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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26 랠리 씀

Arrival of The Birds & Transformation

아마겟돈
26


‘사탄’과의 전쟁














 정국이 지민을 데리고 사라진 후 정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송파 쉘터에 있는 CCTV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통제실에 들어가 승강기, 복도, 지하주차장을 비추는 카메라까지 모두 확인한 후 영상기록을 삭제했다. 어차피 쉘터 근처를 벗어나면 가로등이 꺼진 도로뿐이니 그가 어디로 갔든 더 이상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한 것은 대체 정국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고민하는 거였다.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지민이 송파 쉘터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호를 제외하고 두 명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초지종에 대해 알아야 할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정호는 총상을 입은 어깨에 붕대를 대충 감고 여의도 쉘터로 향했다.

 정국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건 허무하리만치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지민의 몽유병 증상에 대해 에둘러 나누는 대화를 정국에게 들키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필 정국이 그 시간에 연구실에 왜 찾아갔는지도 의문이었다.

 “일단 이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합니다.”

 정국이 지민과 함께 도망쳤다는 이야길 듣자마자 석진이 한 말이었다. 정호는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빠졌다. 지민의 존재는 아는 이가 없으니 숨길 수 있다고 쳐도 정국의 경우는 달랐다. 중대장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더군다나 정국은 탁상공론만 하는 자가 아니고, 누구보다 발 벗고 뛰며 작전 현장을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정국이 사라진다는 것은 2중대에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그의 부재 사실이 총사령관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정호는 부산 쉘터 건설 건을 떠올렸다. 때마침 부하 장교 몇을 부산으로 파견 보내야 하는 일이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부산에 보낸 것으로 하겠습니다.”
 “들키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부산 일정은 보름입니다. 그게 지나고 나면 들킬 수밖에 없죠.”
 “하….”

 석진은 보름이란 말에 답답한지, 지프의 차창을 열고 탄식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그 안에 치료제 임상을 끝마치고 완성시켜서 김통수의 관심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그게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언제가 되었든 어차피 들키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면역체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전국 수배령이 떨어질 테고, 해골부대와 그 아래의 수많은 예하부대가 쥐 잡듯이 뒤져 정국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그리곤 치료제가 완성될 때까지, 아니 어쩌면 앞으로 계속 진화할 바이러스 치료제를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 정국을 감금하게 될 것이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며 잔인하게 실험하고, 혹시 모를 자결을 막기 위해 온 몸은 꽁꽁 결박한 채로 말이다. 이들이 알고 있는 김통수라는 인물은 치료제라는 권력을 갖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전 중위님이 유일한 면역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건 어떨까요?”
 “아뇨. 안 됩니다.”
 “왜죠? 그렇게 하면 사령관의 관심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면역체를 찾는다던가 하는…”
 “그럼 전국적으로 면역체를 찾기 위해 피바람이 불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다면 그들 모두 감금당하겠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요. 정국이는 군 생활을 하며 자유롭게 지냈는데도 고통스러워했어요.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 보통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금방 죽음을 택할 겁니다.”
 “…….”
 “그뿐인가요. 박사님도 괴로워질 겁니다. 지금보다 더 경계하고 통제하게 되겠죠. 김통수를 예민하게 만들수록 그의 세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군부 독재의 특징입니다.”
 “그럼 전 중위님이 실험 중에 결국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감염된 걸로 하죠. 조작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치료제 개발은 무산되는 거나 다름없으니 박사님은 결국 죽게 될 거예요.”

 정호의 단호한 대답에 석진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약을 개발하고 나면 자신을 용도 폐기할 수도 있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타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죠? 전 중위님을 찾는 방법밖에 없는 거잖아요. 찾는다고 해도 순순히 돌아올까요? 만에 하나 전 중위님이 지민 씨랑 같이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으면…”
 “방법이 하나 있긴 하죠.”
 “뭔가요?”

 석진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정호가 차창을 열고 담뱃불을 붙였다. 그는 한 개비를 다 태울 때까지 말없이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단 예감에 석진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필터까지 모두 빨아들인 정호가 담뱃불을 끄며 말했다.

 “사령관을 없애는 것.”

 그 말을 들은 순간 석진은 남준과의 필담을 떠올렸다.

 [ 방법은 딱 하나 아닌가요? 엄청 간단한데. ]
 [ 김통수가 사라지는 것. ]

 “계획이 있으신 건가요?”

 석진의 물음에 정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쿠데타를 일으키기엔 대항할 세력이 부족해요. 김통수의 곁엔 참모총장들이 있으니까요. 사령관을 없앤다고 해도 그 자리엔 그의 최측근이 앉을 겁니다. 그들은 엄청난 군사를 가지고 있어요. 결국 본전도 못 찾고 도돌이표죠.”

