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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24


‘사탄’과의 전쟁











 삼 개월이 흐르는 동안 김석진 박사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사탄은 계속 진화해 ‘4기’로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온 도시는 다양한 진화 형태의 사탄으로 아비규환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로지 군의 지배 아래 거하길 원했다.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고 오로지 힘과 무기, 그리고 백신과 치료제뿐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가진 국군에게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나라 안에 ‘계엄령’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으니 이제 더 이상 군대를 ‘계엄군’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군부일 뿐이었다. 군부 내에서 개발하고 있는 시약이 임상단계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더더욱 그들을 의지했다.

 개발된 치료제는 정확히 말하자면 1기부터 3기까지의 사탄바이러스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건 정국의 몸에 바이러스를 투여해가며 3기까지의 항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바이러스를 이겨내며 정국은 점점 피폐해졌다. 가평에서 서울 쉘터로 옮기면서 몇 번이고 지긋지긋한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석진이 말했던 문장을 떠올리며 참았다.

 ‘유일한 면역체가 아니다.’

 그 말 어디에도 협박은 없었으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을 포기하고 벗어나려 한다면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것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자가면역 희귀병 유전자가 바이러스 치료의 핵심이라면, 자신이 아니라 그걸 가진 누구라도 실험실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다. 쓸모를 다한 자신은 안전한 군내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사령관의 손에 금세 처리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석진은 담담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며 바늘이 들어간 자리에 알코올 솜을 덧대었다.

 “진행은 얼마나 됐나요?”
 “결과 보러 가야죠.”

 현재 임상실험 중인 3기 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석진은 꿋꿋하게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렸다. 사실 삼 개월 만에 임상단계에 이를 정도로 진행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또다시 진화한 사탄으로 인해 마냥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부디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성공할 겁니다.”
 “박사님 그 말 몇 번째인지 알아요? 세다가 포기했어요.”
 “이번에는 정말로요.”

 고집스러운 석진의 대답에 정국은 제복 코트를 걸치며 피식 웃었다.

 “그럼 뭐합니까. 이젠 4기 바이러스 치료제 만든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죠.”

 3기까지의 바이러스를 잡고 나면 더 진화된 바이러스를 또 잡아야 한다. 이것이 치료제의 한계였다. 말하자면 바이러스의 뒤를 쫓아가야 하는 신세인 것이다.

 가평에서 서울로 이전하면서 실험에 필요한 사탄 일부와 생존자를 빼곤 모두 불태웠다. 사탄굴에 몰아넣고 폭탄을 터뜨리는 순간, 정국은 멀리서부터 들리는 굉음과 검은 연기를 보며 하마터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분명히 제2아지트 쪽에는 지민이 있을 텐데. 그를 미처 찾기도 전에 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시 그 안에 지민이 있었을까. 정국은 끔찍한 생각을 하다가도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털어냈다. 절대로 지민이 이대로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탄이 되어 아지트 밖으로 벗어났을 수도 있다고. 가평의 어딘가를 떠돌며 방황하고 있을 거라고.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거는 정국은 스스로의 비참함을 잘 알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실은 영영 지민을 만날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자라났다.

 나는 살고 싶은 걸까?

 정국은 반문했다. 이렇게 버텨가며 살고 있는 것이 지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아니면 삶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지민이 없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자꾸만 흐려졌다. 사람이기에.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혼란은 종양처럼 천천히 그를 잠식했다.



 연구실을 나와 세워둔 지프를 향해 걸었다. 본래 국회의사당 건물이었던 여의도 쉘터는 바깥의 지옥 같은 풍경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아늑했다. 걷고 있는 길 양 옆으로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으며 잘 다듬어진 나무와 덤불, 화려한 분수대까지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정국은 석진과 함께 앞마당을 가로질러 걷다 말고 분수대 앞에 서 있는 사령관 김통수를 발견했다. 편안한 스웨터 차림으로 가꿔진 정원의 조경을 누리고 있는 뒷모습을 보자마자 덜컥 화부터 치밀었다.

 “충성.”

 인기척에 돌아본 그를 향해 딱딱하게 거수경례를 하곤 대충 세워놓은 지프에 올랐다. 차창 밖에 있는 김통수의 뒤로 커다란 국회의사당 건물의 돔이 보였다. 그게 마치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다. 종말과 같은 사태에도 편안하고 화려하기만 하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 성의 주인인 것이다. 희끄무레한 머리를 빗어 넘긴 모습과 얼굴에 서려 있는 여유. 풍족. 그것들은 정국을 충분히 분노하게 만들었다.

 정국은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던 날을 떠올렸다.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이곳 국회의사당에 지프를 타고 도착했을 때, 뒤따라오던 부하들의 지프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사탄이 순식간에 잔디밭을 종횡하며 달렸다. 대상은 정문 앞에 모여 있던 국회의원들이었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권총을 꺼내든 정국을 저지한 건 그의 형 정호였다. 무슨 일인가 파악도 하기 전에 국회의원들은 사탄에게 물려 감염됐다. 정호는 기다렸다는 듯 사탄으로 변한 이들에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것이 완전한 군부의 시작이었다. 뒤늦게 이 모든 게 김통수의 명령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정국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김통수에게 대항할 수 있는 행동은 죽음뿐이었다.

 조수석에 오른 석진은 김통수를 바라보고 있는 정국의 옆얼굴을 가만히 보며 기다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비슷한 것이 그에게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핸들을 쥔 정국의 손등에는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중위님.”
 “…….”
 “아직 우리는 저 자에게 분노할 수 없어요. 어쨌거나 목숨을 빚진 채 별의 별 일을 다 하고 있으니까요.”

 석진이 말한 ‘별의 별 일’ 안에는 생존자 생체실험을 하는 연구원의 일과 군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중대장의 직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걸 알기에 정국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백신이랑 치료제요.”
 “백신도요?”
 “네. 사령관은 둘 다 갖길 원하니까요.”
 “백신 연구도 그렇게 진전된 줄은 몰랐네요.”

 정국의 말에 석진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켰다. 그가 애타게 찾고 있는 지민이 그 백신 연구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 석진, 남준, 정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생존자 생체실험을 통해 백신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편으론 훗날 정국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낄 배신감과 후환이 두렵기도 했다.



 금세 도착한 용산 쉘터 한 구석에는 임상시약을 투여 받은 사탄을 모아놓는 실험실이 있다. 김통수는 혹시라도 여의도 쉘터와 청와대 근처에 바이러스가 얼씬거릴 것을 기피했기에, 사탄을 상대로 하는 실험은 무조건 제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진행하도록 했다. 철저한 방어였다. 덕분에 해골부대가 주둔하는 용산 쉘터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24시간 지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임상실험이 이루어지는 실험실, 그리고 폐기용 실험체를 던져 놓고 군인들의 장난감으로 만든 놀이터까지. 행여나 누군가가 실수로 사탄에게 물려 감염될 경우 빠르게 진압하기 위함이었다.

 석진은 실험실 안에 데려다 놓은 임상 실험체에게로 다가갔다. 반 평짜리 감옥처럼 철창으로 분리되어 있는 공간에는 사고를 대비해 치아를 모두 뽑아놓은 괴생명체가 있었다. 다 타버린 숯처럼 여전히 까만 몸뚱어리를 가지고 있는데, 임상시약을 네 번 투여 받아 얼굴이나 몸의 곳곳이 반 쯤 되돌아와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몸 여기저기가 엉망으로 부서진 사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인기척을 느낀 사탄이 헐레벌떡 철창에 매달렸다. 정국은 사탄의 몰골을 보며 자동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온몸의 피부가 군데군데 돌아와 얼룩덜룩했는데, 두개골의 한 쪽이 움푹 찌그러져 있는 모양새는 오히려 사람의 모습으로 반쯤 돌아왔을 때가 더 징그러웠다. 사람도 아니고 사탄도 아닌 자. 치료제가 완전히 적용되지 못한 모습이다. 자신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몸을 부르르 떠는 사탄을 보고, 석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실험체는 실패군요.”

