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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픽션 2 랠리 씀

사랑꽃

테라픽션 2
therapy + fiction











 그 남자는 내게 그런 문자를 보내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다음 날 내 얼굴을 보며 밝게 인사했고, 첫날보다 훨씬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내내 쾌활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상인들과 부쩍 가까워진 듯 보였다. 장사를 오픈하기 전 옆 트럭의 일손을 돕기도 했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깔깔 웃기도 했다. 솔직히 그가 내 면전에서 고백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걱정했다. 내 기우를 비웃듯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가끔 스치듯 나와 눈을 마주치면 빙긋 웃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나는 야시장에 앉아 있는 내내 몰래 그를 관찰했다. 전정국이라는 남자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눈길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섯 시간 내내 그를 훔쳐보며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하는 버릇이 있다. 계산을 할 때도, 음식을 만들다가도, 가끔 손님이 함께 셀카를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도 깊게 눈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고 친절한 타입인 것 같다. 어쩌면 내게 그런 문자를 보낸 것도 그의 기준에선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스물다섯의 나이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쉬운 감정발화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고, 미래는 생략해도 되는 것. 자신을 타인에게 어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참 이상했다. 금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했고, 영영 오지 않았으면 싶기도 했다. 그 남자가 보낸 문자가 툭하면 생각나 몇 번이나 도리질 쳤지만 소용없었다. 문자함을 세 번째 열어봤을 때,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한 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계속 휘청거렸다. 석고를 굳히다가 자꾸만 균열이 생겼다. 사치스러운 감정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우스웠다.



 “잘 지내셨어요?”

 그러나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내 부스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나는 물건을 진열하다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까만색 캡을 쓰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나도 모르게 폰에 저장했던 모습이다. 반듯한 이마와 잘생긴 눈썹 아래에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네.”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그가 몸을 낮춰 테이블 위에 턱을 올리고는 새로 만든 석고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의 어떤 행동에도 반응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무슨 향이에요?”
 “라벤더요.”
 “음, 차에서 이 향이 나서 계속 생각났어요.”
 “…….”
 “지민 씨가.”

 그러나 쉽지 않다.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은 라벤더 향이 나는 방향제였다. 내게 하는 말들이 가벼운 감정에서 비롯된 거라면 그는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봐서?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내가 우습게 보여서? 아니면, 내가 쳐다보고 있단 걸 알아채서 신났어? 이마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에게서 시선을 떼며 홀로 분주해졌다. 캔들 디피를 이리저리 바꾸기도 하고, 만들어온 석고를 더 올렸다가, 내렸다가, 이번엔 디퓨저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

 “도와드릴까요?”
 “아뇨.”

 그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차가운 태도를 보이면 내게 생겼던 가벼운 호기심을 거두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약해져 있는 내 신경을 건드리는 그가 조금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내게 그럴 여유가 생겨선 안 된다. 어린 남자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마음을 찔리고 싶지도 않다.

 “매일 향기 나는 곳에 계실 것 같아요.”
 “…….”
 “행복하겠다.”
 “아뇨. 하나도요.”

 이 일의 첫 시작은 불행한 나를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행복하겠다고 단정하는 그 말은 객관적으로 거슬리거나 무례한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내 머릿속에 이 남자는 이미 이상한 방식으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할 일 없으세요?”
 “네?”
 “계속 제 앞에 계시니까 부담스러워요.”
 “아….”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눈높이에 있는 그의 눈동자에 똑바로 눈을 맞췄다. 개구쟁이 같이 맑고 또렷했던 그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럼에도 시선을 빨아들이는 눈빛이다. 툭 건들면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축축하고 깊어졌다. 이런 눈을 가졌던 사람을 알고 있다. 내 첫사랑도 그랬다. 사랑을 고백하던 남편의 나이도 스물다섯이었다. 그러니… 이젠 속지 않을 것이다.

 “혹시…”
 “…….”
 “제가 싫으세요?”

