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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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인어 上 랠리 씀

BGM- 홀로 기다리다

소년과 인어











 톡. 톡. 톡.

 적막한 부두의 끝. 그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조약돌을 던진다. 바다 위에 물수제비를 뜬다. 그러면 잠시 후 물보라가 일며 그가 나타난다. 새하얀 살결을 빛내며 수면 밖으로 얼굴을 배꼼 내미는 사람의 형상.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영채(靈彩).

 인어다.

 메마른 상반신이 구부러지며 마치 자랑하듯 바다 속을 미끄러진다. 활기 있게 꿈틀거리며 유영하는 것을 한참 넋 놓고 바라본다. 해가 저물어 물빛은 온통 까맸지만, 그가 내는 물보라 근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빛깔로 얼룩진다.

 “지민아.”

 정국은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한참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던 그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른다. 배꼽 아래까지 불쑥 올라왔다가 화려한 자개무늬 비늘을 뽐내며 꼬리의 지느러미를 흔든다.

 첨벙.

 바다의 물살이 정국의 얼굴로 뿌려진다. 그는 팔로 얼굴을 가려 물을 막아 보지만 이내 흠뻑 젖고 만다. 정국은 젖은 얼굴을 한 채로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루 중에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 지민은 정국의 유일한 친구였다.





*






 정국은 다 쓰러져 가는 건어물 상의 아들이다.

 그가 사는 곳은 ‘다애도(多愛島)’. 그 누가 지었던가. 사랑이 많은 섬. 그 뜻과 이름이 제법 구미를 당겼던 모양인지 다애도에는 언젠가부터 외지인의 발걸음이 생겨났다. 동남해 연안에서 오십 키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며, 뭍에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배편이 없어 두 번이나 배를 갈아타야 했음에도 그랬다.

 시커먼 양복을 입은 이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말이 맞겠다. 다애도를 지키는 가구의 오 할은 작은 고깃배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고, 나머지 오 할은 텃밭을 일구며 살았다. 무척 평범한 섬 마을의 풍경이었다. 그들에겐 그저 하루 잡고 하루 거둬 하루 먹는 자급자족만이 일생의 꿈이었다.

 정국은 다애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18년]간 뭍으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소년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학교를 마치면 책가방을 멘 채로 할매가 돌보는 건어물 점포로 달려갔다. 할배와 아버지가 덕장에 나가있는 동안 점포 일을 돕는 것은 정국의 몫이었다. 주로 덕장에서 바짝 말려 가지고 온 생선들을 압착 기계에 눌러 둥그런 쥐포로 만드는 일이었다. 가끔은 아버지가 잡아 온 생선의 배를 따 양동이에 수북이 쌓기도 하였다. 보통 이런 일은 며느리가 하는 것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정국에겐 어미가 없었다.

 예전에 정국에겐 누나가 한 명 있었으나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4년 전 일이었다. 다애도의 바다는 어(漁)자원이 풍부해 늘 부족함 없는 먹거리를 제공했지만 가끔은 그렇게 태풍을 데려와 누군가를 앗아가기도 했다. 꼭 제물처럼.

 열여덟의 정국은 그때를 어렴풋이 기억했다.



 할매는 당신의 손녀를 덮쳐간 후 잠잠해진 바다를 향해 애끓는 고성을 질렀다.

 “야야, 잘 가래이. 야야, 암시롱 말고 가래이.”

 어린 정국은 아버지의 등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모래밭에 꿇어 앉아 누나의 옷가지를 바닷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국은 등을 쿡 찌르는 할매의 성화에 얼떨결에 바다를 향해 큰절을 두 번 올렸다. 까슬까슬한 모래알이 무릎에 박히는 느낌이 영 별로였다. 상도, 향도, 술도 없는 이상한 제사였다.

 동그란 눈을 들어 누나를 삼킨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수평선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누나가 바다의 제물이 된 것일까. 그 이듬해는 전에 없던 풍어였다. 다애도 사람들은 그물이 찢어져라 걸려든 물고기를 보며 환호했다. 그 소리 속에는 정국의 누나 이름이 간간히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지민이 그 가시내가 물고기를 다 보내줬네.”

 돌이켜 보니 섬사람들 모두 초상집을 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열네 살의 정국은 그 때 확실히 알았다. 누나는 다애도 앞바다의 제물이 된 거라고.



