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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애 19 랠리 씀

Ólafur Arnalds - TREE

아는 애
19













 태형은 업무 중에도 지민이 도망친 그 날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괴로웠다. 온종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그의 표정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러나 태형은 그날 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상한 얼굴로 집에 들어온 지민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표정, 말투, 행동에 태형은 혹시 지민이 자신과 정국에게서 도망쳤던 날이 꿈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를 제 곁에 영원히 두고 싶은 욕심이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는 바람에 최악의 것을 상상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태형은 자꾸만 옥죄어 오는 심장을 꽉 부여잡은 채 견뎠다.

 “태형아, 배고프다. 뭐 먹을까?”

 주말 낮 시간에 부스스 잠에서 깬 지민은 홀쭉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거실로 나왔다. 청소기를 돌리고 있던 태형이 전원을 끄고 시선을 맞추자 지민은 배시시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찬장과 냉장고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다가 커다란 김치 통을 꺼냈다.

 “김치찌개 해줄까? 어머님이 주신 김치 다 쉬겠다.”
 “응.”
 “돼지고기 없네. 참치 넣을게.”
 “응.”
 “우리 태형이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몇 번 해주지도 못했네.”

 지민은 오늘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곧장 김치 한 포기를 꺼내 도마 위에 올리곤 능숙하게 칼질하는 뒷모습을 보며 태형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의 마른 등짝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평소 서로의 표정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태형이 무척 불안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지민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지민의 태도는 태형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들었다. 왜지? 지민이는 똑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태형은 속으로 읊조리며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옷장 문을 열어 두 사람의 셔츠와 수트를 챙겨들었다. 주말마다 옷을 드라이클리닝 맡기는 건 늘 태형의 몫이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태형과 달리 지민은 늘 세미 정장 차림이었기에 주로 지민의 옷뿐이었다. 변덕을 부리는 봄 날씨에 지민이 입고 다니는 옷에도 변화가 생겼다. 옷장 한 켠에는 작년에 지민이 입었던 얇은 재킷이 걸려 있었다. 태형은 세탁소에 맡기기 전에 늘 해오던 습관처럼 재킷 주머니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따금씩 동전이나 지폐, 영수증, 어쩔 때는 카드가 나오기도 했기에 지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건 태형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내내 불안하던 태형에게 확인시켜주듯, 지민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종이봉투 하나가 발견됐다. 태형은 눈썹을 비뚤게 움직이며 봉투를 꺼내들었다. 안에 들어 있는 종이 한 장을 확인하자마자 태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사직서.

 종이를 붙든 태형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지민이 취업을 하기 위해 그간 얼마나 애썼는지는 태형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토록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 사표라니. 정국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재빨리 사직서를 원위치 시켜놓고는 드레스 룸을 빠져나왔다. 김치를 참기름에 달달 볶고 있는 지민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소한 냄새가 주방 가득 풍기는 가운데에 태형은 빈손으로 멍하게 서 있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어?”
 “앉아 있어. 방 청소는 내가 할게.”
 “어어.”
  
 지민이 사표를 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왠지 알 것만 같다. 태형은 아랫입술을 조용히 깨물며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날 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뒷걸음치던 지민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는 하루 만에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던 지민의 태도까지, 하나하나 머릿속에 되새겼다.

 너… 떠나려는 거야. 그렇지?

 회사를 떠나는 것은 자신이 아닌 정국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형은 예감할 수 있었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민이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에게 올 리 없다는 확신. 그것만으로도 태형은 이미 전정국이라는 사람에게 지고 있었다. 정국이 나타난 뒤로 자신을 바라보던 지민의 눈빛에는 죄책감과 혼란이 가득했다. 두 남자에게서 달아나던 그날처럼, 지민은 훌쩍 떠나버리고 말 거라고. 태형은 따끔하게 찔러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침음했다.



 평소와 똑같은 지민의 행동은 며칠간 더 이어졌다. 그동안 태형은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몰래 드레스 룸에서 지민의 재킷 안주머니를 확인했다. 아직 사직서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 종이가 보이지 않는 날, 왠지 지민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면도 했네?”
 “…응.”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나와 침대에 눕자 지민이 몸을 모로 세우며 얼굴을 만져왔다. 이불 속의 지민은 나신이었다. 그가 태형의 매끈매끈한 턱을 손끝으로 만지며 물끄러미 시선을 맞춰왔다. 이것이 섹스를 하자는 신호임을 모르지 않았다. 7년간 함께 살며 굳이 말이 필요 없는 바디 사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태형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지민의 사인에 응했다. 다리 사이에 쑤욱 들어오는 지민의 맨다리에 자신의 몸을 얽으며 올라탔다. 침대 맡에 있는 스탠드 조명을 무드 등으로 바꿔 누르며 지민에게 입술을 내려 맞췄다. 그러자 지민이 입술을 벌려 화답하며 손을 뻗어 다시 램프를 밝게 올렸다.

