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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25 (미성년자) 랠리 씀

Ólafur Arnalds - Take My Leave Of You

아마겟돈
25


‘사탄’과의 전쟁














 정국은 제정신이 아닌 채 지프를 몰았다. 한밤중에 용산에서 송파까지 최고 속도로 밟았다. 빨간 해골부대 깃발이 달려 있는 그의 지프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폭주한 야생마처럼 달리는 내내 정국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눈물을 끊어낼 수 없었다.

 그토록 찾아온 지민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녹아버릴 정도로 충격이 찾아왔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왜 정호의 쉘터에 있는 건지, 면역체란 게 대체 무슨 소린지, 어째서 석진과 남준이 그를 알고 있는 건지, 아직은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그를 마주해야 했다. 눈앞이 하얗게 물들 정도로 패닉이 찾아왔으나 정국은 꿋꿋하게 달렸다.

 송파 쉘터, 정호의 방 문 앞에 선 정국은 차마 바로 열고 들어갈 자신이 나지 않아 멈춰 선 채로 울었다. 용산에서 송파까지 오는 길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막상 코앞에 도착하고 나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눈물에 얼룩진 얼굴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몽유병이 심해졌다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무사한 게 맞는 걸까. 함께 있을 때 몽유병 증상으로 괴로워했던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김윤성을 죽였다고 생각하며 힘들어했던 것도 떠올랐다. 아무런 사이도 아닐 때, 익숙했던 방식의 고통을 스스로 가하며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탔던 모습도 생각났다. 김석진 박사는 그게 약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약, 1년 동안 먹었어요. 무서운 게 많아져서…. 그래서 먹었어요.’

 버티기 힘들어서 약을 복용했고, 그럴수록 지민은 더더욱 불행해졌던 것이다. 결국 MT에 가서 죽을 생각을 할 만큼. 그를 생각하니 가슴을 저미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선배가 계속 나를 살려….’

 그 말은 이젠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의 옆에서. 그런 그를 삼 개월이 넘게 혼자 두었다. 서로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외롭게.


 피슉!

 소음기를 장착한 정국의 권총이 울렸다. 잠겨 있는 문을 곱게 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국은 총으로 다짜고짜 문고리를 부수고는 문을 벌컥 열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의 풍경이 전면의 통유리창 안에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침대 위에 겹쳐 있는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누구야.”

 잠결에 놀란 정호가 벗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정국은 제 형 옆에 누워 있는 머리통만 보이는 사람의 형상이 곧 지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

 정국은 멀리서 정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몇 번이나 방아쇠를 당겨도 모자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까닭은 무엇인지,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으나 몇 달 동안 자신을 속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배신감에 치가 떨려왔다. 거기에 지민과 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은 정국을 최악의 상상으로 몰고 갔다.  

 “…지민아.”

 그는 총구를 정호에게로 고정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고양된 목소리로 지민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으나, 침대에 누워 있는 형상은 대답이 없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지민이 성치 못한 모습으로 있는 거라면? 실험실에 있는 사탄들처럼, 미처 인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지 못한 사탄이라면? 끔찍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정국의 심장이 요동쳤다.

 “전정국.”

 정호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정국에게 들릴 리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다가가던 정국이 마지막에 가서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었다. 어느덧 침대 앞까지 바짝 도착한 정국은 어렵사리 시선을 돌려 지민을 찾았다.

 “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지민의 모습은 무척 하얗고 아름다웠으며, 마치 박제된 송장처럼 움직임이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정국은 침대 곁에 멍하게 선 채로 잠들어 있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겨누었던 총은 자신도 모르게 내려갔고,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정국은 지민에게 손도 대지 못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민아….”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지민의 숨소리를 확인하고는 그가 죽은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정국은 꿈을 꾸는 것 같아서 마른 지민의 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의 상체가 비스듬히 들려 완전히 정국의 품 안에 가두어졌다. 그 바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지민은 천천히 눈꺼풀을 열었다. 마치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마법이 풀리듯, 신비롭고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지민은 멍한 동공을 들어 허공을 향해 두어 번 껌뻑였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려는 듯 축축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제 몸을 꽉 끌어안은 남자가 누구인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래 떨어져 있었어도 그 체취와 감촉, 숨소리만으로 알아볼 수 있으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나 지금 꿈꾸나 봐요.”