 이렇게 솔직해도 잃을 것 없이 괜찮을 나이니까, 절대로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좋고 싫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요.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에요.”
 “그럼… 알아 가면 안 되나요?”
 “굳이 그럴 마음 없어요.”
 “꼭 저를 싫어하고 싶으신 것 같네요.”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 말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모자를 벗어서 앞머리를 두어 번 털고는 다시 이마가 보이게 쓸어 넘겼다. 그 행동에 한숨이 조금 섞여있다.

 “어려워요. 지민 씨 눈빛이랑 입술이 다른 말을 해서.”
 “…….”
 “귀찮게 안 할게요. 죄송했어요.”
 “…….”
 “근데요 지민 씨. 억지로 싫어하진 말아주세요. 그건 좀… 슬픈 것 같거든요.”

 미간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입술 안쪽을 꾹 깨물며 고집스럽게 버텼다. 어쩌면 지금 내 표정이 무척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다.

 “가볼게요. 고생하세요.”

 그는 다시 모자를 푹 눌러쓰며 돌아섰다. 푸드 트럭을 향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참았던 숨을 탁 터뜨렸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에 힘이 빠진다.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는다.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아직 하루의 막이 열리기도 전에 말이다. 그를 탓하고 싶어도 소용없다. 망쳐버린 건 온전히 나였다.





*






 아침 일찍부터 진동이 계속 울렸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던 나는 겨우 몸을 들어 액정을 확인했다. 남편의 전화였다. 연애할 때 저장해두었던 ‘자기’라는 이름이 둥둥 떠 있다. 새삼스럽게 불쾌한 마음이 들어서 거절버튼을 눌렀다. 평소 남편이 내게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고, 내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래서 거절당한 게 분한 건지, 남편은 전화가 끊기자마자 득달같이 또 전화를 걸어왔다. 끝까지 받지 않으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전화를 받았다. 이혼소송까지 접수된 마당에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한다는 사실이 의문스럽기도 했다.

 -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용건이 뭐야.”
 - 말투가 왜 이렇게 변했어?
 “용건만 말해.”
 - 야, 오늘 어린이날인 건 알고 있어?
 “…….”

 나는 폰을 귀에서 떼고 액정 메인을 확인했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어제 야시장에 유난히 어린 아이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휴일이기 때문이었다.

 - 어린이날인데 연우 내버려둘 거야?
 “당신 아이야.”
 - 정내미 떨어지게 말할래? 애 불쌍하게 만들지 마. 연우가 무슨 죄야.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아이에게 아빠 하나를 빼앗아간 건 당신이다.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 휴…. 나 컨퍼런스 가. 지금 출국해. 어제 엄마 댁에 맡겨놨는데, 야, 생각을 해봐라. 엄마가 뭐라고 생각하시겠냐? 연우는 또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빠들 이혼소송 중이라고 광고할래? 엄마가 묻길래 대충 둘러댔어. 오늘 네가 연우 데리러 올 거라고 말해놨어.

 하…. 답답하다. 두통이 밀려와서 이마를 짚었다.

 “당신은 대체…”
 - 잊지 마. 우리 아직 이혼한 거 아니다.
 “…….”
 - 열한 시까지 간다고 말해놨으니까 그렇게 알아.
 “뭐…?”
 - 집에 너 쓰던 카드 뒀다. 연우 데리고 나가서 사달라는 거 다 사줘.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사고. 아, 차 팔았더라? 참나, 어이가 없어서…. 그래. 잘했다. 어차피 바꿔주려고 했는데. 차키도 같이 뒀으니까 타고 다녀. 없어보이게 다니지 마. 쪽팔리게. 너 아직 병원장 안사람이야.
 “…….”
 - 너 지금 이러는 거,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행동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제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전화. 뻔뻔함의 정도를 넘어버린 남편의 태도에 신물이 났다. 폰을 소파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그럼에도 차마 모른 체할 수 없다. 부모 없이 할머니 댁에서 어린이날을 보내야 하는 아이가 눈에 밟혔다.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관계는 남편 말고도 많다. 아이, 그의 부모, 그리고 나의 부모.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은 결혼이라는 틀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그것은 내 약점이 되기도 할 테다. 지금처럼. 참 야속하다.



