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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인어 下 랠리 씀

BGM- 홀로 기다리다

소년과 인어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 사이 정국은 지민과 매일 달콤한 키스를 나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와의 키스를 떠올리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주변의 변화에는 조금 무뎌졌던 것 같다.

 어느새 다애도의 구석에는 커다란 공장이 지어졌다. 매일 굴삭기가 오갔다. 점점 다애도 주민들이 섬을 떠나기 시작했다. 열여덟의 정국은 이 섬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세 개 남아 있던 덕이 두 개로 줄고, 하나로 줄고, 마침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할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자 할매가 별안간 정국에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사먹을 사람도 없는데 생선은 말려서 무엇 해!”

 30년 된 가업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애도의 얼마 되지 않는 인구는 그 숫자가 점점 줄어갔다. 학교 교실에는 점점 학생 수가 줄어갔다. 처음에 15명이 있던 교실에는 어느새 3명의 학생만 남았다.

 다애도가 망해가는 걸까.
 그 빌어먹을 외부인 때문에 말이다.



 정국의 옆집에 살던 순희 네는 파란 용달 트럭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평생을 옆집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이별이라니 마음이 이상했다. 순희 네가 떠난 후, 정국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부두 끝으로 달려갔다. 어김없이 나타난 지민을 붙잡고 다급하게 입술부터 붙였다.

 「 아… 자, 잠시만….」

 허겁지겁 혀를 밀어 넣는 정국의 모습은 마치 숨 쉴 곳이 필요한 사람 같았다. 평생 살아온 섬의 변화는 아직 어린 정국이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았다. 정국은 지민과 키스를 하는 내내 우울한 생각을 이어갔다.

 방에 드러누운 할매.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덕장을 접고 난 후부터 매일 고깃배에 오르는 아버지. 그물을 던지는 일 대신 배 위에서 질리도록 술을 마시는 아버지. 사라져가는 이웃들.

 “이젠 순희 네마저 떠났어. 아마 모두가 이곳을 떠나려나 봐.”
 「 ……. 」
 “우리도 떠난다고 하면 어쩌지?”
 「 너도 갈 거야? 」
 “가기 싫어. 너를 못 보잖아.”
 「 네가 어디로 가든 바다로 와줘. 그러면 만날 수 있어. 」
 “정말이야?”
 「 내가 널 찾아가면 되니까. 」

 정국은 그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랑이 많은 섬이라 불리던 이곳엔 어느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정국은 매일같이 시끄러운 공사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변해가는 터전을 목도했다. 괴로웠다. 일터를 잃어 허무하게 시간을 죽이는 가족들을 보는 것도, 이상하게 변해가는 섬을 지켜보는 것도.

 하루의 끝에는 꼭 인어를 찾았다. 정국에게 지민은 유일한 안식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지민과 시간을 보내며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 많은 인어가 노니는 곳이라 다애도가 아닐까 하고. 섬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더라도, 이 아름다운 인어만큼은 제 영롱한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매일 고깃배에서 술을 먹던 아버지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이다. 정국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가업, 그까짓 게 뭐라고. 정국은 울면서 아버지를 원망했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괴로워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더 하면 더 했지, 자신보다 덜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국은 또다시 슬픔에 잠겼다.

 “지민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찾아줘.”

 괴로움에 떨며 정국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지민은 물속에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의 시체가 해변에 떠올랐다. 정국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얼마 남지 않은 조문객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육지 사람들의 욕심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고. 어서 이곳을 다 떠나버리자고.

 장례를 마친 뒤 할매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사람이 몇 남지 않아 초라해진 이곳을 어서 떠나자고 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이 제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다애도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일사천리로 이삿날이 결정됐다. 정국은 짐을 챙겨놓고 지민에게 달려갔다.

 “이사를 가게 됐어. 아마 그곳도 바닷가일 거야.”

 그 말에 지민이 울상을 지었다. 정국은 물속에 뛰어들어 지민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차가운 그의 몸을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지민은 정국의 귓불에 입술을 붙이고 위로하듯 오물거렸다. 간지러운 숨결이 닿았다. 둘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조용히 서로의 몸을 만졌다. 정국은 지민의 작은 얼굴을 손 안에 둔 채로 입술을 물고 빨았다. 작별의 키스라고 생각하니 더 애가 탔다.

 “헤어지기 싫어.”
 「 만날 수 있어. 」
 “그래도.”

