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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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애 3 랠리 씀
아는 애
3













  
 전정국의 눈물을 보자마자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꿈틀거렸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정말 헤어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반사적으로 한 발자국 뒷걸음 쳤다. 전정국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 애가 가까이 오니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저 눈물이 거짓일까 봐. 내가 자기 눈물에 약한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전정국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상처를 받은 건지 가늠이 안 됐다. 절대 헤어지지 않기만을 바랐으면서도 정작 그 얼굴을 보자마자 생긴 건 모순된 감정이었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시발. 욕을 뱉고 싶었다. 전정국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와 김태형이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김태형이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더니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아렸고 눈앞은 하얘졌다.

 널 마음껏 원망할까. 마지막인 것처럼 물을까, 날 사랑하느냐고. 고작 작은 오해로 불거진 우리의 균열 따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겠느냐고.

 넌 내가 태어나서 처음 사랑한 남자야. 가장 많이 사랑했어. 사람이 이 정도까지 좋을 수 있나 싶었어. 그리고 넌 상실감으로 죽고 싶다는 감정이 뭔지 내게 가르쳐줬어. 내 마음의 크기는 네가 더 잘 알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한 달이나 나를 방치할 수가 있어. 어떻게 전정국 네가 나한테 그래.

 나는 선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 대신 눈으로 그 말을 전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전정국의 눈동자가 어쩌면 고장나버린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물기에 푹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민아. 네가 그럴 줄은 몰랐어…. 난 진짜 널 믿고 싶었어.”

 나는 전정국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경악스러웠다. 오해와 불신에 완전히 담겨버린 저 말투. 멋대로 나를 재단해놓고는 그게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미친 소리.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바닥으로 확 무너졌다. 김태형에게 잡혀 있던 손이 떨어져나가고, 쪼그려 앉은 채로 얼굴을 가렸다. 너무 슬프고 화나서 머리가 아팠다.

 놀란 김태형이 나를 따라 몸을 굽히고 앉아 등에 손바닥을 댔다.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태형아. 나중에… 나중에 봐. 지금은… 가줘. 미안해. 쥐어짜듯 내는 목소릴 듣고 김태형은 잠시 내 등을 토닥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김태형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게 들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미동 없는 전정국의 신발이 보였다. 뒤돌아 가는 김태형의 표정이 어땠을지, 전정국의 표정은 또 어땠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일어나.”

 아픈 관자놀이를 감싸고 한참 앉아 있는데 전정국의 식은 목소리가 내 몸을 일으켰다. 전정국은 여전히 축축한 눈으로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골목으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나는 마스크를 벗은 전정국을 들킬까 봐 황급히 그를 잡아 당겼다. 건물 뒤편으로 질질 끌고 갔다. 좁은 공터에 몸을 숨긴 채 전정국을 벽으로 밀었다.

 감정적인 재회 씬이 지나고 나니 이성이 우릴 찾았다.

 “네 멋대로 오해할 거면서 왜 찾아왔어?”

 말이 못됐게 나갔다.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전정국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오해? 방금 내가 본 건 뭐야.”
 “그게 지금 네가 할 말이라고 생각해?”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 걔는 뭐야?”
 “전정국.”
 “대답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결국 전정국이 날 찾아온 이유가 따지기 위해서인가. 한 달 동안 나를 버린 것도 모자라서 이젠 내 눈앞에서 원망하고, 몰아붙이고, 추궁하려고? 그러는 지는 뭘 잘했다고…. 점점 생각이 삐딱 선을 탔다. 그래. 사실 김태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라고 하면 거짓이 섞인 것이고, 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으니까. 나와 김태형을 이렇게 만든 건 전정국이었다. 그가 없는 동안에 생긴 김태형과의 일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나는 철저하게 버림받은 거였으니까.

 내가 대답이 없자 전정국이 양 어깨를 붙잡았다. 녀석이 내 앞에서 입술을 달달 떨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지민아. 내가 너밖에 없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니. 모르겠어.”
 “…뭐?”
 “한 달 동안 연락 없는 널 보니까,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 만들었어?”
 “그건 오해야.”
 “그게 어떻게 오해야?”
 “넌 내가 오해 풀어줄 기회도 안 줬잖아. 연락 끊고.”
 “사정이 있었어.”

