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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2 랠리 씀
외톨이
2









정국에게 쏘아붙인 이후로 지민의 신경은 부쩍 예민해졌다. 다음 날 마주친 정국을 몰래 살폈다. 정국은 아무 말도 없었다. 원래 말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민은 왠지 자기 탓인 것 같아 더듬이를 바짝 세웠다. 정국의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지민은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차라리 자신의 눈치를 살살 보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밥 먹자.”

결국 먼저 말을 건 쪽은 지민이었다. 어떻게 말을 붙여 볼까 고민하다가,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탈의실로 향했다. 안에는 손님 몇 명이 옷을 갈아입거나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마른 자루걸레로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닦아내는 정국이 보였다. 지민의 목소리에 정국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 보았다. 그리고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침을 늦게 먹었어요.”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지민은 귀가 빨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못된 말을 퍼부었으니 어쩌면 정국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지민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스스로 이기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윙윙거리는 드라이기 소리나 TV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잠시 뮤트 되는 것 같았다. 정국의 말간 눈과 자신 사이에 긴 터널만 보였다. 분명 뻥 뚫려 있는데 막막하다. 끝이 안 보인다.

지민은 휙 돌아 나와 혼자 도시락을 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





며칠이 지났다. 아침 일찍 카운터에 앉은 지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정국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함께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끼니 때마다 중국집 배달부가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만 밥만 함께 먹지 않을 뿐 정국의 행동에는 다른 점이 없었다. 목욕탕 입구를 쓸고 물걸레로 닦는 움직임은 바빴지만 고요했다.

사과를 할까. 아니다. 벌써 며칠이 지난 일이었다.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사과할까 말까 온 종일 너만 생각했다는 걸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청소를 마치고 남탕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한 번만 고개를 돌려 나를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지민은 카운터에 정신을 팔고 앉아있는 날이 잦았다. 심드렁하게 수건이나 락커 키를 꺼내 주고, 지루한 상념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남탕 문이 열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 문을 바라보았다. 정국은 한 번을 나와 보지 않았다. 지민의 한숨은 점점 깊어졌다. 그 속에는 '나는 왜 병신인가' 따위의 자아비판이 섞여 나왔다.

내내 정신을 다른 곳에 두다가 깨어난 것은 어느 점심때였다. 도시락을 열고 있는데 갑자기 정국이 나타났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특유의 맑은 눈빛을 하고선 의자에 앉으며 반찬 뚜껑 여는 것을 도왔다. 지민은 그가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손을 흔들 뻔했다.

정국이 밥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한 입 가득 뜨고는 반찬을 골고루 잡아넣고 오물거렸다. 지민은 얼이 빠진 채로 정국이 먹는 모습을 응시했다. 그 눈빛이 느껴졌는지 정국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맛있어요.”
“…….”
“엄마 반찬이 제일 맛있어요.”

갑자기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지민은 울컥 화가 났다. 또 다시 엄마라고 했어. 며칠 동안 마음 졸이게 해놓더니 고작 하는 행동이 그랬다. 지난번 일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난 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넌 털어내면 그만이란 걸 보여주려는지. 내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는 건지. 왜? 내가 자꾸 네 생각을 해서? 네가 이미 우위를 차지해버려서? 그의 행동은 지민을 더욱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제 마음대로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근거는 없었다. 창피했다. 그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때 정국이 지민의 뒷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민의 눈 아래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정국은 여전히 반찬을 오물거리면서 지민의 티셔츠 넥 라인이 뒤집어져 튀어나온 택을 제자리로 정리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정국의 손끝이 지민의 목을 살짝 스쳤다. 지민은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대체.

“지금 뭐해 너.”
“뭐가요?”
“나 가지고 놀지?”