 “밝게 해놓고 할래….”
 “…왜?”
 “네 얼굴 보면서 하고 싶어.”

 평소 어둑어둑한 무드 등을 켜놓고 섹스 하는 걸 선호했던 지민이었다. 태형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지민에게 잠시 눈을 맞췄다. 말간 그의 동공에는 여전히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형은 마른 침을 삼켰다. 혹시라도 흔들리는 자신의 눈빛을 지민이 눈치 챌까 봐 얼른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하얀 살결을 핥으며 보드라운 그의 허리와 허벅지, 엉덩이를 커다란 손으로 정성껏 쓸어 만졌다. 지민은 익숙한 몸짓으로 다리를 벌리며 태형의 몸에 감았다.

 뜨거운 몸 안으로 깊숙이 삽입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짧은 숨을 터뜨리는 모습.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발끝을 오므리며 허겁지겁 등을 끌어당기는 손짓. 절정에 다다를수록 목을 길게 뻗으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허리. 스스로 몸을 돌려 엎드리며 태형의 손을 끌어다가 제 것을 만지게 하는 행동까지. 지민은 평소 잠자리를 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몸에 너무도 익숙하기에 섹스 중에 일어나는 어떤 움직임도 허투루 하는 것이 없었다. 태형은 지민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거칠게 엉덩이를 움직이며 이를 악 물었다. 곧게 뻗은 척추 선을 따라 입 맞추다가 동시에 사정하는 순간까지, 제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는 자신이 알던 박지민 그대로였다.

 “으응…. 너무 좋아. 키스해줘.”

 사정 후에는 나른하게 웃으며 제 몸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꽉 붙든 채 키스를 조르는 행동. 지민의 모든 모습은 달콤하기 그지없었고, 그와 동시에 태형을 아프게 찔렀다. 태형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몸을 겹친 채 애달프게 키스했다. 지민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은 목구멍 가득 삼켰다.

 지민아, 가지 마. 사라지지 마.



 또 어떤 때는 태형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민은 스스로 포털을 뒤져 여행지를 찾아 보여주었고, 태형은 그의 말에 무조건 끄덕여주었다. 결국 지민이 원하는 대로 발리 행 티켓을 예약했다. 기분이 좋은지 조잘거리면서 풀 빌라를 고르는 모습을 보며 태형은 또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야 했다.

 “신혼여행 가는 것 같다. 그치.”
 “…응.”
 “여기가 맛있대. 풀 빌라랑 걸어서 5분 거리. 여기 갈까?”
 “응. 그러자.”

 지민아. 지민아….

 하지 못하는 말은 쌓이고 쌓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를 부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여태 숨겨온 말들을 한꺼번에 터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민아. 박지민. 왜 그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제발 떠나지 마. 가지 마.



 발리로 떠나기 사흘 전, 지민은 캐리어에 짐을 챙기다 말고 말했다.

 “나 내일 퇴근하고 본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게.”
 “…….”
 “처음으로 해외여행 가려니까 괜히 엄마 생각이 나네.”
 “응. 다녀와.”

 태형은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 지민이 본가를 핑계로 어디에 갈지 짐작이 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따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지민이 정국과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화가 솟구쳤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슬픈 감정만 태형의 가슴 안에 넘실거렸다. 이별을 예감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이별이 지민마저도 영원한 불행에 처박아두는 것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사실은 매일 더 태형을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게 했다.





