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ALL 돌연변이 (54) 아는 애 (27) 아마겟돈 (33)
아마겟돈 27 랠리 씀

Tchaikovsky - Valse Sentimentale

아마겟돈
27


‘사탄’과의 전쟁













 아침 일찍부터 쉘터 내부의 인터폰이 울렸다. 누가 온 거지? 정호는 나갈 채비를 하다 말고 멈춘 채 숨을 들이마셨다. 조용히 권총을 품에 챙기며 출입구 쪽을 경계했다. 설마 이렇게나 빨리 김통수가 움직인 걸까? 군부 독재 정권에서 독재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군사력이다. 그렇기에 군사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명분이 필요하다. 정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김통수가 자신에게 함부로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호는 반사적으로 불안해했다. 그는 자신이 태연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그를 찾아온 건 2중대 소속의 소대장이었다. 정호는 그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 초면에 가까웠는데, 연락망을 이용하지도 않고 급히 쉘터에 찾아온 것을 보며 의아함을 갖출 수 없었다. 아무리 무언가가 궁금하다거나 전할 말이 있다고 해도 상관의 방문을 두드리는 패기를 부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중대장님께서 친위군을 조직하셨습니다.”

 소대장의 말을 들은 순간 정호는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의 말투는 털어놓는 건지 고자질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호는 가만히 앉아 팔짱을 낀 채 침묵했다. 어서 다음 말을 해보라는 표시였다.

 “용산 쉘터 근처를 전전하는 반군들이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아니, 차라리 지금 죽여 달라고 하는 놈들이었습니다. 중대장님께선 먹을 것을 나눠주시고 놈들에게 사탄 소탕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예?”
 “그래서 그 행동에 대한 자네의 판단은?”

 정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소대장의 울대뼈가 출렁였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이 중대장님께 충성한다면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효창공원에 모여든 숫자는 조만간 중대 규모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정국이 효창공원 부지를 예비초소로 쓰겠다고 한 까닭을 방금 깨달았다. 동생의 성정으로 봤을 때, 살려달라고 몰려든 이들을 차마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정국은 자신과는 달리 군 조직에 미숙한 상태니 얼마든지 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사사로운 감정을 ‘친위군’ 쪽으로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호는 각 잡힌 자세로 서 있는 소대장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고작 친위군의 존재를 전하기 위해 아침부터 찾아왔을 리는 없으니 이것은 서론에 불과할 터였다.

 “알겠고, 이제 본론을 얘기해 봐.”

 정호가 제복 재킷을 걸치곤 응접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대장은 조금 뜸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이곳에 온 용건을 털어놓았다.

 “중대장님, 살아계십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치료제가 완성된 후 연락이 끊어졌다는 거, 모르실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도망치신 거라면 그렇다고 말씀해주십시오. 부대원들은 혹시 돌아가셨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실험에 응하셨잖습니까. 그게 완성 되었다고 해서 버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인간 말종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소령님, 저는 지금 목숨 내려놓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소대장이 정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호는 조용히 권총을 들어 총구를 그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소대장은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네가 지금 한 말은 총사령관에 대한 반역이다. 알고 있나?”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소대장이 몸을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다. 정호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이건 최소한의 시험 과정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충성하는 부하를 가볍게 버리는 우두머리는… 따를 수 없습니다. 이런 게 반역이라면… 죽이십시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중대장님처럼요.”

 그의 말에 정호는 대답 없이 총을 장전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쉘터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탄환을 채운 권총은 다시 소대장의 이마에 닿았다. 언제 토해낼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그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았다.

 “…….”

 살 떨리는 긴장의 끈은 계속 이어졌다. 총알이 자신의 머리를 박살낼 것을 기다리고 있던 소대장은 이상하리만치 변화 없는 상황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리곤 마침내 제 이마에 닿았던 총구가 떨어지는 감촉을 느꼈을 때는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정호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죽었대? 내 동생.”
 “…소령님.”
 “중대장은 도망쳤을 뿐이다.”
 “하아…….”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소대장이 무너지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자네가 전정국의 부하라는 건 확실히 알았어. 질투 나는데. 녀석이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정호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소대장의 군복에 있는 소위 계급장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러자 소대장이 대답했다.

 “제가 사탄에 물리려던 순간, 중대장님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을 사탄에게 대신 물리셨습니다. 심지어 모두 중대장님께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했을 때였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면역이 있다고 해서 백프로 이겨내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중대장님은 확률싸움 중이시라고요.”

 눈앞의 소위는 정국의 행동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변이할 확률을 등에 업고 제 팔을 박아 넣었다는 것이. 적어도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국은 그렇게 천천히 부대원들에게 신뢰를 쌓아왔나 보다.

 “좋아. 중대장을 향한 절절한 고백은 살아 돌아온 뒤에 직접 하도록 해. 그럼 이제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볼까.”
 “…중대장님을 찾아야 합니다.”
 “또.”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또.”
 “친위군을… 키우겠습니다.”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정호가 손가락을 비틀어 딱! 소리를 냈다.

 “자네의 충성을 기억하는 이가 꼭 있을 거야.”