 결국 나는 남편의 본가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오랜만에 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안기며 와앙 눈물부터 터뜨렸다. 어머님이 보는 앞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자 식은땀이 났다. 얼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중년의 입주도우미가 처음 보는 나를 경계하더니 이내 연우의 아빠인 걸 알고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오랜만에 들어온 집 안을 둘러보았다. 내 몸 하나 빠져나왔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아직 집 안에는 내 물건이 가득했고, 거실에는 커다란 가족사진 액자가 그대로 걸려 있다.

 카드와 함께 놓여 있는 차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임시번호판을 달고 있는 멀끔한 포르쉐가 헤드라이트를 밝힌다. 웃음도 안 나왔다. 이젠 이런 작전을 쓰는 모양이다. 나를 그렇게 오래 봤으면서 아직도 파악 못한 걸까. 나는 연우의 손을 잡고 포르쉐 대신 내가 타고 왔던 소형 중고차에 올랐다. 연우가 포르쉐를 힐끔거리며 물음표를 단다.

 “아빠가 이상한 차에 타지 말랬는데….”
 “연우야. 그건 아빠가 농담하신 걸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는 제 아빠의 입김에 젖어가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차를 출발했다. 휴일이라 도로상황은 좋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어린이 뮤지컬은 모두 매진이었고, 놀이동산은 인파 때문에 무리다. 매년 어린이날마다 남편은 아이를 체험학습장, 박물관, 학습센터, 교육놀이센터, 과학관에 데리고 갔다. 나는 고민 끝에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며 놀아주기로 했다.

 점핑장, 롤러브레이드장, VR게임장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유치원생 때부터 지금까지 학습과 관련된 곳이 아니면 가지 못하게 했던 남편 탓에, 연우에게는 이곳들이 신세계였던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뛰어놀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신나게 노는 연우를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우리가 남남이 되면, 연우는 영원히 욕심 많은 아빠 밑에서 눌리며 성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늘 이렇게 자유롭게 노는 것이 어쩌면 연우에게는 마지막 추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남편 말을 거역하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었을 것이다. 그놈의 학원부터 때려치우고.

 하루는 금세 저물었다. 차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아들고 다시 남편의 본가로 향했다.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나오자 어머님이 조용히 나를 소파로 불러 앉혔다. 그녀는 내 모습을 가만히 뜯어보더니 소파 옆 서랍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건넸다. 나는 그것이 돈 봉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민이 너 요즘 뭐하고 다니니?”
 “…….”
 “연우 픽업도 안 한담서. 사업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애까지 다른 사람 손을 타야겠어?”

 아무래도 남편이 적당히 둘러댄 모양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손끝만 내려다보았다.

 “옷 꼴은 그게 뭐야. 얘가 정말?”
 “…어머님.”
 “애비 병원이 그렇게 잘 되는데 너까지 나대야겠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
 “사업 그런 거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너 지금 돈 필요하다고 애비한테 시위하는 거잖아.”
 “어머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집에도 잘 안 들어온다고 연우한테 다 들었어. 내가 참다 참다 정말 기가 막혀서…. 네 본분도 안 하고 뭐하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너 오면 혼 좀 내주려고 했어.”

 사정을 모르는 그녀는 나를 다그친다. 그러나 남편이 벌인 짓을 알게 되더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녀의 목과 손가락에 걸쳐져 있는 보석만큼도 못하기 때문이다. 내 존재는.

 “사돈댁에서 돈 필요하다고 하시지?”
 “그게 무슨…”
 “이거 가져다 드려. 그리고 다음부턴 이런 식으로 아들 시켜서 시위하지 말고 찾아오시라고 해.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닌데 얼굴 붉히실 것도 없지.”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머릿속에 거대한 추가 떨어진 것 같았다. 전혀 모르던 이야기다. 방금 들은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심장이 펄떡였다. 갑갑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참아보려 하지만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다. 이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오해를 한 꺼풀 벗겨내면 조금 나아질까.

 아니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다. 지금 당장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통증과도 같은 그것을.

 “저희 이혼 중이에요. 어머니.”

 참아왔던 것을 해치운 마당에 이 말을 전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축에 속했다. 내 말에 놀란 얼굴로 굳어버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사람에게 여자가 생겼어요. 오래 됐어요.”
 “뭐라고?”
 “그래서 이혼소송 중이에요.”