 겸허히 실패를 인정하는 석진의 말에 정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철창 너머의 사탄에게 고정한 채였다.

 “그래도 모습은 제법 많이 돌아왔는데요. 물리기 전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요.”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임상단계에서 가장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사탄의 본능을 제거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죠.”
 “사탄의 본능?”
 “새 숙주를 찾는 것이요. 보세요 중위님. 지금 이 사탄은 우릴 보며 안달 내고 있죠. 인간을 공격하고 싶은 욕구가 아직 그대로예요. 몸에는 아직 바이러스가 돌고 있을 텐데, 공격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실험은 실패라는 겁니다.”
 “알맹이가 더 중요하단 뜻이군요.”

 정국이 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머리 쪽을 가리켰다. 석진의 말대로 치료제를 상용화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보다 사탄의 공격성을 잡아내는 데에 있다. 그것은 개체 번식을 초래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 어… 끄윽… 끄… 즈… 이… 어어….”

 그때 철창에 매달린 사탄이 목소리를 냈다. 기존의 사탄들이 내는 괴상한 소리와는 다르게 성대가 울리며 나는 소리였다. 석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모습이 반쯤 돌아온 사탄을 주시했다.

 “언어 구사를 시도하고 있어요.”

 석진의 말에 정국 역시 사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굴 여기저기가 검게 썩어 문드러진 듯한 모양새로 입술을 벌려 오물거리는 모습은 확실히 보통 사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비록 본능을 잡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으나 치료제가 어느 정도 효용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가 분명했다. 말을 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회복되었다는 뜻일 테고, 쇠창살을 손가락으로 움켜쥔 것은 뇌에서부터 사지까지 신경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철창 앞에 붙어 있는 인식표를 확인한 석진이 안경을 치켜 올렸다.

 “음…? 이 사탄은 1기로 분류되어 있네요. 어쩌다가 초기 형태가 샘플링 되었지? 이상하네.”
 “뭐가요?”
 “임상실험은 되도록 최근에 감염된 3기 사탄으로 준비해달라고 했거든요. 지금 언어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게 두개골 함몰로 뇌손상이 와서인지, 치료제가 완벽하지 못한 건지 파악하긴 힘들겠어요.”

 석진의 말에 정국이 사탄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 관절을 주체하지 못해서 떨려오는 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탄의 동공. 치아가 다 뽑힌 검붉은 잇몸을 드려내며 사나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송장처럼 표정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얼굴. 흡사 괴물에 가까운 형태로 아작 난 두개골을 좌우로 흔들다가 성대를 울려 낮은 신음을 내는 소리. 그 모습 하나하나를 두 눈에 담았다.

 “다른 실험체에게 한 번만 더 투여해봐야겠어요.”
 “그럼 이 실험체는 폐기인가요?”

 한참을 한 곳만 보고 있던 정국이 마침내 몸을 돌려 석진에게 물었다.

 “예. 폐기요.”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국이 철창을 열어 실험체의 뒷덜미를 잡았다. 바싹 말라 있는 뼈대에 간신히 붙어 있는 얼룩덜룩한 피부. 지나치게 가벼운 몸뚱어리는 정국이 마음먹고 들어다 던지면 날아갈 것처럼 볼품없었다. 정국은 폐기처리 된 사탄을 질질 끌고 쉘터 구석에 위치한 놀이터로 향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놀이터의 두터운 철문을 연 정국이 폐기된 실험체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성대를 긁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정국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탄을 내려다보다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철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얼굴의 반 이상이 살색의 피부로 돌아와 있는 사탄은 기괴한 모습으로 흙바닥을 뒹굴며 꿈틀거렸다.

 “야. 일어나.”

 정국은 낮게 읊조리며 품에서 권총을 꺼내 철컥 장전했다.

 “끄으… 억… 으우… 아아….”
 “몸 일으켜.”

 정국의 말을 알아듣는지 사탄이 후들거리는 관절에 힘을 주며 삐거덕거렸다. 곰팡이가 핀 것처럼 검은 자욱이 얼룩덜룩한 살갗. 그리고 아직 정강이뼈는 밀도가 회복되지 않았는지 툭 치면 바스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다. 정국의 싸늘한 눈빛과 말투를 인지한 사탄이 몸을 떨며 제자리에 섰다. 그 모습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사탄이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김윤성.”

 그가 사탄의 이름을 불렀다.

 “꺼… 어윽… 즈… 으아… 꺽….”
 “입 닥쳐.”

 탕!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괴물이 된 윤성의 다리 한쪽이 총알에 맞아 허무하게 부서졌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지, 윤성은 나무토막처럼 날아간 제 다리를 어쩌지도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흙바닥에 쓰러진 윤성은 까맣게 풀린 눈꺼풀을 껌뻑이며 시커먼 혀를 내밀었다. 인간과 사탄의 경계에 놓여 있는 그는 정국에게서 싱싱한 숙주의 기운을 느끼며 갈망하기 시작했다.

 “내가 널 발견했을 때 어땠는지 알아?”

 정국은 두 달 전 청평호 근처로 소탕을 나갔다가 윤성으로 추정되는 사탄을 발견한 순간을 떠올렸다.

 “왜 하필 너일까. 왜 지민이가 아닐까.”
 “크어… 크윽… 스….”
 “너 발견하면 총알로 벌집을 만들어 주려고 했거든.”

 정국은 다시 한번 권총을 장전하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윤성을 군화발로 툭툭 쳤다.

 “근데 그러기엔 좀 아깝더라고. 이미 괴물이 되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탄 새끼한테 분노하는 것도 웃기잖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윤성을 향해 총 한 발을 더 쐈다. 그러자 거뭇거뭇한 오른쪽 손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악, 억… 끄… 으윽….”

 날아간 손목 부위에서는 끈적한 진액이 흘렀다. 이번엔 고통을 느끼는 모양인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갈기갈기 찢어서 없애주려고 했지. 네가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언젠간 치료제로 너를 살려주고, 희망에 차 있을 때 괴롭히려고.”

 몸을 뒤집어 바닥을 기려고 꿈틀거리는 등판을 내려다보던 정국이 벌떡 일어나 발 한 쪽을 내밀었다. 딱딱한 군화로 척추를 세게 밟자 바사삭, 통나무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근데 그 날이 생각보다 일찍 왔지 뭐야.”
 “지… ㄲ… 으윽….”
 “너한테 왜 그러냐고?”
 “므… 이… 꺼억….”
 “네가 한 짓이랑 똑같은 거야. 네가 지민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 스트레스 푸는 거라고.”
 “…으윽, 아….”

 정국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별안간 지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가 꿈결에 내뱉었던 행동, 말, 표정들. 상처 많은 사람의 모습이 어떤 건지 처음으로 알게 해준 사람. 지켜주고 싶었던 약한 몸.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던 눈자위. 그리고 사랑을 속삭였던 순간까지.

 “너 때문에 다 이렇게 되어버렸어. 네가 그날 새벽에 지민이를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겠지. 너 혼자 어디서 뒤지든, 지민이가 죄책감을 갖진 않았겠지. 아니 애초에 네놈이 없었으면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네가 원흉이라고. 전부, 이 새끼야.”

 탕! 소리와 함께 총알이 윤성의 어깨를 잘게 부수었다. 정국에게 등을 밟혀 있는 윤성이 괴성을 질러댔다. 정국이 다른 부위에 비해 단단하게 돌아온 어깨를 유심히 봤던 탓이다. 고통이 느껴지는지 윤성이 찢어지는 소음을 고래고래 질러댔다. 엉망이 된 어깨뼈를 움켜쥐고 악을 쓰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며 정국이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입 닥치라고 했어.”

 정국이 몸을 숙여 윤성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사탄의 몸은 부패한 피부와도 같았기에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지민이도 너처럼 사탄이 됐어.”
 “끄… 으…….”
 “아직도 못 찾아서 돌아버릴 것 같거든 내가.”
 “ㅈ… 지… ㅁ… 으….”
 “뭐?”
 “지… 지므… 민….”
 “…지민이 이름 부르지 마. 네까짓 게.”