 정국은 누나를 잃고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마다 부두 끝을 찾았다. 캄캄한 밤, 까만 바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만이 귓전을 때리는 적막함. 정국은 누나를 삼킨 그 검은 물을 바라보며 애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앞에 알 수 없는 빛을 지닌 생명체가 다가왔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빛이었다.

 그는 겁에 질려 부둣가에 떨어뜨려 놓았던 다리를 얼른 올려 팔로 감싸 안았다. 검은 바닷물 속을 유영하던 빛이 원을 그리며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물고기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 크기가 무척 컸다. 그렇다면 고래일까. 아니다. 고래가 이런 얕은 물가에 올 리가 없다. 그럼 저건 뭐지. 정국은 두려움이 서린 눈으로 그곳을 응시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물속에서부터 사람의 형체가 드러났다. 투명하게 빛나는 얼굴과 상아빛 머리카락.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움. 하얗게 반짝이는 상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가 정국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

 정국은 너무 놀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가 다리를 떨며 몸을 뒤로 젖히자, 아름다운 사람이 싱긋 웃으며 물살을 갈랐다. 그 순간 정국은 분명히 보았다. 매끈해 보이는 상체 아래로 보이는 영롱한 꼬리. 커다란 지느러미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물방울을 조금씩 튕기는… 그것은…

 “이… 인어?”

 어느새 정국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낯선 신비로움과 두려움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인어는 정국의 앞에서 물보라를 내다가, 상반신을 들어 천천히 손을 뻗었다.

 「 왜 울어? 」

 인어의 첫 마디였다.

 정국은 깨달았다. 아, 나 울고 있었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정신상태가 좋지 않아서 헛것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꿈에 장단을 좀 맞춰보겠다고. 사실 자신의 슬픔을 한탄할 구석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가족들은 누나의 죽음에 지나치게 차분했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 제물 취급했다.

 “너 우리 누나 봤어?”
 「 응 봤어. 」

 인어의 대답에 정국이 피식 웃었다.

 “아 그래? 봤구나. 어땠어?”
 「 웃고 있었어. 」

 씨발. 꿈에서도 개소리를 하네.

 정국이 낮게 읊조리자 인어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나쁜 말이지? 어감이 별로야. 」

 인어의 목소리는 조금 높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하는데도 마치 귓가에 가까이 입을 붙이고 말하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그것이 정말로 인어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인지, 제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정국은 참 지랄 맞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유치해서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았던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일이었다. 꼬리를 살랑이며 부둣가에 앉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인어. 혹시 옆집 사람 누군가가 아이라도 가진 것은 아닐까. 가끔 할매가 동네 사람들에게 태기가 있을 때 대신 태몽을 꿨다고 말하던 걸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이라고 확신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정국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인어를 향해 말했다.

 “우리 누나 이름은 지민이야. 혹시 또 만나면 말해줘. 더 큰 파도 보내서 여기 다 쓸어버리라고.”
 「 지민? 지민. 」

 인어는 정국의 말을 제대로 들은 건지 만 건지, 누나의 이름만 웅얼거렸다. 정국은 쓸데없이 신선하고 구체적인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기왕 꿈꾸는 거, 속이라도 시원히 다 털어놔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국은 끌어안고 있던 무릎을 내리고는 부두 아래로 다리를 달랑달랑 움직였다. 인어가 자신이 종아리를 힐끔 바라봤다. 정국은 인어의 나른한 눈꺼풀을 보며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말들을 천천히 이어갔다.

 바다의 풍랑은 만화책에 나오는 요괴 같아. 먹을거리를 찾으며 해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사람을 잡아먹는 거지. 그리고 배가 차면 천천히 뒤돌아 가. 물고기를 많이 보내주는 이유는 섬사람을 달래기 위해서야. 씨발, 빌어먹을 바다.

 정국은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인어에게 주절거렸다. 그 한풀이와 욕을 듣던 인어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졌다. 그러더니 한참 뒤 입술을 불룩 내밀고 눈썹을 늘어뜨렸다.

 「 그래도 바다는 멋진 곳이야. 」

 인어가 뾰로통하게 정국을 노려보더니 몸을 홱 돌렸다. 꼬르륵. 순식간에 인어가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까만 수면 아래로 반짝이는 형체가 잠시 유영하더니,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개꿈이네.”

 정국은 잔잔해진 수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






 다음날 아침이 되자 정국은 스르르 눈꺼풀을 열었다. 누렇게 뜬 천장 벽지를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떻게 집에 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몇 시에 집에 왔더라. 분명 어제 부둣가에 갔었는데. 그리고 꿈을 꿨지. 아니, 꿈이 아닌가. 환상인가. 기억을 찬찬히 되새겨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혹시….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정국의 다리는 자신도 모르게 부둣가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부두 끝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오전이라 조금 차가운 바닷바람이 살갗을 때렸다. 정국은 가만히 그곳에 서서 인어를 기다렸다.