 지민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눈앞에는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정호가 보였다. 지민은 제 몸을 꽉 끌어안은 남자의 어깨에 턱을 간신히 올린 채 널따란 등을 끌어안았다. 까끌까끌한 제복의 촉감은 낯설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온기만큼은 참 익숙했다. 고작 안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남자였다. 짧은 시간 사랑에 빠지게 했던 남자였다. 자신을 살고 싶게도, 죽고 싶게도 했던 남자였다.

 “가자.”

 정국은 울음을 꾹 참으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지민은 몽롱한 정신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만약 정국이 지금 당장 죽자고 말했더라도 끄덕였을 터였다.

 “정국아. 가면 안 돼.”

 그때 정호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저지했다. 순간 정국의 가슴속에 불길이 치솟았다. 정국은 팔을 휘둘러 정호의 손을 치워내고는 재빨리 그의 목을 졸랐다. 정호는 턱을 들고 이를 악 문 채 정국의 손목을 꽉 쥐었다. 정국은 그의 몸 위에 올라 탄 채 무게를 실어 숨통을 꽉 짓눌렀다. 그러나 정호는 얼른 반동으로 하체를 올려 양 다리로 정국의 머리를 결박했다. 목뼈를 비틀 듯 조여 오는 다리 힘에 목을 조르던 정국의 손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타 정호는 얼른 몸을 일으켜 정국을 거세게 밀쳤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국의 몸이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정국 역시 그리 녹록치 않았다. 넘어진 몸을 얼른 굴려 일으킨 후 정호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침대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거센 몸싸움이 벌어졌다. 정호는 제 동생을 진정시키기 위해 콧잔등에 주름을 잡아가며 소리쳤다.

 “네가 이럴까 봐! 도망간다고 할까 봐! 그래서 숨긴 거야!”
 “닥쳐.”
 “지금 가면 너도 지민이도 다 죽어!”
 “아니? 우린 안 죽어. 방해하는 건 내가 먼저 죽일 거야.”
 “윽….”

 정국이 얼른 형의 복부를 걷어찼다. 정호는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빗겨 맞은 후 재빨리 몸을 낮게 숙여 정국의 몸을 단번에 엎어치기 했다. 정국의 몸이 허망하게 곡선을 그리며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세게 떨어졌다. 정국이 신음을 삼키며 제 위에 올라타 멱살을 붙잡고 있는 형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원망과 슬픔, 배신감과 좌절감이 뒤섞여 있다.

 “사령관 몰래 백신을 만들고 있다고! 지민이 피로!”
 “윽…! 이거 놔!”
 “잘 들어. 듣고 이해해! 전정국!”
 “씨발…. 이거 놔!”
 “놀란 거 알아. 배신감 든 것도 이해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 곧 있으면 백신이 완성될 거야. 얼마 전 지민이도 수술을 했고, 으윽!”
 “…개자식들!”

 정국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에 또다시 정호의 목을 세게 졸랐다. 이성 줄이 끊어질 만큼 커진 배신감에 치를 떨며 자신이 가진 모든 악력을 더했다. 정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며 일그러졌다. 정국은 괴력을 부려 정호를 밀어내고 다시 그의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신체조건이 좋은 형을 제압하는 건 쉽지 않다. 두 사람은 다시금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 입술이 찢어졌고, 눈가가 부풀어 올랐으며, 얼굴 여기저기에 울혈이 생겨났다.

 길어지는 힘겨루기에 먼저 지친 정국이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정호가 손목의 힘줄을 세게 누르는 탓에 끊어질 듯한 통증이 왔다. 정국의 악력이 약해진 틈을 타 정호가 잡힌 목을 빼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정국은 헉헉거리며 침대 위에 있는 지민을 확인했다. 지민은 충격을 받은 듯 제 머리를 감싸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정국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권총이 침대 위에 뒹구는 것을 확인하곤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걸 확인한 건 정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얼른 권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피슉!

 몸이 뒤엉키며 총성이 들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사고처럼 당겨진 방아쇠의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권총은 정국의 손에도 정호의 손에도 없었다.

 “그, 그만….”

 권총을 집어든 지민이 손을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었다. 이윽고 정호의 어깨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렀다. 총알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정호는 반 박자 늦게 찾아온 통증에 출혈 부위를 급히 손바닥으로 막으며 몸을 굽혔다. 자신이 정호에게 총을 쐈다는 사실에 놀란 지민은 총을 떨어뜨리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얼어붙었다.