 나는 전정국의 입에서 나온 ‘사정’이라는 말에 기가 찼다. 대체 어떤 사정이 생기면 한 달 동안 연락을 끊고, 새 차에 여자를 태우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와 내 세계에서 존재해선 안 되는 일이다. 평생.

 “무슨 사정. 설명할 수 있어?”

 내 말에 전정국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녀석이 야속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심지어 내 번호를 까먹었다는 개소리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적어도 그게 입을 다무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봐. 대답 못 하잖아.”
 “너도 날 못 믿고 있네.”
 “전정국. 그게 그거랑 같아?”
 “뭐가 달라?”
 “연락 안 되는 내 맘은 생각 해봤어? 어떨 것 같아. 난 널 못 믿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싶었어. 매일 너한테 연락했어.”
 “우린 서로를 못 믿은 거네.”
 “이상하게 퉁 치려고 하지 마.”

 답답했다. 우리 중 누구도 상대방의 말에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뺑뺑이 돌리듯 계속 말싸움이 이어졌다. 전정국은 나와 김태형을 의심했고,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전정국을 의심했다.

 “내가 널 못 믿는다고 해서, 네가 날 못 믿고 연락 끊은 게 용서되는 건 아냐.”
 “지민아. 원인 제공을 한 건 너잖아.”
 “원인 제공? 그거 제대로 따져 볼까 한번?”

 우리가 틀어진 데에 원인을 따지자면, 실은 전정국이 데뷔를 한 게 가장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걸 전정국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허공을 보며 눈물을 참았다. 하여간 눈물이 오지게 많은 놈이다.

 “그만 울어.”
 “지민아. 싸우지 말자. 싸우려고 온 거 아니야.”

 나쁜 새끼. 내 속을 뒤집어 놓고.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을 뽑아놓고선. 싸우러 온 게 아니면 대체 뭔데. 나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부어있던 눈자위가 따가웠다.

 전정국이 훌쩍, 코를 들이마시며 울다가 문득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하아- 하고 가늘게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몰래 온 거야. 빨리 가봐야 해.”
 “…이게 뭐야?”
 “내가 연락할게. 그때까지 기다려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새 휴대폰이었다.

 “꼭 전화 받아줘. 지민아.”

 전정국이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울컥, 또 눈물이 났다. 전정국이 나를 끌어안았다. 녀석의 넓은 품에 들어가 숨을 들이마셨다. 몇 달 동안 못 맡았던 전정국의 체취가 콧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물 나게 그리웠던 전정국의 품. 전정국의 냄새. 꾸역꾸역 그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동물이었다면 코를 킁킁 실룩이며 파고들었을 것이다. 처음 숨 쉬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뺨에 닿은 전정국의 촉감이 사라질까 봐 꽉 붙들었다. 녀석과의 첫 스킨십이 기억났다. 포옹을 하며 맞닿은 가슴에서 심장이 뚫고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서로밖에 생각할 게 없었던 열일곱.

 택시 문이 닫히고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우리의 열일곱에 갇혀 눈물을 삼켰다.





*






 방 안에 틀어박혀 가만히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최신형 모델이었다. 그곳엔 단 하나의 번호만 저장되어 있었다. 정국이라고 저장되어 있는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순간 사정이 있었다는 전정국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사정이었을까. 원래 쓰던 폰은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전화가 안 됐던 걸까. 여태 내 연락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문자함을 열었다. 개통 알림 문자 몇 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개통일, 3주 전. 머리가 복잡했다. 왜 이걸 개통해놓고 지금 준 걸까.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어떻게든 연락할 수 있었잖아. 자그마치 한 달이잖아.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되는 게 없었다.

 결국 전정국을 만나고 나서도 풀린 게 없었다. 버림받은 똥개처럼 낑낑거리다가 주인 손 길 몇 번에 배를 까뒤집은 거나 마찬가지다. 전정국과 포옹 한 방으로 나는 또 무너져버렸다. 이 속없는 새끼. 자존심도 없는 새끼. 그가 날 찾아왔다는 걸 곱씹으며 우리가 헤어진 게 아니라는 희망을 가졌고, 혹시 연락이 오지 않을까 봐 불안에 떨었다. 나는 여전히 새 핸드폰이 울리길 기다리는 신세였다. 전정국 앞에서 나는 또 을인 것이다.