 정국이 붉은 손끝으로 지민의 하얀 상체를 쓰다듬었다. 물기에 촉촉이 젖어 반짝이는 몸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가득 품에 안고 온 몸에 구석구석 입을 맞춰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다른 몸의 부위마저 꼼꼼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고 깨달았다. 그런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해. 지민아.”

 정국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말에 지민은 조금 달뜬 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만져주고, 입술을 붙이며 목덜미며 가슴이며 여기저기를 애무하는 정국의 몸짓의 이름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도 정국의 온 몸에 입을 맞추어 주고 싶으니, 이 감정 또한 사랑이 분명했다.

 「 나도 사랑해. 정국아. 」
 “너를 안고 싶어.”
 「 나도 너를 안고 싶어. 」
 “너를 생각하면 애가 타.”

 잠깐의 헤어짐이란 게 그들을 애달프게 만들었다.

 「 내가 널 찾을 거야. 」
 “믿을게.”
 「 응. 」
 
 정국은 지민을 끌어안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해안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서 밤이 가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서로의 온 몸에 입을 맞추고 손이 가는 대로 만졌다. 맞닿은 입 안으로 섞이는 숨은 따뜻했으며, 비비던 몸을 잠시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 안달이 난 채로 뜨겁게 접촉했다.

 비로소 정국의 단단해진 성기가 지민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민에게는 낯선 행위였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제 머리카락을 쥐고 밭은 신음을 뱉는 정국의 소리를 귀에 담으며, 지민은 정성껏 그의 몸을 받아들였다. 정국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몇 번이고 더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정국이 이사를 간 곳은 바닷가가 아니었다. 용달 트럭 안에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뜬 정국은 주위를 둘러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닷가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금기에 녹이 슨 고깃배가 보이기는커녕, 바다의 비린내조차 나지 않는 육지의 어딘가 쯤. 아무리 둘러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할매. 왜 바다가 없어요?”
 “니 애비랑 누이 잡아간 바다가 보고 싶더냐?”
 “아, 안 돼… 바다… 바다…”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짐정리가 끝나자마자 정국은 무작정 동해 행 버스를 타고 바다를 찾아갔다. 그가 이사를 간 곳은 바다와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내륙 지방이었다. 버스에서 내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정국은 미친 듯이 바닷가로 달렸다.

 새파란 바다 앞에 도달하자마자 무작정 지민을 불렀다.

 “지민아!”

 그러나 망망대해에서 그가 정국이 있는 곳을 한 번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국은 해변가에 주저앉아 지민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다. 바다가 가까웠다면 아마 매일 바닷가에서 먹고 자며 지민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학교생활도 해야 했고, 새롭게 터전을 잡은 할매의 일도 도와야 했다.

 정국은 시간이 나는 대로 두 시간 동안 달려 바다로 향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지민은 없었다.





*







 한참이 흘렀다. 정국은 제풀에 지쳤다. 과연 지민이 자신을 찾을 수나 있을까? 점점 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바다는 너무 넓잖아. 이대로 포기를 해야 하는 걸까. 방학이 되어 다애도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공식적인 배편이 없었다. 인구가 없이 버려진 섬을 찾는 이가 없기에 그렇다.

 허무하게 일 년이 흘렀다. 정국은 열아홉이 되었다. 잠을 잘 때마다 지민이 꿈에 나왔는데, 이젠 그 빈도도 점점 줄었다. 정국은 그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바다로 달려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섰다.

 “지민아! 나 여기 있어!”

 허공에 외치는 소리는 바닷바람에 실려 금세 떠내려갔다.

 “나 찾을 거라며!”

 원망 섞인 목소리에는 울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또 일 년이 흘렀다. 스무 살이 된 정국은 대학에 들어갔다. 마음속 한 구석엔 늘 지민이 있었지만, 사는 것이 바빠 막상 다애도를 찾아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을 내서 가까운 바다에 가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지민이 자신이 서 있는 바다를 찾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정국은 점점 지민을 잊어갔다.





*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정국은 신문에서 다애도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다애도, 제조업 대단지 건설’

 신문 속에서 본 다애도는 많이 변해있었다. 산이 깎이고, 민가가 있던 평지는 공장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사랑이 많은 섬은 어느덧 다른 것들을 생산하는 터전이 되어 있었다.

 다애도는 이런 곳이 아니야.