지민은 주둥이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말을 뱉어버렸다. 사고 회로가 제대로 돌지 않아 말을 정제할 여력이 없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들켜버린 것 같은 모멸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따지고 보면 정국이 특별히 거슬리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걸 아는데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은 밥 덩어리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새 식은 밥이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정국은 음식을 씹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지민이 테이블을 대충 치우고 카운터 룸을 나가려는 순간 무미건조한 그의 목소리가 발을 붙잡았다.

“또네요.”

지민이 그를 돌아봤다.

“화나면 박차고 나가는 거.”

정국의 동그란 눈이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





엄마의 수술 후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대학병원까지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엄마와 나란히 택시에 올라탄 지민은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 했다. 속이 시끄러웠다. 머릿속에 정국이 떠 다녔다. 지민은 점점 자신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대체 그 애의 뭘 보고 그렇게……. 차마 뒷말은 정의할 수가 없었다.

지민은 엄마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정국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더 거대해져 갔다. 아무런 악의도 사심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자신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 정국. 그 무게감에 지민은 대기 의자에 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정국이 자신의 멱살을 잡는 상상을 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고, 따지고, 기어오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에게 미친년이라고 상스러운 욕을 하며 머리를 세게 움켜쥔다. 그러다가 가까워진 얼굴 사이로 숨이 섞이는 거다. 화를 내듯 그가 자신의 입술을 덮쳐 문다. 새빨간 혀가 뒤엉킨다. 그의 손이 자신의 허리춤에 들어온다. 골반 뼈를 만지작거린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움켜쥔다. 거칠게 바지를 내리고, 손가락을….

“자니?”

엄마의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지민은 순식간에 망상에 빠져든 자신이 낯설었다. 아주 엉망이었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엄마 나 어떻게 해, 하며 안겨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신이 나간 채로 엄마의 뒤를 따랐다. 지민은 엄마와 함께 병원 복도를 걷는 내내 생각했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닐까.

엄마의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추적 검사만 잘 하면 문제없다는 소견을 듣고 지민은 안도했다. 머릿속에 매듭이 잔뜩 꼬여있어서 풀 엄두도 안 났는데, 별안간 느슨한 부분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평안은 금세 망가져버렸다. 엄마와 내원 스케쥴을 잡던 간호사가 지민을 보더니 대뜸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아드님이 두 분 다 잘생기셨네요.”

지민은 간호사가 말한 다른 아들 한 명이 누군지 알아챘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느슨했던 매듭이 양쪽으로 세게 잡아 당겨졌다. 며칠 전 일로 신경 쓰였는지, 엄마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자신이 서울에 있는 동안 외롭고 아팠을 엄마. 지민은 그 엄마의 곁을 누군가가 지켰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큰 의지가 된 사람이 아닐까. 그게 정국이라는 건, 아니, 자신이 미친 상상을 하고 있는 상대라는 건 더더욱 예정에 없던 일이다.

손이 달달 떨려왔다. 지민은 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





지민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퍼부었다. 술병이 쌓이고 쌓여 테이블 위에 띠를 둘렀다. 각 일병, 이병, 하며 카운트하던 것도 끊긴지 오래였다. 얼마나 마신 건지 가늠도 잘 안 됐다. 지민은 자꾸만 술을 흘리고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등 전조증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화장실도 혼자 못 갈 정도로 몸이 축축 늘어졌다. 뭉근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별것도 아닌 말에 욱해서 친구의 멱살을 잡았다.

만신창이였다. 집에 내려온 이후로 감정 기복이 말도 못하게 심해졌다. 그 원인은 모두 정국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지민을 억지로 택시에 태웠다. 그는 뒷좌석에 앉아 차창에 머리를 기대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사거리 목욕탕으로 가주세요.”