 정국은 총을 집어들고 얼른 지민의 몸을 일으켰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었다. 이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 어디든 가고 말 거라고. 그 끝이 무엇이든 말이다.

 지민의 손목을 붙잡아 당겼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지민은 그의 힘에 이끌려 비틀비틀 뒤따랐다.

 “거기 서.”

 정국이 정호의 쉘터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철컥 장전하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국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어깨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정호가 자신의 권총을 꺼내 겨누고 있었다. 총구의 방향은 정국인지 지민인지 알 수 없었다. 정국은 숨이 턱 막히는 공포감이 일었다.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총을 겨누고 있는 정호가 사신 같이 두려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만약 정호가 마음먹고 방아쇠를 당긴다면, 총알이 당장 머리를 박살내고 말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상은 정국 자신이 아닌 지민이 될 거란 것도.

 “문 열면 머리 날아간다.”
 “…….”
 “정국아, 형 말 들어. 진정하고 얘기 들어. 지민이 데리고 나가면 안 돼. 얼마 안 남았어.”
 “…백신, 그딴 거 관심 없어.”
 “지금 나가서 뭘 어떻게 할 건데? 대책 있나? 너희가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상관없어. 여기만 아니면 되니까.”

 정국은 제복 주머니에서 작전폰을 꺼내서 바닥으로 세게 내던졌다. 그리곤 정호에게 맞서서 권총을 겨누었다. 어쩌다 형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지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 끔찍했다. 정국은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백신, 치료제, 군부, 그딴 거 다 모르겠으니까 무작정 둘만 있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 절실했다.

 정호가 총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왔다. 어깨의 출혈량은 점점 더 많아졌지만 정호는 흔들림 없이 총을 잡고 있다. 그가 가까워지니 총구의 방향이 어딜 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만약 정호가 방아쇠를 당긴다면 당장 지민의 머리부터 터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지민아. 이리 와.”
 “…….”
 “형한테 와. 어서.”

 정호가 축축한 눈빛으로 다른 한 쪽 손을 그에게 뻗었다. 지민은 제 몸을 감싸 안은 정국의 팔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이대로 죽으면 안 돼. 지민아, 나 너 죽이고 싶지 않아.”
 “…….”
 “안 오면… 쏜다.”

 젠장….

 정국은 입술을 짓씹었다. 벌벌 떨고 있는 지민을 제 품에 더 꽈악 감싸 안은 채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였다. 정국은 정호를 향해 겨누고 있던 총구의 방향을 틀어 제 관자놀이로 향했다. 이런 협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까닭은, 아마도 정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의 진심을 알면서도 등질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고약했다.

 “형이 지민이 쏘면….”
 “…….”
 “나도 같이 죽어.”
 “하아….”

 정국의 말에 정호는 기가 찬다는 듯 탄식을 뱉었다.

 “가게 해줘. 내가 누구 때문에 치료제 개발에 집착한 건지 알잖아.”
 “도망치면 수배가 내려질 거야. 꼼짝없이 죽는다고 이 멍청한 자식아.”
 “형.”
 “정국아, 제발.”
 “지긋지긋해. 다 싫어. 형 기억나?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그랬지.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난 그 말이 기억나더라.”
 “…….”
 “내가 지금 그래. 이 안에 더 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정국의 동그란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정호는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호는 지민을 쏠 자신도, 정국을 잃을 자신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수천수만의 군대를 지휘하며 종말의 사태를 컨트롤하는 그였지만, 정작 유일한 핏줄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견뎌야 하는 것도,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도, 다른 이들의 절망을 딛고 안전하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도, 정국에겐 모두 가혹한 것이었을 테니. 그럼 원하는 대로 죽게 둬야 할까. 어느 곳에 숨어서 어떤 삶을 살다가 끝나더라도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총을 겨누던 정호의 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어깨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핏줄기가 정호의 팔을 타고 손등과 손바닥을 뜨겁게 적시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
 “…….”

 제 관자놀이에 총을 겨눈 채 정국은 천천히 뒷걸음 쳤다. 지민의 몸을 꽉 감싸 안은 채였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허망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형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이내 이들 사이에 있던 문이 굳게 닫혔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처럼.