 내 말에 그녀가 눈동자를 올리며 실소를 터뜨린다. 그리고 이내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하이톤으로 과장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남편의 만행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나만 발칙한 죄인이 되는 상황을 이미 몇 번이나 예상했다.

 “너 지금 장난하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남편의 말에 거역한 적이 없었듯, 나는 그의 가족들에게도 역시 말대꾸 한번 한 적 없다.

 “얘 좀 봐. 어머.”
 “돈 필요한 거 아니고,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서 나온 거예요. 그 사람도 싫고 연우도 싫어서요. 다… 지긋지긋해서요.”
 “너 지금…!”
 “아마 지금도 그 여자와 함께 해외에 가 있을지도 모르죠. 아들까지 팽개치고요. 어머니 저는 정말로… 지쳤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
 “죄송합니다. 가볼게요.”
 “앉으라고 했어!!”

 늘 어머님은 내게 교양 있게 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교양이 으리으리한 집의 크기와 타고 다니는 차의 브랜드, 몸에 걸친 것들을 합친 가격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른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곳엔 소란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연우가 있었다. 아이의 놀란 표정은 내게 어딜 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연우는 똑똑하다. 어른들의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헤어진다는 게 뭔지, 싫다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 것 같다.

 “연우야, 이제 아빠 못 봐.”
 “너 그 입 안 닥쳐!!”
 “아빠는 이제 연우 아빠 아니야.”
 “너 이 새끼!!!”

 찢어질 듯 악을 쓰며 욕하는 것이 그녀가 말하던 교양이었나 보다. 연우는 벼락같은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계치에 다다른 나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왔다.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사람도, 챙겨야 할 사람도, 이젠 내가 아닌 당신이다.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것 역시 8년의 헌신을 저버린 당신의 업보다.

 시야가 너무 뿌옇다. 하지만 나는 무작정 엑셀을 밟는다. 내가 타고 있는 차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차고를 빠져나와 도로를 질주한다. 해방감일까? 가슴을 쥐어뜯긴 것처럼 아픈데도 한 구석에선 전율이 인다. 차라리 이대로 미쳐버렸으면 싶다.





*






 또다시 주말이 되어 부스에 앉아 있다. 지옥 같은 일주일이었다. 남편에게서는 일주일 내내 계속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지는 태평양에 있는 휴양지였다. 예상대로였다. 컨퍼런스에 간다더니 그것마저 핑계였던 것이다. 내게 제 아들을 맡겨놓고 팔자 좋게 여자와 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일말의 인류애마저 사라졌다. 연우는 학교에서 만든 카네이션을 누구에게도 달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찢어 죽여도 모자라다.

 친정에 전화를 걸어 이혼소송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사실을 확인받아야 했다. 참 지옥 같은 말이었다.

 ‘너 어쩌려고 그래 지민아.’

 엄마의 첫 마디였다.

 ‘그래도… 사돈댁이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데….’

 힘들다는 내 말에 대한 답이었다.

 ‘…2억.’

 얼마를 빌렸냐는 말에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 나를 붙잡기 위해 구입한 새 차는 2억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죽을 때까지 그 돈을 벌 수 없다. 그나마 남은 것은 치졸한 소송뿐이다.  

 온종일 멍하게 자리만 지켰다.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날 이후로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몸을 크게 움직이면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가 돌아왔다. 이러다가 자리에서 콱 쓰러져버린다면 남편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그런 치욕을 겪지 않으려면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다. 산송장 같은 내 모습을 보며 물건을 사줄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억지로 웃는 것도 힘들어서 표정 없는 얼굴로 꾸역꾸역 시간을 때웠다. 홀로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폐장시간이 되자 상인들은 각자 바쁘게 짐을 챙겼다. 나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옆 부스에 있는 사람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준 후에야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웅크리고 앉아서 커다란 가방 안에 물건들을 담았다. 그러나 영 진전이 되지 않는다. 신체에 한계가 왔나 보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로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쾅 찧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그리고 거의 반사적인 속도로 내 등을 받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남자였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살폈다. 그는 계속 나를 보고 있던 걸까. 이렇게 빨리 나를 감싼 것을 보니 말이다. 정신이 없어서 온종일 그의 존재를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어디 아프세요?”
 “…아, 아니에요.”
 “아프신 것 같아요.”
 “아뇨. 그냥… 괜찮아요.”