 정국은 어렴풋이 들리는 그의 이름에 화가 치솟았다. 장전한 총구를 윤성의 미간에 가져다대며 으르렁거렸다. 지능이 회복되어 이름을 담을 수 있는 상태에까지 다다랐다는 것 자체에 열이 올랐다. 윤성을 실험체로 데려다놓은 것은 정국이었지만, 치료제를 써야 할 대상 대신 엉뚱한 이가 회복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주 좆같았다. 아이러니한 감정이다.

 “지… 민….”
 “닥치라고 했어. 대가리 빵꾸나고 싶으면 계속 입에 담아봐.”
 “큭….”

 별안간 웃는 윤성을 보고 정국의 동공에 불길이 올랐다. 등골부터 뒷목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분노로 인해 오히려 몸 안의 피가 식어가는 느낌이다.

 “웃어?”
 “큭, 크윽….”
 “이 씨발….”

 총구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에 정국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때, 윤성이 하나 남은 손을 들어 제 미간에 겨누어진 총을 붙잡았다. 그리곤 검붉은 아래위 잇몸 사이로 혀를 내밀었다. 쯔읍,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끈끈한 진액이 덕지덕지 묻은 더러운 혀가 이상한 모양새로 움직였다. 푸르딩딩한 스스로의 입술을 천천히 핥기 시작한다. 윤성의 얼룩진 얼굴엔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이가 다 뽑혀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입술을 길게 찢으며 윤성은 제 손을 파르르 떨었다.

 정국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제 아래에 깔려 있는 이 녀석은 명백히 조롱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정국이기도 했고 지민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제 상태를 인지한 걸까. 미간을 누르는 총구가 당장 자신을 소멸시킬 수 있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 윤성의 손가락이 요동치며 방아쇠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정국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견뎌내기 위해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녀석의 미간을 뚫을 듯이 내리눌렀다. 그러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안면의 뼈가 천천히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정국은 제 힘을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탕!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편한 길을 택하게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놈을 단죄할 수 있는 건 오직 타인이어야 했다. 결국 정국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두개골이 처참히 박살났다. 정국은 피 대신 사방에 튄 끈끈한 사탄의 진액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젠장.”

 조금 더 괴롭혀주고 싶다는 마음에 비하면 이것은 너무 산뜻한 마무리가 아닌가. 정국은 순간 자신이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산산조각 난 윤성의 머리 조각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사람을 쐈다. 김윤성은 이름을 말하고 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의 모양새에 해당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몸을 털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진액이 가득한 윤성의 사체를 향해 속으로 읊조렸다.

 이거 봐. 피도 안 흐르잖아.
 김윤성 넌… 사람이 아니야.





*






 송파 쉘터에 있는 정호의 방에 지민이 들어와 함께 지낸 지 약 삼 개월이었다. 그동안 정호는 지민에게서 다양한 모습을 목격했는데, 그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정신적인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 12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소동을 부렸다. 툭하면 자신을 옥상으로 데려다달라고 했으며 통유리창 앞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쿵쿵 박기도 했다. 먹은 것을 다 토해내거나 신체발작,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대외적으론 정호 혼자 거주하는 공간이었기에 방 안에 있는 침대 하나를 함께 써야 했는데, 한 이불을 덮고 잔 지 일주일 만에 알몸으로 제게 엉겨 붙는 지민을 보며 정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행동이 세 번쯤 반복되자 정호는 그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에 별안간 안겨올 때마다 지민은 몽롱하고 나른한 눈꺼풀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지하려 해도 지민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 평소 낮에도 말 수가 거의 없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밤에는 확실히 미친 사람 같아 보였다.  

 지민의 이상행동이 점점 심해지자 정호는 남준에게 SOS를 보냈다. 남준은 지민의 혈액에서 그가 평소에 복용하던 약 성분을 발견했다. ‘벤조디아제핀’. 그가 향정신성의약품을 장기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호는 남준을 통해 지민이 복용하던 약을 구해주었다. 그 뒤로는 불안증세가 사라졌지만, 대신 몽유병 증상은 더 잦아졌다. 그것이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이라는 건 알지 못했기에 그저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침대에서 사라진 지민 때문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꼭대기 층의 넓은 방 안 곳곳을 뒤졌지만 지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호는 끔찍한 상상이 들어 고개를 털어내며 커다란 방 안 곳곳을 뒤졌다. 마지막으로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나서야 승강기 한 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호는 본능적으로 지민이 그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을 거라고 짐작했다.

 승강기는 72층에서 멈췄다. 그곳은 국군 간부들이 거주하는 층이었다. 얼른 옆 승강기를 타고 내려간 정호가 72층에 도착했을 때, 비상계단 쪽에서 불쾌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급히 비상구의 철문을 열었다.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지민이 장교 한 명에게 붙잡혀 있었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지민의 동공은 텅 비어 있었으며, 등판이 널따란 사내는 제 생활복 바지춤을 내리고 있었다. 정호는 지민의 존재를 알게 된 장교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슉- 소음기를 장착한 총성과 함께 장교는 뒤통수가 터진 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송파 쉘터에 있는 군인들은 50층 이하의 거처를 분양받은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시민들은 군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의지했다.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면 어디에나 무뢰한이 있기 마련이다. 층수에 따른 계급 사회가 완성된 송파 쉘터도 매한가지였다. 평소 높은 곳에 사는 장교가 낮은 층에 사는 시민을 범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신체 건강한 사내들이 모여 있는 군 집단. 바이러스 발병 후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금욕생활. 그런 상황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쉘터의 저층을 분양받은 특권층, 그리고 그 특권층을 지배하는 또 다른 특권층이라는 점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계급사회가 부여하는 흔한 권력남용이었다. 군 내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해골부대원들의 일반인 희롱은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장교급 간부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터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더 큰 권력뿐이었다.

 그러니 꼭대기에 사는 정호가 70층대에 거주하는 장교를 단죄하는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법과 체계보다는 계급과 무력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정호는 피를 뒤집어 쓴 채 몽롱하게 정신을 놓고 누워 있는 지민을 들어 안아 방으로 향했다. 방금 누군가를 죽인 사람치고 정호는 차분했다. 그는 타인의 피로 범벅이 된 지민의 알몸을 씻겨주며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허겁지겁 입을 맞춰오는 지민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야 했다.

 ‘정국아…. 어디에 있다가 왔어…. 보고 싶었어.’

 지민은 자신을 정국으로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잠꼬대를 하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호는 그간의 지민의 행동을 모두 이해했다. 단순하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독한 몽유병 증상이라고. 잠결에 엉겨 붙었던 것도, 꼭대기 층을 벗어난 것도, 풀린 눈으로 키스하며 정국을 부르는 모습도, 누가 봐도 꿈속을 헤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정호는 지민이 제정신이 아닐 때마다 정국이 되어 그를 위로해주었다.

 ‘지민아, 나야 정국이. 괜찮아. 괜찮아.’

 꿈속을 걷는 그에게 속삭여주면 얼굴이 무척 편안해졌다. 지민은 정호의 얼굴을 애타게 어루만지다가 싱긋 웃기도 했으며 목에 매달려 끌어안기도 했다. 눈을 뜬 채 무슨 꿈을 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자신이 얼굴을 통해 제 동생을 보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신했다. 그는 머릿속에 들어차는 죄책감으로 인해 고뇌했다.

 ‘…정국아. 사랑해.’

 그에게 정국은 어떤 존재인 걸까. 약 개발 욕심 때문에 당사자들에게 숨기고 있는 이 상황이 참 어려웠다. 그러나 섣불리 이들을 만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국은 더더욱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갔고, 이제는 제가 알던 동생이 아니었기에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옷 좀 입어.”