*






 정호가 석진을 찾아가자 그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맞이했다. 지프의 조수석에 올라탄 석진은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찾았습니다. 지민 씨의 골수에서요! 이 효소를 이용한다면 혈액인자를 파괴할 수 있어요. 지민 씨의 혈액처럼 바이러스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겁니까?”
 “지민 씨처럼 바이러스를 잠복 상태로 만들 수가 있죠. 감염은 되었지만 변이하지 않는 겁니다.”
 “잠복은 하지만 변이하지 않는다라…. 어쨌든 백신의 역할은 한다는 말이겠군요. 그래서 박사님께서 보기 드물게 들뜨신 건가요?”
 “네. 사실 완벽한 백신이 될 수는 없지만 변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치료제가 손상된 신체를 완벽히 되돌려주지 못해도 바이러스는 치료하는 것처럼요.”

 백신의 성과는 사실상 치료제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사탄이 된 뒤 미완성의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애초부터 사탄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호의 반응은 낮게 가라앉아 있기만 했다. 눈치 빠른 석진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 거죠?”
 “김 박사님. 그 백신, 당장 만들 수 있는 것 맞나요?”
 “…네. 효소를 발견했으니 혈관에 주입할 수 있게 조금만 수정하면 됩니다. 물론 대량 생산은 어렵겠지만요.”
 “이 사실을 김통수가 알게 되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지는군요.”
 “아마… 더 좋아하겠죠. 치료제보다 더요.”

 석진의 대답에 정호는 말없이 담배를 물었다. 그리곤 흰 연기를 짧게 훅, 뱉더니 누구나 두려워할 말을 했다.

 “사령관이 알아차렸습니다.”

 무엇을 알아차렸다는 건지, 목적어는 빠져 있었지만 석진은 알 수 있었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거라고.

 “마지막 기회입니다.”
 “…기회요?”
 “미리 알고 계세요, 그리고 준비하세요.”

 정호의 말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






 정국은 불덩이처럼 뜨거운 지민의 몸을 부둥켜안고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간밤에 잠자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몇 시간 사이 심한 고열에 시달리며 간헐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일까. 잠결에도 그의 몸이 뜨거운 걸 알아채고 놀라 눈을 뜰 정도였다. 정국은 덜컥 겁이 났다. 그의 열을 내리기 위해 이불을 걷어놓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그러나 지민은 사경을 헤매는 사람처럼 눈도 뜨지 못하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추워…. 정국아… 나 추워….”

 파랗게 질린 아랫입술을 달싹이며 자신의 체온을 찾아 안기는 모습에 정국은 울컥 눈물이 났다.

 “지민아, 박지민.”
 “…으응.”

 이름을 부르면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했고, 간헐적으로 눈꺼풀을 열어 깜빡일 때는 실핏줄이 터진 흰자가 보였다. 고열에 시달리느라 입술은 바싹 말라서 거스러미가 일어났다. 정국은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상 모를 화가 치밀었다.

 “안 되겠다. 약국 찾아볼게.”

 정국은 당장 지프를 타고 시내로 나가 약국 건물을 쓸어올 생각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어렵게 팔을 뻗어 자신의 손을 붙잡는 지민 때문에 멈춰야 했다.

 “약속… 약속했잖아. 같이… 항상… 같이…….”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지민의 상태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을 정도다. 정국이 그의 몸을 일으켜 앉히자 어지러운지 가느다란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지민이 열병을 앓다가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정국은 담요로 지민의 몸을 꽁꽁 싸맨 후 들쳐 안았다. 그를 지프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눈이 쌓여 있는 산길을 오르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도로 상황도 좋지 못했다. 눈이 녹은 자리에는 추위로 인해 얼음이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몇 번이나 바퀴가 얼음에 미끄러졌다. 그럴 때마다 지민은 가누지 못하는 머리를 차창에 부딪치며 괴로워했다.

 어렵사리 시내에 들어서 닫혀 있는 약국의 유리문을 총알로 박살냈다. 정국은 해열제부터 온갖 감기약까지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무사히 카라반 장박지에 도착하는 내내 온 신경은 옆자리에서 인형처럼 흔들리는 지민을 향해 있었다. 그 순간에는 군인들에게 발각될 걱정 따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만약 가평에 들어와 정국을 찾는 군인들이 있었다면 쉽게 붙잡혀버렸을 것이다.

 해열제를 먹고 나서야 한소끔 가라앉은 열에 정국은 비로소 긴 한숨을 뱉었다. 펄펄 끓는 고열은 잡혔지만 여전히 지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뜨거운 숨만 색색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정국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손을 붙잡고 있었다. 정국은 그의 감은 눈두덩과 콧망울, 입술, 볼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숨죽여 울었다. 무작정 도망쳐 왔으나 자신이 지민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옆에 있는 것 말고는 없었다.

 이곳으로 도망친 지 일주일. 그동안 몇 번이나 카라반을 옮겨가며 생활했다. 이제 난방과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카라반은 단 두 대만 남아 있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더 이상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지민이 계속 아프면 어떻게 하지? 정국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했다. 그를 데리고 도망친 건 실수였나. 죽을 날만 세고 있는 의미 없는 도피인 것일까.