 실은 허기가 오래되어 뱃가죽이 마비된 것 같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전정국은 나를 똑바로 앉혀놓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을 가방 안에 대신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잠자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본가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왠지 낯설고 이상했다.

 “싫어하실까 봐 인사도 못했어요. 근데 왜 이렇게 아파 보여요. 신경 쓰이잖아요. 아, 이런 말하면 또 싫어하실 거죠.”
 “…….”
 “그래도 싫어하지 마세요. 한 번만 눈감아주세요. 아픈 사람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 못 되거든요. 저.”

 그는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게 꼭 삐진 사람이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서 별안간 웃음이 터졌다. 참 이상한 일을 여러 번 겪는다. 몸이 온전치 않으니 별게 다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내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자 그가 행동을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와….”
 “…….”
 “웃으시는 거 처음 봤어요.”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나는 급히 웃음을 갈무리하려 애썼다. 얼굴이 아무렇게나 일그러지는 것 같다. 그는 가방을 닫은 후 손잡이를 잡고 번쩍 들었다. 그리곤 다른 한 손으로 내 팔목을 잡아 일으킨다. 얼떨결에 몸을 일으킨 나는 또다시 현기증이 일어 비틀거렸다.

 “차 가지고 오셨어요?”
 “제가 할게요.”
 “일주일은 굶은 사람 같은 몸으로 이걸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요. 무거워요.”
 “할 수 있어요.”
 “지금 기분으로는 지민 씨 업고 갈 수도 있거든요. 근데 싫어하실 거잖아요. 그래서 가방만 들어드릴 거예요.”

 그는 자꾸만 내게 ‘싫어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의 화법이 뜬금없이 귀엽게 느껴져서 또다시 웃음이 샜다. 미쳤다. 그리고 다 귀찮다. 뾰족해지는 거. 배고프고 힘드니까 다 귀찮다. 부질없다.

 “안 싫어요.”
 “…….”
 “싫어하고 싶은 적도 없고.”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억지로 빼앗아 들었다. 몸에 힘이 빠져서 이깟 가방을 드는 데에도 땀이 흐를 정도로 버겁다. 나는 어금니를 꽉 물며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고 계속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뭐라고 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것도 호기심에서 비롯된 친절과 관심이라면… 마음대로 하라지. 사실 내 문제에 골몰하느라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싶은 여력도 없다.

 이윽고 내 걸음이 차 앞에 멈췄다. 키를 누르자 헤드램프가 깜빡인다. 나는 이내 무언갈 깨닫고 뒤로 돌아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내 소형차를 가만히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300만원을 주고 구입한 이 차는 연식이 아주 오래되어 모델명을 아는 이도 잘 없을 것이다. 아홉 살짜리 아이의 눈에도 ‘이상한 차’라고 느껴질 정도로 낡았다. 나는 이 남자 앞에서 벤츠 차주에서 순식간에 아래로 추락했다. 이 순간 그게 대체 뭐가 중요한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왠지 내게 있던 모든 일들을 다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작 이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또다시 발가벗겨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웅크리고 앉아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참 알 수 없는 좌절감이다. 최근에 내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






 내가 왜 이 남자와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전정국이 내 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몰골로 차창 밖을 바라보며 딸꾹질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24시 국밥집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먹는 행위에만 열중하는 중이다.

 오래 비어 있던 속에 음식이 들어가자 위장이 아파왔다. 나는 밥을 넘기지 못하고 조용히 국만 떠먹었다. 그러자 그가 밥을 한 입 크게 떠먹다 말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시선을 통 견디기가 힘들어서 억지로 밥을 퍼서 입 안에 욱여넣었다.

 “억지로 드시지 마세요.”