 정호는 속옷 한 장만 달랑 걸치고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지민을 나무랐다. 지민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무런 대꾸 없이 바깥을 내다보기만 했다. 12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랫배가 저릿할 정도로 아찔했지만 지민에겐 그저 두 발로 밟아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보다 못한 정호가 다가가 지민의 몸을 안아들었다. 그 행동에도 지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곧 김 선생 올 거야. 발가벗고 있으려고?”
 “…….”
 “나가고 싶어? 또 뛰어내리고 싶은 건 아니지?”

 지민을 침대 위에 내려주고는 그 위에 비스듬히 올라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서 속삭이자 간지러운지 지민의 어깨가 움츠려졌다. 그리고는 그제야 목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는 지민에게 가만히 눈을 맞추며 물었다.

 “보고 싶어서?”
 “…….”
 “정국이도 너처럼 이 상태일 거야.”

 정호가 지민의 팔 한쪽을 잡아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팔에는 여기저기 주사바늘을 찌른 흔적이 보였다.

 “노력하고 있거든. 치료제 만들려고.”
 “…알아요.”
 “근데 널 만나면 흔들릴 거야. 그럼 더 힘들어질 테고.”
 “그것도… 알아요.”
 “그래. 착하다.”

 빙긋 웃으며 지민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주자 하얀 이마가 드러났다. 제 머리에 스치는 정호의 커다란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던 지민이 몸을 모로 돌려 눈길을 피했다.

 “그래도… 정국이 보고 싶어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다 덮었다. 정호는 지민이 이럴 때마다 스며드는 복잡한 감정에 작게 한숨 쉬었다.

 “너 몽유병 말이야.”

 정호의 말에 지민이 눈에 띄게 숨을 참았다.

 “그거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
 “자꾸 이탈하면 곤란해. 그렇다고 널 묶어둘 수도 없으니까.”

 지민을 본 사람을 모두 죽였다는 것은 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벌써 그렇게 목숨을 잃은 장교가 송파 쉘터 안에 네 명이었다. 전정호 영웅이 사용하는 총알이 박힌 채 즉사한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결처분 처리되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는 많았으나, 그 과정을 감당하는 것은 아무리 정호라고 할지라도 쉽지 않았다.

 “새벽에 꿈을 꿨어요.”
 “무슨 꿈?”
 “이 침대 위에서 정국이랑 사랑을 나누는 꿈이요.”
 “…….”
 “정국이가 제 이름을 불러줬어요.”

 지민의 말에 정호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난 새벽에 있었던 자신의 목소리였다.

 “꿈속의 정국이는 제 몽유병을 환영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정호는 그의 말에서 뾰족한 가시를 느꼈다. 그러나 한 마디도 섣불리 대꾸할 수 없었다. 혹시 꿈을 꾸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기억나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세상에 정국이는… 정국이 하나예요.”
 “…….”
 “정국이는 저를 살게 했어요. 누구도 대체하지 못해요. 정국이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죽을 거예요.”

 지민은 그 말을 끝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시 이대로 영영 정국을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아니면 혹시라도 정국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까 봐. 사탄이 공격하지 않는 자신의 몸이 필요해서 사람들이 정국이 살아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걸까 봐.





*






 남준이 송파 쉘터의 승강기에 오르자 무장 군인이 꼭대기 층을 눌렀다. 벌써 삼 개월째 지민의 희귀 혈액을 중심으로 한 백신 연구는 조용히 지속되고 있었다. 밥 먹을 때와 잠들 때를 빼놓고는 온종일 연구실에 처박혀 연구하는 석진의 곁에서 남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스스로 찾아나갔다. 그 중 하나는 연구원이 머물고 있는 여의도 쉘터에서부터 지민이 거주하는 송파 쉘터까지 바삐 오가는 일이었다. 이동수단은 전정호 영웅이 보내는 지프였고, 대외적으로는 전정호의 건강을 체크한다는 명분이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의사 면허가 있는 남준이기에 아무도 그의 발걸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123층은 쉘터로 바뀌기 전 타워 전망대로 이용했던 공간이었기에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채광이 뛰어났다. 남준의 인기척을 느낀 지민은 유리창 앞에 서서 바깥을 구경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지민은 얇은 속옷 차림으로 하얀 시트를 몸에 둘둘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준은 욕실 쪽 방향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곤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잘 계셨어요?”
 “…네.”
 “오늘 밤이네요.”

 남준의 말에 지민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남준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입꼬리를 길게 늘여 웃었다.

 “마취 하니까 아프진 않아요.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지민 씨.”

 오늘 밤은 정호의 거처 안에서 지민의 골수를 채취하는 은밀한 수술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수술을 위한 마취의와 집도의는 준비된 상태였다. 다행히 송파 쉘터의 시민 층에 대학병원 교수 몇이 살고 있었기에 정호는 어렵지 않게 그들에게 접촉할 수 있었다. 혈액을 만드는 골수를 연구하면 백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석진의 결론이었다. 꼭대기 층에서 열리는 은밀한 수술에 참여한 자들은 아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정호가 연구진을 돕는 방식은 이러했다. 동생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것도 비교우위에 둘 수 없었다. 어서 약이 개발되어 이 끔찍한 사태가 잠재워지는 것, 비로소 정국이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뿐이었다. 종국에는 은밀히 연구한 백신을 통해 비정상적인 이 나라의 판도를 바꾸는 것까지 그의 머릿속에 찬찬히 입력되어 갔다.

 그러나 이 작업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이 목숨을 잃는단 사실은 정호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호는 바이러스 발병 이후 자신이 벌인 모든 일에 대한 짐은 스스로 지려 했다. 그것이 작전장교 전정호 소령으로서, 그리고 컨트롤타워 전정호 영웅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씩씩하네요.”
 “정국이도 이런 일을 겪었나요? 그건 무서워요. 외로울 것 같거든요.”
 “…….”
 “김 선생님…. 정국이 살아 있는 것 맞죠?”

 울 것 같은 지민의 얼굴을 보며 남준은 숨을 내뱉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지민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단단히 쥐었다.

 “지민 씨. 잘 들어요. 전 중위님은 지민 씨만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요. 약에 의존해서도 안 돼요. 건강해져야 해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정국 씨만 생각해요.”
 “…네.”
 “제가 미안합니다. 면목이 없어요.”

 남준의 말에 지민은 손끝을 매만지며 울음을 꾹 참았다.





*






 해골부대원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쉘터 안에서 먹고 자고 훈련하다가 각 지역의 예하부대에게 사탄 소탕지역에 대한 작전을 전달한다. 그리고 쉘터 바깥과 주거지역 바깥을 돌아다니는 사탄을 처리한다. 쉘터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정해진 주거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은 군대의 통제로 인해 제법 안전하고 사람다운 삶을 유지 가능했으나, 그 외에는 지옥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군대가 지켜주지 않는 지대에서 살면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몸부림쳤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감염자들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무리 지어 다니며 사탄을 잡기도 했고, 개중에는 평등하지 않은 이 사태에 불만을 가지고 전국의 군부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나라 전체적으로 주거지역 밖에 있는 사람들 중 반군사상을 가진 자들이 늘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순간에 독재국가로 몰락한 이 사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더군다나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악착같이 변할 수밖에 없다.

 팔다리를 써서 사람을 공격하는 4기 사탄으로도 버거운데, 이제는 반군들까지 날뛰기 시작하니 해골부대원의 스트레스는 나날이 커졌다. 정확히는 생존자들을 사탄마냥 죽여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함께 생활하던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쏴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군인들은 점점 지쳐갔다.

 위정자들의 야망은 일반 병사들의 마음과는 관계가 없다. 부대원들은 그저 군대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명령에 복종했고, 제 손으로 민간인을 죽여 가며 점점 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군부대 전체에 이런 침체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것을 정국 역시 모르지 않았다. 놀이터를 찾는 군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부대원들은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자신들의 잃어가는 인간성을 직면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쉽지 않을 터였다.

 “중대장님, 쉘터 근처에 잠복해 있던 놈들 잡았습니다.”