 “지민아, 하…. 지민아….”

 행복한 건 맞는 걸까. 벗어났다는 감상에 취해 불안을 행복으로 위장한 건 아니었을까. 그와 단둘이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을 줄 알았다. 서로만 있다면 어떤 것도 다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연인의 열병 하나에도 초라하게 무너지는 것이 정국이 느낀 무능한 사랑이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도 없잖아.





*






 정호는 가만히 선 채 식사 중인 김통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호출해놓고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속이 뒤틀렸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조용히 눈동자를 돌려 사령관의 집무실 안을 훑었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공간 안팎으로 무장 군인들을 세워놓았다. 여의도 쉘터며 청와대며 자신이 밟는 곳 모두는 안전을 위해 애쓴 노력이 엿보였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이제는 집무실에 들어가기 직전 소지품 검사를 당하기도 했다. 무장 군인들에게 권총을 압수당하며 정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마도 저 자를 가까이서 지키는 이들에겐 백신이나 치료제 따위를 주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 챘으니 제 편을 더 단단히 만들기 위해 주변에 무슨 수라도 써놓았을 게 분명했다.

 “전정호 영웅.”
 “네.”

 식사를 마친 김통수가 찻잔을 호록거리며 이름을 불렀다.

 “왜 거짓말을 했는가?”
 “…….”

 이렇게까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 정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눈을 맞췄다. 김통수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치료제가 완성되자마자 자네 동생이 사라졌지. 이건 자네가 빼돌린 거라고 봐도 되겠나?”
 “…….”
 “또 하나, 김남준 연구원이 자네 방에 자꾸만 드나들더군. 그건 뭐라고 설명할 거지? 아, 건강 관리차원이란 말은 하지 말게. 내가 다음에 말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거라고 확신하니까.”

 지금 대답을 잘못 했다가는 무장 군인들의 총에 당장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정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바로 자신에게 거칠게 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그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민이란 사람은 누구지?”

 기어코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름이 나오고야 말았다.

 “전 중위가 그 사람을 애타게 찾는 모양이던데, 애인이라도 되나? 하필이면 송파 쉘터의 CCTV가 삭제되었지 뭐야. 그걸 통제할 수 있는 건 자네뿐이지. 자, 여기서 나는 이런 추론을 하게 돼. 지민이란 사람이 자네의 쉘터에 있었던 거야. 그 사실을 전 중위는 몰라야 했고. 근데 왜 연구원들은 그 사람을 알고 있을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음, 그렇겠지. 당연히 모르는 일이어야 하겠지.”

 김통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중위는 어디 있나?”
 “잘 모릅니다. 부산에 가겠다고 해서 허락했을 뿐입니다.”
 “나는 자네를 참 믿었기에 특별한 권력까지 쥐어줬어. 내 선택이 잘못됐던 거였나?”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증거가 없으니 가져오란 소리군?”

 군과 권력의 생리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아는 김통수였다.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아도 정호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까닭을 알고 있었다. 증거. 증거가 없으면 명분도 없다. 명분이 없는 움직임은 정권을 흔든다.

 “자네는 결백한가?”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자네를 잠시 모셔둬도 되겠지.”

 그 말은 곧 감금을 뜻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좋아. 부디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

 김통수는 빙긋 웃으며 지키고 서 있던 무장 군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끌고 가.”

 짧은 명령과 함께 정호의 양 팔이 결박 됐다.





*






 지민의 효소로 시약을 만드는 과정은 빨랐다. 석진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한 상황에서 더더욱 연구에 집중했다. 대외적으로 개발 중인 치료제와는 달리 비밀리에 진행하는 효소 시약은 임상실험을 진행할 수 없다. 쉘터를 옮겨온 후부터는 김통수가 주문한 백신을 위한 생체실험도 거의 하지 못했다. 계속 진행해오던 백신 연구의 결과물인 척 임상실험을 진행하는 방향도 생각해 보았지만, 만에 하나 효소로 만든 시약이 백 퍼센트 효과를 보인다면 김통수의 귀에 들어갈 터였다. 괜한 일을 키우는 것이 싫었기에 석진은 꽁꽁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즉, 이 시약의 효능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폭풍전야다. 만약 김통수가 사라지게 된다면 백신도 치료제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 날이 정말로 올 수 있을까? 정호가 어떤 계획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준비하라고 했다. 석진은 고요한 실험실 안에서 조용히 그 ‘준비’를 시작했다.

 일이 터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헐레벌떡 연구실로 뛰어 들어온 연구원들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김남준 연구원이 잡혀갔어요!”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연구원들은 커다란 총을 매달고 있는 무시무시한 군인들이 남준을 다짜고짜 질질 끌고 갔다면서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석진은 이마를 짚었다. 아직 남준과는 이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석진은 당장 연구 가운을 벗어 던지고 뛰쳐나갔다. 정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여의도 쉘터의 앞마당을 달리던 석진은 걸음을 멈췄다. 정호까지 연락 두절 되었으니, 드디어 시작된 거였다.