*






 정국은 지민이 달아난 이후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민은 회사 업무 중에도 자신의 연락에 꼬박꼬박 응답했고 점심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면 다정하게 받아왔지만, 정작 도망치던 날 그의 얼굴에 가득 서려 있던 두려움이 생각나 견디기 힘들었다. 정국은 뮤지컬 연습을 하다가도 답답한 심정에 제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방송이나 화보 스케줄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민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지민을 보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으나, 혹시나 그날처럼 태형과 함께 마주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 못했다. 세 사람이 마주치던 그 순간이 얼마나 지민을 괴롭게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광고 촬영이 모두 끝났기에 그를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당장 지민을 안고 입 맞추고 싶단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떠도는 지민의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지민은 격동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자신에게 올 것이란 확신이 분명히 있었지만 자꾸만 뒷걸음치던 표정이 생각나 불안했다.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7년을 기다렸다. 그깟 시간, 얼마든지 더 기다려줄 수 있다. 지민이 자신에게 반드시 온다면 말이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쩐지 날이 갈수록 맨 정신으로 버티는 게 힘들었다. 넓고 외로운 거실은 오늘따라 더 썰렁했다. 정국은 쌀쌀한 공기를 마시며 한숨을 내뱉었다. 짙은 술 냄새가 퍼지면서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그때, 7년 된 구 기계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한 사람뿐인 그 폰이었다.

 - 정국아, 나 재워줄래?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정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의 시야에 인터폰 화면이 들어왔다. 폰을 귀에 댄 채로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지민의 모습이 모니터에 가득 찼다. 정국은 정신없이 긴 복도를 달렸다. 반 병 정도 들이킨 위스키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눈앞을 어지럽혔지만 정국은 자신이 비틀거린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 왔어.”

 다급히 현관문을 열자마자 예쁘게 웃고 있는 그를 발견하곤 얼른 손목을 끌어당겼다. 다짜고짜 지민의 입술을 덮치며 따뜻하고 말캉한 혀를 찾았다. 술에 젖은 정국의 입술이 아무렇게나 짓이겨지며 축축한 키스를 퍼부었다. 지민은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리곤 정국의 목에 양 팔을 감았다.

 정국은 그를 들어 안고 침실로 들어가는 내내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혀를 얽어가며 진득하게 타액을 섞다가 뜨겁게 달아오른 지민의 목덜미를 빨아들였고, 그러다 보면 다시 달큼한 살덩이의 맛을 보고 싶어져서 입술로 찾아갔다. 취기가 섞인 정국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본능에 충실한 행위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두 사람의 몸이 침대에 떨어지자마자 급속도로 불이 붙었다. 어느새 지민은 하의가 벗겨진 채로 하얀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정국은 그의 몸 안에 자신의 것을 삽입하면서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흣… 술 마셨어?”
 “응. 하아…. 너 생각하느라.”

 사정없이 그의 몸 안으로 침범하며 정국은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얼마 전보다 훨씬 수척해져서 얇은 가죽이 느껴지는 지민의 뺨을 어르며 허리를 움직였다. 몸이 하나로 붙는 감각은 수없이 반복해도 결코 질리지 않았다. 정국은 조금 조급하게 움직이며 끊임없이 지민을 몰아붙였다. 쏟아지는 쾌감에 어쩔 줄 몰라서 끙끙거리는 그의 몸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민이 선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사정 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지민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을 때, 그가 정국의 동그란 머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정국아.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그 물음에 정국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숨을 참았다. 뺨에 닿은 지민의 심장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응? 왜 대답이 없어.”

 어디에 가고 싶으냐는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예감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정국의 동공이 바삐 흔들렸다. 대답하는 목소리마저 떨릴까 봐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냥…. 난 네가 옆에 있는 곳이면 다 좋아.”
 “음, 그래도… 꼭 가고 싶은 데 없어?”

 지민아, 제발 마지막인 것처럼 말하지 마.
 훌쩍 내 곁을 떠날 것처럼 그러지 마.

 정국은 그의 발밑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혹시 자신이 상상하는 이것이 현실일까 봐 겁이 났다. 그냥 혼자 조바심이 나서 든 생각일 뿐이라고, 지민을 바로 되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






 발리 여행은 주말을 포함해 4박 5일의 일정이었다. 지민은 태형과 함께 거리를 걷고, 물놀이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내내 제 감정이 표정에 드러날까 봐 신경 써야 했다. 아무 걱정 없이 즐겨야 하는 휴양이었다. 마지막 여행이 될 테니 말이다. 속은 시끄러웠지만 행동만큼은 편안함을 가장해야 했다. 지민은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연습한 대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낮 시간에는 실컷 물놀이를 하고 놀다가, 저녁 시간에는 돌아다니며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를 했고, 캄캄한 밤이 되면 풀 안에서, 침대에서, 욕실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을 맞붙였다. 마치 정말로 신혼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태형과 긴 연애를 하면서 왜 한 번도 해외여행을 오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며 후회스럽기도 했다. 먼 곳에 떨어져서 둘 만을 의지해야하는 이 여행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서러웠다.