 캄캄하다. 도저히 해결책이 날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석진은 차창에 머리를 기대며 탄식을 토해냈다.

 “깊이 생각 중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박사님이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그 다음은 마음을 정한 뒤 말씀드리죠.”





*






 “중대장님이 부산에 가셨다고?”

 2중대 안에는 갑작스러운 정국의 부재를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어떤 이야기도 없이 하루아침에 정국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효창공원에서 반군의 집결을 약속한 날이었다. 지쳐 있는 중대 안의 분위기를 바꾼 사건이었기에 정국의 행보에 중대원 모두가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일언반구 없이 부산으로 출타했다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좀 이상하다. 아무리 급하게 부산에 간다고 해도 소대장들한테 명령이라도 내리셨을 텐데?”

 정국을 지켜봐온 사람들은 의문이 들었다. 반군들을 회유하는 일은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할 사안이었음에도 정국은 그 어떤 명령도 없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한들, 무책임하게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정국의 성정과 맞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뭔 줄 알아?”
 “뭐?”
 “중대장님과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한 부대원의 말에 다른 이들이 재빨리 작전폰을 꺼냈다. 지도상에 떠 있는 정국의 GPS 위치는 부산이었는데, 전화를 걸면 거절 메시지로 넘어갔다. 지금껏 정국과 연락이 되지 않은 적 또한 없었다.

 “솔직히 GPS 위치 부산으로 뜨게 하는 건 쉽지. 근데 연락이 안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냔 말이야.”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과 추측이 나돌았다. 그들은 가장 최근에 정국을 본 기억에 대해 공유했다. 어젯밤 늦은 시각, 용산 쉘터에 있는 사탄 실험실에서 나와 급히 지프에 올라타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부대원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중 누구 하나가 합리적인 의심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혹시… 치료제가 완성된 거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치료제가 개발돼서 혹시 중대장님을 죽인 건…”
 “아 시발! 재수 없는 소리 하네!”
 “아, 들어 봐. 그 소문 몰라? 면역체가 갑자기 중대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총사령관에게 딜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거? 생각해 봐. 충성거래라곤 하지만 면역 있는 몸 실험으로 내주고 중대 받은 거잖아. 솔직히 억지로 가둬두면 그만이잖아. 사령관 입장에선 뭔가 괘씸한 구석이 있다는 거지. 우리 그때 중대장님 욕했던 거 기억 안 나?”
 “아… 그래도….”
 “치료제 개발되고 나면 이제 중위님이 필요 없어지는 거지. 그래서 하루아침에 쥐도 새도 모르게… 흠흠.”

 사탄의 지속적인 진화에 맞춰서 치료제 연구는 계속 뒤따라야 한다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당연한 생각의 흐름인 것이다.

 “이 새끼 자꾸 재수 없는 소리 하네? 중대장님이 죽었으면 좋겠어?”
 “아니! 누가 그렇대? 나도 걱정돼서 하는 소리지!”
 “그럼 걱정이나 해! 헛소리 하지 말고!”

 부대원들의 대화는 금세 격해지기도 했다. 정국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무시할 순 없었는데, 혹시라도 자신들의 추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정말로 끔찍하기 때문이다. 삼 개월 동안 정국이 부대원들에게 쌓아온 신뢰는 어마어마했다. 그는 인간적이었고 상식적이었으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이 사태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더 이상 부대원들이 비상식적인 일들로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는 걸 원치 않아했다. 반군들과 거래를 한 것 역시 그런 맥락이었다.

 흉흉한 소문과 추측들은 점점 더 크기를 불려갔다. 혹시 윗선에 이야기가 들어갈까 봐 쉬쉬했지만, 내부에서는 정국에 대한 이슈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만약 추측대로 치료제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정국이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이라면 단체로 패닉에 빠져들 것이었다.



 각 소대장들은 정국이 반군들과 약속했던 날이 되자 효창공원으로 향했다. 정국의 부재를 대신해서 그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국과 가깝게 지내던 소위 두 명은 소대를 이끌고 반군들과 접촉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무리들이 효창공원에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들 모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였으며, 오로지 살 길을 찾아 삼각지부터 용산 전자랜드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사탄을 정리하고 모인 자들이었다. 인원은 100명이 넘었다. 이는 군부대로 따지면 중대 하나에 가까운 숫자였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앞으로의 살길을 열어준 구원의 존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숫자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소대장들은 정국이 약속했던 대로 그들에게 보급품 식량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머리를 조아렸고, 그런 그들에게 두 번째 임무를 나누어주었다. 평소 골칫거리였던 사탄 집중 출몰지역 소탕이었다. 소대장의 전달에 입을 모아 환호를 지르는 반응을 보며, 운전병은 정국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죽음 앞에 있는 놈들은 눈에 뵈는 거 없어. 내가 그랬거든.’

