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ALL KM (18) etc (2)
Holo 랠리 씀



Holo
: 완전함







  암흑


  정국이 눈을 번쩍 떴다. 눈앞이 새까맣다. 여긴 어디지. 죽은 건가. 정국이 눈을 깜빡였다. 암흑의 공간에 있으니 자신이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눈꺼풀의 근육은 움직이고 있는데 시야는 여전히 미지의 어둠이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까마득한 밤이었다.

  우주 공간에 떨어진 걸까.

  정국이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숨소리가 헬멧 안에 갇혀 크게 들렸다. 그러다가 번쩍, 생각이 난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순간이. 우주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운석들, 그걸 보고 가빠지던 숨, 골이 울리는 충격,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던 램프들, 순식간에 찾아온 암전….

  그래, 여긴 우주선 안이 분명해. 정국이 몸을 움직였다. 머리가 딩 하고 울렸다. 숨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우주복의 상태는 건사한 모양이었다. 팔목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렀다. 손등에 달려 있는 램프에서 가느다란 빛이 나왔다. 뒤집혀 있는 우주선 내부가 먼저 보였다. 아, 지금 뒤집혀 있구나. 그래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야. 정국은 램프를 이리저리 비췄다.

  “관제, 관제 센터.”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송신이 끊어졌다.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받고 나니, 정국은 좌절감이 들었다. 우주선이 깨지고 부서져 먹통이 되었으니 이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새까만 우주에 표류되었다. 영영 갇힌 것이다. 시작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

  허리춤에 달려있는 산소계를 확인했다. 생명 유지 장치에 붙어있는 산소량이 얼마 없었다. 정국이 어렵사리 움직여 우주선 내부의 창고를 찾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뒤져보니 장치가 몇 개 더 남아있었다. 그러나 정국은 알고 있다. 생명을 연장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이제 이 무서운 공간을 떠돌며 얌전히 죽을 날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전에 운석을 맞아 죽을 수도 있겠지.

  선체에서 떨어져나간 파편이 허공에 떠돌고 있었다. 그 틈을 찾아 우주선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발광체들이 보인다. 저 멀리 오색의 성운이 펼쳐져있었다. 무섭고 아름다운 우주. 정국은 잠시 넋을 놓고 찬란하게 빛나는 플라즈마를 바라보았다. 그 신비로운 빛을 눈에 가득 담았다. 그 순간 정국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국이 눈을 질끈 감았다.





  미지의 소년


  똑똑

  헬멧의 바이저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놀란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곧바로 제 눈을 의심했다. 한 소년이 눈앞에 있었다. 새까만 우주를 등 뒤에 두고 있는 소년이 정국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꿈꾸는 건가.

  “…….”
  
  자신처럼 커다란 우주복을 입지도 않은 채로, 빛나는 살결을 뽐내며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 정국은 놀라서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자 중심이 기울어 몸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조심해. 그러다 운석에 부딪칠라.”

  이곳엔 행성의 파편이 많아.

  소년이 얼른 팔을 뻗어 넘어가는 정국의 몸을 받쳤다. 투박한 우주복 위로 허리에 닿는 손이 느껴졌다. 정국은 생생한 감각을 느끼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상기했다. 수년 간 배웠던 우주의 자료 중에 단 한 글자도 이런 상황에 대한 건 없었다.

  “너 누구야?”
  “나?”

  정국의 물음에 미지의 소년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정국이 겁먹은 표정으로 끄덕이자 소년이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헬멧 바이저에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 안에 있는 정국의 얼굴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그리곤 투명하게 미소 짓는다.

  “난 나야.”





  별, 지민


  그의 몸에서 아름다운 플라즈마가 반짝였다. 정국은 그를 보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마치 발바닥 아래에 까만 융단이라도 있는 듯이 미끄러지며 움직인다. 우주에 사는 이 소년은 무중력의 공간이 익숙한 듯 자유롭게 우주를 유영한다. 멀뚱히 떠있는 정국의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아래위로 훑어본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얗고 커다란 우주복과, 등에 업혀있는 네모난 장치를 차례로 뜯어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멋진 옷이네.”
  “…고마워.”