 석진은 주차되어 있는 지프들을 살폈다. 사령관이 타고 다니는 지프가 자리에 서 있었다. 그건 사령관이 이 여의도 쉘터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석진은 남준이 이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석진은 마구잡이로 달리며 쉘터 안에 있는 수많은 방들을 뒤졌다. 마지막으로 사령관의 집무실 앞까지 찾아갔지만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늘 그 앞을 빼곡하게 지키고 있던 무장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으니, 분명히 김통수가 남준을 데리고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생각해내려 했다. 지하. 이 쉘터의 지하는 어떤 용도로도 사용된 적 없었다. 석진은 이를 악 물고 비상구 계단을 타고 달려 내려갔다. 추운 겨울이지만 온몸에 땀이 솟았다. 혹시 지하에서 남준이 몹쓸 짓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이 아닌 남준을 데려간 이유는 분명히 송파 쉘터를 드나들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남준이 수석연구원이긴 하나, 제 멋대로 제2아지트에 보낼 만큼 값어치 없다고 생각할 테니 비상식적인 행위를 가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마침내 지하로 내려가자 복도 초입부터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석진은 급히 달려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 문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를 저지하며 막았다. 허가되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으윽…! 아악!”

 그때 문 너머로 남준의 신음이 들렸다. 석진은 순간 눈알이 뒤집히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가 자신을 저지하는 군인들을 거칠게 뿌리치며 실랑이하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안에 있을 김통수를 향한 것이었다.

 “내가! 내가 다 말할게요! 그만 둬! 문 열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소리에 그의 팔을 붙잡고 막던 군인들이 서로 눈짓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김통수가 보였다. 석진은 그의 얼굴 너머로 앉아 있는 남준을 발견했다. 폭행을 당했는지 엉망이 된 몰골로 늘어진 채 묶여 있었다. 그의 앞에는 주사기와 무시무시한 공구가 펼쳐져 있다. 끔찍한 기분에 석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하실 안은 생체실험을 할 때보다 더욱 음침하고 소름끼치는 분위기였다. 한 구석에 방역복도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남준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투여해 사탄으로 만들 작정인 모양이었다. 석진은 엉망이 된 몰골로 정신을 잃은 남준을 보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김 박사가 찾아올 줄은 몰랐네. 치료제를 완성하고 나니 시간적 여유가 좀 생긴 모양이군.”
 “…그만 두시죠.”
 “그래. 뭘 말하겠다는 거지? 김 박사가 무슨 폭탄을 터뜨려 줄지 기대되는데.”

 김통수는 꼬아 앉은 다리를 달랑거리며 흥미로운 듯 웃었다.

 “당신이 알고 싶은 건 한 사람의 정체 아닙니까?”
 “음, 이 연구원은 자꾸만 자기 첫사랑이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요. 지민 씨는 전 중위가 찾던 사람입니다. 계엄군이 되기 전 함께 있던 일행이에요. 그 사람을 찾으면 전 중위가 실험을 팽개치고 지금처럼 달아날까 봐 숨겨둔 거였어요.”
 “흐음….”
 “그래서 전 소령님도 함구했던 겁니다. 별것도 아닌 걸 알아내려고 사람을 이 지경으로 괴롭힙니까? 이렇게 하시면 제가 사령관님을 위해 일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김통수의 미간이 구겨졌다.

 “일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서운한 소리지. 이 봐 박사,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이 나라에 아직 연구원은 많다고 했지.”
 “그럼 어디 다른 연구원 데려다 놓고 처음부터 연구해보시죠. 전 중위님도 사라진 마당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가 뭘까, 고민이 드네.”
 “치료제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직 제 머릿속에만 있죠. 심지어 다른 연구원들조차 모릅니다. 이건 오직 저 혼자만 알고 있는 거거든요.”

 석진의 말에 김통수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노려보았다. 석진은 지지 않고 그에게 맞서며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이판사판이다. 김통수는 서 있던 무장 군인 둘을 불러 턱을 까딱였다. 그 순간 석진은 공포감이 들었으나, 그들은 석진에게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지하실 문을 빠져나갔다.

 “김 박사, 제법이야. 배신감이 들려고 해.”
 “저도 제 몸 하나 지킬 구석은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비를 베풀면 고마워할 줄을 몰라. 끊임없이 의심을 해. 편안한 생활에 명예까지 쥐어줘도 보험을 들어두려 하지. 김 박사도 전 중위도.”
 “그건 원한 적 없는 자비라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사탄을 피해 다니며 뒷간에서 연구하는 게 마음은 편했겠네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석진을 보며 김통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의 두터운 손바닥이 석진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 바람에 석진이 쓰고 있던 안경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자꾸 나불대면 곤란해. 자네들의 숙소와 연구실을 모두 뒤져 뭐라도 나올 시에 무릎 꿇고 살려 달라 빌 구석은 만들어 놔야하지 않겠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석진은 얼얼한 뺨을 매만지며 비웃었다.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 남준을 보니 눈물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자신과 남준이 하려고 한 건, 단지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들뿐이었다.