 역시 정국의 말 대로였다. 저들은 살기 위해 행동했다. 아마 앞으로도 살기 위해 행할 것이었다.



 지휘관의 명령이 없어서 2중대원은 딱히 임무 없이 쉘터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잔잔하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실험실 방향에서부터 달려온 부대원 하나가 숨도 미처 고르지 못한 채 헐떡이며 말했다.

 “치료제! 치료제가 완성 됐어!”

 그 말에 모두들 행동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게 진짜야? 어떻게 알아?”
 “방금 실험실 갔다가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말을 전한 부대원의 얼굴엔 환희가 차 있었다. 부대원들은 드디어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는 듯 환호했다. 그러나 이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럼… 중대장님…….”

 반나절 동안 했던 추측이 사실에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치료제가 개발됨과 동시에 정국이 사라졌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그를 목격한 건 어젯밤 실험실을 나오던 모습이었다. 그는 그 밤에 어디로 간 것일까.

 이 객관적 사실은 부대원들의 머릿속에서 과장되고 부풀려졌다. 중대장은 실험실에 갔다가 치료제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리자 사령관이 급히 중대장을 호출했다. 중대장은 지프를 타고 여의도 쉘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죽임을 당했다.

 “하, 끔찍해. 아닐 거야.”

 운전병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여태 정국을 조수석에 태운 채 대화를 주고받은 시간이 길었기에 그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각별했다. 운전병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부대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가정에 좌절해야 했다. 자신들이 따르는 독재자는 바이러스 발병 초기부터 보통이 아닌 자였지만, 이 정도로 잔인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못 믿어. 안 믿어. 확인해 볼 거야.”
 “그걸 어디 가서 확인해?”
 “전정호 영웅.”
 “아….”
 “동생이 죽는 걸 그냥 뒀을까? 난 안 믿어. 아무리 독해도.”
 “어쩌면… 도망친 건 아닐까?”
 “뭐?”
 “백신이 개발된 걸 알고 죽을까 봐 도망친 거지. 사령관에게 간 게 아니고. 전정호 영웅이 중대장님을 부산에 파견 보냈다고 했어. 그렇게 둘러대고 도망칠 수 있게 뒤를 봐준 건 아닐까? 이게 더 맞는 말 아니야?”

 또 하나의 가정이 나오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계엄군 시절, 도망 다니던 생존자 전정국이 스스로 면역체임을 알려왔을 때, 그를 직접 데리러 간 것은 전정호 소령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 동생의 허벅지에 주사기를 꽂았다고 했다. 다들 그 이야기를 듣고 작전장교가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는데,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건 동생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며 말한 적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국은 중위의 계급을 받았고 중대를 거느리며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중대장님 친구가 관사에 있어.”
 “친구?”
 “같이 도망치던 생존자 일행이라고 했어. 생체실험 할 뻔한 걸 간신히 구했거든. 그때 내가 가평에서 여기까지 태워줬어. 혹시 그 친구는 행방을 알고 있지 않을까?”

 정국의 행방에 대한 의문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대원들은 가정이 하나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정국이 죽은 거라면 상실감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폭주 상태였다. 그 와중에 운전병을 통해 진규의 이야기가 나오자 중대원 몇이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국이 지내던 관사는 용산 쉘터 안에 있기에 찾아가자면 코앞이었다. 더군다나 전정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국의 민간인 친구라면 말이 달랐다.



 부대원들은 당장 사실을 묻기 위해 관사로 향했다. 정국의 방을 찾아 문을 급히 두드리자 한참 뒤 손 하나가 없는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왔다. 부대원들은 진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중대장의 친구라고 하기엔 무척 볼품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일이세요?”

 진규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중대장님 어디 계십니까?”
 “…예?”
 “중대장님이 안 보이십니다. 혹시 어젯밤에 관사에서 주무셨습니까?”
 “아뇨…. 안 들어왔어요.”
 “중대장님께 연락은 없었습니까?”
 “네, 없었는데요. 무슨… 일이신데요?”
 “진실을 말해주세요. 저희는 중대장님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입니다.”

 진규는 정국을 찾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정국이… 무슨 일 있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진규의 얼굴을 보며 부대원들의 얼굴이 좌절감으로 물들었다.

