진규가 사탄이 되었다니. 아니,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다니. 그건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계엄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함께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일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정국은 제 손등에 있는 주사 바늘을 거칠게 뽑아내고 씩씩거렸다. 손등에는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정호는 한숨을 쉬며 가까이 다가왔다. 동생을 진정시키려는 듯 팔을 뻗었다. 그러나 정국은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하듯 뒤엉켰다. 순식간에 우당탕 소리와 함께 철제 침대가 밀려났다. 정국은 미친 사람처럼 씩씩거리며 제 위에 올라탄 형을 뜯어내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자신보다 키와 체격이 큰 형을 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정국은 이를 악 물며 버팅기다가 정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쇳덩이가 다리에 닿는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렸다.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 것을 본 정호가 얼른 제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철컥 장전했다.

 “…….”
 “…….”

 정국은 제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형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전정국. 반항하면 죽는다.”
 “…형.”
 “이제 네 형 아니라고 했지.”

 권총을 들고 매섭게 내려다보는 정호의 눈빛을 본 순간 정국은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형… 지민이는… 친구 아니야….”
 “입 닥쳐.”

 총구가 이마를 더 세게 눌렀다. 정국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끔찍했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전정국.”

 정호는 입술을 씹으며 읊조렸다. 그리곤 권총을 침대 맡으로 던져버린 후 정국의 목을 두 손으로 짓눌렀다. 숨통이 갑작스럽게 조여드는 느낌에 정국은 허겁지겁 그의 손을 뜯어내고자 바르작거렸다. 그러나 힘의 차이는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 정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컥… 크윽….”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만 후회해.”
 “크흑… 윽….”
 “상황 판단을 잘 하라고 했지. 정국아.”

 제 밑에서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동생을 내려다보며 정호가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제 주머니를 뒤적여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앞니로 니들의 뚜껑을 물고 거칠게 뜯어낸 후, 뾰족한 바늘을 정국의 허벅지 언저리 아무 곳에나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신경안정제는 그의 근육을 찢고 뻐근하게 밀려 들어갔다. 목을 조르는 손목을 쥐어뜯던 정국은 금세 힘이 풀렸다. 흰 자가 벌겋게 충혈 된 채 동공이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정호는 숨통을 짓누르던 손을 떼어냈다. 헉헉거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는 동생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그 역시 이마에 솟구친 땀을 닦았다.

 약기운이 돌아 축 늘어지며 입을 벙긋거리는 정국의 목에는 시뻘건 손자국이 남았다. 정호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착하게 정국의 사지에 수갑을 걸었다. 하얀 침대보는 군화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다.

 “멍청한 놈.”

 눈꺼풀이 무거운지 느리게 껌뻑이다가 이내 정신을 잃은 것까지 확인한 정호는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어금니를 꽉 물며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신경질적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 연구실 안 어딘가에 있을 도청기를 생각하며 정국과 나누었던 대화를 조용히 상기했다. 특별히 문제될 건 없었다. 정국에게 이 정도의 저항이 있을 거라곤 사령관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계엄사령관이 자신에게 직접 정국을 데리고 오라고 했던 이유를 알고 있다. 자신의 충성을 철저하게 시험하기 위함이다. 살고자 선택한 길이었다. 발병 이후 가평에서 일어났던 골치 아픈 문제의 중심에는 정국이 있었다. 군 통신에 정국의 영상이 올라왔을 때, 그리고 그와 맞섰던 군인들 중 죽지 않은 자들이 정국의 행적을 증언했을 때,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민간인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양심의 가책을 시험당하고 있던 정호에게 있어서 친동생의 존재는 치명적이었다.

 정호는 조용히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무리 너라도, 망치는 건 용서 못해.”

 다시 한번 쐐기를 박기 위함이었다. 도청기 너머 듣고 있을 그를 향해.