 김통수가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인해 목구멍이 텁텁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실은 어느새 희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해 곧 질식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 또한 폭풍전야다. 석진은 지금쯤 자신의 연구실과 숙소를 샅샅이 뒤지고 있을 군인들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 쉬었다. 숙소에는 지민의 효소로 만든 시약 세 개가 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한참 뒤 지하실 문이 열리고 무장 군인들이 상자 하나를 김통수에게 전달했다. 그 안에는 사탄바이러스 3기 샘플, 그리고 효소 백신이 담긴 튜브 등이 뒤섞여 있다. 석진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남준 역시 이 상황을 파악하고자 불안한 눈빛을 했다.

 “이게 뭐지?”

 김통수는 튜브 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벨에 쓰여 있는 ‘null’이라는 글자를 확인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놀란 남준이 헐레벌떡 말했다.

 “제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연구하던 겁니다.”
 “흐음….”

 ‘null’이라는 단어를 도청기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기에 남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워졌다. 하지만 김통수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군. ‘null’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남준 연구원의 첫사랑 이름은 지민이고, 전 중위가 애타게 찾던 사람 역시 지민이다. 전 소령은 제 동생이 지민을 찾으면 도망칠까 봐 쉘터에 숨겨두었다. 아, 그럼 김남준 연구원이 송파에 들락거린 건 첫사랑이 생각나서인가?”
 “…….”
 “아,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야. 해골부대의 행동강령 중에 이런 게 있어. 쓸모없는 것들은 죽이거나 사탄굴에 던진다.”
 “…….”
 “그래서 지민이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생각해 봤지. 그런데 하필이면 김남준 연구원이 제2아지트에 가 있었다는 게 떠오르지 뭐야.”

 남준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망했다는 뜻이었다.

 “자, 그럼 시나리오를 바꿔볼까. 전 중위가 찾던 지민이란 사람은 용케 살아남았다. 김남준 연구원은 제2아지트에서 그를 발견하고 연구했다. 혈액인자가 없다는 그 ‘null’은 지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박사는 지민을 연구하기 위해 전 소령의 쉘터에 숨겼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전 중위가 결국 알아챘다. 흠…. 아마 몽유병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신호였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전 중위는 그를 데리고 도망쳤다.”

 말을 끝낸 김통수가 스스로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는 지난 도청 내역을 꼼꼼하게 살핀 모양이었다. 이제는 저 말에 반박해야 한다. 하지만 남준은 눈앞이 캄캄해졌기에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가정을 바꾸니 모든 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지 김 박사?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건가?”
 “…….”
 “아까는 잘만 덤비더니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을까. 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봐야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김통수가 손짓하자 무장하고 있던 군인이 방역 장갑을 끼고는 ‘null’이 쓰여 있는 튜브에 빈 주사기 바늘을 꽂아 넣었다. 석진과 남준의 눈이 크게 뜨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튜브에 있던 효소 백신은 주사기 안에 천천히 채워졌다.

 “자네는 김 박사의 좋은 후배인 것 같아. 주사도 대신 맞아주고 말야.”
 “윽!”

 순식간에 백신이 담긴 주사 바늘이 남준의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투박하게 찌르고 들어온 바늘은 남준의 혈관을 험악하게 침범했다.

 “무슨 짓입니까!!”

 석진이 소리를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남준의 몸 안으로 백신을 투여했다. 남준은 뻐근한 감각을 느끼며 입술을 꽉 물었다. 주사바늘이 다시 빠져나가고, 김통수는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남준을 살폈다. 주사를 맞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신체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방금 맞은 주사가 뭔지 말해 봐.”
 “으….”
 “대답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것 같군.”

 김통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장 군인들이 남준을 묶어두었던 사슬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조금 더 단단하게 둘러 묶고는 사탄바이러스 샘플을 꺼내들었다. 그걸 보자마자 석진이 악을 썼다.

 “하지 마! 하지 마! 미쳤어!!!”

 발버둥 치며 막으려는 몸짓에 다른 군인들이 석진의 양 팔과 어깨를 결박하며 구석으로 끌고 갔다. 석진은 그들과 실랑이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샘플을 집어든 군인이 이번에는 다른 주사기에 바이러스를 담았다. 남준은 자신에게 바이러스를 투여하기 위해 다가오는 군인들을 보며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제발 이 백신이 제대로 된 것이길 바랄 뿐.

 “으윽….”

 또다시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바늘에 남준은 이를 악 물었다. 주사기 피스톤이 눌러지며 지독한 3기 사탄바이러스가 남준에게 투여됐다.

 “이런…….”

 김통수는 멀찌감치 선 채로 입을 쩍 벌렸다. 사탄바이러스가 끝까지 다 투여되었음에도 남준의 상태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모습으로 의자에 묶여 있는 남준을 보며 김통수가 작게 실소를 터뜨리더니, 이내 큰 소리로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석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하, 이런 깜찍한 걸 숨겼단 말이지?”
 “…….”
 “백신! 백신을!”

 김통수가 석진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위협적인 얼굴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소리에도 석진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전 중위와 함께 도망친 그 녀석이 대단한 면역체였던 거야! 김 박사, 서운한데? 왜 백신만 숨긴 거지? 치료제는 완성해놓고! 왜!”
 “…배포하지 않으실 거였잖아요.”
 “뭐?”
 “저는…… 배포를 위해 약을 개발합니다.”
 “하!”