 세 시간쯤 지났지만 인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국은 황망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비로소 제 머리를 쳤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인어라니.



 정국은 인어를 만났던 게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해가 지면 부두 끝에 앉았다. 그때처럼 또 깨어있는 채로 꿈을 꾸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정국은 하얀 종아리를 달랑거리며 수평선을 멍하게 구경했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인어가 나타났다.

 환상 같았던 반짝임이 수면 아래로 보였다. 정국은 그걸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다리를 접어 넣었다. 분명해. 인어다! 하얀 형체가 헤엄치며 정국에게로 다가왔다. 금세 인어가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다.

 「 안녕. 」

 자신에게 인사하는 인어를 보고 정국은 눈을 비볐다.

 아, 꿈이 아닌 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국에게 인어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 네가 바다를 욕해서 얄미웠는데, 」
 “…….”
 「 그래도 이건 줘야 할 것 같아서. 」

 인어의 손에 들린 것은 누나의 신발 한 켤레였다.

 “너. 진짜 누나를 본 거야?”
 「 응. 」
 “어떻게?”
 「 그야 바다 속에서 자고 있으니까. 」
 “자고 있다고?”
 「 말했잖아. 웃고 있었다니까. 」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믿고 싶었다. 물 밑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을 누나를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그 말 진짜지?”
 「 내 말을 못 믿는구나. 」

 인어가 뾰로통한 얼굴을 보였다.

 “아니, 아니, 못 믿는 건 아닌데…”
 「 기다려 봐. 내일 또 가져다줄게. 」

 인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정국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날, 인어는 나머지 신발 한 켤레를 들고 나타났다. 정국은 바닷물에 푹 젖어 조금씩 부패되고 있던 누나의 신발 두 켤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인어는 그 소리가 애달프게 들렸는지 부두 위에 턱을 괴고 정국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정국의 울음이 잦아들 때쯤, 손을 뻗어 정국의 무릎을 만졌다.

 「 왜 우는지 물어봐도 돼? 」

 인어의 세계엔 죽음이란 게 없었기에, 정국이 우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나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데 왜 울어? 보고 싶어서?

 “우리 누나 불쌍해서 운다 왜….”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정국을 보며 인어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 보고 싶어? 」
 “응.”
 「 그럼 만나게 해줄게. 」

 인어는 또다시 약속 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정국은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한참이나 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눈을 떴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정국은 부스스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놓여 있는 짚 더미 하나.

 “시상에, 시체가 해변으로 뜰 줄 누가 알았겠어.”





*






 정국은 밤이 되어 헐레벌떡 부둣가로 달려 나갔다. 며칠 간 인어를 만났던 시간과 같았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톡. 톡. 톡.

 조약돌 하나를 주워 물수제비를 떴다.



 잠시 뒤 물보라가 일며 인어가 나타났다.

 「 돌을 던지면 어떻게 해? 물고기 맞아 죽으면 어쩌려고. 」

 인어가 화난 얼굴로 고갤 내밀었다.

 정국은 인어가 뭐라고 하든 귀담아 듣지도 못하고, 무작정 팔을 뻗어 인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곤 그를 끌어안으려고 몸을 기울였다.

 풍덩.

 그러나 인어가 마음대로 끌려오지 않아, 그대로 물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정국의 몸이 깊은 바다 속으로 순식간에 추락했다. 생각보다 깊은 물. 깜깜해서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살이 회오리치며 그의 몸을 휘감았다. 다리를 아무리 저어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암흑 같은 바다 안에서 정국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꼬르륵, 정국이 물방울을 뿜었다. 숨이 막혀 답답함이 밀려오자 외려 실소가 터졌다. 이런 거구나 물속은.

 이 안에 누나가 잠들어 있었다고?

 흐려지는 시야에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물 속 어딘가에 자신처럼 가라앉아 있었을 누나의 모습. 눈을 감은 채 웃고 있었을 누나의 얼굴. 흰 얼굴로 자신을 향해 늘 웃어주던, 누나의 아름다운 미소를.

 정국의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인어의 손이 정국의 몸을 붙잡았다. 힘이 빠져 수초처럼 흐느적거리는 그를 안고 수면 위를 향해 헤엄쳤다.