 나는 충성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제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






 제 2아지트에 도착한 남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원래 있던 본부와는 달리 매우 열악한 환경이 눈에 보였다. 본부와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으나, 학교 건물로 이루어져 있던 그곳과는 다르게 공장 부지를 개조한 듯 삭막했다. 빨간 완장을 찬 군인들은 곳곳에 아주 많았으며, 어디선가 불쾌한 악취가 나기도 했다. 자신을 안내하는 무장 군인들을 따라 연구실로 쓸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몇 개만 놓여 있는 휑한 공간이었다. 연구 장비를 일부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김남준 연구원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뭡니까.”
 “저희를 도와 사탄바이러스 샘플을 채취하면 됩니다.”

 애초에 떨어져서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나 어이없는 역할이 주어질 줄은 몰랐다. 사탄바이러스 샘플 채취란 말은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실은 사탄을 붙잡아 신체 일부를 떼어내거나 체액 등을 뽑아내는 일을 뜻했다. 남준은 그 말을 들으며 한숨을 터뜨렸다. 군인들이 해도 충분한 일을 자신에게 시켰다. 그것은 이곳에 오기 전 석진이 알려준 사실과 일치했다.



 제 2아지트로 떠나오기 전, 석진과 함께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을 가만히 떠올렸다. 석진은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남준에게 두 가지 소식을 전했다. 한 가지는 면역체가 나타났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남준이 제 2아지트로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제 2아지트요?’
 ‘그래. 그곳에서 네가 연구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박사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석진의 갑작스러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석진은 표정 변화 없이 안경을 고쳐 쓰며 화이트보드 위에 연구내용들을 정리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준은 그 뒷모습을 보며 팔짱을 꼈다. 몇 년간 석진의 곁에 있으면서 이렇게 독단적인 결정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석진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고, 수석연구원인 자신과의 연구 합은 누구보다 잘 맞았기에 다른 연구원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동이라니.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생체 실험에 반대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보다 못한 남준이 말하자 석진은 화이트보드 위에 바이러스 구조를 그리다 말고 멈춰서 고갤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곤 믿기 힘든 대답을 했다.

 ‘그래. 네가 아무리 수석연구원이라고 해도, 나를 따르지 못한다면 함께 있을 수 없어.’
 ‘하…. 맙소사.’

 남준은 손끝으로 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나 석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계엄사령부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 그는 참 이상했다. 태도가 갑자기 변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령관이 협박한 걸까. 갑작스럽게 이곳에 억류된 것도, 석진의 태도가 변한 것도, 모두 어떠한 외압에 의해서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선배, 저에게 말하지 못한 것 있으면… 제발 말씀해주세요. 우리 동료 아닙니까.’

 석진에게 다시금 선배라고 부르며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석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너에게 말해줄 것은 이게 전부야. 일단 면역체가 나타났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금세 모든 세포가 정상화가 됐지. 내 눈으로 영상을 확인했어. 자, 김남준 연구원의 생각엔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 같지?’
 ‘…치료제요.’
 ‘그래 맞아. 치료제야.’
 ‘그 사람의 몸이 면역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더더욱 생체 실험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석진이 지우개를 들어 화이트보드 위에 장황하게 늘어 쓰던 것을 슥슥 지웠다. 남준은 조용히 그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 지켜보았다. 보드 위를 깨끗하게 닦은 석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남준에게 눈짓을 보냈다. 조금 전까지 딱딱하게 말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남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표정으로 대답했다.

 [ 도청 중 ]

 석진이 빠르게 보드 위에 글자를 적었다. 그걸 본 남준의 눈이 둥그렇게 뜨였다. 그리고 이내 그간 석진의 모든 행동이 깨달아졌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그 사람의 면역체가 확실한 효과가 있는지 알기 전까지 생체 실험은 불가피하니까.’

 석진은 입으로 중얼거리며 보드 위에는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 치료제 개발 시급. 다른 생각 하지 마. ]

 그의 의도를 눈치 챈 남준은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었다.

 ‘그럼 치료제 개발도 하고 생체 실험도 하시겠단 말씀이신가요? 저는 박사님이 이해가 가지 않네요.’
 ‘이해가 안 가도 상관없어. 우린 연구원이야. 결과를 내는 게 우선이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해야겠지. 현명하게 판단해.’