*





비틀거리며 목욕탕 입구에 들어갔다. 불이 꺼진 카운터 룸과 여탕이 보였다. 오로지 남탕 안쪽에서만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민은 자신이 어떻게 걷고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다리가 풀렸지만 벽을 붙잡고 탈의실로 향했다. 형광등 몇 개만 켜진 채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지민은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탈의실 끝의 쪽방으로 향했다. 앞 뒤 생각할 정신없이 그 안에 있을 정국만 보며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지민이 풀린 눈으로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낡은 쪽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정국이었다. 방을 나오던 그와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지민은 오직 정국을 보겠다는 목적으로 이곳에 왔으면서도 막상 그의 앞에 서니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너어….”
“…….”

지민은 말을 듣지 않는 혓바닥 때문에 숨을 한 번 고르고,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있는 정국을 올려 보았다.

“너….”
“술 마셨네요.”
“너… 너 때문에….”
“네 형.”
“숨 막혀… 나… 너….”

주정을 부리듯 지민이 두서없이 말을 던졌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술기운이 올라왔다. 지민의 몸이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다리가 풀려 옆으로 삐끗 넘어지려는 순간 정국의 팔이 지민을 잡아 받쳤다. 지민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의 팔에 갇힌 채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턱을 조금만 내밀면 정국과 입술이 닿을 것 같았다. 지민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다 알지?”
“…….”
“그치? 눈치 챘잖아. 내가…”
“…….”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그거 다 알지 너. 알고 그러는 나한테 그러는 거지. 나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한테 끌린 거 다 알면서 일부러. 억지스러운 말들이 지민의 목구멍으로 밀고 올라왔다. 다행히 지민의 혓바닥이 말을 듣진 않아서 그 말들은 튀어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정리가 되어 사라졌다. 지민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정국이 붙들고 있는 맨살이 뜨거웠다. 지민은 도망쳐야 했다. 술기운보다 더 강한 무엇이 끌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정국의 팔을 작게 뿌리치고 지민은 비틀비틀 몸을 돌렸다.

“무슨 생각 하는데요.”

그러나 손쉽게 다시 잡혀 버렸다. 그가 손목을 살짝 당겼는데도 지민은 크게 휘청했다. 몸의 모든 세포가 흐느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지민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억지로 힘을 주며 눈을 뜨려 노력했다. 축축하게 붙어 오는 정국의 시선에 머리끝부터 용해되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냐면, 그건…. 지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런 거요?”

순식간에 정국이 지민의 허리를 감고 입을 맞춰왔다. 지민의 머릿속에 하얀 물감이 팟 하고 터졌다. 눈을 질끈 감고 닿은 입술의 촉감을 음미했다. 엉덩이 골에서부터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그래 이런 거. 이거 맞아. 지민이 정국의 목에 팔을 두르며 고개를 비틀었다. 그리고는 정국의 입술을 잡아 삼킬 듯이 다가갔다. 숨이 찼다. 지민이 몸에 힘을 빼고 정국에게 치댔다. 정국이 그 무게감에 뒤로 한 발자국 밀려나며 벽에 등을 부딪쳤다. 지민은 병원에서처럼 자신이 망상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다. 술기운에 못 할 것도 없었다.

발뒤꿈치를 든 채로 정국의 입술을 급하게 빨아댔다. 허리에 감겨있는 정국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은 정국의 목을 잔뜩 끌어당기고 있음에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고요하고 후덥지근한 탈의실의 공기가 온 몸에 달라붙었다. 두 사람의 관자놀이에 땀이 흘러내렸다. 지민은 정국의 머리통과 뒷목을 부여잡고 입술을 짓이겼다. 벌어진 입술에서 혀가 적극적으로 나와 정국의 안을 헤집었다. 지민은 눈을 꽉 감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 정국이 혀를 붙여오며 한 손으로 지민의 뺨을 감쌌다. 지민은 그 움직임에 힘입어 몸을 그에게 바짝 붙였다. 단단한 가슴팍이 몸에 닿았다.

“…….”