 정국은 잊고 있던 지민이 떠올랐다. 사랑이 많은 인어가 살던 곳.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아름다운 인어, 지민. 가슴 속에서 그리움이 솟구쳤다.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사무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주 오랜만에 다애도로 향하는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대단지가 생겨서 그런지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배가 있었다. 정국은 이것을 더 일찍 찾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헐레벌떡 배를 타고 다애도로 향해 달렸다.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그가 다애도에 닿자마자 부두 끝으로 달려갔다. 매일 지민과 만났던 그 자리는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조금 부식된 방파제들, 그리고 여전히 까만 바다.

 자갈을 들어 톡. 톡. 바다 위에 물수제비를 만들었다. 인어가 나타날까, 아니면 인어마저 자신을 떠났을까.

 “지민아! 나 왔어!!”

 한참이 지나도 바다는 잠잠했다. 정국은 자갈을 더 들어 바다로 마구 던졌다.

 “바보야 나 왔다니까?!”

 고요한 바닷물은 마치 웅덩이 같았다.

 “안 나타나면 돌 더 많이 던질 거야. 머리에 맞고 혹 다섯 개 나라!”

 어느새 정국은 울고 있었다.

 만약 지민이 오늘 나타나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로 그를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정국은 자리에 털썩 앉아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끅끅 터지는 울음소리가 부두에 가득 울렸다.

 지민아. 지민아. 어서 나타나줘.
 나 왔어. 내가 너무 늦게왔어.
 너 어디 있어?



 그리고 한참 뒤, 거짓말처럼 물보라가 작게 일었다. 정국은 익숙한 포말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을 들었다. 지민이다. 지민이 분명했다. 그가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이윽고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지민을 보자마자 정국은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어서 물속에 뛰어들어가 그를 안고 입맞추고 싶었다.

 “지민아!!!”

 정국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로 뛰어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 지민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 내려오지 마! 」

 빽 내지르는 지민의 고음에, 정국은 놀라서 몸을 딱딱히 굳힌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민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했다.

 “지민아?”

 정국이 웅크리고 앉아 자세를 낮췄다.

 「 가, 가까이 오지 마.」

 몇 년 만에 만났다고 이러기야? 내가 미워? 정국은 고집스럽게 그의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국은 조금 화가 났다. 너도 날 못 찾았으면서, 왜 나에게 화내는 거야.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정국은 울컥 치받는 울음을 삼키며 손을 뻗었다. 조금 세게 지민의 어깨를 돌려 세웠다.

 “!!”

 정국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민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그 아름답고 영롱한 피부며 반짝이던 비늘과 꼬리는 다 어디가고, 볼품없이 잿빛으로 변한 모습이 보였다. 지민은 시름시름 앓는 얼굴로 몸을 떨었다. 그에게는 온갖 더러운 오물이 달라붙어 있었다. 구리구리한 비린내도 났다.

 정국은 경악한 얼굴로 부두 아래 까만 바닷물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오염된 바닷물 위에는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부쩍 야윈 지민은 밭은 기침을 하며 정국의 눈을 자꾸만 피해 한숨을 내뱉었다. 놀란 정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 놀랐지? 」
 “지, 지민아….”
 「 너를 오래 찾아다녔는데, 찾지 못했어. 콜록. 」

 그의 말에 정국은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울었다.

 「 미안해 정국아.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
 “흐윽… 너 어디 아파? 왜 그런 거야….”

 정국은 부두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괴로워했다.

 「 오래 찾았는데 아무 데도 네가 없어서… 여기서 널 기다렸어. 기다리길 잘 했다. 」

 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국이 지민의 상한 얼굴을 부여잡았다. 더러운 것이 묻었든, 냄새가 나든, 상관없었다.

 “지민아 어디가 아픈 거야… 말해 봐. 제발. 응?”

 정국은 흐느끼며 물었다. 지민은 자꾸만 몸을 돌리려 했다. 정국이 그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가까이 했다. 그러자 지민은 화들짝 놀라며 정국을 밀어냈다.

 「 안 돼…. 」

 그의 태도에 정국은 마음 한구석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이젠 떠나지 않을게. 여기 계속 있을게.”