 지하로 향하는 승강기 안에서 정국은 자신의 제복 재킷을 벗어 지민에게 입혔다. 아직도 두 사람은 서로가 꿈인 것처럼 어색했다. 서로를 향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한 마디를 꺼냄과 동시에 엉망으로 무너져 내릴 감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프에 올라 무작정 엑셀을 밟았다. 주거지역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가로등 불빛 하나 들어와 있지 않은 컴컴한 도로를 질주하며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지민을 찾으면 도망칠 거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를 만나고 나니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질주의 끝은 어디일까. 이 흉물스러운 바이러스 사태가 신의 열한 번째 재앙이라면, 차라리 빨리 끝내주었으면 싶다. 살고자 발버둥 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말이다.

 주거지역 바깥은 낮 동안 사탄을 소탕하는 일이 아니면 군인들이 오가지 않는다. 이대로 땅 끝까지 달려볼까. 갈 수 있는 가장 먼 데까지 가볼까. 그 어느 곳을 밟으나 지옥인 건 마찬가지일 테니,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을 향해 갈까. 정국은 울음을 삼키며 발에 힘을 주었다. 엔진은 더욱 더 거친 신음을 토해냈다. 폐허가 된 도로 위를 달리고 달리다가 컴컴한 터널 몇 개를 지나쳤다. 어느덧 정국이 달리고 있는 곳은 가평으로 향하는 춘천고속도로였다.

 “흐….”

 엔진 소리만 가득 나던 지프 안에 지민의 흐느낌이 섞였다. 그 소릴 듣자마자 뿌옇게 변하는 시야에 정국은 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폐쇄된 서종 톨게이트가 보이자 정국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핸들을 틀었다. 도로를 아무렇게나 이탈해 서종영업소 건물 뒤편에 지프를 세웠다.

 더 이상은 힘들었다. 애타게 찾아왔던 이를 어서 만지고,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차가 멈추자마자 정국은 급히 지민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손끝을 깨물며 조용히 울고 있는 그의 손목을 꽉 잡고 턱을 들어올렸다.

 “나 늦었지.”
 “…….”
 “지민아, 나, 흐윽…. 너무 늦게 왔지.”

 아이처럼 울며 묻는 말에 지민은 고개를 저었다. 지민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젖은 얼굴을 매만졌다.

 “아니. 안 늦었어.”
 “흐으…. 지민아.”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죽고 싶었어.”

 나도. 나도 그랬어. 정국은 서럽게 파도치는 감정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끅끅 울었다. 지민은 정국의 양 볼을 어루만지다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귀를 매만졌다. 뿌연 시야를 들어 눈물이 엉겨 붙어 있는 축축한 속눈썹을 마주했다.

 “네가 날… 찾아오지 않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든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혹시 정국이 네가 죽었을까 봐… 무서웠어. 정말 무서웠어.”

 그 말에 정국은 작은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가득 안았다. 가느다란 몸이 부서지도록 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울음소리가 바보처럼 먹혀들어갔다. 그 안엔 미안하다는 말이 흠뻑 섞여 있었다.

 “근데, 흐윽, 차라리 네 마음이 변해서 날 버린 거라고 생각하려 했어.”

 이어지는 말에도 정국은 울음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지민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무서웠을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던 자신이 느꼈던 그 순간만큼 지민 역시 그랬을 것이다.

 “…미쳤어? 내가 후배님을 왜 버려.”
 “흐….”
 “…큭.”

 언젠가 해봤던 말에 두 사람은 엉엉 울다 말고 바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자신을 두고 가라는 지민의 말에 정국이 대답했을 때, 그때부터였다.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격동이.

 정국은 코끝을 부딪치며 지민의 입술을 감쳐물었다. 부드럽게 열리는 잇새를 혀로 가르고 들어가 뜨겁고 축축한 입 안으로 침범했다. 더운 접촉과 함께 울음 같은 숨이 터졌다. 정국은 지민의 허리에 팔을 감아 당겼다. 가벼운 그의 몸이 이내 정국의 허벅지 위로 끌려왔다. 더 말라서 안쓰러워진 지민의 갈빗대를 손으로 훑으며 고개를 비틀었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정국은 허겁지겁 그를 집어삼켰다.