 “중대장님을… 죽인 것 같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소리에 진규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죽였다는 말에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려왔다. 군인들은 정국을 죽이는 주체를 말하지 않았지만 진규는 알 것 같았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하, 중대장님을….”
 “…아뇨. 그럴 리 없어요.”

 진규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아는 전정국은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 그는 지민을 찾지 못했다. 여태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현명하게 이겨냈던 그였다. 그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애초에 면역체임을 밝히는 순간에도 정국은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가정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갔으니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썼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인물이다.

 “정국이는 절대 죽지 않아요. 모두 예상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도망쳤을 거예요. 정국이는 그런 애예요. 대단한 놈이거든요. 쉽게 가지 않아요.”

 매우 단호한 말투였다. 진규는 정국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규는 현기증이 일어 휘청거렸다. 군인들은 진규의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여전히 불안해했다.

 “중대장님이 도망쳤다면… 어디로 가셨을까요?”
 “하…….”

 진규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을 집중했다.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가평에서 일주일 동안 도망을 다녔을 때도 정국은 늘 생각지도 못한 솔루션을 내곤 했다. 그는 주어진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최선의 것을 선택했다.

 그 순간, 진규의 머릿속에 한 장소가 떠올랐다. 도망 다니는 내내 유일하게 계엄군에게 발각되지 않았던 곳이다. 카라반 장박지. 그곳에서 비록 사탄이 된 동물을 만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군인들에게 쉽게 들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사실 마음먹고 모든 산을 뒤진다면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닐 테지만, 이 상황에서 정국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진 않을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만약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도망친 거라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수도와 전기. 추운 날씨라는 것까지 더하면 가스가 포함될 것이다. 주거지역 바깥은 수도, 전기, 가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진규는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이 사실을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을 찾아온 이 군인들이 정말로 정국의 편인지, 아니면 그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찾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규는 숨을 흡 참으려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핏줄 전정호뿐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군인들은 진규의 대답에 한숨을 쉬었다. 애초부터 진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국은 쉽게 죽지 않을 거라는 단호한 말을 듣고 위안을 삼았다.

 “실례했습니다. 혹시 중대장님께 연락이 오면… 2중대 소대장을 찾아주세요. 어떤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군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진규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심장이 거세게 뛰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정국의 생사에 대해 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진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신음했다. 여태껏 정국이 자신을 살려준 것은 많았는데, 정작 자신은 그에게 도움 한 줄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감이 밀려왔다.





*






 실험실에서부터 사탄의 회복 소식이 들려왔다. 석진은 남준과 함께 용산으로 향했다. 지난번 실험체 폐기 이후 조금 변형한 치료제를 만들어 다른 실험체에게 투여했었다. 비로소 그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용산에 도착하자마자 헐레벌떡 실험실로 달려 들어갔다. 그곳엔 먼저 도착한 정호가 있었다. 정호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서서 철창 안에 있는 임상실험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령님.”

 석진이 그를 부르자 정호는 퀭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 드리워 있었다. 아무래도 정국과 지민을 떠나보낸 뒤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었다.

 철창으로 가까이 다가간 석진은 이내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다. 철창 안의 실험체가 한 구석에 가만히 선 채로 자신들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인식표를 보니 3기 사탄이었다. 새 숙주에 대한 집착이 유독 심해진 분류임에도 놀라운 변화였다. 사탄의 본능을 잃었다는 건 치료제가 성공적이라는 뜻이었다.

 공격성을 잃은 실험체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에 가깝긴 했지만 완전히 회복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뇌 기능은 어느 정도 회복한 건지 사지를 까딱거리며 움직이기도 하고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서 있는 식물인간 같았다. 겉모습의 회복량은 컸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부패한 듯 보이는 검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정국이가 어젯밤 이곳에 다녀갔다더군요. 아마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사님을 찾아간 모양입니다.”
 “아….”
 “박사님 보기엔 어떤 것 같습니까. 이 치료제는 성공인가요?”

 그의 물음에 석진은 조용히 남준을 쳐다보았다. 그에게도 의견을 구하는 의미였다. 남준은 입술을 말아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석진의 생각과 같은 것이다. 완벽한 치료제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해야 할까. 식물인간처럼 남은 생을 살게 되더라도 말이다.

 “네. 성공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본능을 잃게 하는 게 핵심이니까요. 이제 3기까지의 사탄은 잡을 수 있겠군요.”
 “정국이가 참… 힘들었겠네요.”

 정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치료제를 완성하기까지 삼 개월이 넘도록 수 없이 실험에 응해야 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신체가 변이했다가 돌아오는 괴로운 과정을 겪으며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었을까. 편한 삶을 버리고 위험을 택할 만큼 말이다.