 [ 일단 살아야 해 남준아. 살자. ]

 남준은 살아야 한다는 문장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정녕 목숨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네가 그곳으로 이동하는 건 일종의 벌이라고 생각해. 바이러스 샘플을 확인하고 진화 시기 별로 분류해서 내게 보내. 그럼 내 연구에 일이 좀 덜 테니까. 아무래도 군인들이 무작위로 넘겨주는 걸 분류하는 건 귀찮고 시간이 걸리니까.’

 [ 치료제를 개발해도 순순히 내주지 않을 거야. ]

 석진이 적은 문장을 보고 남준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재빠르게 글자를 지운 석진이 다시 냉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반성하고 있어. 거기서 연구원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 우리가 어떨 때 희열을 느꼈는지. 우리가 왜 여태 공부를 해왔는지. 우리의 힘이 정말로 필요한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 다 비정상. 전국 계엄. ]

 ‘휴…. 정말 이해 안 되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꼴 보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사탄 붙잡고 채취하다 보면 내 옆에서 연구하던 게 그리워질 거야. 그럼 너도 뭔가 깨닫는 게 있겠지.’

 [ 살 길은 치료제를 가지고 있는 것뿐. ]

 ‘선배 정말… 많이 변했네요.’
 ‘사람은 원래 변하는 거야. 치료제를 개발하면 뭐라도 떨어지지 않겠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이해관계를 잘 캐치한다는 점이지.’

 [ 조금만 참자 남준아. ]

 남준은 석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필담은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저 박사와 연구원의 갈등과 다툼, 상황판단에 능한 박사의 완강한 태도와 그에 불만을 가지고 벌로 쫓겨나는 수석연구원의 대화만 남았을 뿐.



 연구실과 가까운 곳에는 숙소가 있었다. 좁은 침상과 군용 담요. 한 구석에 있는 천 재질의 행거형 옷장. 허름한 책상과 전화기 하나만 놓여 있는 세 평짜리 공간. 그곳은 고시원을 방불케 했으며, 벽 곳곳에 곰팡이가 있어서 눅눅하고 큼큼한 냄새를 풍겼다. 남준은 챙겨온 연구 자료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애쓰며 좁은 방안 곳곳을 뒤졌다. 혹시 이곳 안에도 도청기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침대를 뒤집고 이불을 모두 걷어내고, 방 안의 사방을 전부 쥐 잡듯이 뒤졌다. 책상 아래, 서랍 안, 선반 위와 아래, 행거 안과 밖, 콘센트, 화장실 안 구석구석, 변기통의 수조, 세면대, 샤워기. 샅샅이 뒤져도 도청기는 없었다. 심지어 의자를 딛고 올라가 낮은 천장 벽지를 꼼꼼하게 손끝으로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장판을 걷어내서 시멘트 바닥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숙소 안에는 도청기가 없다.  

 남준은 침상에 철푸덕 드러누웠다. 도청기를 찾느라 온 몸에는 땀이 쏟아졌다. 입고 있던 흰 가운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아마 방 안에 있는 전화기는 도청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 염두에 두고 움직이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 석진이 자신의 계획을 전해올 것이 분명했다. 남준은 자신이 알던 석진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휴…….”

 일단은 당장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신경 써야 했다. 석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다 알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니 분명히 무슨 방도가 있을 게 분명하다. 믿어보기로 했다. 그가 자신을 믿고 이것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끝까지 함께 갈 사람이란 뜻이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대단한 축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남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이 새끼들은 어떻게 할까요?”

 가물가물하던 정신이 깨어났다. 지민이 눈을 떴으나 사방은 어둡기만 했다. 이곳은 어디일까. 익숙한 엔진소리가 나는 걸 보니 지프에 실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낯선 남자들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걸 보니 군인들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지민은 다시 눈을 꼭 감았다. 몸을 조금 움직여보려 했으나 통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 위에 무거운 것이 마구 짓누르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허리를 조금 비틀자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지민은 조금 전 상황을 기억해냈다.