 진동이 울렸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그건 내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마음이 또 롤러코스터를 탔다. 김태형의 톡이었다.

 [ 가도 돼? ]

 텍스트에서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잊고 있던 김태형이 생각났다. 전정국을 보고 내 손을 더 꽉 잡던 김태형. 그때의 넌 뭐였을까, 나한테. 내가 가라고 했을 때 네 기분이 어땠을까. 혼란스러웠다. 본의 아니게 내가 김태형을 괴롭힌 꼴이 된 거다.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 아니 나중에 ]

 뭐라고 보낼까 한참 고민하다가 어렵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은 김태형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전정국에게 연락이 온다면, 나는 또 걔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읽음 확인이 떴다.

 [ 울고 있어? ]

 저 네 글자를 보자마자 거짓말처럼 눈물이 또 나왔다. 누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말이다. 메시지에서 김태형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민아. 울고 있어? 울지 마. 뚝. 나는 더 이상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메시지 창을 그대로 열어 놓고 엉엉 울었다. 무릎을 타고 내 눈물이 줄줄 흘렀다. 힘든 하루가 거짓말처럼 스쳐 지나갔다. 현실감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이 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울다 지쳐 잠든다는 건 유행가 가사에만 있는 건 줄 알았다.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허겁지겁 새 폰을 확인했지만 전정국의 연락은 없었다. 그리고 내 폰에는 김태형의 메시지 몇 개가 읽음 상태로 쌓여 있었다.

 [ 지민아, 미안해. ]
 [ 네가 너무 좋아. ]
 [ 잘 자. ]





*






 학교에서 김태형을 보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치니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보며 해맑게 놀려댔다.

 “사람 눈이 이렇게 부을 수 있나?”
 “시끄러….”
 “눈에 이스트 뿌린 거 아니야?”
 “…….”
 “거의 반죽이 빵 된 수준인데.”

 헛소리를 하는 걸 듣고 실소가 터졌다.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서 꼈다. 다행히 아직 축제기간이라 휴강이었다. 김태형은 계속 내 어깨를 주물거리며 내 발걸음을 조종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걸었다.

 “뭐해?”
 “너 눈 부어서 앞 안보이잖아. 자 여기 턱 있어 조심. 옳지.”

 나는 김태형의 복부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고, 김태형은 그걸 맞으며 아픈 척을 했다. 녀석이 치아가 다 보이게 히- 하고 바보 같이 웃으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점심은 내가 쏜다, 하며 멋있는 척을 하더니 의기양양하게 나를 학생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캠퍼스에 먹을 것을 파는 부스가 널렸는데 왜 여기냐고 했더니 다 맛대가리가 없다며, 특별히 4천 원짜리로 고르라고 으스댔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허리를 접고 웃었다. 식당에 마주보고 앉아 4천 원짜리 특식을 먹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물론 전정국의 이야기는 쏙 빠졌다), 김태형은 큰 눈으로 날 쳐다보며 내 얘기를 들어주고, 그러다가 손을 뻗어 내 입가에 묻은 음식을 닦아줬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전정국과는 이런 평범한 추억이 없거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애는 어떤 걸까. 남들처럼 매일 보고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연애. 이런 연애는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자 김태형이 음식을 입 앞에 들이밀었다. 또 내가 입을 열 때까지 턱 받치고 앉아 있을 기세였다.

 “태형아.”
 “응. 먹고 말해.”
 “너 연애 해봤어?”

 내 물음에 김태형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해봤지.”
 “어땠어?”

 무작정 어땠냐는 두서없는 질문에 김태형은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그냥 평범했어.”

 평범. 그 평범한 연애는 어땠어. 네가 지금 나한테 하는 것처럼 잘해줬어? 연애가 그런 거 맞지?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보고, 안고 싶을 때 얼마든지 살을 맞댈 수 있는 거.

 “여자였어?”
 “…….”
 “아… 미안.”
 “여자 맞아.”

 김태형이 낯선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녀석과 똑바로 눈을 맞추는 게 힘들어서 시선을 내리깔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렸다.