 “사령관의 귀에도 들어갔겠네요. 이 소식이.”
 “네. 그렇습니다.”
 “이 치료제를 배포하려 하지 않겠죠?”
 “당연히 그렇겠죠. 조금 전에 사령관이 치료제 소식을 듣자마자 정국이를 찾았습니다. 부산으로 파견을 보냈다고 둘러댔지만요.”
 “…그렇군요.”
 “지민 씨의 골수 연구는 어떻게 되어갈 것 같습니까?”
 “계속 시도 중입니다.”
 “수고해주세요.”

 정호가 석진과 남준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리곤 발걸음을 돌려 먼저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석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준아, 이제 어쩌지.”
 “지민 씨 피에서 답을 찾아야죠.”
 “난 말이야. 치료제가 완성 됐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선배.”
 “아마 백신을 만들고 나서도 마찬가지겠지. 누구도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배포하지 못하면, 우리 뜻대로 안 되어 버리면…….”
 “저 그냥 한 말 아니었어요. 그 말.”

 석진은 남준이 김통수를 없애면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정호가 그랬다. 쿠데타는 쉽게 일으킬 수 없다고. 군사 반란이 아니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사탄이 된다면…….”

 저도 모르게 끔찍한 상상을 입 밖으로 내뱉은 석진이 고개를 털었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을 캐치한 남준은 눈에 이채를 보이며 석진을 마주보았다. 진지하고 단단한 눈빛에 석진은 마음을 다잡고 말끝을 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통수가 사탄이 되면.”
 “확실한 건 하나예요.”
 “뭐지?”
 “절대 그에게 우리가 만든 치료제를 놔주지 않을 거란 거죠.”

 남준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래. 그 날이 오면… 절대로 주지 말자.”





*






 정국은 스르르 눈을 떴다. 히터를 틀어 놓은 카라반 안은 긴 시간에 거쳐 비로소 온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나, 제 품에서 느껴지는 체온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정국은 지난 밤 내내 사랑을 나누었던 이의 몸을 꽉 끌어안고 그의 향긋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지민이 몸을 조금 꿈틀거리더니 조금 더 깊게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젯밤이 꿈은 아니었나 보다.”

 몇 번이나 뜨겁게 이어진 정사로 체력이 소진된 듯했지만, 날이 밝아 눈을 떴을 때 제 품에 지민이 있다는 사실은 또다시 그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위태로운 이 상황에서 연인과 함께 자고 깰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정국은 제게 있던 모든 안온함을 버리고 나서야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지민아, 눈이 내렸어.”

 카라반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간밤에 내내 내린 모양이었다. 올해의 첫 눈이었다. 첫눈이 내리는 동안 사랑을 나눴다. 우습지만 정국은 이 상황이 무척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눈이란 말에 지민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그의 동공이 열리자 정국은 얼른 볼에 입을 맞췄다.

 “굿모닝. 자기야.”
 “흐….”

 능청스러운 정국의 말에 지민이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아침부터 꼴린다.”
 “…….”

 지민은 대답 대신 그에게 볼을 비비며 다리를 얽었다. 정국은 장난스럽게 그에게 하체를 비비는 장난을 치며 표정을 살폈다. 날이 회색빛으로 밝아지니 지민의 얼굴이 붉어지는 변화가 잘 보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정국은 얼른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이마와 눈, 코, 입술, 볼에 마구 입술을 찍었다.

 “모닝섹스를 할 수 있는 삶이라니. 근사하지 않아?”
 “으응.”
 “도망치길 잘했어. 난 너만 있으면 돼. 지민아.”
 “나도…. 정국아.”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어야 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 그 모든 걸 해야 했다. 정국은 지민의 부드러운 살결을 천천히 매만졌다. 흰 눈이 쌓인 풍경, 따뜻한 카라반,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만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아침부터 이어진 정사 후에도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몸을 붙였다. 카라반 안에서 알몸을 끌어안은 채 창밖을 내다보며 또다시 펑펑 내리고 있는 눈을 구경했다. 먹을 것을 챙겨오지 않아 끼니를 때우진 못했지만,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가 울리는 것조차 즐거워 깔깔 웃었다. 당장 산을 뒤져 멧돼지라도 잡아오겠다며 큰 소리 치는 정국 때문에 지민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생존자가 전멸한 가평은 완전히 버려졌다. 정확히는 서울 쉘터로 주둔지를 이전하고부터였다. 정국은 어떻게든 시내나 주택가가 있는 곳을 찾아 먹을 것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생존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 꼭 그러더라. 위험에 빠진 주인공 둘 중에 하나가 잠시 어디에 다녀오겠대. 곧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래. 바보들 같아. 절대로 떨어지지 말아야지. 꼭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해서 헤어져.”