 정국의 형이 나타나 정국을 기절시킨 후 수 많은 총구가 자신들에게로 향했다. 참호 안에 선 채로 진규와 함께 벌벌 떨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발포하지 않았다. 대신 군인들이 다가와 무지막지하게 끌어낸 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몸 하나 까딱할 힘도 이미 없었으나, 무자비한 폭력에 자꾸만 정신이 흐려졌다. 함께 있던 통신병이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금세 먹혀들어갔다. 계엄군을 따돌리며 도망치던 일행을 멀쩡하게 데려갈 위인들이 아니었다.

 진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고, 지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기억이 끊겼다. 그리고 지금, 지프 안에 실린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정국이는… 어디 있지?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민은 죽은 듯이 누운 채로 숨만 겨우 쉬었다.

 “몸 멀쩡한 놈, 걔는 죽은 거 아니야?”

 군인 한 명의 목소리와 함께 거칠게 머리채를 쥐어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지민은 고통을 꾹 참으며 내색하지 않은 채 몸을 늘어뜨렸다.

 “어, 그런가 본데요.”
 “좀 비리비리하다 싶었어. 그냥 굴에다가 갖다 던져놓자. 썩으면 냄새날 거 아냐. 나중에 한 번에 불 지른다고 했어.”
 “다른 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손 없는 새끼는 계속 끙끙 앓네. 걔랑 다리에 총 맞은 놈들은 다 모아놓지 뭐.”

 아무래도 탈색머리의 무리들도 같이 싣고 가는 모양이었다. 지민은 몸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아프고… 지쳤다. 자신들을 두고 하는 군인들의 대화가 믿기지 않았다. 차라리 정신을 잃는 편이 낫겠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큼큼한 냄새가 가득한 공간 안이었다. 철냄새도 났고, 흙냄새도 났다. 군인들은 ‘굴’에 던져 놓는다고 했다. 조용한 공간에는 똑, 똑, 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철제 창고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민은 제 몸을 짓누르는 무게에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컴컴한 내부에는 간이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여긴 어디지.

 지민은 눈을 껌뻑였다. 제 몸 아래에 있는 말캉한 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통증이 가득한 팔을 들어 아래를 짚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자신이 사람의 몸 위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부서진 것 같은 몸을 꿈틀거리자 등 위에 올라와 있던 사람의 다리 하나가 철퍼덕 옆으로 걷어졌다.

 “으윽….”

 지민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돌려 눕혔다. 자신이 깔고 누워있는 것은 분명히 사람이다. 정확히는 시체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시체를 몰아 넣어놓는 공간인 걸까. 지민은 숨을 겨우 내쉬며 헉헉거렸다. 몸 어딘가가 뜨겁다. 살펴보니 팔과 다리 곳곳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고, 골반과 갈비뼈는 부러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몸이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아마 얼굴도 엉망이 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정국이 떠올랐다. 정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미 자신조차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국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

 지민은 얼른 다시 몸을 움츠렸다. 아까 군인들의 말을 들으니 시체들을 불태운다고 했다. 혹시 자신이 시체더미 안에 섞여 들어온 것이라면, 이 무서운 공간에서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계엄군이 나타나면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까? 빌면… 살려줄까?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났다. 지민은 시체더미 위에서 잔뜩 긴장한 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저벅, 저벅, 스윽, 무언가에 쓸리듯 걷는 소리는 군인의 발걸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소리가 분주해졌다. 한 사람의 발 소리가 아니다.

 “…!”

 이내 지민의 시야에 새카만 생명체가 보였다. 그건 분명 사탄이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미친 듯이 피해 다니던, 정국이 자신 대신 무기를 마구 휘두르며 처리해주던 숯 덩어리.

 크으, 커어… 큭… 크윽….

 시체더미 앞에 나타난 사탄은 총 세 마리. 그들은 지민의 근처를 맴돌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지민은 사탄이 피 냄새에 예민하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다급히 제 팔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찢어진 상처에 손이 닿자 윽 소리가 날 만큼 따가웠으나 아랫입술을 꾹 다물며 참았다.

 제발… 맡지 마….
 제발 내게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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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어떡해요?
으아앙 ㅠㅠ 지민아~~~~ㅜoㅜ
심장이 아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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