 어이없다는 듯, 김통수가 거칠게 그의 옷깃을 놓으며 펄쩍 뛰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속이고 이런 백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치료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이 백신은 완벽했다. 애초에 감염조차 되지 않으니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김통수는 성큼성큼 걸어 빈 주사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상자 안에서 ‘null’이라고 쓰인 튜브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바늘을 꽂아 주사기 안에 시약을 담고, 그것을 자신의 팔에 꽂아 넣는 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김통수의 몸 안에 백신이 들어갔다.

 “박사, 얼른 이 백신을 많이 만들어 줘야겠어.”
 “…만들지 않을 겁니다.”
 “오, 그럴 순 없지. 박사가 아니면 이 약을 만들 사람이 누가 있지? 자네는 만들게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김남준 연구원의 시신부터 보게 될 테니까.”

 끔찍한 협박이었다. 세상을 제 발 아래에 둔 거만한 자가 백신까지 맞았으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석진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전정호는 처형될 거야. 이렇게 중요한 백신을 숨겼으니 온 국민이 분노하겠군.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겠어.”
 “…….”
 “사흘 뒤까지 다섯 개 만들어 내.”

 김통수는 나머지 백신 하나를 챙겨들었다.

 “아주 즐거운 쇼가 벌어질 거야.”







 처형일 이틀 전



 다음 날 용산과 송파 쉘터 안에는 금세 소문이 퍼졌다. 전정호 전정국 형제가 백신의 존재를 숨겼으며 전정국 중위는 후환이 두려워 도망을, 전정호 소령은 사형을 앞두고 현재 갇혀 있다는 거였다. 뿐만 아니라 온 군 부대와 라디오를 통해 전정국 수배령이 떨어졌다.

 2중대는 거의 장례식장 같은 분위기였다. 순식간에 자신이 따르던 우두머리는 배신자가 되었다. 몇몇은 실망스럽다며 펄쩍 뛰었지만 대다수의 부대원들은 김통수가 뿌린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건 정호를 만나고 온 소대장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중대장님이 백신을 숨겼다는 게 말이 되겠냐고. 그런 분이 어떻게 목숨 바쳐가면서 치료제 실험에 응해? 그거 완전 마루타였잖아! 분명 사령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맞아. 전정호 영웅도 백신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잖아. 대체 뭐 때문에?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아. 그래도 수배령 내린 걸 보니 중대장님이 살아 있는 건 확실한 거네.”
 “소대장님이 그랬어. 확인받고 오셨다잖아. 중대장님은 목숨에 위협을 받고 숨어계신 거라고.”

 중대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은 점점 하나로 좁혀졌다. 중대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부대 지휘를 맡은 소대장이 말했다.

 “우리가 먼저 중대장님을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간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공식적인 중대의 의견인 셈이 되었다. 사실상 그것은 총사령관에 대한 반역이었다. 중대원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였다. 과연 중대장을 지키자고 사령관을 배반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직접 중대장님을 찾을 순 없다.”

 소대장이 품에서 작전폰을 꺼내들며 말을 덧붙였다.

 “이 좆같은 GPS 때문에.”

 해골부대의 통신 체계는 무조건 작전폰을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모든 작전 수행단계를 GPS로 감시할 수 있다.

 “소대장님, 그럼 어떻게 찾습니까?”
 “친위군.”

 그의 말에 중대원들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해보면 정국을 찾기에 민간인 신분인 친위군들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GPS의 감시를 받지 않으며, 자기들끼리 블루투스 통신으로 교류한다. 또한 생존에 대한 희망을 얻었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정국의 부재를 대신한 소대장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전했다. ‘너희에게 새 삶을 부여한 사람은 전정국 중위이고, 치료제를 완성하게 해준 면역체이기도 하다.’ 자신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민간 군대를 만들게 해준 사람이 인류를 구원할 면역체라는 사실에 그들은 더더욱 환호했다.

 “그럼… 전정호 영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틀 뒤에 처형한다고 하던데요.”
 “일단 최대한 빨리 중대장님을 찾자.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중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독려했다. 어차피 망해버린 세상, 더 이상은 비열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여태 사령관의 명령을 받들며 행했던 모든 추악한 짓거리, 이제는 모두 그만두고 싶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것들이 폭발한 것이다. 가평에 있을 때 멀쩡한 비감염자들을 죽였던 것도, 생체실험에 쓸 생존자를 잡아뒀던 것도, 주거지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외면했던 것도, 전부 그들의 영혼을 좀먹으며 끊임없이 괴롭게 만들었다. 이들 모두 평범한 군인이었다. 지금은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군부의 개로 전락했을 뿐이다.



 진규 역시 정호가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사형’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정국이 카라반 장박지에 있을 거라는 추측을 정호에게 전달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이제는 아예 이 사실을 말할 기회조차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 어떻게 하지?”