 “남자 좋아한 적 없어.”
 “…응.”
 “네가 처음이야.”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김태형이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 식판과 제 식판을 들고 퇴식구로 향했다. 나는 김태형이 뒷마무리를 하고 돌아올 때까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울릴 생각을 안 했다. 전정국이 대체 언제 내게 연락을 할지 궁금했다. 녀석은 나를 또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기다려달라는 말이 이렇게 상대를 비참하게 하는 건지는 처음 알았다.

 “가자.”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나는 그에게 붙잡힌 채 김태형의 빠른 보폭을 종종거리며 따라 걸었다. 한산한 건물 복도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김태형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우리의 발걸음이 구석진 곳에 있는 강의실 앞에 멈췄다. 김태형이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후 강의실 문을 잠갔다. 암막커튼 때문에 깜깜하고 적막한 교실 분위기에 숨이 막혀왔다. 거기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부리부리한 김태형의 눈동자가 한 몫 더했다. 벽에 등을 기댄 나는 묘하게 흐르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밤에 자기 전에 하던 키스 외에 이런 적은 없었다. 그것도 낮에 학교에서.

 “지민아.”
 “…….”
 “내가 널 정말 많이 좋아하나 봐.”

 복잡했다. 그동안 내 감정에 취해 김태형에게 여지를 주고 있었다. 내가 지금 실연을 당해 아프니까 타인의 속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충동적이고 싶었고, 김태형 역시 충동에 가까운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듣는 건… 정말이지… 모르겠다.
내 행동이 전정국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걸 안다. 기다리는 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고 있으면서, 그걸 김태형에게 똑같이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내게 김태형의 입술이 찾아왔다. 아랫입술을 물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밀고 들어왔다. 싫지 않았다. 나는 미친 새끼가 분명하다. 이제 와서 녀석을 밀어내는 것도 웃긴 짓이다. 허락한 것도 나고, 발단이 된 것도 나였다. 눈을 질끈 감고 녀석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내 허리에 감기는 단단한 팔뚝이 느껴졌다. 고개를 비틀며 틈 없이 부딪쳐 오는 입술에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손을 들어 김태형의 옆 턱에 손을 올렸다. 턱 근육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손가락 끝으로 모두 느끼며 속도를 맞췄다. 조금 거칠게 내쉬는 김태형의 숨결이 코 주위에 닿으니 등줄기에 소름이 꽂혔다.

 평범한 연애를 할까. 김태형에게 날 기다려달라고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정국과의 연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 지치게 했고, 불행히도 내 멘탈은 나약했으며, 타이밍은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내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 괘종시계에 매달린 추 같았다. 내 스스로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어딘가에 꽁꽁 묶여서 똑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멀어지려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어차피 결국 전정국일 걸 알면서, 김태형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위잉 소리와 함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새 핸드폰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정국의 전화였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았다. 전화를 받으려는 내 손을 저지하고,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잠시도 입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진동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지만 김태형은 입 맞추던 걸 멈출 생각이 없는지 아예 내 한쪽 뺨을 감싸고 혀를 깊숙하게 엉켜왔다. 끝날 줄 모르는 키스였다. 나는 전정국의 전화를 받지도, 끊지도 못한 채 김태형의 입술을 받아냈다. 손이 달달 떨렸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있는 김태형이 힘을 줬다. 내가 당황스러움에 버벅거릴 때마다 꽉 쥐는 악력에 손이 아파왔다. 손가락이 아픈 건지, 다른 곳이 아픈 건지는 모르겠다.

 끈질기게 오던 진동이 끊어지고, 바로 다시 또 울리기 시작했다. 두 통의 전화가 오는 동안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진동의 여운을 남기고 끊어진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 최악이다. 병신, 이런 내가 누굴 탓해.