  뭐라도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정국은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소년이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하나도 웃긴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소년은 해맑았다. 정국은 눈동자를 굴리며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갔다. 소년은 먹통이 된 우주선의 선체 주위를 돌며 공중에 떠도는 파편 몇 개를 주웠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정국에게로 가까이 날아왔다.

  “집이 망가졌구나?”
  “집?”
  “가끔 지구에서 쏘아올린 집을 봤어. 망가진 건 처음인데.”
  “그렇구나….”

  소년이 통통한 입술을 모아 앞으로 내밀며 정국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가여워서.”
  “…왜?”
  “돌아갈 수 없잖아. 너.”

  그의 입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 나왔다. 정국은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우주선에 탑승한 순간부터 마음정리는 필요한 것이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최악의 상황에 대해 모르는 우주 비행사는 없다. 그건 정국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정국이 대답했다.

  “멋진 지구인이네.”
  “…….”
  “이름이 뭐야?”
  “…정국.”

  소년이 입술을 모으고 오, 멋진 이름이야. 하고 말했다. 정국은 이런 꿈같은 상황에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마지막 치곤 너무 색다른 경험이지 않은가. 죽기 직전에 아름다운 우주인을 만난다는 건.

  “네 이름도 알려줘.”
  “음… 없어 이름이.”
  “그래?”
  “사람들은 나를 별이라고 부르더라.”
  
  별. 어울렸다.
  반짝이는 몸이. 움직임의 궤적마다 늘어지는 오색의 플라즈마가.

  “네가 별이구나.”
  “응.”
  “별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게 알았어?”
  “다들 내게 별님, 하고 소원을 빌거든.”

  별이 이렇게 예쁜 줄 알았으면 소원을 많이 빌어볼걸 그랬다. 정국은 그런 생각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국이 웃는 모습을 보고 소년이 또다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유리처럼 투명한 바이저를 사이에 두고 두 시선이 부딪쳤다. 쳐진 눈꺼풀 아래로 반짝이는 동공이 보였다. 하얗게 빛나는 소년의 피부 때문에 눈이 부셨다. 정국이 시린 눈을 깜빡였다.

  “내 이름을 지어줘.”
  “…응?”
  “너처럼 이름을 가져보고 싶었어. 별님 말고….”
  “음…”

  정국은 고민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머리를 굴렸다.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려 애쓴다. 한 번도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본 적이 없었으니 쉽지 않았다. 정국은 어디선가 스치며 들어본 적 있는 예쁜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한참이나 걸렸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소년은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며 오색의 궤적을 남겼다.

  “지민. 어때?”
  “지민?”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예쁘다.”

  소년은 기분이 좋은지 지민, 지민, 하며 이름을 읊었다. 말할 때마다 입술을 오물거리는 광경이 퍽 재미있었다. 정국이 본능적으로 산소계를 확인했다. 산소량이 바닥나고 있었다. 유지 장치를 바꿔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살아있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건 알지만, 어쩐지 재미있는 것을 더 길게 보고 싶었다. 죽기 전까지 말이다.





  강  


  따라와, 내 손을 잡아.

  정국은 지민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커다랗고 투박한 장갑이 지민의 작은 손을 먹어치우는 모양새였다. 그가 이끄는 대로 우주를 유영했다. 새까만 우주 공간을 가르고 움직이는 기분은 희한했다. 우주를 떠도는 물질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정국은 헬멧 안에 꽉 차있는 산소를 깊이 들이마셨다.

  어디 가?
  강에.
  강이 있어?
  우주에는 두 개의 강이 흘러.
  처음 듣는 이야기네.
  
  지민의 손에 잡혀 도착한 곳은 새까만 어둠이 뭉게뭉게 뭉쳐진 공간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에 산소의 반 정도를 썼다.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걸까. 짐작이 가질 않았다. 처음 마주한 이곳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질들이 모여 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커다란 협곡을 만들어냈다. 거대하고 까만 협곡에 마치 강처럼, 수많은 부유물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기 반짝이는 것도 별이야?”
  “아니. 소원이야.”
  “소원?”
  “사람들의 소원이 모이는 곳.”