 정국의 말에 지민은 어깨를 떨며 웃었다. 명훈의 집에 숨어 있을 때, 옆집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며 자신만 두고 갔던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0분 안에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왜 웃어?”
 “선배도… 그랬잖아. 나 혼자 두고 가놓고선.”
 “아, 그건!”
 “할 말 없지?”
 “근데 왜 또 선배래? 이름 불러주면 얼마나 섹시한데.”
 “…말 돌리는 것 좀 봐.”

 귀를 빨갛게 물들인 정국이 제 앞에 안겨 있는 지민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창문 앞에 서서 장난치듯 몸을 꼼지락거리며 시시덕대다가 별안간 분위기가 야릇하게 흘러갔다. 정국은 웃음기를 거두고 창가에 지민의 몸을 딱 붙인 채 야릇한 접촉을 시도했다. 한 팔에 감기는 허리를 꽉 붙들고 그의 등줄기를 따라 입술을 찍어 내려가다가, 통통한 엉덩이를 벌려 여러 번의 정사로 발갛게 부어 있는 비부를 혀끝으로 적셨다. 지민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정국에게 붙잡힌 허리를 비틀었다.

 “이젠 절대로 안 떨어져. 형 혼자 안 둘게.”
 “…….”
 “멧돼지 잡을 때도 같이 가야 해.”

 전국 수배가 떨어지면 언제 잡힐지 모르니, 어딜 가든 무조건 지민과 함께여야 했다.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음에도 정국은 지레 겁먹지 않았다. 죽고 싶었으나 살고자 했다. 살고 싶으나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떤 일이 생기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기적이었으니.





*






 석진은 연구실에 앉아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사령관의 호출로 저녁 만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는 합참의장과 육해공참모총장들이 참석했다. 잘 다려진 제복 위에 매달려 있는 화려한 견장은 그들이 가진 군사력을 의미했다. 석진은 그 모임 안에 자신이 끼는 게 영 달갑지 않았으나, 치료제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호들갑을 떨며 먼저 술을 따라주는 분위기를 보니 사뭇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치료제 권력이 아닐까.’

 김통수는 술에 취해 치료제의 우수함에 대해 반복적으로 자랑했고, 앉은 이들은 술기운이 돌아도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느라 바빴다. 그건 분명히 사령관에게서 치료제를 받기 위한 눈물의 쇼였다. 3기 사탄바이러스 치료제를 손에 쥔 김통수는 갑이었고, 그걸 받으려는 이들은 완벽한 을이다. 마치 주종관계를 보는 듯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엄청난 군사력을 가졌음에도 작은 치료제 앰플 하나에 벌벌 떨 수밖에 없는 힘의 논리. 군의 충성에도 이유와 명분이 있다. 이제 군인들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사실 치료제를 가진 이는 김통수가 아니라 김석진인데, 그들 중 누구도 석진의 행보를 경계하지 않았다. 연구진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료제 상용화는 언제쯤으로 예정하고 계십니까?’

 석진이 샴페인 한 모금을 마신 후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묻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쉽게 무너졌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마 참석자들 역시 궁금해 하고 있을 사안이었을 것이다. 김통수는 그의 물음에 눈썹을 꿈틀 움직이더니 잠시 후 샴페인 잔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나중에. 필요할 때 말하도록 하지.’

 그의 말에 참석자들의 표정에는 실망과 불안이 미세하게 드리웠다. 석진은 예상하고 있던 사실을 한 번 더 낙인찍듯 확인받은 것이다. 김통수는 치료제를 감염자들에게 나눠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무소불위 권력을 나눠주고 싶지 않듯 말이다. 역시 그에게 있어 치료제 개발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구실에 돌아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석진은 안경을 고쳐 쓰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종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정국이 실험에 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구 과정을 세세하게 체크하고 기록해두었던 흔적이었다.

 그가 종이를 전부 챙겨 모았다. 그리곤 연구실 바깥으로 나가 공터를 찾았다. 모두가 잠든 시각, 석진은 조용히 라이터를 들었다. 바닥에 놓인 이 종이들은 몇 분 후 가치 없는 재로 변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쓰이지 않을 치료제처럼 말이다.

 치익, 소리와 함께 종이에 불이 붙었다. 치료제에 대한 자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딱 하나, 석진의 머릿속만 빼고.