 발을 동동 굴렀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자신을 탓하며 제 머리를 탁탁 때렸다. 그가 도망친 지 일주일 만에 수배령이 떨어졌다. 과연 그 일주일 동안 정국은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을까? 이제 전국 수배가 떴으니 가평에도 군인들이 몰려갈 것이다. 혹시 정국이 죽으면 어떻게 하지? 두려워졌다.

 한참 고민하던 진규는 자신을 살려주었던 박사를 떠올렸다. 그는 정국과 친분이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사탄이 될 뻔한 자신을 헐레벌떡 구하러 달려왔을 것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박사뿐이라는 것을 진규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묵고 있는 용산 쉘터에서 석진이 있는 여의도까지 가려면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도보로 걸어갈 수 없는 거리이거니와, 쉘터와 쉘터 사이에는 주거지역이 아닌 곳이 끼어 있기에 사탄으로 득실거렸다. 진규는 고민 끝에 2중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관사에서 나와 넓은 공터를 달려 2중대가 모여 있는 주둔지로 향했다. 그곳엔 해골부대 2중대원들이 지프를 정비하며 바쁘게 출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규는 누굴 찾아야 할지 몰라서 멀뚱히 서 있다가, 자신을 찾아 왔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얼른 달려갔다.

 “저기요!”

 진규의 부름에 지프에 올라타려던 소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쪽은… 중대장님 친구?”
 “네! 중요한 일이 있어요. 정국이 관련해서 상의해야 해요. 박사님을 만나야 해요! 제발 저를 여의도로 데려다 주세요!”
 “얼른 타시죠.”

 소대장은 다급히 진규를 태웠다. 운전병과 소대장, 그리고 진규. 오직 세 사람만 태운 지프가 기염을 토하며 여의도를 향해 달렸다. 진규는 하나만 남은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으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새삼 정국과 함께 위태롭게 도망 다니던 지난여름이 떠올랐다.

 “정국이랑… 이렇게 지프를 타고 도망 다녔어요. 그땐 정말 끔찍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그때가 나았던 것 같아요.”
 “…….”

 진규의 말에 운전병과 소대장은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지금 정국이가 배신자인 것처럼 소문이 났다면서요?”
 “…예. 그래도 저흰 그 말 믿지 않습니다. 개수작이죠.”

 소대장의 대답에 진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적인지 편인지 알 수 없는 이 군인들에게서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개수작… 이요?”
 “예. 총사령관이 중대장님을 죽이려다가 실패하니까 저러는 것 같습니다. 전정호 소령님이 그러셨습니다. 중대장님은 도망치신 거라고요.”
 “하….”
 “중대장님께서 반군들을 모아 친위부대를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중대장님을 찾을 겁니다. 그럼 무슨 수라도 나오겠죠. 이대로 가다간 이틀 뒤에 전정호 소령님도 처형당할 거예요.”
 “정말인가요? 정말로 그쪽들은 정국이를 찾고 있는 게 맞아요?”
 “왜 못 믿는 거죠?”
 “솔직히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쪽들이 정국이를 찾아 살리는 건 명백히 반역… 그런 거잖아요. 그렇게 위험하게 정국일 찾는 게 이해가 안 가서요.”
 “민간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우리가 계엄군일 때부터 얼마나 몰상식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걸 명령한 사령관에 대한 감정이 어떨지.”
 “…….”
 “솔직히 백신이나 치료제, 그런 거 이젠 바라지도 않습니다. 라디오에선 실컷 떠들고 있죠. 충성심에 따라 심사를 해서 치료제를 주겠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독재 정권이잖아요. 일개 병사들한테 희망고문이나 하면서 지들이 독식하겠죠. 잠깐이나마 거기에 희망을 가졌던 우리가 병신이에요. 치료제를 나눠줄 거였으면 중대장님을 죽이려하지도 않겠죠. 히어로를 왜 죽입니까. 받들어야지.”

 소대장의 진심어린 말에 진규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력은 제대로 된 적이 별로 없었기에 계속해서 의심했다. 정국이 있을 만한 곳을 이야기해도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이 군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진실일지 거짓일지. 진규는 정국처럼 눈치가 빠르고 판단을 잘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사이 정국은 어디에선가 죽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느새 여의도 쉘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문 앞에 있는 무장 군인들에게 가로막혔다.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다. 미리 승인된 용건이 없이는 누구도 이 쉘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여의도 쉘터에서 지내는 사람은 총사령관 김통수와 연구원들뿐이다. 그들은 김석진 박사를 만나게 해달라며 애원했으나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진규의 얼굴이 좌절감으로 물들었다.

 “하…. 어떻게 해. 정국이…….”

 진규가 제 안면을 감싸며 신음하자 소대장이 진규의 어깨를 붙잡고 단호하게 물었다.

 “그쪽은 중대장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는 거죠?”
 “…….”
 “제발 말씀해주세요. 얼른 중대장님을 찾아야 합니다.”
 “몰라요. 모르겠어요.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요. 아무도 못 믿겠어요. 정호 형님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만날 수도 없다고 하고… 그래서 박사님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아아… 미치겠다….”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합니다. 계엄군 시절부터 생존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까요 근데… 이번엔 정말로 믿어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몰라요. 흐윽…. 나도 모른다고요…. 병신 같아. 아아… 정국아….”