  우와. 정국은 입을 떡 벌렸다. 지민의 손에 이끌려 소원의 강 한 가운데에 발을 들였다. 검푸른 기체가 흘러 마치 강물 같은 움직임 속으로 발목이 푹 빠졌다. 비록 우주복 안에 쌓여있는 발이었지만 정국은 느낄 수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그런데도 발끝이 따끔하게 저리는 느낌. 마치 전기 오르듯….

  “느낌이 이상해.”
  “소원이란 게 그래. 호소가 짙을수록 더 깊어. 어떤 건 밟으면 목까지 빠지기도 하거든.”

  정국은 무릎을 높게 들어 올려가며 소원을 하나씩 밟아보았다. 어떤 것은 무릎까지 푹 빠졌고, 또 어떤 것은 허리까지 찰랑이기도 했다. 정국은 그게 신기해서 아이처럼 소원의 강을 헤치며 돌아다녔다.

  목까지 차오른 소원 안에서 헤엄치며 정국이 물었다.

  “너무 많아. 이 소원을 누가 볼 수나 있어?”

  깊을수록 온 몸이 저리고 따금거렸다.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지민이 입 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우주를 만든 신.”

  그 말을 듣고 정국은 반짝이는 소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많은 소원 중에 어떤 걸 이루어주는 거야?”

  궁금한 것이 많아진 듯, 정국의 눈이 반짝였다. 사람들의 소원이 모여 강을 이루는 우주. 왠지 낭만적이었다. 정국은 지민의 대답을 기다렸다. 가장 깊은 것? 가장 반짝이는 것? 아니면, 가장 사소한 것?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궁금했다. 한 번쯤 궁금해 했던 것이다. 소원을 이루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빈 소원이었을지.

  그러나 지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과 달랐다. 정국은 그의 대답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뤄질 수 있는 소원은 이곳에 오지 않아.”

  여기엔 닿을 수 없는 소원만 모여.
  그래서 호소가 짙을수록 만지면 아픈 거야.  





  약속해


  정국은 왠지 우울했다. 아름다운 소원의 강은 알고 보니 슬펐고, 그 소원들을 모아 이곳에 채워 넣는다는 지민 역시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별은 슬픈 일을 하는 구나.
  응. 이곳에 오는 소원이 점점 늘어.
  왜일까?
  사람들은 힘들수록 나를 찾거든.
  그건 조금 슬프다. 너도 슬플 것 같아.
  괜찮아. 조금 무뎌졌어.

  지구에 돌아갈 수 있다면, 별님에게 소원을 비는 멍청이 짓을 하는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바보들아. 왜 어차피 못 이루어질 소원만 비는 거야. 정신 차려.

  “혹시 너무 절박한 소원이 있으면 다시 돌려보내줄 수 있어?”
  “음… 그럴게. 할 수 있다면.”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소원의 강을 내려다보는 정국의 옆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지민은 제 몸의 반짝임을 더해서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으나, 정국의 눈은 쉬이 돌려지지 않았다. 검푸른 기체 속을 떠다니는 반짝이는 소원들을 하류로 떠내려 보내며 그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럴 때마다 바이저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지민은 그가 감상적인 지구인이라고 생각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안타까운가.

  “약속해 지민아. 꼭이야.”
  “알겠어.”





  홀로


  우주선으로 돌아오자 산소가 바닥이 났다. 장치를 갈아 끼웠다. 정국은 남아있는 산소를 체크하며 시간을 계산했다. 우주에서의 시간이 야속하게 흘러가고 있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온다는 건 생각보다 더 무서웠다. 의연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부서진 선체 끝에 둥둥 떠서 누운 채로 정국이 까만 우주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 제 눈앞에 보이는 것이 하늘인지, 바닥인지, 알 길이 없었다.

  새까만 공간에 오로지 멀리 보이는 성운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긴 어디쯤일까.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국이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허공에서 아무 방향으로나 들썩이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 쌕쌕 숨을 내쉬었다. 다리로 지탱하고 서있는 것이 아닌데도 다리가 덜덜 떨렸다.

  외로워.