*






 며칠이 흐르는 동안 눈은 끊임없이 내렸다. 정국은 틈만 나면 청평호가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서 혹시 군인들이 몰려오는 것은 아닌가 확인했지만, 폭설로 발이 묶인 탓인지 고요하기만 했다. 중간 중간 지프의 라디오를 켜 자신에 대한 수배령과 같은 소식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지만 그 역시 별다른 게 없었다. 여전히 라디오에서는 독재자와 군 정부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다. 아직 도망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마도 정호가 무슨 수라도 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 고요함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끼니를 때우기 위해 두 사람은 한 차례 가평 시내로 향했다. 컴컴한 밤, 전조등을 켜지 않고 도로를 달려 폐허가 된 마트 건물을 뒤졌다. 이미 이전에 생존자들이 한 바탕 쓸고 나간 듯 출입구는 망가져 있었고, 손전등으로 비추어 본 내부에는 각종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어질러져 있었다. 정국은 지민의 손을 꼭 잡은 채 닥치는 대로 먹을 것들을 챙겼다. 주로 즉석식품류였다.

 그렇게 무사히 카라반으로 돌아오고 나니 안도의 숨이 터졌다. 왠지 이런 식이라면 쭉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면 서로의 몸을 끌어안은 채 이불을 꼼꼼히 덮었다. 카라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LPG가스와 배터리의 양은 한정되어 있고, 추운 날씨에는 난방이 필요했다. 장박지에 있는 카라반은 다섯 대. 배터리와 가스통을 갈아 끼워가며 쓴다고 하더라도 마냥 오래 버틸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난방을 낮추고, 정국은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지민을 꽉 끌어안고 끊임없이 입을 맞췄다.

 “섹스 할까?”
 “응….”

 체온을 나누는 키스는 금방 짙은 행위로 이어졌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두 사람에게 그것만큼 위안을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정국은 지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져도 모자라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 위에서 허리를 움직이며 하나로 연결되는 모든 과정이 애탔다. 조바심일까. 혹시 눈 깜빡할 사이 모든 것이 끝나버릴까 봐.

 “정국아…. 추워….”

 사정 후 땀이 식어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지민을 볼 때면 또다시 심장이 쿵 떨어졌다. 정국은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만약 카라반의 생명이 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걱정하고 싶진 않았으나, 자신에 비해 연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지민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다. 정국은 가물가물 잠에 빠져가는 그의 차가운 몸을 더 빈틈없이 안아주었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했으나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했다. 지민은 종종 정국을 향해 지금 자신은 무척 행복하다고 했으나, 그것이 오롯이 행복만 담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봤자 두 사람은 도망자 신세였다. 언제 어떻게 불행이 닥쳐올지 모르는 시한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정국은 고뇌에 빠졌다.



 카라반 다섯 대에도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그 중 하나에는 잊고 있던 이가 살고 있다. 정국은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조금 두려워 미뤘으나 아무래도 더 늦어지기 전에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지민의 손을 꼭 잡은 채 카라반 바깥에 서서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새까만 생명체가 괴성을 지르며 창가로 달려들었다.

 “명훈아.”

 크으, 크으으으, 커억.

 정국의 인사에 답하듯 명훈은 새까만 입을 쩍 벌리며 걸쭉한 침을 줄줄 흘렸다. 오랜 시간 새 숙주를 구경하지 못했던 탓인지 굶주린 짐승처럼 사나웠다. 정국은 지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기 직전 실험실에 들렀다가 자신을 봐도 달려들지 않던 실험체를 떠올렸다. 박사의 말에 의하면 사탄의 본능을 없애는 것이 치료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제 치료제가 완성에 가까이 도달한 것이었다.

 “오랜만이지 인마. 널 살려주려고 했거든. 근데 너무 늦었다. 이제야 치료제가 완성 됐는데… 정작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명훈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정국의 말에 지민이 놀라 깍지 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정국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치료제가 완성된 걸 확인했거든.”
 “…정말?”
 “그걸 박사에게 전하려고 갔다가 네가 살아 있단 걸 알게 된 거야.”

 정국은 지민을 품에 꽉 끌어안고 그의 정수리에 턱을 몇 번 비볐다.

 “그럼 이제… 사탄이 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아니.”

 단호한 대답에 지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치료제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애초부터.”
 “그럼 대체… 네가 그렇게 고생했는데….”
 “나는 권력에 이용당한 것뿐이야.”

 정국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지민의 손을 붙잡고 지프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켜니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군의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 ……완성된 치료제는 1기부터 3기까지의 사탄바이러스에 효과를 보이며…… 군 정부에 충성하는 이들을 심사하여…… 」

 “봐. 벌써 시작됐어.”

 치료제 개발 성공 소식을 알리고 군 정부에 충성하는 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치료해줄 거라며 희망을 심어준다. 이 방송을 듣는 군인들은 혹시 모를 감염의 불안에서 벗어나 군 정부에 충성을 다할 것이며, 주거지역과 쉘터에 사는 이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또한 주거지역 바깥에 방치된 생존자들의 반군사상은 점차 흔들리게 될 것이다.