 「 여긴 깊어. 물 회오리가 있어서 위험하다구우. 」

 푸- 하- 정국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자신을 잡아 붙들고 있는 인어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바라보았다. 정국이 헉헉거리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빨개진 눈을 한 채 자신을 보는 정국의 모습. 인어가 통통한 입술이 달싹거리며 뭐라 말하려다가 금방 관두었다.

 정국은 물속에서 봤던 환영이 누나가 아니라 이 인어의 얼굴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치고 올라왔다. 정국은 다짜고짜 인어를 끌어안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인어의 체온이 느껴졌다.

 “누나 찾아줘서 고마워. 우리 누나가 진짜로 웃고 있었어.”

 낮에 건져낸 누나의 시신을 떠올렸다. 물에 퉁퉁 불어 있었지만, 분명한 건 미소를 띠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어는 제 어깨에 고개를 묻고 서글픈 울음을 터뜨리는 정국을 위로했다. 그의 등판을 찬찬히 어루만져 주었다. 어리고 약한 이 사람이 하염없이 가엾다는 듯, 그렇게.



 그날부터 정국은 인어와 친구가 되었다. 매일 밤마다 부두 끝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인어가 나타나 말동무가 되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널 본 적 있어?”
 「 아니. 」
 “그럼 나만 널 볼 수 있어?”
 「 그건 아닐걸. 」
 “신기해.”
 「 그래도 비밀로 해. 혹시 어부들이 날 잡아갈까 봐. 」

 열네 살. 정국이 처음으로 바다를 미워했고, 그 미운 곳에서 비밀 친구를 사귀게 된 나이였다.





*






 동네에 정국의 또래는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국은 30년째 이어온 가업인 덕장 일을 계속 도와야 했기 때문에 단짝 친구 하나 사귈 새가 없었다. 누군가와 길게 대화를 해본 적도, 마음을 털어놓아 본 적도, 눈물을 보인 적도 없었다. 정국은 자신의 낯선 모습들을 공유한 인어에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널 뭐라고 불러야 해?”
 「 글쎄. 그럼 나는 널 뭐라고 불러야 해? 」
 “나는 정국이야.”
 「 정국이? 나는 이름이 없어. 」
 “음, 어쩌지.”

 정국은 고민했다. 이름을 지어줄까 싶었다. 그때 인어가 조심스레 말했다.

 「 지민. 」

 전에 말했던 누나의 이름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그건 우리 누나 이름인데…”
 「 지민. 지민. 마음에 드는데. 」

 정국은 잠시 고민했다. 인어가 누나를 찾아주었다. 인어 덕분에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고, 누나의 빈자리로 허허했던 마음도 조금은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그래, 알겠어. 지민이라고 불러줄게.”
 「 멋진 이름이야. 」
 “지민아.”

 생전 누나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기에 어색했지만, 그런 대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지민이라고 부르자 인어가 기분 좋은지 꼬리를 첨벙거리며 물방울을 튀겼다. 차가운 바닷물 세례를 맞으며 정국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인어는 지민이 되었다.





*






 정국은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점점 자라났다. 그 사이 키와 체격이 부쩍 커졌다. 처음에는 지민과 몸의 크기가 비슷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걸 느낄 수 있는 건, 함께 헤엄을 칠 때였다.

 「 정국아 이젠 네가 조금 무거워. 」

 깊은 바다를 헤엄치고 싶을 때는 지민이 정국의 몸을 부둥켜 잡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곤 했는데, 이제 제법 몸집이 커진 정국 때문에 슬슬 힘에 부치는 것이다.

 “무거우면 손 놔도 된다니까?”
 「 그러다가 물에 빠지고 말걸. 」
 “그럼 네가 건져주면 되잖아. 예전처럼.”

 지민은 정국을 통해, 그의 누나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게 '죽음'이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정국이 물속에 잠든다는 걸 생각하니 왠지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 너도 죽을 거야? 」
 ”응. 나중에 나도 죽어.”
 「 그럼 나는 어떻게 해? 」
 “또 다른 친구를 찾아 봐.”

 정국은 장난스레 말했다. 지민은 그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인어의 친구는 하나뿐이야. 바보.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정국이 미워서 그의 손을 놓아버리고 물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지민이 사라지자 깊은 바다의 거세고 무거운 물살에 정국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정국은 일부러 다리를 제대로 젓지 않았다. 금세 그의 몸이 꼬르르 잠겼다. 그러자마자 지민은 헐레벌떡 다가와 다시 그를 붙잡았다.