 진규는 엉망으로 울며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소대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곤 지프를 돌려 효창공원으로 향하게 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자신이 했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래야 했다.



 세 사람을 태운 지프가 효창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엔 며칠 전보다 더 많은 인원의 민간 군대가 모여 있었다. 이제는 아예 몇 주치 보급식량을 빼다가 전달한 2중대 덕분에 그들은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게다가 면역체이자 구원자인 정국의 수배령이 떨어져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고 하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소대장은 이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진규를 데리고 갔다.

 바글바글하게 모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어 갔다. 군필자들이 나서서 교육을 하는 모습도 있었으며, 해골부대의 빨간 깃발을 북북 찢어서 곳곳에 걸어놓은 모습도 있었다. 그들에게 총과 같은 무기는 없었으나, 장기간 사탄과 대적하고 군인들을 피하느라 생긴 패기가 있었다.

 “보세요. 저 사람들은 모두 군복도 무기도 없는 민간인입니다. 중대장님께서 굶어 죽어가는 저 사람들을 구했어요. 인원은 매일 더 늘어나고 있어요. 제 말이 거짓이라면 당장 해골부대 완장을 차고 나타나자마자 뼈도 못 추릴 겁니다. 쉘터 바깥의 반군 단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아시죠. 민간인 중에 정부군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
 “제발요. 어서 중대장님을 찾고 싶습니다.”

 진규는 친위군의 모습을 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믿음이 생겼다. 생존자 중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누구나 군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그건 바이러스 발병 후 꾸준히 키워온 감정이었다. 그런 자들과 어우러지는 2중대원들을 보니 확신을 가졌다.

 “정국이는 지금… 가평에 있을 거예요.”

 결국 진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비록 추측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의 생각이 꼭 맞아떨어지길 바랐다. 예전에 한 번 정국에게 칭찬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도움이 되어 그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1. 다음 편 완결!
2. 시즌2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3. 초반 설정에서 정호의 원래 이름은 이안이었어요. 쌍둥이였죠. 캐릭터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여리여리한 이름인 것 같아서 바꿨지만... 이안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맛이 좋을 수도.

뫄뫄양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딸기맛곰돌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구름엔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andYou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소프티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milbong_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Borari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새벽공기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망개침침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Yuyu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백진주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비비드윤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국민여러분국민하세여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jooya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gks0309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짐니짐니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푸딩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j030116  | 190829  삭제
김통수의 뒷통수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찜쿡JJ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김수현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침롱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감동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꾸기꾸깆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김미지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sora lim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엘라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김단아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호버비  | 19082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김단아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메이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김단아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예스어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둥벵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치즈케익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밍쿠키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짐짐꾹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져니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지나가는또피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박세렌디피티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엄지공주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야시비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대한국민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초코봉봉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sokuari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KGEGEK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miming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노을빛안개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옴뇸뇸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검색불가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Artemis22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쥐샥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침침아가자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찜니조아23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Banana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호텔리어  | 190829   
비밀댓글입니다
마렌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국민에미쵸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오,늘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강산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지민뿌우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지미치미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방울방울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김아리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하이꾸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정혜숙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망개망개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Kay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트위스트추면서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국영민사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Gelda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thetime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탱탱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iluvThem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호호아줌마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골든클로젯ㅅ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어느날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swan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파이리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미니모찌♡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영원한사랑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국에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소요반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침침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Bebe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문라이트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빠샤샤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오영만  | 190830   
비밀댓글입니다
하늘바라기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꾸꾸하뚜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꾸꾸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밀국민빵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알이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찌미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근육망개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기갈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하늘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바림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skyblue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봄에  | 190831   
비밀댓글입니다
기메진  | 190901   
비밀댓글입니다
낮잠  | 190901   
비밀댓글입니다
호버  | 190901   
비밀댓글입니다
조예원  | 190901   
비밀댓글입니다
sweetR  | 190902   
비밀댓글입니다
 | 190902   
비밀댓글입니다
아엠왓아엠  | 190903   
비밀댓글입니다
지젤  | 190903   
비밀댓글입니다
로미  | 190903   
비밀댓글입니다
지국  | 190904   
비밀댓글입니다
망개토깽  | 190904   
비밀댓글입니다
아이보리베이지  | 190904   
비밀댓글입니다
robin  | 190904   
비밀댓글입니다
춘향이즴  | 190904   
비밀댓글입니다
어깨꾹꾹이  | 190908   
비밀댓글입니다
hero1004  | 190912   
비밀댓글입니다
kiyot  | 190917   
비밀댓글입니다
Marina  | 190918   
비밀댓글입니다
물오름  | 190920   
비밀댓글입니다
궁민하세얌  | 190926   
비밀댓글입니다
그린이  | 191001   
비밀댓글입니다
영영  | 191006   
비밀댓글입니다
둥둥이  | 191016   
비밀댓글입니다
꾹꾸기  | 191113   
비밀댓글입니다
    : 보안코드 이미지 : 보안코드 입력폼 비밀글
목록으로
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