 발리에 온 지 나흘이 되는 날 밤, 태형이 샤워를 하는 사이 지민은 꺼두었던 휴대폰 전원을 켰다. 혹시라도 이 여행에 다른 것이 섞여들까 봐 두려워서 정국의 연락도 피했다. 이 여행은 온전히 태형을 위한 여행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라서.

 [ 기다릴게. ]

 정국의 짤막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민은 잠시 고민 끝에 이틀 전에 온 그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 정국아, 할 말 있어. 내일 모레 만나자. ]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밤이었다. 태형과 연인으로 있는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이 밤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별을 고하고 훌쩍 떠날 생각이었다. 그건 태형에게도 정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민은 답장을 전송한 후 재빨리 전원을 껐다. 갑자기 두 남자를 모두 밀어내고 홀로 남겨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죽음과 같은 외로움이 덮쳐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그 누구의 곁에도 있어줄 수 없으니, 자신뿐 아니라 두 남자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될 터였다. 하지만 어떤 상처보다 자신이 받을 상처가 더 커야 했다. 살면서 절대로 치유할 수 없을 만큼 아프길 바랐다. 아물지 않고 끊임없이 벌어져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흉터가 되었을 때는 도저히 가려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자국이 되기를.



 가운을 입고 걸어 나온 태형이 지민을 향해 와인 잔을 건넸다. 잔을 받아들자 붉은 빛의 와인을 쪼르륵 따랐다. 지민은 그가 채워준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는 고요하게 잔을 휘휘 저었다.

 “지민아, 이리 와.”

 태형이 제 허벅지를 툭툭 치며 불렀다. 지민은 순종적으로 그에게로 다가가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태형이 손에 들린 와인 잔을 가져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메마른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었다. 지민이 걸치고 있던 가운이 벗겨져 내려가고, 태형은 하얀 어깨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며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여행 마지막 날 밤이라는 무드에 취한 듯 보였지만, 실은 두 사람 모두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 가면극은 며칠이나 지속되었지만 마음은 통 진정되지 않았다. 지민은 눈꺼풀을 닫고 제 피부에 닿는 태형의 입술을 가만히 느끼려고 노력했다. 속에서부터 자꾸만 울컥 치미는 무언가 때문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사실 지민은 그에게 어떤 말로 이별을 말해야 할지 정리하지 못했다.



 어느새 침대로 옮겨진 지민은 제 위에서 알몸으로 올라 타 있는 태형에게 매달렸다. 평소 잠자리를 할 때와 다를 것 없이 분위기가 흘러갔다. 그러나 조명에 비친 태형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지민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자꾸만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더는 참지 못하고 태형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혹시 자신이 우는 모습을 태형이 볼까봐 목에 팔을 두르고 뺨을 맞붙였다.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둘의 가슴팍이 맞닿았다. 지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소리를 참았다. 태형은 고개를 비틀어 지민의 귓불과 목 줄기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가 일순간 태형의 움직임이 멈췄다.

 “…….”

 태형이 낮추고 있던 상체를 비스듬히 들고 양 팔꿈치를 세웠다. 그리고는 지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지민아.”

 입김이 닿는 거리에서 태형의 낮은 음성이 울렸다. 지민은 더 이상 우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로 태형을 마주보았다. 커다란 그의 두 눈이 울고 있는 자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태형아…. 흐윽, 태형아.”

 그는 울면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썹 산을 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속눈썹이 빽빽하게 들어찬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금세 차올랐다. 그의 뺨으로 눈물 한 줄기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지민은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때 태형의 손이 지민이 베고 있는 베개 밑으로 쑥 들어갔다. 잠시 뒤 부스럭 소리와 함께 베개 밑에서 흰 종이가 나왔다. 태형이 몸을 세워 무릎을 꿇은 채 그것을 들고 지민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물에 흠뻑 젖어 있는 태형은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모습이었다. 지민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게 무엇인지 금방 깨닫고 말았다. 몇날 며칠을 품고 있던 사직서가 왜 태형의 손에 들려있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의 손이 뒤틀리며 부욱- 소리와 함께 종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태형아. 그거…”

 종이를 두 번, 세 번, 네 번 잘게 찢어버리는 동안 지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행동을 하는 태형의 얼굴이 너무 슬퍼서, 단 한 마디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마침내 갈기갈기 찢어진 종이가 침대 위에 흩어졌을 때, 까마득한 정적을 뚫고 태형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민아. 우리 헤어지자.”