 “진짜 죽을 뻔했네.”

 켁켁거리며 물을 뱉는 정국을 보며 지민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 머릿속엔 먼 훗날 정국이 죽고 혼자 남겨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테다.





*






 정국이 열여덟이 되었을 때, 다애도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양복 입은 남자들이 자꾸만 돌아다니며 섬을 둘러보고, 이내 땅을 측량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요한 섬 풍경에서는 무척 낯선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왜 자꾸 섬에 오는 것일까. 주에 한 다스씩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섬 주민들은 뒤숭숭한 마음을 가졌다. 사랑이 많은 섬, 다애도의 아름다운 이름은 마치 그럴듯한 슬로건 같기도 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다애도를 소개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보소 아지매, 인정이 없소. 한 봉다리 더 주쏘. 고마 쥐치가 쌔빠지게 잡힌다 아인교.”

 껌을 짝짝 씹으며 바싹 말린 쥐포 한 봉이라도 더 대접받으려는 건 부지기수였다. 외부인들이 들고 있는 책자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섬, 다애도 개발’ 정국은 평상에 앉아 쥐포를 압착하며 그들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할매와 웃는 낯으로 실랑이하다가 결국 쥐포 한 봉을 더 챙겨 가고 마는, 무심한 이방인들.

 정국의 할매는 왕년에 한 성깔 하신 양반이었지만, 다애도에 외부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성미를 억지로 죽이며 살아갔다. 그건 목구멍이 포도청인 탓이다. 이곳을 찾는 뭍사람이 늘수록 섬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돈 냄새를 맡으면 자본이 쏟아지는 것이 인지상정. 그 탓에 30년이 넘은 전 가네 점포 역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유서 깊은 가업은, 외부인의 눈에 낡고 하찮은 구멍가게로 전락했을 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몇 년 사이 거동이 불편해져서 온종일 방에 누워계시기만 했다. 덕장의 일은 온전히 정국의 아버지 몫이 되었다. 넓디넓은 덕장에는 이제 세 개의 덕만 남아 있다. 정국은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분명 이곳에 스무 개가 넘는 덕이 줄지어 있었다. 거기에는 늘 쥐치며 황태며 오징어 따위가 가득 걸려 있었는데, 그의 키가 140cm가 조금 안 됐을 적엔 그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다가 할매에게 걸려 궁둥이를 처맞곤 했다.

 이젠 쓸쓸한 해풍만 불어대는 덕장을 보며 정국은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애도가 이상해.”
 「 왜? 」

 정국은 지민을 만나 속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만 돌아다녀. 무서워.”
 「 어떤 사람들인데? 」
 “자꾸만 섬을 돌아다니고, 점포 찾아와서 구멍가게 취급이나 하고.”

 지민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다가 위로하듯 뺨을 매만져주었다.

 “얼마 전에는 무시무시한 차들이 와서 시끄럽기도 했어. 아마도 공사를 하나 봐.”
 「 공사가 뭐야? 」
 “음… 건물을 짓고 그러는? 아, 그런 게 있어.”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지민은 하얗게 빛나는 얼굴로 정국의 표정을 요리조리 살폈다. 달빛에 빛나는 인어의 상아빛 머리카락, 살갗에 반짝거리며 반사되는 빛. 지민의 아름다움은 매일 봐도 놀랄 정도였다. 자라면서 사춘기를 겪으며 열여덟이 반이나 지난 정국은 점점 인어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얼굴 가까이 하지 마.”
 「 왜? 」
 “그런 게 있어.”
 「 너는 맨날 그런 게 있대. 대체 그게 뭔지 말도 안 해주고. 」
 “인어는 몰라도 돼. 이건 사람만 알 수 있는 거니까.”

 정국은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지민의 통통한 입술이나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 새하얀 목덜미, 그런 것들을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 인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
 “그래도 이건 알 수 있어. 분명히 너는 모르는 감정일 거야.”

 정국이 자꾸만 회피하는 대답을 하자, 지민이 대뜸 정국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 말해줘. 궁금해. 」

 그의 몸이 닿자 정국은 헛기침을 큼큼 했다.

 “사람들 사이엔 여러 관계가 있단 말야. 친구도 있고 애, 애인도 있고… 가족도 있고…”
 「 응. 」
 “…그렇다고. 바보야.”
 「 뭐가 다른데? 」
 “막 다른 건 아닌데… 같이 하고 싶은 건 달라.”