 지민은 화가 나는 듯 주먹을 꼭 쥐고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 치료제 개발을 위해 긴 시간 정국과 떨어져 있어야 했던 것도 억울하고, 그가 고통을 이겨가며 이용당해야 했던 사실도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속상했다.

 “정국아, 그럼… 백신은…….”
 “그건 아마 다를 거야.”

 정호의 쉘터에 지민을 숨겨놓고 박사와 연구원까지 함께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치료제의 경우와 다르다는 걸 의미했다. 대체 그들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깊게 생각하기에는 피곤했다.

 정국은 도망치기 전의 모든 것에 대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방어 또는 도피였다.





*






 정국과 지민이 도망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석진은 여전히 어두컴컴한 연구실에서 불철주야 지민의 골수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남들과는 다른 혈액을 만들어내는 근원을 찾은 것이다. 석진의 예상대로 그의 골수에는 특별한 효소가 있었다. 적혈구 생성 과정에서 일반적인 혈액에 존재하는 160여개의 혈액인자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효소의 단백질 구조가 다른 사람의 신체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석진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







 - 지민이… 어디 있어요?
 - …전 중위님.
 - 흐윽… 지민이, 어디 있냐고. 말해. 당장.

 “잠깐.”

 지난 도청 내역을 돌려 듣던 김통수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간 연구실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는 별다를 것이 없었기에 이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김통수는 소파에 허리를 깊게 묻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다시 그 혼란한 대화 내용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말해.
 - 제발, 잠깐만요.
 - 말… 하라고 했어. 죽이기 전에.
 - 쨍그랑!

 격앙된 정국의 목소리. 당황한 듯한 석진의 목소리. 저렇게 끝나버린 대화까지 모든 것이 수상했다. 무언가를 숨기는 박사와 분노하는 전 중위. 김통수는 냄새를 맡은 포식자처럼 눈을 치켜떴다.

 “전정국에게 전화해.”
 “일주일 전에 부산 쉘터로 파견을 나간 뒤로 전화연결이 안 됩니다.”
 “그래?”

 그가 실소를 터뜨렸다. 마침 타이밍이 짜 맞춘 듯했다. 3기 바이러스 치료제가 완성되자마자 연락두절 된 면역체라니. 게다가 어딘지 이상한 박사와의 대화까지 종합했을 때 좋지 않은 낌새라는 것은 확실했다.

 “지민이라….”

 김통수는 정국이 찾는 지민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김통수는 곧바로 여의도 쉘터와 송파 쉘터의 CCTV 내역을 뒤졌다. 그러나 한 번 더 수상한 점을 찾아내고 말았다. 비슷한 시간대에 송파 쉘터의 CCTV 내역이 모두 삭제된 것이다.

 “재밌게 돌아가는군.”

 슬슬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김통수는 향긋한 차를 마셨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일이 전정호와 전정국, 그리고 연구진과 수상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더 많은 것을 캐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총사령관이기에 닿지 못할 구석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산 쉘터에 내려간 이들 중 정국이 없다는 것. 그리고 김남준 연구원이 주기적으로 송파 쉘터 꼭대기 층에 드나든다는 것도.



 김통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바로 정호의 귀에 들어갔다. 사령관의 측근이 부산 쉘터에 전화해 정국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눈치 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민의 존재가 탄로 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자신을 포함해서 김석진 박사와 김남준 연구원까지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했다. 이제 정말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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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이 보이는 건가요ㅜㅠㅠ 부디 새드엔딩이지 않기를.....ㅜ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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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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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an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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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High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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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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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미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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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갈  | 190831   
통수야... 오래 살았잖아... 이제 그만 죽어도 되지 않을까...? 권력도 가지고... 명예도 가지고... 세상도 가져봤으니... 치료제 정도는 못가져보고 가도 되지 않을까...? 편안하게 보내줄게 개새끼야...
하늘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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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림  | 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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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blue  | 190831   
헛..... 부디... 부디 다 무사해야 하는데요...ㅠㅠㅠㅠㅠ 물론 김통수 빼고요 저 사람은 전혀 무사하지 않아도 돼요 ㅠㅠㅠㅠㅠㅠ
호버  | 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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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리얼!  | 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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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원  | 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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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쿠쿠  | 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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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 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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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꾹꾹이  | 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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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놀라  | 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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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르  | 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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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99  | 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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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 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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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하세얌  | 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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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이  | 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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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 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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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이  | 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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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꾸기  | 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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