 한 여름에 처음 만나 어느덧 겨울이었다. 차갑게 얼어있던 지프 안의 공기는 두 사람의 섞이는 숨으로 인해 눅눅하게 녹아가기 시작했다. 그간 상상했던 것보다 더 선연한 감촉이었다. 정국은 그의 작은 머리통을 감싸 쥔 채 더 가까이 붙으려 했다. 눈물이 섞여 짭짤한 맛이 나는 혀를 녹여먹듯 굴리다보면 이내 과즙이 터진 것처럼 달콤한 향이 났다. 정국은 끔찍하게도 좋은 그의 체취에 신음을 흘렸다.

 “하아…. 지민아.”
 “으응….”

 입술을 붙인 채 부르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실은 어떤 대답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시금 급히 맞붙는 접촉에 서로를 부르는 말은 목구멍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짜릿한 전율이 이는 등줄기와 아랫배, 그리고 인중 위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간지러운 날숨. 말랑말랑한 살덩이끼리 뒤엉키며 생기는 질척한 소음. 그 모든 것이 벼랑 끝에서 만난 안식이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호명산의 카라반 장박지였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하얀 카라반 위에 쌓여 있는 낙엽뿐이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깨닫기도 했으며 서로의 몸을 안아주기도 했다. 또한 정국은 처음으로 사탄에게 물렸고 지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카라반 문을 열었으니, 두 사람 모두 한 번씩 죽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당장 붙잡혀 생을 마감한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이곳에서 마무리 짓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한기가 가득한 카라반의 침대 위에서 두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알몸을 겹쳤다. 추운 공기와는 달리 서로의 체온은 따스했으며, 살갗이 닿을 때마다 저릿하게 도는 소름은 오늘 이 밤을 손꼽아 기다려온 듯 솔직했다. 정국은 제 몸 아래에 지민을 가둔 채로 그의 피부 곳곳에 입을 맞췄다. 머리끝까지 덮은 이불 안은 두 사람이 만드는 열기로 인해 점점 더운 공기를 자아냈다.

 “정국아….”
 “응.”
 “…정국아.”
 “응.”

 지민은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숱이 많은 머리카락 안으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얇은 턱선과 목 줄기를 애무하던 정국의 입술이 쇄골과 가슴께로 천천히 내려갈 때마다 이불 안에 갇혀 있는 뜨거운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탄탄한 정국의 허리에 종아리를 감으며 조금 더 은밀한 접촉을 해달라며 안달 했다. 온몸에 힘을 주며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애무를 받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 순간 그가 자신의 온몸을 구석구석 만지고 핥아주는 몸짓이 여태 자신이 기다려왔던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번이고 꿈속에 나타난 그를 보며 수음했던 것 역시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짙은 만족감을 떠올리며 흥분했던 탓일 테다.

 동그란 정국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다가 손가락 사이사이에 가득 찬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쥔 채로 고개를 젖혔다. 뒷머리를 움켜잡았다가 놓고, 뒷목과 날개 뼈까지 손끝으로 덧그리며 정국의 살결을 지문 하나하나에 담고 싶었다. 그런 적극적인 손길에 정국은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키스해줘.”

 정국이 목을 숙여내려 고개를 비틀자 지민이 순종적으로 턱을 내밀어 그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혀끝으로 겉 입술을 뾰족하게 긁다가 뭉툭한 접촉으로 미끈한 잇몸을 쓸었다. 그러자 벌어진 정국의 입술 새로 신음이 터졌다.

 정국의 손끝이 조금 더 농염해지며 갈비뼈, 배꼽 주위, 아랫배를 맴돌았다. 툭 불거져 나온 골반 뼈를 꽈악 누르며 문질렀을 때는 찌릿한 전율이 이는지 지민의 허벅지가 잘게 떨렸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벌어지는 다리에 민망할 새도 없었다. 어느새 땀이 날 정도로 더워진 온도에 정국은 이불을 걷어냈다. 막혀 있던 공기와 차가운 카라반 안의 공기가 뒤섞이며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하아, 하아…. 정국아.”
 “응.”
 “얼른… 넣어줘.”

 땀으로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허벅지 살을 스스로 쓸어 만진 지민이 별안간 제 다리를 잡아 올렸다.

 “우리 내일 안 죽어. 형.”
 “알아.”
 “꿈 아니지.”

 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이 빠진 종아리를 달랑거렸다.