갑자기 떨어지는 입술에 지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국의 젖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지민은 뭐에 홀린 것처럼 그의 티셔츠 안에 손을 급하게 집어넣었다. 탄탄한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옷을 끌어 올렸다. 술기운이란 게 참 무서웠다. 생전에 한 번도 낸 적 없는 용기가 툭 불거져 나왔다. 그의 몸을 더듬으면서 눈으로는 끊임없이 그렇게 말했다. 안아 줘. 하고 싶어.

정국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지민의 손을 저지하며 붙잡았다. 순식간에 떨어져 나간 지민이 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가 고요한 눈으로 지민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목을 놓아주었다.

“취했어요. 형.”

정국이 지민을 지나쳐 탈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지민의 다리가 그제야 풀렸다. 바닥에 무너져버렸다.




*





지민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어떻게 집까지 기어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정국과의 입맞춤은 똑똑히 기억이 났다.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부엌에 달려가 냉장고에서 1.5L짜리 물병을 들고 주둥이에 입을 댄 채로 꿀꺽 꿀꺽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까지 차는 느낌이 들 때까지 들이부었다.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마셨냐는 엄마의 핀잔은 들리지도 않았다. 어젯밤 정국과의 입맞춤이 눈앞에 뜨겁게 재생되었다.

카운터에 앉아 남탕 입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어떤 얼굴로 정국의 앞에 서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그와 무슨 사이가 된 것처럼 지민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술김 홧김에 저지른 일은 늘 주워 담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으면 했다. 지민은 처음 남자에게 안겼던 때를 떠올렸다. 어젯밤은 그 첫 경험보다 더 뜨거웠다. 열기가 아직까지 지민의 몸에 잔잔히 남아있었다. 고작 몸을 바짝 붙인 키스만으로 그랬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정국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카운터 룸으로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3시가 넘어가고 나서야 지민은 정국이 일부러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민은 저녁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탈의실로 향했다. 정국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지민을 한 번 올려본 정국은 다시 시선을 거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이들과 하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지나가는 행인을 한 번 쳐다보듯, 그 무심한 눈빛에 지민은 선 자리에서 몸이 굳는 느낌이 들었다.

왜? 어째서?

지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컵라면을 오물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야속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카운터 룸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국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민이 오래 묵혀놓은 도시락을 폈다. 밥에서 쉰내가 났다.




*





지민은 온종일 영업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도중에 몇 번이나 탈의실로 뛰어 들어가 따져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마자 지민은 간판 불을 내리고 남탕으로 들어갔다. 탈의실엔 정국이 없었다. 끝으로 달려가 쪽방 문을 열었다. 그곳에도 정국이 없었다. 지민은 폭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진정이 안 됐다. 목욕탕 문을 열었다. 슥삭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지민은 온기가 도는 목욕탕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구석에서 발견했다. 상의를 탈의한 채 몸을 구부리고 앉아 타일을 닦는 정국을.

지민이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정국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정국은 갑자기 제 앞에 서서 씩씩대는 지민을 향해 물음표를 쏟아냈다.

“뭐야 너?”

지민이 대뜸 그랬다. 지민의 가슴팍이 숨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였다. 정국은 그에게 눈을 맞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단한 상체가 지민의 앞에 마주 섰다.

“키스. 그거 왜 했어 나한테?”

이렇게 모른 척 할 거면.

지민이 따지듯 물었다. 정국은 말간 눈으로 지민을 내려 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지민은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혼자서만 열이 올라 바락바락 거리는 것이 우습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답해!”

재촉하는 지민의 말에 정국은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이내 몸을 돌려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지민은 미쳐 날뛰며 대가리를 타일에 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마음 가는대로 발작을 하며 정국의 앞에서 행패를 부려도 시원치 않을 기분이었다. 정국은 그렇게 폭발 직전인 지민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탕으로 가서 양동이로 물을 퍼 담기 시작했다. 철저히 무시하는 행동에 지민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이 새끼야!”