 그러나 지민은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어서 떠나. 난 괜찮으니. 」

 지민의 표정은 어쩐지 편안해 보였다. 무언가를 다 포기한 것처럼. 그가 가진 모든 빛이나 기운을 잃었지만, 정국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정국아 어서 가. 여긴 네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는 널 봤으니 됐어.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정국이 울며불며 물었다. 지민은 대답을 하려다가 터지는 기침에 입을 틀어막았다. 콜록, 콜록, 콜록. 끊이지 않는 기침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러다가 곧 지민이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의 가녀린 손에 가득 묻어난 핏자국을 보고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민을 망가뜨린 것이 있다면 누구든 다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를 뒤늦게 찾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지민은 기침으로 쉬어버린 목을 붙들고 한참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큼큼, 쇳소리를 내며 가다듬던 지민이 한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사람이 아니야. 」

 지민이 조용히 손을 뻗어 섬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켰다. 공장의 굴뚝에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래. 저거였다. 다애도의 모든 것을 앗아간 저것. 가족과 이웃을 떠나게 만들고, 결국 지민의 바다까지 더럽혀버린 추악한 저것. 정국은 연기를 보며 이를 악 물었다. 지민은 파리한 얼굴로 정국을 위로하듯 뺨을 매만졌다. 얼굴에 닿은 지민의 손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었다.

 정국은 말없이 제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꼈다. 지민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정국은 그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정국아.’
 ‘구해줘.’

 그는 비장한 얼굴로 골몰했다. 분노와 함께 어떠한 결심이 생겼다. 정국이 지민의 손목을 그러쥐고 눈동자를 밝혔다.

 “조금만 기다려.”
 「 어디 가? 」

 복수하러.

 “금방 올게.”

 정국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이를 악 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덧 하루가 완전히 저물었다. 바다 위에 검은 물결이 치며 섬을 잡아먹을 듯 닥쳐왔다. 유난히 파도가 높은 날이었다. 정국은 차라리 해일이 되어 모든 것을 쓸어버렸으면 싶었다. 누나를 훔쳐갔던 그 날처럼.



 정국은 눈을 붉히며 다애도를 돌아다녔다. 한참 뒤 그의 양 손에는 시너 한 통과 휘발유 한 통이 들려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어느덧 공장 굴뚝에서 뻐끔거리던 연기가 잦아들고, 더 이상 불빛이 새나오지 않았다. 구석에 숨어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정국은 조용히 움직였다. 이마에 땀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섬을 망가뜨린 괴물의 성 주위에 시너와 휘발유를 뿌렸다. 커다란 공장 터, 연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굴뚝. 거대한 물건들이 가득 쌓여져 있는 창고. 그 넓은 땅을 혼자서 남김없이 밟는 것은 제법 힘에 부쳤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런 결말은 나쁘지 않은 것이라 믿었으니까. 정국은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커다란 통 두 개를 다 비웠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그가 빈 통을 던지고는 비로소 웃었다.



 정국이 헐레벌떡 부두 끝으로 달려왔다. 톡. 톡. 톡. 자갈을 던져 또다시 지민을 불러냈다. 잠시 뒤 물보라와 함께 인어의 모습이 나타났다. 퀭한 눈과 비늘에서 나는 부패한 냄새는 다시 맡아도 적응할 수 없을 만큼 고약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 왔어. 저기 봐.”

 지민을 향해 손짓했다. 정국의 손가락이 저어기 섬 끄트머리의 공장을 가리켰다. 멀리서부터 화염과 함께 까만 연기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섬에 꽃이 피었다. 그건 꺼지지 못할 불꽃이었다. 섬을 집어 삼킬 만한, 어쩌면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불꽃이었다. 사람들의 탐욕과 같을 수도 있다. 타닥 타닥, 건물이 활활 타오르다가 폭발하는 소리가 부두 끝에서도 들렸다.



 화염 빛으로 둘의 얼굴이 붉게 빛났다.

 지민은 물속에서 힘없이 꼬리를 저으며, 저 멀리 활활 타오르는 공장을 바라보았다. 지민의 얼굴에 비로소 싱긋 미소가 올라왔다. 정국은 핼쑥한 지민의 뺨을 쓰다듬다가 조용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지민의 메마른 입술을 머금었다. 그의 모습이 어떻든 다 상관 없었다.

 “이제 가자.”
 「 어디? 」

 “원래 네 모습이 있던 바다로.”











fin.





트윗에서 짧은 썰로 연재했던 건데 소설화했어요.
참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느라, 해갈할 겸.


Finesse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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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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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허락한마약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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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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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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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삼색아람  |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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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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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랠리님  | 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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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  | 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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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zigili  | 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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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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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채  | 1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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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신  | 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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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sar  | 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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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키  | 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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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웅냥  | 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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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니  | 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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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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