  암흑을 둘러보았다. 지민이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성운을 바라보았다. 지민, 너는 어떻게 이곳에 사는 거야. 외롭지 않아? 저 안에 있을까. 저긴 별들이 모이는 곳이라는데. 정국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무중력의 속에서 몸을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국이 비틀거렸다. 한 발자국도 제대로 이동하지 못했다.

  좌절한 정국이 몸을 아무렇게나 접었다.

  그냥 산소 호스를 뺄까?

  충동적인 생각들이 이어졌다. 눈이 뜨거워졌다.

  “뭐해?”

  그때 지민이 나타나 정국의 손을 잡았다. 반가운 이의 등장에 정국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외로웠어.”

  정국이 그의 손을 잡았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그새? 얼마 안 됐잖아.”
  “우주가 너무 까매서 그래….”
  “지구인은 눈물이 많구나.”
  “…다 그런 건 아니야….”
  “정국이만 그러는 거야?”

  지민이 귀엽다는 듯 깔깔 웃었다. 정국은 그의 웃음에도 창피한 줄을 모르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지민이 그의 헬멧을 부여잡고 바이저를 엄지로 문질렀다. 투명한 눈앞에 지민의 손자국이 묻었다. 정국은 마치 자신의 눈물이 닦아지는 것 같았다. 제 목숨을 부지해주고 있는 헬멧이 처음으로 성가시단 생각이 들었다.




  
  상실


  이번에는 더 광활한 협곡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번째 강은 왠지 더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지민을 잡은 정국의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지민이 정국의 헬멧에 양 손을 댔다. 마치 그 안에 있는 그의 얼굴을 감싸듯.

  “놀라지 마.”
  “…응?”
  “여긴 상실의 강이야.”

  세상의 모든 잃어버린 것들이 모이는 곳.

  지민의 말에 정국이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짝임 없이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광경이 보였다.

  “여기엔 어떤 것들이 모여?”

  정국의 물음에 지민이 흰 얼굴을 빛내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첫사랑, 미워하는 마음, 행복한 기억, 불행한 기억, 전하지 못한 말, 회복되지 못한 건강… 그런 것들이 모여. 이곳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해.

  “여기에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만 모여?”
  “맞아. 끝끝내 못 찾는 것들만 오는 거야.”

  누가 만들었는지 참, 쓸쓸한 곳이구나, 우주는.

  정국이 강에 손을 담가서 유류품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중에 내 것도 있을까?”
  “네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다. 난 내가 무얼 잃었는지조차 잊었어.”
  “너무 많아서 찾기 힘들 거야.”

  내게 왜 이런 곳을 보여주는 거야? 정국이 물었다.
  지민이 대답했다. 슬픔을 여기에 버렸으면 해서.

  “그럼 내 끝이 좀 나아질까?”
  “물론이지.”

  지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끝이라 부르면 끝이고, 시작이라 부르면 시작이 되는 거야.





  Holo 「완전함」


  밤인지 낮인지 모를 깜깜한 우주를 거닐었다. 어떤 날은 바다를 떠올렸다. 지금 이곳이 해변이라고 상상했다. 청량한 바람, 발등 위에 모여드는 부드러운 모래, 거품이 일며 부서지는 파도, 비릿한 바다 향, 맞잡은 손의 감촉…. 순식간에 정국은 바다 한 가운데에 섰다.

  또 어떤 날은 이곳이 고요한 숲속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헬멧 안에 가득 찬 공기를 깊에 들이마시며 산림욕을 한다고 상상했다. 등에 난 땀을 식히는 시원한 산바람,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 새들의 지저귐, 등산화 밑에서 부서지는 나무 조각들.

  외로울 때마다 제 곁을 맴도는 지민의 궤적을 보며 정국은 외로움을 달랬다. 장갑 낀 손으로 플라즈마가 뿜어져 나오는 어깨 위에 손을 댔다.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덧없이, 덧없이, 흘러갔다.

  창고에는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정국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산소계의 전원을 껐다. 쫓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여기가 지구라는 생각.”
  “지구가 좋아?”
  “그랬던 것 같아.”

  지민이 정국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했다.

  “난 지구가 블랙홀보다 더 무시무시한 곳인 줄 알았어.”
  “왜?”
  “소원이나 유류품을 구경하다보면 그래.”
  