 귀신 같이 알아챈다.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아서 급하게 물을 마셨다. 그래도 뱃속에 뭐라도 집어넣었다고 조금 살 만해진 모양이다. 온종일 이어지던 현기증은 사라졌고 뱃가죽이 말라붙은 것 같은 통증도 없다. 나는 조금 무식하게 내 자신을 혹사시켰다. 사실 내가 망가지면 손해 보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어리석은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지민 씨는 알 수가 없어요.”
 “뭐가요?”
 “그냥 다요.”

 그 말은 나에 대해 궁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것도 호기심의 일종인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깊게 뻗쳐갈 힘은 아직 나지 않는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지민 씨는 누구한테 반해본 적 없으신가 봐요.”
 “…….”

 있다. 내 첫사랑의 시작이 그랬으니까.

 “반하면 다 알고 싶은 거예요.”
 “…….”
 “근데 왜 아팠는지, 왜 울었는지, 그런 건 안 궁금해요. 이제 괜찮은지만 궁금해요.”

 그는 나를 처음 본 날부터 자꾸만 내 안부를 묻는다. 다친 덴 없는지. 아프지 않은지. 괜찮은지.

 이것도 전정국 씨의 호기심에 포함 되나요?

 “제게 호기심 갖지 마세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 역시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며 천천히 내게 고개를 내민다. 맑고 찬란한 눈동자가 나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한참이나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 시선이 점점 고통스러워질 때쯤, 그가 앙 다물었던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했다.

 내게 쐐기를 박는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을, 서운함을 의심으로 포장했을, 밀어내며 모른 체하고 싶었을, 그런 단호한 말로.


 “호감이에요.”
 “…….”
 “호기심이 아니고.”





 







  

(+)

‘테라픽션’은 테라피와 픽션을 합친 말이에요. 합성어로 나와 있는 단어는 아니고 제가 만들었습니다. 중편은 제 기준 5만 자 이상의 소설을 말하는데, 아마도 6,7편쯤에서 완결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 리얼리즘을 담고 있어서 보시기 힘드실 수 있지만, 재미있어질 거예요!



밀국민빵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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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리얼한 글 핵 좋아해요 ㅠㅠ 기디렸습니다 넘 재밌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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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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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필력이 상당하시네요.
영영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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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리  | 190613   
전 랠리님 글들 상대방 시점에서 쓴 회들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중편이라 기대하면 안될까하다가 걍 찔러나봐요~ :)
건강맨날해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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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미쵸  | 190613   
6,7편으로 완결이 나다니..궁금해요!더궁금해욥!!!
뽀둥이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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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넘달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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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지  | 190613   
찢어죽일 남편놈. 어디 한군데 부러트리면 안될까요?
돌아오는 비행기가 추락한다던지? ㅎㅎ;;;;;

호감..치유..웃음..사랑..
되찾기를..
milbong_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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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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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렌디피티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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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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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하 존잼 작가님 이거 +99999편 인데요,,,
퍼피  |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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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브  | 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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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리  | 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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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필요하시면연락주세요깔끔하게처리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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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hi  | 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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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  | 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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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현  | 190616   
진자 남편을 콱,, ㅠㅠㅠㅠㅠ휴 지민이가 웃는 걸 처음 보고 정국이는 또 한 번 반했을 거예요 그쵸?:) 얼른 지민이가 정국이 덕에 치유가 됐으면 좋겠네요 좋은 사랑 하거라ㅠㅠ 오늘도 간사합니다 랠리님 !
청와  | 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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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원  | 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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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jim  | 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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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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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는 왜 눙물이 날려고 할까요
너무 감정이입 했나봐요ㅠㅠ
산사  | 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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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쿠헨  | 190726   
지민의 눈으로 보는 정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 없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나를 향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ㅠㅠ 하지만 지민의 망설임도 이해가 되구요. 그 마음 받아주라고 광광대다가도 또 지민이 입장이 이해가니 끄덕대고 있고요 진짜 어쩌란말이냐아~ 테라픽션 읽다보면 제 감정도 마구 요동치는 느낌이 들어요.
국민리얼!  | 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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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 191116   
하 ㅜ 담편 갑니다 잘 읽었어요~!
스터닝  |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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