 정국의 애매모호한 말에 지민은 더더욱 궁금증이 들었다.

 「 너는 나랑 뭘 하고 싶은데? 」

 갑자기 직접적으로 묻는 말에 정국이 침을 꼴깍 삼켰다.

 “…….”

 정국이 대답을 못하자 지민이 그의 허리를 잡은 손을 조금 흔들었다.

 「 뭘 하고 싶은데? 」
 “나중에… 나중에 알려줄게.”

 겨우 지민의 손을 떼어내곤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혹시라도 치기 어린 충동으로 그를 놀라게 할까봐 그랬다. 지민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기에, 자칫 실수라도 해서 자신을 떠날까봐.

 「 바보. 」

 지민이 꼬리를 흔들어 첨벙, 거센 물살을 정국에게 뿌렸다. 푸우- 정국은 갑자기 바닷물을 옴팡 뒤집어 쓴 채로 켁켁거렸다. 지민이 심통이 난 얼굴로 팔을 엇갈려 근엄하게 팔짱을 끼더니 홱 돌아섰다.

 「 인어도 감정 있어! 몰라 나 갈 거야. 내일 봐. 」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지민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는 물거품만 꼬르륵 피어났다. 정국은 한숨을 푹 쉬고 헤엄을 쳐 집으로 향했다.





*






 또 다음날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지민을 기다리고 있는데, 삐진 모양인지 그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국은 예쁜 조약돌 하나를 골라 수면 위로 던졌다. 톡. 톡. 톡. 물수제비를 뜨다가 잠긴 돌. 그리고 잠시 뒤 지민이 머리를 매만지며 고갤 쏙 내밀었다.

 「 돌 맞았잖아! 」
 “큭큭. 그러니까 제시간에 와야지. 지각이야.”
 「 아프단 말야. 」

 지민이 울상을 지었다. 킥킥 웃던 정국은 그제야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들여다보았다.

 “세게 맞았어? 미안해….”

 정국이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를 매만졌다. 볼록하게 혹이 나 있었다. 그가 얼른 물속으로 뛰어들어 인어의 앞에 섰다. 하얗고 작은 지민의 얼굴을 감싸 잡고는 이리 저리 돌리며 다친 데는 없나 확인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그 순간 지민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 나… 」
 “응?”
 「 네가 나랑 뭘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

 지민의 말에 정국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까만 바다 위에는 달빛 하나뿐인데, 마치 누가 제 얼굴에 랜턴이라도 비춘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게 뭔데?”
 「 음…. 」

 정국의 물음에 지민이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갤 들어 정국에게 눈을 맞췄다.

 「 이런 거? 」

 쪽.

 지민이 고개를 내밀어 정국에게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그 바람에 놀란 정국은 그의 얼굴을 감싸던 손에 힘이 풀려버린 것을 느꼈다.

 “…….”

 정국이 가만히 인어를 바라보았다. 빤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쑥스러웠는지, 지민이 혀를 내어 제 입술을 축이며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 아… 이거 아닌가? 」
 “…혹시 인어들도 이런 걸 해?”
 「 응. 감정은 똑같으니까. 」
 “네 감정이 어떤데?”
 「 …정국이의 감정이랑 똑같을 걸. 」

 그 말에 정국이 다시 손에 힘을 주어 지민의 얼굴을 붙잡았다.

 “똑같은 거 맞지?”

 그 물음에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이걸 하고 싶었어.”

 정국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지민에게 입술을 겹쳤다. 체온이 낮아 차가운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살짝 열린 입술을 가르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정국의 혀가 찾아오자, 지민은 조금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깊게 닿아오는 정국 때문에 지민은 자기도 모르게 정국의 젖은 옷을 꽉 쥐며 몸을 기댔다.

 물에 잠겨 있는 정국의 다리에 그의 매끄러운 꼬리 비늘이 느껴졌다.

 맞아. 지민이는 사람이 아니야. 인어였지.

 정국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움직인 마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잔잔한 바다에 고요하게 몸을 띄운 채로 하는 키스는 생각보다 더 무드 있었으며, 통통하고 쫀득한 그의 입술 감촉은 더 큰 욕심을 불러왔다. 황홀한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찾아들지 않았다.


국가가허락한마약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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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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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삼색아람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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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랠리님  | 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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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  | 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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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미쵸  | 1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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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y  | 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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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rablekook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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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la  | 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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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s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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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 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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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사랑빔  | 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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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니  | 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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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旻無樂  | 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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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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