 정국은 부하들의 보고에 한숨을 쉬었다. 올 것이 왔다. 이제는 다양한 지역에 있던 민간인들이 무리를 지어 쉘터까지 넘봤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다양했다. 가끔 군인들에게서 빼앗은 총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칼이나 묵직한 공구가 더 많았다. 애초에 그런 것들로 군인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군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정국은 이것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반군들을 잡아두었다는 공터로 가자 어려 보이는 사내들 여덟이 엉망이 된 꼴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닥에는 빈 탄창을 가진 총과 잭나이프, 식칼, 해머 등이 있었다. 기껏해야 군인들과 또래이거나 더 어릴 법한 청년들이었다. 정국은 그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탄을 피해 다니느라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있을 이들이었다. 모두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었으며, 수도가 나오지 않아 씻지 못했는지 머리나 얼굴의 상태도 지저분했다.

 “어떻게 할까요?”

 해골부대의 원칙 상 주거지역이나 쉘터에 멋대로 침입한 생존자나 군대를 공격하는 반군들을 즉결처분해야 했다. 반군들이 용산 쉘터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정국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무릎꿇은 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때 포로처럼 앉아 있던 생존자 하나가 급하게 정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 저희는… 살고 싶어서 온 거예요. 혹시 살려줄까 싶어서요. 총알도 없고 무기로 사람 공격할 용기도 없어요. 저건 사탄 처리하려고 챙긴 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갑작스럽게 애원하며 매달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앉아 있던 다른 생존자들도 다 같이 무릎으로 기며 제 앞에 있는 군인들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런 상황에는 면역이 없을뿐더러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바깥은 지옥이에요.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어요. 슈퍼나 마트 가면 개싸움 나요. 먹을 것 챙기려고 자기들끼리 죽이기도 해요!”
 “맞아요. 시키시는 거 뭐든지 할게요. 아니, 저희 그냥 군인하게 해주세요. 입대할게요! 제발요! 살려주세요!”
 “이틀에 한 번만 먹을 것 주셔도 돼요! 아니, 사, 사흘에 한 번! 청소도 하고 뭐든 다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흐으… 제발요!”

 이들이 매달리는 통에 정국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자 부하들이 총대를 휘둘러 생존자들의 행동을 저지하며 정국에게서 떨어뜨렸다. 생존자들이 안쓰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나, 와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부대원도 있었다.

 “야! 너네 다 살려주면 전국에 있는 놈들 다 살려줘야 돼.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씨발…. 우리도 좆같은데 어쩔 수 없으니까 질질 짜지 마.”
 “하…. 중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정국은 이 상황이 끔찍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계엄군을 피해 도망 다니던 몇 달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계엄군을 공격해야 했고, 차량을 훔쳐야 했으며, 누구라도 우릴 건드리면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이를 갈았던 시절이 있었다. 정국은 지금 이 생존자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배, 백신. 치료제. 그거 만들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거 저희 달라는 말 안 할게요. 그냥… 그냥 목숨만 살려주시면….”
 “그만 말해 이 새끼들아!”

 미간을 좁히고 있는 정국의 눈치를 보던 부하들이 생존자를 향해 윽박질렀다. 전국적으로 주거지역 밖에 있는 이들은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통신이었다.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쉘터와 주거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댔고, 군부사상을 주입시키듯 해골부대의 위엄과 사령관에 대한 설명도 흘러나왔다. 반군을 견제하기 위해 국군이 현재 백신과 치료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완성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건 군인의 통제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우고, 회유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이 나라에 유일한 희망은 군부뿐이라고, 그렇게 세뇌하는 것이다.

 정국은 얼마 전 처리했던 윤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최초로 사탄이 되었던 이는 치료제를 네 번 투여 받은 끝에 언어를 구사했다. 1기 사탄 주제에 손가락을 움직였으며, 조롱하는 행동까지 하는 것을 보아 뇌가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회복력을 보인 것이다. 김석진 박사는 다른 실험체에게 다섯 번째 치료제 투여를 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만약 그것이 성공하게 된다면, 대량 생산하여 감염된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 모두 다시 평범한 세상을 살아갈 권리를 갖게 되는 게 아닌가. 당장 달려드는 사탄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죽인다는 건 정국의 상식에선 도저히 힘든 일이었다.

 “놔줄 테니까 가.”

 결국 정국의 입이 떨어졌다. 부대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예?”
 “안 죽일 테니 가라고. 쉘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 또다시 찾아오면 그땐 다른 중대 눈에 띄어 죽게 될 거다.”

 정국은 아랫입술을 씹으며 돌아섰다. 그러자 생존자 한 명이 또다시 정국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뇨! 차라리 죽이세요!”

 그 말에 정국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
 “차라리 죽이시라고요! 어차피 주거지역 밖으로 가면 얼마 못가 죽어요. 추잡스럽게 사탄이 되거나, 굶어서 뒤지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총 맞아 죽을게요!”
 “하….”

 그 말에 부대원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생존자들은 그 말을 하며 줄줄 울고 있었다. 정국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떻게 하면 현명한 방법이 될지, 판단이 바로 서지 않았다. 섣불리 이들을 들였다가 만약 상부에 보고가 들어가게 된다면 난감해진다. 정국은 지민을 찾을 때까지는 중대장 자리를 고수해야 했다.

 한참 고민하던 정국이 권총을 꺼내들고 가장 가까이에 꿇어앉아 있는 생존자의 미간에 가져다 댔다.

 “너, 진짜 살고 싶어?”
 “…헉, 네, 네!”
 “방금 전엔 죽여 달라며.”
 “그, 그건… 버리실 거면 차라리 죽여 달라는 거고… 저, 저희도 살고 싶죠.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잘 해.”
 “네! 물어만 주세요!”
 “반군들은 어떻게 모이지? 통신도 안 되는데. 규모가 큰 무리도 있다고 들었어.”
 “그건…. 사실 블루투스로 메신저 어플 주고받는 방법이 있어요…. 블루투스 주파수는 안 막혔더라고요…. 그걸로 대화 나누고… 알음알음….”

 한 녀석이 대답하자 다른 녀석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탄식했다. 자신들이 모이는 방법을 군에 다 불어버렸으니 망했다는 의미였다. 정국은 그 대답을 듣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가 정말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좋아. 마음에 들어.”

 정국의 대답에 녀석은 칭찬 받은 강아지처럼 눈동자를 밝혔다.

 “그럼 잘 들어. 너희랑 뜻 같이 하는 놈들 최대한 모아서 삼각지부터 용산 전자랜드까지 드글드글한 사탄부터 다 처리하고 와. 쉘터 근처에 반군들 많이 숨어 있다고 알고 있어. 살고 싶으면 모아. 모아서 우리 일 도와. 효창공원에 예비초소로 쓰려고 비워둔 부지가 있어. 나흘 준다. 다 처리하고 거기로 집결해. 그럼 너흰 군인이 되는 거야.”
 “저, 정말이신가요?”
 “중대장님!”

 정국의 말에 다들 놀란 듯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틀 치 식량 줄 테니 알아서들 분배해서 군대를 꾸려. 반군이 아닌 친위군이 돼. 그게 너희가 살 길이니까.”

 정국은 옆에 있던 보급병에게 손짓해 보급품을 내올 것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에 있던 전투식량과 통조림 박스가 생존자들의 앞에 떨어졌다. 꿇어 앉아 있던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보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구경하고자 달려들었다.

 “명심해. 나흘 뒤. 먹튀하면 가만 안 둔다. 너희 찾는 거 식은 죽 먹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지, 진짜 저희를 군인으로 받아주시는 건가요?”
 “멍청한 놈들, 조건 못 들었어? 삼각지부터 용산 전자랜드까지. 사탄!”

 정국 대신 옆에 있던 소위가 앉아 있는 놈의 뒤통수를 때리며 대답했다. 생존자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사 직전에 놓인 이들에게 식량은 구원의 손길과 같았으며, 친위군으로 대해주겠다는 것은 앞으로의 살 길도 꾸준하게 열린다는 뜻과 같았다. 정국은 미련 없이 돌아서서 지프로 향했다. 등 뒤에선 “감사합니다!”하며 정신없이 인사하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정국을 따라온 운전병이 얼른 운전석에 앉으며 정국에게 물었다.