 “정국아, 우리 여기서 오래 살자. 이렇게… 섹스하면서.”
 “…그럴까.”
 “응. 그동안 못 만났던 것만큼… 많이 안아줘.”
 “그래. 그럴게.”
 “아니면… 사탄이 가장 많이 있는 곳으로 숨을까? 그럼 우릴 찾기 힘들 텐데. 너랑 나랑은 자유로우니까.”
 “그래. 그것도 좋겠다.”

 정국은 손끝으로 천천히 지민의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그럴 때마다 지민이 어깨를 움츠리며 숨을 참았다.

 “흐읏…. 아니다. 그럼 너… 또 아프니까. 난 너 아픈 거 싫어. 하아, 사탄한테 물리는 거 싫어….”
 “그래. 그럼 안 물릴게.”

 정국은 축축한 눈망울로 지민을 내려다보며 그의 몸 안을 샅샅이 어루만졌다. 좁은 곳을 꾸욱 눌러 그의 표정을 살피고, 아픈 듯 찡그려지면 부드럽고 유연하게 돌리며 자신의 몸이 들어가야 할 곳을 공들여 쓰다듬었다. 지민은 벌써부터 몸 안이 꽉 차오르는 것처럼 충만감이 들었다. 그것이 행위 때문인지 감정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말 안 해도 돼.”
 “너 만나면 많이 말해주려고 했는데.”
 “나중에. 지민아.”
 “안 돼, 나중에는…….”
 “우리 안 죽는다고 했잖아.”

 정국이 그의 아랫입술을 조금 아프게 깨물고는 쪽 소리가 나도록 짙게 뽀뽀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민의 눈이 서글퍼서 정국은 또다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응…. 미안해. 그런 생각 안 할게.”
 “씨…. 나 원래 잘 안 우는데.”

 정국은 손등으로 물기를 훔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빗물과 땀에 젖었던 지난 섹스를 떠올렸다. 흙냄새가 가득한 방공호에서 몸을 뜨겁게 겹치며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다. 깨끗하고 넓은 침대, 향기로운 이불, 마음을 동하게 하는 분위기, 그런 것들은 정국과의 잠자리에서 한 번도 찾을 수 없었다. 카라반 바닥을 기며 몰아치는 섹스, 좁은 침상이나 지프 안에서 구겨진 채 짐승처럼 맞붙은 결합, 흙을 뒤집어쓰며 엉망으로 소릴 내는 그런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아쉬움 따위는 들지 않았다. 정국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살이 쩍쩍 달라붙는 소음, 불편한 공간에서마저 정신을 잃을 만큼의 쾌락을 선사하는 자세를 빠르게 알아가는 것. 그런 것들이 둘 사이의 무드였기 때문이다.

 지민은 자신을 어느새 제멋대로 뒤집어 놓고 몸을 움직이는 정국으로 인해 침상에 머리를 비비며 신음했다. 조명 하나만 켜 놓은 카라반 안에는 정국이 움직일 때마다 크게 일렁이는 그림자의 요동이 가득했다.

 “지민아.”

 정국은 상체를 세우며 치고 들어가다 말고 허리를 숙여 심장을 지민의 등에 가져다 댔다. 몸을 비틀며 신음하던 그를 잡아 올려 손바닥으로 판판한 뱃가죽을 꽉 눌렀다.

 “이러고 있으니까, 하아…. 오래오래 살고 싶어져.”
 “으응… 흐으….”
 “내가 다 죽이고 올까?”

 또다시 도망자 신세가 된 이들에게 예정된 미래는 하나뿐이었다. 정국은 그걸 바꿀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아니면 같이 죽을까? 그냥, 그럴까 우리.”
 “으흣… 아아….”
 “지민아, 너와 나 둘 중에 하나만 필요하다고 하면….”

 정국은 말을 이으려다가 멈췄다. 디테일한 조건을 내뱉으면 마치 그게 사실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개를 좌우로 털어냈다.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은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올리고는 팔을 세워 겨우 버티고 있는 지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다. 그런 일은 없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죽일 거니까.

 아마도 오늘 밤은 한 번의 정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민이 했던 말대로, 못 봤던 시간만큼 지칠 때까지 안아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꽉 물었다.

 불붙은 행위에 온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지만, 계절에 맞는 한기로 인해 체온은 알맞게 식혀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서 기분 좋은 촉감과 온도를 느끼며 점점 더 무아지경으로 빠졌다.



 ‘우리의 죽음을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

 정국은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되뇌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지민의 안에 사정하는 이 순간이 차라리 그 죽음이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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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