  이번엔 정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랑스러운 것도 많아. 지구엔.”
  “사랑스러운 게 뭐야?”
  “음… 설명 못 하겠어.”
  “시시하네.”
  
  지민의 뾰로통한 말에 정국이 콧잔등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너?”
  “그 말이 더 어렵네.”
  “우주복을 벗고 당장 널 만지고 싶어.”
  “…….”

  지민이 입술 끝에 힘을 줬다. 그리곤 어렵다, 라고 말했다.

  “그런 거야. 사랑스럽다는 건.”


  버려진 작은 행성 근처에 다다랐다. 정국이 지민에게 물었다. 여기서 우주선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글쎄, 우주에는 거리의 개념이 없지만… 아마 무척 멀 거야. 지민의 대답에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곳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중력이 없는 폐 행성 근처로 다가갔다. 바닥에 닿지 못한 채 공중에 둥둥 떴다. 정국이 우주복을 입어 둔한 몸을 움직여 지민을 끌어안았다. 숨이 점점 가빠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헬멧 안에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 있으면 말라 죽는단 것을.

  지민이 작은 몸으로 정국의 우주복 위를 폭 감싸 안았다.

  “덕분에 혼자가 아니어서 좋았어. 지민아.”
  “…이름이 생긴 건 처음이야.”
  “나도 이름을 지어본 건 처음이야.”
  “푸흐… 너 또 울어?”
  “아니. 안 우는데?”

  숨이 가빠서… 그래서 우는 거야.

  “죽는 게 무서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지민이 정국의 헬멧을 부여잡았다. 그리곤 투명한 바이저 위에 입을 맞췄다. 투명한 그곳 위에 지민의 입술 지문이 찍혔다. 정국이 눈물을 주륵 흘렸다. 마치 정말로 입맞춤을 받은 기분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파도를 쳤다. 위로, 안도, 평화….

  “정국아. 끝이 아닐 수도 있어.”
  “고마워….”
  
  정국은 더 이상 말을 하기 힘들었다. 숨이 막혀왔다. 정국이 헐떡였다. 가끔 히끅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국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덧 직감했다. 호흡이 멈출 것 같은 그 지점을….

  갑갑했다. 정국이 손을 떨며 헬멧의 잠금을 풀었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을 부릅뜬 채로 지민에게 팔을 뻗었다. 지민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부여잡은 헬멧을 벗겨 올렸다. 귓가에 들리던 미세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헬멧이 벗겨진 순간 귀가 멍멍해지면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적, 그리고 암전.

  오로지 입술에 닿은 촉감만이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투박한 손으로 지민의 뒷목을 감싸고 입술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정성을 쏟는다. 깊이 닿아오는 감각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지민은 사라져가는 그를 향해 말했다.
  너도, 사랑스러워.






  Ⅰ

  
  지민이 상실의 강가를 거닐었다.
  넘치는 유류품 사이에서 유난히 쓸쓸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민이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손바닥 위에 그것을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더 보지 못하고 덮었다.
  거기엔 우주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아름다운 성운, 별의 궤적, 두 개의 강, 입맞춤.



  나를 잊은 걸 보니 다시 태어났구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잖아. 정국아.

  잘 살아.
  네 소원은 내가 꼭 돌려보내줄게.





  Ⅱ


  지민이 소원의 강가를 거닐었다.
  반짝이는 것들 사이에서 유난히 안쓰러운 게 눈에 들어왔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꼭 만나게 해주세요.


  
  지민이 누군가를 찾아갔다.
  
  이 소원을 꼭 돌려보내고 싶어요. 아버지.




  우주를 만든 이가 빙그레 웃었다.