 “중대장님, 괜찮겠습니까?”
 “뭐가.”
 “먹튀하면 어떡합니까? 아니면 실패했다고 또 찾아와서 빌빌거리면…”
 “죽음 앞에 있는 놈들은 눈에 뵈는 거 없어. 내가 그랬거든. 어떻게든 해내려고 할 거야. 지금으로선 군인이 되는 것보다 좋은 건 없잖아? 좆같은 현실이지만.”
 “하…. 그러다 위에서 알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형이 누군지 잊었어?”
 “아….”
 “사령관은 지금 정신 팔렸어. 권력에 취해서 치료제 노래나 하고 있지.”
 “근데요 중대장님, 친위군이라면 어떤 친위군을 말씀하신 겁니까? 설마 총사령관의 친위군입니까?”

 운전병의 물음에 정국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허연 연기를 길게 뿜었다. 그리곤 사이드 미러로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며 힘없이 웃었다.

 “머리를 좀 써라.”
 “아, 저는 통 모르겠지 말입니다.”
 “그런 게 있어 인마.”

 …목숨 줄 구해준 사람을 지키는 친위군.





*






 여의도 쉘터의 불이 모두 꺼지고 나면 은밀한 연구가 새로이 시작된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시각, 석진은 연구실의 암막커튼을 꼼꼼하게 치고, 미세한 스탠드 빛에 의존해가며 지민의 혈액을 연구했다. 얼마 전 전정호 영웅의 도움으로 지민의 골수 채취 수술이 이루어졌다. 석진은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그의 골수를 연구했다. 그 일은 오로지 남준과 함께였다. 다른 연구원들은 모르게 진행하는 일이었다. 지민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최소한이어야 했으므로 별다른 인기척이나 대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연구에 집중했다. 여의도 쉘터 연구실에도 분명히 도청기가 있을 것임을 확신했기에, 남준과의 대화는 모두 필담으로 이루어졌다.

 다행히 용산 쉘터에서 진행되는 치료제 임상실험의 경과가 괜찮았기에 사령관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가끔 석진을 불러 함께 차를 마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치료제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물었으며 생체 실험을 통한 백신에는 관심이 식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성공이 코앞에 도달한 치료제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 지민 씨에게 사탄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혈액 안에 사탄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기 때문이었어. ]
 [ 네. 발견 당시 몸에 상처가 많았거든요. 피딱지도 많았고요. ]

 사탄이 사탄감염을 인식하는 것은 체외로 흘러나온 피를 통해서다. 피의 성분을 어떻게 바로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사탄은 무는 행위를 통해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고, 혈액을 통해 감염시킨다. 그렇기에 숙주를 향해 달려가다가도 다른 사탄에게 물리는 즉시 흘리는 피가 감염된 피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른 숙주를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탄굴에서 지민이 사탄에게 물리지 않은 이유 역시 확실했다. 지민의 몸에는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가 많았으며 체외로 빠져나온 피 안에 사탄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백신의 기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달랐다.

 지민의 Rh null 혈액에는 혈액인자가 없다. 바이러스는 혈액인자가 없는 혈액은 정상적인 혈액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또는 바이러스가 활성화 될 혈액 환경이 아니다.) 지민에게는 사탄에게 물린 흔적이 없으므로 초기 바이러스 형태인 접촉성 감염으로 의심된다. 처음 사탄바이러스가 발병되었을 때, 각성 전의 사탄은 접촉만으로 피부와 점막을 통해 감염되었다. 그리고 각성 후에는 좀비처럼 무는 행위를 통한 혈액 감염으로 바뀌었다. 지민의 혈액 안에는 아직도 바이러스가 머물고 있다. 다만 비활성의 잠복 상태여서 변이하지 않는 것뿐이다.

 [ 지민 씨의 혈액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면 백신처럼 사용이 가능해. ]
 [ 혈액인자를 없앤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
 [ 방법은 있어. ]
 [ 지금 떠오르는 건 줄기세포로 인공혈액을 만드는 방법뿐인데요. ]
 [ 맞아. 하지만 그건 상용화되지 않았지. 인공혈액을 만든다고 해도 피 전체를 갈아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
 [ 그럼요? ]
 [ 그래서 골수를 연구해봐야지. 분명 적혈구를 만들 때 항원을 제거해버리는 효소가 있을 거야. 거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해. 그 다음은 비활성화 된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
 [ 와우! ]

 남준은 장난스럽게 답장을 적으며 석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지민 씨는 괜찮아? ]
 [ 네. 씩씩해요. 많이 우울해보이긴 하지만요. ]
 [ 남준아, 치료제가 거의 완성될 것 같다. ]
 [ 네. 알고 있어요. ]
 [ 두렵다. ]

 석진은 목전에 둔 치료제 완성이 마냥 기쁘지 않았다. 이제부턴 그것을 어떻게 배포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김통수는 치료제를 손에 넣자마자 제 멋대로 하려 들 것이다. 요즘 그는 청와대에서 참모총장들과 노가리나 까며 아주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 걸까. 한 나라가 통째로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게 그렇게 좋을까. 석진은 도통 군인의 마인드가 이해되지 않았다.

 [ 대량생산 가능할까요? ]
 [ 그게 문제야. 김통수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 대량생산을 하지? 난 아직도 그걸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
 [ 방법은 딱 하나 아닌가요? 엄청 간단한데. ]
 [ 뭔데? ]
 [ 김통수가 사라지는 것. ]

 남준의 글자를 본 석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남준은 피곤해 보이는 눈을 비비며 부스스하게 웃었다. 전혀 악의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해보인 남준이 하품을 하며 다시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 전정호는 생각이 깊어요.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곤 말 못하지만… 지켜보니 그렇더라고요. ]
 [ 남준아, 지금 네가 쓴 말은 마치 킹메이커 같다. ]

 석진의 글자를 본 남준이 소리 없이 웃었다.

 [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힘은 박사님 머릿속에 있잖아요.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마세요. 박사님이 갑이라고요. ]
 [ 웃기다. 이러려고 평생 바이러스 연구만 했나 보다. ]
 [ 박사님이 조금만 나쁜 사람이었으면… 끔찍했을 거예요. 바들바들 ]

 남준은 글자 밑에 몸을 발발 떠는 졸라맨 그림을 그렸다. 석진은 힘없이 웃으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 바람에 비뚤어진 안경을 벗어서 조용히 내려놓은 석진이 눈을 천천히 껌뻑였다.

 실은 내일 있을 김통수와의 독대 때문에 벌써부터 심장이 벌떡였다. 만약 김통수의 대답이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바이러스성과를 낼 때보다 더 많이 고민하며 해답을 내야할 것이었다. 석진은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잠시 지금 이 순간을 잡고 싶었다.

 남준은 교차된 팔 안에 고개를 푹 묻어버린 석진의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펜을 들어 석진의 손등 위에 글자를 적었다.

 [ 선배를 믿어요. ]





*






 수술 후 전신마취가 끝난 후에도 지민은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원체 빈혈이 심한 터라 미리 뽑아 놓은 자신의 혈액을 수혈 받으면서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호는 부하들의 작전보고를 받는 내내 꼭대기 층에서 기절한 듯 잠들어 있을 지민을 떠올리며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었다. 혹시 이대로 지민이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정호는 이것이 단순히 제 동생의 연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삼 개월 동안 한 침대를 쓰며 그를 보살펴왔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자라면 책임감이겠지만 후자라면 정국을 향한 죄책감이 들 터였다.

 송파 쉘터의 120층 작전실. 정호와 정국은 원탁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있다. 정국은 세 층 위에 지민이 누워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고, 정호는 정국이 지민과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뜨끔해 식은땀을 흘렸다. 좀처럼 집중되지 않는 작전회의 분위기였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정호의 모습에 정국은 미간을 좁히며 동그란 눈으로 그를 빤히 주시했다.