국민은 진짜  | 171130  삭제
ㅠㅠㅠㅠㅠ으악 랠리님 글들은 항상 감정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몰입이 잘되는것같아요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달그림자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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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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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희망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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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unni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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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 17113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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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지람no.521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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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다섯시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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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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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광어  |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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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파  | 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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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치  | 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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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침침  | 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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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 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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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오른팔  | 171203  삭제
상중하에서 번호로 바뀐거 넘나 생각잘하셨어요..진짜 갓랠리 사랑합니다💕💕💕💜
clean  | 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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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 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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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 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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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k  | 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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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 180211   
하 숨이 덜컥 덜컥 막혀요 ㅜㅜ 태형이 진짜 지민이 숨도 못 쉬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네요... 그럼 저는 너무나 오예입니다.
피터팬  | 18021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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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고냥이  | 1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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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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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원  | 18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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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 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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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 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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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볼  | 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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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nonly  | 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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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부리  | 181113   
랠리님...아는애 주세요ㅜㅜㅜㅜ 지민이 리코더부는 영상 처럼 저 그렇게 아는애 기다리며 울고 이써여..따흙
mond_jim  | 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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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트  | 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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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0velykm  | 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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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둥이  | 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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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blue  | 1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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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 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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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챈  | 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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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 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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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 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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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아줌마  | 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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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모랑주  | 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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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뱌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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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츄  | 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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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1004  | 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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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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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미니  | 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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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돌이  | 19050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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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정독러  | 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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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쥬  | 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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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찜  | 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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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 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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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브  | 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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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꽁치  | 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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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14  삭제
가완삼 어떡하면 좋죠 ㅠㅠㅠ 태형이도 가엾고 쌍방 삽질 중인 국민이도 가엽곺ㅍㅍㅍ퓨ㅠㅠㅠㅠㅠ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초코프랄린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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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꾸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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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슥히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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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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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소주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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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미니  | 190514   
지민이의 마음과 행동은 따로인가봐요. 지민이 옆에 있는 태형이도 좋아지는데
짐니어쓰  | 190514   
정말 랠리님 글은 언제 봐도 감정이입 진짜 잘 된다구요... 제가 지민이 된 가 같아여.. 내 맘이 왜 뒤숭숭한건데 ㅠㅠㅠㅠㅠ 태 넘 안쓰러워 엉엉
Pmj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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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 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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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yot  | 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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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큐  | 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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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이  | 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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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안개  | 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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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 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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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 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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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  | 190516   
흔들리는 마음 알겠는만큼 가슴도 아리고 ㅠㅠㅠㅠㅠ 잘 읽었습니다!!!
swan  | 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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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도리  | 19052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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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N  | 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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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뿌우  | 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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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 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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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냥이  |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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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o  | 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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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9  | 190606   
아 ㅠ 저 같아도 흔들릴것같아서 지민이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요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잘 표현해주시다니 ㅠ 글 흡입력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ㅠㅠ
석삼  | 190609  삭제
세 명의 관계가 진짜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긴장되고ㅠㅠㅠ 궁금한 마음이예요ㅜㅜㅜ 한 글자 한 글자 너무 소중해서 천천히 읽고있어요 감사합니다ㅠ
Havana  | 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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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방울  | 190612   
환장하겠네 정말
 | 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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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담  | 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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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로  | 19061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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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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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개한 토끼  | 190624   
위태위태한 그들의 관계ㅜㅜ와 숨을 못 쉬겠어요ㅜㅜ
peony1013  |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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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꾸꾸  | 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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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준  | 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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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  | 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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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강양이  |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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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과학  | 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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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 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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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쿠헨  | 190721   
왜 이제서야 랠리님을 알게 된걸까요 최근작들부터 연어하고 있는데 일단 홈에만 들어오면 시간 순삭에 나갈수가 없어요 ㅠㅠ
제가 감정이입을 잘해서 그런지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되고...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건 잘못된거다 아니다 말할수 있지만 사랑이라는게 그런게 아니니 마음만 애닳습니다 ㅠㅠ
독자128  | 19072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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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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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늘바랄  | 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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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 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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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짐니  | 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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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기꾸깆  | 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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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핸슨  | 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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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여우  | 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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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파  | 19080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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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3  | 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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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 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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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 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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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치미  | 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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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뿌우  | 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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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notic  | 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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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  | 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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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말  |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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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  | 191009   
지미나.... ㅠㅠ
임당이  | 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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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교  |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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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네고추바사삭  | 191111   
가장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주는 이에게 기대고 싶은걸 누가 나무랄수있겠어요 아무도 지민 욕 못해ㅠㅠ
멜랑콜리아  | 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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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방팬  | 19121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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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