Holo  fin.
 랴뿡님이 그리신 '우주비행사와 별'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미니슈
 | 17122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현이v  | 171229   
비밀댓글입니다
패트릭
 | 17122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국짱  | 171229   
비밀댓글입니다
담요
 | 17122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팔슙팔푸팡이  | 171229   
비밀댓글입니다
까르게께  | 171230   
비밀댓글입니다
Quiet
 | 171230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릴리  | 171230   
비밀댓글입니다
옹걍  | 171231   
비밀댓글입니다
크리스찬침침  | 171231   
비밀댓글입니다
삶은시계  | 180102   
비밀댓글입니다
이세희
 | 180105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몽교
 | 180109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잡화점엔다이찌  | 180109   
비밀댓글입니다
인절미  | 180111   
비밀댓글입니다
나듐  | 180113   
비밀댓글입니다
Notably  | 180116   
비밀댓글입니다
ananymous
 | 180128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사내  | 180203   
비밀댓글입니다
묭묭이  | 180211   
비밀댓글입니다
초코칩쿠키  | 180214   
비밀댓글입니다
Havana  | 180222   
비밀댓글입니다
꾸꾸  | 180223   
비밀댓글입니다
숭늉  | 180415   
비밀댓글입니다
White B  | 180418   
비밀댓글입니다
낮잠  | 180418   
비밀댓글입니다
미오  | 180505   
비밀댓글입니다
조예원  | 180505   
비밀댓글입니다
찌무찌무  | 180508   
비밀댓글입니다
향단  | 180508   
비밀댓글입니다
채채  | 180513   
비밀댓글입니다
이미지  | 180605   
비밀댓글입니다
 | 180610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리블리  | 180614   
비밀댓글입니다
꾸지미  | 180614   
비밀댓글입니다
프링  | 180731   
비밀댓글입니다
먀먀  | 180805   
비밀댓글입니다
예린  | 180906   
비밀댓글입니다
김랑랑  | 180908   
비밀댓글입니다
블랙오팔  | 181004   
비밀댓글입니다
부리부리  | 181109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글을 쓰시는거죠?ㅜㅜㅜㅜ
정혜숙  | 181110   
비밀댓글입니다
초희  | 181111   
비밀댓글입니다
Choco  | 181113   
비밀댓글입니다
릴리  | 190103   
비밀댓글입니다
엄지공주  | 190114   
비밀댓글입니다
방탄둥이  | 190127   
비밀댓글입니다
먀키  | 190317   
비밀댓글입니다
세라
 | 190327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국민웅냥  | 190327   
비밀댓글입니다
sindy  | 190402   
비밀댓글입니다
 | 190414   
비밀댓글입니다
이민지  | 190423   
비밀댓글입니다
찌무찌무  | 190504   
비밀댓글입니다
뀨밍  | 190516   
비밀댓글입니다
망개주세요  | 190521   
비밀댓글입니다
카유  | 190521   
비밀댓글입니다
우브  | 190523   
와....진짜 랠리님?...와..방금 여왕벌보구 장르 얘기했는데...이런 진짜 우주 스케일의 이야기라뇨..진짜ㅠㅠ
MoreForJKJM  | 190524   
소우주 들으며 읽으니 정말.... 랠리님 진짜 천재시죠...?
가뭄에비  | 190525   
비밀댓글입니다
NERO  | 190528   
비밀댓글입니다
잿빛
 | 190602  삭제
비밀댓글입니다
해와달  | 190603   
비밀댓글입니다
라엘  | 190610   
비밀댓글입니다
처돌이  | 190610   
비밀댓글입니다
봉봉  | 190611   
비밀댓글입니다
랄란  | 190612   
비밀댓글입니다
침침아누나라고불러봐  | 190614   
비밀댓글입니다
어화둥둥  | 190621   
비밀댓글입니다
여름
 | 190717  삭제
뭐야 너무 아름다운 글이잖아.... 랠리님 정말 누구세요..?
여름  | 190720   
비밀댓글입니다
버니버니  | 190722   
비밀댓글입니다
반짝  | 190726   
비밀댓글입니다
sweetR  | 190728   
비밀댓글입니다
지민뿌우  | 190803   
비밀댓글입니다
 | 190808   
비밀댓글입니다
슈크림  | 190903   
비밀댓글입니다
꾹밍  | 190913   
비밀댓글입니다
테피  | 190915   
비밀댓글입니다
양망  | 191113   
비밀댓글입니다
달빛고양이  | 191128   
비밀댓글입니다
    : 보안코드 이미지 : 보안코드 입력폼 비밀글
목록으로
jack

오늘 하루동안 보지 않기