지민이 소리를 빽 지르며 정국의 팔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국이 몸을 휘청거렸다. 양동이가 쓰러지는 바람에 받았던 물이 충격으로 다시 탕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걸 본 정국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뭐?”
“형은 어땠어요?”

지민은 생각지 못한 정국의 솔직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형 좋아서 그랬어요. 그런데 무서웠어요.”

잠깐만, 뭐라고? 지민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정국의 말이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술이 덜 깼나. 아니면 아직도 내가 망상 중인 건가.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여전히 현실이었다.

“형도 떠날까봐서.”
“너 지금…”
“내가 좋아요?”

갑자기 쏟아지는 정국의 말에 지민은 순식간에 두려워졌다. 심장이 바닥에 내려앉는 기분이다.

“말 해봐요. 내가 좋아요?”

지독한 애정 갈구. 지민은 정국의 말에서 그것을 느꼈다. 거기서 오는 묵직함에 지민은 숨이 막혔다. 대답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정국은 분명 상처 입지 않은 투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본 적 없는 시커먼 멍이 이제야 자취를 드러냈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요? 다시 한 번 물을게요."
“너….”

하루 종일 그렇게 듣고 싶었던 정국의 목소리인데 지민은 무서웠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래 나 너 좋아. 라는 대답을 하는 순간 큰 강을 건너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지민의 태도에 정국은 한참을 표정 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념, 또는 실망. 지민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바짝 굳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어. 어차피 형도 떠날 거잖아. 시작 안 해요.”

정국은 입술을 비틀어 웃더니 다시 몸을 굽혀 양동이에 물을 받았다. 지민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깟 양동이 씨발.

양동이를 온탕 안으로 날려버렸다. 기둥으로 던져진 양동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는 탕 안에 힘없이 빠졌다. 정국의 단정적인 말투에 신경질이 났다. 내가 널 떠날 거라고? 씨발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다가온 적도 없는 게.

“야! 너 웃긴다. 내가 좋았다고? 그래서 술 취한 사람한테 키스하고 도망 치냐? 씨발 진짜.”
“…….”
“가지고 놀지 마 사람. 짜증나.”
“…….”
“그래 나 어차피 떠날 거야. 잘 알고 있네.”

지민은 참아왔던 분노를 와르르 무너뜨려 정국에게 쏟아냈다. 그 순간에도 정국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민은 귀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올 만큼 열이 차오른 것을 느끼며 씩씩거렸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몸을 휙 돌렸다. 그러는 순간에도 정국이 얼마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나면 박차고 나가는 버릇. 그래. 나 원래 이런 병신새끼야.

하지만 지민이 돌아서자마자 꼼짝 못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요.”

물기 어린 목소리. 정국의 목소리가 울고 있었다.

지민은 그걸 듣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 기분이 왜 이래.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야. 지민은 금세 뜨거워진 눈시울로 정국을 쳐다봤다. 정국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지민은 그 모습이 자신의 한계치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국에게 달려가 안겼다. 밀려난 정국이 타일 계단에 주저앉았다. 지민이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고는 그의 입술을 삼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혀를 붙여오며 정신없이 엉켰다.



전국은만개해  | 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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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 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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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 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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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내일  | 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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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y  | 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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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국민  | 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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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삼색아람  | 1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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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림  | 18052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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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52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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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뚤아미  | 180603   
워후 정국아ㅠㅠㅠㅠㅠ 지민아 어뜩해ㅠㅠㅠㅠ 영사해ㅠㅠㅠㅠ
아토  | 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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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 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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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  | 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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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쿠  | 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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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지원  | 180902   
하 왜 저 눈물나죠 ㅠㅠㅠㅠㅠ
skyblue  | 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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춉춉  | 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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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터  | 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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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둥이  | 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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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공주  | 1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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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a  | 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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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dkr_dmd  | 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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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 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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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민사  | 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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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키  | 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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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엉국민너무사랑해  | 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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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 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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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  | 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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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브  | 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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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s226  | 19061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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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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