 그의 말에 지민의 눈이 크게 뜨였다. 혀끝이 굳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민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입을 벙긋거리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게 있더라.”
 “…….”
 “더는 힘들 것 같아. 내가.”
 “…태형아.”
 “헤어지자. 미안해.”

 먼저 이별을 고하는 태형의 얼굴엔 눈물 줄기가 하염없이 떨어졌다. 지민은 그의 얼굴을 어르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태형이 어깨를 쥐고 침대 시트로 미는 바람에 움직일 수 없었다. 태형이 코끝이 닿을 거리에서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지민의 앞볼을 적셨다. 이제는 볼과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자신의 것인지, 태형의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민아.”
 “…흐윽.”
 “미안해…. 지민아, 근데… 진짜 미안한데….”
 “흑, 으읍… 흐으….”
 “딱 한 달만… 한 달만 내 옆에 있어줄래? 흐… 미안해. 그래야 널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지민은 태형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믿기지 않아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잇새로 터지는 울음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한 달만…. 그럼 정리할게. 내가 너… 정리할게.”
 “…….”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마.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정말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민아.”
 “나 그럴 자격 없어. 태형아, 나… 그래선 안 돼.”

 도리질 치며 태형에게로 손을 뻗었다. 태형은 지민의 손바닥에 뺨을 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지민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아니, 지민아. 이제라도 행복해. 네 옆에서 나 많이 행복했으니까… 이젠 너 행복한 거 보고 싶어. 그렇게 해줄 거지?”

 지민이 아무리 고개를 내저어도 태형은 단호했다.

 “박지민, 내가 너 버리는 거야.”
 “흐윽….”
 “힘들어서, 못 견디겠어서, 그래서 너 버리는 거야.”
 “거짓말….”
 “너 미워서 그러는 거야.”
 “거짓말 하지 마….”

 태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좌우로 내저으며 잠시 숨을 참았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내 말 안 들으면… 나 죽을 수도 있어.”
 “…….”
 “나 죽는 거 보고 싶어?”
 “…….”
 “너 불행하면, 나 죽어.”

 단단한 그의 말에도 지민은 끊임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숨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우는 지민을 보며 태형은 오히려 점점 더 진정해갔다. 엉망진창으로 무너져서 우는 지민을 꽈악 끌어안았다. 그의 몸이 제 품 안에서 조각조각 부서질 정도로 세게 안았다.

 울다가 울다가 기어코 까무룩 정신을 잃어버린 지민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제 몸에 매달려 있는 이 순간 지민의 감촉은 자신이 영원히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



 딱 한 달만.
 네가 날 가장 사랑했을 때, 그때 모습으로 한 달만.

 평생 그 기억 끌어안고 살게.
  

 





골든클로젯ㅅ  | 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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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 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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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bts  | 19050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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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 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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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름이 태형 아니고 형태였으면 을매나 좋았을까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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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yu1293  | 190505  삭제
태형이 ㅠㅠㅠ 미안해 태태야 내가 국민파라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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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우는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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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 ㅠㅠ 랠리님 진짜 너무 슬퍼요 ㅜㅜㅜㅜㅜㅜㅜㅜ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주먹꽉 입틀막해도 눈물이 안멈춰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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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님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ㅡㅜㅜㅡㅜㅜㅜㅜㅜ
지금 회산데 눈물이 흘러내려서 죽을것같아요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어쩜조아요ㅠㅜㅡㅜㅠㅜ
마린  | 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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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거 읽고있는분들 다 울고있죠?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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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1013  | 1905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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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세월동안 지민이가 사랑을 부정하지 않도록 잃지 않도록 무너지지 않도록 태형이가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고 보듬어줬잖아요.. 지민이는 태형이 곁에서 다시 사랑을 배운것 같아요 티내지 않는 태형이의 상처도 쌓이고 쌓여 곪고 곪아 더이상 터져버릴게 없을텐데도 지민이 아픈게 싫어 초연히 보낸 헌신의 시간을 감히 헤아릴수도 없을것 같아요... 진짜 단단한 새럼이야.. 김태횽! 낵아 보듬어주고시따!ㅠㅠ
라엘  | 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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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강양이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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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맘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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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 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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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 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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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 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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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gming2  | 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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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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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쟝  | 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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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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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009   
태형이 어뜩해요.... 울지마 태형아.... ㅠㅠㅠㅠ
하니  | 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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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이  | 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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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찜  | 19110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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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코  | 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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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냥:D  | 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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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mm  | 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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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마눌  | 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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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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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JK  | 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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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교  | 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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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트치어링  | 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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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방팬  | 1912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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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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