 “전정호 영웅께선 어디 안 좋으십니까?”

 기어코 정국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호는 부러 표정을 굳히며 콧등에 축축해진 땀을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작전실에 안에 있는 제복 입은 자들은 모두 형제의 묘한 대화 분위기에 딱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2중대장은 효창공원 부지를 왜 예비초소로 쓴다는 거지?”

 정호는 정국이 올린 안건을 보며 물었다.

 “효창운동장이 있어서 훈련하기 좋습니다. 지대가 높아서 사탄이나 반군의 동태를 파악하기도 용이하고요. 서대문구와 마포구로 이동하는 것도 빨라서 소대 하나만 파견할까 합니다. 용산 쉘터에서 동시에 이동하려면 지프와 트럭 나가는 데에만 시간이 낭비됩니다.”
 “음. 좋아.”

 정국의 분석과 전략이 제법이라는 듯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했다. 정국은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전 중위처럼 다른 중대도 전략적 부지를 알아보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군 내에서 정국은 생각보다 더 잘 해내고 있었다. 그가 가진 현명함과 빠른 상황판단력은 늘 다른 중대의 귀감이 되었고, 덕분에 해골부대 내부에서 정국의 입지는 나날이 높아져 갔다. 정호는 동생이 자랑스러웠으나, 손절한 형제간에 낯부끄러운 말을 건네는 것이 어색하여 차마 칭찬 한마디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작전회의를 마치자마자 두 형제는 두 개의 승강기 앞에 나란히 섰다. 하나는 올라가는 버튼이, 하나는 내려가는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 정국은 정호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꼭대기 층은 좋아?”

 그 물음에 정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좋을 게 있나. 그게 그거지.”
 “송파 쉘터의 컨트롤타워. 전정호 영웅. 크으. 멋지네.”

 정국의 말에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직도 지민을 제게서 빼앗아간 것이 모두 정호의 탓인 것 같아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지 못했다. 정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쌍꺼풀 진 눈만 조용히 껌뻑였다. 두 사람은 동그란 눈과 높은 콧대를 가진 비슷한 옆모습으로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띵-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동시에 도착하고, 각자의 방향을 향해 올라탔다. 정호는 승강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참아왔던 숨을 터뜨렸다. 매주 작전회의로 정국이 드나들었던 이 송파 쉘터의 꼭대기 층에 지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더 큰 원망을 사게 될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제 동생을 위한 일임은 변함이 없었다.





*






 지민은 꿈속을 거닐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컴컴한 어둠이 내린 새벽. 호숫가 전체에 뿌옇게 가라앉은 물안개. 잔잔한 물결이 치는 소리,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 지민은 맨발로 천천히 걸었다. 꿈으로 본 적 있는 장면이라 익숙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돌이켜 보면 자신이 필사적으로 죽음을 그리게 했던 원인이 사라지던 날이기도 했다.

 그는 축축하게 젖은 흙을 맨발로 밟으며 물가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발등까지 찼던 물이 발목까지 올라오고, 금세 종아리와 무릎까지 차올랐다. 청평호를 향해 내디딜수록 찰랑이는 물소리가 더 짙어졌다. 자신은 오랫동안 염원하던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끝내고 싶었다. 피로하고 괴로웠던 생을 마감하고, 자신의 시신을 발견할 이들에게 평생의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야, 박지민!’

 그 순간 역겨운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윤성이 헐레벌떡 물속으로 따라 들어와 몸을 잡아챘다. 이미 청평호의 물은 자신의 배꼽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를 뿌리치며 계속해서 걸었다.

 ‘너 미쳤어? 야!’
 ‘…….’
 ‘뭐 하냐고! 돌았어? 와 진짜 환장하겠네.’

 이건 낯선 대화였다. 이전에 꿈에선 보지 못하고 넘어갔던 장면이다. 꿈속의 자신은 자꾸만 팔을 붙잡는 김윤성을 뿌리치며 계속해서 깊은 곳을 향해 걸었다.

 ‘또 정신 나간 상태냐고! 미친! 야 박지민!’

 김윤성이 이번에는 강하게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어느덧 가슴까지 차오른 물로 인해 두 사람의 몸이 휘청거렸다. 자신의 다리가 풀려 물속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그러자 김윤성이 필사적으로 허리를 붙들어 잡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씨발!’

 놔요…….

 ‘비싸게 굴 거면 끝까지 비싸게 굴던가! 이 따위로 죽으면 누가 알아나 주냐?! 아 씨발! 무거워 뒤지겠네!’

 김윤성은 끙끙거리며 자신을 끌고 땅을 향해 걸었다. 어느덧 물가로 나간 두 사람은 몸이 축 늘어진 채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윤성은 술이 덜 깬 얼굴로 씩씩거리더니 다짜고짜 뺨을 때렸다. 그러자 자신이 풀린 눈을 껌뻑이다가 김윤성의 머리채를 갑작스럽게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김윤성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뒹굴었다. 언덕으로 되어 있는 물가에서 반 바퀴 뒹군 김윤성이 돌부리에 찍혔는지 ‘윽!’ 소리를 내며 욕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씩씩거리며 아무렇게나 뒤엉켰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채로 세게 주먹질을 하려던 김윤성이 갑자기 한숨을 탁 쉬더니 손을 거두었다.

 ‘하, 우리 예쁜이 때릴 데가 어디 있냐. 씨발.’
 ‘…….’

 그리곤 다시 익숙한 장면으로 바뀌었다. 자신은 무릎을 꿇은 채로 그의 좆을 입에 물고 있었다. 역겹다는 생각이 이어지며 머릿속이 둥둥 울렸다. 헉헉거리는 신음도, 목구멍까지 들어차는 성기 끝도 다 짜증났다. 죽음을 향해 가던 행위의 결과도 결국 이 따위 구질구질한 것뿐이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입 안에 차는 마찰을 견뎌내고 있던 자신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제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김윤성의 두 허벅지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자신이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잘못 본 건가…. 뭐지, 더러워…. 머릿속에선 늘어진 테이프처럼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김윤성은 허리를 흔들면서 자꾸만 가려운지 검은 핏줄이 잔뜩 올라오고 있는 앞 허벅지를 긁었다. 그리곤 이내 사타구니와 고간까지 벅벅 긁기 시작했다.

 싫어…….

 자신은 천천히 바닥에 있는 돌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이윽고 김윤성의 비명이 들렸다. 점점 까맣게 물들어가는 다리 전체와 비부, 그리고 아랫배와 윗배. 김윤성은 자신이 가한 충격에 비틀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자신은 그 이상한 광경을 천천히 눈에 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좀비….’
 ‘씨발! 으윽, 아파, 뭐라는 거야! 윽!’
 ‘선배, 좀비 같아요….’

 자신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김윤성을 청평호로 세게 밀었다. 풍덩 소리와 함께 빠진 그가 살려달라고 외치며 버둥거리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은 이상하리만치 큭큭거리며 웃었다. 어느덧 김윤성은 목까지 까맣게 썩어가는 모습으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좀비, 좀비….’
 ‘야! 읍…! 지민아! 나 선배야, 푸웁! 하악!’

 실소를 터뜨리던 자신이 그 말에 표정을 빠르게 굳혔다.



 윤성 선배, 그냥 죽어요.
 선배는 무슨…. 넌 잘 죽었어.

 그냥 다 같이 죽자. 우리.




 “흐윽!”

 지민이 잠결에 발버둥 치며 오열했다. 꿈속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소름끼쳐서. 몸을 비틀고 목을 길게 빼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민은 눈을 꼭 감은 채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상체를 힘겹게 꼬았다. 어서 이 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상한 좀비로 변이해가는 윤성을 보며 일부러 청평호로 밀었다. 자신은 분명히 알고 그랬던 거다. 그가 죽길 바랐고, 그로 인해 모두가 다 같이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그런 막연한 분노로 점철된 채 물 속으로 꼬르륵 잠겨가는 김윤성의 머리꼭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말이다.

 “흐으…. 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잔뜩 찡그려진 눈꼬리에서부터 눈물이 흘러 베갯잇을 적셨다. 갑작스러운 지민의 발작에 문을 열던 정호가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지민아! 박지민!”
 “흐으…. 흑! 으윽!”

 눈을 감은 채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지민은 누가 봐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모습 같았다. 정호는 다급하게 그의 뺨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깨우려고 노력했으나 변화는 없었다.

 “정신 차려. 깨! 악몽이야!”
 “흐… 흐으….”

 그때 마침 쉘터에 도착한 남준이 문을 열다 말고 소란에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침대 위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남준이 침대로 달려가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지민은 괴로운 사람처럼 몸을 비틀다가 눈을 번쩍 떴다.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를 들어 멍하게 허공을 본 지민이 갑자기 제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꿈의 연장인 것일까. 놀란 두 남자가 얼른 지민의 손을 잡고 힘주어 떼어냈다. 그러나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는지 지민은 필사적으로 제 목을 조르려고 발버둥 쳤다. 결국 남준이 그의 허벅지를 붙들고 제압하고 나서야 지민은 거친 행동을 멈추고 거칠게 날숨을 내쉬었다.

 “지민 씨!”
 “흐… 흐윽….”
 “하, 미치겠다.”

 정호는 지민의 양 손을 붙든 채 땀을 뻘뻘 흘렸다. 이내 기운이 빠진 지민이 몸을 늘어뜨린 채로 울음이 가득한 소릴 내었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제가, 이상한, 흐윽, 좀비 보고…. 다 그냥… 죽었으면 해서… 저 때문에요. 제가 죽였거든요…. 제가, 물속에, 끄흑….”
 “아니 대체 무슨 소리야?”
 “청평호… 제가, 저 때문에….”

 지민은 꿈속에서 본 자신의 충격적인 모습에 놀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좀비처럼 변한 김윤성을 보며 큭큭거리며 웃던 얼굴. 다 같이 죽자며 읊조리던 서늘한 얼굴까지 자신이 아닌 것 같다. 어쩌다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김윤성은 감염이 되었고 자신은 아니었다. 꿈속을 유랑하던 지민은 그의 마지막을 보며 어쩌면 이 모든 사태를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그러니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지민은 제 가슴을 치며 울었다. 세상이 무너져버린 이 사태가 모두 제 탓인 것만 같았다. 더욱이 지민이 이렇게 괴로워할 때,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

 네가 죽인 거 아니야. 그 새끼 좀비 된 거야. 네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될 거였어. 지민아. 괜찮아. 그 말을 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

 “정국, 정국이…. 흐으…. 정국아아….”

 지민은 하염없이 흐느끼다가 이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을 내쉬며 편안한 잠에 빠졌다. 정호와 남준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






 남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낮에 쉘터에서 본 지민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지민의 몽유병 증상이 심하단 사실은 정호를 통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남준은 지민의 혈액에 남아 있던 벤조디아제핀 성분을 떠올리며 생각을 이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약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흐려진 터라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연구원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도 남준은 미동도 없이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석진이 지나가는 소리로 묻자 남준은 짧은 탄식을 뱉으며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무언가 잘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석진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어깨를 떨며 웃었다.

 “뭐가 또 생각이 안 나나 봐? 그 버릇 여전하네.”
 “아, 그게요. 별건 아닌데요.”
 “응.”
 “그….”

 남준은 말을 꺼내려다가 잠시 도청기의 존재를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갑자기 말을 멈추는 것은 더 수상하게 들릴 터였다. 남준은 석진을 향해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석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 말해보라는 의미였다.

 “제가… 예전에 신경안정제 처방 받았잖아요.”

 그 말에 석진은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하더니 이내 한 가지를 떠올렸다. 송파 쉘터에 있는 지민이 발작과 불안 증세를 보였고, 혈액에선 벤조디아제핀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장기간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했을 거라고 말했었다. 지민이 쉘터에서 보였던 이상행동들은 오래 먹어온 정신 약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현상이었다.

 “어. 알프람 정?”
 “네. 제가 그걸… 먹고 나니까 몽유병이 심해졌어요.”

 남준의 말에 석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프람 정의 부작용 중에 하나니까.”
 “그래요?”
 “금단현상보다 무서운 게 부작용이야. 몽유병 증상은 심각해지면 위험하지. 특히 쉘터… 에 있는 사람이면 더더욱.”
 “…그렇겠죠? 약 복용을 멈춰야겠네요.”
 “네가 첫사랑이랑 헤어지고 많이 힘들었나 보다.”
 “네. 지민이도… 많이 힘들어했죠.”
 “그렇다고 갑자기 알프람 정을 끊으면 금단현상 때문에 힘들 수 있어. 원인 치료가 전혀 되지 않은 채로 방치하는 거니까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

 그 순간 석진의 눈동자가 한 곳에 머무르더니 이내 크게 뜨였다. 남준은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이내 발견한 남자의 모습에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구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제복을 갖춰 입은 정국이었다.

 “전 중위님….”
 “뭐라고 했냐고요.”

 석진은 순간 아찔해졌다. 아무래도 모든 대화내용을 정국이 다 들은 듯했다. 연인이 알프람 정을 장기간 복용했다는 사실을 정국이 모르고 있을 확률에 대해 급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첫사랑 핑계로 지민이란 이름까지 거론한 것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중위님, 잠깐만요.”

 정국을 막아야 했다.


 철컥!

 살벌한 소리와 함께 정국이 권총을 꺼내들었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향해 겨눠진 총구에 석진과 남준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앞에는 정국이, 그리고 연구실 안에는 김통수가 언제 들을지 모르는 도청기가 숨어 있다. 사면초가였다. 석진은 정국을 향해 침착하라며 손을 뻗었으나, 이내 입을 열려던 것을 꾹 다물어야 했다. 권총을 겨누고 있는 정국의 눈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민이… 어디 있어요?”
 “…전 중위님.”
 “흐윽… 지민이, 어디 있냐고. 말해. 당장.”
 “하…. 전 중위님, 잠시 진정을,”

 정국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석진을 움켜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곤 눈물 젖은 얼굴을 한 채 석진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말해.”
 “제발, 잠깐만요.”
 “말… 하라고 했어. 죽이기 전에.”

 석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도청기 앞에서 지민이 정호의 쉘터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국은 당장 잘못 건드리면 터져버릴 시한폭탄 같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빨갛게 충혈 된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모습은 광기에 찬 모습 같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럽기도 했다. 석진은 정국에게 멱살을 잡힌 채 양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흥분했는지 씩씩거리는 정국의 거친 숨이 느껴졌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을까.



 그때, 갑자기 뒤에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정국은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남준이 샬레 하나를 고의로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렸다. 그리곤 정국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글자를 쓴 종이를 내밀었다.

 “…….”

 정국은 들썩이는 어깨를 감추지 못하며 남준이 적은 글자를 보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이내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어낸 순간 충격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말았다. 석진은 부디 정국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아주길 바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박지민 씨. 면역체. 전정호 쉘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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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yolo  | 190826  삭제
이렇게 긴글을 한번에 써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은 잘 추스리셨는지요?
잘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독자128  |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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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만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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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궁금해  | 190827  삭제
너무 재밌게 잘 읽고있어요 매번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게 만드세요ㅜㅜ 소장본 판매글을 늦게 봐서 구매도 못했는데 어제 아마겟돈 발송하신다는 글에 잠깐 제가 구매한걸로 착각하고 행복했다가... 현실로 돌아와 더 아쉬웠어요ㅜㅜ 소장볼 추가 판매 꼭꼭!!! 해주세요~~~~
딸기맛곰돌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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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바니꾹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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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e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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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EGEK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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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빠꾹찜  | 19082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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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챠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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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0326h  | 19082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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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찍  |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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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난  | 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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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an  | 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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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  | 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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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 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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